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九章 ― 청천벽력(靑天霹靂)
“여기! 신천지 소면 세 개 추가!”
“어이! 꼬마 점소이! 이쪽도 잊지 말라고! 신천지 소면 다섯 개야!”
“아칠! 아팔! 너무한다! 단골은 더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냐? 여기 신천지 소면 네 개!”
저녁때의 풍운객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처음엔 임가촌의 목공들만 드나들었지만, 점차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신천지 소면’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까지 호기심에 한 번쯤은 들어와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가게에 들어와 본 사람들은 어김없이 신천지 소면을 시킨다. 도대체 사람들이 이렇게나 열광하면서 먹는 게 뭔지 궁금해서.
그리고 한 번 맛을 본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시장에서 파는 소면 따위랑은 비교가 안 돼!”
“그런데 가격은 똑같잖아! 젠장, 왜 내가 지금까지 여길 몰랐지? 난 지금껏 내 입을 고문하고 있었어!!”
그들은 과거의 무지했던 자신들을 욕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앞으로 자주 이곳을 이용하리라 다짐했다.
다른 곳과 같은 가격.
월등한 맛.
그러니 손님을 끌 수밖에 없다.
금선로엔 휘황찬란한 것을 좋아하는 부호들이 많이 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중산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금선로를 지나다니는 재료상, 청과상, 근처의 주민들과 일꾼들.
그 모두를 합하면 오히려 부호들의 숫자의 몇 백 배가 될 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지금까진 금선로의 다른 화려한 객잔들에게 밀려 주목을 못 받았지만, 이젠 오히려 그 수수한 점이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유시초(酉時初:저녁 5∼6시)가 되면 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풍운객잔의 입구에 줄을 서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아칠과 아팔은 손님들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주문이 밀려드는 주방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죽을 해 대는 운찬.
커다란 솥에 국물을 펄펄 끓이며, 운찬 비전(秘傳)의 육수용 망태기를 국물에 담궜다 빼는 일을 돕는 남궁휴.
그리고 주방 구석에서 엄청난 속도로 야채를 다듬고 있는 장기린.
지금 주방에선 세 사람이 힘을 모아 수십 인 분의 식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숙수님! 신천지 소면 다섯 개 추가요!”
“헥헥! 밖에 기다리는 손님 열두 명, 자리는 네 개가 필요해요!”
운찬이 알았다고 대답하자, 아칠과 아팔은 또다시 손님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 길지 않은 다리로 쫑쫑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무래도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위치이다 보니 숨 쉴 틈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쿵―! 쿵―!
양손으로 반죽을 붙잡고 나무 판에 위아래로 내던지듯이 후려치는 일을 반복하자, 사람 몸통만 한 반죽이 가느다란 소면으로 바뀌었다.
수타면(手打麵).
면을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운찬은 꼭 수타면을 선택했다. 마치 곡예단의 기예 같은 기술을 매번 발휘해야 한다는 점은 귀찮지만, 쫄깃쫄깃하고 탄력 있는 면발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운찬은 그 소면을 각각 한 사람이 먹기 좋을 만큼 분류해서 칼로 썰어 내고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구부정했던 허리를 쭉 폈다.
우두둑―
“으갸앗―!”
얼마나 오랫동안 힘을 주고 있었는지, 허리를 펴자 척추가 부러지는 듯한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운찬은 기지개를 편 채로 한참을 굳어 있다가, 이번엔 목을 한 바퀴 돌리면서 물었다.
“객주님. 으극!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어느새 한 망태기 가득 들어 있던 토란을 다 처리해 버린 장기린은 운찬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대답했다.
“아직 유시. 일각 정도 남았어.”
“에엑! 일각이나요? 그렇게나 많이 남았다구요?”
“그래. 그리고 알다시피, 마지막 일각이 최고조로 바쁜 거 알지?”
“으윽!”
운찬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전쟁터에서 마지막 숨통을 끊으라 지시를 내리는 장군처럼 장기린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으음, 알겠어요.”
운찬도 결의를 다졌다.
분류해 둔 소면을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서, 운찬은 미리 준비해 둔 식기에 소면에 들어갈 고명을 준비했다.
가늘게 쭉쭉 찢어 놓은 닭고기.
모양 좋게 썰어서 가지런히 모아 둔 대파.
그리고 보기 좋게 들어가 있는 청경채 한 잎.
이제 면이 다 익는 순간, 신천지 소면이 완성되는 것이다.
땡― 땡―
주방 입구에 설치해 둔 작은 종이 울렸다.
“숙수님―! 아직 멀었어요?”
“헥헥, 손님들이 빨리 달라고 난리예요―.”
운찬은 아칠과 아팔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저었다.
“다됐어! 잠시만!”
운찬은 펄펄 끓고 있는 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손에 들린 철망을 꽉 움켜쥐고, 마치 대어(大漁)를 낚으려는 강태공마냥 온 정신을 그곳에 집중했다.
면은 얼마나 삶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덜 삶기게 되면 씹을 때 연한 밀가루 맛이 나게 되고, 많이 삶기게 되면 면발이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하게 녹은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면이 완전히 다 익어 버리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일류 숙수로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타앗―!”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빛낸 운찬은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철망을 물 밖으로 끄집어 올렸다.
철망 속에 있는 소면을 재빨리 찬물에 한 번 담그고, 일인용 소면 그릇에 분류해서 담았다.
“휴! 육수!”
“예!”
국물을 휘젓고 있던 남궁휴가 재빨리 운찬이 말아 놓은 소면 위에 국물을 부었다.
운찬은 국물이 부어진 위에 닭고기와 야채의 고명을 얹는다.
돌돌 말려 있는 국수와 그 위를 장식한 고명, 연기가 풀풀 올라오는 뜨거운 국물.
신천지 소면의 완성이다.
그들이 한 번에 만들어 내는 국수는 열 그릇.
장사를 하는 동안에 이들은 이 작업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하는 것이다.
“후아아―.”
갓 만들어진 소면들이 아칠과 아팔의 손에 들려 밖으로 나가자, 운찬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장기린은 운찬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으, 으아, 혀, 형님?”
“몸에 힘 빼. 그래야 근육 뭉친 게 풀린다.”
“아, 네에에…….”
지난번처럼 장기린은 손가락에 힘을 줘서 운찬의 뭉친 근육을 하나하나 풀어 주었다.
어깨와 뒷목에서 시작해 척추의 중심부까지.
운찬은 장기린의 손이 닿자 노곤한 얼굴로 흐물흐물 늘어져 버렸다.
“내가 지켜보니, 주방 일의 효율성이 좋지 않다. 방식을 좀 바꾸는 게 좋겠어.”
“그런 가요오……?”
“그래. 특히 반죽에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많아. 반죽을 미리 해 놓을 수는 없는 건가? 미리 반죽을 준비해 뒀다가 삶아서 내놓기만 하면 시간이 훨씬 절약될 것 같은데?”
군(軍)이라는 곳은 효율성, 즉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온 장기린의 눈엔 지금의 방식이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하지마안……. 반죽은…… 미리 만들면……. 발효가 돼서 맛이…… 달라져 버려요오…….”
움찔움찔 몸을 떨던 운찬이 ‘후우’하고 크게 숨을 내쉰다.
장기린은 상체의 근육을 풀어 준 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발효?”
“네. 국수 반죽을 따뜻한 곳에 두면 점성이 강해지고, 부풀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맛도 달라져 버리죠. 석빙고(石氷庫)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반죽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가 없어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따뜻한 곳에 염소젖을 두면 금방 상해 버리지만, 차가운 곳에 두면 한참이 지나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운찬은 그런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즉, 차가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예, 그렇다면 미리 반죽을 만들어서 저장해 뒀다가 바로바로 삶아서 쓸 수 있겠죠. 시간도 절약될 거구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공간 만들기가 쉬운 게 아니라서…….”
운찬은 한결 가뿐해진 어깨를 붕붕 휘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반 객잔에 석빙고를 만든다는 것. 그건 엄청난 인력과 돈이 투자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풍운객잔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니, 결국 반죽은 그때그때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래.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예, 저도 고민해 볼게요.”
장기린은 운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시작해야지?”
“예? ……아, 예.”
“마무리다. 조금 더 힘내.”
운찬은 어색하게 웃으며 터덜터덜 걸어가 다시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곱게 빻은 밀가루에 산에서 떠온 청수(淸水)를 붓고 있는 힘껏 치댄다.
철썩― 철썩―
반죽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차지게 울려 퍼졌다.
“후아아―! 끝났다아…….”
끝이 안 보이던 손님의 행렬은 술시(戌時:저녁 7∼9시)가 되고도 이각이나 더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물론 그 뒤로도 손님은 오지만, 술시 이후로는 가끔 한두 명의 손님뿐이었다.
가장 바쁜 시간은 지나갔다고 봐야 했다.
“주방 일……. 우습게 볼 게 아니군요.”
나름대로 거친 일에 익숙한 남궁휴조차 수십, 수백 인분의 국물을 만드는 것은 힘들었는지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긴 이해는 된다. 하루 종일 뜨거운 김이 펄펄 끓어오르는 대형 솥을 젓고 있었으니, 힘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운찬은 자긍심이 어린 얼굴로 ‘에헴!’하고 헛기침을 토했다.
“당연하지. 이래 뵈도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고.”
“오, 그렇습니까?”
“그래. 주방 일은 정말로 중노동이야. 재료 다듬는 거에, 무거운 솥으로 하는 요리에, 다 끝난 후의 설거지까지. 내가 처음 주방 일을 배웠을 땐 매일이 몸살이었어. 해 본 사람은 그 괴로움을 알 텐데……. 꼭 주방 일 한 번도 안 해 본 것들이 주방 일을 우습게 본다니까?”
운찬의 분개한 시선이 주방의 구석으로 향한다.
옆에 있던 남궁휴도 구석의 ‘모습’을 보며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팔린 소면의 그릇 수만 해도 백 그릇이 훨씬 넘는 숫자였다.
그러니 지금 깨끗이 씻어 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발의 숫자만 해도 그것과 똑같은 숫자였다.
천장에 닿을 것처럼 높이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자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확실히…… 그렇네요.”
“그렇지? 이렇게나 힘든데 주방 일을 우습게 보는 놈들이 있으면 열 받는다니까?”
“주방 일, 우습게 안 봐.”
투덜투덜 불만을 이야기하던 운찬과 남궁휴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장기린이 주방의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힘든 것 충분히 알고 있어.”
“아…… 그게……. 하하,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이 주방 일을 우습게 보신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괜히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운찬이었다.
장기린은 운찬을 보며 피식 웃은 뒤, 남궁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도 수고했다. 익숙지 않았을 텐데.”
“아, 아닙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장기린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남궁휴를 가만히 응시했다.
어렸을 때 명문 무가(武家)에서 단련을 받았다고 하더니, 확실히 단련을 한 몸이라 그런지 힘든 노동 후에도 운찬보다 훨씬 몸 상태가 안정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굳이 근육을 풀어 주지 않아도 되겠어.’
장기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마음속으로 고민하던 것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둘 다 뒤뜰로 따라 나와라. 할 일이 있다.”
“예?”
“…….”
“가, 갑니다!”
장기린은 뒤에서 운찬과 남궁휴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뒤, 뒤뜰로 나갔다.
뒤뜰에선 미리 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아칠과 아팔이 땅바닥에 나란히 앉아 자신들의 짤막한 다리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다.
“객주님!”
반가운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달려온다.
장기린은 아칠과 아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준 뒤, 모여 있는 네 사람을 일렬로 세웠다.
“오늘부터. ‘걷는 법’을 배운다.”
“예?”
“에?”
“걷는 법이요?”
네 사람 모두 한결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너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체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칠, 아팔. 너희는 유시가 끝나 갈 때쯤엔 걷는 것도 힘겨워했지. 마지막엔 그래서 휘연이 돈 계산을 중단하고 쟁반을 날랐고.”
아칠과 아팔의 얼굴이 빨개졌다.
“……네.”
“맞아요. 죄송해요, 객주님. 저희가 부족해서 휘연 누님이…….”
“다신 이런 일 없게 할게요.”
두 사람은 혼나는 거라 생각했는지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어깨를 떠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니. 죄송할 문제가 아니야. 너희는 최선을 다한 거니까. 다만, 휘연에겐 휘연의 할 일이 있어. 모든 손님들의 주문을 확인하고 돈 계산을 하고. 그런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되도록 각자 맡은 일을 다 해 주어야 된다는 거다.”
아칠과 아팔은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최선을 다할게요.”
장기린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걸론 부족해.”
“에……. 예?”
“최선을 다하는 걸론 부족해. 근본적인 문제를 뜯어고쳐야지.”
아칠과 아팔은 통통한 얼굴 위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은, 이걸로 충분하다.’
그다음, 고개를 돌려 운찬을 바라봤다.
“운찬.”
“예?”
“너도 마찬가지야. 일의 방식은 둘째치고, 일단 반죽 정도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도록 체력이 있어야지. 휘연의 말로는 앞으로 점점 매상이 오를 거라고 하던데, 그때는 어떻게 버티려고 그러는 거지?”
운찬은 어깨를 움찔하며 대답했다.
“그, 그렇지만, 반죽을 하루 종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다른 숙수를 한 명 고용해서…….”
“고용하면? 네 마음에 들 정도의 숙수가 풍운객잔에 오려고 할까?”
그가 아무리 평범한 생활에 익숙지 않다고 해도, 운찬 정도의 숙수가 그리 흔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운찬도 부정하진 못하겠는지, 얼굴을 빨갛게 된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그런 거야.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이 부분은 단련이 필요하다.”
“예?”
“활검을 익히는 것.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백 년을 칼질해 봤자 원하는 걸 얻지 못해.”
운찬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빛이 흔들리는 사람은 또 있었다. 옆에서 묵묵히 서 있던 남궁휴.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활검……. 객주님. 설마, 그 활검이, 칼질을 하면 오히려 생명이 살아난다는, 그 검의 경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개, 객주님께서 그 경지를 이루신 겁니까?”
“경지랄 건 없고. 그냥 쓸 수 있게 됐어. 운찬이 배우고 싶어 해서 가르쳐 주는 중이고.”
남궁휴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옆에 있는 운찬을 쳐다보자, 운찬은 자랑스러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휴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객주님께서 거짓을 말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예전에 저를 그…… 빗자루로 패실 때부터 예사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활검이라니…….”
남궁휴는 지극히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있던 운찬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봐, 휴 동생. 지금 객주님을 못 믿는 거지? 그렇지?”
남궁휴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모, 못 믿다뇨!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에이, 못 믿는 얼굴인데, 뭐. 지금 ‘형님이 무슨 활검이냐’ 그런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 아닙니다!”
“객주님, 진짜로 활검을 하셔. 나도 처음엔 눈을 의심했었지만, 진짜다.”
운찬이 장기린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형님! 이참에 한번 보여 주시죠. 제가 야채 하나 가져 올게요!”
운찬은 그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쏜살같이 주방으로 달려가 싱싱한 무와 식칼을 들고 나왔다.
장기린은 뭔가를 자랑하는 듯하여 조금 거부감이 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차피 한 번은 보여 줘야 할 기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좋아. 잘 봐 둬.”
길게 숨을 내쉬며 검과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고.
왼쪽 손으로 무를 꼭 붙잡고, 오른쪽 손에 들린 식칼로 단번에 중심을 내리쳤다.
서걱―!
섬뜩할 만큼 날카로운 소리.
그와 함께 스르륵 미끄러져 내리려던 무가 갑자기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엇?!”
스스슥―
단순하게 딱 붙기만 한 게 아니라, 잘릴 때 그어졌던 실선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무가 잘리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심지어 장기린이 그 무를 운찬에게 건네주고, 운찬이 그 무에 아무리 힘을 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무가 처음부터 잘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입을 ‘헤’ 벌리고 보고 있던 아칠, 아팔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에?!”
“잘렸으니까 바닥에 떨어져야 하는 거 아냐?”
“어째서? 왜 안 떨어지고 붙었지?”
그에 대한 대답은 멍하니 일련의 광경을 지켜보던 남궁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잘린 부분은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나 버리니까 무가 떨어지지 않은 겁니다. 상처가 나는 것과 동시에 아물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무순과 뿌리 부분도 반 치가량 자라났습니다. 그러니 이건 분명…… 활검이군요.”
남궁휴는 감격스런 눈으로, 아니 경악에 물든 눈으로 장기린의 손에 들린 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마 정말로 활검이 가능할 줄은……. 아버지와 조부님의 평생 숙원이셨는데. 그걸 이렇게나 쉽게 볼 수 있다니…….”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궁휴는 운찬에게 대충 얼버무린 뒤,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감탄과 존경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크흠!”
조금 민망해진 장기린은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너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내가 이야기했던 ‘걷는 법’이다. 아칠, 아팔, 이걸 왜 배워야 하는 줄 알아?”
아칠과 아팔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인가요?”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달라. 이걸 배워서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너희 둘은 이제 한 시진이 아니라 세 시진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게 될 거야. 달리는 속도도 두 배나 빨라질 거고.”
아칠과 아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
“정말, 두 배나 빨라져요?”
장기린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와아―?!”
“익숙해지면 산토끼도 따라잡을 수 있게 될 거야.”
“산토끼까지!”
몇 가지 예시를 말해 주자, 아칠과 아팔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장기린은 이제 네 사람을 다시 일렬로 정렬시킨 뒤,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상체는 꼿꼿하게 세운 채로 하체만을 굽혀서, 마치 말 위에 올라탄 것 같은 자세를 잡았다.
기마 자세.
흔히 마보(馬步)라고 일컫는 ‘걷는 법’의 기본자세다.
“아……! 마보입니까?”
남궁휴는 곧장 따라 했다.
남궁휴가 따라 하자 운찬이 따라 했고, 옆에 있던 아칠과 아팔도 어설프지만 확실하게 마보 자세를 잡았다.
장기린은 그들이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마보 자세로 서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저기, 객주님.”
반 각쯤 지났다.
아칠과 아팔이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하고, 운찬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자, 남궁휴가 질문을 던졌다.
“이 마보 자세는 얼마나 하면 되는 것입니까?”
“반 각.”
“예?”
이 자세에 정해진 시간은 없다. 다만, 네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시험했을 뿐이었다.
“잘 봐. 너희가 앞으로 매일 따라 해야 할 동작이다.”
스으읍―!
장기린은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리면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리를 쭉 뻗어 한 걸음을 크게 내딛었다.
쿵―!
묵직한 소리.
단단한 뒤뜰 바닥에 깊은 족적이 새겨졌다.
정신은 아랫배에 집중하고, 상체는 그대로 자연체를 유지한 채로, 한 호흡 만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쿵! 쿵!
바닥에 족적이 새겨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흐음.”
뒤뜰 바닥엔 총 열세 개의 족적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처음 다섯 개는 보폭이 넓고, 중간의 세 개는 보폭이 좁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개는 발바닥의 방향이 묘하게 안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가 요점을 모르고 이 걸음을 따라 하려고 한다면, 불과 다섯 걸음도 떼기 전에 넘어져 버릴 것이다.
쉽지만, 또한 쉽지 않은 게 바로 ‘걷는 법’이었다.
“이걸 한 호흡 만에 해야 하고, 상체는 자연체를 유지할 뿐 절대로 움직여선 안 된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조차 안 돼. 누가 멀리서 보면, 강물에 배가 떠가듯이 상체는 그 모습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야 한다. 눈은 세 걸음 앞의 땅을 보고, 정신은 아랫배에 집중해라. 그럼 어느 순간, 다리에서 힘이 불끈 솟아나는 것을 느낄 텐데, 그렇게 되면 너희는 이 걸음을 제대로 해낸 거다.”
장기린은 ‘걷는 법’의 요점을 설명해 준 뒤 네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운찬, 아칠, 아팔, 세 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가는지 바닥에 새겨진 족적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고, 남궁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객주님.”
“말해.”
“저희가 배울 무공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남궁휴는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아칠과 아팔의 눈이 그 순간 반짝였다.
“무공?”
“무공?!”
누구에게나,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무공이란 꿈과 희망이나 다름없다. 아칠과 아팔은 물론이고, 운찬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볼이 발개진 채 바닥에 새겨진 족적과 장기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무공이라니, 무슨 소리야?”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무공이라니…….
남궁휴는 제대로 배웠다기에 다를 줄 알았는데, 어째서 신입 병사들이나 할 법한 생각을 똑같이 하는 것일까?
“예에……?”
남궁휴는 당황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 얼굴을 보자, 확실하게 개념을 잡아 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이건 무공이 아냐. ‘걷는 법’이다. 몸을 단련하고 체력을 길러 주는 수련법이다.”
“…….”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걷는 법’의 효과로도 충분할 테니, 착실히 수련하도록.”
아칠과 아팔은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자국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고, 운찬도 마보 자세에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있었다.
장기린은 바닥에 똑같은 형태의 족적을 세 개 더 찍어 준 뒤, 아직까지 멍하니 서 있는 남궁휴에게 다가가 물었다.
“휴, 왜 그러지?”
“그게……. 객주님, 무공이란 무엇입니까?”
“무공?”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인가?
장기린은 진지한 눈으로 묻는 남궁휴에게 꿈 깨라는 듯 대답했다.
“무공은 중이나 도사 들이 입선하기 위해 배우는 거잖아? 생식(生食)하고, 산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서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는 그런 것.”
“……!!”
“미안하지만, 내가 가르쳐 주는 건 지극히 세속적인 거다. 체력을 기르고, 몸을 빠르게 해서 싸우는 데 도움을 줄 뿐이야. 부처나 신선이 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어째선지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남궁휴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오른다.
남궁휴는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이걸 열심히 하면 저도 객주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어쭈? 벌써 나를 따라잡겠다 이거냐?”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난스레 웃지만 눈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깊은 고뇌와 진지함이 숨어 있다.
확실히 이런 눈을 한 사람은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세상사 쓴맛 단맛을 모두 겪어 본, 하지만 절망은 하지 않은 눈빛.
너무 뻣뻣해도, 너무 진지해도 안 된다. 대(隊)의 형제들은 모두 이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래, 열심히 하면 될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남궁휴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발자국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집중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 단련을 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동작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절도가 있었다.
“으아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요?”
세 걸음 정도 나아갔을 때, 운찬은 밑창이 뚫린 나룻배처럼 앞뒤로 허우적거리다가 풀썩 엎어지고 말았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활검을 얻는 것이 걸려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배우려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아칠과 아팔은…….’
사실 걷는 법을 가르치려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장사 도중에 가장 많이 걸어야 하고,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점소이가 아니던가.
아칠과 아팔은 어설프지만, 하나하나 확실하게 발을 밟아 가고 있었다.
아직 ‘한 호흡 안에’라는 의미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요점을 말해 준 그대로 상체를 움직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두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아칠, 아팔. 상체가 움직인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몸에서 긴장을 빼! 그래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네!”
“그럴게요!”
아무래도 처음인지라 여기저기 허점이 보였지만, 조금만 손을 봐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니 아칠과 아팔은 금방금방 요령을 배워 실력이 늘어났다.
비틀비틀거리면서 끝까지 걷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한 호흡 만에 두세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머리가 제법 좋아.’
몸을 쓰는 것에 크게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일에 잔뼈가 굵은 아이들이라 눈치가 빨라서 배우는 게 빠르다. 게다가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이대로라면 금방 쓸 만하게 바뀔 것 같았다.
‘운찬도 열심히 하고 있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조금씩 실력을 늘려 가는 운찬.
‘휴는 역시, 이 정도는 금방 배운다.’
남궁휴는 어느새 열세 걸음을 다 외우고, 이제 한 호흡 만에 펼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열세 걸음을 한 호흡 만에 펼치기는 어려운지, 여덟 걸음 정도에서 계속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가르쳐 준 지 이각밖에 안 된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습득 속도다.
‘걷는 법뿐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이랑, 숨 쉬는 법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하면……. 아니, 아니지. 굳이 싸우는 법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어. 여긴 적룡기마대가 아니다.’
장기린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거기까지 가르칠지 말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괜히 손에 칼을 들려주면 한 번 써 보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겠지. 조금 더 고민해 보자.’
장기린은 땅바닥에 털썩 걸터앉아 네 사람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철퍼덕 넘어지는 소리와 우렁찬 기합 소리로 시끌시끌한 풍운객잔의 저녁은 그렇게 ‘걷는 법’ 수련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 ☆ ☆
“으아……! 읍!”
무심코 비명을 내지르려던 아칠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눈앞에는 무서울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미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아칠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향했다.
“객주님?”
그녀의 미소가 점점 짙어진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믿었건만, 그 믿음이 깨지려 하고 있었다.
“크흠, 왜?”
“저녁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다음날 영업에 지장을 줄 일이 생기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영업에 지장은 안 줄 거야.”
“그래요? 그럼 객잔의 직원들이 하나같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은 제 착각일까요? 절뚝거리는 다리로는 오늘 장사를 하기 힘들 거란 생각도 저만의 착각일까요?”
휘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서 있던 세 사람이 움찔 놀라면서 후다닥 밖으로 도망쳤다.
지금이라도 더는 눈에 띄지 않으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다리를 절면서 도망쳐 봤자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거기 서요!”
움찔―!
게다가 그 어설픈 탈출 시도는 호통 한 방에 정리되어 버렸다.
“설마, 무책임하게 도망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운찬, 남궁휴, 아팔.
세 사람은 제자리에서 딱딱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아칠, 어제 도대체 뭘 한 거야? 뭘 했기에 다들 이렇게 다리를 저는 거야?”
“그, 그게…….”
아칠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모두의 원망을 담은 시선이 아칠에게 집중된 것이다.
‘너 때문이야.’
‘그러게 왜 신음은 흘려 가지고.’
‘상황이 곤란해져 버렸잖아?’
아칠의 통통한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으우…….”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장기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휘연. 어제 일은…….”
결국 휘연에겐 모든 일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네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게 된 이유가 뭔지. 그리고 그걸 배우고 나면 얻게 되는 이득까지.
휘연은 모든 것을 다 듣고 난 뒤, 새치름한 눈으로 장기린을 바라봤다.
“의도는 좋네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모두가 이렇게 다리를 절게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장사는 손님과의 신뢰가 생명인데, 이러다가 덜컥 장사라도 하루 못 해 버리면 누가 풍운객잔을 믿고 찾아오겠어요?”
휘연의 말은 정론.
하지만 억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늘은 첫날이라서 그래.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영업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그럼 첫날인 오늘은요?”
“……으음, 내가 주물러 주면 평소의 칠 할 정도는 회복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거라도 당장 해 주세요. 당장 한 시진만 있으면 손님들이 오기 시작할 텐데……. 강 숙수님을 보라고요. 저만한 재료 바구니조차 들기 힘들어 하고 있잖아요! 저런 몸 상태로 어떻게 음식을 만들겠어요?”
움찔―!
몸을 돌린 채 벽만 쳐다보고 있던 운찬의 어깨가 흔들렸다.
“휴도 그렇다고요. 오늘 새벽에 빗자루질을 할 때,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아세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세 장을 쓸어 내는 데 일각이나 걸렸다구요!”
우당탕―!
이번엔 비스듬하게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남궁휴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알겠어. 지금이라도 안마로 근육을 풀어 주지.”
아칠과 아팔, 운찬과 남궁휴까지 불러 모으려고 하는데, 휘연은 옆에서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팔짱을 낀 채 물어 왔다.
“그런데, 몸이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걸리죠?”
“…….”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스무날……. 아니, 넉넉하게 한 달 정도?”
시선이 따갑다.
어물쩍거리며 걸어오던 네 사람이 또다시 딱딱하게 굳어 버릴 정도로 휘연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내가 대체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라던가,
“장사를 신경 쓰는 건 나 하나뿐인 건가요?”
같은 짧은 투정도 비수처럼 귀에 틀어박혔다.
기온이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나 고민되는 그때…….
딸랑―!
객잔 정문에서 나는 방울 소리는, 그야말로 중생을 구원하러 온 관음보살의 축복이었다.
“어서 오세요―!”
“식사하러 오셨나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는 아칠과 아팔.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다.
“소문을 듣고 왔는데 말이지.”
“사실 어제도 왔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못 먹었었다고. 그래서 오늘은 일찍 와 본 건데……. 너무 일찍 온 건가? 식사할 수 있어?”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내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칠과 아팔은 슬쩍 이쪽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시각은 미시말(未時末:오후 2∼3시). 사실 풍운객잔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무리 영업시간이 아니더라도, 이렇게까지 찾아와 주었는데 대접을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아칠과 아팔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휘연이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새치름한 눈으로 흘겨보고는 주방 앞자리에 앉는다.
남궁휴와 운찬은 휘연이 앉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치 덫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도망치는 토끼처럼.
‘어지간히 괴로웠던 모양이구먼.’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 감정을 절절히 공감한다는 점이 슬프다.
아칠과 아팔은 손님에게 풍운객잔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장기린도 손님이 온 이상, 눈에 띄지 않게 자리에 앉으려는데…….
딸랑―!
아쉽게도 이른 오후의 손님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한 사내가 기세 좋게 문을 열어젖히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선 것이다.
“커험!!”
녹색의 관모를 쓰고, 염소 같은 가느다란 수염을 기른 그는 들어오자마자 객잔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위세 있는 자들이 내뱉는 오만한 헛기침.
누추한 곳이 불쾌하다는 듯 경멸이 섞인 눈초리.
한 발짝 뒤에서 좌우로 시립해 있는 제법 날카로운 느낌의 호위 둘.
‘느낌이 좋지 않은데.’
장기린은 보자마자 이 사내가 불청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
그는 이곳에 식사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장에서 갈고닦은 감각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린다.
지금 나타난 사내는, 분명 ‘적’이라고.
“뭐야, 손님이 있어?”
염소수염의 사내는 콧잔등을 씰룩이며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 두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두 사람, 나가시오. 관(官)의 공무 집행이오. 지금 이곳은 장사를 할 수 없소이다.”
“과, 관이요?”
“그렇소.”
두 사람은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관이라는 말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것이, 그들은 ‘풍운객잔과 인연이 없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지, 이건?’
장기린은 울컥 화가 났다.
아무리 관에서 나왔다 한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장사를 방해한단 말인가.
“잠깐! 무턱대고 관에서 나왔다고 하면 어떻게 믿소? 그리고 관에서 우리 객잔의 장사를 방해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염소수염의 사내는 그가 말대답을 한다는 게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린 채 턱짓으로 장기린을 가리켰다.
“그쪽은?”
“이곳 풍운객잔의 주인이오.”
“아아, 장기린?”
이름을 말하는데, 비웃음이 가득하다.
그는 기분 나쁜 얼굴로 피식피식 웃더니, 품속에서 꽤나 고급스런 재질의 서찰을 꺼내 포고문을 읽듯 위아래로 펼쳤다.
“항주 금선로 남향 삼가. 풍운객잔에 영업을 위한 적법한 시찰을 받을 것을 명한다. 이는 항주와 금선로의 품위 유지와 공평무사한 상행위(商行爲)를 위한 방침이며, 시찰을 거부할 시 항주 자사 임청의 이름으로 강제 폐점을 시행한다.”
서찰엔 항주관을 상징하는 도장이 크게 찍혀 있었고, 그 옆에 항주 자사 임청의 이름도 서명이 되어 있었다.
염소수염의 사내는 그 서찰을 장기린에게 건네준 뒤, 자신의 관패(官牌)를 꺼내 보여 줬다.
“종칠품 관리……. 추개평?”
장기린이 눈을 찌푸리며 그 관패를 읽어 내리자, 추개평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정정해 주었다.
“커험! 종칠품 항주동사금선시어사(航州東司金仙侍御史) 추개평이다. 서찰에 써 있는 대로, 항주관의 명을 받아 시찰을 하러 나왔다.”
추개평이 뒤에 시립해 있는 호위들에게 눈짓을 하자, 호위 두 사람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손님 두 사람을 밖으로 내쫓은 뒤 ‘쾅!’ 소리가 나게 정문을 닫았다.
추개평은 여유롭게 뒷짐을 진 채로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찰이 끝날 때까지 풍운객잔은 영업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