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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오빠는 덤입니다-191화 (192/194)

191화

살 가능성이 매우 낮다.

아스킨 또한 어찌하여 이안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이해해 보고자 한다면.

만약 아리아가, 혹은 제 부모가 이런 일을 저질러…… 처벌을 받노라면.

그는 어떻게든 그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그들을 살릴 가능성을 찾을 것이며.

이렇게 의미 없이 절명하게 두지 않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이안이 어떤 생각으로 움직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아스킨은 차마 이안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건 이미 이 모습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이안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하하, 공녀, 님. 쿨럭. 공녀님, 품이, 따뜻하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되네요…….”

“넌 진짜 미친놈이야. 마지막에 이따위로 사고나 쳐? 그러려고 날 돕겠다 한 거야?”

“설, 마요……. 그냥.”

이안의 눈이 어딘가를 향했다. 그러나 원했던 곳에 닿지 못하고, 힘없이 깜빡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때, 정말로, 존경하던, 아버지였어요…….”

“…….”

“이렇게, 쉽고, 편하게…… 죽게, 두면 안 돼요. 죗값을, 치러야죠……. 전, 제국민 앞에서.”

이 말은 샤를리즈라도 알 수 있었다.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과, 한때 너무나 존경했던 아버지가 그래도 살았으면 하는 모순적인 그 마음을.

차일드 백작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광인처럼 날뛰는 것 또한 멈춰 버린 상태였다.

이안의 몸은 빠르게 식어 갔다. 샤를리즈는 차가워져 가는 이안의 몸을 꽉 끌어안으며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아스킨은 샤를리즈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이안의 몸을 빼냈다.

“샤를리즈,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환자에게 좋지 않은 자세다.”

“아…… 그럼 어떻게 해야.”

“의원을 부르러 갔다. 지혈을 시도할 테니…… 이자가 견뎌 주는 수밖에 없겠군.”

모두가 당황한 사이, 아스킨은 홀로 차일드 백작을 경계했다.

본래 미치광이처럼 굴던 사람이 제일 무서울 때는 가장 광적으로 굴 때가 아니다.

지금처럼 죽은 듯이 고요해질 때지.

아스킨은 수많은 죄인이 고요해진 뒤에 가장 큰 사고를 치거나 자결하는 모습을 무수히 봐 왔다.

게다가 샤를리즈에게 크나큰 원한을 보이고 보복하려 들었으니, 샤를리즈 보호 또한 급선무였다.

“샤를리즈, 일단 그대는 안전한 곳으로…….”

“아, 아스킨 이안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어. 이거, 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제아무리 모든 일에 독하게 굴고 태연함을 유지하려 애쓰던 샤를리즈였지만.

눈앞에 아는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에선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스킨은 제 옷을 간절히 잡아 오는 손을 보며, 자신이 기적을 행사할 수 없음에 유감스러웠다.

눈가에 아롱진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안타깝지만…….”

“그런, 그런 말 하지 마.”

“하! 하하하하하!”

차일드 백작의 광소가 들려왔다. 아들이 눈을 감은 모습을 바라보며, 백작은 충혈된 눈으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아들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미 이안이 죽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차일드 백작의 행동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백작, 더는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뭣들 하고 있나! 죄인을 묶어라!”

“예!”

“닥쳐, 내 아들을 죽여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끝내려는 건가!”

백작이 이를 악물고 노아를 노려보았다. 저자가 끝내 배신하지만 않았더라도……!

이 모든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아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실패했을 계획이란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차일드 백작은 기사들에게 깔려 꽁꽁 묶이면서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중얼중얼거렸다.

분노는 노아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황제인 록시디언으로 향했다가.

그 끝은 샤를리즈였다.

“크아악, 모든, 모든 건 네년 때문이야, 네가, 네가! 멀쩡한 내 아들을 꼬시지만 않았더라도, 내 아들은 죽지 않았어!”

분명 이안은 그 자신의 의지로 백작 앞을 막아섰건만.

그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로 백작은 남의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제 탓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모습. 샤를리즈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던 얼굴 그대로 가만히 백작을 노려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에, 백작이 흠칫하지만 잠깐뿐이었다.

“그, 그래, 모든 건 다 네년의 욕심 때문이지. 샤를리즈 알츠베이트! 저주할 것이다! 기어이…… 이 모든 걸 망쳐 버리는구나! 너만, 너만 아니어도 내 아들은 죽지 않았어!”

샤를리즈가 무어라 할 찰나,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까지 남 탓만 하는군요, 추레하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플로리아였다. 백작이 경악한 낯으로 플로리아를 노려보았다.

플로리아는 이미 순순히 기사에게 제압당한 상태였기에 목앞에 칼날을 앞두고 있었지만.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양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사이 록시디언이 백작의 등을 콱 밟았다.

“돼지처럼 잘도 꽥꽥거리는군. 잘 들어 보게, 백작. 네 욕심이 네 아들을 죽인 거다. 아직도 모르겠나?”

백작이 짓눌린 채로 버둥거렸다. 록시디언은 고요히 칼을 들어 올렸다.

재판을 받아야 하니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원흉 중 하나로서 즉결 처분 정도는 나쁘지 않으리라.

“저기 보이는 네 아들은 아직 죽지 않았어. 하지만…… 어리석은 아비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걸었지.”

“놔, 놔……!! 읍!”

“네 모습을 돌아보도록. 이안 경의 목숨이 아까울 정도야. 고작해야 너같이 비루한 인간의 목숨을 살리려고 귀중한 생명을 걸다니.”

록시디언이 그대로 백작의 어깨를 꿰뚫어 버릴 찰나, 누군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얌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노아였다. 노아는 칼날을 잡은 채로 말했다.

“폐하, 마지막 충의로 청컨대 찌르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뭐?”

“이래서 제가 한 방에 처리하려 한 것이지만……. 그리되지 못하였으니.”

노아가 흘끗 벌레처럼 바닥에 깔려진 백작을 응시했다.

“저자의 죽음은 피를 흘리는 죽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흘리더라도 대번에 죽이거나, 혹은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을 선사하셔야 합니다.”

샤를리즈는 더는 백작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는 대신, 천천히 플로리아에게 향했다.

이상하게도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플로리아가 이 상황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건 이 몸에 빙의하자마자 신의 양피지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시선을 느낀 것인지 플로리아 또한 샤를리즈를 응시했다.

그녀는 마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듯 덤덤하고 무표정했다.

하지만 샤를리즈와 눈이 마주하자, 오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환희, 억울함, 속상함, 분노……. 어떤 단어를 붙이더라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플로리아가 입모양으로 가만히 속삭였다.

‘내 삶을.’

샤를리즈는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빼앗긴 기분이야.’

플로리아의 말이 끝날 때까지 지그시.

‘하지만 왜, 나쁘지 않은 기분일까? 통쾌할 정도야.’

플로리아가 보일 듯 말 듯 웃고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샤를리즈는 그녀가 남긴 의뭉스러운 말에 미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내 이안을 향한 걱정으로 지워졌다.

어찌하여 의원이 이리도 늦는단 말인가?

상황은 거의 일단락되는 듯했다.

“아스킨, 이안을 데리고 의원에게 직접 가는 건 안 되는 건가? 저대로는 정말…….”

“아직은 살아 있다. 하지만, 저 상태의 환자를 옮기는 건 사망을 재촉하는 일이야. 의원을 기다리는 쪽이 가장 살길이 높을 거다.”

“…….”

한편 록시디언 쪽은 록시디언이 의구심 가득한 낯으로 노아의 말을 들어주는 쪽을 택했다.

노아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데려가 심문하면 될 일이었다.

“저는 도망갈 생각이 없습니다, 폐하.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말은 잘하는군.”

그때였다. 허망한 표정을 한 백작이 기사들에게 묶인 채로 억지로 일으켜 세워지다 말고 거칠게 반항했다.

그 탓에 당황한 신입 기사가 저도 모르게 칼을 휘둘렀다.

“……야단났군요.”

노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 헛소리들 하고 있어!”

백작의 목에서는 칼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자세히 보면 피가 용암처럼 조금씩 끓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누가 누굴 벌한단 말인가? 잘나신 황제 폐하, 제가 바로 그 자리를 탐냈건만, 당신은 고결하게 서 계시고 이 백작은 당신 말처럼 비루한 인간이 되었군요.”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백작은 최후의 순간에야 이를 깨달았지만 진실을 외면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없다고!

“하하하하하하! 난, 제국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거야. 이 제국의 무한한 번영을 위해서였다고!”

차일드 백작이 소리칠수록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더욱 거칠게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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