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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85화 (186/194)

185화

* * *

황제의 집무실.

‘허…….’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던 알츠베이트 공작은 앞을 바라보며 헛숨을 참았다.

단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제국이 손안에 들어온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황제의 이름이 바뀔 것이며, 황실의 성은 ‘알츠베이트’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지금 이 상황은 무어란 말인가…….

“차일드 백작.”

이미 알츠베이트 공작의 기사들 반절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남은 수하들의 목으로는 차일드 백작가 기사들의 검이 겨눠져 있었다.

알츠베이트 공작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가까스로 분노를 참은 채 입을 열었다.

“……욕심이 과한 것 아닌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백작은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논의라기 보다는 대개가 알츠베이트 공작이 잘난 듯이 떠들면 백작이 사람 좋은 미소로 굽실대며 듣는 것에 가까웠지만.

알츠베이트 공작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감히…… 감히 백작가 따위가 자신의 대의를 망쳐 놓은 것이다!

“욕심이라……. 알츠베이트 공작님 또한 마찬가지이시지 않으십니까.”

차일드 백작은 기사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 전 비굴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귀족들이 그대를 따를 것 같은가? 이 제국을 지탱해 온 그들을 너무 쉽게 보지 않는 게 좋을걸세.”

알츠베이트 공작이란 구심점 없이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죽음이 목전이건만, 알츠베이트 공작은 오히려 더 당당했다.

궁지에 몰릴수록 초조함을 드러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노회한 공작은 분노와 치미는 긴장을 삼키며 태연을 가장했다.

차일드 백작을 흔들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차일드 백작은 수십 년을 장사치로 살아온 자, 사람의 얼굴을 살피는 일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죽음을 앞둔 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

그렇게 한발 앞서 알츠베이트 공작의 속내를 알아차린 백작은 도리어 부드럽게 웃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양의 백작은 뺨에 튄 피를 닦아 내며, 곧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제가 아주 귀한 것을 손에 넣었는데, 어디 한번 보시겠습니까?”

차일드 백작이 자신의 부관에게 손짓하자, 부관이 양피지 묶음을 받았다.

곧 양피지는 알츠베이트 공작의 손에 들어왔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손을 떨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떨지 않은 척 입을 쉼없이 놀렸다.

말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긴장을 보여 주고 만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허, 백작 네놈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로 한 귀족 명단이라도 되는 것이냐? 이건, 잠깐…….”

그러나 지금껏 태연을 가장한 게 거짓말인 것처럼 알츠베이트 공작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양피지를 펼쳐 보던 알츠베이트 공작의 눈으로 시뻘건 핏발이 솟았다.

“이…… 이건 모함이다! 어디서 이런 새빨간 거짓을, 익, 이런 거짓 날조가 통할 것 같으냐?!”

차일드 백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하게 웃으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철광석, 많이도 해 드셨더군요? 조금만 알아보니, 광산의 주인이었던 백작이 술술 불더이다. 본인은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 말이지요?”

“…….”

“황실 소속 특산품들을 몰래 내다 팔고 귀족들에게 돌아가야 할 부분까지 알츠베이트 공작가가 가로챘다. 공작님을 따르던 귀족들은 알고 있습니까? 거기다 귀족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 까지.”

“네까짓 게……! 이런 날조된 문서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오, 이런. 목숨의 위협에선 태연하시더니. 가문의 몰락 앞에서는 평정을 잃으시는군요?”

백작이 비웃었다.

“게다가 날조라뇨? 이건 모두 알츠베이트 공작가의 보물, 공작님의 소중한 손녀이신 공녀님께서 특별히 모아 오신 자료들입니다만.”

“뭐, 뭐?!”

“덕분에 저는 손쉽게 공작님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군요.”

백작의 얼굴에 더욱 큰 비소가 어렸다.

“공녀님께선 어지간히 공작님을 증오하셨던 모양입니다. 자기 가문을 멸망하게 만들고자 집요하게도 자료를 모으시다니! 하하하하하!”

이 모든 건 사실이었다.

단 하나, 샤를리즈가 자발적으로 백작에게 협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샤를리즈가 한때 알츠베이트 공작으로 인해 아스킨과 완전히 틀어진 뒤, 집요하고 독하게 모아 온 정보는 분명 샤를리즈 본인에게만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나 우연히 조각으로 된 정보가 백작의 손에 들어왔다.

이런 기연으로 백작은 최근에서야 알츠베이트 공작의 거대한 비리를 알게 된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손에 생각보다 손쉽게 들어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온다……!’

모략을 꾸미면서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던 그의 무모한 계획이, 결국 저 공작의 비리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샤를리즈가 관여했다는 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감히, 먹여 주고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것이…… 저를, 할애비의 목에 칼을 겨눴단 말인가!

“자, 이제 선택하시죠.”

백작이 눈짓하자, 차일드 백작가 기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크허헉!”

“큽, 살, 크헉!”

남아 있던 알츠베이트 가문의 기사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저 밖에는 알츠베이트 가문의 사병이 남아 있지만, 공작이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 한에야 쓸모없는 병력이었다.

“끝까지 발악하며 추악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지. 거사를 치르다 전사한 영웅이 되실 건지.”

“이… 이……! 이 내가 이렇게 당할 것 같은가!”

“아, 가족에게 배신당하신 공작님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 하나는 약속드리죠. 지금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신다면…… 제가 마지막은 아주 아름답게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마치 광대처럼 히죽 웃는 백작의 얼굴에 알츠베이트 공작은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었지만, 이제 보호해 줄 기사 하나 없는 처지였다.

남은 거라곤 두려움에 벌벌 떨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버린 부관뿐.

부관은 정신이 나간 표정이었다.

정상이었다 한들, 배에 검이 꽂힌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

툭.

“선택하시지요.”

알츠베이트 공작은 자신 앞에 던져진 단검을 바라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던가.

또한 귀족들의 수장,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 산처럼 쌓인 황금을 누려 온 것은 몇십 년이던가.

이것들이 오늘 한순간에 사라질 예정이었다.

그토록 열망했던 황제 자리를 앞두고 처지가 고작 한 자루 칼날 앞에 세워진 것이 허망했다.

내 최후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건가?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그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리.

알츠베이트 공작이 생각하는 최악의 죽음이었다.

“마지막 약속은 꼭 지킬 텐가.”

“깔끔하게 죽으시는 걸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

주먹이 콱 쥐였다.

그러나 그 주먹에선 곧 힘이 빠졌다.

알츠베이트 공작은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유언을 뱉었지만 백작은 비웃을 뿐이었다.

게다가 기사들로 하여금 일부러 비웃음을 유도했다.

초라하다 못해 치욕스러운 죽음이었다.

그러나 고문 없이 끝내는 방식은 이것뿐이었다.

마침내 알츠베이트 공작이 결심하고 목에 칼날을 댄 순간, 복도에서 소란스런 비명이 들려왔다.

“뭐야!”

“아,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문으로 달려간 차일드 백작의 기사는 곧 억센 다리에 걷어차였다.

이뿐 아니라 백작의 지시로 밖으로 나가려던 기사들 모두 문 앞에 등장한 강력한 기세를 가진 웬 세력으로 인해 단칼에 베여 쓰러지거나.

가까스로 칼날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차일드 백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죽은 듯이 차일드 백작의 뒤에 서 있던 플로리아의 눈이 어둠 속의 불길한 빛처럼 반짝거렸다.

플로리아의 뺨으로 홍조가 어렸다.

“차일드 백작, 벌하는 건 내 몫인데 뺏어 가시려고 하면 안 되지.”

“너…… 너는, 분명 갇혀 있을 텐데……!!”

성큼성큼 걸어오는 샤를리즈를 보며, 차일드 백작이 주춤 물러났다.

샤를리즈는 집무실의 풍경을 보고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 거대한 제국의 운명이 겨우 이 코딱지만 한 집무실에서 바뀌니 마니 하고 있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어. 안 그래?”

샤를리즈의 등장에 당황하던 차일드 백작은 당황도 잠시 곧 샤를리즈 곁에 서 있는 인물을 발견하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제 아들인 이안이 저기 있었으니까!

“이놈. 네 이놈! 네 짓이로구나! 이, 이 모든 것이 널 위한 길인데 이렇게 아비를 배신하려 들어?!”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안은 심드렁하게 인사했다.

“닥치거라. 이 미친놈 같으니……!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 죄는 따로 벌할 테니 빨리 정신차리거라. 당장!”

“아, 아버지? 잠깐 정정해 드릴 사실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안은 여러 사람, 특히나 과거 샤를리즈를 몇 번이고 뒷목잡게 만들었던 능글능글한 미소를 피어냈다.

“전 배신하려 든 게 아닙니다.”

“…….”

“이미 배신한 거지.”

이안이 산뜻하고 상큼하게 미소했다.

“오늘부로 저는 아버지 없습니다!”

샤를리즈는 속으로 몰래 저거, 역시 난놈 XX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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