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3화 (23/686)

第二十二章 ― 남궁지사(南宮之事)

장기린은 모두를 탁자에 앉힌 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떤 사람은 미안해하고,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있다.

제각각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단 하나.

모두가 이곳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씩 웃으며 탁자를 소리 나게 ‘쿵!’하고 내리쳤다.

“기죽을 것 없어!”

주변의 식구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객주님……?”

“한 번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어. 사실 너무 준비가 없이 시작했으니까. 이쯤에서 잠시 쉬어 가면서 내실을 다지는 것도 좋을 거다.”

“…….”

“이곳 풍운객잔의 땅과 건물은 내가 샀어. 잠시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자격 요건이 모자라다면 그걸 다시 채우고, 영업허가를 다시 받으면 되는 거다. 그게 문제가 되나? 조금 실망은 할 수 있지만, 지금 너희들처럼 그렇게 우울해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아칠과 아팔. 그중에 먼저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칠이 불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관리……. 우리를 폐점시키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어요. 정말로 괜찮을까요? 다음번엔 자격을 다 채워도 방해하는 것 아닐까요?”

꿈틀―.

마음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컷 솟아올랐다가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눈으로 아칠을 바라봐 주었다.

“괜찮다. 아칠. 이 나라의 법규는 그렇게까지 허술하지 않아.”

“법규……요?”

“그래. 이 나라를 지키고, 다스리는 법률. 나는 그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거라 믿는다.”

“법률이 우릴 지켜 줄 수 있을까요?”

“지켜 줄 수 있어. 안 되면, 내가 꼭 그렇게 만든다.”

이쪽의 당당함이 힘을 주었는지, 침울해져 있던 객잔 식구들의 낯빛이 점점 제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휘연이 나서서 주변을 다독거렸다.

“그래요. 자격 요건은 다시 채우면 되는 거죠. 죄송해요, 객주님. 제가 준비가 미흡했어요.”

“아니. 내가 볼 땐 전의 것도 훌륭했어. 다만, 객잔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이다.”

휘연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하자, 다른 식구들도 하나둘씩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객주님. 제가 이렇게 폐를 끼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라. 휴, 넌 우리 가족이야.”

“객주님…….”

아칠과 아팔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객주님!”

“저희가 조금만 더 열심히 일했다면……!”

그런 아칠과 아팔의 머리에 휘연이 작게 꿀밤을 먹였다.

“아얏! 휘연 누님?”

“너희는 잘했잖아. 아까 그 사람이 깜짝 놀라는 것 못 봤어?”

“그래. 유일하게 트집을 잡지 못한 게 ‘청결’이었다. 수고했다, 아칠, 아팔. 그동안 잘해 주었어.”

아칠과 아팔이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푹 고개를 숙인다.

휘연, 남궁휴, 아칠, 아팔.

네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마지막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

운찬이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숙수 자격도 없는 놈이 주방에서 나대고…….”

“운찬.”

“그, 그렇지만 믿어 주세요. 저도 그런 인증서가 필요한 줄은 몰랐어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해 줘서……. 저는 당연히 필요 없는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용히 소매로 눈을 훔치는 운찬이었다.

장기린은 그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려서…… 그대로 운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크엑!!”

“객주님!”

옆에 있다가 놀란 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운찬에게 질책의 의미를 담아 쏘아봐 주었다.

“형님……?”

“처음. 청월루에서 쫓겨나던 때의 얼굴을 하고 있구나. 티는 안 내지만 뭔가에 잔뜩 겁에 질린 얼굴.”

“……!”

“요리를 다신 못 할까 봐 두려운 거냐? 아니면 나한테 쫓겨날까 봐 두려운 거냐?”

운찬은 눈빛이 흔들리다가, 이내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요리를 못 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내가 쫓아내는 건 두렵지 않고?”

“그, 그게 아니라……. 형님은, 저기, 제가 배신하지 않는 한 먼저 쫓아내지 않으실 분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불안해서 ‘맞죠?’, ‘맞는 거죠?’라고 묻는 듯한 눈빛을 계속 보내는 운찬이었다.

장기린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스물이 넘은 사내놈한테 이런 표현을 하는 건 좀 안 어울리지만, 그래도 운찬은 귀여운 놈이었다.

“그래도 그거 하난 제대로 알고 있구나.”

“형님…….”

“잘 들어. 이건 운찬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이번에 일어난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다만, 객잔을 하면서 준비가 미흡했다. 지금을 기회라 생각하고, 이번엔 잘 준비해 보자.”

강운찬, 아칠, 아팔, 진휘연, 남궁휴.

다섯 사람이 모두 서로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어쩌면 이게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장사가 더 번창해서 손님들이 많아졌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때의 타격은 정말 상상하기가 싫을 정도네요.”

휘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맞아. 차라리 잘됐어요.”

“이참에 풍운객잔을 더 멋진 곳으로 만들어 봐요!”

“풍운객잔을 금선로 최고의 객잔으로!”

그중 아칠은 너무 힘이 들어가서 말도 안 되는 목표까지 외쳤다.

“그건 너무 크다. 아칠.”

“그, 그래도 누가 알아요? 정말로 그렇게 될지?”

“평범한 게 좋은 거야. 평범하게 영업만 잘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아칠은 조금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더 이상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휘연.”

“네.”

“아칠, 아팔과 함께 임가촌에 다녀와. 가서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튼튼하게 보수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 봐. 들어가는 비용은 휘연이 알아서 조절하고.”

“네, 그럴게요.”

휘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아칠과 아팔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찬.”

“예! 형님.”

“아까 그 관리가 대회에 나가면 인증서를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좀 아는 게 있어?”

“아, 그게…….”

운찬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항주 대요리 경연 또는 금선 숙수 대회요. 둘 다 항주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대회이긴 한데……. 수상자에게 대숙수 인증서가 주어진다는 건 몰랐었네요.”

“수상은 몇 명이나 하는 거야?”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제가 알기로 항주의 대숙수 세 명이 모두 인정해야만 받을 수 있는 ‘대상’과 그 밑의 최우수상과 우수상, 그리고 입선까지. 네 사람이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참가자 수는?”

“그게, 매번 달라서…….”

“대충이라도 말해 봐.”

“……한 이삼백 명 정도 될 거예요.”

운찬은 기죽은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수백명의 참가자 중 네 명이라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다.

“당연히 상 탈 수 있겠지?”

“…….”

“왜 대답이 없어?”

운찬은 난감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저기, 솔직히 제가 대숙수가 가르치는 걸 정식으로 다 마친 것도 아니고……. 제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 건지 감이 오질 않아서…….”

“그건 걱정하지 마.”

“예?”

“넌 뛰어나다. 확실해. 청월루에 있던 대숙수가 두려워서 미리 싹을 잘라 놓으려고 했던 정도라면 뛰어난 게 당연하겠지.”

“…….”

“왜, 부담되냐?”

운찬은 기쁘면서도 우울한, 그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

“네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를 생각해 봐.”

“처음……이요?”

“그래. 그때, 주방에서 요리를 해 보고,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해?”

운찬은 ‘아!’하고 감탄성을 토해 내며 대답했다.

“항주 최고의 숙수가 되고 말겠다고…… 외쳤었죠.”

“그래, 그거다.”

“…….”

“더 말이 필요해?”

잠시 가늘게 어깨를 떨던 운찬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다부진 얼굴로 불끈 쥔 주먹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하긴요! 이깟 대회에서 상을 타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항주 최고의 숙수가 될까요? 해내겠어요! 꼭 해내고 말겠습니다!”

드디어 평소의 운찬으로 돌아왔다. 쾌활하고 항상 힘이 넘치는 풍운객잔의 청년 숙수.

운찬은 곧장 주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행낭을 챙겨 나왔다.

“형님, 잠시 나갔다 올게요. 대회에 대한 거랑, 몇 가지 알아볼 게 있어요!”

알겠다며 허락을 해 주자, 운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밖으로 빠져나갔다.

진심으로 할 마음이 든 모양이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뛰어나가는 것을 보니 조금 전의 우울함은 이미 완전히 날려 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제…….’

장기린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명.

객잔의 식구들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침울함을 벗어던지지 못한 사람이다.

“휴.”

“……예, 객주님.”

남궁휴는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아.”

“…….”

“미리 말해 두지만 절대 안 돼.”

남궁휴가 반항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휙 들었다.

“객주님,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난 상식 싫어해.”

“객주님!”

“소리 지르지 말고.”

“……죄송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내 뜻은 변함없어. 넌 우리 가족이다. 가족은 절대 헤어지는 것이 아니야.”

“객주님…….”

남궁휴는 감사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오묘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따라와.”

“예?”

“따라와. 넌 나랑 같이 할 일이 있어.”

어물쩍거리는 남궁휴의 어깨를 꽉 붙들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이 텅 빈 풍운객잔. ‘영업정지’라는 팻말이 걸린 문을 힘차게 닫는다.

역시 팻말을 보자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장기린의 방식’. 미련은 떨쳐 버리고 성큼성큼 금선북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커다랗고 화려한 객잔 앞에 도착하자 남궁휴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청월루.

남궁휴에게는 특히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어이, 형씨는……!”

청월루의 앞을 어슬렁거리며 지키고 있던 덩치 하나가 이쪽의 얼굴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철우를 불러 주시오.”

“아, 알았소.”

덩치는 당황한 얼굴로 거의 뛰다시피 하며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우가 밖으로 나왔다.

철우는 이쪽을 보자마자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평소엔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더니. 직접 여기까지 올 정도면 확실히 영업정지가 크긴 큰가 보지?”

철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소문 한번 빠르군.”

“물론. 이 바닥이 생각보다 좁거든. 게다가 성질 더러운 개평쟁이가 이 바닥에 떴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그놈이 심하게 물어뜯었다면서?”

장기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되겠소?”

“아아, 그래. 들어오라고. 거기, 남궁가의 아가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빚은 없잖아?”

“……!”

남궁휴가 움찔 놀라는 것이 어깨를 잡고 있던 손끝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장기린은 일부러 더욱더 어깨를 꽉 붙잡고는 철우를 따라 청월루 안으로 들어갔다.

철우는 손님용 입구가 아니라, 객잔의 하인들이 이용하는 통로를 통해 안내했다.

예전에 운찬이 주방에서 도망칠 때 사용했던 그 입구였는데, 한창 바쁘게 일하는 듯한 주방 앞을 지나치자, 파락호들 대여섯 명이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어이! 아가들 기상! 방 비워! 할 일이 있다!”

철우가 그 얼굴 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자, 한창 잘 자고 있던 파락호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불만 한마디 없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꾸벅꾸벅 졸면서 나가는 모습이 어딘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차라도 내와야 하나?”

“아니, 괜찮소.”

형식상 권하는 차는 거절하고, 곧장 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머뭇거리는 남궁휴까지 강제로 자리에 앉히고 나자, 갑자기 앞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어이, 아무리 그래도 주인이 자리를 권한 다음 앉아야 하는 것 아냐?”

짐짓 황당한 표정을 짓는 철우였다.

확실히 그게 예의이겠지만, 이쪽의 입장에선 턱도 없는 소리다.

“당신이 풍운객잔에서 내가 자리를 권할 때까지 서서 기다렸던 적이 있소?”

“없……지? 아마?”

“그럼 됐잖소.”

철우는 “그건, 그렇군.”이라며 한바탕 웃은 뒤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용건은?”

“묻고 싶은 게 있소.”

“어떤 거? 추개평에 대한 것?”

장기린이 조용히 고개를 젓자, 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그 일이 아니었어?”

“아니오.”

“그럼?”

“남궁세가의 사람을 만나고 싶소.”

“……?!”

상당히 의외였는지 철우가 눈을 부릅뜨고 놀랐다.

퉁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눈에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내가 그런 표정을 짓자, 어느 절간의 사천왕상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위압적이다.

옆에 있던 남궁휴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남궁세가는 또 왜? 저 아가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거야? 혹시, 열화남 시절의 버릇이 도져서 도박판에라도 갔나?”

“그런 것 아니오.”

“그럼?”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만 알아 두시오. 그래서? 소개시켜 줄 수 있소? 없소?”

철우는 사나운 얼굴로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다가, 남궁휴를 한번 쳐다보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나, 참. 하여간 내가 미쳤지. 어쩌다 이런 낮도깨비 같은 괴짜랑 인연이 생겨서는…….”

“할 수 있소? 없소?”

“있어! 소개시켜 줄 테니까, 자꾸 묻지 마!”

철우는 덥수룩한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끄응!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혹시 이번 영업정지에 저 아가가 연관이 되어 있나?”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철우는 그 반응으로 충분하다는 듯 조용히 혀를 찼다.

“쯧, 대충 알겠군. 그럼 남궁세가의 사람 중에서도 대소사를 관장할 만큼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사람이어야겠지?”

“……그렇소.”

“사실은 마침 남궁세가의 총관이 지금 청월루에 머물고 있다. 알고 온 거냐?”

철우는 의심스런 눈으로 이쪽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듯했다.

“아니오. 난 연결시켜 주기를 바랐을 뿐, 이미 총관이 이곳에 있을 거라곤 예상 못 했소.”

“즉, 모르고 왔다?”

“그렇소.”

납득할 줄 알았는데, 철우는 더더욱 깊어진 눈으로 이쪽을 살폈다.

“그 말은, 적어도 우리가 남궁가와 연줄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다는 뜻이군. 매번 느끼지만, 자네는 참……. 겉보기와는 달라.”

이쪽을 응시하는 철우의 눈빛이 강렬해진다.

“글쎄. 그 말은 오히려 그쪽에 어울릴 것 같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상만 놓고 따졌을 때 철우는 ‘영리함’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가.

덥수룩한 밤송이 수염에, 퉁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눈, 온몸이 철탑처럼 느껴질 만큼 우락부락한 거구.

그런데도 매번 대화를 해 보면, 그는 이쪽이 필요한 게 뭔지 훤히 알고 있으니…….

겉보기와 다르다는 말은, 오히려 철우에게 더욱 어울리는 말이었다.

“……뭐, 그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철우는 한 번 씩 웃어 준 뒤, 바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열화남.”

“예?”

“지금 남궁세가의 총관이 누군지 알지?”

“남궁…… 무회 숙부님입니다.”

남궁휴는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이 지금 청월루 특실을 사용하고 있지.”

“…….”

“여기서 기다리라고. 곧바로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까.”

철우가 성큼성큼 복도를 통해 나가 버린 뒤, 둘만 남게 되자 남궁휴는 다급하게 물었다.

“객주님! 어째서 이러시는 겁니까?”

은은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죽음을 앞둔 것처럼 비장한 말투였다.

“내가 뭘?”

“어째서 숙부님을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지금, 숙부님을 만날 처지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어째서……!”

“그냥 나를 믿고 기다려. 다 이유가 있어서 온 거다.”

남궁휴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더는 추궁하지 못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자꾸만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했다.

철우가 돌아온 것은 그가 나간 지 이각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런, 젠장할!”

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숨을 씨근거리면서 들어왔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부릅뜬 눈에서 살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이래서 가끔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다니까!”

철우는 방구석에 놓인 찻주전자를 통째로 들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일이 잘 안 되었소?”

“아니! 잘됐지!”

“……그런데 뭐가 문제요?”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몰라. 자리는 마련했는데, 아마 화 안 내려면 각오를 좀 해야 할 거야. 저 아가의 숙부가 여간 재수 없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졸지에 손가락질을 당한 남궁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화가 난 것은 아니고, 정곡을 찔린 것처럼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감정이었다.

“숙부가……. 성격이 좀, 있으십니다.”

“좀? 좀이라고?!”

“…….”

“우라질. 저 아가가 남궁가를 등지고 나온 이유를 이제 알겠다. 얼마 전에 들렀던 다른 아가도 그렇더니, 남궁가에선 애들한테 싸가지를 안 가르치나 보구만?”

철우는 ‘에잇!’하고 바닥에 침을 한 번 ‘퉤!’ 뱉더니, 이쪽으로 네모난 옥패를 하나 던져 주었다.

일단 받아들고 보니,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초승달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건……?”

“삼 층에 올라가서 문지기한테 건네주면 돼. 남궁무회는 그 안에 있다.”

“알겠소. 고맙소. 도와줘서.”

철우는 그제야 숨을 좀 안정적으로 쉬면서 씩 웃었다.

“고마워할 것 없어. 빚이니까. 나중에 꼭 받을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라고.”

“알겠소. 이 도움은 절대 잊지 않겠소.”

철우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취한 뒤, 여전히 멍하게 굳어 있는 남궁휴를 이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장신구. 바닥을 덮고 있는 푹신푹신한 붉은색의 융단.

지난번엔 밖에서만 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안쪽으로 들어와서 보자, 확실히 금선로 오대 객잔 중의 하나답게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하필, 남궁 숙부라니…….”

화려한 장식들에 감탄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남궁휴의 어딘가 얼이 빠져 버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숙부와 사이가 안 좋은 건가?”

“안 좋……다고 해야겠죠.”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지?”

남궁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숙부는, 저에게 기루와 도박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그렇군.”

“그만큼 어릴 적에 많이 따랐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숙부님은 저를 그렇게까지 아끼진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남궁휴는 시간이 꽤 지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실망과 분노를 얼굴에서 감추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일부러 가르쳐 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예.”

“이유는? 너를 가문에서 쫓아내려고?”

“…….”

남궁휴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표정으로 봐선 남궁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망하고 있는 건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남궁휴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꼭 바른말을 해 주어야 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예……?”

“분명 그 숙부라는 사람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기루든 도박이든 배우고 나서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린 건 너다. 다른 사람이 그러라고 시킨 게 아니야. 네 인생에 대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원망해선 안 돼.”

“…….”

“네 잘못은 스스로 한 거다. 그 사람이 비록 ‘배신자’일지라도, 네 인생을 이렇게 만든 건 너 자신이야.”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 바른말은 듣기에 싫은 법이다.

남궁휴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순순히 수긍하고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제 잘못이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진심이야?”

“……예.”

“그런데 여전히 숙부를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남궁휴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망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숙부와는 마지막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은 삼 층에 도착해 있었다.

개방된 공간에 식탁과 다탁이 쭉 늘어져 있던 일 층이나 이 층과는 다르게, 삼 층은 계단입구에서부터 커다란 문으로 막혀 있었다.

붉은색 단사(丹沙)를 칠한 나무 문 위로 금색 상감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문 위 자그마한 명패에는 ‘특실’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커다란 덩치 두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마치 궁궐에라도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당신은……!”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만나는 덩치들마다 얼굴을 알아보는 듯했다.

장기린은 군말하지 않고, 품속에서 철우가 건네준 옥패를 꺼내 덩치에게 건네주었다.

“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덩치 둘은 주먹으로 문을 두 번 ‘쿵쿵’ 두드리더니,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이었다.

붉은색 융단으로 연결된 복도 저편에, 푸른색 비단옷을 입고 탁자에 앉아 오후의 차를 즐기고 있는 중년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오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눈, 코, 입이 뚜렷했고, 밝은 얼굴색과 정갈한 수염이 뚜렷하게 눈에 띈다. 고관대작처럼 고풍스럽게 차려입었으나, 긴 팔과 가늘고 긴 손가락, 그리고 다부진 어깨는, 그가 일평생 검을 잡아 온 무사라는 것을 숨길 수 없게 했다.

부드럽고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가 특별한 게 있을 듯한 사내였다.

하나 그의 눈빛을 지그시 들여다보면, 그가 비정하고 냉혹한 면이 있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총관 남궁무회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후르륵―!

남궁무회는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찻잔에만 집중할 뿐,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차 맛을 음미한다.

눈앞의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행동이었다.

옆에 있는 남궁휴를 쳐다보자, 남궁휴는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 건가.’

잠시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장기린은 다탁 앞에 놓인 의자를 빼내 털썩 주저앉았다.

드르륵―.

“……무례하군.”

그제야 남궁무회의 입이 열리며 첫마디를 내뱉었다.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해 버리는 것보다는 덜 무례하다고 생각하오.”

“훗! 스스로 손님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손님의 자격이 없었다면 부르질 말았어야지. 우리가 올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럴 거면 왜 불렀소? 불러서 모욕이라도 주려고 부른 건가?”

당당한 태도로 한바탕 쏘아붙여 주자, 태연했던 남궁무회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천한 것에게 한 방 맞았다는 듯한, 불쾌하고 경멸스런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래도, 자네는 남궁세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군.”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오.”

“무지는 자랑이 아니야.”

“권세 있는 세도가라는 건 알지. 그 이상을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소?”

“…….”

“없으면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장기린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남궁무회가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항주 주의 관찰 인명록.”

“…….”

“거기에 남궁휴의 이름이 올라가 있소.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남궁무회는 혀를 차며 남궁휴를 쳐다봤다.

“하여간, 집안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니는구나.”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있던 남궁휴의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장기린은 탁자를 ‘탕!’하고 내리쳐서 남궁무회의 시선을 다시 돌렸다.

“분명 남궁휴가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궁휴만 탓할 일은 아니지. 어째서 당신은 그 인명록에서 남궁휴의 이름을 빼지 않소?”

남궁세가 정도의 힘이라면 관청에 슬쩍 들러서 한마디 툭 던지고 푼돈 좀 쥐어 주는 걸로 다 해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안 한다는 것은 일부러 방치했다는 뜻.

남궁무회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으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관에서 하는 일. 우리 남궁세가는 관의 일에 관여하지 않…….”

“거짓말이군.”

“……뭐라?”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들은 남궁세가는, 썩어 있는 항주의 관리들 따윈 손쉽게 주무르고도 남을 만큼 힘이 있던데. 그렇다면 아무리 방탕한 아들이라곤 해도 세가의 자식을 공식적인 범죄자로 만들어서야 안 될 텐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오? 혹시 가주는 이에 대해 알고 있소?”

가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남궁무회의 낯빛이 변했다.

“가주께선 이런 작은 일에 신경 쓸 분이 아니…….”

“모른단 말이군. 그리고 작은 일이라니……. 남궁세가의 큰아들이 범죄자 인명록에 올라 있는데, 그게 작은 일인가?”

“…….”

“당신, 남궁세가의 총관 맞소? 이렇게 일 처리가 허술해서야…….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이제 남궁무회는 이를 악물고 눈에서 살기를 토해 내고 있었다.

남궁무회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첫째, 장기린이 이런 말싸움에 익숙지 않은 천한 무지렁이라 생각한 것.

둘째, 모든 일이 세가의 뜻이라는 듯 포장을 해서 말한 것.

장기린은 이런 권리나 권한 싸움에 능숙하다.

그리고 일단 세가의 이름을 댄 이상, 남궁무회에겐 빠져나갈 구멍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한 방 먹었군. 그래서, 본론은 뭐지?”

남궁무회는 이를 빠득빠득 갈긴 했지만, 그래도 거대 세가의 총관답게 애써 사감(私感)을 억누르고 용건을 물었다.

“주의 관찰 인명록에서 남궁휴의 이름을 빼내 주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당신은 남궁세가의 총관으로서, 그 적자가 범죄자의 인명록에 올라 있는데 그걸 두고 보겠다는 거요?”

남궁무회는 피식 웃었다.

“남궁휴는 더 이상 남궁세가의 적자가 아니다. 남궁혁이야말로 진정한 남궁가의 아들이지. 도박에 미친 열화남을 남궁가의 자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정말 그렇소?”

“뭐?”

“가주도 당신과 똑같이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요.”

남궁무회는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냉랭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나는 가주의 심중을 알고 있다.”

“그렇군. 알겠소.”

자리에서 일어나 들으라는 듯 남궁휴에게 소리쳤다.

“휴! 당장 세가로 가자!”

“……예, 예?!”

“뭐라고?!”

남궁휴가 경악하고, 남궁무회가 찻잔을 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세가로 가자. 그리고 선언해. 오늘부터 개과천선해서 남궁세가의 후계자에 걸맞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개, 객주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궁세가의 가주는 그릇이 정말 큰 사람 같다. 그러니 네가 잠시 방황했던 것쯤은 눈감아 줄 거다. 네가 진심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주의 관찰 인명록에서 빼내 주겠지.”

남궁무회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렸고, 아랫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짧은 시간 만나 봤지만, 장기린의 결단력과 행동력을 봐서는 정말로 세가에 찾아가고도 남는다.

거기다 그가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현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무원이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안 돼!”

그래서 남궁무회는 냉정을 잃고 소리치고 말았다.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낸 서자 따위! 돌아오겠다고 한다고 해서 가문의 어른들이 받아 줄 것 같으냐! 절대로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로!”

장기린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얼음처럼 싸늘한, 그러면서도 맹수처럼 냉혹한 미소였다.

“다른 사람들이 받아 주고 말고는 상관없소. 중요한 건 세가로 가서 ‘선언’을 한다는 거지. 내가 들은 가주의 성격으로 봐선 분명히 승낙을 하고 공평한 경합을 제의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승패야 어찌 되건 가문에 풍파가 일어나겠지? 공정한 경합을 위해 남궁휴의 이름을 인명록에서 빼 줘야 할 거고?”

“……!!”

“남궁세가의 총관은 가문이 그런 상황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오?”

활활 타오르던 남궁무회의 눈빛이 서서히 흐려졌다.

그는 눈앞에 있는 눈매 사나운 객잔 주인이 의외로 가문의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해 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만하게 봤던 것이 실수다. 상대가 이렇게 냉혹한 전략가인 줄 알았다면, 상대하는 방법을 달리했을 것을.

“즉, 어차피 하게 될 일이니……. 미리 인명록에서 이름을 빼라는 것인가?”

남궁무회는 비장을 토해 내는 심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

“이건 어차피 남궁세가의 이름값을 위한 일이기도 하오. 남궁휴는 더 이상 나쁜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더 이상 그쪽 가문에 손해를 입히는 일은 없을 것이오.”

장기린은 남궁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선언해 주었다.

움찔 떨리는 남궁휴의 몸이었다.

처음으로, 방 안에 들어온 뒤로 줄곧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궁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깨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느낌에 힘을 얻은 듯, 남궁휴는 남궁무회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객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더 이상, 가문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허.”

남궁무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미 누를 끼칠 만큼 끼쳐 놓고, 이제 와서?”

“…….”

“필요 없다. 네 녀석은 가문에 나타나지 않고, 가문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가문을 도와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냉혹한 말로 비수를 꼽는 남궁무회였다.

그 말에 울컥한 마음이 든 듯, 남궁휴도 붉어진 얼굴로 따지듯이 물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 어째서 어릴 적엔 그렇게나 잘해 주셨습니까? 어릴 적에 아버지처럼 목마를 태워 주시고, 연이와 저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녔던 것은…….”

“그건, 전부, 혁아를 위해서였다. 가주가 될 혁아를 옆에서 보좌해 줄 가족들을 잘 키워 내기 위해서였지. 너처럼 배은망덕하게 후계자 자리를 넘볼 놈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저는 단 한 번도 후계자 자리를…….”

“듣기 싫다! 또 변명일 테지. 가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매일같이 몰래 손에 피가 나도록 수련하던 것을 모를 줄 아느냐! 어린 혁이를 이기겠다고 독하게 굴던 너를 모를 줄 알아?”

남궁휴는 이를 악물고 분을 참아 내었다. 꽉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되었습니다. 이미 지난 일. 변명할 생각도 미련도 없습니다. 하지만 연아는……. 연아에겐 잘 대해 주고 계십니까?”

남궁무회는 못마땅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에겐 잘해 주고 있다. 오라비처럼 은혜를 모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니까. 지금도 가문의 일을 스스로 나서서 도울 정도로 열성적인 아이지.”

“……그렇습니까?”

“너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충고하는데……. 너를 위해 가문의 힘을 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만약 다시 한 번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한다면, 그땐 차라리 가문을 위해, 내 손으로 너를 죽이고 말 것이야.”

남궁휴에게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장기린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화아아악―

“흡……!”

거칠 것 없이 살기를 내뿜는 남궁무회였다.

방 안은 순식간에 한겨울이 된 것마냥 한기가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다탁에 놓여 있던 찻물이 흔들리고, 근처의 서찰들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 공중으로 치솟는다.

남궁세가의 총관답게 굉장한 기세를 내뿜는 남궁무회의 앞에서, 남궁휴는 창백해진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려다가 제자리에 우뚝 굳어 버렸다.

“버텨라.”

등 뒤에서 장기린이 한쪽 손으로 등을 받쳐 준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를 듣자 힘이 난다. 남궁휴는 이빨이 따닥따닥 소리를 낼 만큼 떨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든 버텼다.

“그럼, 그 말은, 승낙한 것으로 알아도 되겠소?”

“…….”

“대답이 없군. 항주 관청에 있는 주의 관찰 인명록에서 남궁휴의 이름을 빼 주겠다는 걸로 알아도 되겠소?”

서서히 기세를 가라앉힌 남궁무회가 기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남궁휴와 장기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하지.”

“알겠소.”

“단! 절대로 저 녀석이 남궁세가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심해라. 나는……. 허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장기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보이지 않게 남궁휴를 옆에서 부축하며 몸을 돌렸다.

“이쪽도 마찬가지요.”

“뭐?”

“더 이상 남궁휴가 상처받지 않도록, 앞으로 눈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되로 주면 반드시 말로 갚는다.

장기린은 허탈한 얼굴로 서 있는 남궁무회를 한번 일별한 뒤, 남궁휴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갔다.

쿠웅―!

붉은색 대문은 열릴 때는 부드럽게 열렸지만, 닫힐 때는 거대한 석상이 넘어지는 것처럼 둔중한 소리를 냈다.

문밖으로 나와 봤자 여전히 객잔 안이지만, 그래도 남궁무회와 맞서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이는지 남궁휴는 움츠렸던 몸을 펴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남궁휴는 부축을 만류하고 스스로 두 발로 서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객주님, 감사합니다.”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할 거 없어.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 점이 더……. 아니,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객주님.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고작 숙부 앞에서 당당하게 한마디 할 수 있게 해 준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나 감사한 일인 것일까?

지금 남궁휴의 모습을 보니 그간 얼마나 억눌리고, 주눅 들어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래 삐뚤어지는 애들은 다 삐뚤어지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불쌍한 녀석.’

장기린은 남궁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뒤, 청월루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철우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했으나, 웬일로 출구엔 영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숙수들과 하인들뿐, 철우는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하나 해결인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나 해결.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 ☆ ☆

“믿을 수가 없군.”

남궁무회는 두 사람이 나간 문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죽이려고 했었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 내?”

절정 고수가 왜 절정 고수이던가?

상승의 경지, 즉 검에선 검기를 일으키고, 발을 내딛으면 몸이 구름처럼 움직이고, 몸속의 기(氣)를 융통 무애하게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자이다.

남궁무회는 바로 그런 위치에 올라선 사람이었다.

비록 가주 직계가 아니라서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은 배우지 못했으나, 그래도 남궁가의 주요 혈통으로서 배운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은 그를 상승의 경지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방금 전, 그는 그 ‘상승의 경지에 오른 무공’을 이용해 그를 핍박했다.

마음속으로 정말로 ‘죽일 거다’라고 생각하며 칼을 세우고, 그것을 날카로운 기세로 뿜어냈다.

그런데 일개 객잔의 주인 따위가 그 기세를 뉘 집 개가 짖냐는 듯 무시해 버린 것이다.

‘혹시, 기운을 약하게 뿜었나?’

잠시 그런 고민을 해 보았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 성질 사나운 황소를 앞에 갖다 놨더라도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의 기운에 익숙해져 있던 남궁휴조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절대로 기운을 약하게 뿜은 게 아니었다.

‘그래, 난 남궁세가의 총관이다. 세가의 이인자란 말이다.’

남궁세가의 ‘총관’이라는 자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주와 장로를 제외하곤 가장 높은 직위인만큼, 직계든 방계든 남궁세가에 소속된 자들은 모두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다. 그랬기에 남궁무회도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승리한 뒤에야 이 자리를 얻지 않았던가.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매일같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단련한 일류 무공이 총관으로서의 그를 뒷받침했다.

비록 무공에만 매진해 온 삶은 아니라지만, 남궁무회는 무림오존(武林五尊)이나 세외삼성(世外三星) 같은 태산조차 무너뜨리는 절대 고수들만 아니라면, 누구와 맞서든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았어.’

객잔 주인은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처럼.

기세를 개방하고, 전력을 다해 살기를 뿜어내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태연한 표정으로 무시했을 뿐이다.

‘그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하나는 살기를 느끼지 못했을 때. 다른 하나는 살기에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때.’

남궁무회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처음엔 못 느꼈나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그놈이 이상한 거다. 무공을 익힌 건가? 아냐, 분명 몸에서 기(氣)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게 남궁무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었다.

몸에서 기(氣)가 느껴지지 않은 것.

그 말은, 즉 무공을 익힌 무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던가.

‘무공을 익히지 못한 놈이 내 기세를 버텨 내? 말도 안 되지. 그렇다면, 무공을 익히고도 안 익힌 척 숨긴 거란 말인가?’

무공을 익히고도 상대에게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 가능하지만, 그건 숨기는 사람이 상대보다 강할 때만 가능했다.

‘그것도 말이 안 되지. 그럼, 그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건가? 무림오존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 남궁무회가 미쳐 가는군. ……그런데 이상하긴 해. 어느 쪽도 맞는 것이 없어. 그럼, 평범한 놈들 중에서 무림 상승 고수의 기세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 대찬 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런 체질이 있을 수는 있나?’

계속해서 뭔가가 찜찜했다. 몸이 땀에 절고, 흙먼지가 잔뜩 묻었는데도 씻지를 못하고 있는 것처럼. 굉장히 불쾌하고,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만 쏠렸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좀 알아봐야겠어. 어차피 남궁휴, 그놈은 조심해서 관찰해야 할 대상이고. 나 참,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런 사건이 일어나다니.”

남궁무회는 천장에 달린 천을 잡아당겨서 하인을 부른 뒤, 직접 쓴 서찰을 정성껏 밀봉해서 가문으로 보냈다.

뇌안각(雷眼閣) 친전.

그 서찰의 첫머리엔 분명, 그렇게 씌어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