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 적룡등천(赤龍登天)
호북(湖北) 무당산(武當山)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수수한 듯하면서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고고한 향기를 품고 있는 산이다. 명(明)의 수많은 산들 중에서도 도가(道家)의 성지로 꼽힐 만큼 뛰어나며, 무당산이 품고 있는 세 개의 봉우리는 번뇌하던 한 사람을 반선(半仙)의 경지에 올려놓을 만큼 영험하다고, 도관을 쓴 도인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세 개의 봉우리가 만들어 낸 신선.
삼봉진인(三峰眞人).
바로 무당파의 개파 시조 장삼봉을 말함이다.
강호에 수많은 방파(퇍派)와 수많은 무인(武人)들이 있으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존경을 표하는 곳은 단 두 곳뿐이지 않던가.
북숭소림(北崇少林).
남존무당(南尊武當).
그중에서도 모든 검파의 종가(宗家)로서 대우받는 무당파의 위치라는 것은, 그야말로 강호 무림에서 지고(至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태극혜검(太極慧劍), 양의검(兩儀劍), 삼절황검(三絶荒劍), 사상류검(四象流劍)과 같은 뛰어난 절기는 물론이고, 강호 모든 검객들의 기본 검법이라는 삼재검(三才劍)이 무당파의 검법이라는 것부터가 그 의미를 실감하게 해 주지 않는가!
하지만 고고하던 무당파는 최근 들어 강호 무림에서 원망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원의 일패도지(一敗塗地), 명의 건국과 통치, 그리고 태조의 사후(死後) 십육 세에 불과한 어린 혜제(惠帝)가 즉위하고, 사 년 뒤 북평(北平)에 있던 연왕(燕王)이 반란으로 제위를 찬탈했다.
수상한 시대였으나, 이 사건은 그 전의 다른 사건들과는 달랐다.
명의 건국에서 태조가 행한 반란이 몽고로부터 다시 중화를 되찾는 한민족(漢民族)의 부흥이었다면, 이번 연왕의 반란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천륜을 배반한 역천(逆天)이라고밖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호 무림의 협사(俠士)들은 바로 이 점을 비판했다.
연왕이 태종(太宗)의 위(位)에 오른 것은 엄연한 패륜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혈겁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일에 관련된 무당파 또한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무당의 도학을 존중한 태종이 연왕 시절부터 무당파의 장문인에게 틈틈이 조언을 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태종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계속해서 무당파를 아꼈고, 공적인 자리에서 무당 장문인을 언급하길 꺼리지 않았다.
이러니, 태종과 무당파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태종의 흉명(凶名)이 높아질수록 무당파는 점점 신망을 잃어 갔고, 그들에게 원망의 목소리를 토해 내는 자들의 선두엔 무당파에 눌려 그간 제이검문의 수모를 겪고 있던 화산파와 구파의 몇몇 검문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逆說的)이게도, 무당파는 신망을 잃었지만 그 성세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 갔다.
태종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관인과 상인 들은 무당파에 천금(千金)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관직에 오르고 싶어 하던 무가(武家)나 무파(武派) 들은 무당파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불과 몇 년 만에 너무나도 변해 버린 상황.
이에 무당파는 한 가지를 결심한다.
관이나 태종과의 인연을 단박에 끊어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순리대로 풀어 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수승화강(水升火降).
음(陰)은 양(陽)이 되고, 양(陽)은 음(陰)이 되는 것이, 돌고 도는 태극(太極)의 이치일지니.
무당파는 무공이 뛰어난 일대제자 한 명과 이대제자 다섯을 아예 관부에 투신시켰다. 몇몇은 관직으로, 몇몇은 목숨을 걸고 전장의 군인으로 보내졌다.
관부와 무림의 상호 불가침을 깨 버린 것이다.
도의(道義)에 까다로운 시대.
당연히 비난의 여론이 높아야 했건만, 의외로 그 일에 대해서 무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가 바로 ‘정난의 변’.
태종이 잔혹한 피의 숙청을 시행하고, 정치에 환관을 대대적으로 등용시켰으며, 비밀 조직 동창을 키워 천지 사방을 감시해 만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던 때였다.
입만 한 번 잘못 놀려도 곧바로 뒷골목의 시체로 발견된다는 공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강산의 빛이 열 번은 바뀌고, 사람들도 이젠 태종에게 적응이 되어 갈 무렵, 북로(北路)로 향했던 제자 한 명이 무당산에 돌아왔다.
“운현(雲賢)……!”
문무겸전.
도학(道學)과 무학(武學)이 모두 경지에 이르러 쌍절진인(雙絶眞人)이라고도 불리는 무당파의 태상 장로 태허(太虛)는 격동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십만 자의 도경(道經)을 통달한 그의 드높은 도학의 경지도, 항상 명경지수의 마음을 유지하게 해 주는 양의신공(兩儀神功)도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사부님.”
이지적인 미안(美顔).
대갓집 도령 같은 청명한 인상의 젊은이가 공손하게 절을 올린다.
언뜻 차가워 보이기까지 하는 차분한 안색에, 깎아 만든 듯 절제된 기품이 돋보이는 청년이었다. 사부를 향해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리는 그 경건한 동작에서 흠잡을 곳이라곤 단 한 점도 없다.
하지만 태허는 그 절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안색이 점점 굳어져서, 종래엔 침통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무당 제일이라 불렸던 잠룡의 기품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눈빛.
허무한 듯 공허하면서, 초절 고수인 태허마저 섬뜩함을 느낄 만큼 강렬한 살기를 품고 있는 그 눈빛은, 그가 알고 있던 운현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혀 딴판이 되어 있었다.
태허는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불안함을 느꼈다.
“사부님.”
태허는 침중함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고생이 많았구나.”
“아닙니다.”
“나를 원망하느냐?”
태허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운현이라 불린 청년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못난 사부 때문에 십 년을 피투성이가 되어 전장에서 굴렀다. 그런데 원망하지 않느냐?”
“그게 제 명운(命運)인데, 어찌 사부님께 그 원망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구나.”
태허는 아픔이 깃든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전.
무당파가 관부에 제자들을 보내는 일에 모두가 다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무당은 세속에 초탈한 도인들의 문파이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도인들이 강호 무인으로서의 인식까지 초탈하길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인 일이다.
태허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어찌, 무당이 강호의 도리를 버리고, 관과 타협을 하는가! 무소유(無所有)를 도락(道樂)으로 여겨야 할 우리 도인들이, 포악한 시대의 패륜자에게 잘 보여서, 무슨 영화를 누릴 게 있는가!”
신념의 일갈(一喝)이요, 협의 외침이었으나,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종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불같은 성정의 태종.
그는 곧바로 그 말을 한 태허의 제자를 관으로 보낼 것을 장문인에게 명한다.
그 결과가…… 바로, 운현의 북로전쟁 종군이었던 것이다.
“명의 전장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위험한 곳이 북로전쟁이라고 들었다. 원이 북쪽으로 밀려났으나, 그 저력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강대하다고 하더구나.”
“예. 분명 그들은 강했습니다.”
“내 어찌……해야, 너에게 미안함을 갚을 수 있을까.”
태허는 그때 그 말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그때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는 분명 똑같은 말을 내뱉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의 여파로 십 년을 지옥처럼 보낸 제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는 그것이 사부님의 탓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니, 사부님께선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운현아…….”
“시대의 흐름이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때 당당히 태종에게 일갈한 사부님이 존경스럽습니다.”
태허는 감격하여 운현을 바라보았다.
운현은 반듯한 자세로 앉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저는 북로전쟁에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대부분이 무의미한 살육이었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죽음들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사람을 죽이는 도살자로 살았고, 이제 그 수가 천(千)을 훌쩍 뛰어넘으니, 제가 강호인이었다면 지금쯤 살육에 미친 마인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테지요. 사부님께서 살기로 가득한 제 눈빛을 보고 놀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태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의 짐이 있을 뿐더러, 십 년간 보지 못했던 그의 제자는 사부의 속을 꿰뚫어 볼 만큼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모두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 우애가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고, 삶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엔, 살아오면서 이렇게나 ‘삶’이라는 것을 진실되게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실된 삶……이라?”
“예.”
눈빛이 흔들리던 태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말을 이었다.
“도인으로서 많은 경험은 흠이 될 것이 아니지. 하나, 그렇게 한쪽으로 편중된 경험은 삶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
“가자. 내가 지내고 있는 오적암(五赤巖)으로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자꾸나. 그렇게 지내다 보면 살기로 가득했던 몸은 이 드넓은 무당의 품 안에서 깨끗이 씻겨 나게 될 게야.”
태허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몸을 들썩였으나, 운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앉아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듯 지긋한 눈으로 태허를 바라볼 뿐이다.
“아……!”
태허는 탄식했다.
눈앞을 가로막던 미혹이 사라지고, 그는 그제야 아까부터 느껴 왔던 불안감과 초조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운현아. 너는 다시 돌아갈 생각인 거구나.”
“예, 사부님.”
거친 재질의 검은색 무복. 무릎에 대어 있는 각반. 허리엔 무당의 송문고검이 아니라 삼 척짜리 장군검을 두 개나 차고 있었다.
그는 아직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전장을 질주하던 적룡기마대의 부대주.
부운화(芙雲樺)로서 잠시 사문에 들렀을 뿐이었다.
“허허, 허허! 그래, 그랬구나. 내 미리 짐작했어야 했거늘. 그 차림새도, 해검지(解劍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동행도. 이미 네 마음을 뜻하고 있었건만.”
“…….”
“운현아.”
태허는 진지하게 물었다.
“도(道)는…… 더 이상 따르지 않을 생각이냐?”
태허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담긴다.
지금 이 물음은 운현이 사문에 계속 남을 건지를 묻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닙니다, 사부님. 인간으로서의 삶을 더욱 살아 보고 싶을 뿐, 도를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무당의 품 안에 있지 않고도 도를 따를 수 있다고 여기는 게냐?”
“삶이 곧 마음[心]이요, 마음이 곧 도(道)인데, 어찌 장소가 연관이 있겠습니까?”
“…….”
“저에게 주어진 운명을 조금 더 살아 보고, 모든 것이 비워질 때, 다시 무당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올린 구배지례는…… 그런 의미의 약속입니다.”
태허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운현을 붙잡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붙잡아 앉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못난 사부와 사문을 둔 탓에 십 년간 지옥에서 살았던 제자다. 그로서는 그를 붙잡을 면목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를 물었다.
“강호로 나가는 것이냐?”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삶을 살아 보려는 것뿐입니다. 제 명운이 강호에 있다면…… 강호로 나가게 되겠지요.”
태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은 항상 이곳에 있을 것이다.”
“……사부님.”
“너는 무당의 자식이고, 태허의 제자다. 항상 조심하고, 힘들 땐 언제든 돌아오너라.”
한참 동안 제자리에 멈춰 서 있던 운현은 태허를 향해 깊이 읍(揖)한 뒤 몸을 돌렸다.
무당산을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흐린 구름처럼 침중했다.
☆ ☆ ☆
“둘째 형님! 일은 다 끝내고 오신 겁니까?”
까무잡잡한 피부의 앳된 청년이 방실방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쉽게 호감이 가는 인상에,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것 같은 친근한 성격. 해검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룡기마대의 막내 진구였다.
“끝내고 오는 길이다.”
운현. 아니, 적룡기마대의 부대주 부운화는 진구로부터 그의 애마 은수(恩얽)의 고삐를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십 년 만에 오는 사문이 아닙니까? 정말로 좀 더 머무르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사부님께 잠깐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눌러앉을 뻔했다. 더 있다가는 틀림없이 발목을 잡혀 버릴 거야.”
“에에, 그 정도입니까?”
“그래. 지금도 못 내려올 뻔했다니까. 사문의 포근함이라는 건 역시 상상 이상이더군.”
부운화는 씩 웃으면서 능숙한 몸놀림으로 은수의 안장 위에 올라탔다.
차분한 얼굴 위로 떠올라 있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미소.
분명, 사부인 태허 진인 앞에서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이었다.
“으음, 이성적인 둘째 형님이 그 정도라니……. 그럼 다른 형님들은 고향에 갔다가 아예 못 돌아오는 것 아니에요?”
진구는 몸집은 작지만 힘 하나는 장사인 자신의 애마 삭풍(朔風)에 올라타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왜 그렇죠?”
“추룡은 지금 대원들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얼마 안 돼서 우리 있는 곳으로 올 거다. 대석은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다른 가족도 없다고 했으니…… 그냥 고향에 한번 들렀다가 돌아올 거고. 우생은 자신의 집에 심한 반감이 있는 만큼, 아마 형식적으로 얼굴 한 번 비추자마자 도망치듯 빠져나올 거다.”
셋째, 다혈질 추룡.
넷째, 천하장사 대석.
다섯째, 모사 섭우생.
그리고 여섯째인 막내가 바로 진구다.
적룡기마대원은 이백 명이 넘지만, 그중에서 ‘진짜’ 적룡기마대로 취급받는 건 간부 계급인 이들 여섯 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간부들이 다른 대원들과 특별히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있고, 다른 대원들보다 좀 더 강하기에, 간부로 불러줄 뿐, 이미 모두가 한 가족 같은 사이였다.
“에…… 그렇군요. 하긴, 다들 가족이라곤 우리들뿐이니, 결국 다시 만나게 될…….”
진구는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크, 큰일 났어요, 둘째 형님!”
“무슨 큰일?”
“그러고 보니 약속 장소를 정하지 않았어요! 이럴 수가! 떠날 때 너무 들떴었나 봐요! 그런 사소한 것도 정하지 않고 흩어졌었다니!!”
부운화는 안절부절못하는 진구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걱정 마라. 다른 애들에겐 이미 만날 장소를 다 말해 뒀다.”
“예……? 장소를 말해 두셨다구요? 언제요?”
“마지막에 술 진탕 먹고 뻗기 전에.”
진구는 그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난감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으윽……! 왜 저는 기억이 안 나죠?”
“너한텐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예에?! 왜요?”
“나랑 함께 올 거였잖냐.”
부운화는 그제야 ‘아!’하고 감탄하는 진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진구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런데 둘째 형님.”
“말해.”
“저기, 그럼 그 장소가 어디에요?”
부운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항주.”
“예? 거긴 왜요?”
“대형이 거기에 계시잖냐. 우리가 모인다면, 당연히 대형이 계신 곳으로 모여야지. 왜? 혹시 항주 싫어하나?”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오히려 좋아하죠. 그런데 대형이 항주에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부운화는 주먹을 살짝 감아쥐고 진구의 이마를 살짝 쥐어박았다.
쿵.
“윽! 왜, 왜 때려요?”
“정말 기억 안 나?”
“예?”
“네가 그랬잖냐. 대형이 평범한 생활은 어떤 거냐고 물었을 때, 뭐니 뭐니 해도 객잔을 하나 경영하는 것이 최고라고.”
“예? 제가 그런…… 아! 그랬었네요.”
“그렇지?”
“예, 그랬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객잔을 꼭 항주에서 하라는 법이 있나요?”
부운화는 또다시 이마를 한 대 살짝 쥐어박았다.
진구는 손을 들어 막아 보려고 했지만, 신묘하게 흐느적거리던 부운화의 주먹은 진구의 극강 방어를 뚫고 유유히 이마를 한 대 후려치고 돌아가 버렸다.
쿵!
“으윽……!, 왜, 왜 또요?”
“네가 한동안 입버릇처럼 말했잖냐. 항주 금선로에 풍운객잔이라는 곳이 있는데,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손님도 하나 없는 괴상한 곳이라고. 하지만 근처의 객잔보단 분명히 가격이 쌀 테니 그곳을 사서 네가 훌륭한 객잔으로 바꿔 보이겠다고 말이다.”
“분명 그렇긴 했…… 에엑?! 그, 그럼 큰형님은 제 말만 믿고 거기로 가셨단 말이에요?”
“그러고도 남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돼요!”
부운화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대형을 모르나? 싸움이나 전략 말고는 극히 단순한 사람이야. 더군다나 한 가족인 우리가 한 말이면,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이지.”
“그,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 확실하다. 평범하게 살려고 했다면, 당연히 네 말만 믿고 항주 금선로 풍운객잔으로 갔을 거다. 거기로 가면 대형을 찾을 수 있어.”
진구는 입을 쩍 벌린 채 당황하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하, 하지만 제가 그 풍운객잔을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사 년 전이라고요. 그 사이에 없어졌을지도 몰라요. 워낙 낡고 오래된 객잔이었거든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신 거예요!”
“지금은 없어졌더라도, 어쨌든 원래 그 객잔이 있던 곳 근처로 가면 대형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니냐? 대형은 워낙 특이해서 한 번 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을 거다.”
부운화는 이미 거기까지 다 염두해 둔 듯 어떤 말을 꺼내도 차분한 신색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보자 진구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남았다.
“거긴 파락호도 많고, 무림인도 많은데. 괜한 시비에 휘말리진 않을까요? 겉보기완 다르게 워낙 살벌해서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그 동네거든요.”
“시비?”
“예. 시비라도 걸려서 괜한 싸움에 휘말리면 어떻게 해요?”
부운화는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너 설마 대형을 걱정하는 거냐?”
“그야, 그렇죠. 대형이 강한 건 알지만, 가끔 너무 우직한 구석이 있어요. 게다가 강호인들은 산이든 강이든 붕붕 날아다닌다면서요. 이상한 장풍 같은 것도 쏘구요. 혹시 떼로 몰려다니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하! 강호인? 떼로 몰려다녀?”
부운화가 웃자, 그의 애마 은수도 큰소리로 ‘히히힝!’ 울었다.
“무림인이라고 해 봤자, 우리와 비교하면 그리 대단치 않다.”
“예?”
“진구 너, 대형이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진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그야 알죠.”
“대형은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어. 단언컨대, 어떤 무림인이든, 설령 그들이 떼로 몰려온다 해도, 겁도 없이 대형을 화나게 한다면, 그들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다. 두고두고 평생.”
그 말을 하는 부운화의 눈빛은 묘하게 강렬해서, 진구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예언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도저히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강호인들은 모두 신선 같다던데…….’
적룡기마대가 강한 건 잘 알고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지 그런 강함이 별로 특출 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에 진구가 어린 시절 이야기로 들은 강호인들은 모두 저 높은 하늘 위의 존재들이 아니던가?
‘하긴, 둘째 형님도 따지고 보면 강호인이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운화 또한 그 유명한 무당파의 정식 제자였다. 과거의 진구였다면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그런 그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가자. 생각보다 너무 지체했다.”
부운화를 태운 은수가 앞서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상념에 빠져 있었던 진구는 화들짝 놀라 삭풍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같이 가요―!”
☆ ☆ ☆
칠흑 같은 어둠을 무참히 걷어 내며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항주의 자랑, 금선로.
낡디 낡은 건물의 창가에 앉아 그 화려한 운치를 지켜보던 절세가인이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곳은 손님이 정말 많구나…….’
그녀의 사슴 같은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건너쪽의 청풍 제이(第二) 객잔. 그리고 왼쪽 편에 있는 운중루(雲中樓)와 오른편에 있는 금선북로로 이어지는 커다란 다리였다.
해시(亥時:저녁9∼11시)라는 항주 밤 문화의 황금 시간대를 맞아,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금선로는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청풍 제이 객잔의 앞에는 조용히 술을 마시려는 고관대작들로 가득했고, 운중루의 앞에는 꿀맛만큼이나 달다는 첨밀주(甛蜜酒)를 맛보기 위해 온갖 주당(酒黨)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 항주의 고급 객잔들은 다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청풍객잔은 고위 관료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철저한 비밀 공간을.
홍화객잔은 모든 사내들이 입을 쩍 벌릴 만큼 아름다운 기녀들을.
청월루는 황제나 먹을 법한 화려하고 진귀한 음식들을.
그런 식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색들은, 이곳 금선로를 찾는 사람들이 스스로 입맛에 맞게 객잔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저들보다, 아니, 저들만큼이나 객잔을 크게 키워 내야 할 텐데…….’
그것이 오늘 하루 종일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하나의 화두(話頭)였다.
침모라는 것은 총관과도 같은 위치다.
즉, 지금 이곳 풍운객잔의 수입, 지출, 앞으로의 상술 전략까지, 모든 것이 그녀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휘연은 지금을 하나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항주 제일 청과상 진가장의 후손으로서, 몸속에 흐르는 상인의 피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곳 풍운객잔을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갑자기 창문 앞에 불쑥 나타나는 사람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
하지만 그녀는 곧, 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역시, 별일없으셨네요?”
객잔 안으로 들어오던 장기린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칠과 아팔이 걱정했거든요. 괜히 쫓아갔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
“네. 하지만 제가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객주님은 뭔가 숨겨진 실력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근한 눈빛으로 정말 실력이 있는지를 물어 온다.
장기린은 그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애들은?”
“아칠과 아팔은 자요. 아니, 잔다기보단 접시를 닦다가 조는 건데…… 그냥 제가 안 깨우고 놔뒀어요. 오늘은 많이 피곤할 것 같아서요.”
“그래, 잘했어.”
“그리고, 강 숙수님이라면 야시장에서 사 올 게 있다고 잠깐 나가셨구요. 아 참, 잠깐 여기 앉아 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휘연은 미리 준비해 뒀는지, 빨간 숯으로 채워 두었던 향로 위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뜨거운 찻주전자를 헝겊을 대고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쪼르륵.
맑은소리와 함께 다갈색 찻물이 찻잔을 채웠다.
“강 숙수님과 아칠, 아팔한테 월봉에 대해서 들었어요.”
“그래?”
“네. 그리고, 걱정이 되었어요.”
장기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걱정?”
“네. 월봉이 너무 세요. 아직 제대로 개업을 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손님이 많은 객잔도 아닌데 말이죠.”
긴 속눈썹을 늘어뜨린 그녀는 많이 걱정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요?”
“어려운 일일수록 대가가 커야 하는 법이야. 운찬은 주방을 혼자서 맡고 있고, 아칠과 아팔은 점소이 일뿐만 아니라 하인 일까지 하면서 이 객잔 전체를 관리하고 있지. 그런데 월봉까지 다른 곳보다 적게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해.”
휘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었다.
마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자식을 보는 듯한 대견한 미소였다.
“역시, 대단하세요.”
“무슨 소리야?”
“객주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가, 가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세요. 역시 한 단체를 이끌어 본 사람은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칭찬이야?”
“네. 물론, 당장 이문을 따져서는 남는 게 없지만, 장사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하는 거죠. 저는 이왕 투자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확실히 투자해야 하는 거라고 배웠어요.”
휘연은 기품 있는 몸동작으로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리 크지 않은 탁자에서 마주 앉아 있던 두 사람이다.
안 그래도 늘씬한 휘연이 몸을 숙이자, 자그마한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새근거리는 숨결이 입술에 닿는 듯했다.
“저는요?”
“……뭐라고?”
“저는 월봉을 얼마 주실 거예요?”
장기린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고 고민에 빠졌다.
“얼마 줘야 하는데?”
“주실 거예요?”
“줘야지.”
“그러시면 안 돼요.”
동그란 눈망울이 질책의 의미를 담아 바라본다.
물론 아직 눈을 똑바로 쳐다보진 못하고, 시선을 콧잔등 언저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일 텐데, 그녀는 노력하고 있었다.
“어째서……?”
“벌써 잊으셨어요? 객주님은 저를 삼백스물다섯 냥에 데려오셨어요. 제가 그 값어치를 할 때까진 제 인생은 객주님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그래?”
“네. 그러니 제가 주제넘게 월봉 따윌 바라면 단호하게 ‘안 돼!’라고 하셨어야죠.”
장기린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객주가 월봉을 주겠다는데, 오히려 직원이 월봉을 안 받겠다고 하는 웃기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얼핏 들어선 휘연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장기린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네?”
“그건 너를 한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들어간 돈. 즉, 내가 결정해서 쓴 돈이다. 그 뒤에 네가 일을 한 만큼 받는 돈은 당연히 따로 계산해야지.”
그는 그만의 기준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설령 그의 목숨을 담보로 잡히는 일이 있어도, 그의 수하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
군에 있는 동안 그런 일이 많았다.
부패한 장수들은 병사들을 징용하는 데 드는 돈을 횡령하기 일쑤였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꼬드겨서 병사들을 징용해 놓고, 돈을 지불할 때가 되면 그들을 무조건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돈을 받을 사람이 죽어 버리면, 그 돈은 장수의 소유가 되는 것을 이용한 얄팍한 계책이었다.
처음엔 병사들이 속지만, 그런 사지에서 한두 번 살아나고 난 다음엔 병사들은 절대로 열심히 싸우려 들지 않는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어차피 돈도 못 받을 거 목숨이나 구하자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공(功)을 세우려고 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싸움터와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싸움까지 벌이게 된다. 탈영이 늘고 군의 사기는 바닥을 긴다. 그렇게 되면 전쟁에서 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서 장기린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도 병사의 한 명으로서, 그의 수하들이 받을 돈은 설령 장군에게 칼을 뽑아 들고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받아 내서 지불했다.
병사들은 믿음을 가졌다. 목숨을 걸고 싸우면, 그만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장기린 덕분에 확고하게 믿게 되었다.
그 뒤로 어떤 싸움이든 져 본 적이 없다. 이기면 부자가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병사들은 그렇지 않은 병사들보다 몇 배나 강했다. 확실한 보상이 일의 능률을 몇 배나 올려 둔 것이다.
지금 적룡기마대에서 이 년 이상 살아남은 병사들 중 금괴 한두 개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금괴만큼 그들은 강해졌다.
“음…… 그래도, 그건 제가 싫어요.”
휘연은 고집스럽게 입매를 꾹 다물고 앞으로 내밀었던 상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눈앞에 있던 얼굴이 멀어지자, 왠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럼 이렇게 해요. 저는 침모고, 이 객잔의 장사를 책임져야 할 테니까……. 이 객잔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그게 무슨 뜻이야?”
“순이익이라는 것 아세요?”
“순이익?”
“네. 단순히 그날 매출이 얼마다, 이렇게 정하는 게 아니라, 그날 번 돈에서 재료비, 직원들 월봉, 기타 등등의 비용을 제하고 남은 ‘순수한 이익’을 뜻하는 거예요.”
“아…… 그렇군.”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저희는 소면 한 그릇을 동전 열 문을 받고 팔았죠? 그런데 아마 그 재료비는 아무리 저렴하게 하려고 해도 여섯 문은 될 거예요. 그렇다면 동전 열 문짜리 소면을 팔았을 때, 우리가 얻는 순수한 이익은 동전 네 문이라는 거죠. 이해가 되세요?”
“아아, 이해돼.”
“이런 식의 계산을 장사가 끝날 때마다 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한 달 뒤에 그 순이익을 다 모았을 때 나오는 숫자가, 바로 객주님이 이 객잔을 열어서 벌어들인 순수한 돈이라는 거예요.”
장기린은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휘연은 뭔가를 쉽게 설명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순이익의 개념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그 말을 들으니, 왜 장사꾼들이 항상 주판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는지, 그리고 동전 하나의 이문에 목숨을 거는지 알 것 같았다.
“즉, 매출에서 내가 들어간 돈을 빼고, 남는 돈이 순수한 내 거다, 이거지?”
“네. 맞아요.”
“그래. 알겠어. 그런데 그 얘기는 왜 꺼낸 거야?”
휘연은 싱긋 웃으면서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그 순수익의 일 할을 제가 받을 게요.”
“일 할이라면, 십분의 일?”
“네. 매출의 일 할이 아니라, 순수익의 일 할이에요.”
장기린은 인상을 썼다.
그는 장사라든가 객잔 일이라든가 하는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순수익이 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조금 전의 설명을 들어 보니 소면 하나를 팔아 봤자 동전 네 문밖에 안 남는다지 않은가!
“그건 너무 적은 거 아냐?”
“어머나, 왜요? 순수익이 엄청나게 클 수도 있죠? 그럼, 저는 금방 부자 되겠네요. 객주님 덕분에요. 아! 혹시 이득이 나더라도, 객주님이 저를 위해 쓰신 삼백스물다섯 냥부터 갚을 거예요.”
“……왜 그렇게 하려는 거야? 그냥 월봉으로 받지 않고.”
“그래야 제가 풍운객잔과 운명을 함께하지 않겠어요? 객주님도 무리해서 저한테 월봉을 주실 필요 없구요. 객잔 일이 잘될 때, 저도 돈을 받겠다는 뜻이에요.”
휘연의 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실현 가능성이다.
“지금, 순수익이 나려면 장사가 얼마나 되어야 돼?”
“……진심으로 대답해 드려요?”
“물론.”
휘연은 조금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재료비는 빼고 말씀드릴게요. 강 숙수님께 은자 다섯 냥. 아칠, 아팔에게 합쳐서 은자 두 냥을 약속하셨죠?”
“맞아.”
“그럼 월봉에 들어가는 돈이 도합 은자 일곱 냥이네요. 은자 일곱 냥은 동전으로 만 사천 문. 소면이 한 그릇에 열 문이니, 한 달간 소면 천사백 그릇을 팔아야 매출이 맞아요.”
“……!!”
장기린은 크게 놀랐다.
대략 어느 정도 많이 팔아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간 천사백 그릇의 소면을 팔아야 한다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순이익으로 따지면 달라지죠. 말씀드렸다시피 소면 한 그릇을 팔았을 때 순이익은 동전 네 문이었잖아요? 그렇다면……. 음, 숫자가 두 배 반이 되니까……. 총 삼천오백 그릇을 팔아야 딱 적자를 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네요.”
“…….”
“그렇게 놀란 얼굴 하실 거 없어요. 비싼 요리를 팔면 또 그만큼 이문이 한꺼번에 생길 거구요. 그리고 숙박을 하는 숙박료는 계산도 않은 거잖아요? 생각보다 금방 숫자를 채울지도 몰라요.”
장기린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휘연이 지금 한 말은 누가 봐도 위로에 불과하다.
“평범한 생활이란 거…… 쉬운 게 아니었구나.”
오히려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더 쉬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사를 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자만 면하자는 게, 저렇게 힘들 줄이야!
한 달에 삼천오백 그릇.
하루에 백열 그릇 정도.
말이 쉽지, 하루에 손님 한두 사람 오는 것도 용하다 싶은 이곳에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숫자이지 않은가.
“그럼…… 너는 월봉을 못 받게 될지도 몰라.”
“할 수 없죠. 제가 장사를 잘되게 만들지 못한 거니까요.”
“…….”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장사가 잘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모르셔서 그렇지, 다른 커다란 객잔이 만들어 내는 순수익의 일 할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에요!”
휘연은 쾌활하게 말한 뒤, 객잔 안이 환해지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미 객주님께 평생 갚아도 모자란 은혜를 입었어요. 홍화루에 팔려 갈 뻔한 걸 구해 주셨잖아요?”
“…….”
“그러니, 그런 제가 장사가 안 되는데 월봉까지 받는 건 너무 부담이 돼요. 그냥 순수익의 일 할을 받는 걸로 해 주세요. 잘되면, 그땐 정말로 큰돈을 주시면 되잖아요?”
“……만약, 계속해서 잘 안 되면?”
“할 수 없죠, 뭐. 객주님 옆에 꼭 붙어 있어야지. 설마, 저를 버리진 않으실 거죠?”
애교스런 목소리를 듣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객잔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책임지고, 잘살게 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장기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와아, 그건 허락인 거죠?”
“그래. 앞으로 순이익의 일 할은 너에게 주는 걸로 하겠어.”
“네. 저도 그럼 더 열심히 할게요.”
휘연은 기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비워진 찻잔에 다시금 찻물을 따라 주었다.
드르륵.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볼게요. 장부 정리할 게 있어서요.”
그러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휘연은 빙긋 웃은 뒤 사뿐사뿐 별채 쪽으로 멀어졌다.
장기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생활…….”
처음엔 마냥 좋게만 생각했던 그 말이, 이젠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평범한 삶이라는 무게.
장사가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그리고 그를 따르는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으음, 생각할 틈을 안 주는군.”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장기린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객잔 문을 열고 나가서 마치 문을 지키듯이 제자리에 버티고 섰다.
시끌벅적한 항주의 밤공기 속에 그의 앞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마치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린 대머리들이었는데, 세 사람이 품자(品字)로 버티고 선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장기린은 그들 세 사람의 허리춤에 매달린 박도(朴刀)를 보고, 그 뒤쪽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듯 넓게 버티고 선 스무 명가량의 장정들을 쳐다보았다.
“노골적이군.”
장기린은 높임말을 쓰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들. 특히 대머리 삼 형제가 뿜어내는 살기는 노골적으로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장기린?”
“……나를 아나?”
“너를 죽이러 왔다.”
초원을 질주하는 늑대처럼, 세 개의 그림자가 곧장 눈앞으로 짓쳐 들어왔다.
삼각형을 그리듯 교묘하게 이어진 투로. 바람이 날카롭게 갈라지고, 어느새 뽑아 든 세 개의 박도가 각자 치명적인 요혈을 노렸다.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
오직 문답무용으로 날아오는 살기 어린 공격들.
그 공격들이 몸에 닿기 직전, 장기린의 입이 열렸다.
“실수한 것 같은데.”
그리고, 그의 몸이 움직였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