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8화 (8/686)

第七章 ― 편지풍파(片紙風波)

“어서 오세요―!”

“풍운객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칠과 아팔은 자신들이 언제 당황했었냐는 듯 자연스레 달려가 손님을 맞았다.

발맞춰서 달려가는 두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뒤에서 지켜보던 휘연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식사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은가?”

“네! 물론이죠.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에 앉으세요, 손님.”

드르륵.

아팔이 의자를 빼 주고 아칠이 재빨리 허리춤에 꽂아 뒀던 행주로 식탁을 다시 한 번 닦았다. 식탁은 워낙 두 사람이 청소를 잘해 둔 뒤라 다시 닦을 필요가 없었지만, 이렇게 닦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곳이 청결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사이, 사내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던지며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는데, 그 과정에서 주방 앞에 서 있던 휘연과 눈이 마주치고는 놀란 듯 미미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칠과 아팔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음식은 어떤 게 맛있나?”

아칠과 아팔은 동시에 어깨를 으쓱하며 과장되게 웃었다.

“이야―! 그건 너무 섭한 말씀이세요. 저희 숙수님이 솜씨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뭐든 맛있어요. 후회하지 않으실걸요?”

“얼마 전에는 한 분이 극찬에 극찬을 하면서 항주에 오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조를 하고 가셨어요. 단순히 소면이었는데 말이죠.”

“단순한 소면! 정말로 평범한 소면 한 그릇이었어요!”

“소면이 그런 극찬을 받았는데 다른 요리였으면 어땠을까요? 이야, 정말 안타까워요. 그분께서 나미육소매를 드셔 보셨다면 정말 행복해서 쓰러지셨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두 아이의 만담은 미리 잘 짜여진 연극처럼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로 어찌 그리 묘사를 잘하는지…… 아무것도 먹을 생각이 없던 사람도 당장 가능한 요리를 시키고 싶어지는 탁월한 말발이었다.

“하하하, 너희는 정말로 말을 잘하는구나! 안타깝지만 나는 아직 요리를 먹다가 쓰러지고 싶진 않으니, 일단 그 소면부터 맛을 한번 보겠다. 소면이 맛있으면 그 나미육소매도 사 가도록 하겠어.”

“네!”

“그럼, 소면 하나요―!”

아칠과 아팔은 겨우 소면 하나 주문이었음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밝게 대답한 뒤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아니, 뛰어가려고 했다.

장기린이 두 사람을 붙잡고 고개를 젓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객주님……?”

드르륵.

장기린은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그 사내의 건너 쪽에 의자를 빼고 털썩 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가만히 그 사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

“……크흠! 내게, 볼일이 있으시오?”

장기린의 눈빛이 어디 보통 눈빛이던가?

활검의 묘를 깨우치고, 평범한 생활에 접어들면서 많이 누그러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십삼 년간 줄창 피를 보아 온 눈빛이다. 평범한 사람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운 눈빛인 것이다.

시선을 받은 지 불과 열을 세기도 전에 사내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두 눈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사내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듯했지만,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어디서 왔어?”

장기린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어디서 왔냐고.”

사내는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칠, 아팔, 그리고 휘연까지도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동그래졌다.

손님의 앞에 앉아 버리질 않나, 눈빛으로 위협(?)하고, 거기다가 반말까지 하다니.

지금까지 장기린은 자유분방했지만 나름 지킬 것을 지키고 있었다.

손님으로 온 자에겐 정중히 대한다. 실제로 소면을 시켜 먹고 갔던 첫 번째 손님에게도 나름대로 올림 말을 쓰지 않았던가?

처음엔 혹시 서로 아는 사이인가 싶었지만, 눈치를 봐선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말총머리의 사내는 심하게 당황했는지 이마의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개, 객주라고 들었소만. 어찌 이리 무례하오? 나는 손님도 아니란 말이오?”

장기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네가 손님인가?”

“무슨 말이오? 어허! 혹시 겨우 소면 하나 시켰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오?”

“그럴 리가.”

“그게 아니면 무엇이오! 어허, 이거 안 되겠군. 됐소! 이깟 소면 안 먹고 말지. 내 더러워서 이 객잔에 다시는……!”

“앉아.”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탁자에 손을 짚었던 사내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제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내의 얼굴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 얼떨떨했다. 그는 지금 앉고 싶어서 앉은 것이 아니었다.

강제(强制).

지난 세월 수많은 병사들을 통솔해 온 위엄이 장기린에게서 뿜어지자 감히 그 말에 거역하질 못한 것이다.

“여긴 왜 온 거지?”

“그, 무슨…….”

“난 네가 가지고 있는 그런 눈빛을 알아. 정탐꾼, 세작, 또는 같은 편인 척하면서 돈을 받고 친구를 파는 들개 같은 자식.”

장기린은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었다. 너무 당당해서 누구든 믿을 것 같은 태도다.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발뺌할 셈인가?”

“발뺌이고 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누가 믿을 것 같…….”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는 가장 먼저 객잔의 뒤쪽으로 가는 뒷문을 봤지. 퇴로부터 확보한 거다. 그다음은 천장이랑 계단, 그리고 벽을 봤고, 그다음에야 사람을 봤다. 퇴로, 지형, 사람 순이지. 어딜 가든 탈출할 계획부터 세우는 전형적인 세작의 태도야. 제대로 훈련을 받았거나, 어딘가에 몰래 침투한 경험이 많다는 거다.”

“……!”

“그리고 평소에 손가락을 튕기는 버릇이 있더군. 그거, 비도(飛刀)를 오랫동안 써온 사람들이 가진 버릇 아닌가?”

사내 마총(馬總)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실제로 그는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거기다가 경험도 많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객잔에 들어와서, 아칠, 아팔과의 평범한 대화까지. 손님다운 연기를 얼마나 잘했던가?

시선을 돌린 건 정말로 찰나에 불과했는데, 세상에 누가 있어서 그 찰나의 시간을 포착해서 그의 정체를 파악하냔 말이다.

거기다가 손버릇이라니? 그가 이곳에 와서 손을 제대로 꺼낸 적이라도 있었던가?

“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벽이나 뒷문이야 그냥도 볼 수 있는 것 아니오?”

마총은 일단 모른 척 잡아떼 보았다.

“그렇지. 하지만 객잔 구석구석을 살피면서도 바로 옆에 있던 나는 쳐다보지도 않더군. 마치 내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것처럼.”

“……!”

“거기다 넌 휘연의 얼굴을 보면서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욕심이 난 거겠지. 임무만 처리하고 빠져나갈 것인가? 아니면 여자가 먼저인가? 잠시 고민한 거다.”

말이 이어질수록 마총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장기린은 그 낯빛을 보면서 또 한 번 확신했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마총을 응시했다.

“어.디.서 왔.나?”

그의 목소리에 살기가 실렸다.

“흡……!”

“대답해!”

마총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물러서다가 의자에 걸려서 굴러떨어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탁자를 손으로 짚었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가겠소! 난 갈 거요!”

마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이번엔 장기린이 말리지 않았다.

우당탕―!

훤하게 열린 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마총이 문을 열고 도망치고 빠져나간 뒤,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아칠과 아팔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객주님.”

“정말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요?”

둘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뒤에 서 있는 휘연과 무슨 일인가 싶어 주방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있던 운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실해.”

장기린은 단호하게 대답한 뒤 사내가 빠져나간 대문을 응시했다. 그의 눈은 무섭도록 차갑게 식어 있었다.

☆ ☆ ☆

“헉……. 헉……! 뭐, 그런 놈이……!”

마총은 복날의 개처럼 숨을 헐떡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는 폐장원(廢莊園). 금선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인적이 드문 공간이었다.

마총은 거미줄이 잔뜩 끼어 있는 장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후우, 후우……. 설마, 쫓아오진 않았겠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외진 골목을 여덟 번이나 돌았고, 미리 준비해 둔 비밀 통로를 다섯 개나 이용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풍성한 콧수염을 달고 늙은이 분장까지 했다. 허름한 농민 같은 옷에 허리까지 구부정하게 구부렸다.

마총은 낳아 준 어머니가 와도 지금의 자신을 못 알아볼 거라고 확신했다.

‘도대체 그놈은 뭐야?’

생각해 보면 눈빛은 무시무시했지만, 딱히 엄청난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았다.

고수의 증거라는 태양혈도 두드러지지 않고 밋밋했고, 무엇보다 엄청난 고수가 객잔 따위나 하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도망간 것은…… 젠장! 순전히 놀라서야, 놀라서. 그놈이 내 정체를 알아차린 거에 놀라서.’

마총은 그렇게 믿으려는 듯 계속해서 되뇌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화포 심지에 불을 붙여놓은 것마냥 계속해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젠장, 마(魔)가 끼었어. 마가. 그 악랄한 장흠이 좋은 말로 꼬드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풍운객잔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고, 기회가 되면 객주를 죽이라니. 어쩐지, 맨처음 할 일을 들었을 때 너무 쉬운 일이다 싶었었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 장흠이 그 객주라는 놈이 심상치가 않으니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말고, 방심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객주라는 작자가 놀아 봤자 얼마나 놀아 봤겠나? 기껏해야 혈기 방장한 어린 시절에 뒷골목에서 다리 좀 떨어 본 것이겠지.

반면에 그는 일급 살수.

위험한 곳에 침투해 정보를 빼 오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과거를 통틀어 보면 제법 이름을 날린 무림인들도 열 명이 넘게 잠재웠었다. 그러니 이런 낡은 객잔의 객주 따윈 식전 운동거리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풍운객잔에 갔던 것이다.

“그런데…… 내 정체를 한눈에 알아봐? 눈빛이랑 손동작만 보고도?”

귓가에서 그가 ‘앉아’라고 했을 때의 섬뜩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마총은 그때 밖으로 탈출하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앉으라는 한마디를 듣는 순간, 황제의 지엄한 명을 받은 것처럼 도저히 거역하지 못하고 푹 주저앉았다.

마총이.

일급 살수인 마총이!

생각할수록 자존심 상하고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정보가 샌 거 아니야?”

하다, 하다,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해 보면 객잔의 객주가 그의 정체를 이렇게나 쉽게 알아차릴 리가 없지 않은가.

그가 침투할 거라는 정보가 샌 것이다. 그래서 풍운객잔의 그 무시무시한 눈빛의 객주는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고.

“……아서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빌어먹을. 그깟 쓰레기 같은 객잔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불만을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마총.

그런 마총의 얼굴이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연하게 굳어 버렸다.

폐장원의 담벼락 위.

언제부턴가 그 위에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선 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새하얀 백창의, 평범한 듯하면서 다부진 체격, 사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얼굴에 한쪽 귀가 뭉개져 버린 강렬한 인상.

하늘에서 내려온 장군마냥 위풍당당하게 서서 등 뒤로 요요(曜曜)한 달빛을 받고 있는 그는, 바로 객잔에서 그를 쫓아온 장기린이었다.

“너, 너는……!”

너무 놀라 손가락질을 하던 마총은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식으로 반응할 거였다면 변장은 왜 했는가.

그는 콧수염과 모자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진 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장기린을 올려다봤다.

‘어떻게……?!’

퇴로에 미행자가 없다는 것은 도망치는 내내 몇 십 번이고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가 도망치는 데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설령 미행자가 있었다 해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는 것에 그의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썅! 잘못 걸렸다. 여기까지 왔다면 도망가도 소용없어.’

그는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사내의 태연한 얼굴은 그 어떤 협박보다도 두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태연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 얼굴은 지금 내가 너를 따라왔듯, 너를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쓰레기 같은 객잔이라니. 취소해라.”

장기린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취, 취소하겠소.”

“배후를 밝혀라.”

“…….”

“못 밝히겠나?”

장기린은 미리 생각해 둔 것처럼 곧바로 이어 물었다.

마총은 배후를 밝히라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장기린은 피식 웃었다.

“그래, 못 밝히겠지. 너희 같은 놈들은 배후를 밝히면 죽은 목숨이니까.”

“…….”

“그런데 이상하네. 이런 일은 죽을 각오도 없는 놈은 못 하지 않나?”

장기린은 담벼락에서 펄쩍 뛰어내린 뒤 성큼성큼 마총에게 다가갔다.

마총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밝은 대낮에 봐도 소름이 끼치는 게 장기린의 눈빛이다. 그런데 어두운 폐장원에서 단둘이 마주하자 그 기세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았다.

“오, 오지 마라!”

마총은 품속에서 양손에 각각 비도 세 자루씩, 총 여섯 자루를 꺼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워 들고 앞을 겨눴다.

분명 겁에 질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끝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제법 좋은 자세다.

장기린은 속으로 조금 감탄하며 계속 앞으로 다가갔다.

“오, 오지 말라니까!”

“배후를 말해.”

“……큭, 젠장!”

마총은 개구리처럼 뒤로 펄쩍 뛰는 것과 동시에 양손을 번개처럼 앞으로 흩뿌렸다.

쉬쉬쉬쉭―!

까만색 비도들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확대된다. 얼굴을 노리는 게 세 개, 몸통과 다리를 노리는 게 세 개.

장기린이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서 그 비도들을 모조리 피해내고 나니, 어느새 마총은 이미 전력을 다해 도망쳐서 폐장원의 담벼락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어딜 가나?”

장기린의 몸이 호표(虎豹)처럼 뛰어올랐다.

펄쩍. 펄쩍.

그의 몸이 뒤에서 누가 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걸음에 이 장(丈)씩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그의 손이 마총의 어깨를 붙잡는다.

몸을 움찔하는 마총의 떨림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어깨를 잡아당기자, 순순히 포기하고 매달렸던 담벼락에서 떨어져 내리는 마총.

그리고 마총이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보는 순간, 쩍 벌린 입에서 금빛의 바늘들이 잔뜩 독 오른 독사처럼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입술이 오므려지고, 양 볼이 바람을 넣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후웁―!”

그것은 장기린에게 있어서도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극독이 발려져 있는 금침(金針).

살수들의 구명 절초라는 우모침(牛毛針)의 한 수는 수십 개의 침들 중 단 하나만 몸에 박혀도 곧장 칠공(七孔)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로 위력적인 것이다.

게다가 서로 숨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쏘아진 우모침을 전부 피해 버리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을 터.

하지만 속으로 ‘됐다!’고 쾌재를 부르는 마총과는 달리, 장기린은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빠악!

“큽……!”

장기린은 찰나도 망설이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으로 마총의 턱을 올려치는 것과 동시에, 마치 지붕에 매달린 박쥐처럼 마총의 왼쪽 팔을 잡고 매달렸다.

마치 물구 나무를 선 것처럼 다리가 하늘을 향하는 자세.

푸슈슈슉―!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우모침들은 마치 용천수(湧泉水)가 하늘로 솟아오르듯 하늘을 향해 금빛을 뿌려 버렸다.

턱을 얻어맞는 바람에 입술로 조준했던 방향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커…… 으헉!!”

자신이 얻어맞은 것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마총은 그의 왼쪽 팔에 매달린 장기린이 몸을 비틀자 힘없이 끌려와 바닥을 굴렀다.

‘우둑!’하는 골음(骨音)과 함께 왼쪽 어깨관절이 빠져 버렸다.

“끄아악―!”

비명을 지르는 마총.

하지만 그는, 하늘로 치솟았던 우모침들이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로 우수수 내리꽂히는 모습을 보며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우모침에 발린 극독은 그 자신조차 해독약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독약은 있지만 그걸 쓸 시간이 없다는 게 옳다. 약을 먹고 찔리면 모를까, 찔린 다음엔 약을 먹을 틈도 없이 절명(絶命)이니까.

“끄…… 으으…….”

장기린은 그런 그의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살려 준 거야.”

“으윽…….”

“도망치지 마라. 난 널 죽이러 온 게 아니니까.”

마총의 눈에 고통과 함께 의아함이 깃들었다.

장기린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말꼬리를 닮은 마총의 머리채를 잡아 그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어차피 배후를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않을 테지. 그러니 잘 들어라. 이건 경고다.”

“큭……?”

“보아하니, 여기서 세력 싸움 비슷한 게 있는 모양인데……. 난 상관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피를 보며 살기는 싫어.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선 싸워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놈이야.”

“…….”

“자꾸 날 건드리면…… 나도 싸울 수밖에 없을 거다.”

장기린의 눈에서 살기 이상으로 번뜩이는 무언가가 마총을 압도했다.

“돌아가서 네 배후에게 그렇게 전해. 풍운객잔을 건드리지 말라고.”

“…….”

“거기, 오른손에 비도는 내려놓고.”

나직한 첨언에 마총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실제로 그의 오른손엔 언제 꺼냈는지 모를 비도가 두 개 들려 있었다.

장기린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의 정체를 간파한 것이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요?”

마총의 목소리엔 이미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객잔 주인.”

“…….”

“그렇게 못 믿는 눈을 해도 소용없어. 난 풍운객잔의 주인일 뿐이니까.”

장기린은 그 말을 한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떠나갔다.

폐장원을 떠나기 직전에 뒤를 돌아봤을 때, 마총은 멍하니 주저앉아서 혼이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뭐가 어쩌고 어째?!”

찢어질 듯 날카로운 고함 소리에 무릎을 꿇고 있던 마총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지금 그는 청풍객잔의 최상층에 올라와 있었다.

정면에선 청풍객잔의 객주 방태풍이 눈초리를 하늘로 치솟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방태풍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장흠은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문 채 악귀 같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젠장, 주, 죽겠구먼.’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더 반응이 격렬했다.

“정체를 들킨 데다가, 도망쳤다가 잡혀서 그딴 협박까지 듣고 왔다? 너 이 새끼, 일류 살수 맞아? 삼류인데 지금껏 사기쳐 왔던 것 아냐?”

방태풍은 불같이 노해서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그 비대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옥 벼루를 집어던지려고 하다가 참고, 던지려다가 참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장흠이 그런 방태풍을 말렸다.

“객주, 진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어이, 장흠. 그래도 같은 패거리라고 저 새끼 감싸 줄 생각은 하지도 말아. 이번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돼! 일류 살수라는 놈이 그깟 놈한테 맞고 오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장흠은 무릎을 꿇고 있는 마총을 한번 힐끗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도 감싸 줄 생각은 없습니다.”

마총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하지만 일의 정황은 정확히 알아야겠죠. 그래야 뭘 해도 할 게 아닙니까.”

“……크흠!”

“그러니 마총, 확실하게 대답해라.”

마총은 장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장흠의 표정이 무시무시했다.

“그놈은 무공을 익혔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똑바로 대답해라.”

“……예.”

“그놈, 무공을 익혔나?”

“예, 익혔습니다.”

“확실해?”

마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정확히 어떤 무공이나 초식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저를 귀신같이 찾아내고…… 또 마지막에 우모침을 막아 낸 걸 보면…… 무공을 익힌 게 확실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흠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우모침을 썼다고?”

“……예.”

“우모침을 썼는데, 그걸 막았다고? 그, 삼십 개짜리를? 전부?”

“예. 정확히 말하자면, 우모침을 쓰는 순간 그가 제 턱을 후려쳐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는 방태풍은 인상만 찌푸리고 있었지만, 장흠의 얼굴은 그야말로 아연실색이란 말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마총이 우모침을 썼다는 건, 그야말로 얼굴과 얼굴이 맞닿는 지근거리까지 다가갔었다는 뜻이다. 우모침을 쓴 것은 기습적이었을 테고, 그 거리에서, 그 속도면 설령 상대가 일류 무인이라고 할지라도 얼굴이 고슴도치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람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목숨이 걸린 찰나라면 더더욱.

즉, 아무리 뛰어난 무림 고수라도 경험이 풍부하지 않는 한 그런 기습을 완벽하게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턱을 후려칠 생각을 해? 그놈은 괴물인가? 아니면 혹시 정체를 숨긴 절정 고수?’

장흠이 너무 놀라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방태풍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놈이 대단하다는 거지? 너희는 그놈에 비해 실력이 딸려서 못 잡은 거고.”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됐어, 됐어. 너희들 삼류 놀음에 끼어 주는 것도 이제 지겹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경멸 섞인 말을 내뱉는다.

장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늘따라 정도가 심하다. 단둘이 아니라 부하까지 끼어 있는 자리에서, 이미 모든 것을 인내하기로 마음먹은 장흠이 노화를 참기 힘들만큼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 밖에. 들어와!”

방태풍은 그런 장흠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밖을 향해 소리쳤고,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장지문이 열리며 머리를 빡빡 깎은 거한 셋이 들어왔다.

‘독두삼살(禿頭三殺)……!’

독두파엔 두목이 없다. 똑같은 지위를 가진 세 명의 거한이 함께 독두파를 지배하는데, 그게 바로 지금 들어오는 세 명이었다.

힘줄이 불끈불끈 솟아 있는 단단한 육체, 뾰족한 매부리코에, 옆으로 쭉 잡아 째져서 사나워 보이는 눈매. 거기다 똑같이 황색 적삼을 입으니 독두삼살은 세 쌍동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아 있었다.

‘이 돼지가 진짜……!’

장흠은 속에서 열불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결국은 또 이런 식이란 말인가?

독두파를 불러서 대결 구도를 만드는……!

분노에 찬 장흠이 안광을 번뜩였으나, 방태풍은 신경도 쓰지 않고 독두삼살에게 손짓을 했다.

“나한테 보여 줄 놈이 있었지? 데리고 와 봐.”

독두삼살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셋 중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 초라한 몰골의 중년인을 한 명 데리고 들어왔다.

그 중년인은 등 뒤에서 양손이 묶여 있었다. 온몸은 먼지투성이였고 얼굴엔 여러 번 얻어맞은 듯 멍 자국이 가득했는데, 안대로 눈을 가린 데다 입에 재갈까지 물려 놓은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안대랑 재갈 풀어.”

독두삼살은 그 명을 충실히 이행했다.

눈이 부신 듯 잠시 눈을 찌푸리고 있던 중년인은 방태풍과 장흠, 그리고 독두삼살의 모습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뒤로 기어갔다.

“히, 히익……! 처, 청풍객잔……!”

그는 등을 돌려 방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독두삼살은 그를 붙잡아 다시 방바닥에 주저앉혔다.

중년인은 벌벌 떨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로, 딸꾹질을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 사람은……!’

장흠은 그 중년인을 알아보고 놀라서 외쳤다.

“당신, 오영달 아닌가?”

“히, 히익?”

“풍운객잔의 전(前) 주인. 맞지?”

중년인 오영달은 잔뜩 겁에 질린 채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흠이 눈매를 사납게 하며 다그쳐 물었다.

“대답해!”

“히익……! 마, 맞소!”

“이미 도망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어지는 질문은 방태풍에게 하는 것이었다.

방태풍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독두파에선 계속 저자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금세 포기해 버린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야. 현(現) 객주의 정체를 알려면 그자를 찾아야 한다나 뭐라나. 사실 맞는 말이지 않아?”

“…….”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삼류라고 하는 거야. 독두파를 봐. 어떤 상황이 되든 역경을 뚫고 결과를 내보이잖아? 저 영달이라는 놈도 항주 동로(東路)의 산적들한테 붙잡혀 있는 걸 독두파가 찾아온 거야. 대단하지 않나?”

방태풍은 뿌듯한 얼굴로 독두삼살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 장흠은 그 말의 의미에 더욱 놀랐다.

‘산적? 산적한테서 사람을 찾아왔다고?’

항주 근처에서 산적 떼가 출몰한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시국이 불안하니 별 게 다 날뛰는구나 싶었지만, 사실 그다지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그런데 독두파는 어떻게 그 산적들한테서 사람을 찾아온 것일까? 그 산적들이 저자를 잡고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뭔가 이상해.’

장흠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독두삼살과 방태풍은 그런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거기, 영달이라고 했나?”

“예, 예?”

“긴말할 거 없어. 너 누구한테 객잔 팔았어?”

오영달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개, 객잔 말입니까?”

“그래, 풍운객잔. 그거 누구한테 팔았어?”

“…….”

“누구한테 팔았냐니까!”

쾅!

방태풍이 다탁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노화를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오영달의 옆에 서 있던 독두삼살 중 두 사람이 오영달의 양쪽 어깨와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빨랫줄 잡아당기듯 쭉쭉 펴는데, 단번에 팔을 분질러 버릴 듯한 모양새였다.

“히, 히익……!”

오영달은 황급히 대답했다.

“기린! 기린입니다!”

“뭐?”

“장기린……! 그 사람한테 객잔을 팔았습니다!”

방태풍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동안 정체를 몰랐던 놈의 이름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확실해? 장기린? 그게 그놈 이름이야?”

“예, 예! 확실합니다……!”

“거, 특이한 이름일세. 기린아(麒麟兒) 할 때, 그 기린?”

“예, 그, 그 이름입니다.”

“그럼 다른 건? 다른 건 아는 거 없어?”

“그, 그게…….”

“생각해 봐! 뭐든지,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생각해 내란 말이야!”

방태풍이 위압적으로 소리를 지르자, 오영달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세,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다니?”

“땅문서에 서명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돈은 많았지만 물가도 모르는 것 같았고…… 그 덕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객잔을 팔았습니다!”

“얼마 받았는데?”

“……금괴 두 개 받았습니다.”

“허어, 금괴 두 개?”

방태풍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고, 옆에 있던 장흠의 눈빛은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역시 배후가 있구먼. 그 쓰레기 같은 객잔에 금괴를 두 개나 쓰다니. 하긴, 자기 돈이 아니니까 그렇게 내놓을 수 있었겠지. 그놈은 고용된 놈일 뿐이야.”

방태풍은 스스로의 명석한 머리에 스스로 감탄한 듯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말곤? 그거 말곤 없어?”

“에…….”

“있어? 없어?”

방태풍의 단추 구멍 같은 눈에 살기가 감돈다.

오영달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 멀리서 온 것 같았습니다.”

“멀리서라니?”

“그, 행색이 엄청나게 낡아 있었고…… 자기가 거지꼴을 하고 있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꼭 어디 갇혀서 살다 나온 사람처럼…….”

오영달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방태풍은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디 갇혀서 무공이라도 배웠나 보지. 거봐, 어딘가에 고용된 거라니까? 다만 중요한 건 어디에 고용되었냐는 건데…….”

방태풍이 고민하는 사이, 독두삼살 중 이마 한가운데에 사마귀가 나 있는 자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호오, 뭔데?”

방태풍의 얼굴엔 호의가 가득했다.

“풍운객잔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감시? 우리 말고?”

“예. 감시인지 보호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청풍객잔 말고도 두 군데에서 더 풍운객잔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방태풍의 얼굴에 긴장이 어리고, 장흠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그것들이 누군지 알아냈나?”

“하나는 홍화객잔, 하나는 청월루였습니다.”

방태풍, 장흠 두 사람의 얼굴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졌다. 상대는 그들이 예상했던 곳이기도 하고, 또한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던 곳이기도 했다.

“오대객잔……!”

방태풍의 입에서 신음처럼 흘러나온 그 말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과 같았다.

항주 금선로.

그곳의 무수한 고급 객잔들 중에서도 세인들은 오직 오대객잔(五大客棧)만을 최고라 칭한다.

서호제일(西湖第一) 창해루

천상미태(天上美態) 홍화객잔

항주일미(杭州一味) 청월루

주향만리(酒香萬里) 북화적월루

비안화숙(秘安話宿) 청풍객잔

서호 최고라는 창해루.

아름다운 여인들이 즐비한 홍화객잔.

항주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청월루.

세상의 모든 술을 가지고 있다는 북화적월루.

어떤 말이든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청풍객잔.

그 다섯의 특징은 너무나 뚜렷하고, 현재 권세(權勢)가 있는 정계의 인사들 중에 그 다섯 객잔 중 하나에 안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곳이었다.

그리고 훌륭한 만큼…… 힘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홍화객잔과 청월루…… 그놈이 숙수랑 침모를 구한답시고 각각 한 명씩 데려간 곳이 아닙니까?”

장흠이 이야기하자 방태풍은 비웃듯이 코웃음 쳤다.

“흥,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위장일 수도 있지 않겠어?”

“위장이라면……?”

“의도적으로 숙수나 침모를 넘겨줘 놓고,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을 수도 있다 이거야. 홍화객잔, 청월루. 거기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서 그래?”

장흠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홍화객잔의 옥룡파 두목 옥승.

청월루의 철우파 두목 철우.

무림 일류 고수에도 뒤지지 않는 대단한 자들이다. 대단하긴 분명 대단한데…….

‘설마, 그들이 풍운객잔 따위를 얻기 위해 그 정도로 신경을 쓸까? 아닌 척 위장까지 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말해 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

비약에 비약을 거듭한 방태풍의 생각은, 이제 나머지 오대객잔이 연합해서 청풍객잔에 대항하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독두삼살은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가타부타 말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그게 흥취를 돋웠는지, 방태풍은 더더욱 자신감 있게 음모론을 만들어 갔다.

“좋아. 어차피 나는 나머지 오대객잔을 다 쓸어버리고, 우리 청풍객잔을 이곳 금선로의 유일존(唯一尊)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고민할 필요 없어.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야!”

방태풍은 세기의 영웅처럼 주먹을 쥐고 앞뒤로 흔들었다.

“이봐, 영달이. 분명, 그 땅문서엔 장기린이란 놈 이름으로 수결을 찍었겠지?”

“그, 그렇습니다.”

방태풍은 독두삼살을 바라봤다.

“좋아! 독두삼살!”

“예.”

“너희가 가서 그놈 잡아 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죽여 버려도 된다.”

방태풍의 눈이 잔인하게 빛난다.

독두삼살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듯이 물었다.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그놈?”

독두삼살과 방태풍이 바라보는 것은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중년 사내 오영달이다.

오영달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렸다. 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 사, 사, 사, 살려 주십시오……!”

방태풍은 다섯 겹이나 되는 자신의 턱살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들은 게 너무 많은데…….”

“모, 못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벙어리처럼 살 것입니다!”

“정말로?”

“예, 예!”

방태풍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선심 쓰듯 품 안에서 은자 석 냥을 오영달에게 던져 주었다.

“좋아, 선심 썼다.”

“예……?”

“기분 좋은 날 액이 끼면 안 되니까, 특별히 살려 준다. 대신 그 돈으로 항주를 떠나. 지금 당장!”

오영달은 황급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이 돈으로 다른 곳에서 정착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목숨을 건졌는데.

“만약 앞으로 항주에서 또 보게 되면……. 그땐 그 돈이 저승길 노잣돈이 될 거야.”

“무,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럼 당장 꺼져.”

오영달은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어느 순간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갔다.

독두삼살과 장흠도, 대충 일이 마무리되는 듯하자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잠깐, 장흠.”

“예?”

“너희 애들 시켜서 독두파 애들 좀 도우라 그래. 장기린이라는 놈을 잡고, 감시하는 놈들 감시하고, 그걸 어떻게 독두삼살이 다 해? 다 같은 한 식구인데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어?”

“…….”

“싫은가?”

“……아닙니다.”

장흠은 제사상의 돼지머리처럼 씩 웃는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쳐 주고 싶었지만, 꾹 눌러참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태풍은 빨리 나가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독두삼살이 나가고 장흠이 나가자 방태풍은 방 안에 홀로 남았다.

각자의 상념을 가진 채.

그렇게 청풍객잔에서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다.

☆ ☆ ☆

“뭐! 청풍객잔이 움직였다고?!”

청월루의 백 총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눈을 부릅떴다.

항상 청수하고 차분한 안색을 유지했던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전령 역할을 수행한 철우의 수하 중 한 사람은 그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이미 깊은 생각에 빠진 백 총관은 그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보게, 자네. 조금 전엔 홍화객잔에서도 움직임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예. 일각 전에 옥승을 포함한 옥룡파의 간부들이 금선남로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허어!”

“저기, 철우 형님을 부를까요?”

수하는 걱정스런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백 총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은 뒤, 곰곰이 생각했다.

‘홍화객잔에서 옥룡파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풍객잔에서도 독두파가 움직였다. 장흠은 그 뒤를 따랐다고 하지만, 함께 행동하는 느낌은 아니라고 했고……. 어쨌든 옥룡파, 독두파, 장흠파. 그 셋이 모두 향하는 방향은 풍운객잔이 있는 금선남로.’

백 총관은 스스로 손바닥으로 이마를 한 번 툭 때린 뒤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풍운객잔…… 풍운객잔……. 허어, 정말 이름 그대로 이곳 금선로에 풍운(風雲)을 몰고 올 셈인가? 그가 등장한 뒤론 이곳 금선로가 폭풍이라도 친 것처럼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백 총관은 뒷짐을 진 채 그리 크지 않은 방 안을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이대로 부딪치면 전쟁이 일어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 행동해야 하는가?’

한참 고민하던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서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몇 장의 서찰들이었다. 풍운객잔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되어 있던 그 서찰이었다.

백 총관의 눈에서 범상치 않은 빛이 번뜩였다.

“……안 돼. 아직은 전쟁이 일어나선 안 돼. 질서가 바뀌어서도 안 된다. 이곳은 평화로워야 해.”

백 총관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판관처럼 단호한 얼굴로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철우의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철우를 불러오게.”

“예!”

수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방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 금선로의 오대객잔 중 세 곳이 일제히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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