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1화 (21/686)

第二十章 ― 자업자득(自業自得)

“영업을…… 할 수 없다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아오른다.

도대체 어째서?

무슨 이유로?

자기들이 무슨 권리가 있다고!

꾸욱―!

“으음?”

울컥해서 앞으로 나서려는데, 휘연과 남궁휴에 의해서 양쪽 소매가 각각 붙잡힌 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휘연과 남궁휴는 똑같이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만류하고 있었다.

“객주님, 화가 나시겠지만 일단은 참으셔야 합니다. 시어사(侍御史)라고 하면, 법에 어긋난 자를 적발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감찰직으로, 그중에서도 저 추개평이라는 자는 굉장한 악질인데다, 공공연하게 권세가의 뒤처리를 해 주어서 이곳에선 위세가 대단합니다. 정사품 관리들도 항주 바닥에서만큼은 쩔쩔매는 게 바로 저잡니다.”

“그래서? 알아서 숙이라고?”

“그건 아니지만, 일단은 조금 지켜보자는 겁니다.”

남궁휴의 말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히려 더 화가 났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추개평이라는 자가 이곳에서의 권세가 대단하니 알아서 굽혀 주자는 소리인데…….

관의 권력을 악용하는 자들을 제일 싫어하는 장기린으로서는 그건 참기가 힘든 일이다.

“객주님, 일단은 조금 두고 보세요. 어쨌든 관에서 정식으로 공문이 내려온 지시니까요. 하는 일을 보고, 부당하다 싶으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해요.”

“…….”

“객주님.”

휘연의 목소리가 간절해진다.

장기린은 결국 몸에서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다 틀린 말이 아니다. 관의 지시가 내려온 이상, 일단은 그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평범하게 사는 것……. 생각보다 힘든 일이군.’

장기린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시찰이란, 어떤 것이오?”

기분이 안 좋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게 깔려서 나왔다.

그 기세에 눌렸는지 추개평은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안색을 회복하고 거만하게 불룩한 배를 내밀었다.

“본래, 이곳 항주 금선로에서 객잔을 하기 위해선 시어사의 시찰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 풍운객잔은 시찰을 받지 않았다.”

“시찰?”

그런 게 있었냐는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자, 휘연도 남궁휴도 심지어 주방 밖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운찬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장기린은 의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즉, 객잔을 하기 위해선 관에서 시찰을 받아야만 한다는 건가?”

추개평은 탁자를 ‘탕!’ 내리 치며 분개했다.

“허어! 이런 무지한 자를 봤나. 그런 것도 모르고, 객잔 영업을 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이곳 항주 금선로는 특별한 곳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부흥시키기 위해, 관에서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곳! 그곳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합한 기준을 만들고, 그 시찰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는 항주의 부흥을 위한 일이며, 또한 대명제국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추개평은 자신이 개국공신이라도 되는 듯 흥분해서 열변을 토해 냈다.

“그렇다면, 이곳 금선로에 있는 다른 객잔들은 이미 그 시찰이라는 것을 받았다는 것이오?”

“그렇다!”

“모두?”

“물론!”

장기린은 팔짱을 끼고 서서 추개평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럼 당연히 이곳 풍운객잔도 시찰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오만.”

“……무슨 말이지?”

“이 풍운객잔은 역사가 백 년이 넘었소. 설마 그렇게나 금선로에 신경을 쓴다는 관에서 백 년간이나 풍운객잔을 시찰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오?”

추개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장기린은 절묘한 허점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다.

사실 이 ‘시찰’이라는 건 있으나 마나 한 유명무실한 법이었다. 애초에 금선로에 지어지는 객잔들은 다들 돈 많고 화려한 것이 보통이니까. 이렇게 특별히 트집 잡아서 괴롭힐 목적이 아니면 절대로 쓰이지 않았다.

‘이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추개평은 곤란해서 괜히 헛기침을 해 댔다.

그렇다 할 수도 없고, 아니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하면 추개평은 풍운객잔이 이미 시찰을 끝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고, 아니라고 하면 그건 관이 임무 수행을 게을리했다는 뜻이니, 시찰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이놈이……!’

추개평은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겨우 이런 걸로 무너지기엔, 추개평이 그동안 쌓아 올린 경험이 너무 많다.

“주인이 바뀌었지 않나! 주인이 바뀌면 가게의 분위기도 바뀌는 법! 예전에 시찰을 했든 안 했든, 이제 다시 시찰을 하는 것이 올바른 법도다! 게다가, 이곳은 금선로에서 가장 허름하고 초라한 풍운객잔이 아닌가! 마땅히 다시 시찰을 해야만 해!”

추개평은 단호하게 소리치며 눈을 부라렸다.

이 말엔 더 이상 장기린도 할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다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시찰이라는 것, 분명 합법적이고 타당한 기준으로 하는 것이오?”

“물론!”

“어떤 기준이 있소?”

“첫째, 청결! 둘째, 안전성! 셋째, 품위!”

추개평의 답은 망설임 없이 튀어나왔다.

잠시간의 눈싸움 끝에 장기린은 한 발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주었다.

“……알겠소. 시찰을 받겠소.”

길은 내주었지만 날카로운 시선은 추개평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일단 논리는 타당하니 지켜봐야 하겠지만, 느낌이 영 꺼림칙했다.

추개평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성큼성큼 구석에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그의 이름은 추개평.

나이는 어느새 불혹을 훌쩍 넘어 지천명(知天命:50세)이 되어 간다. 학문에 재능이 없어 학사가 되거나 중앙 정계에 진출하진 못했으나, 타고난 수완과 줄타기로 항주동사금선시어사(航州東司金仙侍御史)가 된 것은 그의 인생의 큰 자랑이었다.

항주 동쪽 금선로의 법을 감찰하는 시어사의 관직은, 종칠품에 녹봉은 칠백 석밖에 안 되는 말단직이지만, 그 권세만큼은 대단했다.

정사품의 높으신 관리들도 항주에선 그에게 쩔쩔매야만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뒷돈으로 들어오는 액수도 제법 쏠쏠했다.

가끔 심심할 때 ‘시찰이요!’하고 털레털레 놀러 가면, 객잔 주인들이 알아서 극진히 대접하고, 게다가 은자 몇 냥 정도를 용돈으로 챙겨 주는 것이다.

한림원 학사 출신이 아니고서야, 이보다 좋은 자리를 어떻게 구하겠는가.

그래서 그는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

경쟁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잘라 버리고, 높으신 분들이 있으면 온갖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궂은일을 다 하면서도 안면을 트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가끔 목이 간당간당한 위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간 엮어 놓은 연줄을 이용해 미꾸라지 도망치듯 미끈하게 빠져나갔다.

‘그 덕에 이만큼이나 해 먹는 거지. 암!’

아무리 주변에서 그가 큰손들에게 붙어서 기생하는 ‘개평쟁이’라느니 ‘개평이나 뜯어먹고 사는 놈’이라느니 하며 놀려도, 그는 그깟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부러워서 하는 투정이다.

원래 남이 해 먹으면 배가 아픈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의 소신은 확실했다.

연줄이 최고다.

높으신 분의 줄만 잘 잡고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그러던 중, 이번에 ‘문 승상’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야말로 천하에 다시없는 기회였다.

지부 대인 문표.

현재 정일품의 관직을 가진 정계의 거물이며, 조만간 실질적인 명의 재상인 내각대학사나, 또는 최고 관직인 삼공(三公) 중의 하나인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추대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명실상부한 최상위 권력자였다.

물론 직접 만난 것은 아니고, 도찰원의 부도어사(副都御史)를 통해 전달된 명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이 명령을 수행하고 나면 그는 천하의 문 대인과 연줄을 맺게 되는 것이다.

원래 뒤처리라는 게 그런 거다. 뭔가 구린 일을 해 주는 대신, 그 일을 시킨 사람에 대해 그만한 약점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일을 한 번 하고 나면, 그다음부턴 서로가 서로를 돌봐 주는 관계가 되는 것 아니던가.

‘풍운객잔이라…….’

그가 해야 할 일을 들었을 때, 그는 얻는 것에 비해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풍운객잔은 뒷배를 봐주는 파락호도 없고, 그렇다고 커다란 연줄이 있을 만한 곳도 아니다.

말 그대로 바람만 ‘훅’ 불어도 쓰러질 것처럼 초라한 곳이니, 문 대인 정도의 인물이 신경을 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추개평은 풍운객잔의 주인인 장기린이라는 인물을 만나 보자, 왜 문 대인이 그에게 직접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도대체 뭘하던 놈인지 눈빛이 보통이 아니고, 말하는 걸 보니 성격도 만만치가 않다.

그야말로 자신만큼이나 경험 많고 능숙한 자가 아니면 처리하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오늘 권력의 쓴맛을 단단히 보게 될 것이다.’

추개평은 속으로 비웃음을 한껏 날려 주며 성큼성큼 구석의 탁자로 다가갔다.

“첫째, 청결! 사람이 식사를 하는 곳이 깨끗하지 않아서야 객잔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객잔 안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명의 손님이 드나드는데, 어떻게 그걸 매번 샅샅이 청소할 수 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트집 잡기엔 최고인 곳이지.’

추개평은 검지를 척하고 들어 올려 그걸로 탁자 위와 의자를 쓸었다.

“으음……?”

그런데 먼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먼지는커녕 식탁이랑 의자 모두 파리도 앉았다가 넘어질 만큼 매끄러웠다.

‘어쭈? 이것 봐라?’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허름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청결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하지만 식탁 위의 보이는 곳이라면 모를까, 식탁 아래의 어두운 곳이나, 식탁 다리 밑의 틈이라던가 하는 곳을 어떻게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겠는가.

‘이곳이야말로……!’

몸을 숙이고 바닥의 틈을 노리자 대번에 주변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이쯤 되면 트집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이냐?

이 몸은 권력의 비호를 받는 관리.

더구나 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문 대인이 뒤를 봐주고 있는데, 이깟 허름한 객잔의 일꾼들을 겁낼 것 같은가!

“봐라. 이것 참, 더럽…….”

‘휙’ 손으로 바닥을 긁어 앞으로 내밀었다.

당연히 더러울 것이다. 새카맣게 되어 있을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는데…….

‘깨, 깨끗해?’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손가락 끝엔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눈을 의심하며 바닥을 두 번, 세 번 손으로 훑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먼지 한 톨 묻어 나오지 않는다. 객잔의 바닥은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무슨,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멍청하게 홀로 중얼거리는 사이, 꼬마 점소이 둘이 쪼르르 달려와 자랑스런 얼굴로 말했다.

“관리님! 저희가 얼마나 청소를 열심히 하는데요?”

“청결 하나는 확실히 자부할 수 있어요!”

“어디를 찾아보시든 다 깨끗하실걸요?”

뿌듯한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하는 두 꼬마.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마치 약을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오기가 생겼다.

‘오냐, 한번 해보자 이거지?’

천하의 추개평. 이 정도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꼬마 둘을 옆으로 밀치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벽에 있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흐흐, 창틀, 문지방. 이런 곳은 절대로 깨끗할 수 없는 곳이지. 분명히 먼지가 있다. 여기까지 깨끗할 수는…….’

창틀을 손가락으로 ‘슥’ 훑어 낸 추개평.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문질렀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대문으로 달려가 문 아래쪽의 문지방도 훑어보았다.

그의 눈 밑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이런 젠장! 이 자식들! 평소에 청소만 하는 거냐!”

성질이 나서 소리를 버럭 지르자 꼬마 둘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이것들은 하라는 장사는 안 하고 평소에 청소만 했단 말인가? 어떻게 창틀까지 깨끗할 수가 있는 것이지?’

“왜 깨끗한데 화를 내지?”

“바보야. 트집을 잡아야 하는데 잘 안 되니까 그렇지.”

“아, 그래?”

“그래, 그런 거야.”

꼬마 둘이 소근거린답시고 하는 말들이 더더욱 화를 돋웠다.

추개평은 화가 나서 숨을 씩씩거렸다.

‘혹시 내가 온다는 정보가 샜나?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공을 나눠 가질까 봐 상부에도 안 알리고 내 마음대로 나온 건데. 이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끄응…….”

“…….”

“…….”

주변에서 날아오는 무언의 압력.

속이 쓰리지만 이번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청결…… 통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군.”

통과라는 말이 나오자 장기린이라는 놈의 얼굴이 눈에 띄게 풀어진다.

꼬마 점소이 둘도 뛸 듯이 기뻐하며 해맑게 웃어 댔다.

‘흥. 이걸로 끝이 아니다. 운 좋은 놈들.’

추개평은 불편한 목소리로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곧장 뒷짐을 진 채 계단으로 올라갔다.

“둘째, 안전성! 하루를 통째로 머무는 곳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안락해야 하는 법!”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자, 그가 데리고 다니는 좌우 호위의 뒤로 노란색 경장을 입은 젊은 여인이 뒤따라 올라왔다.

추개평이 누군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흠!”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화용월태. 경국지색.

온갖 미사여구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도저히 하나로 축약할 수가 없다. 미인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미모였다.

순간적으로 지금 해야 할 일을 잊고 엉뚱한 마음이 들 만큼.

‘안 돼, 안 돼. 문 대인이다. 문 대인이 얽힌 일이야! 딴마음을 먹었다간 일이 몽땅 엉망이 될 것이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마음을 꾹 눌러 참고, 되도록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당신이 이곳의 침모라던 진휘연이겠군.”

“저를 아세요?”

“뭐, 말은 들었지. 미래의 항주제일화가 될 뻔했다고.”

“…….”

“커험! 집안이 힘들게 되었다지?”

“시.찰.해 보시죠. 합법적이고 타당한 기준으로 시찰하신다면, 저희는 자신 있어요.”

애써 말을 걸어 줬건만 진휘연으로부턴 싸늘한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추개평의 얼굴이 붉어졌다. 계집애가 얼마나 도도한지 겨울철 칼바람이 따뜻해 보일 만큼 쌀쌀맞았다.

“커험! 커험!”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숨기면서 비어 있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건 또 뭐야?!’

얼굴이 확 찌푸려져 버렸다.

환한 햇살과 함께 진한 대나무 향이 코끝으로 밀려온다. 적당한 크기의 침상 하나. 그 옆에 놓인 자그마한 다탁.

방 안에 있는 거라곤 겨우 그게 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집을 잡을 만큼 더럽거나 허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젠장! 생각보다 괜찮잖아? 조사를 왜 이따위로 한 거야? 거지 소굴 같다면서? 당장이라도 천장이 부서질 것 같은 부실한 방이라면서?’

분명 낡기는 했다. 천장의 목재도 낡았고, 들어오면서 봤던 풍운객잔의 외관만 봐도 골재가 낡았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보수를 했는지 깔끔하게 옻칠이 된 천장. 커다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벽지마냥 주르륵 붙여 놓은 벽면. 침상과 그 위에 깔린 침구도 모두 깨끗한 새것이었다.

“커험! 다른 방을 한번 보지.”

혹시 이게 가장 좋은 방인 건 아닌가 싶어서, 그 뒤로도 옆의 방을 세 개나 더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었다.

‘여기서도 통과를 주면 안 되는데……!’

세 개 중 두 개는 탈락을 줘야, 영업을 정지시킬 수 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는 길에 슬쩍 바닥을 손으로 훑어보았지만, 이곳도 역시나 엄청나게 깨끗했다. 다 털어 봤자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아! 그래!’

추개평은 씩 웃었다. 좋은 방법이 하나 생각난 것이다.

“흐음, 보기엔 좋아 보이는구먼.”

“그렇죠?”

“그런데 말이지. 사람은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험에도 처하게 되기 마련이지.”

“네?”

의아해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씩 웃어 주었다.

그는 침상 위의 이불을 손바닥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일부러 발을 헛딛으며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어이쿠!”

휘청. 넘어지는 척하면서 발로 다탁을 세게 짓밟았다.

우지끈!

“아앗?!”

“시어사님!”

휘연이 경호성을 지르고, 뒤에 시립해 있던 두 명의 호위가 재빨리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추개평은 발목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피잖아!”

물론 자그마한 상처다. 상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실선 정도지만, 어쨌든 피는 피.

그는 깜짝 놀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렇게 위험할 수가 있나! 풍운객잔은 아주 아주 아주 위험한 다탁을 쓰는구만!”

일부러 발목을 잡고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시어사님!”

“아이고! 사람 죽는다! 아파! 사람 살려!”

파편 때문에 등이 조금 배기지만 이 정도도 못 참아서야 어찌 문 대인의 일을 할까.

엄살을 실컷 부리다가 슬쩍 고개를 들자 황당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는 미인의 얼굴이 보였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일부러 다탁을 부순 거잖아요!”

“일부러 부수다니? 누가?”

그는 씩 웃으면서 능청을 떨었다.

좌우 호위가 그를 일으켜 주었다.

“살짝 발만 댔는데 부서져 버렸구만, 무슨 소리야! 방금 못 봤어?”

휘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똑똑히 봤죠! 무릎을 가슴까지 들었다가 내려찍던데! 그게 살짝 발만 댄 거면, 제대로 발길질을 했다간 바닥도 부서지겠네요!”

“커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구만!”

“인정 못 해요! 적법하고 타당한 기준으로 판단한다면서요! 남의 객잔 기물을 파손하는 게 적법하고 타당한 기준이에요?”

“어허! 모르는 소리!”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똑똑한 여아지만, 이 바닥에서 이십 년을 넘게 굴러먹은 그를 이기기엔 한참 멀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다가 침상에서 떨어지면서 다탁을 발로 내려칠 수도 있는 거야!”

휘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 누가 자다가 다탁에 발길질을 해요!”

“그럴 수도 있지! 잠버릇이 고약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억지예요!”

추개평은 씩 웃었다.

“억지라고?”

침상에 턱 하고 걸터앉았다가 몸을 눕혀 그대로 옆으로 떨어졌다.

쿵―!

“어이쿠! 자다가 넘어졌네! 아프다, 아파!”

“…….”

“아이고, 아이고! 실수로 다탁을 발로 찼네! 파편이 옆구리를 찔렀어!”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매우 차갑지만, 문 대인의 일을 하고 있는 시어사 추개평은 이깟 일로 굴하지 않는다.

이래서 어린 계집애는 안 된다. 그렇게 고고하게 품위 지킬 거 다 지키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좌우 호위가 다가와 다시 그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술 먹고 자러 오면 몸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때도 이 다탁은 이렇게 쉽게 부서질 텐데? 그리고 부서지면 뾰족한 파편이 돼서 사람을 위험하게 할 테고. 내 말이 틀린가? 그때는 어떻게 할 거지? 사람이 죽어 나갈 수도 있는데 무시하라고? 대명제국의 관리인 나는 그렇게는 못 해!”

“…….”

“그쪽은 사람이 다쳐도 상관이 없나?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 보지그래?”

예쁘장한 얼굴 위로 분하다는 듯 홍조가 떠올랐지만, 딱히 반박하진 못하고 숨만 거칠게 씩씩거렸다.

사실 억지는 억지다.

그런 경우를 생각한다면, 방 안에 놓을 수 있는 가구는 아무것도 없을 테니 다른 객잔에서도 방 안의 모든 물품을 없애야 할 테니까.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탁이 부서져서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억지는 억지지만, 꽤 타당성이 있는 억지라는 게 이 말의 강점인 것이다.

‘계집애야.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이참에 똑똑히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이쿠! 미끄럽다!”

다시 한 번 넘어지는 듯한 연기.

그리고,

우지끈!

이번엔 벽지처럼 붙여 놓은 대나무들을 세 개 정도 부쉈다.

“위험하다 위험해! 이 방은 위험한 것 천지구나!”

슬쩍 쳐다보자 이제 휘연은 허탈한 얼굴로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쯤 되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추개평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전성……. 불통(不通)!”

☆ ☆ ☆

“안전성……. 불통!”

장기린은 의자에 묵묵히 팔짱을 끼고 앉아서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운찬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남궁휴는 싸리비를 손에 든 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객주님! 객주니임―!”

위층으로 올라갔던 쌍둥이 중 아칠이 울상이 되어 뛰어내려 왔다.

“불통이래요! 억지예요! 말도 안 돼요!”

아칠은 억울하고 분한지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트집을 잡고,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웠어요! 다탁이 잘 부서져서 위험하대요! 벽에 붙인 대나무가 위험하대요!”

“……그래?”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칠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적의를 가지고 온 자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풍운객잔에 영업정지를 선고할 거라는 것은, 그 염소수염이 거만하게 배를 불뚝 내밀고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까 기준이 세 개라고 그랬지? 청결, 안전성, 품위였나?”

“네에, 그렇게 말했어요.”

“품위, 품위라…….”

장기린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그 순간 많은 것을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생각한 것을 말하기는 꺼려졌다.

이래서 천성은 못 버린다는 걸까?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해결책들은 하나같이 난폭하고 거친 방법뿐이었다. 염소수염의 사내가 알게 된다면 기겁하면서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칠 법한, 그런 방법들.

‘그래서야 안 되지.’

장기린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평범하게 사는 거다.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커험! 안전성은 불통이다!”

“…….”

“왜 대답이 없어! 시어사의 판단에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그럼 지금이라도 말하지그래? 항주 자사님께 말씀드려서 강제 폐점을 해 버리게 말이야.”

……취소.

평범한 사람으로 살려는 다짐이 흔들리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배를 불룩하게 내민 채로 소리치는 추개평을 보니 그냥 모든 것을 잊고 예전의 ‘붉은 악귀’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목적을 이뤘다는 듯 득의양양한 얼굴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 뒤에서 기죽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휘연의 얼굴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 진짜……!’

울컥해서 나서려는데 운찬과 남궁휴가 쌍둥이처럼 똑같이 간절한 눈으로 만류해 왔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은 명백했다.

참아라.

객잔을 위해 참아야 한다.

“불만은 없는 거겠지?”

“…….”

“이제 마지막으로 품위 부분만 남았는데…….”

추개평은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미리 조사해 놓은 것이 있지. 좌 호위?”

“예.”

“그것을.”

추개평이 옆으로 손바닥을 내밀자, 좌 호위라고 불린 사내는 품속에서 둘둘 말려 있던 서찰 뭉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 ‘품위’라는 항목은 시찰에서 보는 요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항주 금선로의 품위를 유지하는 거야말로 항주를 위한 길이며, 또한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는 길이니까.”

“…….”

“커험! 자, 품위 항목은 여러 가지 요건들 중에 세 번의 감점이 있으면 불통으로 처리된다. 처음에 말했듯이 아주아주 적법하고 타당한 기준으로 심사를 할 테니, 알아 두도록.”

“……알겠소.”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빨리 할 말이나 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추개평은 흠칫한 얼굴로 거칠게 헛기침을 했다.

“커허험! 우선 첫 번째, 외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항주 금선로에 있는 다른 객잔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거리의 분위기를 해칠 정도지. 그래서 감점 하나다.”

“잠깐만요!”

지금껏 시무룩한 얼굴로 발끝을 바라보고 있던 휘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건 지금 수리 중이라고요! 보시면 알겠지만 일부러 가져다 심은 담쟁이 모종이 한창 벽을 타고 자라는 중이고, 그 담쟁이넝쿨이 벽을 다 덮은 다음에 봄이 돼서 꽃이 한가득 피면 분명 멋진 모습이 될…….”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추개평은 반박을 예상했다는 듯 씩 웃었다.

“내가 시찰을 하는 건 지금이다. 지금 벽에 담쟁이넝쿨이 있고 꽃이 한가득 피어 있나? 아니지? 그럼 논할 가치가 없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금선로의 품위에 걸맞게 멋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

“자, 그럼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지.”

장기린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분노를 참는 휘연에게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미 작정을 하고 온 자다. 하나하나 상대하고 반박해 봤자 이쪽의 심력만 낭비시키는 일이다.

“두 번째! 남궁세가의 장자, 남궁휴!”

“……?!”

느닷없는 호명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휴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바로 세웠다.

“명문 세가의 이름을 더럽히고, 방탕한 생활을 일관했으며, 나라에서 법으로 금하는 대규모 도박을 상습적으로 행해 온 속칭 항주 팔도신 중의 한 사람. 금선로 암흑가에서도 쫓기고 있고……. 현재 항주관에서 작성한 주의 관찰 인명록에도 이름이 올라 있음. 이런 사람이 객잔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품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일 아닌가?”

추개평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마치 장난으로 쥐를 갖고 놀다 죽이는 고양이처럼.

야비함으로 가득한 눈이 남궁휴와 장기린을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었다.

“잠깐!”

남궁휴가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뭐?”

“난 며칠 이곳에서 묵었을 뿐, 이곳에서 일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나 때문에 감점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말입니다!”

남궁휴의 말투는 어느새 처음 만났을 때처럼 껄렁껄렁하게 돌아와 있었다. 남궁휴는 들고 있던 싸리비를 옆에 조심스레 기대어 놓고 팔짱을 낀 채 건들거리며 짝다리를 짚고 섰다.

“이것 보십시오, 시어사 양반.”

“뭐? 시어사 양바안―?”

도발적인 말투에, 권위에 민감한 추개평의 낯빛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팔도신으로 있을 때 하루에 얼마를 만졌는지 아십니까? 아니, 하루도 아니지. 한 판에 얼마를 만졌는지 아십니까? 기본이 은자 백 냥이었습니다. 기본이! 판이 좀 세게 흘러간다 싶으면 천 냥, 이천 냥도 우스웠고! 그런 내가 갑자기 은자 한두 냥 벌자고 객잔 하인 일을 하면서 뼈 빠지게 일한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추개평은 잠시 움찔하며 남궁휴를 노려보았다.

“거짓말이다!”

“사실입니다.”

“지금 상황만 쏙 빠져나가려는 수작이겠지. 그럼 이 객잔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에서 사라져라. 그리고 앞으로도 여기서 볼일은 없을 테지?”

남궁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아, 하지만 이 객잔에 빚이 좀 있습니다.”

“뭐야?”

“그걸 다 갚을 때까진 떠나 버리기가 좀 찝찝해서 말입니다.”

추개평의 얼굴이 벌게졌다.

“결국, 일하는 거 맞잖아!”

“일하는 거랑은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그냥 제가 스스로 여기서 시간 보내면서 대충 청소나 돕고 있다 이겁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장기린은 남궁휴의 진지한 눈빛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자기 때문에 객잔이 피해를 입는 게 싫어서 일하지 않는 척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걸 허락하라고 눈빛으로 종용하고 있었다.

‘객주님, 그렇다고 하십시오! 그게 풍운객잔이 사는 길입니다!’

눈빛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그런 말이 귀에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연한 목소리.

진지하게 각오한 목소리로.

“아니.”

하지만 장기린의 대답은 단호했다.

“헛……!”

“으음?”

의외였던지 추개평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니라고? 그 말은, 남궁휴가 이곳에서 일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소.”

추개평은 찝찝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러면 감점을 당할 텐데?”

“할 수 없지. 그렇다고 해도 남궁휴가 우리 식구라는 것은 변함이 없소.”

“객주님!!”

“시끄러워. 멍청하게 굴지 마!”

느닷없는 질책에 남궁휴의 얼굴이 멍해진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 굳어 있다가, 이내 억울한지 눈빛이 흔들렸다.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의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어.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나보고 가족을 팔아먹으라는 거냐?”

“객주님, 팔아먹는 게 아니라…….”

“단 한순간이라도! 나는 내 가족을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거다. 남궁휴, 너도 우리 가족이야.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만약 다음에 한 번만 더 여기서 일하는 게 아니라느니 그딴 말을 하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

“알았어, 몰랐어?”

되묻는 말에 남궁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기분 나쁜 얼굴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눈가가 촉촉한 것이, 감격한 듯,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족……인가?’

문득 남궁휴를 버린 거나 다름없다던 남궁세가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궁휴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뒤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추개평이 마치 벌레를 씹은 것처럼 찝찝한 얼굴로 쯧쯧 혀를 찼다.

“결국 남궁휴는 풍운객잔의 가족이다, 이건가?”

“그렇소.”

“뭐, 나야 좋……. 크흠! 아무튼, 감점! 이제 남은 점수는 하나!”

점수는 감점되었지만, 풍운객잔 식구들 사이에선 오히려 더욱 끈끈하고 단결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추개평은 주변의 적대적인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한 바퀴를 돌았다. 마치 부채를 부치듯 손에 쥐고 흔드는 서찰이 신경 쓰였다.

“자 그럼, 마지막 하나인데…….”

추개평은 슬쩍 휘연을 한 번 쳐다본 뒤, ‘커험!’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풍운객잔 숙수 강운찬!”

주방 앞에서 불만스런 얼굴로 추개평을 째려보던 운찬이 화들짝 놀랐다.

“어, 에, 네?”

“객잔에 대해 조사하다가, 아주아주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는데 말이지…….”

“문제요?”

“흠, 그게 말이지…….”

추개평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말을 질질 끌며 씩 웃었다.

“혹시, 항주숙수연합 인증서를 가지고 있나?”

“……예?”

“항.주.숙.수.연.합. 인.증.서. 가지고 있나?”

운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대번에 깨달은 것이다.

“그게……. 왜요?”

“허어! 이것 참. 황당하구먼. 항주숙수연합 인증서가 뭔지도 모른단 말이지?”

“아니, 그게 뭔지는 알아요.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요?”

“당연히 문제가 되지! 그 인증서가 없으면 객잔의 주방을 책임질 수 없는데!”

한심하다는 듯한 추개평의 말이었다.

운찬의 대답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터져 나왔다.

“예에―?!”

운찬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그런 말은 들은 적도 없다구요! 객잔에서 요리하는데 인증서가 왜 필요해요!”

“필요해.”

“그런 게 어디 있……!”

“그런 게 여기 있다. 항주 객잔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야. 불만이 있으면 항주 밖에서 요리하던지.”

추개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품속에서 서찰을 한 장 더 꺼냈다.

“항주의 객잔과 주루에 대한 특별 법률. 일 조 삼 항. 항주 ‘금선로’에서 객잔 또는 주루를 책임지는 대표 숙수의 경우, 그 지역을 관할하는 대숙수 삼 인의 인정을 받고, 인증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항주 대요리 경연 또는 금선 숙수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만약 이 자격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항주 금선로에서 주방을 책임지는 일은 불허한다.”

“…….”

“뭐, 항주 금선로에만 있는 법이니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 그래서, 불만 있나?”

씩 웃으며 법률이 적힌 서찰을 내미는 추개평이었다.

운찬은 고개를 떨구었다. 서찰에 ‘법률을 어길 경우 태형 삼십 대 또는 은자 사십 냥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쓰여 있는데 불만이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없……어요.”

“그래? 그럼 인정하는 걸로 해서……. 감점 일!”

추개평은 서찰을 접어서 품 안에 넣고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쳤다.

“객잔의 부족한 외관! 남궁휴란 인물의 부적절함! 대표 숙수의 자격 미달! 도합 세 개의 감점이었으므로 ‘품위’ 항목은 불통이다. 즉, 총 세 개의 항목 중 ‘안정성’과 ‘품위’ 두 개의 항목이 불통이므로, 나 항주동사금선시어사 추개평은 모든 자격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풍운객잔의 무기한 영업정지를 명한다! 이는 항주 자사의 정당한 명이며, 이를 거부할 시, 서찰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추개평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그렇게 선언한 뒤 미리 준비해 온 ‘영업정지 동의서’를 장기린에게 내밀었다.

“자, 지장을 찍도록.”

“…….”

“왜? 아, 인주가 없어서 그러나? 이봐, 우 호위. 준비해 왔지?”

“예, 물론입니다.”

우 호위라고 불린 인물은 품속에서 빨간 인주가 들어 있는 동글납작한 나무통을 꺼내 들었다.

“자, 찍지?”

“…….”

장기린은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고, 묵묵히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었다. ‘영업정지 동의서’라고 쓰여 있는 서찰에 그의 손가락이 무늬를 찍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여기선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다음 싸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땐 지지 않아.’

장기린은 지장이 찍히자마자 누가 빼앗아 갈세라 재빨리 서찰을 품에 집어넣는 추개평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잠깐, 물어볼 게 있소.”

“뭐지?”

추개평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 영업정지 조건. 분명 ‘안전성’과 ‘품위’. 맞소?”

“음, 맞다.”

“안전성은 객실의 가구와 벽이 튼튼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품위는 운찬이 항주에서 발행하는 숙수 인증서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 맞소?”

“하나 더 있다. 범법자를 고용한 것.”

“……휴는 범법자가 아니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주의 관찰 인명록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범법자지.”

“…….”

장기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것들을 모두 고치면 다시 객잔 영업을 재개할 수 있는 것이오?”

“뭐, 법률상으론 그렇다.”

추개평은 대답은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비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겠소.”

“……음?”

“그거면 됐소.”

순순히 인정한 게 이상한지 추개평이 찝찝한 얼굴로 이쪽을 흘깃흘깃 바라본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다시 영업을 재개하려고 할까 봐 불안한 듯한 눈치다.

“설마, 다시 시작하려고?”

“…….”

장기린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일을 지시한 것. 누가 시켜서 한 일이오?”

“엉? 뭐라고?”

“누가 위에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시찰을 나왔을 거 아니오? 원래 관에서 하는 일이 그런 것 아닌가?”

추개평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관에 대해서 좀 아나 보지?”

“어느 정도 알고 있소.”

“호오, 그래? 그나저나 어디서 지시가 내려왔는지 알면 뭐하게?”

“…….”

“미안하지만, 알아봤자 까무러치기나 할걸? 상상 이상으로 높은 분이라서 말이야. 충고하는데, 엉뚱한 생각은 하지도 말고, 하물며 슬쩍 뒤를 캐볼 생각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추개평은 선심 쓰듯 장기린의 귀로 가까이 다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같은 ‘평범한’ 놈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할 분이시거든.”

“…….”

“그동안 금선로에서 얼마나 까불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했어야지. 함부로 설치고 다니니까 일이 이렇게나 커지는 거다. 그러게 평범한 놈들은 평범한 놈들끼리 놀았어야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추개평이 점점 멀어져 간다.

장기린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그의 소매를 잡아끈 다음에도, 운찬, 남궁휴, 아칠과 아팔이 어두운 표정으로 옆에 늘어설 때까지도, 가만히 있던 그는 갑자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

옆에 서 있던 휘연과 운찬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객주님?”

“형님……?”

장기린은 계속해서 웃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 건 알지만, 도저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천하의 장기린이 드디어 ‘평범한 놈’ 소리를 들을 줄이야.

그것도 처음으로 인정받은 대상이 추개평이라는 이름의 더러운 관리 놈이라니…….

“평범한 놈이라…….”

십수 년간 바라온 소원이 드디어 이뤄진 모양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래, 모든 것엔 대가가 있다.

평범하게 사는 대신 권력에 순응하고, 자신을 숨겨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범한 삶의 대가다.

“그래. 그럼 ‘평범’한 사람답게 해결해 볼까?”

기지개를 펴고 가뿐한 웃음을 지으니, 주변에서는 이쪽을 멍하게 바라본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 것이 그렇게나 이상한 일인 걸까? 안심하라는 뜻으로 한층 더 진하게 웃어 주자, 멍한 얼굴에 미미한 공포마저 서렸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객주님, 왜 웃으십니까?”

“영업정지된 게 기분이 좋으신 거예요?”

슬금슬금 몸을 옆으로 피하기까지 하는 객잔의 식구들을 보며 다시 한 번씩 웃어 주었다.

그러자 다시금 경직되는 공기.

“하하하!”

장기린은 소리 내어 웃은 뒤, 창가 쪽의 탁자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손짓을 해서 식구들을 부르려다가 눈가가 경직되었다.

‘음……?’

……아직 긴장이 덜 풀리긴 한 모양이다.

창 밖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살피는 ‘정찰’의 눈이 느껴지니 말이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한 은밀한 시선.

사람들이 많으니 은폐물도 완벽하고, 기척도 분산되어 있다.

‘나를 노리는 것 맞나?’

문득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고도로 훈련받은 것이 분명한 사람이, 고작 풍운객잔의 ‘장기린’을 살필 이유가 있을까?

‘아니, 그럴 수도 있나? 다른 객잔에서 보냈다면?’

창밖을 다시 내다보았으나,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며 붐비는 금선로에서 사람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다.

좀 더 기다리며 상황을 살펴야지.

그는 창밖을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객잔 식구들에게 손짓을 했다.

“다들 모여 봐. 할 말이 있으니.”

이번 일은 심각한 사안.

객잔 식구들 모두의 의견을 필요로 한다.

장기린은 모두를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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