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26화 (25/686)

4권

第二十五章 ― 여심대회전(女心大會戰)

― 어떤 큰 사건의 계기라는 것은 알고 보면 정말로 사소한,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경우가 많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너무나 사소해서, 별로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툭 던지듯이 내뱉은 말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사건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니들이 남자라면 쓸데없이 질질 끌지 말고, 단번에 결판을 내라. 남자는 그렇게 싸워야 되는 거야.”

낮잠을 방해받은 짜증에 약간의 호기를 첨가해서 내뱉은 말. 돌이켜 보면 그 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풍운객잔의 객주인 장기린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그가 밤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방을 콱 틀어막은 듯한 ‘침실’에 대한 첫인상은 상상 이상의 답답함으로, 이렇게나 허점이 많고 사각지대가 많은 곳에서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밤을 꼬박 새워 단 일각도 잠들지 못했다. 왠지 사람 하나가 딱 숨을 수 있을 법한 천장 아래 대들보에 자꾸 시선이 가고, 밑에서 단도를 쑤시면 푹 뚫려 버릴 것 같은 허약한 침상이 불안해서 계속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결국 모두가 ‘불안함’ 때문이다.

군(軍)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자객들을 대비하던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탓이었다.

그나마 틈틈이 탁자 위에 누워서 선잠을 자둔 덕에 지금껏 버텨 왔지만, 이제 손님이 늘어나서 그것마저 못 하게 되어 버리니, 장기린은 지금 신경쇠약에 걸릴 것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잠이라는 것은 본래 인체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

아무리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에 도가 튼 장기린이라 할지라도 신선이 아닌 이상 잠은 자 주어야 했다.

그렇게 이매망량처럼 혼이 빠져서 지낸 것이 이틀.

피곤에 절어서 서성이던 장기린이 찾아낸 곳이 바로 안채와 뒤뜰 사이에 있는 일장 너비의 공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마 밑의 그늘이다.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한데다 교묘하게 그늘이 져서 햇볕까지 가려 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장기린은 앞뒤 재지 않고 그곳에 요를 하나 깔고 누워서는 오수를 즐겼다.

참새들이 지저귀고 산들바람이 솔솔 부는 평화로운 오후.

벽 너머 주방에서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두런두런 나누는 말소리들을 듣고 있으니 절로 잠이 쏟아진다.

눈을 지그시 감은 장기린이 서서히 잠이 들려던 그때, 갑자기 주방 쪽에서 두런거리던 말소리가 격한 감정을 담고 커지기 시작했다.

“아, 글쎄 그런 게 아니라니깐!”

버럭 고함을 지르는 주인공은 풍운객잔의 숙수, 강운찬이었다. 평소의 밝고 활발한 성격답지 않게 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아닌데 왜 소리를 지르십니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 때문에 흥분하신 것 아닙니까?”

“아, 아니라니까! 내, 내, 내가 소교를 좋아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나, 난, 그저, 소교가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게 이상하다 싶어서…….”

“흐음, 그렇군요. 평소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소상히 알고 있을 만큼 관심이 있으셨군요. 이것 참, 의외입니다. 저는 강 숙수님이 당연히 진 침모님을 사모한다고 생각했는데…….”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이!”

운찬은 잔뜩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고 있는 반면, 풍운객잔의 명목상의 하인인 남궁휴는 그런 운찬을 차분하게,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남궁세가라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동생을 위해 집을 뛰어나와 뒷골목과 도박판을 전전한 기구한 운명의 청년.

살아온 인생의 파란 만장함이 다르기 때문일까? 나이는 운찬이 서너 살 더 많을 텐데도, 대화를 들어 보면 꼭 휴 쪽이 훨씬 연상인 것 같았다.

지금도 얼굴이 벌게져선 곧장 대답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운찬의 모습이 훤히 상상이 되지 않는가. 그에 반해 휴는 보이지 않게 살짝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휴가 상대라면 운찬으론 역부족이지.’

집요한 빚쟁이들에 거짓말을 잘하는 도박꾼들. 그리고 여우 같은 기녀들과 반평생을 함께 보낸 것이 바로 휴 아니던가. 요 근래 쭉 휴를 지켜본 장기린으로선 운찬이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 참, 너랑은 대화가 안 되겠다. 휘연 누님을 마음에 두었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음? 진 침모님으로선 부족하다는 뜻입니까? 이런, 그렇게 안 봤는데 강 숙수님은 눈이 지나치게 높으시군요.”

“무,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물론 휘연 누님은 넘치도록 아름다우시지만, 이미 객주님이 계…… 크흠! 아,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황급히 말소리를 줄이며 헛기침을 하는 운찬에게 휴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아! 그렇죠. 소교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죠.”

“잘 알면 화제를 돌리지 마!”

“화제를 돌리다니요? 이건 다 연결이 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강 숙수님이나 저나 뜨겁게 피 끓는 청춘들이 아닙니까? 그 나이 때쯤엔 마음속에 사모하거나 동경하는 여인이 한 명 정도는 있기 마련인데……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진 침모님이 아니라면, 결국 객잔 일로 자주 드나드는 소교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의 대화를 위해 이걸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그건…….”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조금 전에 저에게 ‘소교에게 친한 척 말 걸지 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강 숙수님이 소교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

“그렇죠?”

운찬은 대답하지 못하고 ‘으으…….’나 ‘크흠!’ 같은 신음만 연발했다.

장기린은 거기까지 듣고 나자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 풍운객잔을 자주 드나드는 소교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청월루에서 침 모를 도와 잡일을 하는 아이였는데, 얼굴이 뽀얗고 눈이 동그란 게 열일곱 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귀여운 인상이었다.

운찬의 말로는 자신이 청월루 주방에서 잡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를 알고 지냈다고 했으니, 서로 알아 온 세월만 3년째. 의외로 고지식한 운찬은 그녀에게 반가움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소교가 올 때마다 그의 입가엔 슬쩍 미소가 떠오르는데다, 소교가 주문한 소면엔 항상 다른 손님의 두 배는 될 만큼 고명이 많이 담겨 있곤 했다.

그러니 주변에서 모를 수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소교는 제법 애교가 있는 아이였다. 매번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운찬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먼저 운찬의 손을 잡아끌고 나가거나, 서슴없이 팔짱을 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괜히 쑥스러워하며 먼 곳을 쳐다보는 운찬을 지켜본 것이 벌써 한 달.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못내 흐뭇하게 만들던 두 사람의 사이가 어느 순간 금이 가 버린 이유는, 바로 휴 때문이었던 것이다.

객잔에 와서 소면을 먹고 운찬만을 찾던 소교가, 어느 순간부터는 운찬을 만나기 전에 휴와 담소를 나누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매우 잘생긴 청년이었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 한다고 했던가?

아무리 집안에서 버려진 자식이라고 한들, 명가의 피를 타고 태어나, 어릴 적부터 훌륭한 음식을 먹고 자란 휴는 겉보기엔 훤칠하고 귀티 나는 대갓집 도련님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허름한 옷을 입고 바닥에 싸리질을 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가 ‘하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니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뒷골목을 전전한데다, 화류계에서 뺀질거리며 살아온 경험 덕분에 휴는 여인들을 다루는 기술이 이미 화경(化境)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멋과 기품이 있고,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말이 여인들의 마음을 홀리기 일쑤.

벌써부터 오로지 휴를 만나기 위해 풍운객잔에 오는 처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으니, 그런 끼 많은 휴가 소교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운찬의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제가 소교와 이야기하는 게 싫으시면, 그녀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주면 될 거 아닙니까? 매번 인사를 건네도 숫기 없게 데면데면 구니까, 그녀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요. 여인네들은 부드럽고 재밌는 언변을 가진 사내를 좋아하는 법입니다.”

차분하면서 날카로운 지적에, 운찬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모든 여자가 다 그럴 거라는 편견을 버려!”

“그럴까요? 저는 아직 그렇지 않은 여자를 본 적이 없는데요.”

휴의 자신만만한 언사에 말문이 막히는지 입을 꾹 다무는 운찬이었다.

잠시 후, 그는 울화를 꾹 눌러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 자신감인데?”

“적어도 여인들과 관계된 일만큼은 자신감을 가질 만한 삶을 살아왔거든요. 지금까지.”

“그래서? 끝까지 소교에게 수작을 걸어 보겠다는 거야, 지금?”

“글쎄요. 강 숙수님이 소교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굳이 제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흥미가 좀 생깁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아, 그러고 보면 소교도 제법 귀엽기는 하죠. 좀 더 자라면 확실히 미인이 될 테니, 미래가 밝아 보인다고 할까요.”

“너……!”

가만히 누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기린은 휴의 공격적인 말투를 보며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휴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잡초 같은 인생이지만, 이유 없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녀석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에 대한 답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강 숙수님. 솔직히 말해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식칼을 들고 나타나서 ‘하인답게’ 일하라느니, ‘하인으로서’ 빈둥대지 말라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저도 화가 난단 말입니다.”

“나, 난 충고를 했을 뿐이야.”

“어떤 충고요? 하인이니까,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충고입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운찬은 애써 트집을 잡았다.

“넌 하인이 맞잖아!”

“물론 저는 풍운객잔의 하인입니다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 성실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말하실 건 없지 않습니까?”

“으으……!”

“그거 아십니까? 남자의 질투는 추한 법입니다.”

잠시간의 무거운 침묵.

그리고 소리를 지른 것은 이번에도 운찬이었다.

“지, 지, 질투라니! 내가 널 왜 질투해! 너의 어떤 점을?!”

“글쎄요.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질투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 너 이제 보니 착각이 너무 심하구나! 내가 이래 뵈도 청월루에서 따르는 여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너만 인기가 많은 줄 알아?”

“강 숙수님이 따르는 여자가 많았다고요?”

“그래!”

“흐음……?”

휴는 미심쩍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강 숙수님 ‘총각’ 아닙니까?”

“총각? 결혼 안 했으니 당연히 총각이지.”

“아니, 그 총각 말고 말입니다. 강 숙수님, 동정이시죠?”

동정(童貞).

평생 동안 지키면 신선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위대한 사내의 순결성.

“뭐, 뭐, 뭐……?”

그 어느 때보다 운찬의 목소리가 극심하게 떨렸다.

그러다가 운찬은 “헙!”하고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스스로의 동요를 감추기엔 늦었다.

그런 운찬에게 비웃음을 담은 목소리가 차갑게 파고들었다.

“맞군요. 동정이군요.”

운찬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이 이야기하고!”

“상관이 있죠. 본래 동정은 소수의 취향을 제외하곤, 그리 인기를 얻지 못하는 법입니다.”

“말도 안 돼! 상대가 동정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게 인기랑 무슨 상관이 있어?”

“상관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째서!”

“여인들은 사내의 여유로움과 묘한 남자의 향기에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본능적인 것이지요. 둘 모두 동정인 사내에겐 없는 것입니다.”

“……!!”

“실제로 기루에서 연차가 좀 된 기녀들은 동정인지 아닌지 다 한눈에 구별합니다만?”

그 한마디 치명적이었는지, 운찬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새 장기린은 잠이 다 깬 상태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실로 재미있었다. 순진한 운찬의 대응이 신선하고,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휴의 색(色) 지식 또한 매우 흥미롭지 않은가.

“이, 이 자식……!”

운찬이 부들부들 떠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정의 순정을 매도하지 마! 우린 아직 인연을 못 만났을 뿐이야! 능력이 없어서 동정을 못 뗀 게 아니라고!”

“……우리라니? 누굴 말하시는 겁니까?”

“수천수만의 동정인들을 말하는 거다―!”

절규하는 운찬.

날이 선 목소리로 허점을 지적하는 휴.

두 사람의 대화는 점차 대화라기보단 어린아이들 같은 트집 잡기로 변해 버렸다.

“하인 주제에!”

“동정이 여인에 대해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인으로서 본분을 지켜!”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 본분을 좀 지키는 게 어떻습니까? 동정으로서!”

한 번 시작된 유치한 대립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듣고 있던 장기린은 점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롭게 듣고 있었으나, 이젠 아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잘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워져 버린 것이다.

결국 장기린은 참다참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시끄러워! 적당히 좀 해라!”

그 말에 벽 너머 주방에서 숨을 삼키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지금, 그 목소리, 설마……?”

서로 유치할 만큼 치열하게 말로 싸우던 두 사람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고 있었다.

‘우당탕―!’ 하고 뭔가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운찬과 휴는 곧바로 장기린이 누워 있는 뒤뜰 입구로 구르듯이 달려 나왔다.

“헉, 정말로……!”

“객주님……!”

운찬과 휴는 똑같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부동자세로 굳어 버렸다.

두 사람은 낚시꾼에게 낚인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다, 다 들으신 거예요?”

“저기, 객주님. 저희는 그저……. 그게, 저기…….”

귀찮다는 듯이 살짝 눈을 내리깐 채 몸을 일으킨 장기린은 그런 그들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변명은 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두 사람은 사례가 들려 기침을 콜록거렸다. 요 근래 많이 순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을 만큼 장기린의 눈빛은 강렬했다.

운찬과 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게…….”

“저기…….”

장기린은 사고를 치다 부모에게 들킨 아이처럼 우물거리는 두 사람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툭 던지듯이 말을 내뱉었다.

“니들이 남자라면 쓸데없이 질질 끌지 말고, 단번에 결판을 내라. 남자는 그렇게 싸워야 되는 거야.”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이를 앙다무는 두 사람.

운찬과 휴는 서로를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형님.”

“객주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둘 다 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지만, 어쨌거나 그 말 이후로 더 이상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이걸로 좀 진정이 될 모양이다.

본래 남자들끼린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이쯤 했으면 잘 알아들었으리라.

장기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일하게 마음을 놓아 버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모른 채.

지금의 무심했던 한마디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상상도 못 한 채로 두 사람을 그냥 돌려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안일함의 대가는 고약을 입으로 씹는 것만큼이나 쓰디썼다.

☆ ☆ ☆

운찬과 휴에게 쓴소리를 하고 이틀 정도 지났을 때,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청월루의 철우가 객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키가 칠 척이나 되는 거구가 들어오자, 객잔 안이 꽉 차는 느낌이다.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 하관을 덮고 있는 뾰족한 밤송이 수염, 거기다가 불전을 지키는 사천왕상처럼 굵직하게 단련된 바위 같은 육체까지. 철우는 삼국시대 장익덕의 환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 호걸인 사람이었다.

그는 소면을 먹던 손님 하나가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 사레가 걸린 모습을 보더니,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 괜히 긴장하지 말고 드시던 거 마저 드슈. 난 여기에 깽판 부리러 온 것이 아니니까.”

동굴에다 대고 말을 하는 듯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철우는 이미 안면을 터놓은 아칠과 아팔에게 손짓을 한 뒤, 일부러 그 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았으나, 그 손님은 철우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해졌는지 결국 소면의 면만 대충 건져 먹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철우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멋쩍게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뒤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남의 객잔에 와서 장사를 방해하고 그러는 거요?”

철우가 휙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왔는지 장기린이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여전히 오금이 저릴 만큼 살벌한 눈빛이다.

철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능청스럽게 씩 웃었다.

“쩝, 누가 들으면 내가 먹던 거 놓고 꺼지라고 겁이라도 준 줄 알겠구먼.”

“그보다 더하지. 저 손님은 아마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여전히 날이 서 있는 장기린의 목소리에, 철우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이, 내가 그 정도로 험악한 인상은 아니야.”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거요?”

“파하! 물론 잘 알지. 사내대장부답게 잘생겼거든.”

능글능글하게 웃는 철우를 보며, 결국 장기린은 졌다는 듯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철우는 겉으로는 곰처럼 둔해 보이지만, 사실은 여우처럼 영악해서 도저히 말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장기린은 그만하자는 뜻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뒤,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왔소?”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상당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는 있으나, 철우는 엄연히 청월루라는 거대 객잔에 소속된 인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청월루의 크고 작은 시비들을 모두 처리하는 철우파의 대장. 그런 그가 대낮에 이곳으로 올 때는 항상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뭐, 오늘은 딱히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철우는 자신의 껄끄러운 턱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며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궁금하다니? 무슨 일 말이오?”

“여기 숙수 아가랑 남궁 아가 있지? 그 둘이 와서 여러 가지를 캐묻더라고.”

“운찬과 휴가……?”

“그래. 특히 우리가 송년회 겸 해서 열기로 했던 축제에 대해 자세히 묻던데? 그…… 뭐냐, 내가 우리 청월루의 기녀들을 모두 데리고 잔치를 한번 하자고 했던 것 말이야. 기녀들은 누구누구가 오는지, 또 그 기녀들이 좋아하는 건 뭔지…… 아무튼, 둘 사이에 불꽃이 파바박 튀기는 게 뭔가 심상치가 않더란 말이지.”

장기린은 의아하게 묻는 철우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멍하니 굳어 버렸다.

그 말을 듣자, 얼마 전에 있었던 그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설마, 그때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가 한마디했던 뒤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싸우거나 다투지 않았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측간에서 뒤를 안 닦고 나온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철우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분명히 두 사람은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엇, 형님!”

“객주님.”

마침 뒤뜰에서 일을 마치고 나란히 들어오던 운찬과 휴가 장기린을 보며 인사를 하다가, 옆에 있는 거구의 사내를 보며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어, 아가들.”

철우가 솥뚜껑만 한 손을 붕붕 흔들자, 운찬과 휴가 움찔 놀란다.

장기린은 거두절미하고 질문을 던졌다.

“운찬, 휴. 꾸미는 게 뭐냐?”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만큼 티 나게 몸을 움찔거렸다.

“꾸미다뇨?”

“크흠, 무슨 말씀이신지……?”

장기린이 대꾸도 않고 가만히 노려보자, 두 사람은 당황해서는 괜스레 딴청을 피웠다.

“옆에 철우가 와 있는 것을 보고도 모르겠나?”

“…….”

“……좋아. 끝까지 해 보자 이거지?”

장기린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그제야 두 사람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 그게 아니구요, 형님.”

“사실은 지난번에 객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기로 강 숙수님과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가 꾸미는 게 있다면 그것뿐입니다.”

두 사람의 필사적인 변명에 장기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말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무슨 소리야?”

운찬과 휴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게…….”

“형님, 저기…… 지난번에 그러셨잖아요? ‘니들이 남자라면 쓸데없이 질질 끌지 말고, 단번에 결판을 내라. 남자는 그렇게 싸워야 되는 거야.’라고 말이죠. 전 그 말이 감명 깊어서 아직까지 잊지도 않고 있어요.”

실제로 감동을 받았었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운찬.

장기린은 그가 했던 말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사를 들으며,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 그런데 단번에 결판을 내라는 것과 이게 무슨 상관이지?’

마음속에서 치솟는 의문 만큼이나 불안감이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오오! 옳은 말을 했구만!”이라며 생각 없이 웃어 대는 철우는 일단 논외로 제쳐 두고.

장기린은 불안감이 담긴 눈으로 운찬과 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끔 활기가 지나쳐서 사고를 치는 운찬.

누가 예전 별명이 ‘열화남’ 아니랄까 봐, 종종 심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휴.

그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결심을 확고히 했는지 당당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객주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저희는 남자답지 못하게 징징거리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이번 송년회를 계기로, 확실하게 단판을 짓기로 했습니다!”

“누가 더 인기가 많은지! 누가 더 많은 여심을 획득할 수 있는지!”

“이름하여 ‘여심대회전(女心大會戰)’입니다!”

쿠궁―!

심상치 않은 이름을 듣자, 장기린은 심장이 발목까지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장기린은 생각했다. 이건 막아야 한다. 이름만 들어도 전례 없이 바보 같은 행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이런 짓을 허용했다가는 분명 삼생(三生)에 걸쳐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너희들. 그건 좀 더…….”

“좋아! 마음에 들었다고!”

어느새 ‘쾅!’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친 철우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장기린은 자신의 말이 끊겼다는 것에 화를 내는 것도 잊은 채, 철우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하는 생각으로 미간을 모았다.

‘지금, 철우가 나설 상황이 아닐 텐데?’

자칫 송년회를 말아먹을 수도 있는 이런 장난질은,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뿌리까지 뽑아내야 하는 게 아니었던가?

장기린이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사이, 철우는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우리 청월루에 있는 쉰네 명의 기녀들 모두 참가시킨다!”

운찬과 휴의 얼굴에 경악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예에?!”

“쉰네 명 모두요?!”

철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철우 님이 승부를 돕겠다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안 그러냐?”

“그,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두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철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송년회 날 마지막에, 기녀들에게 너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더 많은 수의 기녀를 확보하면 승리. 어떠냐?”

철우의 말을 듣자 휴는 흥미가 돋는 기색이었다.

“즉, 기녀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쪽이 승리……라는 겁니까?”

“그래, 그거야. 중간에 두 사람의 매력을 기녀들에게 알릴 시간은 충분히 주지.”

“오……!”

“어때? 그거 말고 더 필요한 거 있나?”

철우는 ‘한번 해 볼 테냐?’라는 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밤송이 같은 턱수염 사이로 두툼하게 맞물린 입술엔 즐거운 기색이 가득하다.

운찬은 처음엔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닌가 싶어서 긴장했었지만, 막상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흥미진진해하는 휴를 보자 울컥 오기가 생겨났다. 운찬은 휴보다 먼저 나서서 해 보겠다고 말해 버렸다.

“오, 그래? 파하! 제법 사내답구만그래? 좋아. 그럼, 남궁 아가 너는?”

“저야 뭐, 이런 쪽 승부라면 언제든 자신 있습니다.”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짓는 휴가 운찬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에 지지 않고 마주 노려보는 운찬.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이거, 어째 불안한데…….’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장기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가 말릴 틈도 없이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송년회에 참가하는 쉰네 명의 기녀.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을 놓고 싸우는 운찬과 휴의 정면 승부!

‘……바보 같잖아.’

애초에 시끌벅적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럴까?

거창하게 진행되는 이런 어쭙잖은 행사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기녀의 마음을 잡으면 어떻고, 잡지 못하면 어떤가?

누가 인기가 더 많으면 어떻고, 누가 인기가 좀 적으면 또 어떤가?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건 소교인가 하는 여자의 마음 아니었나? 일이 왜 이렇게 되었지?’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의 입이 화근이었다.

그가 확실하게 승부를 내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을…….

장기린이 묵묵히 인상을 쓰고 있자니, 철우가 다가와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이봐, 걱정하지 말라고. 별로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테니까.”

옆을 쳐다 보니 철우는 여전히 눈싸움을 하고 있는 운찬과 휴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화가 났다. 판을 잔뜩 키워 놓고, 이제 와서 걱정하지 말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자연히 장기린의 목소리는 곱게 나오지 않았다.

“송년회를 망칠 수도 있을 텐데?”

철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반대지. 송년회라는 게 자리만 그럴싸하지, 무척이나 심심한 행사라고. 그럴 때 이번 일은 좋은 여흥이 되어 주지 않겠어?”

“…….”

“쉰네 명의 기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 둘이 재롱을 피우는 거란 말이지. 파하! 나중에 긴장해서 오줌이나 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어때? 생각만으로도 웃기지? 웃고 즐기는 자리인데, 그 정도 재미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런가?”

곰이라기보단 얄미운 너구리처럼 씩 웃는 철우를 보며 장기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웃고 즐기는 자리.

재미.

그런 것들 모두 장기린으로선 평생 피해 왔던 일들이다.

전쟁터에서 부하 병사들이나 기마대의 형제들 사이에서 종종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기린은 첫 잔만 같이 마셔 주고, 항상 자리에서 빠져 주곤 했다.

원래 적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 술은 잘 안 마시는 편이었고, 대장이 함께 있으면 부하들은 긴장해서 편하게 놀 수 없는 법이니, 부하들을 위해서 슬쩍 빠져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재미라…….’

장기린은 생각했다.

그렇다. 어쩌면 이런 것도 ‘평범한 일’의 하나일지 모른다.

예전에 부하들도 술판에서 어설픈 노래를 막 지어서 부른다거나, 젓가락을 코에 꼽고 소 흉내를 낸다거나 하는 바보 같은 짓들을 하면서 재밌어하지 않았던가?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 일도 그런 범주에 드는 일일 수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여기서 군말 않고 철우의 말대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는 평범한 게 아닌 거죠.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이 순간, 전에 남궁연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가슴이 욱씬거렸다. 그 탓에 철우가 “그럼 괜찮겠지?”라고 묻는 것에 동의하듯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다.

“파하! 좋아! 여기 객주도 허락을 했으니……. 잠깐, 뭔가 허전한 것 같은데. 아! 그렇지. 상품이 없잖아, 상품이. 이 철우 님이 주최하시는데 둘의 승부만으로는 좀 부족하단 말이야.”

철우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자신의 밤송이 같은 턱수염을 매만졌다.

“음……. 뭐가 좋을까? 상금으로 할까? 이봐, 아가들. 너희 혹시 돈 필요하냐?”

눈싸움을 하고 있던 운찬과 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둘 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돈은 좀…….”

“저도 돈은 필요 없습니다.”

운찬과 휴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자 철우는 더욱 재밌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하하, 좋아! 상금은 안 되고, 그럼…… 이건 어때? 축제 날, 청월루 산하의 모든 노점에서 음식 공짜. 그리고 최상급 특실에서 낭화와 술 한잔. 어때?”

이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거라는 듯 자신만만한 철우의 말에, 장내엔 충격적인 공기가 감돌았다.

운찬과 휴를 쳐다 보니, 둘 다 뭐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나, 낭화라고요?”

“특실에서 낭화와 술 한잔……?!”

본래대로라면 청월루 산하 모든 노점에서 하루 공짜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축제 날엔 항주 중심가에 수백 개가 넘는 노점들이 들어서는데, 그중에 청월루의 이름 아래 장사를 하는 노점만 백여 개가 넘는다. 그곳에서 뭘 먹든 공짜라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낭화’라는 말이 노점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렸다.

청월루 특급 기녀 낭화(浪花).

그녀는 홍화객잔의 천화(天花), 창해루의 백화(百花)와 함께 항주삼화(三花)의 하나로 뽑히는 대단한 기녀였다.

대륙 유흥의 중심가인 항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여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세간에서 그녀의 미모는 가히 화용월태(花容月態), 경국지색(傾國之色)이요, 몸을 타고 흐르는 기품과 색기는 황후에 비견된다는 평을 듣는 항주 최고의 기녀인 것이다.

당연히 그녀의 몸값 또한 엄청나기에, 대륙에서 손꼽히는 거부나 고관대작들이 아닌 이상엔 그녀의 술 시중은커녕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함께 술 한잔을 마시다니!

그것도 청월루 최고급 특실에서!

“파하! 이번 상품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만?”

철우는 입을 헤 벌리고 굳어 있는 운찬과 휴를 향해 껄껄 웃었다.

“낭화라고요?”

“저, 정말로 그 낭화입니까? 항주목의 둘째 아들은 물론이고, 항주학사의 아들들까지 줄줄이 연심을 고백했다가 무참히 거절당했다던 그 낭화입니까?”

철우는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낭화지! 낭화랑 특실에서 술 한잔이야. 잘해 봐. 있는 힘껏 싸워 보라고.”

철우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운찬과 휴는 패기만만하여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마치 생사가 걸린 대전을 준비하는 자들처럼 두 사람의 얼굴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철우가 그 모습을 보며 더욱 큰소리로 껄껄 웃는다.

장기린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서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그래서, 두 사람이 청월루 기녀들을 상대로 누가 더 인기를 얻느냐 하는 승부를 한다는 거죠?”

장기린은 휘연이 다소곳하게 따라 주는 차를 입에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긴 사람은 축제 날 청월루 산하의 모든 노점에서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고, 거기다가 이름 높은 낭화와 특실에서 술을 함께 마실 수 있구요?”

“그것도 맞아.”

휘연은 긴 속눈썹 아래 호수처럼 커다란 눈망울로 장기린을 지그시 응시했다.

장기린이 왜 그러나 싶어 마주 바라보자, 그녀는 봉오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살포시 웃었다.

“남자들은 참…… 아이 같아요.”

장기린은 피식 웃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사족을 못쓰고, 목숨이라도 내던질 것처럼 열정적으로 달려들게 되는 남자의 습성을 말하는 듯했다.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엄연히 사실이기에,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겠어. 그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휘연은 반박했다.

“그래도 여인네의 겉모습이 그리 중요한가요? 누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느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뭐, 그거야 그렇지.”

장기린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럼 객주님은 어때요?”

“나? 뭐가?”

“객주님은, 낭화라는 특급 기녀를 만나 보고 싶지 않으세요?”

장기린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옆을 쳐다보자, 휘연은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시험하는 듯한 기대감과 장난기, 그리고 약간의 진지함이 보인다.

장기린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뭐, 별로. 관심 없어.”

“어째서요? 항주삼화 중의 한 사람이라고요? 대륙 최고 유흥 도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녀(才女)인데,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세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장기린은 열변을 토하는 휘연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낭화에게 관심이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녀의 말을 부정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번에도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약간의 호기심이라면 있지만…… 그래도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든, 그녀가 얼마나 재지가 출중하든, 나와는 별로 상관없잖아? 멀리 황실 창고에 있는 보물이 얼마나 아름답건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야. 상관이 없는 일엔 관심도 없는 거고.”

장기린이 말을 끝내자 휘연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약에, 그녀와 상관이 생긴다면…… 그땐 관심이 생길까요?”

“음?”

“아니, 아니에요. 제가 괜한 것을 물었네요. 그보다, 그 말을 들으니 객주님에 대해서 조금 더 알 것 같아요.”

장기린은 의아한 눈으로 휘연을 응시했다.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그 말로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하지만 아무리 물어봐도 휘연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섬섬옥수로 입을 살짝 가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눈빛이 어쩐지 조금 쓸쓸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어?”

“기녀들을 상대로 두 사람이 인기 대결을 하는 거잖아요? 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즐거운 일도 일어날 것 같구요.”

장기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 행사의 어떤 점이 재미있느냐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휘연마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모두가 좋아하는 일이 될 듯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나…….’

모두가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축제라는 것은 본래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할수록 좋은 것이니까.

장기린은 이 행사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됐어.’

장기린이 긍정의 뜻을 표하려는 찰나, 부드러운 볼에 손을 얹은 채 곰곰이 생각하던 휘연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실, 조금 불안한 면도 있지만요…….”

“……?”

“재밌을 거예요. 분명히 즐거울 거고, 어떨지 흥미도 생기는데……. 뭐랄까, 왠지 그날이 되면 뭔가가 크게 뻥 하고 터질 것 같달까요?”

장기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휘연 자신은 모르지만, 지금껏 그녀의 말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끔 무당들이 가지는 신기(神氣)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녀가 한 말은 나중에 약속이라도 한 듯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이거, 왠지 불안해지는데……?’

장기린이 가만히 인상을 찌푸리자, 휘연은 수습하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뇨. 꼭 사고가 난다는 것은 아니구요. 그냥 강 숙수님과 휴 말이에요. 기녀가 쉰네 명에 그 낭화를 만나는 일까지 걸려 있으니……. 어쩐지 평소보다 과하게 흥분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좀 되네요.”

“…….”

“……제가, 말실수한 건가요?”

휘연은 어색한 얼굴로 장기린을 조심스레 응시했다.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민하던 장기린은 복잡한 마음을 털어 내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단번에 들이켜 버렸다.

“컥……!”

그리고 발작하듯 기침을 터뜨렸다.

“컥, 커억! 쿨럭! 쿨럭!”

“앗! 객주님! 괜찮으세요? 이걸 어째?”

놀란 휘연이 벌떡 일어서서 찬물을 가져다주고, 장기린은 그제야 껍질이 홀라당 벗겨져 버린 듯한 목을 간신히 식혀 줄 수 있었다.

그는 자책하며 눈이 벌게져서는 계속해서 기도를 까끌까끌하게 만드는 물기를 기침으로 토해 냈다. 육체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이런 일까지 생기니 더욱더 의심이 생긴다.

찻물은 무지막지하게 뜨거웠다.

마치, 지금 운찬과 휴가 나란히 불태우고 있는 과도한 열정처럼.

☆ ☆ ☆

며칠 뒤, 청월루를 책임지는 조직의 두목이자 항주 바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싸움꾼인 철우가 건들거리며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칠과 아팔을 통해 장기린을 불러서는 술을 한잔 달라고 청했다.

“왜 항상 여기 와서 술을 달라는 거요?”

철우가 술을 달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어째선지 틈만 나면 객잔에 와서 슬쩍 술을 한두 병 얻어먹고 가곤 했던 것이다.

“응? 여기도 객잔이잖아? 그런데 술 마시면 안 되나?”

장기린은 투박한 호리병에 담긴 백주(白酒)를 철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청월루에 훨씬 좋은 술들이 많지 않소?”

“아, 그런 이야기인가?”

풍운객잔이 가지고 있는 하급(下級) 백주(白酒) 따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청월루가 가지고 있을 수많은 고급술들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청월루가 가진 모든 것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철우가 굳이 이곳까지 와서 술을 마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술에 대해 잘 모르는구만? 술은 얼마나 좋은 술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마실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한 거야.”

철우는 바위 같은 입매로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잔도 없이 호리병을 번쩍 들고는 물 마시듯이 꿀꺽꿀꺽 들이켰다.

“캬―! 이제야 몸이 좀 따뜻하구먼.”

철우는 단번에 호리병을 비웠는지 쩍 벌린 입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대번에 얼굴이 벌게져서 비틀거릴 만한 양을 마시고도 철우는 멀쩡해 보였다.

“이봐, 요새 머리 아픈 일이 많아서 죽겠다니까? 연말이랍시고 취해서 난리 피우는 것들도 많고, 감투 쓴 돼지들은 안 되는 일을 해 달라고 자꾸 억지 쓰고. 게다가 최근엔 쥐새끼가 하나 객잔에 들어와서는 자꾸 신경 쓰이게 사고를 친단 말이야.”

철우는 아쉬운 듯 텅 빈 술병을 괜히 홀짝거리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장기린은 그의 건너편에 묵묵히 팔짱을 끼고 앉았다.

최근 들어 철우와 친해지면서 점점 이런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의 과묵하고 위협적인 면모는 어디에 집어던졌는지, 철우는 이제 시간만 나면 찾아와서는 이런저런 힘든 점들을 장기린에게 토로하는 것이다.

장기린은 상담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철우가 하는 이야기는 항상 묵묵히 들어주었다.

딱히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객잔이 크면 그만큼 사건도 많은 것인지 철우가 와서 하는 이야기들은 재밌는 일들이 많아서 듣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쥐새끼라면, 첩자를 말하는 거요?”

“아니, 첩자라기보단…… 끄응,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역신(疫神)? 도깨비?”

“……하아?”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놈이야. 귀찮고 쓸데없는 일을 자꾸만 만든다고 할까? 그놈 하나 때문에 지금 청월루에서 가장 큰 수입원이 막혀 버려서 난리가 난 상태다 이거지. 그런 놈이 하필이면 실력은 좋아서 잡히지도 않고 말이야.”

철우가 장기린에게 보란 듯이 비어 있는 호리병을 공중에서 흔들었다.

피식 웃은 장기린이 아칠과 아팔을 시켜 백주를 한 병 더 가져오게 하자, 철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들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캬―! 백주의 장점은 먹으면 먹을수록 달달하단 거야. 그런데 이거 계속 술만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안주는 없나?”

“오늘은 좀 많이 마시는군.”

“그럴 만한 일이 있었거든.”

장기린은 덩치에 안 맞게 투정을 부리는 듯한 철우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중요한 한 가지를 물었다.

“돈 낼 거요?”

“아니.”

“그럼 안주는 없소.”

팔짱을 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철우는 큰소리로 웃었다.

“이거 참, 처음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장사하더니 쪼잔해졌구만!”

“이왕이면 장사꾼답다고 해 줬으면 좋겠는데.”

“흥! 누구한테는 금괴도 펑펑 썼으면서, 고작 동전 몇 개짜리 안주도 못 준다 이건가? 이거 너무하구만!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장기린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휘연에겐 금괴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소.”

“……무뚝뚝한 면상으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술술 내뱉는구먼.”

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버럭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 안주라고 해 봤자 몇 푼이나 한다고 그래!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그 아가씨만큼은 아니더라도, 안주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지난번에 먹은 오리 안주는 가격으로 따지면 동전 서른 개였소.”

“그런데……?”

“당신에게는 동전 서른 개도 아깝지.”

“뭣이―!”

철우는 흥분해서 콧김을 씩씩거렸으나, 이내 껄껄 웃었다.

장기린도 피식 웃었다.

여전히 ‘친구’라고 할 수는 없는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런 농담이 통할 만큼은 친해졌다.

철우는 투덜거리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됐다. 오늘은 술만 마시겠어.”

“그 술도 공짜는 아니오만?”

“거참, 알았다니까. 이 몸께선 어디에 외상 남기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중에 몇 배로 갚아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기린은 아칠과 아팔에게 손짓을 했고, 두 사람은 백주가 담긴 호리병을 아예 다섯 개나 탁자 위에 올려 주었다.

“어이, 넌 안 마시나?”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소.”

“뭐, 그럼 할 수 없지.”

이미 철우가 찾아올 때마다 몇 번이나 한 대화지만, 철우는 혼자 마시기가 미안한지 항상 같은 말을 물어보곤 했다.

장기린은 아칠이 가져다준 수선차(水仙茶)를 마셨고, 철우는 호리병을 들이키며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을 넋두리처럼 내뱉었다.

그리고 마지막 호리병을 비울 때쯤, 철우는 그제야 살짝 붉어진 얼굴로 창밖의 노을빛을 쳐다보았다.

“어이, 송년회가 내일인 것 알지?”

“알고 있소.”

“성대하게 한 상 차려 놓을 테니까, 빠지지 말고 꼭 오라고.”

장기린은 철우가 쳐다보고 있는 노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석류처럼 붉은빛이 하늘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예전엔 붉은색이 진득한 피처럼 느껴져서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포근한 기분이 들만큼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사람은 지금의 환경에 따라 생각하는 법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성대하게 자리를 마련한다면, 비용도 많이 들 것 같은데……. 내가 보태지 않아도 되겠소?”

객잔의 가족들이 기대하고 있는 행사였다. 장기린은 얼마가 들든 내어 줄 용의가 있었다.

“필요 없어. 돈을 받아서야 내가 주최하는 의미가 없지. 그런 거 신경 쓸 것 같으면 다음번에 안주나 좀 내오라고.”

장기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요.”

“나 참, 내가 서러워서 안주를 사 오던가 해야지.”

어이없다는 표정이던 철우가 마지막 남은 호리병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이제 남은 술은 없다. 그는 텅 비어 버린 호리병들을 쭉 둘러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어두워 보인다.

“이봐. 여기 항주는 말이지, 정말로 위험한 곳이라서 절대로 방심해선 안 돼. 언제 어떤 곳에서도, 누구도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장기린은 찻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철우를 응시했다.

그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특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 갑자기 벌어진다면, 더욱더. 알겠어?”

“…….”

“내일 올 때 조심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야. 괜히 객잔 비우는 거 티 내지 말고. 돈 관리 잘하고 나오란 뜻이야. 크흠! 난 이만 간다.”

철우는 등을 돌리고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장기린은 자리에 앉은 채로 가만히 그의 등을 응시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항상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철우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조금 전의 그 말은 단순히 장기린을 걱정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뭔가 더 의미심장하고, 깊이 있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내일이 되면 알겠지.’

장기린은 내려놓았던 찻잔을 조용히 들이켰다. 찻물은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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