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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90화 (191/194)

190화

대뜸 손가락 끝에 서게 된 샤를리즈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게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노아의 말을 듣던 록시디언이 살짝 놀랐는가 하면, 아스킨은 언제 얼굴을 발그레 물들였냐는 듯 샤를리즈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여차하면 노아의 목을 찌를 기세였다.

“……타국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샤를리즈 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노아가 무슨 헛소리를 할지 몰라 날을 세우던 샤를리즈가 눈매를 가늘게 찌푸렸다.

“이전까지의 샤를리즈 님은, 저기 누워 있는 알츠베이트 공작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야 그렇지.

‘샤를리즈’가 알츠베이트 공작의 피해자라고는 하나, 악녀는 동시에 수많은 악행의 가해자였다.

그녀의 과거를 동정할 수도 없을 만큼 악독하고 표독스럽던 여자.

그 누가 그녀를 동정할 수 있을까?

“향기 없는 꽃은 스스로 저지른 악행이 불러온 업보에 자멸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악녀를 꽃이라 불렀지만, 노아는 향기 없는 꽃이라 생각했다.

아니, 꽃이기보다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 생물에 가까운 것.

이토록 야박했던 평을 뒤바꾼 건 아이러니하게도 샤를리즈 그 자신이었다.

“그저 재미를 느껴 관찰하려 했을 뿐인데…….”

아니, 노아는 몰랐지만 노아가 본 사람은 ‘샤를리즈’가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그가 관찰하고 흥미를 가진 사람은 그 몸에 들어간 윤지후의 영혼이었다.

노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앞으로 여행에서 돌아온 샤를리즈와 마주했던 순간이 스쳤다.

저 얼굴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무구한 표정.

까칠했지만 저를 걱정하는 얼굴.

그런 낯에서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는 노아 자신을 갉아 먹는 독사과와 같은 호기심이었음을, 노아는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나아가 자신의 목표마저 흐리게 만드는 소낙비였음을, 흠뻑 젖고야 알아차렸다.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운 외모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특유의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만 서 있을 뿐이더군요.”

노아가 이야기를 이으며, 천천히 제 주군이었던 남자를 보았다.

한때, 이 황제가 구제불능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성군의 자질이 있다면 무엇하나.

자신의 공로를 스스로 깎아 먹는, 폭주란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폭주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언젠가 이 황성의 사람들을 학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생각이 들 때쯤 움직였지만.

놀랍게도 샤를리즈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록시디언 또한 진정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샤를리즈가 가진 목걸이로 록시디언을 제압할 수 있음은 물론 여동생을 생각하는 오빠로 돌변하는 건 언제 봐도 신기했다.

록시디언은 자신에게만은 편안하게 속을 털어놓곤 하여서.

노아는 이따금 그가 왜 그 목걸이로 인해 180도 돌변하는지.

록시디언이 추측하는 이유를 들은 적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걔를 지키고 싶고 애틋한 거지. 나나 부모님은 걔한테…… 죄지은 게 많으니. 하지만 꼭 그것뿐만은 아니야.”

록시디언은 이 말을 할 때, 어딘가 묘하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세상 처음으로 ‘정’이란 걸 느껴 본 사람처럼.

“노아, 요즘은 걔랑 내가 그래도…… 남매 같지 않냐?”

“…….”

“아, 물론 걔는 원수 내지는 나를 짊어진 짐 덩어리나 덤 정도로 보는 것 같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아.”

편안하게 웃는 그 모습은 노아 자신에게도 생경했다.

제게 가끔 은밀한 속내를 털어놓으나, 그때에도 황제로서의 위엄은 잃지 않던 사람이었으니.

“그리고 내가 지금은 레무트 그놈을 야악간 괴롭히긴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고. 지금 샤를리즈 걔랑 레무트 그놈을 봐서는…… 감이지만 분명 잘될 것 같단 말이지. 감히 제 오라비를 두고 먼저 연애를 해?”

실제로 록시디언은 실로 놀랍게도 샤를리즈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한 번도 홀로 폭주하지 않았다.

가끔 폭주 전조라거나, 그 직전까지 간 일은 있었으나, 샤를리즈가 있거나 혹은 그 스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렇게라면 언젠가는 정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폭주를 제외하면 록시디언은 이상적인 황제였다.

그러나 노아의 계획은 이미 시행되었고, 태엽이 돌아간 지 오래였다.

“플로리아예요. 제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하면 되나요?”

이미 너무 많이 건너 버려서 더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이 강 한중간에 갇혀 버린 기분이었다.

“샤를리즈를 흠모하였더냐?”

다시 현재로 돌아온 지금, 노아는 록시디언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게도,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달랐을까.

샤를리즈가 이미 자신의 인생을 쥐고 흔들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걸?

아니면 조금만 더 빨리 록시디언의 변화의 가능성을 깨닫고 이 계획을 멈췄어야 했을까.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은 노아는 마지막에 가서야 제 스스로 톱니바퀴를 멈추는 쪽을 택했다.

“매일 밤 꿈에 황제 폐하도 레무트 공작도 그리고 샤를리즈 님도 나왔어요. 그 꿈속에서 저는 황제 폐하와 사랑에 빠졌지만……. 아니,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상하죠, 분명 서로 사랑하는데,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니.”

머릿속으로는 플로리아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사실 황제 폐하와의 날 선 사랑에 대한 기대보다는, 샤를리즈 님을 한번 보고 싶었어요.”

꿈으로 록시디언과 아스킨, 그리고 노아 자신을, 마지막으로 샤를리즈를 보았다던 플로리아는 어째서인지 샤를리즈를 직접 보고는 묘한 감상을 품은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알아차렸다.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빠져든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노라고.

저기,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차가운 얼굴의 아스킨 레무트처럼 말이다.

“도대체 다들 왜 이래? 미친 건가? 제길! 들어 보십시오, 저년이 우리의 계획을 바꿀 만큼 대단하단 말입니까!!”

이야기를 듣던 차일드 백작이 기사의 발아래 짓눌린 채,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처럼 소리쳤다.

미친 사람은 보통 사람의 배 이상으로 힘이 세단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샤를리즈는 저 몸부림에 작게 감탄했다.

덩치 큰 기사들이 들썩이고 있었다.

노아는 무릎을 꿇은 채 슬쩍 백작을 바라보다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다 끝났다. 순순히 받아들여라. 죗값을 치르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하고도 태연한 노아의 말에 차일드 백작의 눈으로 핏발이 섰다.

“닥쳐!!”

차일드 백작이 기어이 기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손을 뻗었지만, 그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애초에 그가 잡으려던 샤를리즈는 이미 멀어진 데다가.

차일드 백작에게로 날아간 기묘한 마법 같은 것을 보았기에, 샤를리즈는 느긋하게 구경했다.

아니, 구경하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샤를리즈는 눈을 크게 떴다.

“이안!”

경악스럽게도 이안이 제 부친에게 향하는 마법 같은 것을 대신 맞은 것이다.

대체 왜, 어째서?

왜 저런 머저리 같은 인간을 대신해서 맞았단 말인가?

샤를리즈가 뛰어갔다.

“아들아……? 너…….”

차일드 백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지만 기사가 넷이나 달라붙어 그를 멀리 떼어냈다.

샤를리즈는 황급히 이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야!”

모든 일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최종 보스로 보이던 노아는 스스로의 죄를 고백했고.

이대로 재판과 처벌만이 있을 터.

게다가 이안이 제 부친의 선처를 요청했지만, 요구한 것은 저 북부 극단으로 보내는 처벌이었으니.

어차피 혹독한 추위를 못 이겨 죽을 것이었다.

곧 죽을 상대를 위해 나서서 대신 맞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가?

대체 무얼 맞은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피가 줄줄 새는 광경에 샤를리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노아, 너 대체 뭘 던진 거야! 이거, 살아, 살 수는 있는 거지?”

노아는 무릎 꿇은 채로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죽이려 던진 것이니 잘은 모르겠습니다. 샤를리즈 님, 중요한 건…… 저는 공격할 줄만 알지 치료는 하지 못합니다.”

샤를리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손이 샤를리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치료는, 쿨럭, 공녀님부터, 하셔야죠.”

“뭐라는 거야. 이 멍청한 인간이. 넌 조용히 해. 여기 황제씩이나 있으니 어떻게든 살겠지!”

“하하, 하…….”

샤를리즈가 혹시 몰라 이안의 머리를 제 다리 위에 올리며 록시디언과 아스킨을 절박하게 바라보았다.

록시디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근처 기사에게 무어라 명령했고, 아스킨 또한 제 기사에게 명령했다.

그러고는 샤를리즈 옆에 앉아 이안의 목을 짚었다.

‘……이건.’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부상자들을 보아 온 아스킨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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