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화 (2/686)

第一章 ― 풍운객잔(風雲客棧)

뜨거운 폭염이 사람들의 부지런함까지 태워 버렸는지, 항주의 거리는 해가 뜬 지 한참이나 지났건만 여전히 고요하기만 하다.

하긴, 항주는 본래 화려한 밤 문화와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 밤에 영업을 해야 하는데, 누가 이른 새벽부터 몸을 움직이겠는가?

그나마 외곽의 평범한 촌민들이라면 몰라도, 이곳 항주 제일의 번화가인 금선로(金仙路)의 사람들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밤새 일을 한 사람들이 이제 막 취침에 들어가서 곯아떨어져 있는 시각, 행색이 몹시도 남루한 한 사내가 금선로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십 대인지 삼십 대인지, 도저히 나이를 측량할 수 없는 사내는 거지도 접근을 꺼릴 만큼 추레한 몰골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기름때가 줄줄 흐르는 머리카락은 새집처럼 엉켜 있었고, 도대체 그게 옷인지 걸레인지 구분이 안되는 누더기는 힘없는 어린아이가 조금만 잡아당겨도 실밥이 우두둑 뜯겨져 나갈 것처럼 약해 보였다.

그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더니, 이내 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풍운객잔(風雲客棧).

건물의 간판엔 보기만 해도 힘이 쭉쭉 빠지는 조악한 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사내는 그 간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군.’

그는 찬찬히 객잔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세운 지 백 년은 된 듯한 낡은 나무 기둥. 그리고 그 뒤로 한 번도 보수를 하지 않은 듯 부실하기 짝이 없는 얇은 벽.

정말로 보잘것없는 초라한 건물이지만, 화려한 전각들이 즐비한 금선로에 그런 건물이 우뚝 서 있으니, 오히려 눈에 띄는 느낌이었다.

새하얀 대리석들 사이에 끼어 있는 까만 조약돌이랄까.

혼자서만 화려하고 예쁘지 않은 건물이기에 오히려 주목하게 되는 신기한 곳이었다.

쿵쿵.

“주인장! 주인장 계시오?”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불러 봤지만 안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면 포기할 법도 하건만, 사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목청을 높여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주인자아앙―!”

쿵쾅거리는 소음과 우렁찬 목소리가 이각이 넘게 울려 퍼지자, 결국 도저히 못 참겠는지 객잔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에에잇! 도대체 누구요!”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신경질적인 인상에 마치 쥐처럼 콧수염을 얇게 기른 중년의 사내였는데, 그는 한참을 자다 나왔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벌레를 씹은 것처럼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척 보니 거지였다. 돈을 내줄 손님이라도 고까울 판국에, 거지 따위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이 거지새끼가! 동냥을 받으려면 영업시간에 올 것이지, 왜 사람 잠을 깨우고 지랄이야! 지랄이! 어쭈, 안 꺼져? 허어! 내 살다 살다, 이젠 거지까지 우리 풍운객잔을 우습게 보는구나! 세상 말세로다! 세상 말세야!”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더니,

“정말로 안 꺼져? 이 자식! 좋다, 아예 거기에 가만히 서 있어라!”

라고 외치고는 안쪽에서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양동이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한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추레한 몰골의 사내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막 양동이를 엎어 버리려던 객잔 주인의 손목을 덥석 잡았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객잔 주인이 아무리 용을 써도 양동이를 쥔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객잔 주인은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한 뒤에야 상대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당신 누구요?”

추레한 몰골의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을 뿐이다.

“헛……!”

굶주린 늑대 같은 눈빛이 번쩍 치솟자 객잔 주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촤아악!

“으악……!”

……물론, 양동이를 든 채로 넘어졌으니 온몸에 물을 뒤집어썼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객잔 주인은 자신이 젖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지, 혼이 빠져 버린듯한 얼굴로 계속해서 뒤로 기어갔다.

“무, 무, 무, 무, 무슨 일로 오셨소? 날 죽이려고 온 거요? 처, 청풍객잔에서 시킨 거요? 그렇소?”

“……그런 게 아니오.”

“그, 그, 그럼? 아, 이 객잔의 땅문서를 빼앗으러 오셨소? 아,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객잔 주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무슨 놈의 눈빛이 그리 강렬한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쪼개지고,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눈빛은 객잔 생활 사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살기가 철철 흐르는 것이, 살인자도 보통 살인자가 아닐 게 틀림없었다. 웬수 같은 청풍객잔에서 대단한 놈을 해결사로 고용했구나 싶었다.

슬쩍 눈알을 돌려 얼굴을 쳐다보자, 완전히 뭉개진 채 흔적도 안 남은 오른쪽 귀가 보였다.

“……어이쿠! 어이쿠!”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분명 어딘가 커다란 뒷골목 패싸움에 꼈다가 귀가 뜯겨져 나간 게 틀림없었다. 간이 떨려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몸에 다른 흉터도 많을 것이다.

‘우라질! 악질도, 대단한 악질이 걸렸구나!’

객잔 주인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저벅. 저벅.

‘그놈’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칼부터 들이댈까? 아니면 다리몽둥이를 부숴 놓고 ‘땅문서를 내놓지 않으면 다른 쪽 다리도 병신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할까?

겁이 났다.

당장 문서를 넘겨주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걸 넘겨주면 안 되는데…….’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마른침만 꼴딱꼴딱 삼키고 있는데, 어딘가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을 죽이러 온 것도 아니고, 땅문서를 빼앗으러 온 것도 아니오.”

마치 상냥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물론 듣는 쪽에선 늑대가 토끼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무서웠다.

“그, 그럼?”

“…….”

“그럼, 왜 온 것이오?”

추레한 사내는 웃으려고 노력하는 듯한 ―한쪽 입꼬리를 어색하게 끌어올리는― 얼굴로 말했다.

“이 객잔을 사러 왔소.”

“허엇……!”

객잔 주인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왜 그렇게 놀라시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부, 분명 터무니없는 값으로 후려치겠지! 청풍객잔에서 은자 이백 냥에 팔라고 해도 안 팔았던 나다. 백 년 전통의 풍운객잔은 그리 값싸지 않아!”

“백 년?”

“그래! 백 년이다! 이 풍운객잔은 증조부 때부터 백 년이나 이 자리를 지켰단 말이다! 내가 제값도 못 받고 팔 것 같나? 웃기는 소리! 난 절대 안 팔아!”

객잔 주인은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사내가 객잔을 빼앗으려는 흑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러면서 자신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에 두려워서 말이 끝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은자 이백 냥이면…… 금자로 열 냥인가? 으음, 헷갈리는군. 백 년이나 됐다면…… 그럼 좀 더 많이 주면…… 아, 이거면 되겠군.”

추레한 사내는 등 뒤에 메고 있던 봇짐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큼지막한 것을 하나 꺼내 객잔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때까지 실눈을 뜨고 그의 행동을 살피고 있던 객잔 주인은 그 순간 입을 쩍 벌리며 벌떡 일어섰다.

“이, 이건……!”

“금괴요. 이거 하나면…… 으음, 금자로 서른 냥이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마, 맞소. 서른 냥이오.”

“이거면 되겠소? 난 객잔 일을 하고 싶소.”

추레한 사내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너무나 쉽게 금괴 하나를 척 내밀었다.

은자 하나가 동전으로 이천 문이고, 그 돈이면 보통 농민 한 가정이 반년은 먹을 쌀을 살 수 있다.

그리고 황금 한 냥은 은자로 스무 냥. 그러니 금괴 하나, 황금 서른 냥이라면 은자가 육백 냥이니, 무려 동전으로 백이십만 문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것이다.

‘악질 파락호가 아니라 재신(財神)이었구나!’

객잔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은자 삼백 냥만 준다고 해도 팔 생각이었는데, 이런 거금을 손에 쥐게 될 줄이야.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면서 다른 호박을 우르르 끌고 온 셈이었다.

‘잠깐만……. 이것 봐라……?’

그런데 막상 금괴를 덥석 받아들자, 순간적으로 상인 특유의 욕심이 생겼다.

그는 잠시 눈을 빛내다가 금괴를 다시 내밀었다.

“가져가시오.”

“어째서……?”

“역시 이 가격엔 팔 수 없소. 크흠, 그, 그, 금괴가 두 개가 있다면 모를까.”

도박이었다.

무리수였다.

오로지 사십 년간 갈고닦은 눈치로 상대가 금전 감각에 어두울 거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건 무모한 도박이었다.

“으음…….”

정적이 흘렀다.

사내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날카로운 눈을 찌푸리자 객잔 주인은 또 한 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그나마 금괴 하나조차 못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괜히 성질을 건드리는 바람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뒤뜰에 묻혀 백골이 되도록 썩어 가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객잔 주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어차피 간 거 끝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티고 섰다.

반 각의 시간이 일 년처럼 흘러갔다.

마침내 사내의 봇짐에서 또 다른 금괴가 하나 튀어나왔을 때, 객잔 주인은 입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야만 했다.

“이제 됐소?”

“돼, 됐소!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 당장 이 객잔을 넘겨 드리리다!”

객잔 주인은 자신이 마시기 위해 끓여 뒀던 고급 찻물을 선뜻 내어 준 뒤, 곧장 지필묵과 함께 땅문서를 가지고 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이름이 왜 필요하오?”

“허어, 이런 일 처음 해 보시는가 보구려. 크흠! 날 만난 게 다행인 줄 아시오. 이런 거 잘 모르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 않겠소? 이제 땅 임자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이곳에 새 임자인 당신의 이름을 써 놓아야 하는 법이오.”

객잔 주인은 한껏 잘난 체를 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름이?”

“……장기린.”

“뭐라고 하셨소?”

“장기린. 내 이름은 장기린이오.”

객잔 주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기린이라니……. 그런 걸 이름으로 쓰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시대의 기린아(麒麟兒). 세기의 기린아. 뭐 이런 식으로 거창한 칭찬에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걸 이름으로 쓰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낯이 화끈거렸다.

“왜, 문제 있소?”

“아, 아니오. 전혀 없소이다. 조, 좋은 이름이구려.”

이제껏 그나마 친절하게 보이려던 사내도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찌푸리며 살벌한 기색을 보였다.

대번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객잔 주인은 황급히 땅문서의 끝에 ‘장기린’이라는 이름을 쓰고 수결까지 쾅 찍었다.

“됐소. 이제부터, 이 객잔은 당신 거요.”

“…….”

“어? 왜 그러시오? 혹시 문제라도 있소?”

“아, 아니오.”

객잔 주인은 상대가 왠지 감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털며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저렇게 무시무시해 보이는 사내가, 고작 이런 허름한 객잔 하나 인수한다고 감격해서 울 리는 없지 않은가.

“크흠, 그, 그럼, 난 이만 가겠소.”

“벌써 간단 말이오?”

“주인이 정해졌다면 빨리 나가 주는 게 예의지. 그래야 그쪽도 바로 할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소?”

객잔 주인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 짐을 한 보따리 등에 맨 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오래 있다가 상대가 바가지를 썼다는 걸 깨닫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그밖에도 여기에 남아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몇 개 더 있었고 말이다.

다행히 상대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맙소.”

“별말씀을. 그럼 성공하시길 빌겠소. 아! 그리고……. 저기, 내 방에 옷들이 많으니 지금 옷은 버리고 그중 하나를 입는 것이 어떻겠소?”

괜히 미안해져서 한마디 충고한 건데, 돌아오는 반응이 놀라웠다.

“내 옷이 이상하오?”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진심……이오만.”

객잔 주인은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걸 걸치고서는 ‘내 옷이 이상하오?’라고 물을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정신머리란 말인가.

“허, 이것 참! 지금껏 어디서 뭘 하며 살아온 거요? 난 처음에 당신 차림새를 보고 당연히 거지라고 생각했었소. 씻지도 않고, 누더기를 옷이랍시고 입고……. 그 꼴로 다니면 아마 어느 누구도 당신이 풍운객잔의 주인이라는 걸 모를 거요.”

“그, 그렇소?”

“그렇소! 그러니 당장 몸 좀 씻고 깔끔하게 가꾸시구려. 객잔의 생명은 청결이오! 청결! 그런데 객잔의 주인이 이래서야, 쯧쯧.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객잔 일을 하려고…….”

객잔 주인의 머릿속에선 이미 사내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상대가 그의 말 한 마디에 당황하며 눈을 끔뻑거리는데 어느 누가 그런 사람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그는 추레한 사내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두드려 준 뒤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완연히 해가 뜬 항주의 아침.

그날은 그의 인생에 평생토록 기억될 최고의 봉을 잡은 날이었다.

☆ ☆ ☆

객잔 주인이 나간 뒤, 장기린은 가슴 벅찬 심정으로 풍운객잔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낡을 대로 낡은 건물. 싸구려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벽. 어느 하나 자랑스레 내놓을 게 없는 허름한 탁자들.

하지만 장기린의 눈엔 그런 것들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전장에서 십삼 년이다.

그것도 변변한 건물 하나 지을 수 없는 북부 초원에서 싸우다 보니, 가끔 점령지의 파오에서 지냈던 것 말고는 거의가 길바닥에서 자고 먹으며 살아왔다.

그러니 객잔이라는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장기린은 쳐다만 볼 뿐, 함부로 손을 대면 부서질까 봐 객잔의 물품들을 만지지도 못했다.

“그런데 객잔이 생각보다 비싸군. 이게 금괴 두 개만큼이나 한다면, 오면서 본 다른 객잔은 대체 얼마라는 소리지?”

그는 어릴 적부터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는 바람에 금전 감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어떤 것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만한 객잔이 금괴 두 개라면, 오면서 본 커다랗고 화려한 객잔들은 최소한 금괴 다섯 개 이상은 줘야 하리라.

물론 오해였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금괴가 총 다섯 개……. 그중 두 개를 썼으니 이제 세 개 남았군. 으음, 생각보다 지출이 커.”

물론 금괴를 다 써 버려도 대륙 최고 전장인 금산전장(金山錢莊)에 맡긴 돈이 남아 있지만, 그건 최후의 최후까지 쓰지 말고 아껴야 할 돈이었다.

장기린은 그에게 금괴 하나면 객잔 두 개는 살 수 있을 거라고 큰소리치던 막내 진구(進口)를 떠올렸다. 그래도 대(隊)에서 돈에 가장 관심이 많은 녀석이라서 그 말을 믿었건만, 아무래도 전쟁터로 나오는 녀석이 으레 그렇듯 실제론 쓸모도 없는 허당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항주라서 비쌌을 수도 있지.”

그는 애써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항주. 그중에서도 서호가 가까이 있는 이곳은 대륙 제일의 유흥의 도시가 아니던가.

얼핏 듣기로도 이곳은 부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물가가 비싸다고 했었다.

장기린은 일단 객잔 내부를 구석구석 둘러본 뒤, 객잔 주인의 방으로 보이는 뒤채에 짐을 내려놓고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뭘 해야 하지?”

그는 객잔을 운영해 보기는커녕, 여태껏 번듯한 객잔에서 잠을 자 본 적도 없었다. 객잔은 샀지만 사람들이 ‘객잔’이라는 곳에서 음식을 먹고 잠을 잔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일단 씻자. 옷도 갈아입고.”

아무 생각 없이 뒤채의 우물가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하듯 너무나 자유로웠다.

☆ ☆ ☆

장기린은 본래 손님들이 앉는 다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확실히 때를 벗기고 새하얀 백창의를 갖춰 입은 그는 딴사람 같았다. 너무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턱 선과 다부진 입매와 높은 콧날은 사내다우면서도 깔끔했다. 관옥 같은 미남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을 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머리카락을 대충 하나로 질끈 묶어 뒤로 넘겨 놓으니 어딘가 야성적인 느낌까지 풍겼다.

문제는 눈이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난 십삼 년간 하루에 몇 십 명 이상씩 꼬박꼬박 죽여 온 그의 눈은 웬만한 뒷골목 건달들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칠 만큼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강렬한 눈빛으로 객잔 구석구석을 쏘아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라리 어디 화전민촌에라도 가서 농사나 지을 걸 그랬나 하고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고민할 게 끝이 없다.

평범한 생활은 어떤 거냐고 물었을 때, 막내 진구가 ‘객잔이 최고!’라고 하는 말에 넘어간 게 죄였다.

“형님, 아, 아니, 대주님. 객잔을 하나 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요리는 숙수가 다 할 테지, 잠자리 정리나 자잘한 관리는 침모랑 하인들이 다 할 테지. 객잔 주인은 매일매일 또박또박 돈 관리나 하고, 하인들 녹봉이나 챙겨 주면 된다 이겁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평범한 생활의 최고봉이 바로 객잔 주인이라고요. 다만 초반에 돈이 좀 든다는 게 단점인데……. 헤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병사에 지원한 거 아니겠습니까?”

진구는 적룡기마대에 몇 안 되는 ‘스스로 지원’한 병사였다. 왜 그런 미친 짓을 했냐고 물으면 농사일론 평생 일해도 절대 객잔을 차릴 수 없어서 돈 벌러 왔다고 말하곤 했다.

‘재밌는 녀석이었지.’

진구는 막내답게 싹싹하고 귀여운 맛이 있는 놈이었다. 눈치가 빨라서 형들이 원하는 걸 바로바로 준비해 주었고, 언제 어디서든 잠자리 관리 같은 건 알아서 척척 만들어 내고 했다. 경험 많은 막내가 있다는 건 그래서 편한 것이다.

“……어, 잠깐.”

장기린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객잔 일을 몰라도 대신에 경험 많은 숙수랑 침모를 구하면 되는 거잖아? 왜 그걸 몰랐지?”

경험이 부족하다면, 경험 많은 사람을 데려와 부족한 걸 보충하면 된다.

그 간단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며 장기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숙수랑 침모를 구하자. 이왕이면 최고로!”

장기린은 다짐했다.

자고로 사내가 칼을 뽑으면 일세의 영웅이 되어야 하는 법!

이 장기린이 뭔가를 하는데, 그 정도도 못 할쏘냐!

최고의 숙수와 최고의 침모를 구하고, 최고의 활약을 보여서 이 풍운객잔을 항주 최고의 객잔으로 만들고 말리라!

“……아차, 그러면 평범하게 사는 게 아니지.”

장기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반성했다.

평범한 것이 최고다. 과하게 특출나도 안 되고, 너무 눈에 띄어서도 안 된다.

그는 전쟁터에서 괜히 공을 세우겠답시고 나대다가 제일 먼저 목이 날아가 버리는 병사들을 심심치 않게 봐 왔다.

“무난하게. 경험 많은 사람을 찾아서, 무난하게 하자.”

장기린은 그렇게 결심을 바꿨으나, 열을 세기도 전에 크나큰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런데 숙수와 침모는 어디서 구하지?”

산 넘어 산이요, 강 넘어 강이었다.

장기린은 다시 머리를 싸매고 끙끙 고민하기 시작했으나, 애초에 그건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숙수할 건지 물어볼까? 아니, 안 되지. 그러다간 경험 많은 사람이 아니라 어중이떠중이가 올 테지. 그럼 어떻게 하지? 숙수나 침모……. 쓸 만한 숙수나 침모는 분명 다른 객잔에서 근무하고 있을 텐데……. 젠장! 그런데 이미 일할 곳이 있는데 뭣하러 이곳에 오겠어? 주인이 있는 놈을 꼬셔서 데려와야 한다는 건가?’

한참을 고민하던 장기린의 머릿속에 문득 대원들 중 하나였던 섭우생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대주님. 본래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라, 본래 공자께선 항상 탐(貪)이란 괴물을 조심하라고 했었지요. 성욕, 식욕, 수면욕, 그 외에도 수많은 욕구에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여자에 미쳐 양아버지를 배반했던 삼국시대의 여포처럼, 아무리 충성스러워 보이는 자라도 원하는 걸 듬뿍 준다면 주인도 바꾸고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별생각 없는 촌민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당장 받던 녹봉의 두 배를 준다고 하면, 이십 년된 주인이라도 배신하고 나가기 마련이지요.”

세속적인 진구와는 다르게 섭우생은 어딘가 고고한 학자 분위기가 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가 하는 말은 다 맞았고, 실제로 섭우생이 하는 말을 따라서 움직였을 때, 싸우지도 않고 전투에서 이긴 적도 있었다.

“그럼…… 그냥 다른 객잔으로 찾아가서 그 집 숙수나 침모에게 돈을 두 배로 주겠다고 하면 되는 건가?”

장기린은 가장 좋은 생각이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씩 웃었다.

“……잠깐, 그럼 어느 객잔에서 데려와야 하지?”

산 넘어 산이요, 강 넘어 강이로다.

다시금 생각나는 명언이었다.

도대체 끝이 없다고 생각하며 장기린이 머리를 쥐어뜯는 사이, 바깥에선 갑자기 소란스런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

“어이, 영달(英達)이!”

“오늘도 문을 잠궈 놨으면 그∼냥, 아예 부숴…… 어라? 열려 있네?”

“휘익! 어디로 토낀 거 아냐? 이거 영 불안한데?”

건들거리면서 객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세 사람이었다. 대충 허리를 묶은 감색 바지에 상체를 반 이상 드러내는 겉옷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옷인 배자(褙子)만 걸치고 있었는데, 제법 덩치도 컸고 눈매도 매서웠다.

그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다가 장기린을 보더니 눈을 깜빡이며 놀랐다.

“사람이 있네?”

“뭐야? 어이, 거기 손님이슈?”

장기린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들은 바닥에 침을 찍 뱉더니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오늘 장사 안 하니, 나가슈.”

“…….”

“아, 거 눈치 없는 양반일세. 우리가 주인장하고 볼일이 있어서 그랴. 나가라면 나가지, 뭘 그리 꾸물거리는…… 헉!!”

그들 중 가장 먼저 다가온 사내가 장기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 뒤에 있던 두 명도 장기린의 눈을 보자마자 헛숨을 쉬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커헛!”

“형님! 이, 이놈, 동종 업자입니다.”

“무, 무슨 파에서 왔냐? 우, 우리는 장흠파다! 못 보던 얼굴인데, 소속이 어디야!”

장기린의 눈빛은 뒷골목에서 구를 대로 구른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은 품에서 소검(小劍)까지 빼 들고 우물쭈물하며 함부로 움직이질 못했다. 마치 맹수를 만난 듯한 태도였다. 그들은 장기린의 눈처럼 되려면 사람 한둘 죽여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디서 이런 놈이?’

‘살수 아냐? 그것도 일급 넘는? 젠장, 오금이 떨려 죽겠네. 뭔 놈의 눈빛이……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쪼그라들지?’

장기린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파락호들은 잔뜩 긴장해서 마른침만 삼켰다.

“…….”

“…….”

온몸이 말라 버리는 듯한 무거운 침묵이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압박감을 받은 파락호들이 거의 울 듯한 얼굴이 돼 있는 것을 보자, 장기린은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 객잔의 주인이오.”

“……뭐?”

“방금 이 객잔을 샀소.”

파락호 셋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굳어 있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럼 영달이가 당신한테 객잔을 팔았소?”

“영달이? 그건 이전 풍운객잔의 주인을 말하는 거요?”

“그, 그렇소.”

“그렇다면 맞소. 내가 샀고, 그 사람이 팔았소.”

“……이, 이런!”

그들은 당황한 듯 웅성거렸다.

“그럼 지금 그 사람은 어디 있소!”

“모르겠소. 이각쯤 전에 황급히 나가던데.”

“이런, 젠장! 토꼈어!”

“오늘이 딱 수결 찍는 날이었는데!”

그들은 흥분해서 방방 뛰더니, 이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가 샀어야 했는데…….”

“그럼 한발 늦은 건가? 자, 장흠 형님께 뭐라고 하지?”

“야야, 가만히 있어 봐. 크흠! 거기, 그, 그쪽. 그럼 그쪽도 청풍객잔에서 의뢰를 받으신 거요?”

그들은 장기린이 의뢰를 받아 여기에 온 해결사라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아니라고?”

“그냥 내가 산 거요. 의뢰 같은 건 없었소.”

파락호들의 얼굴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지만 장기린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들은 장기린이 그들처럼 의뢰를 받았으면서 사실을 숨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크흠, 뭐, 나도 이 바닥 생리를 아니까, 딱히 뭐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좀 봐주시오. 나도 이대로 돌아가면 형님께 죽소. 솔직히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중 의뢰면 또 어떻소? 청풍객잔이 이따위로 뒤통수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만, 청풍객잔한테 왜 이중 의뢰를 했냐고 따질 수 있다면 우리도 할 말이 생긴단 말이오.”

“…….”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주시오. 청풍객잔이 의뢰한 거잖소? 안 그렇소?”

장기린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청풍객잔과는 아무 관련도 없소.”

“……!!”

파락호들은 기겁했다. 장기린의 목소리는 너무 솔직해서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 청풍객잔이 아니라고?!”

“그, 그럼? 홍화객잔(紅花客棧)? 청월루(靑月樓)? 서, 설마 서호제일루인 창해루(滄海樓)?!”

“크, 큰일이군. 이, 이거 큰일이야!”

장기린이 무슨 소린지 몰라서 가만히 있으니, 파락호들의 의심은 더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유흥의 도시 항주.

그중에서도 서호 인근 금선로의 객잔들은 겉으로만 평화로울 뿐이지 사실은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암행(暗行)으로 서로 손님을 빼앗아 가는 건 물론이오, 상대의 영업을 방해하고, 심하면 핵심 인물을 죽이기까지 하는 비정한 세계가 바로 이 금선로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높으신 분’들도 많이 개입되어 있었다. 하룻밤에 이 금선로에서 사용되는 돈이 마을 하나를 살 수 있을 금액이니 오죽할까?

객주들은 목숨을 걸고 손님을 끌기 위해 경쟁했고, 웬만한 객잔들이 다 하나씩 끼고 있는 파락호들의 방파도 매일같이 뒷골목에서 세력 싸움을 벌였다.

지금 이 풍운객잔에서 벌어진 일도 바로 그 세력전의 연장이었다.

금선로에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는 청풍객잔은 확장을 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가장 탐내는 것이 바로 청풍객잔의 건너 쪽에 있는 이곳 풍운객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청풍객잔이 아니라 다른 객잔이 선수를 쳐서 풍운객잔을 인수했다고?’

파락호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 이건 엄청난 일이다. 전쟁 선포나 다름없어. 금선로에 피바람이 불 거야.’

장차 이 일 때문에 금선로의 세력 판도가 바뀌리라.

파락호 세 사람은 얼어붙은 얼굴로 황급히 등을 돌렸다.

“아, 알겠소.”

“우린 이만 가 보겠소.”

다급하게 밖으로 나서는 그들을 장기린이 붙잡았다.

“잠깐.”

“……!”

세 사람은 얼마나 긴장했던지 품 안에 집어넣었던 소검을 다시 반쯤 빼 들었다.

장기린이 살벌한 눈으로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서워했다.

“뭐, 뭐요? 말해 두겠는데, 우, 우리가 죽으면 장흠파가…….”

“경험 많은 숙수가 있는 곳이 어디요?”

파락호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뭐요?”

“경험 많은 숙수 말이오. 그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

파락호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이게 무슨 속뜻을 숨긴 밀어(密語)는 아닌지. 아니면 뒷골목의 정(情)으로 그를 고용한 객잔에 대해 말해 주려고 암시를 주는 건 아닌지.

그런데 세 사람 중 가장 생각이 짧고 단순한 막내가 냉큼 대답했다.

“음식은 청월루가 가장 맛있다던데? 숙수들도 거기가 가장 유명…… 악! 형님, 왜 때려요?”

“입 다물어, 자식아.”

“난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 악!”

“입 다물랬지. 이 자식은 만날 처맞아도 배우는 게 없어. 학습 능력이 없냐? 이 자식아? 밥은 왜 처먹니? 아깝게시리.”

파락호 세 사람 중 맏형으로 보이는 자가 막내를 두들겨 패는 사이, 장기린은 그의 어깨에 덥석 손을 얹었다.

툭.

“어헛……?!”

갑작스레 일어난 접촉.

파락호들의 맏형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며 반쯤 뽑아 두었던 소검을 뒤로 휘두르고 말았다. 뒷골목에 살아가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은빛 섬광이 번뜩이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겠구나.’

상대를 걱정한 게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을 걱정했다.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니, 실력은 또 얼마나 뛰어날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장기린은 마치 그림을 그린 듯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으로 소검을 피한 뒤 파락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땡그랑!

소검이 바닥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파락호의 눈이 ‘역시나!’하는 눈빛으로 땡그래졌다.

“물어볼 게 있소.”

“……뭐, 뭐요?”

파락호들의 맏형은 겨우겨우 대답했다.

“청월루는 어디에 있소?”

“…….”

“바쁘지 않다면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배는 더 강해진 눈빛을 뿜어내며 말하는데, 대체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파락호들은 어깨를 떨며 대답했다.

“아, 알겠소. 따라오시오.”

파락호 세 사람은 어기적거리며 밖으로 나가더니, 곧장 장기린을 청월루가 있는 금선로의 중심가로 데리고 갔다. 걸음으로 삼백 보, 거리상으론 일 리 정도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엔 풍운객잔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화려하고 거대한 전각들이 즐비했는데, 그중 유난히 높고 화려하며, 뾰족한 초승달을 간판 앞에 걸어 놓은 전각이 청월루라고 했다.

“이곳이 청월…….”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 장기린에게 설명하던 파락호들은 그들의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와장창!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청월루의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악―!”

비명 소리가 들리고, 온갖 식 재료들이 하늘을 날았다.

모든 일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청월루에 소속된 것으로 보이는 덩치들이 한 사람을 포위했고, 그 ‘한 사람’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누군가가 집어던진 식 재료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흐음?”

어느새 장기린은 어안이 벙벙한 파락호들을 옆으로 밀치고 청월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의 얼굴 위로 호기심이 짙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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