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5화 (108/686)

第二十四章 ― 재개장(再開場)

“그래서, 네가 직접 그 명단에서 이름을 빼냈다고?”

“네! 재밌었어요. 그 금 복야라는 사람, 권력에 상당히 약하던데요?”

탁자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장기린과 남궁연은 심양에서 나는 철관음이라는 차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남궁연이고, 이쪽은 대부분 듣는 쪽이었다. 남궁연의 목소리가 워낙 활기차다 보니 듣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정말로 간단하게 끝났군.”

장기린은 입맛이 조금 씁쓸한 것을 느꼈다.

장기린과 남궁휴가 남궁무회를 찾아간 뒤, 남궁무회는 곧장 뇌안각으로 서찰을 보냈다고 한다. 남궁휴의 이름이 주의 관찰 인명록에 있으니 제거하라고.

그 서찰을 하필 이제 막 항주 지부장으로서 도착한 남궁연이 받아 봤고, 객잔에 오기 전에 항주 관청에 들러서 처리를 끝내 버렸다고 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단다. 관청을 찾아가 책임자인 금 복야라는 사람을 만나고, 우호를 다지는 축사를 서로 나누면서 슬쩍 남궁휴의 이야기를 흘렸다. 그것만으로도 금 복야는 그 자리에서 남궁휴의 이름을 삭제해 버렸다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거죠? 새삼 권력의 힘에 감동하셨나요? 제 생각엔 장 가가는 예전에 권력을 가진 적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반짝이는 두 눈동자에서 호기심이 초롱초롱 빛난다.

“자꾸 떠보지 마. 권력과는 별 상관이 없었으니까.”

“흐음, 아닐 것 같은데…….”

“정말이다. 별로 권력자들과는 친하지 않았어.”

전쟁터라면 질색하는 관리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장군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남궁연은 ‘흐음’하고 의심스럽게 이쪽을 살폈지만, 이내 진실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뭐, 사실 이번에 생각보다 일이 쉽기는 했어요. 그 금 복야라는 사람, 눈치가 빠른 건지 뭔지 풍운객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성심성의껏 일하더라고요. 다른 때는 그보다는 조금 까다로운데 말이죠.”

일수일수(一授一受).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거야말로 이쪽 일의 기본인데, 이번엔 하나를 줬는데 자발적으로 두 개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다만, 마지막에 그 추개평이라는 사람……. 기색이 심상치가 않더라고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그러니 조금 신경 써야 할 듯해요. 그러니 저한테 잘하시라고요.”

남궁연은 말하며 씩 애교스럽게 웃었다.

장기린은 남궁휴가 동생을 아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싹싹하면서 성격이 화끈하고, 가끔가다가 애교나 투정도 적당히 부릴 줄 안다. 이러니 어느 오라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평소에 안 그러던 남궁휴도 저렇게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이쪽 눈치를 살피는 거겠지.’

창밖에선 남궁휴가 마당을 쓰는 척하면서 흘끔흘끔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남궁연이 타박을 주며 일이나 하라고 쫓아낸 뒤, 계속해서 저 모양이다. 나름대로 표가 안 나게 하려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줄창 창문 앞만 이각 넘게 쓸고 있으면 누구나 의심을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괴롭힐 거야?”

“어머, 괴롭히다뇨? 무슨 그런 말씀을……?”

“휴는 생각보다 마음이 여려.”

“…….”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자괴감에 빠져서 우울해질 거다.”

장난스레 내숭을 떨던 남궁연이 ‘흥!’하고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칫. 그치만 오 년이나 고생시켰다구요. 최소한 보름은 애를 태울 거예요.”

“…….”

“최소한이에요. 그 이상은 안 돼요. 그랬다간 분명 나중에 억울한 마음이 들 테니까.”

남궁연은 뾰로통한 얼굴로 찻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과연 진정한 명가의 후예는 다르다고나 할까.

얼핏 활발하고 자유분방해 보여도, 차 한 잔을 마시는 모습에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기품이 있었다. 다도(茶道) 따위 지키지 않고 그냥 후루룩 찻물을 들이키는 데도 품위가 느껴진다는 점이 대단하다.

끼이익―

그때, 객잔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노란색 경장을 입은 늘씬한 키의 미인.

그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따라오는 쌍둥이 형제.

한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세 사람은 갔던 일이 잘 처리된 모양인지 즐겁게 웃는 얼굴이었다.

“객주님! 일이 잘 해결되었어요!”

“임 목장님이 이참에 필생의 역작을 만들어 보시겠대요. 보수도 굉장히 저렴하게 해 주셨구요!”

“휘연 누님의 공이 컸어요. 가격을 잘 흥정하셨거든요.”

옆에 있던 휘연이 깡충깡충 뛰는 아칠과 아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칠과 아팔이 많이 도와줬죠. 아시다시피 임 목장님이 두 사람을 귀여워하…….”

갑자기 휘연의 말이 멎었다.

왜 그러나 싶어서 시선을 들어 올리자, 휘연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건너쪽이었다.

휘연은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옆에서 휘연에게 왜 그러냐고 묻던 아칠과 아팔도 휘연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본 뒤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에에?”

“개, 객주님, 그분은 누구세요?”

아칠과 아팔이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아, 그렇군. 소개시켜 줘야겠지.”

이참에 모두에게 소개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칠에게 손짓을 했다.

“아칠, 들어가서 운찬을 불러와. 혹시 요리에 너무 열중해서 못 들으면 그냥 두고.”

“으, 네.”

어색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주방으로 향하는 아칠이었다.

장기린은 창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휴! 이만 들어와라!”

창문으로 몰래 이쪽을 흘끔거리던 남궁휴가 흠칫 놀라면서 후다닥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다가오려다가 눈을 흘기는 남궁연을 보고는 찔끔하며 아칠과 아팔 옆에 멈춰 섰다.

‘아, 보름이랬지.’

남궁휴가 동생으로부터 구박을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기간이었다.

결국 장기린은 직접 손바닥으로 남궁연을 가리키며 휘연과 아팔에게 소개했다.

“인사해. 남궁휴의 여동생인 남궁연이라고 한다.”

“아……!”

“휴 형님의 여동생이오?”

어째선지 방금 그 말에 잔뜩 경직되어 있던 공기가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휘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아팔의 얼굴에서도 생기가 돌았다.

“반가워요. 진휘연이에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남궁연이에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제 이야기를 했었나요?”

“종종 했어요. 굉장한 미인이라는 건 빼구요. 남궁휴가 왜 그 이야기를 안 했었는지 모르겠네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건네는 휘연의 인사에, 남궁연도 환하게 웃으며 응대했다.

“오라버니와 저는 꽤 오랜 시간 보지 못했거든요. 그나저나 미인이라니, 차세대 항주제일화께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민망하네요.”

“네? 아…….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어린 시절에 듣던 이야기예요. 지금은 아니랍니다.”

“그럴 리가요. 분명 지금이 더 아름다우신데요.”

우선 서로 간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 오갔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해 나갔다.

휘연도 남궁연도, 둘 다 쉽게 볼 수 없는 미인들이니만큼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서서 담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오랜만에 객잔 안에 따스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푸근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남궁연은 태연한 목소리로 그 공기를 산산조각으로 깨부숴 버렸다.

“정말, 진 언니는 듣던 것보다 훨씬 좋은 분이시네요, ‘장 가가’. 언니를 좀 더 아껴 주세요. 이렇게 예쁜 분은 함부로 밖에 내돌리면 안 되는 법이라고요.”

“아뇨, 그런……. ……잠깐, 뭐라고요?”

겸손의 말을 하려던 휘연이 손을 내젓던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장 가가.

가가.

가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휘연이 남궁연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셨죠?”

“네? 아! 장 가가에게 언니를 좀 더 아껴 주라고 말했어요.”

“…….”

쾌활한 목소리로 확인을 시켜 주는 남궁연이었다.

어느새 운찬을 데리고 온 아칠과 아팔이 그 말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이쪽과 휘연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남궁휴도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어째선지 네 사람은 겁먹은 표정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왜 저러지?’

대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서 장기린이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휘연이 생긋 웃음을 지었다.

“가가라……. 오늘 처음 본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한 호칭 아닌가요?”

남궁연은 부드러운 휘연의 웃음에도 지지 않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 그런가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 보니 마음이 맞고 정말 좋은 분 같아서요. 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중요한 건 호칭이 아니라 마음이잖아요.”

“…….”

“괜찮죠, 언니?”

휘연이 웃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흘러내린 앞머리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채 방긋 웃는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움찔. 몸을 떤 네 사람이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이번엔 장기린도 공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아름다운 얼굴이 어째서 이렇게나 무섭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는 뒤로 물러서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객주님.”

“음?”

“객주님이 저 호칭을 써도 좋다고 허락하셨나요?”

휘연은 분명 평소와 같은 웃는 얼굴인데, 눈빛만큼은 마치 당장에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슬퍼 보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뭔가 잘못하긴 한 모양인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랬어.”

“……그래요?”

휘연의 웃음이 짙어졌다.

“객주님,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예쁜 동생이 ‘가가’라고 불러 주니까요.”

분명 말뜻만 놓고 보면 장난스러운 칭찬인데, 마치 칼날을 목 밑에 들이대고 있는 것처럼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휘연은 싱긋 웃으며 남궁연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할 일이 많아서. 그 이외의 이야기는 다음에 들을게요.”

그 말만을 마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객잔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휘연……!”

중간에 장기린이 휘연을 불렀으나, 그녀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쿵!’하고 닫히는 대문이었다.

장기린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휘연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으음, 장난이 조금 심했나요? 정말로 예쁘고 조신한 언니예요.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저런 언니 찾기 힘든데.”

남궁연은 어째선지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어머, 모르세요?”

“…….”

“정말 모르시나 보네? 둔감?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

남궁연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군요. 그래요, 알겠어요. 진 언니도 고생이네요.”

남궁연은 까르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이만 가 볼게요, ‘장 가가’. 아 참! 진 언니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번에 웬만하면 다 이해해 주고, 언니의 화를 먼저 풀어 줄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세요.”

“휘연이 화가 난 건가? 어째서?”

“여자의 마음은 복잡한 법이거든요.”

“…….”

“이번 일이 분명 언젠가 도움이 될 거예요. 저를 믿으시고, 얼른 언니한테 쫓아가서 달래 주세요.”

남궁휴의 동생 남궁연.

가족의 동생은 가족과 같기에 친근하게 대했다.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르겠군.’

장기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연은 객잔 식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고는, 마지막으로 남궁휴에겐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외면한 뒤 밖으로 나갔다.

순간 남궁휴의 손에서 싸리비가 툭하고 떨어졌다.

“휘연!”

한편, 장기린이 별채 쪽으로 나와 보니, 휘연은 마당의 중간쯤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채로.

혹시 우는 건가 싶어서 재빨리 다가갔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뭔가를 부끄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휘연? 왜 그래?”

“에,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휘연은 허둥지둥 손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꾹꾹 눌렀다.

“아까 좀 이상하던데, 혹시 화나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

“내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

그렇게 묻자, 휘연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니에요. 잘못하신 거 없어요.”

“그런데 왜 화가 난 거야?”

“…….”

“혹시 그 아이가 날 부르는 호칭 때문이야?”

가가라는 호칭.

휘연은 분명 그 호칭을 들은 뒤 동요했다.

“그건…… 아니에요.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화가 난 건 아니에요.”

“그래?”

“네. 제가 너무 제멋대로였죠? 죄송해요. 객주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네요.”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휘연이었다.

이로써 모든 게 잘 해결된 셈이지만…….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휘연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느낌이다.

“휘연, 지금은 그보다…….”

“객주님! 휘연 누님! 임 목장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보려는데, 본채 쪽에서 아칠의 외침이 들려왔다.

“객주님, 제가 가 볼게요.”

휘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본채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누가 봐도 대화를 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답답한 건, 지금 붙잡아서 이야기를 나눌만 한 건수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후우…….”

장기린은 그런 휘연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의 마음이라는 거……. 어렵군.”

저렇게 아니라고 부인하니 사과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억지로 무슨 일이냐고 추궁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까다롭고 어렵다.

신경을 쓰면 부담스러워하고, 그렇다고 신경을 써 주지 않으면 또 섭섭해서 화를 낼 거다.

역시, 여자의 마음은 어렵다. 여자 한 명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게, 이만 병사를 다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느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사나?”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여인들과 혼인을 하고, 평생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존경스럽다.

이런 일을 평생 극복해 왔다니,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게 낫지, 마음으로 고생하려니 피가 마르는 것 같지 않은가.

“역시,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장기린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평범한 생활.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 ☆ ☆

닷새가 지났다.

이제 완연히 겨울에 접어든 날씨는 홑옷만 입고 밖에 나가기 힘들 정도로 추워졌고, 가끔 새벽에 보면 처마 밑에 고드름이 얼어붙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추위가 강해졌지만, 임가촌에서 온 목공들은 더욱더 열심히 일해 주었다. 벽면을 모조리 뜯어내어 아예 새로 만들어 버리는 큰 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솜씨 좋고 손이 빠른 임가촌의 목공들은 못과 망치를 몇 번 뚱땅거리는 것만으로도 금세 멋진 객잔을 만들어 내었다.

덕분에 공사도 거의 끝나 가는 참이다.

그리고 그사이 일어난 일들 중 가장 큰일이라면, 운찬이 금선 숙수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는 것이다.

“객주님! 제가 해냈어요! 제가 대회에서 우승했다구요!”

객잔으로 돌아온 운찬은 기쁜 얼굴로 방방 뛰었다.

한 손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저금 모양의 기념품을 든 채, 다른 한 손에는 ‘금선 숙수 대회 대상’이라고 쓰여진 상장을 들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축하한다. 그런데 우승은 어려울 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어떻게 된 거야?”

대답은 대회를 관전하러 갔던 아칠과 아팔에게서 흘러나왔다.

“대단했어요!”

“완전, 역전의 역전의 역전이었다구요!”

“객주님이 그 청월루 대숙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셨어야 했는데! 에잇, 관청에선 왜 객주님을 하필 오늘 소환했을까요?”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아칠과 아팔을 보자 장기린은 쓴웃음이 나왔다.

지금 장기린은 항주 관청에 불려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업정지 명령에 대한 사후 조사……라는 게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추개평의 엄중한 경고였다.

풍운객잔의 폐점을 지시했던 높은 분이 기분 나빠하고 계시다. 그러니 발악은 이제 그만하고, 순순히 다른 곳에 가서 객잔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쓴맛을 보게 될 거다.

반나절이나 걸리는 여러 가지 서류 절차로 시간을 질질 끌며 사람을 괴롭히더니, 결국 마지막의 요점은 그거였다.

‘그 때문에 운찬의 활약을 못 봤다니……. 화가 나는군.’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 중인데, 이 추개평이라는 놈이 자꾸 성질을 건드린다.

“처음엔 여기 강 숙수님도 긴장해 계셨다니까요?”

“아냐! 안 그랬어, 아칠!”

“에이, 눈에 다 보였는걸요. 칼을 든 손이 덜덜 떨려서 저희는 모두 강 숙수님이 실수로 다치면 어쩌나 하고 긴장하고 있었어요!”

아칠은 얼굴이 빨개진 운찬을 향해 똑 부러지게 지적했다.

이후, 아칠과 아팔이 번갈아 가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심사 위원석에 세 사람이 있었거든요. 창해루의 대숙수, 북화적월루의 대숙수, 그리고 강 숙수님을 괴롭혔던 청월루의 대숙수. 그렇게 세 명이 항주의 대숙수래요.”

“그런데 하필 청월루의 대숙수가 북화적월루의 대숙수랑 엄청 친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강 숙수님이 처음부터 낙담하고 계셨죠. 대숙수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인정해야 우승인데, 그렇게 될 리가 없었으니까요. 다만 어떻게든 사 위 안에만 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한 건데…….”

“실제로 그 청월루의 대숙수라는 사람, 되게 못됐어요. 강 숙수님이 하는 요리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비웃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그런데도 강 숙수님은 꿋꿋하게 요리했어요! 엄청 큰 소룡포(小龍包)에 청초우육(靑椒牛肉), 건소하인(乾燒蝦仁), 연초자계(軟酢子鷄)……. 아, 침 넘어간다. 강 숙수님, 나중에 꼭 우리한테도 해 주셔야 돼요?”

운찬의 약속을 받아 낸 뒤, 아칠과 아팔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전부, 엄청, 무지 맛있어 보였지만, 사실 요리 대회에서 하는 요리치곤 상당히 평범한 요리를 한 거죠.”

“대회에 참가한 다른 숙수들은 엄청 어려운 이름으로 된 요리만 했거든요. 실제로 그 청월루 대숙수라는 사람이 엄청 비웃었구요.”

“그런데……. 짜잔! 갑자기 대회 중간에 대단한 분이 나타난 거죠!”

“무려! 무려! 황실의 대령숙수! 용화성 숙수가 나타난 거예요!”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니까요? 그 꼬장꼬장한 심사 위원들이 벌떡 일어서서 신참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고, 대회에 참가했던 숙수들은 전부 얼어 가지곤 실수하고!”

“대회장이 뒤집어졌었어요!”

아칠과 아팔은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한껏 들떠 보였다.

‘용화성 대령숙수가?’

장기린은 속으로 매우 놀라고 있었다.

용 숙수라면 그도 잘 아는 사람이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까다로운 황실 안에서 무려 삼십 년이나 대령숙수의 자리를 유지한 사람이었다.

듣기론 요리계에선 전설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했다.

대장군 공손웅의 절친한 친우였으며, 적룡기마대 중에서 나름대로 고급문화를 즐기는 부운화나 섭우생과는 친분이 깊었다.

‘대회장에 안 가길 잘했군.’

만약 갔다면 용 숙수가 그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럼, ‘과거’의 그가 조금은 드러날 테고.

남궁연이라던가, 몇몇 사람들이 그의 과거를 캐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상황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강 숙수님!”

“처음엔 떨었지만, 나중엔 차분하게 요리를 하셨죠!”

“그리고 용 숙수님은 그저 대회를 구경하러 왔다지만, 그럴 수야 있나요? 심사 때, 심사 위원들이 앞다투어 심사석을 양보했고, 결국 심사 위원은 네 명이 되었어요!”

“강 숙수님 차례에 심사 위원들의 평가는, 이 대 일! 합격점을 준 건 창해루의 대숙수님뿐이었어요. 그런데, 용 숙수님이 그때 뭐라고 했게요?”

“음! 재료와 손질, 기교. 모두 훌륭하다. 특히 평범한 음식으로 이렇게나 최고의 맛을 살렸다는 점이 대단하다! 나는 자네의 음식이 이번 대회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좋았다!”

아칠이 근엄한 목소리로 용 숙수의 말투를 흉내 내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분이 그 말을 하시자마자 대회장이 난리가 났죠. 그리고 눈치를 보던 북화적월루의 대숙수가 슬그머니 말을 바꿔서 합격점을 줬어요!”

“그때, 청월루 대숙수의 표정을 보셨어야 했는데!”

“벌레 씹은 얼굴로, 마지못해 칭찬을 하던 그거!”

“결국은 사 대 영! 만장일치로 강 숙수님 우승!”

‘와아―!’하고 만세 삼창을 하는 아칠과 아팔의 옆에서, 운찬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역전의 역전의 역전이었다더니, 그 과정이 상상이 간다.

객잔 식구들 모두가 즐거워하며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용 숙수가 왜 이곳까지 온 거지?’

예전부터 용 숙수가 한 번 왕림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지만, 용 숙수는 단 한 번도 황실 밖의 행사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면서, 수많은 요청들을 완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 온 것이다.

‘……그분도 나이가 들면서 변하셨나? 아무튼, 운이 좋았군.’

장기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운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큰일을 해냈다, 운찬.”

“아, 아니에요, 형님. 운이 좋았습니다.”

“용 숙수가 온 것은 운이지만, 그래도 네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찬, 네가 해낸 거야.”

운찬은 칭찬받은 것이 기분 좋은지 뿌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하하. 그런가요? 어쨌든 해낸 거죠? 이걸로, 객잔을 다시 열 조건이 된 거죠?”

운찬이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찬뿐만이 아니라, 아칠, 아팔, 휘연, 남궁휴.

네 사람 모두 기대감을 가지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 다 되었어.”

애초에 추개평이 시비를 걸었던 세 가지 문제.

객실의 안전성, 운찬의 자격, 남궁휴의 과거.

이젠 그 세 가지 문제 모두 해결이 되었다. 관청으로 가서 영업정지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할 자격이 생긴 것이다.

“후우…….”

크게 쉼호흡을 한 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장기린은, 식구들의 얼굴을 한 번씩 응시했다.

“다녀올게.”

“저도 함께…….”

“아니, 나 혼자 다녀올게.”

따라오려는 휘연을 만류하며 고개를 저었다.

관청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다. 만약 억지를 부리거나, 안 좋은 반응을 보인다면……. 그땐,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 휘연은 따라오지 않는 것이 낫다.

‘풍운객잔의 식구들을 위해, 이 객잔은 반드시 살려 낸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식구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온다.

“객주님, 힘내세요!”

“관청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고 오세요!”

……그래. 힘이 난다.

이런 게 가장의 마음이라는 것일까.

응원 소리에 한층 힘을 얻어, 관청을 향해 진격했다. 전투를 앞둔 듯한 비장한 마음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 ☆ ☆

“오셨군요.”

“…….”

“항주 제일관청의 책임자 금우현 복야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장기린은 당황하고 있었다. 잘못되면 실력 행사도 불사할 비장한 마음으로 찾아왔건만,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것은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은 극진한 대우였다.

관청의 서리들이 입구에서부터 이 열 종대로 대기하고 있었고, 책임자인 금 복야는 중심에서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저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풍운객잔의 주인이신 장 객주님이 아니십니까. 말씀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금 복야의 말 중 ‘아주’라는 말이 상당히 신경 쓰이지만, 일단 지금 이 자리는 그것에 대해 논할 자리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일단은 관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풍운객잔에 내려진 영업정지 명령에 대해 철회를 요청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안쪽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금 복야는 공손한 태도로 장기린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관청의 안쪽은 상당히 화려했다. 금박 상감이 새겨진 고급스런 자단목 가구들. 천장엔 항주의 상징인 꽃과 미인을 벽화로 그려 놓았고, 그 주변엔 실제 옥이나 귀한 돌로 만들어진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역대 관청의 복야들인지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상들이 양쪽 복도에 주르륵 서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처럼 생생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황실 내부를 구경한 적이 있는 장기린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장식이다.

금 복야는 뿌듯한 얼굴로 그 장식들을 둘러보더니, 장기린에게 자리를 권했다.

“영업정지 명령은 이미 철회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애초에 항주 금선로를 더욱 부훙시키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법률입니다. 하하, 부당하게 하나의 객잔을 핍박하는 의미로 쓰여서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 말에, 금 복야의 뒤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립해 있던 추개평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복야…….”

그는 앞으로 나서서 금 복야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으나, 금 복야는 냉정하게 그의 말을 무시했다.

“자넨 조용히 하게……!”

“하지만……!”

“한 번만 더 나서면, 그땐 정말로 시어사 자리에서 제명을 시킬 것이야.”

“……!”

추개평이 뒤로 물러선다. 그는 마지못해 뒤로 물러서면서 이쪽을 향해 이를 갈았다.

‘왜 이쪽을 노려봐?’

화풀이를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찾았다.

‘원래대로라면 저자에게도 한마디를 해야 할 테지만…….’

사실 까다롭게 굴면서 풍운객잔에 영업정지를 내린 장본인이 바로 저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어디서 손님 불편하게 눈을 그따위로 뜨는 건가!”

“보, 복야?”

“내가 그따위로 자네를 가르쳤나? 이거 실망이군! 당장 나가 있게!”

“보, 복야!”

추개평이 금 복야에게 구박을 받고 방 밖으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니 딱히 뭐라고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크흠! 제 부하 관원의 무례는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금 복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사과했다.

“……사실 조금 불쾌하긴 했습니다만.”

“그, 그랬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복야께서 직접 사과를 해 주시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행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금 복야는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 앉아 은근한 눈빛으로 물어 왔다.

“그런데, 어찌 그런 ‘큰일’을 해내셨습니까?”

“예?”

“크흠! 사실은 얼마 전에 이야기를 대충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직접 만나 뵈니 정말 놀랍더군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으신 듯한데, 어찌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맡아 처리하시는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금 복야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칭찬의 말을 하고 있었다.

장기린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영업정지 철회를 신청하는 게 그렇게나 큰일인가?’

아무래도, 이 동네에선 한 번 영업정지를 당하면 그대로 장사를 접는 게 관습처럼 굳어진 모양이다.

낡은 관습은 타파되기 힘든 법.

그러니까 복야가 이번 일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 해야겠어.’

불합리한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것이 백성이 편안해지는 길이며, 자신의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예, 본인이 직접 일을 하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힘든 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지역 관청에서 그 일을 전혀 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나직한 질책에 금 복야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그렇습니까?”

“예, 지역 관청에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알려 주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도 내주고, 그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훨씬 나랏일이 능률적으로 변할 텐데 말입니다.”

“……!!”

금 복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하, 하지만, 관청이 손을 댈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알아선 안 되는 일이 있기도 하고……. 무, 물론 도울 수 있는 일은 다 돕겠습니다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여러 가지로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금 복야는 손을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해 댔다.

처음엔 날카롭게 추궁했던 장기린도 그 이야기를 듣자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 모든 객주들이 다 꼭 이 장소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관청이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면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고.’

오히려 간섭할 부분이 많아져서 부패한 서리들이 많이 생기는 빌미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좋은 의견이었습니다. 다만 이쪽의 고충도 조금 알아주십사 하고 말씀드린 겁니다.”

“예, 압니다. 다만, 말단의 관리가 부패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가 부패를 하면…… 백성들은 정말로 힘들어집니다.”

“……예, 꼭 신경 쓰겠습니다.”

어째선지 금 복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금 복야는 관청의 일을 돕는 서리를 불러 미리 준비해 둔 서찰을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그 서찰에 금 복야 본인의 도장을 ‘쾅!’하고 찍어서 건네주었다.

받아서 읽어 보자, 반가운 글이 가장 앞에 적혀 있었다.

“풍운객잔. 영업 재개 허가서……!”

그렇게나 바라던 허가서를 막상 받아들고 나자, 허탈하면서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영업정지가 되었을 땐 정말로 모든 게 끝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모든 게 이렇게 잘 해결되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일어나서 인사하자, 금 복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았다.

“별말씀을. 관청의 복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금 복야는 공손하고 정중한 자세로 겸양을 떤 뒤, 옆으로 다가와 정신을 집중해야만 간신히 들릴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객주님의 이야기는 꼭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론 제가 최대한 미리 손을 써서 이런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크흠! 그럼 앞으로도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일이니까요.”

장기린은 감탄했다.

이 사람, 생각보다 제대로 된 관리이지 않은가?

남궁연이 권력에 약한 속물이라 그랬던 것은 분명 오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객잔 하나와 관련된 이런 작은 일에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관리가 속물일 리가 없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예, 그럼.”

‘추개평 같은 놈들만 정리되면 정말로 좋겠건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장기린은 관청 밖으로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고, 푸르른 하늘이 머리 위에서 새파랗게 빛난다.

‘좋아! 다시 시작이다!’

장기린은 ‘영업 재개 허가서’를 품에 넣고는 몸을 돌렸다.

모든 것이 해결되니, 객잔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 ☆ ☆

장기린이 밖으로 나간 뒤, 그때까지 웃는 낯으로 배웅하고 있던 금 복야의 얼굴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이런 무서운 놈……!”

딸랑―! 딸랑―!

그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종을 흔들었다.

그러자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추개평이 불만이 잔뜩 쌓인 얼굴로 털레털레 걸어 들어왔다.

“내쫓을 땐 언제고 나가자마자 곧바로 부르십니까?”

“앉아!”

금 복야가 소리를 지르자, 추개평은 찔끔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아까 한 말은 보여 주기 위해 했던 말이야. 그걸 알면서 그래?”

“…….”

“대화는 다 들었지?”

“예, 대충…….”

“무서운 놈이야. 하마터면 코가 꿰어서 잡아먹힐 뻔했다고. 흥! 사람을 우습게 본 거지. 내가 정계에서 버틴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줄 알고?”

금 복야는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한편 추개평은 이해가 안 가는 듯 눈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아까 나눈 대화도 무슨 속뜻이 있는지…….”

“멍청하긴! 잘 들어 봐. 내가 그놈이 황실에서 하는 큰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

“예, 믿기지는 않지만…….”

“믿어! 오늘 일로 확실해졌다. 그놈, 보통 놈이 아냐. 하는 큰일이 뭔지 물으니, 그놈은 관청이 좀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무려 특급 기밀 임무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함부로 발을 들여놓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뒤뜰에 파묻힐지도 모르는 일에 자진해서 목을 들이밀라는 뜻이라고!”

“그게, 그렇게 위험한 일입니까?”

“당연…… 젠장! 이 이상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어. 이래서 뭘 모르는 놈이랑은 대화가 안 되는군. 특급 기밀이다. 너에게 말했다간 다 죽는 수가 있어.”

금 복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조하게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게다가 슬쩍 거절하니까, 아닌 척하면서도 관리가 부패하면 안 된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협박을 했지. 큰일이야, 젠장! 부패한 관리 어쩌고 하는 거 보니 어사대라도 부를 모양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젠장! 이걸 어떻게 한다……?”

추개평은 머리를 쥐어뜯는 금 복야를 불신감 어린 얼굴로 쳐다봤다. 부운화를 만나지도, 남궁연에게 협박을 당하지도 않았던 추개평으로서는, 지금 금 복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어디 사기꾼 같은 놈한테 당하고 있는 거 아냐?’

그가 보기엔 그 장기린이라는 놈은 눈매가 좀 사나울 뿐 별거 없는 놈이다. 지금 그가 느낀 모욕감과 문 대인과의 연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파멸시켜야 할 놈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이유에선지, 금 복야가 그놈에게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왜 영업정지를 풀어 주신 겁니까? 그럴 수록 약점을 딱 틀어쥐고 절대 놓아주지 말아야죠.”

“……뭐야?”

금 복야가 혀를 차면서 추개평을 노려봤다.

“아직도 그 미련을 못 버렸군. 포기해. 돌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풍운객잔은 건드려선 안 될 곳이야.”

추개평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큰분’이 저를 지켜보고 있어요. 저는 그분이 원하는 걸 해내야 합니다.”

“큰분? 문 대인 말이지?”

“…….”

“문 대인은 분명 큰분이지만, 포기해. 이건 내가 이십 년이 넘게 항주에서 함께한 사람에게 주는 진지한 충고다. 문 대인이 황실이나 군을 상대로 싸울 리가 없어. 중간에 끼인 놈만 피 본단 말이다.”

그렇게까지 말해도 추개평은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금 복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가 있지. 첫째! 가장 큰 권력에게 모든 것을 바친 채, 그 권력을 옆에서 나누어 쓰는 것. 둘째! 큰 권력과 큰 권력 사이에서 한 치의 치우침도 없이 중도(中道)를 지키는 것.”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뭐가 그래서요야! 그 큰분이 너 따위를 요만큼이라도 신경 쓸 것 같아? 막상 일이 터지면 지켜 주긴커녕 제일 먼저 팽(烹)할 것이다. 이쪽도 대단하고, 저쪽도 대단하다. 그럴 때는 슬쩍 뒤로 빠져서 괜히 날벼락 맞지 않게 조심하는 게 상책이란 뜻이다!”

버럭 소리를 지르자 추개평은 목을 움츠리며 기가 죽는 듯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눈동자에 깃든 고집스러움은 사라지질 않았다.

아무리 말해도 안 된다. 한 번 세운 고집은 꺾일 것 같지 않았다.

‘쯧쯧. 이만큼 해도 안 되었으면 할 수 없지.’

금 복야는 거기서 추개평을 포기했다.

원래 권력에 한 번 미혹되면 부모 자식도 보이지 않는 법. 추개평은 지금 이번 일이 끝나면 문 대인의 연줄을 얻어 아방궁에라도 들어갈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만큼 의리가 있는 사이도 아니고.’

이 정도면 할 만큼은 한 거다.

그리 생각하며 이번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 보려는데…….

우당탕―!

“으악! 안 됩니다! 여기는……!”

“비켜! 공무를 수행 중이다!”

“잠깐! 거기는 안……!”

밖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밖에 있는 하인을 불러 보기도 전에, 금 복야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붉은빛 적삼 무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특히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은빛의 관패를 보자, 금 복야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어, 어사대……?!!”

명나라 관리들을 감찰하는 도찰원, 그리고 도찰원에 소속된 어사대는 관리로서는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 분명하다.

금 복야는 그들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렸다.

“도찰원 우(右) 첨도어사(僉都御史) 백인환이다! 항주제일관 복야 금우현! 시어사 추개평! 맞는가?”

“마, 맞습니다.”

“예, 마, 맞습니다.”

금 복야와 추개평은 허둥지둥 허리를 굽혔다.

도찰원의 첨도어사라면 정사품의 관리였다. 도찰원의 도어사와 부도어사, 바로 다음가는 자리인 높은 간부였다.

‘어, 어째서?’

이 부분부터 석연치가 않다.

본래 이런 식의 감찰은 이쪽 성(城)을 맡고 있는 정칠품 감찰어사(監察御史)의 몫일 터.

고위 간부인 첨도어사가 튀어나올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나라의 존폐가 걸린 기밀 임무를 하던 도중, 부패한 관리가 적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그에 대해 알고 있나?”

“그,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금 복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단 모르는 척 부정부터 하고 보았지만, 첨도어사가 친히 이곳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왔을 리가 없었다.

‘이, 이, 이 무서운 놈……!’

결국 이렇게 나오다니…….

떠나기 전에 부패한 관리가 문제라고 말하던 장기린의 말이 떠오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난 죽었구나……!’

절망하는 사이, 옆에 있던 추개평이 슬쩍 이쪽을 쳐다보며 비웃는 게 보였다.

울컥 화가 났다.

그 눈빛은, ‘그러게 줄다리기하지 말고, 나처럼 연줄을 잘 잡았어야지!’하고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항주제일관 복야 금우현! 그대가 공명정대하고 청렴한 태도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잘 들었다. 나는 중앙도찰원의 첨도어사로서 그에 대해 치하와 격려의 뜻을 밝히는 바이다.”

“무조건 죄송…… 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으려던 금우현의 고개가 부러질 듯 위로 솟구쳤다.

순간 착각인 줄 알았으나,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방금 그 말은 죄에 대한 추궁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항주동사금선시어사(航州東司金仙侍御史) 추개평!”

“예, 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쿠궁!

첨도어사 백인환의 준엄한 외침은, 마치 항주 관청 전체에 벼락을 치듯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무, 무슨……?”

“어허! 무고한 금선로의 상인들을 핍박하고, 법을 이용해 남몰래 부를 축적한 네 죄를 네가 모른단 말이더냐!”

“어, 억울합니다!”

“억울해? 눈이 있다면 똑똑히 잘 보거라! 이것이 금선로 상인들에게서 네 죄에 대해 진술받은 진술서. 그리고 이것이 네가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을 기록한 장부다. 네 집에서 발견했지.”

“……!!”

입을 쩍 벌리고 식은땀을 흘리는 추개평이었다.

이 순간, 생(生)과 사(死)의 희비(喜悲)가 교차했다.

죽을 줄 알았던 금우현은 휘황찬란한 현계로, 희희낙락했던 추개평은 어둡고 음침한 저승으로 끌려가 버렸다.

추개평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발악했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오, 오해다! 그렇지, 누명이야! 누군가 누명을 씌운 거야!”

“저놈을 포박하라!”

“놔! 놔라! 내가 누군지 알고!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아? 그분이 누군지 알면 너희 모두 지금의 행동을 후회할 것이야!”

“시끄럽다! 저놈에게 재갈도 채우거라!”

“놔! 이거 놔! 그분은 바로 정계의 큰 어른이신 문…… 읍! 으읍! 으으읍!”

추개평은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저항했으나, 결국 어사대의 건장한 관인들에게 재갈까지 물려진 채 질질 끌려가 버렸다.

금 복야는 멍하니 선 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짧은 시간에 폭풍처럼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를 만큼 엄청난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금 복야.”

“……예?”

“어떤 분이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하시더군.”

우 첨도어사 백인환은 조용히 품 안의 서찰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금 복야는 멍하니 그 서찰을 받아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을 읽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떨렸다.

“이, 이럴 수가……!”

― 금 복야.

제가 부탁하는 대로만 일이 처리된다면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남궁연이나 장기린이 찾아오기 전에, 가장 먼저 이 관청을 찾아 그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경고를 했던 자. 명가의 후예처럼 기품이 있으면서도 묘하게 차갑고 냉정한 살기가 감돌던 청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서찰에 적혀 있는 내용은, 그 청년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무, 무서운 일에 말려들었다. 이미, 빠져나갈 수는 없어.’

우 첨도어사 백인환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금 복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한마디질문을 던졌다.

“금 복야, 그분께서 한 가지를 물으셨소.”

“무엇…… 입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항주 금선로를 잘 관리해 달라고 하셨소. 그럴 수 있겠냐고 물으시던데.”

잠시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머뭇거리던 금 복야였지만 곧 고개를 푹 숙이며 항복하듯 말했다.

“그럴 거라고…….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할 거라고, 전해 주십시오.”

☆ ☆ ☆

항주제일루라고 불리는 명실공히 최고의 객잔인 창해루.

창해루의 특실에서 한 청년과 노인이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청년은 전직 적룡기마대의 부대주이자, 현재 장기린의 암중 수호자를 자청하는 부운화였고, 노인은 이번 금선 숙수 대회에 갑자기 나타나 모두를 경악시킨 황실 대령숙수 용화성이었다.

두 사람은 짧은 인사말을 나눈 뒤, 약 일각 동안 조용히 차 맛을 음미했다.

요리든, 다도든, 화예(畵藝)든, 대화를 나누기 전에 주어진 문화부터 즐기는 것.

그것은 용화성과 부운화가 만났을 때의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았다.

“음……. 좋군요.”

“그래. 다 늙어 빠진 폐물이건만, 그래도 창해루에선 이 노인네에게 신경을 써 주긴 하는 모양이야.”

용 숙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화통한 웃음을 터뜨렸다.

“폐물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어르신을 모시고 싶어 하는 객잔이, 제가 아는 곳만 해도 대륙 전역에 백여 개가 넘는데요.”

“허어, 그런가?”

“예, 그러니 창해루에서 황실에도 가끔씩만 들어가는 귀한 물건인 최고급 용정차를 내놨다고 해도, 그리 넘치는 대접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허허, 자네! 못 본 사이에 정치하는 놈들처럼 혀가 많이 달콤해졌구만!”

용 숙수는 안 어울리니 그만두라는 듯 손을 내저었으나,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공손웅, 그 친구에겐 빚이 많았어. 아무리 정치에 무지한 숙수나부랭이라고 해도, 황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목이 달아날 일이 많았지. 그때마다 날 구해 준 게 그 친구야.”

“……정의로운 분이셨지요.”

“오늘은 그 친구의 자식들을 위해 그 은혜들 중 하나를 갚은 거야. 수많은 은혜 중에 겨우 하나지. 그러니 그렇게 죄송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네.”

용 숙수는 얼굴 한가득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드러내진 않았으나 마음속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부운화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제가 어르신의 신념 하나를 깼습니다.”

천하제일 대령숙수 용화성.

그가 황실 밖의 다른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아니, 무슨 소린가? 나는 그저 나들이를 한 번 나왔을 뿐인데.”

“……어르신.”

“그러다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 보여서 편을 들어줬을 뿐이지. 딱히 뭔가를 청탁받아서 해 준 것도 아니야. 아무리 자네가 나한테 그놈을 잘 봐 달라고 했었어도, 요리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면박을 주고 그냥 나와 버렸을 거야.”

용 숙수는 대령숙수다운 고집스러운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부운화도 알고 있었다. 분명 용 숙수는 그 말대로 했을 것이다.

요리에 있어서는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는 분이다. 아무리 그가 잘 봐 달라고 부탁했어도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때려 치면 때려 쳤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셋? 그 정도 되었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쯧쯧, 하여간에……. 이쪽 계통 놈들은 너무 오만하고 졸렬한 게 문제야. 그런 재능 있는 친구를 사감(私感)이 있다고 공식적인 요리 대회에서 감점을 해? 숙수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런 친구가 못 해 먹겠다고 때려치우고 나갔으면, 부끄러워하고 반성을 할 것이지, 그걸 애들처럼 똑같이 복수하려 하다니…….”

용 숙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관심이 있으십니까?”

“누구? 그 친구한테?”

“예.”

용 숙수가 제자를 안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나, 용 숙수는 의외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반응에 말을 꺼낸 부운화가 오히려 놀라 버렸다.

“분명,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어깨 너머로 그만큼 배웠다고 했지?”

“예,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청월루의 대숙수가 아무래도 요리를 안 시켜 주니 ‘어차피 배울 것도 없다!’라고 외치며 뛰쳐나갔지요.”

“허허, 재밌는 녀석이야. 분명, 늘그막에 한번 가르쳐 보고 싶긴 하네.”

“정말이십니까?”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고, 일단 조금 지켜보겠네. 나도 아직은 할 일이 있고.”

용 숙수는 한 발을 빼는 듯했으나, 사실 그만한 반응만으로도 이제껏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천하제일 숙수 용화성이 제자를 받는다.

그 소식만으로도 대륙의 모든 숙수들이 들썩일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자네.”

“예?”

용 숙수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부운화를 똑바로 응시했다.

“장기린, 그 친구 때문에 이곳에 와 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황실에서 나를 부를 때 보니까, 예전 인맥들을 하나씩 모으는 것 같더군. 도어사에 국자감 제주에 오호도독부까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네만, 대체 그 어마어마한 인맥을 모아서 무슨 일을 하려는 겐가?”

부운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뭘하려는 게 아니라, 뭘 하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저희 대형이 객잔을 하나 열고 평범하게 살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 세상이 아무래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더군요.”

용 숙수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허어! 그러니까, 대형을 세상에서 떼어 놓기 위해 자네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예, 그렇습니다.”

“허허! 허허! 재밌군! 재밌어! 초야에 묻혀 살려는 대형과 그 때문에 점점 더 유명해지는 둘째라…….”

용 숙수는 한껏 웃은 뒤, 진지한 눈으로 부운화에게 충고했다.

“내 충고하지. 비범한 사람이 초야에 묻힌다는 것…….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게야. 정말 자신 있나? 괜히 판을 너무 키워서 일만 커지는 게 아닌가?”

진심 어린 걱정이 깃든 충고였다.

하지만 부운화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확신을 갖고 말했다.

“그것이 대형이 원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해내고 말 겁니다. 대형을 꼭, 평범하게 살게 해 드리고 말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창해루의 특실.

부운화의 두 눈은 별빛보다도 더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굴곡과 장애물을 넘어,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서서히 해가 지는 이른 저녁.

다른 지역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항주 금선로만큼은 다르다.

이 시간이야말로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가 다시금 숨을 쉬고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주방 준비 끝났습니다!”

남궁휴가 도와주러 들어가 있는 주방에서 활기찬 운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휘연?”

“네. 저도 준비 다 되었어요.”

판매를 정리할 종이와 세필, 그리고 주판.

모든 것을 준비한 뒤, 살짝 긴장한 듯한, 그러면서도 기대감에 가득한 얼굴로 휘연이 살짝 웃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장기린은 대문을 꼭 붙들고 기다리고 있는 아칠과 아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문틈 사이를 빠끔히 내다본 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방방 뛰었다.

“우와! 역시, 강 숙수님이 대회에서 우승한 게 크다니까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요!”

“임가촌 아저씨들뿐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요! 줄이 다리까지 가겠는데요? 나중에 재료가 모자랄지도 모르겠어요!”

아칠과 아팔은 기대감과 긴장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래.”

장기린은 손을 들어 올렸다.

전투 직전의 공기처럼 긴장된 분위기.

어디선가 장렬한 북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객잔 식구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응시했다.

주방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운찬과 남궁휴.

주판을 꼭 틀어쥐는 휘연.

대문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칠과 아팔.

‘그래, 다시 시작이다.’

예전엔 단순히 평범한 생활을 바랐지만, 이젠 목표가 바뀌었다.

행복한 삶.

그에게 인생을 맡긴, 그가 인생을 책임져야 할 객잔 식구들과 그 식구들의 행복을 위해.

그는 매일매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져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영업 시작!”

“예!!”

모두의 힘찬 기합성과 함께, 대문이 열렸다.

기대감과 흥분을 가지고 객잔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 웅성거리고 왁자지껄한 그들 모두를 향해, 아칠과 아팔이 소리 높여 인사했다.

“풍운객잔, 재개장입니다!”

“어서 오세요―!”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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