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2화 (22/686)

第二十一章 ― 적풍암행(赤風暗行)

무당파 쌍절진인의 수제자.

적룡기마대의 부대주.

장기린의 부재 시 모두를 이끌 책임이 있는 부운화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장기린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져 버린 것이다.

‘대형이, 저렇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지난 며칠간 풍운객잔을 밖에서 지켜보며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알던 장기린이 아니다.

‘붉은 악귀’라고 불리며, 그 이름만 대도 북로에 있는 몽고병들이 모조리 공포에 떨며 도망가게 만들던 그 가공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예전의 장기린은 이렇지 않았다.

물론 형제들에겐 잘해 주었지만, 그건 무뚝뚝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따뜻한 면을 형제들이 알아차린 것 때문이지, 저렇게 평소에도 웃는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던 것이다.

‘대형, 행복하시군요.’

멀리서만 봐도 느껴진다. 그가 지금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겐 지금의 장기린도 무뚝뚝해 보이겠지만, 지난 십수 년을 함께한 부운화의 눈엔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던 만년설이 사르르 녹다 못해 이젠 먹기 좋게 따뜻하게 데워진 것처럼 보였다.

‘원래 계획은 이쯤에서 인사를 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게 정말 잘하는 일인지. 대형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 최선인지.

“둘째 형님? 여기서 뭐하시는…… 읍!”

“쉿!”

부운화는 시장통에서 먹을 것을 몇 개 사 가지고 돌아오는 진구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고는 근처의 골목에 몸을 숨겼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 탓일까.

창가에 앉은 장기린의 시선이 마지막에 분명 이쪽을 향했다. 허튼 행동은 절대로 안 하는 사람이니 이쪽의 기척을 느낀 게 분명했다.

“삼십 장이 넘는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었는데 어떻게 찾아냈지? 예전 같으면 못 찾았을 텐데……. 설마 쉬면서 더 강해지신 건가?”

처음 항주에 왔던 날, 두 사람이 풍운객잔을 처음 봤던 날. 그때도 대형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본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보다 훨씬 주의를 했는데도 알아차리다니.

정말로 괴물 같은 사람이다.

매일매일, 나이를 먹을 때마다 자연스레 강해져 버리니 따라가기가 벅찰 지경 아닌가.

‘하긴, 그래야 대형이지. 적룡기마대의 영원한 대장. 대장군의 말씀대로 대형은 하늘의 실수야.’

어릴 적, 처음 그를 봤을 때도 그는 강했다. 부운화보다 훨씬.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는 무당파의 직전제자보다도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진중하고, 말이 적고, 다른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대형은 항상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듯한……. 현실에서 한 발을 빼놓고 있는 듯한, 그런 초탈함…….’

부운화는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결정했다.

그렇다.

그의 앞에 나타나선 안 된다.

적어도, 지금처럼 그가 행복할 때는.

“푸하―! 퉤, 퉤. 둘째 형님, 왜 그래요? 혹시 대형한테 들키셨어요?”

입을 틀어막다가 입속에 손가락이 들어갔었는지, 진구는 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며 찝찌름한 표정을 지었다.

“들킬 ‘뻔’했지.”

“예에?”

진구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둘째 형님이요? 그것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아마, 그동안 대형은 더 강해진 모양이다.”

“…….”

“당장 찾아가서 겨루고 싶은 표정은 그만둬. 우린 지금 대형과 만나선 안 돼.”

부운화가 단호하게 말하자, 진구의 얼굴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둘째 형님, 저번에도 묻고 싶었는데……. 우리가 왜 찾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대형이 우리 만나는 걸 싫어하나요?”

“그럴 리가 없잖냐.”

“그럼 왜요? 왜, 떨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데, 이렇게 숨어서 지켜봐야 하는 거예요?”

진구는 그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지난 며칠간은 군말 없이 따라 주었지만, 이젠 묻지 않고는 못 버틸 정도가 된 것 같았다.

“진구야.”

“예, 둘째 형님.”

“대형이 네 목숨을 몇 번 구해 주셨지?”

진구는 곰곰이 생각하며 손가락을 접었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무 번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아니. 아마 사십 번이 넘을 거다.”

“예?!”

“너는 돌진할 때 뒤쪽을 안 돌아보는 습관이 있지. 대형은 네가 모르게 너를 구해 주는 경우가 많았어.”

“그, 그랬나요?”

“그래. 사십 번……. 즉, 사십 개의 목숨을 대형께 빚진 거다. 자, 그럼 반대로 생각해 봐라. 너는 대형을 몇 번 구해 드렸지?”

“윽!”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찔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진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필사적으로 생각해 내려고 했다.

“흑룡의 편자가 고장 난 걸 미리 알아서 바꿔 준 적이 있어요!”

“그건, 대형의 목숨을 구해 드린 게 아니지.”

“그, 그럼, 매번 대형이 식사하시기 전에 제가 독물이 있나 없나 검사했던 건…….”

“그건 네가 배고픈 걸 참지 못해서 자청해서 한 일이었잖냐.”

“막사를 청소해 드린 건…….”

“진구야. 점점 목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몇 개의 예시를 더 말해 본 진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없네요…….”

“그래. 우린 그렇게나 도움을 받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대형께 뭘 해 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운화는 기죽은 진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미 알겠지만, 대형은 공손 대장군에 대한 의무와 의리로 싸우셨을 뿐이지, 단 한 번도 전장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 나타나면…… 대형은 아직도 자신이 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하실 거다.”

진구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숙여진다.

“그럼……. 결국, 대형은……. 우릴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신 거네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이건 그보다 복잡한 이야기야. 다만 시간을 드리자는 거다. 나중에 대형의 생활이 좀 안정되었을 때, 그때 당당하게 만나러 가자는 뜻이지.”

“……그래요?”

“그래, 그런 거다.”

진구의 귀가 조금 쫑긋하긴 했지만, 아직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역시, 아무리 다 자란 척해도 애는 애다.

부운화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진구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예?”

“대형께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 너도 봤지? 지금 이곳엔 몽고에서 온 놈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 그런 것에 대형이 휩쓸리게 둘 수는 없지. 그렇지 않아?”

“그,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키는 거다. 대형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암중에서 몰래 저곳을 보호하고 지키는 거야.”

“아……?!”

진구는 감탄한 듯 입을 쩍 벌리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암중에서 수호하는 건가요! 오오! 나 그거 정말로 해 보고 싶었는데!”

“그래. 대형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예! 제가 지킬 거예요! 엄한 놈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그리고……. 하하, 대형께 안 들키는 것도 꽤 재밌겠는데요?”

진구의 표정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장난스럽고, 엉뚱하고, 활기찬 표정.

‘그래, 진구야. 넌 그 상태가 가장 좋다.’

부운화는 즐거워하는 진구에게서 시선을 돌려, ‘영업정지’라는 팻말이 새롭게 걸린 풍운객잔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진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그는 저 간판이 앞에 내걸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거만한 표정을 한 관리가 안으로 들어가고, 한참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느닷없이 영업정지라는 팻말이 내걸렸다?

지금껏 별다른 문제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이렇게 갑자기?

‘대형. 이미 뭔가에 휩쓸리셨군요.’

관리들의 특성상 혼자서 독단으로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 일엔 배후가 있을 것이고, 배후가 있다면, 이 일은 생각보다 큰일이라는 뜻이다.

‘대형…….’

아무래도, 그 암중 수호자라는 역할, 지금 당장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지킨다.”

“예? 둘째 형님?”

“진구, 너는 방으로 돌아가 있어. 혹시 다른 형제들이 오진 않나 관문 쪽을 잘 감시하고. 난 잠시 할 일이 있다.”

“어어? 둘째 형님! 둘째 형님!”

진구가 황급히 부운화를 불렀으나, 이미 부운화는 신묘한 움직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닭고기를 사 왔는데…….”

진구는 난감한 얼굴로 그의 손에 들린 보자기를 내려다봤다. 기름을 발라서 잘 구운 닭 한 마리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습으로 구수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식으면 안 되니까…….”

진구는 변명처럼 중얼거리며 날개를 하나 북 찢어 입에 가져다 넣었다.

콩기름을 바르고 자작나무 불꽃에 구운 닭고기.

쫄깃하면서 끝 부분이 바삭한 껍질 맛이 일품이다.

진구는 닭고기를 씹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골목을 걸어갔다.

☆ ☆ ☆

부운화는 지금 ‘항주관(杭州官)’이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부유한 도시 항주. 그중에서도 유흥가인 금선로 주변을 통괄하고 있는 관청인만큼 그간 전장에서 봐 왔던 관사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웅장했다.

오 층이나 되는 붉은색의 전각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으론 금박인지 순금인지 모를 화려한 장식품들이 바람을 맞아 흔들렸다. 문의 좌우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압하는 커다란 사자상이 두 개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커다란 대문엔 문지기 두 사람이 방만한 자세로 서서 갑자기 나타난 부운화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근처의 주민은 아닌 것 같은데?”

문지기의 목소리엔 경계심과 깔보는 기색이 가득했다.

칼은 등 뒤의 봇짐 속에 숨겨 놓았지만, 양팔의 비구나 다리의 각반 같은 것을 차고 있으니 떠돌이 사냥꾼쯤으로 사람을 폄하하는 것이다.

‘기강이 해이하군.’

사람을 겉모습으로 평가하면 안 되는 법이다.

전쟁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곳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병사들의 부패한 모습을 보자 기분이 안 좋아졌다.

“항주 자사는 중앙 관사에 있을 테고……. 이곳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누구십니까?”

“북로의 공손 대장군 휘하 행군사마(行軍司馬:장군의 보좌관) 부운화라고 한다. 이곳의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말과 함께 품속에서 호패와 군패를 꺼내자, 문지기 두 사람의 태도가 대번에 뒤바뀌었다.

성문을 지키는 위장(衛將)이든 항주 자사를 지키는 호장(護將)이든, 대충 끝에 장(將) 자가 들어간 계급만 해도 그들로선 까마득한 높이인데, 대장군이라면 문지기에 불과한 그들로선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높은 분이시다.

그런 분의 직속 보좌관인 행군사마가 바로 부운화인 것이다.

중앙 정계에 비유하면 무려 정사품의 위치에 맞먹는 높은 계급이었다.

“모,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접객실에서 기다리시면 곧바로 금우현(金宇鉉) 복야(관청의 주인, 6품계)님께 전갈을 올리겠습니다.”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문지기 두 사람.

부운화는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이내 관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지기 두 사람은 끝까지 그의 뒤를 쫓아와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시종에게 차까지 내오게 시킨 뒤에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처음에 범한 무례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역시……. 권력이란 건 필요할 때도 있다.’

부운화는 온몸이 빨려 들어갈 것처럼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행군사마라는 관직을 받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관청 안에 순순히 들어올 수 있었을까? 문지기들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직접 편의를 신경 써 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지.’

대우를 받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그 사람에게 적절한 직위가 없다면 문지기들이 들어줄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힘이고, 그 힘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권력은 그 사람의 직위에서 오는 법이니……. 직위를 가지지 못한 자는 ‘말’을 할 권리조차 지니지 못한다.

‘대형도 직위의 중요성을 좀 알았으면 좋겠건만……. 아니, 아니지. 머리는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권력의 힘은 이해하고 있겠지. 다만 쓸데없이 고지식해서는…….’

부운화는 시종이 끓여 온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나직하게 혀를 찼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공손 대장군은 몇 번이고 장기린에게 ‘장군’직을 제안했었다.

그중 몇 번은 강제로라도 직위를 수여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본인이 고지식하고 뻣뻣한 태도로 번번이 직위 수여를 무산시켰던 것이다.

자신은 대장군을 위해서 싸우는 것으로 족하다고. 다른 위치나 이름 같은 것은 절대로 필요 없다고 극구 사양을 했다.

‘남들은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와서라도 그 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인데 말이지.’

그때 당시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철이 든 부운화는 이제야 장기린이 왜 그랬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장기린은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장기린이 항상 현실에서 한 발짝을 밖으로 빼놓은 사람처럼 초탈하게 굴었던 이유다.

언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떠날 사람.

그러니, 나중에 미련이 될 관직 따윈 그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힘든 건 나였지.’

아주아주 ‘특별한 인물’들로만 구성된 적룡기마대는 절대로 임무를 실패하지 않았고, 또한 그 누구보다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주변의 군부대와의 알력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항상 서로 비교되곤 하니, 보급을 제대로 안 해 주며 심술을 부린다거나, 적룡기마대만 쏙 빼놓고 장군들끼리만 사안을 결정해 작전에 참여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내세워진 것이 바로 부운화다.

적룡기마대의 부대주이자, 장기린의 대행자라고 불릴 만큼 대외적인 일을 대신해 왔던 부운화.

대장군 공손웅은 적룡기마대와 이름 있는 ‘장군’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에 대한 대책으로, 부운화에게 관직을 수여해 버린 것이다.

‘대형이 그때 장군직을 받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일단 장군이 되면, 그 말 한마디에 꼬꾸라져서 벌벌 떨 인물들이 이 땅에 수두룩 빽빽했다.

굳이 고지식하게 거절만 할 게 아니라, 적당히 받을 건 받고, 타협할 건 타협하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건만…….

‘하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비뚤어진 건가?’

부운화는 스스로의 생각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사람이 장포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허둥지둥 접객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비단실로 수가 놓아져 있는 화려한 청색의 장포. 수염과 오관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눈빛은 영리하고 빠릿빠릿한 느낌이다. 입술은 얇고 피부가 하얀 것이, 전체적으로 호남이라기보단 시류를 타는 정치가처럼 보였다.

“항주관을 책임지고 있는 복야, 금우현이라고 합니다.”

재빨리 장포를 제대로 갖춰 입은 금 복야가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반대로 이쪽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금 복야의 눈빛이 잠시 번뜩였으나, 일부러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대장군의 행군사마는 중앙 품계로 정사품.

반면, 관청의 복야는 그 지역이 얼마나 중요하든, 육품계의 자리다.

“이야기는 문지기로부터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북로 공손 대장군 휘하 행군사마 부운화입니다.”

“아, 공손 대장군님 휘하의…….”

“공손 대장군님을 아십니까?”

“물론 알지요. 나라에 단둘뿐이셨던 대장군이셨는데요.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나라의 큰 손실이었습니다.”

금 복야는 매끄럽게 말을 이어받으며 은밀하게 의심스런 눈빛을 던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겉보기보단 나이가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공손 대장군의 행군사마라……. 죄송하지만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군패를 한번 봐도 될는지요?”

“…….”

“아!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제대로 된 대우를 해 드리기 위해선,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까?”

부운화는 속에서 호패와 군패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결국은 ‘이미 죽은 대장군의 휘하에 있는 부장 따위 알게 뭐냐. 관직을 제대로 확인해야 하겠다.’라는 기선 제압이나 다름없다.

금 복야는 군패에 적힌 인장과 서명, 문양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요.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금 복야.

부운화는 그사이 그에 대한 평가를 끝마쳐 가고 있었다.

‘팔다리가 가늘고, 근력이 없다. 덩치는 적지 않지만 구 할이 살. 무기라고는 잡아 본 적도 없는 전형적인 문사. 그리고 이쪽에 대해 아쉬운 태도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줄타기를 할 필요가 없는……. 이미 훌륭한 후원자를 갖고 있군.’

정치가들을 보는 안목은 적룡기마대에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익히게 되었다.

그가 볼 때 지금 눈앞에 있는 금 복야는 아쉬운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미 가진 게 많아서 새로운 연줄은 필요 없고,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

‘좋아. 관청의 복야가 이런 사람인 게 다행이군.’

잘된 일이었다.

평탄하게 살려는 사람은……. 원래, 가장 약한 법이니까.

“금 복야께선 좋은 관리시더군요.”

“예?”

“민초들을 다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잘해도 욕을 먹기 쉬운데, 이만큼이나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지요.”

“하하, 저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얼굴에 금칠을 해 주자 금 복야의 얼굴에 슬쩍 웃음기가 감돈다.

“그러니, 믿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

“바쁘실 테니, 요점만 간단히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북로정벌군의 공손 대장군 휘하에 있었던 관계로, 원의 침략과 정치, 그리고 첩자를 통한 정보전 등을 경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이쪽 항주에 원의 잔당이 유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아시다시피, 원의 첩자라면, 이건 국가적인 중대사입니다. 어사대나 도찰원, 심지어 동창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건입니다.”

금 복야의 얼굴이 대번에 바뀌었다.

어사대, 도찰원, 동창.

어느 곳이든 간에,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선 사신(死神)과도 같은 이름들이다.

반란, 비리, 무능력함을 찾아내는 족속들.

잘못 엮였다간, 단순히 관직을 잃는 것만으론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존재들이었다.

“도, 동창에서 조사를 시작할 거라고요?”

“쉿!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이건 군에서도 극히 비밀입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면……. 금 복야 한 사람의 목숨으로 일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금 복야. 동창의 일 처리를 잘 모르시는군요.”

“예……?”

“제국의 안위가 걸린 일에서 동창이 한 치의 빈틈이라도 남겨 놓을 것 같습니까? 동창은 벌레 먹은 사과는 사과 궤짝 채로 없애 버리고, 그림에 먹물이 한 방울 튀면 아예 그림 자체를 다시 그려 버리는 족속들입니다. 만약 금 복야가 이 일에 연루되어 버릴 경우…… 금 복야는 물론이고, 만에 하나 정보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것입니다.”

“……?!”

이젠 경악하다 못해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리는 금 복야였다.

부운화는 거기서 한 발짝을 더 나아갔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어떤 연줄을 갖고 계시든 이번 일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함부로 끌어들였다간 오히려 더욱 위험해지겠지요. 국가 안보와 원의 잔당이 걸려 있는 이상, 나라에선 이 일을 허투루 처리하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 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발설해선 안 됩니다.”

금 복야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보며, 부운화는 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하, 하지만, 몽고의 잔당들은 모두 힘을 잃고 패퇴했다던데…….”

“분명 그랬지요. 하지만, 원나라 시절 그들이 축적해 놓은 힘은 엄청납니다. 지금도 잠시 중원을 잃고 물러났을 뿐, 몽고의 강대한 기마병단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여전히 호시탐탐 명을 노리고 있지요.”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부탁하는 대로만 일이 처리된다면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요.”

마지막 ‘아마도’에서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금 복야였다.

그는 기가 쭉 빠진 목소리로 항복하듯 말했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부운화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풍운객잔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예? 풍운객잔이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금 복야는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금선로에 있는 그 낡은 객잔 말씀이십니까?”

“예, 그곳입니다.”

“거긴, 무슨 일로 그러시죠?”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예감이 맞았다.

금 복야가 지금 짓는 꺼림칙한 표정은, 분명히 뭔가를 알고 있는데, 그것을 숨기려 할 때 나오는 반응이다.

“뭔가를 알고 계시는군요.”

“…….”

“긴장하지 마십시오. 딱히 다른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금선로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풍운객잔이 영업정지가 되었더군요. 듣자 하니 관청에서 시찰 나온 자가 영업정지를 시킨 것 같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금 복야는 난감한 얼굴로 우물쭈물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시어사가 시찰을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시어사가 알아서 정당하고 공정한 법리에 따라 결정했을 것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시어사가 평소에도 그렇게 시찰을 돕니까?”

“그, 그렇습니다.”

“풍운객잔 말고 다른 곳을 시찰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만.”

“…….”

“제 말이 틀립니까?”

“……시어사는 정기적으로 시찰을 하고 있습니다. 별로 다른 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 복야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숨기는 것이 있다.’

“그렇습니까?”

“예, 풍운객잔은 영업정지 되기 마땅했을 겁니다.”

“……그래요?”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제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지 않으셨군요. 굳이 동창이나 어사대에서 나와야만 이야기하시겠다면……. 좋습니다. 그때 가서 그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제대로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자, 잠깐! 이보시오, 행군사마!”

“저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일부러 냉정하게 몰아붙이며 몸을 돌렸다.

금 복야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정신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여야만 말을 듣는 법이다.

또 이대로 대화가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금 복야는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 절대로 이만한 일을 그냥 넘겨 버릴 배짱이 없다.

부운화는 보란 듯이 더욱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자, 하나둘, ……셋!’

“아,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금 복야는 황급히 다가와 부운화의 소매를 잡아끌고 자리에 다시 앉혔다.

그는 조심스런 눈으로 주변에 누가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본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 대인입니다.”

“……그, 중앙 정계의 문 승상 말입니까?”

“잘 아시는군요. 그분입니다. 자, 이제 원의 잔당 일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지요?”

금 복야는 누군지 알았으니 이제 손을 떼자는 식이었다.

부운화는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

“일이 더욱 커졌는데요. 중앙 정계의 거목인 문 대인이 몽고와 관련되었다니, 잘못하면 궁중에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습니다.”

끄덕끄덕.

부운화는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쩍 벌린 금 복야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말입니까, 그게! 어째서 문 대인이 몽고와 관련이 있습니까?”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제가 몽고의 첩자와 관련된 일로 풍운객잔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일은 문 대인과 관련이 있다면서요?”

“제, 제가 언제?! 크, 크,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그분은 몽고의 일과 전혀 관련이 없어요!”

부운화는 여유롭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손톱을 깔짝거렸다.

“그래요? 그럼 방금 말씀하신 ‘문 대인과 관련 있다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

“말씀 못 하시는군요? 할 수 없죠. 일단은 문 대인도 관련이 있는 걸로 해서…….”

“크윽!! 잠깐, 잠깐! 말하겠습니다!”

만약, 항주 관청의 복야가 문 대인을 모함했다고 알려지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다.

금 복야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대답했다.

“문 대인은 몽고의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풍운객잔을 폐점시킬 방법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에 필요하다면서. 항주 자사의 이름으로 된 명령서를 건네받았습니다.”

“풍운객잔을 폐점시켜라……? 어째서요?”

“그건 모릅니다. 다만 그분이 청풍객잔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청풍객잔이 항상 풍운객잔의 터를 노려 온 것으로 볼 때……. 청풍객잔에서 청탁을 넣었다고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금 복야는 이미 내친걸음이라는 듯 알고 있는 것을 술술 털어놓았다.

‘이제야 그림이 잡히는군.’

항상 풍운객잔의 터를 노려 온 청풍객잔.

청풍객잔이 단골인 문 대인에게 청탁을 넣고, 문 대인은 그를 따르는 인사들을 이용해 풍운객잔을 폐점시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그랬다, 이거지…….’

부운화는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차갑게 눈을 빛냈다.

대형을 건드리는 자.

가만히 두지 않는다.

부운화는 금 복야에게 숨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쿵!’하고 내리쳤다.

“금 복야.”

“왜, 왜 그러십니까?”

“문 대인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도 얼마든지 원의 잔당들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함부로 일에 끼어들어서 명을 재촉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 그럴 리가요. 문 대인처럼 이미 가질 것을 모두 가지신 분이 왜 굳이 원의 잔당과…….”

“원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일수록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내는 법입니다. 원이 반란을 돕는 대가로 진짜 ‘승상’의 자리라도 약속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문 대인이라고 해서 그것을 거부하기만 할까요? 그는 그 정도로 충심이 가득한 애국지사입니까?”

“……!”

금 복야의 눈빛이 혼란스럽게 바뀌었다.

부운화는 몸을 다시 뒤로 빼고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심유한 눈빛으로 금 복야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다.

“저희는 금선로가 지금의 상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풍운객잔이 폐점이 되어서도 안 되고, 뭔가 새로운 객잔이 생겨서도 안 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객잔이 원의 잔당과 연관이 있다는……?”

“원의 잔당이 항주로 들어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항주에서 기반을 닦기 위해 할 만한 일들 중에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일까요? 항주는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아……!”

“바로 그겁니다. 객잔입니다. 그러니, 금선로의 체제는 절대로 바뀌어선 안 됩니다.”

“과연, 그렇군요.”

금 복야는 탄복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의심스런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현재 풍운객잔의 주인도 새로 들어온 자가 아닙니까? 그자도 영업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 그는 괜찮습니다.”

“예……?”

“그는 안심해도 좋은 자입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

금 복야는 눈을 찌푸리며 되묻다가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화들짝 놀랐다.

“설마, 혹시, 그자도……?”

“쉿! 조용히 하십시오.”

“……!!”

“알면 다치십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고, 그는 절대적으로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금 복야는 스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풍운객잔에 이미 사람이 심어져 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이 일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실감한 듯 보였다.

“조만간 다시 한 번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이번에 풍운객잔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서류를 저에게 건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는 아마, 영업정지 명령을 철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게 될 겁니다. 물론,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서요. 금 복야께선 그때 그 일을 허락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명심하십시오. 절대로 이 일이 밖으로 흘러 나가선 안 됩니다. 문 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풍운객잔에서 올 그 사람에게도, 이 일이나 저에 대해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부운화는 고개를 끄덕이는 금 복야의 눈빛이 진지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몸을 돌렸다.

“명 제국을 위해서. 더 나아가 금 복야와 가족들의 목숨을 위해서입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옛!”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돌아봤을 때, 금 복야는 마치 군인처럼 바짝 군기가 든 채로 서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겠지.’

절반의 진실에 절반의 허구를 섞은 이야기였다.

원의 잔당이 항주에서 뭔가를 꾸민다는 것은 진실.

문 대인이 엮여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허구.

하지만 그 이야기에 금 복야는 너무나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원의 잔당이 객잔을 통해 음모를 꾸민다는 건 너무 했나?’

그 순간 떠오르는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말했던 건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올 만큼 말도 안 된다.

객잔이 뭐라고.

원의 잔당이 뭐가 부족해서 굳이 객잔을 열면서까지 음모를 꾸민단 말인가.

‘하지만, 금 복야가 믿었다면 된 거지. 그리고 이렇게 씨앗을 뿌려 놓았으니…… 대형의 일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부운화는 건곤구궁의 신법을 이용해 어두운 골목 사이로 숨어든 뒤, 따라붙는 시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반대쪽 입구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인파 속에 섞여 드는데, 어느새 입가에 자신도 몰랐던 미소가 떠올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고 있었다? 내가?’

부운화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고는 다시 피식 웃어 버렸다.

어둠 속에서 대형을 지켜 주는 수호자.

……아무래도 생각보다 즐겨 버린 것 같다.

이렇게 몰래 움직이는 것도 재밌다고 해야 할까. 대형 몰래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처리하고, 더불어 원의 잔당들도 처리하는 일.

‘해 볼 만하겠어.’

부운화는 금선로의 바깥으로 향했다.

앞으로의 일을 좀 더 생각해 보기 위해, 진구가 기다리고 있을 객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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