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章 ― 소면풍운(素面風雲)
“뭐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독두삼살의 일이 있은 뒤, 꽤나 빈번하게 풍운객잔을 찾아오는 철우는, 임가촌에서 있었던 일을 장기린이 이야기하자마자 안색이 변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자식들, 원래 치사한 놈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정말 너무하는군. 임가촌을 장악하려 하다니……!”
“임가촌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오?”
“물론! 이곳 금선로에서 사용되는 가구나 목재 물품들은 다 그곳에서 나온단 말이지. 그러니 임가촌이 장악당하면 우린 당장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야.”
철우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면서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다음날, 장기린은 임가촌의 목장(木匠)인 임 목장의 방문을 받았다.
“은공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임 목장은 풍운객잔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장기린은 그런 그를 재빨리 일으켜 세웠다.
“나도 우리 일을 위해서 도와준 것이오. 이럴 필요는 없소.”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임가촌이 무사했습니다. 앞으로 은공으로 모시겠습니다.”
“으음…….”
장기린은 불편한 심정을 담아 신음을 흘렸다.
딱히 그들을 돕기 위해 한 일이 아니었기에 이런 과례를 받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옆에 있던 휘연이 앞으로 나서서 임 목장에게 말을 걸었다.
“일은 잘 해결이 된 건가요?”
“아아, 그렇소. 잘 해결이 되었소. 청월루의 철우가 와 준 덕분에 그들은 당황한 얼굴로 철목만 챙겨서 얼른 돌아갔소. 다른 이야기는 아예 없었던 일처럼 말도 꺼내지 않더이다.
“호호, 잘됐네요.”
“다, 은공 덕분이오.”
다시금 날아오는 뜨거운 시선.
장기린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럼, 여기 휘연이 부탁했던 일을 해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동생인 포연과 그 외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목공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최고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최고로 할 필요까지는…….”
“하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희 임가촌의 목수들은 대륙 제일의 목수라는 자부심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시 활기를 되찾은 임 목장은 중년의 나이답지 않게 패기가 넘치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감 있게 웃으며 최고를 만들고 말겠다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평범한 게 좋은 건데…….’
남들 눈에 너무 튀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겠다고 했던 계획이 점점 망가져 간다.
장기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소. 그럼 보수는 얼마나 주면 되겠소?”
“……예? 보수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임 목장은 얼굴 한가득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보수는 필요 없습니다.”
“필요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은공 덕분에 살아났고, 임가촌이 청풍객잔 놈들의 노예가 되지 않았는데 보수를 받는다니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과 이건 다른 거요.”
“저에겐 같습니다.”
장인답게 완고한 고집을 세우는 임 목장.
하지만 이 부분은 장기린도 물러설 수 없다.
“임 목장과 인연을 맺기 위해 한 일은 나의 결정이었소. 그것과 정당한 일의 대가를 보수로 주는 것은 절대로 다른 일이오.”
“…….”
“그러니, 임 목장이 일을 해 주는 만큼 그 대가를 꼭 지불하겠소.”
그것은 장기린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신념 중의 하나다.
정당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 만약 그 신념이 없었다면 과거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휘연에게도 보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으음…….”
난감한 얼굴로 신음을 흘리던 임 목장.
그도 고집스런 성격을 가진 만큼 장기린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란 것을 직감한 것이다.
“아……!”
그런데 그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밝아진 얼굴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에 대한 보수로, 은자 열다섯 냥을 받겠습니다.”
“지난번에 서른 냥을 주기로 하지 않았소?”
“그건 할 일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번 일은 그 돈이면 충분합니다.”
“으음…….”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뭔가 개운하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장기린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임 목장은 갑자기 씩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음식도 합니까?”
그 말에 답한 것은 옆에 서 있던 아칠과 아팔이었다.
“물론이죠―!”
“저희 숙수님 솜씨가 얼마나 좋은데요? 한 번 드셔 본 분들은 매번 극찬을 하시면서 꼭 다시 오겠다고 하고 가신다니까요?”
아칠과 아팔의 목소리엔 자부심마저 담겨 있었다.
임 목장은 잘되었다는 듯이 박수를 ‘짝!’ 하고 치며 말했다.
“잘됐군요. 안 그래도 우리 애들이랑 저랑 배고파서 혼났습니다. 어이―! 너희도 들어와라!”
임 목장이 밖으로 소리치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목공들 십여 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갑작스레 십여 명의 손님이 들어오자, 안 그래도 좁은 편인 풍운객잔은 꽉 차서 터질 것처럼 보였다.
“오늘, 내가 산다! 음식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우오오―!”
“임 사부가 한턱내신단다! 배 터지게 먹어 보자!”
목공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임 목장은 놀라서 주방 밖으로 뛰어나온 운찬과 이런저런 상의를 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런……!”
이쯤 되면 임 목장의 생각을 모를 수가 없다.
그는 그에게 받은 보수를 한 푼도 가지지 않을 생각인 것이다. 음식을 사 먹든 어쨌든, 그 돈을 고스란히 풍운객잔에 돌려주겠다는 심보였다.
‘막아야…….’
앞으로 나서려는데, 그의 소매를 꾹 잡아당기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었다.
“객주님, 그냥 두세요. 저분도 고집스러워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정당한 대가는…….”
“저분은 이미 정당한 대가를 받았어요.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건 객주님이죠. 임 목장님 입장에선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 거라고요.”
“……!”
휘연은 초롱초롱한 눈을 치켜뜨며 우매한 이쪽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장기린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따져 보면 이번엔 그가 몸을 움직여 일을 해결했다. 정당한 보수를 받아야 하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저분도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객주님도 보수를 ‘줬다’는 걸로 만족하시고,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그냥 두세요.”
“그런……가?”
“네! 그런 거예요.”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말하는 휘연이 너무나 빛나 보인다.
아직 세상살이에 어설픈 장기린.
그런 그에게 이렇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존재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햇살처럼 배시시 웃는 휘연.
장기린은 그런 그녀에게 마주 웃어 준 뒤, 주방에 있을 운찬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운찬! 재료비 아끼지 말고 최대한 많이 만들어라! 있는 거 다 써! 양을 듬뿍 담아!”
“예에?!”
놀라는 운찬의 외침은 흘려들으며, 임 목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씨익.
임 목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짙어진다.
마치 ‘전군돌격!’을 외치는 장수의 미소처럼, 패기만만한 웃음을 지은 임 목장이 목공들에게 외쳤다.
“오늘 두 발로 걸어서 나갈 수 있는 놈은 임가촌 사람이 아니다! 미친 듯이 먹어! 음식값 걱정은 하지 말고, 입에 넣을 수 있는 건 모조리 구겨 넣어라! 알았나! 최대한 음식을 많이 시키는 거다! 숨도 못 쉴 만큼 먹어라!”
잠시 후 터져 나오는 환호성.
“우오오―!”
임 목장과 장기린은 전격이 튀어 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며 위풍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각자의 병사들을 진군시킨 장수의 얼굴.
옆에 있던 휘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고 있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무리 그 뜻이 좋다고 한들, 꾀를 부려 이쪽의 계획을 망치는데 순순히 당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피해 액수(?)를 얼마만큼 줄일 수 있을 것인가.
반면, 저쪽은 피해 액수를 얼마만큼 늘릴 수 있을 것인가.
승부다.
지금 이 순간, 승리와 패배가 교차한다.
“남자들이란…….”
어딘가 한심하다는 듯한 한숨과 한탄이 들려왔으나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장기린과 임 목장은 서로를 보며 웃을 뿐이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맛이 있을 수 있지……!”
굶주림을 참으며 기다리고 있던 목공들에게 처음으로 나온 것은, 다른 곳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흔하디흔한 음식, 소면.
그 평범한 모습에 내심 실망을 숨기는 것도 잠시, 그들은 소면을 한 젓가락 입에 집어넣자마자 입안을 강타하는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담백하면서도 진한 풍미를 가진 뽀얀 국물. 적당하게 삶겨진 청경채와 굵직한 대파. 먹음직스럽게 돌돌 말려 있는 소면 위로, 고명처럼 얹어져 있는 쭉쭉 찢어 놓은 닭고기.
그 겉모습은 다른 소면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건만,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와 입안에 넣자마자 면이 사르르 녹아 버리는 듯한 환상적인 맛은 지금껏 삼류 노점 음식에만 익숙해져 있던 목공들에게 일대 문화적 충격을 주고 있었다.
재료만 같으면 뭐하는가?
이게 바로 솜씨라는 것이다.
그들은 초일류 숙수의 능력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대, 대단해!”
“진한 국물, 쫄깃한 면발, 입안을 사로잡는 감칠맛까지……!”
“지금까지 내가 먹은 건 뭐였던 거지? 그건 소면이 아니었어. 아니, 이것에 비하면 음식조차 아니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간 무지했던 자신에게 반성을 하는 사람들이 절반.
“맛있다……! 정말 맛있어!”
“모자라……. 한참 모자라. 심지어 파조차 남기는 게 아깝다……! 이건 새로운 세상이야. 신천지(新天地)다!”
“난 앞으로 이곳에서만 밥을 먹겠어! 맹세하지. 내 월봉의 절반은 앞으로 풍운객잔의 식당을 위해 쓰고 말 테다!”
“나도!”
“나도 그렇게 하겠어!”
그리고 신천지에 매료되어 앞으로의 다짐을 하는 것이 절반.
“어이,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그러는 거냐?”
그때까지도 장기린과 장수로서의 눈싸움을 벌이던 임 목장은 그런 목공들의 반응에 당혹감마저 느끼며 물었다.
그가 아는 목공들은 이런 식으로 부끄러울 만큼 솔직하게 감상을 내뱉는 놈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임 사부! 어서 드셔 보십시오!”
“형님! 빨리 안 드시면 후회하십니다! 아니, 안 드시면 제가 먹어 버릴 겁니다!”
‘좀 더, 좀 더!’를 요구하는 아귀 같은 손놀림을 피하며, 임 목장은 재빨리 자기 몫으로 나온 소면을 한 젓가락 입에 집어넣어 보았다.
“……!!”
그리고, 말을 잃게 만드는 신천지의 축복을 온몸으로 영접했다.
“마, 맛있군……!”
임 목장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빈약한 어휘력에 절망했다.
이 ‘음식’은 맛있다는 말 한마디로는 그 감동의 백만분지 일조차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의 행복감을 이끌어 내는 맛.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고향 음식의 향수마저 자극하는 초감각적인 능력!
임 목장은 그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시선들이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말로는 이 이상 표현할 수 없다.
행동으로.
오직, 행동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다.
후루룩― 후루룩―.
“…….”
쿵.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냈다.
건더기 하나 남기지 않고, 국물 한 방울 없이 깨끗하게 비워 버린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워 버린 그릇을 향해 경건하게 외친다.
“이것은 신천지. 신천지 소면이다!”
마치 천자를 옹립하는 듯한 신성한 외침.
잠시간의 침묵 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 신천지! 신천지!”
“신천지 소면이 탄생했다―!”
“우리에게 한 그릇을 더! 신천지 소면을 더 먹고 싶다!”
그대로 놔두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거센 기세.
그런 그들을 달래듯 주방에선 쉴 틈 없이 소면 그릇이 배달되어 나오고 있었다.
아칠, 아팔은 물론, 휘연과 장기린마저 배달에 동참했다.
목공들은 뱃속에 아귀라도 들어간 것처럼 먹어 대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요리를 해서 내보내도 추가 주문은 그만큼 더 빨리 돌아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요리는 엄두도 못 낸다. 아무리 운찬이 손이 빨라도 이만한 양을 요리하는 한 한계가 있는 법.
때문에 가능한 요리는 오직 소면 하나뿐인데도, 목공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시키고 또 시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간 소면이 사십 그릇 이상.
벌써 일 인당 먹은 그릇 수가 세 그릇을 넘어가고 있었다.
“더! 더! 더!”
“신천지! 신천지! 우오오―!”
“모자랍니다! 모자라요! 나에게 신천지의 은혜르을……!”
그런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마침내 인체의 한계에 부딪친 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간다.
그건 그들의 욕망과는 상관이 없는 것.
하늘이 정해 준 그릇의 크기.
그들은 자신들의 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장렬하게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하다. 더 먹을 수 있었는데…….”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면발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그들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타깝게도 한 번 침몰한 그들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미 그들의 위장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고 결산의 순간이 왔을 때, 휘연은 그 짧은 순간에 팔아 치운 그릇의 숫자를 세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흔 그릇……! 세상에, 열다섯 명이서 아흔 그릇이라니……. 일 인당 평균 여섯 그릇……?!”
말도 안 되는 숫자다. 아무리 소면이 그리 양이 많은 음식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 사람당 여섯 그릇이라니……. 인간의 배에 그렇게나 많은 양을 집어넣을 수 있었던가?
“끄응, 그래서, 가격은 얼마나 나왔소?”
임 목장은 거동하기 힘든 몸놀림으로 자신의 배를 부둥켜안은 채 숨을 가쁘게 쉬며 물었다.
“소면 한 그릇에 동전 열 문이니까, 아흔 그릇이면 동전 구백 문이네요.”
차분한 휘연의 대답에, 임 목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외쳤다.
“뭐어―! 동전 구백 문?!”
휘연이 겁먹은 토끼처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네, 저기, 왜 그러시죠?”
“싸! 너무 싸잖소!”
“에……?”
“동전 구백 문이라니! 애들이 그렇게 처먹는 것을 보고, 나는 최소한 은자 한두 냥은 예상했건만……!”
임 목장의 말에, 식탁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해 있던 목공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구백 문―? 그, 그거밖에 안 나왔어요?”
“대단해, 이곳. 굉장하다.”
“신천지 소면 한 그릇에 동전 열 문밖에 안 한대! 싸고 맛있다. 어째서 이런 곳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지?”
웅성거리는 그들에게 아칠과 아팔이 다가갔다.
“헤헤. 그건 다 이유가 있어요.”
“응? 무슨 이유?”
“우리 객주님께서 이곳을 인수하신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지금의 풍운객잔은 여러분이 아시던 풍운객잔과 전혀 다를 거예요!”
“오오! 그런가?!”
“네! 그럼요. 그러니 자주 오세요. 가끔 잘 곳이 필요할 때도 오시구요. 오늘 푹신푹신한 오리털 이불과 보료를 새로 구입해 왔답니다. 아마 거기에 누우시면 잠든다고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버리실걸요?”
후식으로 따끈한 차를 한 잔씩 건네주며 아칠과 아팔은 은근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꼬마 쌍둥이는 타고난 점소이였다. 지금도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광고성 정보를 주변에 흘려 넣은 것이다.
“나중에 내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와야겠어.”
“나도! 이번엔 신천지 소면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도전해 봐야지.”
“그래, 가격도 싸잖아? 매일 와도 별로 부담이 안 돼.”
식탁에 널브러진 목공들이 두런두런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은 작은 씨앗. 하지만 그 작은 씨앗이 나중에 어떤 꽃을 피울지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으어……!”
그때, 배부르고 나른한 공기가 감도는 공간에 한 사람이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나타났다.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초췌한 안색의 눈빛이 풀린 청년.
그는 야밤에 배회하는 유령처럼 비틀비틀 걸어오더니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으아―! 한계―!”
운찬은 때려죽여도 더 이상은 일을 못 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축 늘어져 버렸다.
“더 이상 팔이 안 움직여요……. 손가락도 안 움직여……. 재료도 남아 있지 않아요…….”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태워 버린 청년이 그곳에 있다.
빈말이 아니다. 운찬의 손과 다리는 이제 더 이상 힘을 쓰기가 힘든 듯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하긴, 제일 고생했지. 그런데 요리를 정말로 좋아하긴 하는구나. 그 지경이 돼서도 웃고 있다니.’
분명 온몸에 쥐가 난 것처럼 고통스러울 텐데도,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구십 인분의 소면을 즉흥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것도 주방 보조도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면서 말이다.
피식 웃은 장기린은 멍하니 앉아 있는 운찬에게로 다가가 축 늘어진 어깨에 손을 얹었다.
멍하니 있던 운찬은 뭔가 뜨거운 것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었다.
“으악!!”
“진정해. 가만히 있어라.”
“혀, 형님?”
“고생했다.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거니 몸에서 힘을 빼.”
운찬은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형님께……. 그, 그냥 두세요. 괜찮습니다. 금방 나을 거예요.”
“이대로 두면 칠 일은 간다. 가만히 있어.”
“혀, 형니……이이임…….”
이럴 때를 대비해 운화에게 배워 두었던 피로 회복법.
손가락 두 개를 세워서 급소를 가격하는 그 방법을 쓰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운찬은 바람 빠진 돼지 오줌보처럼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버렸다.
어깨 쪽의 급소.
견정혈이라고 했던가?
그 부분을 삼 푼의 힘을 실어 누르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혀엉니이임…… 이게 무으스으은……?”
운찬은 노곤하게 녹아 버린 목소리로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물어 왔다.
“네가 힘든 것 안다. 주방 보조도 없고, 그렇다고 하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겠지. 조금만 기다려. 곧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으, 아, 아뇨오…… 전 괘, 괜찮……. 우, 아! 으우!”
장기린의 손가락이 어깨와 등을 왕복할 때마다 운찬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수고했어. 오늘 고생 많았다.”
어깨와 등허리 쪽 열여덟 개의 중요 급소.
운화에게 듣기론 그곳을 순차적으로 두드려 주면 온몸의 혈류량이 빨라지면서 뭉친 근육이 쉽게 풀어져 버린다고 했다.
‘추구…… 아니, 추궁……? 추궁혈? 그런 이름이었지, 아마?’
몸으로 하는 것은 한 번 보면 곧장 외울 수 있는데, 희한하게 그에 대한 이름 같은 것은 외우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지금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뻣뻣하게 굳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운찬은 이제 몸동작이 한결 안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혈색도 돌아왔고, 멍하니 풀려 있던 눈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형님……!”
운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한 얼굴로 이쪽을 응시했다. 치하를 들은 데다 안마까지 받은 것이 기쁜지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괜찮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요. 형님 기대에 부흥하려면 더 수행해야 합니다. 사실 이번에도, 형님께 ‘반 박자’ 빨라지는 법을 배워 두지 않았더라면 못 해낼 뻔했어요.”
“그래? 도움이 좀 됐나?”
“하하, 예! 그럼요. 근데, 아직은 박자를 빠르게 하면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요. …… 죽을 뻔했다구요.”
“계속 연습하다 보면 그게 일상적으로 변한다. 좀 더 정진해라.”
그 말에 운찬은 기합이 팍 들어간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예! 숙수 강운찬! 더욱더 정진할 겁니다!”
힘차게 선언하는 운찬.
그 말을 들은 건지 객석에 앉아 있던 목공들이 운찬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오오! 저 청년이 숙수인가?”
“뭐야? 생각보다 훨씬 젊잖아! 대단하군. 천재 숙수다 이건가?”
“신천지 숙수님! 소면 만드는 비법 좀 가르쳐 줘요! 숙수님 발끝도 못 따라가는 마누라한테 좀 가르쳐 주게.”
넉살 좋은 목공 한 명의 말에 주변에서 ‘우하하!’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이, 이가(李哥)야. 너 그러다가 제수씨가 듣는다? 그랬다가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래?”
“에잇. 들을 테면 들으라지. 집에만 들어가면 밥맛이 없어! 그 여편네는 마음 상해서 공부 좀 해야 한다고!”
“뭐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에잇. 너희는 몰라. 집에 가면 내가 밥을 하고 싶어진다고. 일하고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밥을 해야 하는 슬픈 마음을 너희가 알아? 신천지 숙수님! 비법 좀 가르쳐 달라니까요!”
목공들에게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뭐가 뭔지 모를 만큼 섞여 있는 말들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분명한 호의와 요리에 대한 감탄이었다.
운찬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신천지…… 숙수?”
“네 소면 맛에 다들 반한 모양이야.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고 해서 신천지 소면이다. 그걸 만든 너는 신천지 숙수고.”
“아……!”
“좋으냐?”
“예, 예! 좋아요. 정말…… 좋네요.”
운찬은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소매로 눈가를 훔치더니, “정진! 정진!”이라고 나직하게 외치며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짝짝!’ 때렸다.
그리고는 장기린에게 눈인사를 한 뒤,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하하! 손님들! 제가 차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오오! 신천지 숙수님!”
“맛은 어떠셨어요? 거슬리는 점은 없었습니까?”
“맛있었어. 거슬리는 것 따윈 없었다고.”
“어이쿠, 감사합니다. 그럼, 고명이나 야채는요? 국수 위에서 알맞게 잘 익어 있던가요?”
“응? 그건…….”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다음번에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리죠!”
운찬은 이런저런 것들을 물으며 넉살 좋게 목공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뿌듯한 모습이다.
운찬은 저런 식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현재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
장기린은 조금 감탄하면서 식구들의 동정을 살핀다.
아칠과 아팔은 목공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뒷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휘연은 납작한 장부를 펼쳐 놓은 채 임 목장과 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때때로 손가락으로 정면의 벽을 가리키는 것을 보니 보수공사에 관한 일인 것 같았다.
운찬은 숙수로서의 일을.
아칠과 아팔은 점소이의 일을.
휘연은 침모 겸 총관으로서의 일을.
모두가 너무나도 자신의 일을 잘해 주고 있다.
‘그럼, 나는?’
문득 생각한다.
자신은 이곳에서 어떤 존재인가?
‘풍운객잔의 객주. 진구는 객주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리라고 했지만…… 편하기만 해선 안 돼. 분명 객주로서 해야 할 일도 있다.’
처음 군에서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살아 보면 살아 볼수록, 방식은 달라도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은 군대에서 살아가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객주는 객잔의 주인.
주인이라는 것은 책임자. 책임자라는 것은 지휘자.
지휘자로서 그가 할 일은…….
‘부하. 아니, 식구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지켜 주는 것.’
울컥!
가슴속이 꿈틀하면서 의욕이 샘솟았다.
‘운찬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분명 혼자서 주방을 다 맡아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 아칠과 아팔이 주방 일을 도와주면 좋겠지만…… 이미 하인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으니, 그건 역부족이겠지. ……잠깐, 즉 하인을 구하면 아칠과 아팔이 편해지고, 아칠과 아팔이 편해지면 주방 일을 도울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건가?’
깨달음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이거다. 바로 이게 정답이었어.’
자연스레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장기린은 이제 슬슬 파장 분위기가 감도는 목공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하인’을 구하겠다고.
☆ ☆ ☆
다음날, 항주의 기준으로는 꽤나 이른 시각부터 철우가 찾아왔다. 한 손엔 그가 즐겨 마시는 소홍주 병을 들고, 한 손엔 종이로 싸 놓은 구운 오리를 든 채로.
그는 남자답게 각진 얼굴 위로 ‘씩’ 친근한 웃음을 지었다.
“어이, 객잔 주인! 한잔할 수 있나?”
사실 며칠 안 되는 시간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친분을 쌓기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장부는 하룻밤 술을 같이 마시면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철우와는 빈말로라도 친구라고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소?”
그래서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제 마음먹은 것 ―하인을 구해야 한다는― 때문에 밖에 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 앞으로 풍운객잔이 금선로에서 지내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
“어때? 이 정도면 시간을 내줄 만한가?”
철우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이었다.
어딘가 방만하면서, 자유롭고, 나른한 기분도 느껴지는 듯한 거구의 사내.
장기린은 결국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호오, 이것 참, 허락받아서 영광이구먼.”
“이쪽으로 오시오.”
농담을 하듯 비꼬는 철우를 데리고 뒤뜰 쪽으로 나갔다.
휘연은 목자재를 잔뜩 짊어지고 온 임 목장과 대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칠과 아팔은 식탁 정리. 운찬은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는 중이었다.
끼이익―.
“흐음, 생각보다 뒤뜰이 괜찮군. 난 앞에서 봤을 때는 다 쓰러져 가는 흉갓집을 생각했었는데.”
철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뒤뜰을 둘러보며 태연하게 상당히 실례되는 말을 내뱉었다.
장기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흉갓집?”
“그렇네.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흉갓집이지. 솔직히 흉갓집도 상당히 순화한 표현이야.”
“…….”
“하하, 기분 나빴다면 이해해 달라고. 내가 원래 할 말을 쌓아 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야.”
철우는 대충 뒤뜰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걸어가더니 오른손에 들고 온 오리구이를 털썩 펼쳐 놓았다. 가슴은 풀어헤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은 꼴이 흡사 제집에 온 듯하다.
장기린은 그런 그를 서늘한 눈으로 응시하다가, 묵묵히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뭐하나? 내가 술과 안주를 준비해 왔으면, 자넨 접시와 저금을 준비해야지?”
“…….”
“이것 참, 싸늘하구먼. 혹시 아까 흉갓집 어쩌고 한 말 때문에 아직도 꽁해 있는 건가?”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꽁해 있지 않소.”
“그러면?”
“평소와 상당히 달라 보이는 당신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뿐이지.”
장기린의 차가운 대꾸에 철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상당히 순박해 보이지만, 장기린은 그런 모습에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최근 들어 상당히 호인처럼 보여지곤 있지만, 사실 장기린은 적과 아군의 구분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적은 냉정하게.
아군, 내 가족은 따뜻하게.
그런데 철우는 그 경계선 즈음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청월루의 파락호 두목으로서, 또는 과거에 운찬을 죽일 뻔한 악연의 한 조각으로서 보면 그는 명백한 적.
하지만 청풍객잔에서 보낸 독두삼살이나, 이번에 임가촌의 일 등등에서 도와준 것으로 봐선 아군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즉 아군이면서 적, 적이면서 아군.
게다가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것은, 그와 친분을 맺고 싶다기보다는 이쪽의 동태를 살피러 온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 장기린이 그를 어떻게 친구로 대할 수 있겠는가.
“자자, 이해하네. 그렇게 살벌한 얼굴 할 것 없어. 솔직히 나도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면서 넉살 좋게 말을 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우니까.”
철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술병을 열어 자신이 가져온 잔에 따랐다.
“지금 이 자리에, 나는 그냥 ‘철우’로서 왔네. 청월루의 철우도 아니고, 금선로의 철우도 아니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조직의 생각과 상관없이 스스로 왔다는 것 아니오?”
“맞아. 바로 그거야. 자, 그럼 앞에 앉아서 함께해 주게.”
철우는 자신이 마신 잔을 내려놓고 거기에 다시 술을 따라 장기린에게 내밀었다.
“자, 한잔하게.”
“…….”
탕.
장기린은 한 잔을 받아 마신 후, 호쾌하게 술잔을 내려놓고는 철우를 응시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망설임 가득한 눈빛. 그는 지금 분명 묻고 싶은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흐음.”
결국 장기린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물을 게 있으면 물어보시오.”
“……좋아. 그렇다면 물어보지. 자네, 어딘가 조직에 속해 있나?”
철우는 사양하지 않고 냉큼 질문을 던져 왔다.
장기린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지금은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소.”
“그럼, 예전엔 소속되어 있었다는 소리군.”
“…….”
“말하기 싫으면 묻지 않겠어.”
장기린이 입을 꾹 다물자, 철우는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없고?”
“그렇소.”
“그렇다면 객잔을 산 것은, 진심으로 객잔 주인 노릇을 해 보고 싶어서인가?”
“그렇소만……?”
“허어, 그렇다면 왜 하필 이런 곳을 사서 키우려고 하는 거지? 객잔이라면 다른 곳도 많았을 텐데?”
장기린의 행동이 딱 멎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목소리가 약해졌다.
“……원래 아는 동생이 이곳을 사려고 하고 있었소.”
“……?”
“예전부터 평범한 생활은 이곳에서 하는 게 최고일 거라더군. 그 말을 믿고 시험 삼아 온 것인데…… 생각과는 달랐지만, 나는 지금 만족하고 있소.”
철우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래도 그치지 않고 물었다.
“단지 그것뿐인가?”
“……뭐가 더 필요하오?”
장기린은 ‘그밖에 필요한 게 뭐가 있는가’라는 심정을 담아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철우는 갑자기 허탈하게 웃었다.
“푸핫! 하긴. 더 필요한 건 아니지! 내가 잘못 물었네. 대답하지 말아.”
장기린이 의아해하자, 철우의 입가에 웃음기가 짙어졌다.
그는 여전히 건들거리는 몸짓으로, 하지만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장기린을 바라봤다.
“앞으로 걱정 말게. 자네에게 숨겨진 배후가 있지 않은 한, 우리 청월루는 풍운객잔의 든든한 우방이 되어 줄 테니까. 다른 것은 일절 걱정하지 말고, 장사만 열심히 해도 좋아.”
“…….”
“그나저나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재미있군. 내가 아직 자네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 알고 있나?”
“그랬소?”
“자네가 ‘서로 이름을 알 사이는 아닌 것 같소만.’이라고 말한 뒤로 난 다시는 묻지 않았었지.”
장기린은 잠시 고민하다 순순히 이야기해 주었다.
“장기린.”
“장……기린?”
“그렇소. 그게 내 이름이오.”
“……!!”
철우는 보기보다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그는 장기린이라는 이름을 듯고,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순식간에 굳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관리했다.
“흠흠, 그것참, 특이한 이름이군.”
“…….”
“좋아, 기린. 그럼 나도 자네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한 가지 알려 주지. 요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되도록 몸을 사리고, 장사 말고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끼어들지도 않도록 하게. 알겠나?”
철우는 진지한 얼굴로 충고하듯 그렇게 말했다.
“알겠소.”
그렇게까지 말해 주는데, 쌀쌀맞게 대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오리구이는 바닥이 난 상황.
장기린은 주방에서 뭐라도 좀 내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본채로 향했다.
철컥.
“음?”
그런데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뭔가가 달려드는 느낌.
힘차게 달리는 마차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듯한.
그런 식의 불안감.
‘뭐지?’
당황해서 잠깐 굳어 있는 사이에 문이 벌컥 열리고, 달려온 ‘무언가’가 있는 힘껏 그의 몸에 부딪쳐 왔다.
빠악!
“음?”
장기린은 시선을 내려 그의 가슴에 부딪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