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16화 (16/686)

第十五章 ― 인연지사(因緣之事)

방태풍은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의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평소에 입던 하늘하늘한 순백색의 비단이 아니라 푸른빛 비단에 황금색 구름이 수놓아진 화려한 예복 같은 것을 입었다. 허리엔 값비싼 진(眞) 옥패를 요대로 찼고, 등 뒤엔 재복을 상징하는 구(九) 자와 복(福) 자의 금패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방태풍은 그 금패들이 서로 부딪쳐서 짤랑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마치 자기 자신이 칭찬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옷차림이, 상대에게 주는 인상을 변화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소에 안 입던 옷을 굳이 입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오늘만큼은 평소보다 훨씬 화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하얀 문사건을 몇 번이고 머리 위에 고쳐맨 것도 그 때문이고, 최대한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 동경을 몇 번씩이나 들여다보며 표정을 연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흠. 크흠.!”

방태풍은 조용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복도 저편에서 그가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 참, 곤란합니다. 매번 입궁(入宮)할 때마다 목이 날아갈 것을 걱정해야 하니……. 쯧쯧. 세상이 너무 변했어요. 이젠 뭔가 실적을 쌓지 못하면 개국공신이라도 가차 없이 궁에서 쫓겨나는 세상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오늘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장군께는 제가 찬찬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모시고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요. 이곳이 다른 건 몰라도…… 비밀 이야기를 나누기엔 정말로 좋은 곳입니다.”

저벅. 저벅.

드르륵―

“어서 오십시오! 저희 청풍객잔에 친히 왕림해 주시니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방태풍의 낭랑한 외침 뒤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네 명의 특급 기녀들이 “영광입니다!”를 재창하고 있었다.

방태풍은 허리를 굽힌 채로 슬쩍 눈알만 움직여, 앞에 선 두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왼쪽에 서 있는 둥글둥글한 체형의 중년인이 바로 항주 지부 대인 문표(汶票)다. 방태풍 못지않은 투실투실한 덕망 있는 몸매에, 그가 가진 욕심만큼이나 두둑한 볼살, 그리고 생쥐처럼 가느다란 수염을 기른 사내였다. 그는 청풍객잔의 단골로서, 방태풍이 가장 애지중지 모셔야 하는 고위층 관료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반면, 오른쪽에 있는 사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떡 벌어진 어깨를 보아하니 문신(文臣)은 아니고 무관(武官) 출신인 것 같았는데, 어딘가 표정이 나른해 보이는 것이 세상만사를 달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변란이라도 겪었나?’

무관의 나이는 겨우 삼십 대 중반 정도.

한창 패기가 넘칠 나이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큰일이군. 문 대인이 혼자 있어야 말을 꺼내 볼 텐데. 이렇게 둘이 있으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낸다?’

방태풍은 고개를 숙인 채로, 술자리 중에 어떻게 문 대인과 단둘이 되는 기회를 만들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하! 방 객주! 이렇게 환영해 주니, 기쁘구만그래.”

문표는 방태풍이 보여 주는 환대가 기쁜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방태풍은 마주 웃어 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섭섭합니다. 문 대인.”

“응? 그게 무슨 소린가?”

“문 대인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기쁜 일이지요. 아직도 제 마음을 그리 몰라주시니, 섭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그렇군! 그래! 미안하네, 내가 자네 마음을 몰라줘서.”

문표는 두툼한 손으로 방태풍의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방태풍은 아픔에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겨우겨우 관리하며, 이번엔 옆에 서 있던 무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계신, 장군께선 어떤 분이신지……?”

슬쩍 묻자, 옆에 있던 문표의 눈이 동그래진다.

“허어! 지금은 예복(禮服)을 입고 있는데도 한눈에 무관이라는 걸 알아보는구먼. 역시 자네의 눈은 날카로워.”

“어이쿠. 척 보기에 느껴지는 위엄이 너무 뛰어나셔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장군님이 맞습니까?”

“그럼! 맞지. 내 소개하지. 여기 원 장군은, 명문 무가(武家)인 낙양 원가의 차남이자, 파강장군이란 직책을 가지셨으며, 지난달까지 북로전쟁에 종군하시며 몽고 놈들을 저 멀리 장성 너머로 몰아내신 주역이자, 차기 북(北)대장군 자리로 거의 확실시되고 계신 분일세.”

번쩍.

방태풍의 눈이 번뜩였다.

십만 이상의 병력을 지휘하에 둘 수 있으며, 한쪽 방면의 전쟁을 완전히 책임지는 대장군은, 명 황실 전체에 몇 명 안 되는 중책이지 않던가.

‘대물이었구나!’

그런 자리에 오를 사람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지부 대인과 동급, 아니 어쩌면 더 높은 대우로 모셔야 할 특급의 손님이었다.

“아이구! 제가 귀한 분을 몰라 뵈었었군요. 원 장군, 불초는 청풍객잔의 객주인 방태풍이라고 합니다.”

방태풍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자, 원 장군이라 불린 사내도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파강장군 원회(阮懷)라고 하오.”

원회는 포권을 끝내자마자 문표에게 말했다.

“문 대인, 저를 높여 주시는 것은 감사하나, 북로전쟁의 주역이라는 말은 너무나 과분한 표현이십니다. 몽고를 패퇴시킨 주역들은 따로 있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원회는 놀랍게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것 봐라……?’

방태풍의 눈가가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기껏 칭찬을 해 줬는 데도 지적으로 맞받아친다.

그 한마디로, 원회의 꼬장꼬장한 성격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커험, 물론 공손 대장군과 그 휘하 무장들의 업적이야 잘 알고 있지요. 하나, 보급과 진지방어를 완벽하게 해내신 원 장군의 업적도 적다고는 못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하니, 중앙의 대신들도 원 장군을 차기 대장군으로 거론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자자, 기분 좋게 왔으니 앉읍시다.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 청풍객잔이 자랑하는 풍류주(風流酒) 맛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방 객주, 풍류주 준비는 되어 있겠지?”

정계의 거물답게 능숙한 솜씨로 원회를 어르고 달랜 문표는 황금색 비단 방석 위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하하. 물론이지요! 최상급 풍류주로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방태풍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서 있던 기녀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원회는 할 말이 더 있는 듯했으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 여기에 있습니다, 대인. 그럼 풍류주부터 먼저 맛을 보시겠습니까?”

“좋아, 좋아. 그렇게 하겠네. 원 장군도 어서 앉으시지요?”

원회가 머뭇거리면서 자리에 앉자, 미인도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미색이 출중한 기녀 네 사람이 두 사람씩 짝지어서 문표와 원회의 옆으로 다가가 술을 따라 주었다.

쪼르륵―.

“상공, 제 잔을 받으셔요―.”

“장군님, 술 한잔 받으세요―.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풍채가 당당하실까?”

아름다운 기녀들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술을 따르며 달라붙자 대번에 원회의 얼굴이 긴장한 것처럼 굳어진다.

‘풋. 보자 보자하니까 점점……?’

방태풍은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참으며 잔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원회는 세상 물을 덜먹은 애송이였다.

혼자서 고고한 척, 고상한 척은 다하지만 사실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를 뿐인 어린놈.

“장군님, 아―.”

“크흠, 저기…….”

“어머나, 먹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헌앙하실까. 여기 제 술도 한 잔 받으셔요.”

“으음…….”

천하절색의 미녀들이 양쪽에서 보채자, 원회는 대번에 정신이 없는 것처럼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문표와 방태풍의 입가에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사냥당하기 직전의 먹이를 보는 듯한 냉혹함, 그리고 즐거움.

두 사람은 이미 원회를 어떤 식으로 구슬려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할지 계획을 다 세워 놓고 있었다.

“캬―. 역시, 이 풍류주의 맛은 변함이 없군!”

“마음에 들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쭉, 이 맛을 유지해 주시게. 그럼 내 다른 객잔엔 절대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이곳에 있을 테니.”

“어이쿠. 그 말씀을 위해서라도 풍류주의 품질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제가 직접 한 잔 올리겠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대인.”

“물론이네. 방 객주의 술을 받지 않으면 누구 술을 받을까!”

주거니 받거니.

원회가 기녀들의 교태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방태풍과 문표 두 사람은 서로를 올려 주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 장군.”

“……예? 말씀하십시오.”

기녀의 벌어진 앞섶을 보며 얼굴을 붉히던 원회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 말입니다. 북로전쟁에 친전을 하셨던 것을 너무나 그리워하셔서 문제입니다. 다시 한 번 원정을 가시겠다고 하시질 않나, 그때의 인물을 불러 달라고 하시질 않나…….”

“아…… 폐하께선 원래 타고난 무(武)를 지니신 분. 원래 전쟁터를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원회는 황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방종하지 못하고 똑바로 앉은 채 안색을 굳혔다.

“휴우, 그러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대명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친히 전쟁터로 나가시다뇨!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대신들의 심장이 철렁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분께서 움직이면 천하가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대국의 중심이 흔들려서야 아니 될 일. 그래서 필사적으로 말리긴 하는데…… 그렇게 말릴 때마다 폐하께서 언짢아하시니, 그날은 누가 나서서 폐하를 말리나 대신들 사이에서 목숨 걸고 내기가 진행될 정도라 이겁니다.”

문표는 “에잉―!”하고 못마땅한 목소리를 낸 뒤, 술잔을 들어 풍류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게다가 그, ‘적룡기마대주’라는 자는 또 뭡니까? 듣도 보도 못 한 직책의 자를 폐하께서 어찌나 찾으시는지……. 심지어 이번에 공손 대장군의 후임 자리를 그자에게 내리시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저희가 얼마나 식겁했는 줄 아십니까?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런 자리엔 우리 원 장군님 같은 분이 어울리지요. 천한 출신의 사람을 대장군의 직책에 올린다면 천하가 다 비웃을 일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원 장군?”

문표가 다시 한 번 불렀으나, 원회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마치 뭔가를 꾹 눌러 참는 것처럼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옆에서 원회를 놀리듯 교태를 부리던 기녀들도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원회는 씹어뱉듯이, 나직하게 말했다.

“장 대주…….”

빠득.

원회의 입에서 이빨을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 대인.”

“예, 원 장군.”

“혹시, 저와 대장군의 자리를 경합하고 있다는 사람이…… 그 적룡기마대주입니까?”

문표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아닙니다. 그자는 이미 전역해서 군에 남아 있지도 않은 자가 아닙니까? 폐하께서 언급하긴 하셨지만, 이번 논공행상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대신들 사이에서 논의조차 될 리가 없지요. 원 장군과 경합하는 상대는, 저 남쪽에서 왜구들을 소탕하던 황문시랑 구일석의 장자, 구장천입니다.”

“그렇……습니까?”

“허허,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적룡기마대주라는 자와 구원(舊怨)이 있으신가 보군요.”

“…….”

“그자가 어떤 자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문표의 눈동자에선 호기심이 번쩍이고 있었다.

황제가 친히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대장군이 될 원회가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그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걸물일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자는…….”

원회는 말을 하다 목이 타는지 술병을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악귀입니다.”

“악귀요……?”

“몽고 놈들이 부르는 말이지요. ‘붉은 악귀’. 전사하신 공손 대장군의 밑에서 활약했고, 이번에 차세대 쿠빌라이와 그 삼십만 기병을 소탕한 ‘진짜 주역’입니다.”

쿵.

술병을 내려놓는 원회의 눈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그자는, 괴물 같은 자입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황제 폐하의 눈에 들어 다시금 중용되어선 안 되는 인물입니다.”

원회의 목소리에선 일말의 공포심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나지막하면서 살벌한 목소리에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는다.

문표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허허, 그렇군요. 아! 방 객주. 안주가 너무 없는 것 같소. 그 왜, 지난번에 달달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시오? 대추에 찹쌀 경단을 넣은 것 말이오.”

“아……! 심태연(心太軟) 말씀이시군요. 당장 가지고 오라 이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겠소. 자자, 원 장군. 제가 직접 따라 드리겠습니다. 한잔 받으시지요.”

“아, 예.”

원회는 상념에서 벗어나 술잔을 받았고, 분위기는 다시금 화기애애하게 돌아갔다. 기녀들이 다시 교태를 부렸고, 딱딱하게 굳었던 원회의 얼굴엔 은은한 홍조가 떠올랐다.

쿵. 쿵. 쿵.

“장군! 장군!”

그렇게 서너 순배 정도 돌았을 때, 갑작스레 복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원회의 수하가 달려왔다.

원회는 마시던 술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급한 일입니다. 시중께서 장군을 급하게 찾으십니다.”

“뭐? 형님이……?”

원회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썼다.

현재 황실의 시중은 스스로 거세를 하고 들어간 그의 형 원찬이었다. 웬만해선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든 사이인데, 이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정말로 중요한 일일 것이 분명했다.

“문 대인.”

원회가 미안한 얼굴로 문표를 쳐다보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는 얼굴로 손을 저었다.

“아아, 아닙니다. 형님께서 중요한 일로 부르시는데 가 보셔야죠.”

“문 대인께서 해 주신 환대는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번엔 제가 초대를 한번 하지요.”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향해 짧은 포권을 나눴다.

그 후에 미련 없이 몸을 돌린 원회는 청풍객잔의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으음, 이거 김새는구먼. 원 장군 때문에 일부러 만든 자리거늘.”

문표는 원회가 사라지자, 방만하게 자리에 주저앉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가 눈썹을 사납게 찌푸리자 후덕해 보였던 인상은 어디로 가고 욕심 많고 사나운 멧돼지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문표에겐 안 된 일이나, 지금 이 일은 방태풍에겐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행운이었다.

안 그래도 문표에게 할 말이 있는데, 언제 기회를 잡나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았던가.

“문 대인, 이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뭔가?”

문표는 옆에 앉은 기녀들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건성으로 물었다.

“사업적인 이야기인데……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업?”

“한 달에 은자 천 냥이 움직이는 사업입니다.”

그 순간 문표의 눈빛이 바뀌었다.

“호오? 자세히 말해 보게.”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너희, 다들 잠시 나가 있거라.”

기녀들은 등을 보이지 않은 채 공손하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탁. 드르륵―.

청풍객잔이 자랑하는 이중문이 닫히고,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완전하게 밀봉되었다.

방태풍은 밀실 상태를 확실하게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대인, 제가 이 청풍객잔으로 금선로를 모두 통일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아아,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예. 그래서 저는 지속적으로 저희 청풍객잔의 분점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백로객잔을 흡수해서 청풍 이호점을 만들었고, 그곳의 매출은 근 일 년 만에 본점과 맞먹을 정도가 되었지요.”

“흐음, 그런가?”

“예. 그리고 드디어 삼호점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이때 까다로운 문제가 생겨 버린 겁니다.”

이야기가 이쯤 되었는데, 눈치 빠른 문표가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문표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탕!’하고 내리치며 물었다.

“어디야?”

“예?”

“어디가 문제기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냔 말일세.”

방태풍은 속으로 ‘과연 늙은 여우…….’라고 생각했다.

그가 상대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으로, 상대는 그를 꿰뚫어 본다.

문표 앞에선 잔머리를 굴려선 안 되었다.

“청월루입니다.”

“청월루? 으음, 골치 아프게 되었군. 거긴 형주학사 송도가 단골로 있는 곳인데.”

문표는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에서는, 인맥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문표의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

“이거, 도와주기 힘들겠구먼. 형주학사가 이끄는 유생들이 얼마던가? 그들과 척을 져서야 궁에서 살아가기 힘들 게야.”

슬쩍 발을 빼는 듯한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방태풍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이것 봐라. 벌써 흥정을 시작해?’

과연 늙은 여우였다. 문표는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며 상대의 반응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어이쿠. 문 대인도 참 겸손하십니다. 궁내에서 ‘문 승상’으로까지 불리시는 대신들의 실세께서 어찌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뭐어? 하하, 아니네. 아니야. 나도 예전 같지 않네.”

“종종 찾아오는 젊은 대신에게 다 들었습니다. 문 대인께서 안 계시면 정사 회의가 진행이 안 된다고 하던데요. 역시 문 대인이십니다. 그런 권세를 가지시고도 그렇게 겸손하시니, 어느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이것 참.”

두 사람의 말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뜻은 간단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엄살떨지 마라.’

‘아니,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조건을 더 읊어 봐라.’

‘이 이상은 못 준다. 연극하지 말고 그냥 받아라.’

‘허허. 이것 참 곤란하군.’

두 사람은 잠시 입을 다물고, 두 눈에서 번개가 튀는 것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주고받았다.

그 누구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전.

하지만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방태풍이었다.

“대인, 다행스럽게도, 이번 일은 청월루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금선남로에 있는 풍운객잔입니다. 건물이 낡긴 했지만, 터가 좋아서 제가 삼 년 전부터 노리고 있던 곳이지요. 현재 청월루가 보호해 주고 있긴 한데, 겉으로 봐선 청월루와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호오, 그래?”

문표의 눈에서 흥미의 빛이 번쩍였다.

“하긴, 방 객주의 말대로라면 분명, 방법이 있겠군.”

“그렇겠지요?”

“그래. 이름이 청월루가 아니라 풍운객잔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지.”

문표는 그 말을 하며 은근한 눈길을 보냈다.

방태풍은 곧장 그 말을 알아듣고, 탁자 밑에서 고급스런 옻칠이 된 나무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육백 냥입니다.”

“허어, 이런 걸 왜 내게 보여 주는가?”

“하하, 상자가 좋아서 대인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풍운객잔이 제 손에 들어오고, 제대로 개장해서 장사를 하게 되면…… 매달, 이만한 상자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방태풍은 씩 웃으며 상자를 앞으로 슬쩍 밀었다.

문표는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그 상자를 노려보았다.

의심이 가득한 눈빛.

하지만 욕심과 탐욕 또한 그득히 쌓인 눈빛이다.

“좋아!”

탕!

문표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친 뒤, 중간에 놓여 있던 상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가 한 번 손써 보지. 이곳 금선로를 맡고 있는 판관이 곧, 거기로 찾아갈 것이야.”

“하하! 대인만 믿겠습니다.”

“그래. 믿으시게나. 자네 뒤엔 내가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문표는 입가를 씰룩거리며 웃은 뒤, 고개를 모로 돌리며 헛기침을 토해 냈다.

“커험. 그런데 아까 그 애들 마음에 들던데, 다시 들어오지 않는 건가?”

“어이쿠. 그럴 리가요. 당장 들여보내겠습니다.”

방태풍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직접 열었다.

대기하고 있던 기녀들이 다시 들어오고, 간드러지는 교성과 함께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언제나와 같은 항주의 밤.

금선로의 한구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 ☆

휘이잉―.

장기린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은 중천에 떴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으스스한 날씨였다.

장기린은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보름달이 중천에 있으니, 시간이 다되었다. 그래도 마지막 기대를 걸어 봤건만, 역시 이곳 ‘항주동로’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 산적들은,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는 거겠지.”

장기린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휘연이 조금만 더 빨리 말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로서는 그가 이런 위험한 일에 연루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모양이다. 괴로운 마음을 계속해서 홀로 삭이고, 또 삭이다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포기하듯 말한 것을 보면.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런 이유라면 싸울 수 있다.

장기린은 그가 서 있던 자리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거무튀튀한 묵빛의 철창을 집어 들었다.

임가촌에서 빌려온 물건이다. 임 목장의 부탁을 받아 철목에 구멍을 냈을 때 사용했던 창.

어떤 일에 쓸지 설명하지도 않았건만, 임 목장은 흔쾌히 이것을 그에게 내주었다.

‘피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지만…… 이 정도 품질이면 산적들을 상대로 싸우는 데는 충분하겠지.’

곧게 뻗은 창대. 단순하지만 뾰족하게 날을 세운 마름모꼴의 창날.

장기린은 그것을 오른쪽 손에 들고 ‘척!’하니 앞으로 겨눴다.

우우웅.

창날이 떨리며 옅은 바람 소리를 울린다.

창이 기대한다.

앞으로 벌어질 전투와, 피의 제전을 기대한다.

그리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장기린 또한 내심 약간의 흥분과 기대를 느낀다.

“출전이다.”

대지를 바람처럼 달려 줄 명마는 없지만.

몸을 감싼 세 치의 철 갑옷과 화려한 투구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창을 들고 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출전이다.

적을 죽이고, 부숴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피의 전쟁이다.

우우웅―.

다시 한 번 몸을 떠는 철창의 끝을 아래로 내린 채, 장기린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마차 세 대가 한꺼번에 달려올 수 있는 넓은 관도.

하지만 자시(子時:밤 11시―새벽 1시)가 넘은 시각 때문인지, 지평선 끝 동로의 언덕까지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기린은 그곳을 걸어갔다.

짙은 어둠을 홀로 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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