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九章 ― 도복도복(倒福到福)
무섭도록 차가운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별실의 중심엔 예의 그 하인 소년이 서 있다. 작은 체구, 호리호리한 몸체 위로 통통한 볼살이 인상적이었던 소년의 얼굴은 얼음처럼 무표정했다.
아니, 얼음처럼 무표정한 정도가 아니다.
그 소년의 얼굴 자체가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
장기린이 미처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등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경악과 공포로 울부짖는 것은 때마침 별실 근처에 있었던 기녀 중의 한 명이다. 그녀는 박살 난 문틈으로 빠끔히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이망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결국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기절해 버렸다.
“젠장! 뭐하냐, 너희는! 애들 못 보게 가로막지 않고!”
“예!”
철우가 기절하는 기녀를 부축하며 말하자,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와 별실의 입구 근처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사람들의 시선을 막았다. 모두 별실을 향해 등을 돌린 상태.
덩치들의 벽 안쪽으로 네 사람이 갇힌 꼴이었다.
장기린, 철우, 낭화.
그리고…… 이망.
“방……해…….”
이망은 너덜너덜 흔들리는 얼굴 가죽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원망의 눈빛으로 장기린을 노려봤다. 얼굴 가죽이 반쯤 벗겨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기괴하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장기린은 차갑게 대꾸하며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기녀들을 제치고 가던 소년 하인이 바로 이망이었던 것이다.
자객들은 특수한 훈련을 거쳐 자신의 체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더니, 직접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새벽에 보았던 자객은 마르고 다부진 체구였건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소년의 체형 그대로였던 것이다.
게다가 얼굴은 소년의 얼굴을 그대로 벗겨서 사용한 듯, 덜렁거리는 틈 사이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 그 소년은…….’
얼굴 가죽이 벗겨진 소년의 안위는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장기린은 이를 뿌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소년의 순수한 웃음을 보며 아칠과 아팔의 미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호감을 느꼈었다. 그런 소년을 잔혹하게 죽이다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으윽……!”
하지만 장기린이 그 분노를 분출하기 전에, 이망은 자신이 획득한 최고의 방패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이망의 오른쪽 팔은 낭화의 가느다란 목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게다가 왼쪽 손에 들린 단검은 낭화의 턱 근처에 상처마저 남겨 놓은 상태.
낭화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애처롭고 위태로워 보인다.
당장이라도 구해 내고 싶었지만, 장기린은 그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망은 철저하게 낭화를 앞쪽에 두고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나섰다간 오히려 낭화만 상처 입는 처참한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네놈……!”
장기린의 앞머리는 이미 옆으로 젖혀진 상태.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에 주저앉을 만큼 살벌한 눈빛이 여과 없이 쏘아졌지만, 이망은 그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낭화…….”
이망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육 년……. 육 년을 기다렸다.”
낭화는 목이 졸린 채 가쁜 숨을 쌕쌕 내뱉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처음…… 등천하던 날…… 첫눈에 알았다. 너는 내 여자가 될 거라고…….”
“…….”
“그리고…… 넌…… 그때…… 분명 그랬어. 따스한 목소리로…… 날 좋아한다고…….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단 말이다.”
찌익―.
소리와 함께 마침내 이망의 얼굴에서 소년의 얼굴 가죽이 완전히 벗겨져 나갔다. 흐물흐물한 피부를 타고 흐른 핏물이 낭화의 새하얀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진다.
분명 그 감촉을 느꼈을 텐데도,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눈도 깜짝 않는 낭화가 대단해 보인다.
낭화는 오히려 핏물의 감촉보다 이망의 말이 더욱 기분 나쁜 것 같았다.
그녀는 서릿발처럼 싸늘하게 말했다.
“그건 착각입니다. 이망이란 이름…… 나중에 기억해 냈어요. 제가 등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왔던 손님. 그리고 저는 당신과 특별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분명 당신 혼자만의 착각…….”
“그럴 리 없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망의 눈이 평소보다 더욱 붉었다.
“난…… 똑똑히…… 기억해! 그날 너의 눈빛. 정인을 보는 듯 따스했던 공기……. 넌 분명 나를 사랑하고 있었어!”
“아뇨.”
낭화는 목이 졸리고 단검이 목을 겨누고 있음에도 의연하게 대답했다.
“그런 척을 했을 뿐이에요.”
“뭐……!”
“기녀란 그런 것. 노류장화의 삶을 살려면,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정인처럼 대해야 합니다. 육 년간 지켜봤으니, 당신도 알 텐데요.”
이망의 얼굴이 충격을 받은 듯 일그러졌다.
얼굴 가죽이 없으니, 그 일그러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망은 분노를 숨기지 않고 낭화의 목을 감싼 팔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아윽……!”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낭화.
뒤에서 보다 못한 철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적당히 해! 네놈은 낭화를 죽일 셈이냐!”
“방해……하지 마!!”
이망은 주변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툭 튀어나온 눈알로 내려다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낭화를 응시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
“그래요.”
낭화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육 년간 기다려 주었는데도…… 육 년간 옆을 지켜 주었는데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런 부탁한 적 없습니다.”
“지금의 낭화를 만든 게 난데…… 항주삼화에 오른 건 내 덕분인데……. 아, 알겠군. 이 얼굴 때문이야. 살혼부가 멸문당하면서 생긴 상처 때문이야. 그렇지? 너는 내 얼굴이 변해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렇지?”
“…….”
“괜찮아……. 얼굴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말만 해. 어떤 얼굴이 좋아?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녀석으로 할까? 아니면 선이 가는 얼굴이 좋나? 아까 재롱을 피우던 두 놈들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는 이망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지금 이 말마저 거절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충격과 분노로 낭화를 죽여 버릴지도 모르니, 장기린은 낭화에게 일단 그렇다고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뇨.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낭화는 냉정하게, 일말의 동정도 하지 않고, 거침없이 그녀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당신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요. 생명의 가치를 모르죠.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당신의 상상 속에 있는 낭화일 겁니다. 필요한 건 내 겉모습뿐, 나머지는 당신의 상상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 내고 그걸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아, 아니야. 난 너를…….”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육 년 동안 단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을 리가 없죠. 저는 몇 번이고 당신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단 한 번도 대답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이망은 대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고, 그의 정신은 낭화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망의 입장에선 지금 이 대화가 육 년간이나 꿈꿔 왔던 평범한 남녀 사이의 대화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장기린은 낭화의 시선을 느꼈다.
입으로는 이망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눈으로는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눈짓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일부러 관심을 끄는 건가……!’
장기린은 그 순간 낭화가 일견즉통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재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의 노력을 배신해선 안 된다.
장기린의 눈이 재빨리 별실 안의 집기들을 훑었다. 지금의 장기린은 맨손.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
‘아, 있다.’
그리고 장기린은 세 걸음쯤 옆에 장포를 벗어서 걸어 놓는 옷걸이를 찾아냈다. 창으로 쓰기엔 좀 두께가 굵고 필요 없는 부분이 많지만, 손으로 부러뜨리면 쓸 만할 듯싶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
장기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신호를 보자마자, 낭화의 말투가 격해졌다.
“어떤 계기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만두세요. 저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낭화……!”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자. 그리고 제 겉모습만을 보는 자. 둘 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입니다.”
“바, 바꿀게. 바꿀 수 있어……! 이제부터라도 나는…….”
“아뇨.”
낭화는 애원하는 이망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절대로. 바꿀 수 없어요.”
“낭화……!!”
“이 생(生)뿐만 아니라, 설령 삼도천을 넘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싫어요, 이망.”
부들부들 떨리는 몸. 정처를 잃고 방황하는 시선.
큰 충격을 받은 이망의 얼굴이 온갖 감정이 뒤섞여 뒤틀린 얼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사랑을 잃었다.
하지만 육 년이 넘게 가진 감정은 쉽게 사라질 수가 없는 법이며, 사랑이라는 것은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로도 쉽게 증오로 변화할 수 있다.
“이…… 기이……!”
기괴하게 튀어나온 눈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격한 감정을 남아 번뜩였다.
우드득. 우드득.
소리와 함께 축골공(縮骨功)으로 줄여 놓았던 육체가 다시 마르고 건장한 이망의 육체로 돌아왔다.
이제 이망의 인간적인 부분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증오에 사로잡힌 괴물.
기괴한 몰골을 가진 처참한 존재뿐.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는데……. 나를…… 농락하고…… 감히……!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죽어……! 죽는 거다!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는 거다……!”
이망은 단검을 내던지고 등 뒤에 메고 있던 삼 척 길이의 물체를 뽑아 들었다.
그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직 낭화뿐. 각각 한 척 반의 길이를 가진 나무토막 두 개 사이로 반짝거리는 실이 길게 늘어졌다.
“금강사……!”
경악성을 토해 내는 철우.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는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다.
금강사라는 것은 그 말대로 금강석 가루를 잘게 갈아 실에 붙여 놓은 흉기(凶器).
금강석이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물체인만큼, 그게 포함된 금강사로 사람의 목을 베어 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낭화의 얼굴이 결연해졌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보였다.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물고,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 걱정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이망―!”
낭화가 체념하고, 철우가 손을 뻗었으며, 이망이 금강사로 낭화의 목을 죄려는 그 순간.
장기린의 몸은 이미 찰나를 가르며 뻗어 나가고 있었다.
무박자(無拍子).
자연체(自然體).
일절 준비 동작 없이 움직여, 그는 세 걸음 옆에 놓여 있던 옷걸이의 기둥을 손으로 베어 내고 있었다.
거기까지가 하나.
이망이 뽑아 든 금강사가 마치 목걸이처럼 낭화의 목 밑으로 늘어지고, 옷걸이 기둥을 창처럼 세워 든 장기린이 이망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거기까지가 둘.
마침내 이망이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처럼 금강사를 잡아당기는 순간, 낭화의 멱살을 잡은 장기린이 그녀의 몸을 바닥에 내던지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에 든 목창을 번개처럼 앞으로 내찔렀다.
거기까지가 셋.
푸화아악―!
물을 가득 담은 가죽 주머니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망의 왼쪽 팔이 날아가 버렸다.
핏물이 분수처럼 치솟으며 별실의 천장까지 물들여 놓았다.
여기서 날아갔다는 것은 뒤쪽으로 날려졌다는 뜻.
뒤로 날려진 이망의 왼쪽 팔이 금강사를 꽉 움켜쥐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오른쪽 팔은 가슴 앞에 있고, 왼쪽 팔은 등 뒤로 날려진 상황.
당연히 그사이를 쭉 잇고 있던 금강사는, 이망의 목덜미를 반 이상 파고들었다.
“키흐으…… 커흐어…….”
딱딱하게 굳었던 이망의 육체가 이내 바람 빠진 신음을 흘리며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무너졌다.
이망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뒤, 마치 사죄를 하듯 온몸에서 피를 토해 냈다. 툭 튀어나온 눈에서 급속도로 빛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생명력을 잃을수록 괴물 같은 성품도 잃어 가는 것인지, 뿌옇게 흐려진 이망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온화해 보였다.
“낭……화…….”
쌕쌕, 숨이 새어 나가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사……라…….”
이망의 눈은 초점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바닥에 넘어진 낭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말은 결국 끝맺지 못한 채, 피가 멈추고 떨림이 사라진다.
살혼부의 마지막 살수였던 이망.
육 년간이나 낭화의 주변을 감싸고 지키던 이망.
광기를 불태우며 맹목적으로 낭화를 원했던 이망.
그 이망이 지금 이 순간 죽음을 맞았다.
“아…….”
낭화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런 이망의 최후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멍하니.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이망을 응시하는 낭화에게 장기린과 철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떤 심정으로 이망의 최후를 보고 있을까.
장기린과 철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툭. 툭.
이각쯤 지났을 때, 낭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고 구겨진 옷자락을 정돈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이망에 대한 미련마저 털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일까.
그녀는 옷자락을 완벽하게 정리한 뒤, 이망을 한 번 일별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장 객주님.”
“…….”
“감사해요.”
생긋 웃는 그녀를 향해 장기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죽어 가는 이망을 보면서 낭화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노을빛이 아스라이 떠오르는 초저녁, 휘연은 대문에 손바닥만 한 붉은 천 위에 새겨진 복(福) 자를 거꾸로 붙이며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군.”
장기린도 휘연의 곁에서 복 자를 대문에 붙이고 있었다.
이건 신년을 맞은 춘절의 행사로, 집안 곳곳에 복자를 거꾸로 붙이면 새로운 복이 굴러들어 온다는 뜻이라고 했다.
도복(倒福:복을 거꾸로 뒤집다)과 도복(到福:복을 받다)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장기린은 이런 미신은 믿지 않았지만, 가족이 다 같이하는 ‘평범한’ 행사라고 하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잔혹한 자객이라도, 육 년간이나 곁에 있었으니까……. 분명 미운 감정만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가?”
“네. 사실 이망 덕분에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동침하지 않아도 되게 된 거잖아요? 기녀로서는 그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어쩐지 휘연은 낭화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휘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객주님이 구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도 낭화와 비슷한 삶을 살았겠죠?”
“…….”
“홍화객잔은 청월루보다 기녀들을 막 다룬다고 하니까요. 아마, 낭화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네요. 아! 어쩌면 고위 관료나 부잣집의 첩으로 팔렸을지도 몰라요.”
휘연은 절대 웃으며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지금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됐으면, 지금처럼 일하지 않아도 떵떵거리면서 살았을지 몰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면서 말이지.”
“대신 좋아하지도 않는 사내 곁에서 말라죽어 갔겠죠. 전 지금처럼 일하고, 객주님 곁에서 이렇게 복 자를 거꾸로 붙이고 있는 게 좋아요.”
짓궂은 농담을 해도 휘연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황금색 노을빛 아래 그녀의 시선이 아스라이 흩어졌다.
“전 지금이…… 행복해요.”
툭. 툭.
휘연의 손끝이 붉은 천의 끝자락을 빳빳하게 펴 주었다.
장기린도 복 자를 붙이는 것을 마무리했다.
대문 앞에 붉은색의 복 자 두 개. 휘연의 것 하나와 장기린의 것 하나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별것 아닌데도 뿌듯한 기분이다.
“흐응―.”
휘연도 마찬가지의 기분인지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자, 이걸로 끝―! 오늘 할 일은 대충 끝났네요. 객주님은 이제 다녀오셔도 좋아요.”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하게 말하는 휘연.
장기린이 ‘정말로 괜찮겠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 볼록한 가슴을 척 내밀고 씩 웃었다.
“너무 헤벌쭉하지만 않으시면 돼요.”
“헤벌쭉이라니…….”
“흥! 연회장에서 지극 정성으로 신경 쓰는 걸 제가 못 봤을 줄 아세요? 그때 객주님은 분명 헤벌쭉하셨다구요.”
장기린은 헛기침을 하며 먼 산만 바라봤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제가 나중에 철 가가한테 물어볼 거니까, 엄한 행동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리고 강 숙수님이 춘절 음식을 만들어 둔다고 했으니까, 빨리 들어오시구요.”
“잠깐, 철 가가라고?”
“질투 나세요? 저보다 나이 많고, 풍운객잔에 신경을 많이 써 주니까, 가가예요. 오늘 제대로 안 하시면, 앞으론 정말로 철 가가라고 부를 거예요.”
즉, 지금은 철 가가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같이 치솟았던 분노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마음이 놓이는 한편, 그런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자신을 보며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니, 휘연이 웃으며 등을 떠밀었다.
“자자, 얼른 가세요. 가서 상처 입은 낭화를 좀 위로해 주시라고요. 이러다가 늦겠어요.”
“……다녀올게.”
장기린은 결국 청월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금선교를 지날 때쯤 뒤돌아보니 휘연은 여전히 풍운객잔의 대문 앞에서 장기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 주자, 그제야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터덜터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장기린은 온통 붉은색 염료로 물들인 복도를 지나 어느 성(城)의 대문마냥 커다란 출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확실히 특실로 가는 복도라서 그런지, 미리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이 다른 객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항주 오대 객잔으로 꼽히는 청월루.
그곳에서도 최상위 인물들만 이용할 수 있는 특실은 그 앞의 복도부터가 다른 방과 격이 달랐다.
“이곳입니다.”
드르륵―
장기린의 안내를 맡았던 철우의 수하가 문을 열어 준 뒤 공손하게 인사하며 물러났다.
장기린은 특실에 한 발을 집어넣고 차분히 그 안의 정경을 감상했다.
청월루의 특실엔 보보(步步)마다 보물들이 있다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발이 푹 빠지는 것처럼 푹신푹신한 융단은 저 멀리 비단길을 통해 들어온 서역의 물건일 것이 분명했고,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과 그림들은 척 봐도 장기린으로선 가격을 가늠할 수 없는 고가의 예술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만한 장소를 꾸미려면 금이 얼마나 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자, 이내 특실의 중앙이 눈에 들어왔다.
단풍나무로 만든 듯한 커다란 원형 탁자에는 진수성찬이 한가득 차려 있고, 그 중심에는 고급스런 병에 담긴 술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다.
자연스레 ‘이 식탁에 든 비용은 또 얼마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장사꾼 다 됐군.”
장기린은 스스로가 우스워서 피식 웃고 말았다.
돈의 힘은 과연 무섭다. 장기린이 어느새 모든 걸 돈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탁자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등 뒤에서 그가 찾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객주님.”
장기린은 고개를 돌렸고, 언제나와 같은 그녀의 모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간 예복에 화려한 금장 장식. 일자로 잘린 앞머리와 가슴까지 드리워진 옆머리. 그리고 아름답게 틀어 올린 뒷머리까지.
낭화는 험한 일을 겪었음에도 항주삼화에 드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객주님을 모실 청월루의 수석 기녀 낭화라고 합니다.”
“아아, 그래.”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
이런 인사는 예절일 뿐이다.
장기린은 대충 인사를 끝내려다 낭화가 처음 인사를 건넨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럴까 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림처럼 다소곳이 서서 가만히 웃고 있다.
“들어오지 않는 건가?”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술을 마시는 게 어떨까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자 바깥으로 통하는 뒷문의 입구에 다탁이 차려져 있었다.
안주로 사용될 만한 음식 몇 개와 금색 천으로 싸여 있는 대나무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죽엽청입니다. 어떤 술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가 하나 골랐어요.”
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장기린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전에 장 객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 야경을 보았던 게 생각나서……. 오늘도 야경을 보면서 마시는 게 어떨까 싶어 밖에 준비를 해 봤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장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어.”
“그럼 이쪽으로.”
낭화의 공손한 안내를 받으며 밖으로 나가자, 과연 특실답게 항주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특실은 청월루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것이다.
낭화는 단정한 자세로 장기린의 술잔에 죽엽청을 따랐다.
“제가 객주님을 선택해서 놀라셨습니까?”
“……솔직히.”
낭화의 웃음을 보며 장기린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망의 숨이 끊어졌던 그때, 옷자락을 정돈하고 태연하게 연회장으로 나간 낭화는 이곳에서 가장 괜찮은 사람은 장기린이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운찬과 휴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이 빠져 버렸다.
당연히 두 사람은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항의를 했지만, 그녀는 그에 답하는 대신 철우를 불러 단번에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철우 공께선 분명 괜찮은 사람을 골라 술을 한잔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그걸 고르는 과정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 두 분 중의 한 사람을 꼭 골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던가요?”
당연히 철우는 그에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청월루의 특실에서 낭화와 술자리를 갖는 것은 장기린으로 결정이 되고 말았다.
운찬과 휴, 두 사람은 잔뜩 고생만 하고 결국 그 대가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꼴이니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장기린은 낭화가 왜 자신을 골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망 때문이다.
육 년간 그녀의 곁을 지켜 준 이망.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은 별실 안에 있던 네 사람이 전부이지 않던가.
낭화는 오늘만큼은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이다.
휘연의 말대로, 낭화는 이망이 밉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 슬픔을 토로하기엔 장기린이 적격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제가 왜 객주님을 선택했는지, 묻지 않으시네요?”
낭화의 짙은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대충 알 것 같아.”
“그런가요? 어째서인 것 같나요?”
“이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겠지.”
낭화의 눈이 깜빡깜빡였다.
그녀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 말이 맞습니다. 오늘만큼은 이망을 추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 객주님을 선택한 것은, 그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 이외의 이유는 대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낭화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새하얗고 동그란 달.
오늘은 보름달이었다.
“휘연이 그러더군. 그게 어떤 인간이든 간에, 육 년간 주변을 지켜 줬다면, 그 사람을 싫어하기만 할 수는 없다고. 역시 이망이 죽어서 슬픈 건가?”
낭화는 보름달로부터 시선을 돌려 장기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휘연이라면…… 가족처럼 지낸다는 그 여자분입니까?”
“아아, 우리 객잔의 침모로 있지.”
“연회장에서 황색 예복을 입고 있던 그 아름다운 분이지요?”
“음? 아아, 봤었나?”
아무래도 낭화는 질문의 내용보다는 그쪽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연회장에서 그 난리를 치느라 정신도 없었을 텐데, 휘연의 모습을 봤었다니.
장기린의 입장에선 그 점이 더 놀랍다.
“놀랄 만큼 예쁜 분이었으니까요. 철우 공께 들은 바론, 한때 차세대 항주제일화가 될 뻔했다면서요?”
“뭐, 그랬다더군.”
“그분을 연모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었죠?”
술잔을 입에 가져가려던 장기린의 움직임이 움찔 멈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의 질문.
그리고 장기린이 대답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
장기린은 대답하지 않고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낭화 역시 그에 대한 대답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묵묵히 비어 버린 술잔에 죽엽청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는 원래의 궤도로 되돌아갔다.
“이망의 죽음이 슬프냐고 묻는다면…… 네, 슬픕니다. 하지만 이망이 싫냐고 묻는다면…… 네, 저는 이망을 싫어했습니다.”
“즉, 이망이 싫지만, 그의 죽음은 슬프다는 건가?”
“네, 그렇네요.”
“복잡하군.”
“육 년이니까요.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운 정이 쌓이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낭화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양손으로 들어 보름달을 향해 치켜들었다. 마치, 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축배를 올리듯이.
“이망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나?”
“네.”
낭화는 자신의 술잔에 담긴 술을 남김없이 마신 뒤,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하지만, 그만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인 사람은 제 탓으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그들의 원령이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워요. 죄책감이 듭니다.”
“……그렇겠지.”
“장 객주님.”
장기린은 고개를 들고 낭화를 쳐다봤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술자리를 가져 주실 수 있나요?”
“……글쎄. 술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술이 싫으면, 차를 마시는 것도 좋아요. 저는 장 객주님이 찾아 주시기만 한다면…… 매우 기쁠 것입니다. 용건은 무엇이라도 좋아요. 술값도 걱정하실 필요 없구요. 그저, 시간 나실 때 찾아만 주세요.”
장기린은 거절의 말을 하려다, 말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살짝 상체를 숙인 낭화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처롭게 물기를 띤 눈동자로.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곳에서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 장기린을 간절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장기린은 거절할 수 없었다.
낭화는 방금 이망을 잃고 마음의 중심을 잃은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나 매달려 온다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넌 청월루의 간판 기녀가 아닌가? 설령 내가 찾아온다고 한들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을 텐데.”
“아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째서……?”
낭화는 단호하게 답했다.
“어떤 손님이 와 있든, 어떤 시간이든, 언제나 장 객주님이 우선일 겁니다. 그리고 철우 공과는 앞으로도 이망이 죽지 않은 것으로 하기로 약속을 해 두었어요. 그편이 청월루를 위해서도 좋으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다른 사내와 동침할 일은 없을 거고, 객주님께 내어 드릴 시간은 아주 많답니다. 어려워 말고 찾아 주세요.”
낭화는 그리고,
“원하신다면 늦게 찾아오셔서 주무시고 가셔도 돼요. 저는 장 객주님이라면 괜찮으니까요.”
라는 감히 대답할 수 없는 말까지 했다.
“그래, 주실 수…… 있나요?”
매달려 오는 듯한 시선.
결국 장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난다면, 찾아오지.”
“기뻐요.”
미녀의 웃음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더니…….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얼굴 가득 환하게 웃는 낭화를 보자, 장기린은 그렇게 대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은 밝고, 술은 달았다.
그렇게 반 시진쯤 대화를 나누었다.
장기린이 객잔을 세우고 지금까지 겪어 온 이야기를 해 주자, 낭화는 매우 흥미로워했고, 그녀는 지금껏 만나 본 고위 관직의 관료나 왕족들의 성격, 약점, 재미있었던 일화 등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사교성이 별로 없는 장기린마저 대화에 푹 빠져 버렸을 만큼 재미있는 대화였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커다란 보름달이 밤하늘의 중심에 올 때쯤, 장기린은 더 이상의 술을 거절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낭화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무시고 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취기가 오르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이 묘하게 요염하다.
하지만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아, 그건 곤란해.”
장기린은 싱긋 웃으며 난간 너머로 보이는 야경의 한구석을 바라봤다.
금선교 너머, 아득해 보이는 어두운 거리.
그곳에 풍운객잔이 있다.
청월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하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한 곳. 그가 만들고, 그의 가족들이 함께 사는 소중한 공간. 그곳에서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들이 춘절 음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거든.”
“그런……가요.”
“아아, 운찬이 만든 춘절 음식은 맛있을 거다. 틀림없어.”
“……네, 그렇겠죠.”
애써 마주 웃어 주는 낭화의 눈빛이 서글프게 가라앉아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서의 기녀 생활이 칠 년이 넘은 그녀다. 장기린의 말뜻이 완곡한 거절이라는 것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아, 참, 그렇지.”
장기린은 문득 생각이 나 품속에서 붉은색 천 조각을 꺼내 낭화에게 건네주었다.
낭화는 의아해하며 그것을 받아들더니, 정체를 확인하고는 더더욱 의아해했다.
“이건……?”
“춘절 날 집안에 복(福) 자를 거꾸로 붙이면 복이 찾아온다더군. 도복도복이라던가.”
“아니, 그건 저도 알지만요…….”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게 당연한 상식인 모양인데, 나는 그걸 오늘 처음 알았어. 하지만 그 미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런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복을 잔뜩 받은 기분이었다.”
낭화가 놀란 얼굴로 장기린을 쳐다봤다.
장기린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뒤, 붉은 천 조각을 직접 그녀의 손에 꽉 쥐어 주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던가? 불행한 일이 있으면 행복한 일도 있는 거다. 춘절이니까,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해야지. 잘 넣어 둬라.”
“아…….”
낭화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알맞은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황색 실로 수놓아진 복(福) 자를 보며 그녀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아, 그리고 잠시 생각해 봤는데, 노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곳에 자주 찾아오는 것은 힘들 것 같다.”
“네? 그런……!”
“대신, 네가 찾아와. 우리 풍운객잔은 한가한 시간이 많으니까. 언제 오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
낭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로…… 언제든 찾아가도 되나요?”
“그래, 언제든 상관없어.”
그 말에 낭화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것을 확인한 뒤, 장기린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낭화는 청월루의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녀가 직접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청월루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랐지만, 장기린도 낭화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낭화는 장기린의 모습이 금선교를 넘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배웅해 준 뒤,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복도복(倒福到福).”
마치 주문을 외듯이, 경건하게 행복을 기원한 그녀의 손엔 붉은색 천 조각이 소중하게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