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3화 (3/686)

第二章 ― 숙수 강운찬(姜雲纂)

올해로 나이 스물셋을 맞은 강운찬은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삼 년.

자그마치 삼 년이다.

형을 따라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하라는 부모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출하듯 뛰어나와 청월루에 들어온 지 벌써 삼 년인 것이다. 소심하고 그릇이 작은 숙수를 만난 탓에 지금 이날까지 제대로 불 앞에 서 보지도 못했건만, 그래도 오직 요리에 대한 열정만으로 치미는 울분을 꾹 참고 버텨 왔었다.

그릇을 닦고, 재료를 다듬고, 바닥을 쓸고…….

산더미같이 쌓인 잡일을 거의 혼자서 다했던 것은 힘들었으나, 그래도 배울 게 있는 이 년간은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년 뒤엔 그 배울 것마저 없어졌다.

매콤한 사천요리도, 맛이 풍부한 상해요리도, 바삭한 총유향마병(蔥油香麻餠), 새콤달콤한 당초소배골(糖醋小排骨), 누가 요리의 이름만 대면 재료랑 만드는 순서가 줄줄 흘러나올 만큼 확실하게 외워 버렸다. 더 이상 청월루에서 만드는 음식 중에 모르는 건 없었다.

이제 남은 거라곤 실제로 만들어서 손에 익히는 것뿐인데…….

하필이면 청월루의 대숙수인 이태궁이 소심하고 비열한 작자인지라, 일찌감치 강운찬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불 앞에 서는 건 물론이고, 솥도 못 잡게 했다. 언제 그를 추월해서 숙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객잔으로 갈 수도 없었다. 이 바닥이란 게 생각보다 좁아서, 아예 다른 지역에 가서 새 출발을 하지 않는 한, 중간에 때려치우고 나온 주방 보조를 받아 줄 곳은 없었다.

그래서 일 년간 더 기다렸다. 아무리 성질이 나도 꾹꾹 눌러 참으며 더러운 주방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런데 마침내 삼 년째가 되던 어젯밤.

들어온 지 반년밖에 안 된 춘오라는 놈이 보조 숙수로 올라가는 순간, 삼 년간이나 눌러 온 인내심이 마침내 끊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춘오라는 놈이 말도 안 되는 희대의 천재였다면, 그래도 병아리 눈물만큼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춘오라는 놈은 세 개를 가르쳐 주면, 그중 세 개를 까먹는 아주 멍청한 놈이었다.

매번 똑같은 장소를 청소시키는 데도 항상 어려워했고, 설거지를 시키면 깨 먹는 게 씻는 것보다 많았다.

그래도 막내라서 봐주고 있었다. 그런데…….

뭐? 그놈이 상급자가 된다고?

“이런 씹어 먹을! 내 더러워서 안 한다! 어차피 이젠 배울 것도 없어! 만날 똑같은 거나 만들고, 또 만들고. 대숙수라는 인간이 발전이 없는데, 더 있어서 뭐해!”

강운찬은 숙수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날뛰었다.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입에 거품까지 물고 광분을 했다.

“저, 저……! 야! 저놈 끌어내!”

“돌려 내! 물어내! 내 삼 년 물어내―!”

“끌어내라니까!”

숙수들이 달려들었으나 이미 눈이 뒤집힌 강운찬은 철 솥을 집어던지며 저항했다.

숙수들이 모두 나가떨어지자, 대숙수 이태궁은 청월루에 기거하는 덩치들을 불렀다.

“엉? 뭐야? 만년 보조잖아? 저놈 순한 놈인데, 왜 눈깔이 뒤집어졌대?”

“일단 저놈 좀 끌어내 주시오! 저놈 때문에 일을 못 하잖소!”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끌어내기만 하면 돼?”

덩치들은 별생각 없이 물었으나, 대숙수의 대답엔 살기가 흘렀다.

“양손을 못 쓰게 해 주시오. 평생 요리하면 안 되는 놈이오.”

“뭐? 그렇게까지?”

“하라면 하지, 왜 그리 말이 많아!”

덩치들은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을 팍 찌푸렸으나,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강운찬을 향해 다가갔다.

객잔에서 객주를 제외하고 가장 힘이 있는 건 두 사람이다. 하나는 객잔 일을 총괄하는 총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주방을 지배하는 대숙수였다.

그 둘이야말로 객잔의 실세 중의 실세였으니, 덩치들은 아무 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 어……!”

강운찬은 무거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덩치들을 보며 뜨거워졌던 머리가 확 식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리 화가 나도 그냥 나가 버리고 말 것을. 설마 그래도 삼 년간의 정이 있는데 저렇게까지 독한 짓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 빌어먹을 개자식!’

대숙수를 보자, 그는 이제야 묵혔던 체증이 사라졌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했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평소 성정이 비열하고 음습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단지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싹을 밟아 버리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강운찬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곳에 뭐가 있을까?

지난 삼 년간 구석구석 청소하며 살아온 덕에 그 누구보다 주방의 구조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그에게 탈출로를 주었다.

“다가오지 마! 다 죽는다!”

다가오던 덩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뭘로 죽이려고?”

“손에 든 그거로?”

그들은 강운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건 흙을 구워서 만든 토기에 가득 담긴 물 한 바가지였다. 양손에 각각 물 한 바가지를 들고 있다고 누가 무서워할까. 설령 칼을 빼 들고 있어도 무섭지 않을 그들이거늘.

“아서라.”

“반항하다간 더 다쳐. 그만 난리 치고 따라와.”

두 사람은 손을 휘휘 저으며 다가왔다.

강운찬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소리치는 서슬이 살벌해서 덩치들은 잠시 멈췄으나, 이내 표정을 회복하고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왔다.

강운찬의 눈빛이 독해졌다.

“난 분명 경고했어.”

강운찬은 손에 들고 있던 물바가지들을 왼쪽으로 휙 던지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 주방의 진열장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동시에,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파타타타타타탓――!

“으아악……!!”

뜨거운 기름이 폭포수처럼 솟아올랐고, 박살 난 토기는 살수들의 암기처럼 주방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앗!’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덩치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과 동시에, 숙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던 대숙수 이태궁은 파편을 맞았는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슬그머니 식탁 밑에서 빠져나오는 강운찬을 노려보았다.

“너, 너, 이 새끼……!”

펄펄 끓는 기름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어찌 되는 줄 아는가?

기름은 펄쩍 뛰며 생난리를 친다. 물 한 방울만 잘못 떨어뜨려도 그 앞에 있던 사람이 화상을 입는다는 것을 강운찬은 다년간의 주방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물이 한 바가지나 들어갔으니 어떻겠는가? 그것도 깨지기 쉬운 토기 그릇에 담겨서.

그 결과가 바로 이런 대폭발이었다.

“잡아! 죽여! 아니, 내가 죽여주마! 그 자리에 서지 못해?”

이태궁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 댔다. 식칼이 날아가고, 국자가 날아갔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피해 낸 강운찬이 주방 밖으로 뛰어나갈 때, 이태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감자를 던져 대고 있었다.

“저 새끼 잡아! 잡으란 말이야―!”

‘퍽!’ 소리와 함께 감자에 얻어맞은 강운찬은 뒷머리가 얼얼했다.

분노를 담아 뒤돌아보자 이미 눈이 뒤집힌 이태궁의 모습이 보였다.

‘젠장! 정작 억울한 게 누군데…….’

강운찬은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 내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주방과 연결된 뒷문으로 반쯤 구르듯이 빠져나오자, 이미 우르르 몰려든 덩치들 열 명가량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서라, 아가야.”

상의를 반쯤 풀어헤친 채 방만한 자세로 이를 쑤시고 있는 험상궂은 사내를 보면서 강운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처, 철우(鐵牛)……!”

“님 자를 붙여야지, 아가야. 철우 ‘님’.”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에 서 있던 덩치들은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철우는 미친 듯이 웃다가 돌연 웃음을 뚝 그쳤다.

“이 청월루에서 시끄럽게 굴면 어찌 되는지 아냐, 아가야?”

“…….”

“죽어. 그것도 가죽도 못 남기고. 바람 빠진 돼지 오줌보처럼 찌그러져서, 저 서호 시궁창에 처박힌단다.”

말투는 나름대로 상냥했고, 얼굴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강운찬은 그게 더 무서웠다. 철우의 눈은 일말의 웃음기도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처, 철우는 한 손으로 백 근짜리 청동 향로를 든다 했던가?’

철우는 장사였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장사였다. 깎아 놓은 듯 완벽한 몸은 아니었으나, 웬만한 장정 두 사람을 붙여 놓은 것만큼이나 넓은 가슴과 굵직한 근육들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만큼 위압적이었다.

한 손으로 백 근짜리 향로를 번쩍번쩍 드는 사내다. 아마 그의 손에 걸리면 강운찬의 머리통은 두부처럼 으깨지리라.

강운찬은 그동안 청월루에 있으면서 파락호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강호의 무인들도 철우한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파락호라고 우습게 봐선 안 된다. 특히 물가가 높은 항주의 파락호들은, 사람 한둘 죽인 것 정도론 파락호로 쳐주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정예 중의 정예. 말하자면 대륙 파락호 중에도 최고로 강한 놈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이곳 항주인 것이다.

‘이건 못 빠져나가.’

주변을 완전히 막아 버린 덩치들을 보며 강운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무 분하다 보니 자연히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씹어 먹을…….”

그때 뒤통수에서 ‘빡!’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별이 번쩍거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뒤통수를 감싸 쥐고 몸을 돌리자 당근 하나가 바닥을 굴러가고 있었다.

“이 새끼! 거기 안 서?”

주방 뒷문으로 튀어나온 대숙수 이태궁이 감자며 당근이며 손에 들린 야채들을 던지고 있었다. 몇 개는 피했고, 몇 개는 얻어맞았다.

강운찬은 당당한 이태궁의 얼굴을 보자 다시 화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삼 년간의 고생이 다시 떠올랐다. 가슴이 울컥했다.

그 순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철우와 파락호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 비열하고 치사한 인간! 삼 년간 있었어! 삼 년간 온갖 잡일을 다 해 줘도 철 솥 한 번 못 잡게 하더니, 뭐가 어째? 반년 일한 춘오가 보조 숙수라고! 그 멍청한 놈을? 그럼 나는? 나는 뭔데!”

“이 자식, 그건 네가 재능이 없…….”

“말 잘했다! 재능? 그래, 당신이 자랑하는 당초소배골을 만들 때, 마지막에 그릇에 담기 전에 당신만의 비법으로 한 푼가량 뭔가를 넣지. 그게 뭔지 말해 볼까? 아니, 아니지. 아예, 당신이 잘 때도 끼고 있는 귀한 비전 양념은 어떻게 만드는지 말해 볼까? 왜 사과를 넣는지, 왜 한 달간 숙성시켜야 하는지도?”

이태궁의 얼굴에 경악이 담겼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요리는 일 년 전에 다 배웠어! 재료, 요리법, 비법, 양념 제조까지!”

“……!”

“이 치졸한 인간! 후배를 잘 키우지는 못할 망정, 재능 좀 있다고 싹을 밟으려고 하고, 자기를 추월할까 봐 두려워하고. 이젠 내 양손을 못 쓰게 한다고? 천벌을 받을 거다! 당신은 숙수도 아냐!”

강운찬은 너무 분했다.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아깝고, 비열한 이태궁이 너무나 미웠다.

“반드시 다른 객잔에 들어가서 청월루를 밀어낼 거야! 두고 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이, 이놈이……!”

“이깟 청월루! 폭삭 망해 버려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기세를 타고 외친 강운찬도 스스로도 말이 과했다고 생각하며 황급히 입을 다물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불타 버린 종이였다.

이태궁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살기를 불태우고 있었고, 파락호들의 얼굴에선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철우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헛……!”

그 한 걸음에 놀라 강운찬이 뒷걸음질 쳤다.

철우는 귀찮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에 불그스름하게 살기가 흐른다.

“쯧,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어, 어…….”

“그냥 순순히 따라오지 그랬냐. 그럼 손이나 한 번 밟아 주고 보내 줬을 텐데.”

그 말도 충분히 섬뜩하지만, 분명 지금 상황보단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우가 다가온다. 아름드리나무만 한 허리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머리 위로 그림자를 만든다.

강운찬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죽는구나!’

한 많은 인생.

굴곡 깊은 삼 년.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곧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기다려도 충격이 느껴지질 않았다.

‘어라……?’

강운찬은 슬며시 눈을 떴다.

방금 전과는 달리 잔뜩 긴장한 채 굳어 있는 파락호들이 보인다. 숙수인 이태궁조차 지금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고 다른 곳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거한인 철우의 손을 누군가가 붙잡고 있었다.

강운찬은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세상에, 철우의 손을 붙잡고 있다니.

그것도 한 손으로!

‘처, 철우가 힘을 안 쓰는 건가?’

하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데다, 팔뚝에서 꿈틀거리는 핏줄과 근육들은 철우가 지금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철우의 힘을 한 손으로 막아 세우는 사내.

하얀색 백창의를 입고, 머리를 대충 하나로 질끈 묶은 그는 철우에게서 시선을 돌려 강운찬을 똑바로 쳐다봤다.

“으악……!”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입에서 비명부터 튀어나왔다.

심장이 떨려서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섬뜩한 살기를 담고 있었다.

“너…….”

그가 말을 건다.

강운찬은 더듬더듬 대답했다.

“으, 예, 예?”

“요리 잘하냐?”

그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 ☆ ☆

장기린은 대답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강운찬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요리가 어쩌고 하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딱 그가 찾던 놈이었다. 숙수의 요리를 다 배웠고, 다른 객잔에 가기까지 하겠다지 않는가!

‘음, 성격도 마음에 들고.’

장기린은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 하고 죽을 수 있는 화끈한 놈을 좋아했다.

“요리 잘하냐니까.”

“어, 예? 아, 예. 자, 잘할 자신…… 아니, 잘합니다.”

“좋아. 너 우리 객잔에서 일해라.”

“……?!”

강운찬은 잠시 공황에 빠진 것처럼 멍하니 굳어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눈빛이 심상치 않게 빛나는 것이, 지금이 살아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역시 맘에 들어.’

자고로 밑의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하는 법이다.

장기린은 흡족하게 웃었다.

“일하겠습니다!”

“좋아.”

“그, 그런데 저기…….”

강운찬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덩치들은 이미 스무 명 가까이 모여 있었고, 반대로 이쪽은 한 명이다. 이래저래 불안한 눈치였다.

‘진구도 이랬었지.’

수십 명과 한 명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그중 한 명을 택하는 것은 미친놈이거나, 정말로 감(感)이 좋은 놈이다. 대(隊)의 막내로 들어왔던 진구가 그랬었고, 지금 강운찬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밌게도 둘 다 선택을 한 뒤 불안해했다.

“계속할 거요?”

장기린은 철우에게 물었다.

철우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에게 잡힌 팔을 당겼다.

장기린은 그의 팔을 순순히 놔주었다.

“어디서 왔나?”

“북쪽.”

“뭐? 북쪽?”

철우는 그 말에 오해했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북명각(北明閣)? 북화적월루(北華赤月樓)?”

“…….”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군.”

장기린은 굳이 틀린 답을 고쳐 주지 않았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얘가 뭘 잘못했소?”

“뭐?”

“얘가 잘못한 게 뭐였기에 이렇게 둘러싸고 죽이려고 했냔 말이오.”

그 말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대숙수 이태궁이 고함을 빽 질렀다.

“주방의 법도를 어겼다!”

“주방의 법도가 뭔데? 대명률(大明律:국법)만큼 엄격한 건가? 살인이라도 했나?”

“그, 그건 아니지만…….”

이태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더듬거렸다.

대명률을 거론하다니…….

주방의 법도가 대명률보다 높다고 말한다면 아마 황실 모독죄로 동창에게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리라.

“가, 감히 주방 보조 주제에 대숙수인 나를 무시했다. 거기다 이 두 사람을 봐라!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게 다 저놈 때문이야!”

이태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피를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이 분노한 얼굴로 서 있었다.

장기린은 그들을 힐끗 바라본 뒤 태연하게 말했다.

“가죽만 다쳤네.”

“뭐……?”

“뼈도 멀쩡하고, 목숨에도 지장 없고. 사내자식들이 겨우 그걸로 엄살떠는 건가?”

이태궁은 너무 황당해서 입을 쩍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독하게 마음먹고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철우가 손을 들어 말렸다.

“끄응…….”

이태궁은 아무 말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가 대숙수라도 철우에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봐. 잊고 있는 게 있는데, 저 아가는 주방에서만 잘못한 게 아니다.”

“또 뭐가 있소?”

철우의 눈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

“청월루를 모욕했다.”

장기린은 피식 웃었다.

“무슨, 황제 폐하 이름도 아니고, 모욕은 무슨.”

“…….”

“뭐, 좋소. 그래서? 그게 죽을죄인가? 청월루라는 곳은 함부로 이름도 꺼내면 안 되는 곳인가?”

철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죽을죄는 아니지.”

“그렇소?”

“그렇다.”

이태궁은 그게 어떻게 죽을죄가 아니냐며 옆에서 거품을 물 것처럼 흥분했으나, 철우는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바닥에도 질서가 있고, 법도라는 게 있다. 그냥 보낼 수야 없지.”

“……뭐, 그건 그럴 수도 있겠군.”

장기린은 이해했다. 군대와 뒷골목은 비슷한 점이 많다. 사내들이 사는 세계에서 질서가 무너진다는 건 큰 위험이라는 점이 그랬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소?”

철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한 대만 맞아라.”

“그럼 되나?”

“그래. 나한테 한 대만 맞으면 보내 주지.”

철우가 자신의 바위 같은 주먹을 꽉 움켜쥐자, ‘우두둑!’하고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헉……!”

“역시 그건가?”

“큭. 잘난 척 뻗대더니 끝이군.”

“죽었구먼, 죽었어.”

“철우 형님의 주먹을 누가 견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장기린의 뒤에 숨어 있던 강운찬은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 안 돼요.”

“뭐가?”

“처, 철우의 주먹을 맞은 사람은 죽는다고요. 지금까지 청월루에서 난동 피우던 사람들은 다 한 방에 골로 갔어요.”

철우는 어깨를 풍차처럼 돌리며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도발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해볼 텐가?’

라고.

“좋소. 한 대 맞아 주지.”

“원랜 저 아가가 맞아야 하는데…….”

“내가 맞지.”

강운찬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 저기요!”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요. 죽는다니까요?”

“주먹 한 대 맞는다고 안 죽어.”

“아니, 그러니까……. 저 사람은 그 보통 주먹이 아니라……!”

“됐어. 빠져 있어라.”

장기린이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자 강운찬은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뒤로 물러났다.

아직 장기린의 눈빛에 적응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두 발짝 이상 멀어지진 않고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볼수록 마음에 드네.’

장기린은 피식 웃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

“치시오.”

꽈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턱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헉!”

“흡……!”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움찔 몸을 떨었다.

분명 사람의 주먹과 사람의 머리가 만났을진대, 어떻게 망치로 바위를 내려친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그들은 저 주먹에 자신이 맞았다고 상상해 보니 도저히 끔찍해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어……?”

“저럴 수가……!”

그런 그들의 표정은 불과 속으로 숫자 셋을 세기도 전에 믿을 수 없는 경악으로 바뀌었다.

철우가 허리까지 돌려 가며 전력을 다해 친 주먹이다. 머리가 박살 나며 뒤로 튕겨 나는 게 당연할 텐데, 그 주먹을 맞은 사람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제법. 주먹질 좀 하는군.”

장기린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슥 닦으며 말했다.

모두가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속으로 계속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

“…….”

철우와 장기린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철우의 눈빛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점점 강해졌음에도, 장기린은 끝까지 그 눈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냈다.

잠시 후, 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냐?”

“서로 이름을 알 사이는 아닌 것 같소만.”

“……내 이름은 아나?”

“모르오.”

“철우다. 기억해 둬라.”

장기린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멍하니 굳어 있는 강운찬을 데리고 등을 돌렸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덩치들이 몸을 움찔거렸으나 비키지는 않았다.

“보내 줘라.”

철우가 말하자 그제야 그들은 길을 내주었다.

장기린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유유히 걸어서 사라졌다.

“저, 저놈을 그냥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이태궁이었다.

철우는 하품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우두둑. 우두둑.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보내지 않으면? 죽이라고?”

“죽이면 좋…….”

“…….”

“아, 아니면 혼을 좀 내야…….”

“…….”

“그, 그래도 이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냔 말입니다! 주방의 법도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주방의 법도가 무너지면 이 객잔은…….”

“주방의 법도는 원래 대숙수가 직접 지켜야지. 사실 우리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 않나? 우리 일은 객실에서 난동 피우는 놈 잡는 거야. 대숙수 뒤 닦아 주는 따까리가 아니라고.”

“따, 따까리라니…….”

“우리 애들 그만 부려 먹으란 말이야. 알아듣겠어?”

대숙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주방으로 도망치듯 돌아가 버렸다.

철우는 다시금 하품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자, 다들 돌아가라.”

“저기, 형님. 저희가 뒤를 안 밟아도……?”

“일단 내버려 둬라. 너희! 영업시간에 일하려면 빨리 자 둬야지!”

“예!”

덩치들은 안 그래도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숙소로 돌아갔다.

덩치들이 모두 들어가고 나자 청월루의 입구엔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철우였고, 다른 한 사람은 마치 원래부터 그들 사이에 있었던 것처럼 평범한 인상의 중년 사내였다.

고급스런 푸른빛의 비단 장삼을 입고 있으나, 그저 기품 있어 보일 뿐 화려해 보이진 않았다. 짧게 콧수염을 기르고 머리는 상투를 틀어 올렸는데, 평범한 인상과 맞물리니 낙향한 문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철우는 그에게만큼은 나른한 태도를 버리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재밌는 사내군.”

철우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다 보셨군요.”

“다 봤네. 자네 주먹을 그냥 맨몸으로 맞다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골(强骨)이구먼.”

“강골이라기보단…… 아니, 아닙니다.”

철우가 대답을 망설이자, 중년 사내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가 아는 철우는 뭔가를 말할 때 심사숙고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강호인이던가?”

“아뇨.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철우는 피식 웃으며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확실치는 않지만…… 싸움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싸움? 그야 강호인이 아니면 파락호이니 당연하지 않나?”

“아뇨. 파락호라기보단 좀 더 치열하고 거친…… 그런 곳에 있다 온 것 같습니다.”

철우는 계속 망설이다가,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이라고 말하며 얼버무렸다.

“허허, 강호인도 아니고 파락호도 아닌데, 자네의 주먹을 맨몸으로 맞고 견뎠다?”

“…….”

“거참. 정말이지 재밌는 사내로군.”

중년 사내는 철우가 대답을 미루자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짧은 수염을 쓰다듬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미행을 붙였네.”

“아……! 그렇습니까?”

“별일 아닌 것도 같지만…….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지금 같은 시기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지. 방심했다가 계획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곤란하네.”

중년 사내는 진지했다. 평범했던 그의 얼굴에서 범상치 않은 눈빛이 번쩍 뿜어져 나왔다.

“내 마음대로 했다고 언짢아하지는 말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백 총관님이 하시는 일인데 언짢을 리가 없지요.”

“허허.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백 총관이라고 불린 사내는 허허 웃으며 어느새 평범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뭐가 말인가?”

“근처에 장흠파 녀석들 몇 명이 얼쩡거리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그쪽 사람인가 싶어서 그냥 보낸 건데…… 생각할수록 장흠파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싶습니다.”

“허어, 장흠파라면…… 청풍객잔인가?”

“예. 그곳입니다.”

“그들이 저 사람과 함께 가던가?”

“아뇨. 소란이 일자마자 도망치듯 빠져나갔습니다. 저자가 갈 때쯤엔 이미 아무도 없더군요.”

백 총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상하군.”

“예. 이상합니다.”

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백 총관은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떨치듯 고개를 저었다.

“뭐, 일단 미행의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군.”

“예.”

“이곳 항주엔 모든 것이 있지. 돈, 권력, 쾌락.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게 전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머지않아 도박이 시작될 걸세. 대륙이 판돈으로 걸린 거대한 도박이.”

백 총관은 진지한 눈으로 철우를 바라봤다.

“그때까지 우린 몸을 낮춰야 하네. 그러니 조금만 더 조심해 주게.”

철우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 ☆

장기린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입에선 저절로 태평가의 가락이 흘러나왔고, 어깨는 가락에 맞춰서 덩실덩실 흔들렸다.

혼자서 객잔을 어떻게 꾸려 가나 걱정이 많았는데, 쾌도난마(快刀亂麻)로 어려움이 해결되어 버렸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저, 저기…….”

“왜?”

“정말로 괜찮으세요? 철우의 주먹에 맞으면 보통 사람들은 죽어요.”

장기린은 피가 굳어서 딱지가 앉은 입술을 잠시 만져 본 뒤, 고개를 저었다.

“멀쩡해. 이깟 주먹엔 끄떡없어.”

“저, 정말요?”

“그래. 넷째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서 드러누우면 쪽팔린 일이지. 새로 들어온 신입들도 비웃을 거다.”

강운찬은 그의 말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우뚱한 표정을 했다.

“넷째……요?”

“그래, 넷째.”

“철우가 넷째라는 말이에요?”

“아, 내가 예전에 데리고 있던 애들 중에 넷째가 딱 저 정도 수준이었거든. 그래서 하는 말이다.”

강운찬의 눈빛이 흔들렸다.

“철우가 넷째밖에 안 돼요? 그럼, 저기, 그쪽…… 아니, 으, 은인께선 몇 번째이신지……?”

장기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야 당연히 첫째지.”

“…….”

“못 믿는 얼굴이네?”

“아, 아닙니다. 믿어요, 믿습니다.”

영 못 믿는 얼굴이었지만, 장기린이 눈에 힘을 주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장기린은 피식 웃었다.

‘암만 봐도 막내랑 똑같네.’

감정을 못 숨기는 솔직한 성격에, 빠릿빠릿한 눈치.

강운찬을 보자 북쪽에 두고 온 막내가 생각나서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니, 이러면 안 되지.’

자유를 얻자마자 냅다 애들을 버리고 온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북쪽은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했다.

“저, 저기……. 그렇게 강하신데, 왜 다 쓰러뜨리지 않았어요?”

“뭐?”

“그냥 철우고 뭐고 다 쓸어버리셨으면 쉽지 않나요? 굳이 한 대 맞아 줄 필요도 없었을 테고…….”

의심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얼굴이었다.

장기린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 쓰러뜨려야 하는데?”

“예?”

“잘못은 네가 했잖아. 질서를 깼다며? 그럼, 그 죗값만 갚아 주면 되는 거지. 내가 걔네를 왜 쓰러뜨려야 하냐? 그럼 그쪽이 억울하지 않겠어?”

“아…….”

“사내자식이 막무가내로 주먹 휘두르는 거 아니야. 잘못한 거 있으면 사과할 줄도 알고, 맞을 짓 했으면 맞을 줄도 알아야지. 무작정 주먹으로 해결하다간 나쁜 습관 든다. 평범하게 살기 힘들어.”

강운찬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아 걸음을 멈춰 버렸다.

만약 그가 힘이 있었다면, 철우고 뭐고 모조리 때려눕히고 박살을 낸 뒤 뛰쳐나왔을 것이다. 저쪽이 어떻게 느끼고, 얼마나 억울할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소란을 피우고, 기름을 폭발 시켜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생각해 보면 이태궁 말고, 다른 사람들에겐 억울할 짓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은 그릇이 크구나.’

강운찬은 감동을 받았다.

예전에 애들을 데리고 있었다는 걸로 봐선 지금은 파락호가 아닌 듯싶었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다.

강운찬은 그 순간 가슴이 끓어올라 제자리에서 넙죽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운찬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제 이름은 강운찬. 올해 나이는 스물셋입니다! 작은 은혜라도 평생 잊지 말고 갚아야 한다고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평생을 두고 갚겠습니다! 개, 객잔 일도 열심히 할 테니,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게 해 주십시오!”

“…….”

“괜찮……을까요?”

강운찬은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어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가 장기린과 눈이 마주치곤 화들짝 놀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짙은 살기 때문에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는 눈이다.

하지만 그에 담긴 눈빛은 분명, 뭔가 복잡한 심경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 동생해라.”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강운찬은 기뻐서 펄쩍 뛰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물었다.

“혀, 형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

“형님?”

장기린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힘들게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은…… 장기린이다.”

“……기린아할 때, 그 기린이오?”

장기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름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는 장기린이었다.

“그래. 그 기린이다. 불만 있나?”

“아, 아뇨! 없습니다! 없어요! 와! 정말 멋진 이름이네요! 형님과 잘 어울려요!”

“아부할 것까진 없어.”

“……죄송합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냉기가 흘렀지만, 강운찬이 계속 말을 걸자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다시 풀어져 버렸다.

장기린은 잘못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고, 강운찬 또한 그랬다.

그들이 풍운객잔에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두 사람은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친해진 뒤였다.

“여기야.”

“예?”

강운찬은 바람이라도 불면 무너질 듯한 풍운객잔을 보며 입을 쩍 벌린 채 석상이 되어 버렸다.

“서, 설마, 형님이 말하신 곳이 풍운객잔은 아니죠?”

“맞는데?”

“어, 어째서? 형님, 여기 객잔 주인이랑 무슨 사이세요?”

장기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객잔 주인이야.”

“……예?”

“내가 객잔 주인이라고. 내가 오늘 여길 샀어.”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강운찬의 대답은 한참이나 늦게 터져 나왔다.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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