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章 ― 만적야혼(萬敵夜魂)
만적(萬敵).
만인의 적이라는 뜻이다.
또는 ‘만명의 목숨을 참살한 자’라는 뜻도 있다.
반야혼(半夜魂)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사람은 무리를 짓고 산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 몸집의 절반밖에 안 되는 들개나 원숭이보다도 약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리를 짓는 게 더욱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두뇌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외로움을 느낀다는 감성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반야혼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해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홀로 서기를 원했다. 어미의 뱃속에서 탯줄을 끊고 열흘을 넘게 버티다가 태어났는데, 그때는 이미 어미가 내출혈로 죽은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즉, 죽은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시체에서 태어난 것이다.
갓 태어난 그를 받은 것은 산파가 아니라 묘지기였다. 그것도 시체의 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묘지기가 배를 갈라낸 덕분에 태어났다.
태아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무게가 보통 태아보다 한 근이나 무거웠으며, 심지어 입속엔 이빨마저 나 있었다.
아직 눈도 못 뜬 태아가 자궁이 바짝 마르도록 양수를 빨아먹고, 싸늘하게 식은 피를 빨며 홀로 생존해 낸 것이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
괴이(怪異)라고 불려야 마땅한 사건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몰랐다. 어미가 묘지에 묻히게 될 때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걸로 봐선, 없는 걸로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아이는 묘지기 노인의 밑에서 자랐다.
젖동냥은커녕 먹다 남은 밥을 물에 풀어 줘도 잘 먹고 잘 자랐다.
묘지기 노인은 누군가를 챙겨 주는 성격이 아니었고, 아이를 금방 죽어 사라질 존재로 취급했다. 그저 끼니때 자신이 먹을 것에서 조금 떼어 나눠 주는 정도가 그가 베푸는 관용의 한계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무럭무럭 자라나, 나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는 열 살짜리 또래 애들 못지않게 몸집이 컸다.
아이는 낮보다는 밤을 좋아했고, 사는 곳이 공동묘지인 탓에, 유령을 뜻하는 야혼(夜魂). 그리고 반쪽짜리 사람이라는 뜻의 반(半)을 써서 반야혼이라 불렸다.
반야혼은 근처 마을의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에 따라, 그를 어미 잡아먹고 태어난 괴물이라고 부르며 따돌렸다. 혹시라도 전쟁놀이 같은 걸 하게 되면, 혼자서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지만, 항상 피투성이가 되어서 울며 도망치는 것은 마을 아이들이었다.
반야혼은 적당히를 몰랐다. 아이들이 장난감 목검을 갖고 덤비면, 뾰족한 돌로 후려쳤다. 아이들이 피부를 꼬집으면, 귓불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상대를 깨물었다.
그에 분노한 아이들의 부모는 반야혼을 짐승 취급하며 치도곤을 내려했지만, 그들은 묘산에 숨은 반야혼을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반야혼은 혼자가 되었지만, 그걸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묘지기의 곁에서 살다 보면, 삶보다는 죽음을 더 많이 목격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삶이다.
반야혼은 너무나도 빨리 죽음에 눈을 떴고, 아이들과 노는 것을 시시하게 생각했다.
그는 일곱 살이 되는 해부터 혼자 사냥을 해 혼자서 먹고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묘 근처에는 먹을 것이 널려 있었다.
무덤을 파헤치는 여우.
시체를 파먹고 사는 쥐.
그 쥐를 먹으려고 오는 뱀.
처음엔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잡아먹는데 급급했지만, 차츰 사냥 기술을 터득함에 따라 점점 능숙하게 사냥감을 사로잡았다.
먹을 것만 구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필요 없다.
여덟 살이 되던 해, 때마침 묘지기 노인이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스스로 땅을 파고, 스스로 만든 관에, 스스로 누워서 맞은 죽음이다.
반야혼이 할 일은 뚜껑을 덮고 흙을 덮어 주는 일밖에 없었다.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음을 맞는다.
반야혼은 거기서 이상적인 죽음의 형태를 봤다.
반야혼은 묘지기 노인이 묻힌 곳을 보며 홀가분함을 느꼈다. 드디어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인간관계가 부서진 것이다.
혼자다.
반야혼은 기뻐했다.
그날 이후로 마을의 묘산은 요괴가 사는 귀산(鬼山)이 되어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엔 사람 말고도 무리를 짓고 사는 생물들이 많다.
늑대가 그렇고, 벌이나 개미가 그러하며, 원숭이도 무리를 짓고 산다.
그들에게도 서열이 있고, 철저한 규칙이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힘을, 무리를 지음으로써 만들어 낸다. 원숭이 떼가 달려들면 호랑이도 도망친다.
하지만 그들에겐 인간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생산(生産)을 하느냐, 수렵(狩獵)을 하느냐 하는 문제다.
인간은 생산을 할 수 있다.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며, 그것을 기반으로 문화를 꽃피워 낸다.
개발한 문화는 혼자서는 누릴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짐승은 기껏 무리가 되어 숫자가 늘더라도, 오로지 수렵에만 그 힘을 사용한다. 자연에서 식량을 채취하며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간다.
만약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가 되더라도 괜찮다. 무리일 때보다는 힘들지만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차이점을 놓고 볼 때, 반야혼은 분명 짐승이었다.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혼자 존재하고, 홀로 자립하는 그는 인간이란 명칭조차 필요치 않다.
하지만 그런 반야혼도 운명의 인도에 따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다.
반야혼의 나이 열일곱이 되는 해, 귀산으로 찾아온 유근(劉瑾)과 만난 것이다.
유근은 연왕이 정난의 변을 일으켜 태종의 자리에 오르고, 환관을 등용해 밀정정치(密偵政治)를 시작하자, 불만을 품고 반란을 획책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귀주의 목을 담당했던 대장군 출신으로,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었는데, 북경에서의 난을 계획하던 중에 황제의 비밀 정보기관인 동창에 꼬리를 밟히는 바람에 도주를 하고 있었다.
그는 동창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귀산에 들어왔고, 거기서 마침 사냥한 호랑이를 날 것으로 뜯어먹던 반야혼을 발견한다.
그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유근은 수하들에게 그를 붙잡아 오라고 시켰으나, 사흘간 쫓고 쫓긴 끝에 백 명이 넘던 병사들이 서른 명밖에 남지 않는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유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까지 동원해 성대한 미끼전을 펼쳤고, 결국 병사 열 명만을 살린 채 성난 황소를 잡을 때처럼 쇠사슬로 칭칭 감아 반야혼을 사로잡았다.
유근은 반야혼을 향해 ‘생각할 수 있는 짐승’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조금만 사람의 힘을 배우면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을 테니, 그때까지만 그를 따르라고 설득했다.
반야혼은 승낙했다.
지금 그의 목숨 줄이 유근의 손아귀에 달려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붙잡혀 보면서, 사람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 뒤, 팔 년간 반야혼은 유근의 개가 되어 활약했다.
주요 무대는 내전(內戰)과 정치적 밀회 급습.
짐승처럼 밤[夜]에 정신[魂]을 차리는 반(半)쪽짜리 인간이라고 하면, 동창의 관원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았다.
만적(萬敵)이라는 별호도 얻었다.
유근이 자신의 본거지인 귀주로 후퇴하기 전에 벌인 대대적인 난(難)에서, 만 명의 병사에게 포위되었을 때.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반야혼은 무시무시한 맹위를 떨치며 만 명의 병사와 싸워 주인인 유근이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다.
결국은 사로잡혔으나, 잡히는 순간까지 그가 죽인 병사의 숫자만 해도 천 명가량.
만약 반야혼이 반란군의 수괴급 인사만 아니었더라면, 벌써 민중들 사이에 이름이 퍼졌을 정도로 대단한 공적이었다.
만적(萬敵) 반야혼(半夜魂).
그 이름은 황실 밀정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에겐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 ☆ ☆
춘절이 시작된 신년의 오후.
한적한 소로(小路) 위를 일단의 병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 걸어가고 있었다. 발을 맞춰 걸으며 항시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허리춤에 손을 얹은 모습이, 꼭 전쟁에 나서기 직전의 모습과 같지만, 사실 그들의 임무는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커다란 짐마차를 목적지까지 호위하는 일이었다.
이야기만 들으면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서른 명가량의 병사들은 목 밑에 누가 칼이라도 들이대고 있는 것처럼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틈만 나면 짐마차를 흘깃거렸다.
누가 보면 짐마차 안에 맹수가 갇혀 있다고 생각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틈만 나면 짐마차를 경계하는 병사들. 잔뜩 긴장해서 말을 몰고 있는 마부까지.
밥을 먹을 때도, 걸음을 옮길 때도, 그들은 절대 짐마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목적지인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될 듯했다.
“춘절 날 사문을 떠나 밖으로 나와야만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어요.”
점창파 제십삼대 일대제자인 양응룡(楊應龍)은 닷 발이나 튀어나온 입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지금 사부인 관일검객(貫日劍客) 배홍(롸洪)과 함께 관의 명령에 따라 ‘징병’된 상황이었다.
온 백성의 휴일인 춘절에 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기껏 받은 임무가 겨우 짐마차나 호위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분통을 터지게 했다.
점창파라고 한다면 명색이 구파일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유수의 명문 정파였다.
양응룡의 생각엔, 아무리 점창파가 제이의 무당파가 되기 위해 관(官)과 결탁했다 해도, 이런 식의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점창의 무인들은 이런 식으로 동네 개를 부르듯이 아무렇게나 불려 나올 존재가 아닌 것이다.
“장문인이 정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야지.”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딱 부러지게 말하는 배홍은 평소의 대쪽 같은 성품대로 이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다.
양응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그도 이쯤에서 수그러들었을 테지만, 그러기엔 지금 상황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너무 컸다.
“하지만 이건 너무한다구요. 보세요. 이 짐마차. 겨우 짐마차 하나에 병사가 서른 명이나 붙어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우리 점창의 무인들까지 올 필요는 없지 않았겠어요?”
“…….”
“저는 왠지 황실이 우리를 무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 얼마나 우리를 별 볼 일 없게 생각하면 이런 일을 맡길까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된 배홍과는 다르게,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넘은 양응룡은 이번 일을 태연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뛰어난 재능 덕분에 어린 나이임에도 특별히 일대제자에 들어가고, 이번에 황실의 지엄한 명을 받아 문파 밖으로 나올 때는, 내심 커다란 공적을 세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하지만 룡아,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예?”
“병사들의 반응을 봐라. 긴장해서 검병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짐마차를 확인하는 것 하며…… 마치 짐마차에서 당장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처럼 겁을 집어먹고 있어. 분명, 이 일은 보기만큼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야.”
배홍은 관일검객이라는 멋진 별호를 얻을 만큼 강호행의 경험도 풍부한 무인이었다. 그는 이 행렬의 이상한 점을 즉시 찾아내고, 그 점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 정말, 그러네요.”
양응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금 병사들을 살펴본 뒤, 배홍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장문인께서 이번 일이 뭐라고 하셨었죠?”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다. 그저 관의 일을 도우라고만 하셨었지.”
“끄응……. 결국 저들에게 물어봐야겠네요.”
“그래, 그래야겠구나.”
배홍은 마음을 정하면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즉시 이 행렬의 우두머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행렬을 이끄는 사람은 호장(護將)의 직위를 가진 장철이라고 했는데, 사교성도 없고 무림인을 경원시하는 전형적인 관료였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도, 이번 일은 그저 짐마차의 호위라고 했을 뿐 다른 것들은 일체 가르쳐 주지 않았었다. 그저, 차차 알게 될 거라고 했었다.
“이보시오. 장 호장.”
“……왜 그러시오?”
장철은 배홍을 힐끗 쳐다본 뒤,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쯤 왔으면 짐마차에 뭐가 들었는지 가르쳐 줘야 하지 않소? 이미 한 배를 탔으니, 나와 제자도 알 권리가 있는 것 같소만.”
“…….”
“병사들이 이렇게나 긴장해 있는 것을 보면, 보통 물건은 아닌 듯싶은데……. 대체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이오?”
장철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하긴, 어차피 알 때가 되었소.”
“알 때가 되었다니……?”
“저 안에 있는 것은 죄수요. 그것도 황실의 주의 감찰 인명록에서 ‘특(特)’ 자가 세 개나 붙어 있는 엄청난 녀석이지. 언제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인물이오.”
장철의 심각한 말투에, 듣고 있던 배홍마저도 덩달아 긴장해 버렸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오?”
“그렇소.
“으음, 죄라면 어떤 죄를 지었소?”
“역모요.”
장철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배홍이 아니라, 어느새 옆에 와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의 제자 양응룡이었다.
“역모?!”
“쉿! 조용히 하시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오. 동창에 잡혀가고 싶소?”
“…….”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반란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뇌부요. 이번에 북경에 호송되면, 황실에서 직접 심판을 하여 본보기를 보일 거라 들었소.”
“본보기라면……?”
“참형(斬刑)을 당하고, 목이 대문에 걸릴 거요. 아니, 죄질이 범상치 않으니, 어쩌면 우마형(牛馬形: 다른 말로 오살형(五殺刑). 저잣거리에서 팔다리를 말과 소에 묶어 잡아당겨 죽이는 형벌)에 처할 수도 있겠소.”
배홍과 양응룡은 서로를 힐끗 쳐다본 뒤, 그제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책임자인 장철이 이렇게나 바싹 긴장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만한 일일 경우, 만약 실패하면 책임자의 목이 달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병사들까지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양응룡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걸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짐마차의 호위는 지금의 병사들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밥을 주는 거요.”
장철의 대답에, 순간 양응룡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저 안의 죄수에게 밥을 주는 것이 그대들이 할 일이오.”
“…….”
양응룡의 얼굴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한순간에 일그러진다.
이번만큼은 배홍마저도 차마 참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밥을 주는 게 일이라니.
대점창파의 무인을 불러 놓고, 기껏 시키는 일이 죄인의 밥을 주는 거라니!
“지금 그건, 농담입니까?”
“아니, 진담이오.”
결국 양응룡은 폭발하고 말았다.
“어찌 그런 말을……! 지금 대점창파의 무인을 데리고 와서, 기껏 시킨다는 것이 겨우 죄수의 밥을 주는 거다, 이겁니까? 사문을 능멸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리를 지르자 주변의 시선이 모두 모여든다.
양응룡은 명문 대파에서 무공을 갈고닦은 상급의 무인.
분노를 토해 내는 그의 기세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으나, 장철은 동요하지 않고 그런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뭔가 오해하는 모양이군. 그 일이 간단해 보이시오?”
“밥을 주는 게 간단해 보이냐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잠깐, 룡아야. 이야기를 들어 보자.”
배홍의 만류에 양응룡은 씩씩거리면서도 화를 꾹 눌러 참았다.
장철은 어린애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뭔가 연유가 있는 모양인데,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짐마차 안에 있는 죄수는 괴물이오. 인간이 아닌 자이지. 만적 반야혼이라는 자인데, 들어 본 적이 있소?”
배홍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고개를 저었다.
“반야혼…… 들은 적이 없소.”
“그럴 거요. 황실의 단체들이 쉬쉬하는 이름이니까. 명심하시오. 그는 짐승이오. 그것도 사람의 정신을 농락할 줄 아는 교활한 짐승이지. 절대로 말을 섞어서도 안 되고, 교감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되오. 여기까지 호송하던 중에 그와 말을 나눈 병사 셋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소.”
“어떻게 그런 일이……! 사술(邪術)이라도 쓰는 것이오?”
“아니,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겠군. 저놈은 그저 말 몇 마디를 했을 뿐이오. 하지만 그 말들이 귀신처럼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지.”
배홍과 양응룡의 입장에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철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절대로 거짓으로 두 사람을 놀리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 밥을 주지 않으면 되잖소.”
“그럴 수는 없소. 북경의 황실에서 직접 판결을 내리기로 한 이상, 거기까지는 멀쩡한 상태로 데려가야 하오. 그래서 상부에 보고를 했더니, 당신들을 보내 준 것이오.”
“그래서 우리를……?”
“무림의 무인들은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비법을 익힌다고 들었소. 그렇다면 우리 병사들보다는 저 괴물을 상대하기 쉬울 거라 생각하오만.”
배홍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그자가 무공을 익혔소?”
“잘은 모르지만,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소.”
“……그렇소?”
배홍의 얼굴에 떠올랐던 긴장감이 씻은 듯이 사라져 간다.
장철은 그런 기색을 느꼈으나,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림인들이 관료를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관료들은 무림인을 무공밖에 모르는 무뢰배라고 생각한다.
무림인들은 무공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경향은 자부심이 강한 명문 정파 출신일수록 강하게 나타나는데, 배홍과 양응룡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명심하시오. 저자는 괴물이오. 절대로 방심하거나 긴장을 풀어선 안…….”
“알았소, 알았소.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양응룡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채 손을 내저었고, 배홍도 그런 양응룡을 만류하지 않는다.
장철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켰다.
“전원― 정지―!”
척! 척!
잘 훈련된 정병들은 명령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걸음을 멈췄다.
“부관! 죄수의 밥을 가져오도록.”
“예!”
장철의 부관은 주발에 담긴 커다란 주먹밥 하나와 물이 담긴 가죽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장철은 그것을 받아 양응룡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죄수에게 먹여 주시오.”
“잠깐, 먹여 주다니. 죄수에게 건네주면 끝 아닙니까?”
“죄수는 손발이 형틀에 묶여 있소. 스스로는 먹을 수 없소.”
“……!!”
양응룡은 점입가경이라는 듯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장철이 병사들에게 손짓을 하자, 그들은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얼굴로 짐마차의 문을 열었다.
양응룡은 문 앞에 가서 버티고 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쉽게 일을 끝내 버려서 병사들에게 점창 무인이 그들과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보여 주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끼이이익―
짐마차의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열렸다.
문의 두께만 해도 반 척이 넘는다. 포탄을 맞아도 멀쩡할 것 같은 짐마차의 외부엔 나무판자를 못으로 박아 보강해 두었는데, 그것만 봐도 병사들이 얼마나 그 안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차 안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는지 문을 열자마자 탁한 공기와 함께 지독한 냄새가 확 퍼져 나왔다.
“헙……!”
문 앞에서 귀찮은 듯 팔짱을 끼고 있던 양응룡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크게 떴다.
냄새 때문이 아니다.
마차 안의 광경은 지독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조차 잊어버릴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가로세로, 일 장 너비의 짐마차.
그 중심엔 마치 교수형을 집행할 때 쓰는 기둥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고, 한 존재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그곳에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을 하고, 몸에는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누더기를 걸쳤다. 양발에서부터 무릎까지 기둥과 함께 쇠사슬에 감겨 있었고, 양팔은 등 뒤로 돌려져서 기둥의 반대쪽에 또 다른 쇠사슬로 감겨 있었다. 눈은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입에는 밧줄로 만든 투박한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극도의 경계.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
죄인을 기둥에 묶은 자의 감정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맹세코 양응룡은 이 광경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토록 경계할 수 있을 줄이야.
눈, 입, 손, 발.
시선, 말, 행동, 움직임.
가능한 모든 것을 봉쇄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대라는 것이, 그 모습만으로도 전해졌다. 보통 맹수를 잡았을 때도 이 정도로 결박해 놓지는 않는다.
그는 말 그대로, 선 채로 꽁꽁 묵인 채 ‘숨만 쉬고’ 있었다.
“들어가면 오른쪽 벽에 횃불이 있소. 문을 닫기 전에 그 횃불을 켜고, 문이 닫히면 재갈을 풀고 밥과 물을 먹이시오.”
양응룡은 장철의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장철은 그를 향해 불을 켤 수 있는 화섭자를 내밀고 있었다.
“문을 닫는 겁니까?”
“그가 병사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면 안 되오.”
정말로 철저한 경계심이었다.
양응룡이 배홍을 쳐다보자, 그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죄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사부는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무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무공과 관계없는 일엔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양응룡은 사부의 그런 모습을 보자 죄수에게 위압감을 느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상대는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 게다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도록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여러모로 대점창파의 일대제자인 그가 긴장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크흠!”
양응룡은 그런 자신에 대한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털어 버린 뒤, 주먹밥과 물을 들고 짐마차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나올 때는 마차 문을 세 번 두드리시오.”
장철은 양응룡에게 그렇게 말해 준 뒤, 양응룡이 화섭자로 횃불에 불을 붙이자, 문을 닫았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마차 안은 짐승의 노린내 같은 지독한 악취가 가득했으나, 그런 냄새엔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둠이 훅 몰려들며 횃불의 불빛만이 은은하게 일렁였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 병사들이 극도로 경계하는 죄수와 함께 있다는 것은 긴장이 되는 일이다.
양응룡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횃불에 비춰지는 죄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사람이라기보다 짐승과 같다.
더러운 몰골과 신체를 덮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흉터들. 저런 흉터를 얻으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런 자와 만약 싸워야 한다면…….
‘잠깐, 내가 왜 긴장을 하는 거지?’
양응룡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손으로 확인했다.
그는 주먹밥과 물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신경질적으로 죄수의 재갈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재갈을 풀어 주자마자,
“병사가 아니군.”
“……!”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병사가 아니다.
죄수 반야혼은 여태껏 재갈을 물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 냄새…… 남쪽에서 온 것 같은데.”
점창파가 있는 곳은 운남 대리.
그러니 남쪽에서 왔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양응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다가 그가 놀랐다는 것을 들킨다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나이는 약관인가? 아직 어려. 그런 나이면 혼자 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분명 어른과 함께 왔어. 큭큭, 냄새가 묘하게 청량하고 순수한 것이…… 그래, 무림 문파에서 왔나 보군. 산에서 칼 장난을 치며 살다가, 이번 기회에 사부와 함께 세상에 놀러 온 건가?”
“……!!”
양응룡은 굳어 버린 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사람이다. 눈에는 검은 천으로 안대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안대 너머로 자신의 온몸을 샅샅이 훑고 있는 듯한 이 감각은 무엇인지……. 지금 우위에 서 있는 것은 분명 그인데, 어째서 포식자를 마주친 것처럼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양응룡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다, 닥쳐!”
경직을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철이 들 때부터 익혀 온 점창의 태양신공(太陽神功) 덕분이었다.
단전이 뜨거워지자, 자연스레 정신이 되돌아왔다.
양응룡은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주먹밥을 반야혼의 입에 쑤셔 넣다시피 하며 집어넣었다.
반야혼은 그런 돌발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주먹밥을 씹어 먹었다.
천천히. 아주 맛있게.
꿀꺽― 꿀꺽―
주먹밥을 다 밀어 넣은 뒤, 물 역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입에 들이부어 식사를 주는 것을 마쳤다.
양응룡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에 열이 뻗치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주발을 주워 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반야혼은 양응룡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를 보며 웃었다.
재밌는 놀이, 갖고 놀 만한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그의 입에 차가운 웃음이 매달린다.
“잠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곧장 재갈을 채우려던 양응룡의 손이 움찔 멈춰 섰다.
“뭐, 뭐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닌가? 앞으로 한동안은 밥시간마다 볼 것 같은데,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어떨까?”
“인사……?”
“난 반야혼이다. 너의 이름은 뭐지?”
양응룡은 자신도 모르게 순순히 대답하려고 하다가, 이내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죄인에게 주도권을 내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절대로 이름을 말해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주도권을 잃은 셈이었지만, 양응룡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에게 알려 줄 이름은 없다!”
“그런가, 생각보다 겁이 많군.”
“뭐……?”
“무공을 익힌 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들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시골의 촌부들과 똑같은 반응을 하는 걸 보니.”
양응룡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별 게 없이 평범하다는 말이었다.
화가 났다.
울컥 치밀어 오른 화가, 하얗게 질렸던 낯빛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 죄수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 별것도 아닌 놈이라는 뜻이다.’
양응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반야혼의 몰골을 다시 한 번 훑어봤다.
어두운 곳에서 횃불을 들고 봐서 그렇지, 사실 지금 반야혼의 몰골은 처참할 뿐이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이고, 쇠사슬에 칭칭 감긴 그가 양응룡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놈한테 긴장한 것을 보면,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었네. 이게 다 그 장철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이상한 소리를 한 것 때문이다. 그 탓에 괜히 긴장했어.’
양응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야혼의 입에 재갈을 꽉 묶은 뒤, 마차의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끼이이익―
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들. 혹시 일이 잘못될 것을 대비했는지 제법 몸이 다부진 병사들 다섯 명이 칼에 손을 얹고 기다리고 있었다.
양응룡은 그들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밖으로 나갔다.
마차를 나서며 반야혼을 힐끗 쳐다봤지만, 그는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흥! 잠시 긴장했던 것뿐이다. 별것 아니었어.’
그는 처음에 위축되었던 것은 분위기 때문에 벌어진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장철이 별일 없었냐고 묻는 것에 퉁명스러운 말투로 별것도 아닌 놈이라고 대답했다.
장철은 미심쩍고 불안해 보였으나,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무공을 익혔더냐?”
“아니요.”
“그럼 어떤 놈이더냐?”
양응룡은 배홍에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것도 없이 헛바람만 잔뜩 든 놈이었습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배홍은 별 관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부터 그의 관심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행렬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먼 산만 바라보았다.
‘기분 나쁜 놈이야.’
양응룡은 생각할수록 불쾌해지는 기분에, 걷는 틈틈이 짐마차를 힐끗거렸다.
그런 행동이 다른 병사들과 똑같다는 점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 일쯤 지나자, 양응룡은 이제 반야혼에게 밥을 먹이는 일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하루에 두 번. 해가 뜰 때쯤과 해가 질 때쯤 밥을 먹였다.
이젠 밥시간이 되면 불쾌감보다는 짜증이 먼저 났다.
내가 왜 이런 하찮은 놈에게 밥을 먹여 줘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고작 이런 일로 불려 다니게 만드는 사문에 대한 원망까지 생겼다.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여정이었다.
어서 북경에 도착해서 이 일을 끝내고, 사부와 함께 비무행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밥시간이오.”
장철의 부관이 건네주는 밥과 물을 받아 마차로 가자, 마차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두말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끼이이익―
귀에 거슬리는 문소리도 짜증스러웠다.
화섭자에 불을 붙이자 ‘쿵!’하고 문이 닫힌다.
양응룡은 일을 빨리 끝내기 위에 재갈부터 벗겼다.
“벌써 밥시간인가.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군.”
“입 닥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반야혼은 몰골에 어울리지 않게 낮고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은 부드럽고 명확하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짐승 같은 놈인 주제에 말투가 여유롭고 유식해 보인다는 점도 양응룡을 불쾌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슬슬 이 일이 지겹지 않은가?”
양응룡은 눈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공감을 해 버렸을 만큼 이 일이 짜증스러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지겹지. 네놈의 얼굴을 보는 것도 짜증스럽다.”
“그렇군. 하지만 힘없는 사문을 갖고 태어난 게 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뭐야?”
양응룡의 손이 자연스레 허리춤의 검으로 향했다.
“감히 우리 사문을 욕보인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목소리에 담긴 기세가 제법 살벌하다.
반야혼은 싸늘하게 비웃었다.
“용서치 않으면? 반드시 황실에 도착해야 하는 대역죄인을 죽이기라도 할 건가?”
“네놈……!”
“사실은 사실이지. 힘들게 무공을 익힌 것은, 내 밥시중이나 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텐데?”
양응룡은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것을 꾹 눌러 삼키고 말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황실의 명이라면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만 하는 힘없는 사문 때문이 아닌가? 사문이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지금쯤 어느 비무장에서 멋지게 무공을 뽐내고 있었을 테지.”
“…….”
“무공을 배우면 협객이 돼야 한다고 들었다. 네 꿈은 그런 것 아닌가?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치는 무인이 되고 싶지 않나?”
양응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성질을 돋워서 화나게 하더니, 어느새 그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짚어 내 공감하게 만든다.
“닥쳐…….”
양응룡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린아이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었다.
“그런 미래의 대협객이 쓸데없는 밥시중이나 들어서야 안 되겠지. 그럴 시간이 있다면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것이 이득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내가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밥시간엔 내 손을 묶은 쇠사슬을 풀어라. 그럼 내가 스스로 밥을 먹으면 된다. 어린애처럼 먹여 줄 필요 없어.”
동요하던 양응룡의 움직임이 딱 멈춘다.
“뭐? 쇠사슬?”
양응룡의 얼굴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무슨 수작이야? 쇠사슬을 풀라니.”
“수작이라니? 난 너를 돕고 싶을 뿐이다.”
“거짓말 마! 쇠사슬을 풀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거잖아! 내가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 몇 번 말을 섞어 주니까, 네놈이 나를 우습게 봤어!”
양응룡은 분개하며 주먹밥을 반야혼의 입에 쑤셔 넣으려고 했다. 쓸데없이 말을 섞었다는 생각과 함께 빨리 일을 마치고 나가고 싶었다.
“역시 겁쟁이군.”
하지만 양응룡의 행동보다 반야혼의 말이 한발 빨랐다.
“뭐……?”
“내가 손의 쇠사슬을 풀면?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내 몸이 보이지 않는 건가? 난 안대를 차고 있고, 무릎 아래쪽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기까지 하다. 이런 내가 손의 쇠사슬을 좀 푼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나?”
양응룡은 ‘아!’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설령 손목의 쇠사슬을 풀어 준다고 해도, 반야혼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릎 아래를 칭칭 감아 둔 쇠사슬을 풀려면 시간이 걸릴 테고, 만약 수상한 짓을 한다면 반야혼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양응룡이 허리의 검을 뽑아 심장을 찌르는 게 훨씬 빠르다.
‘사일검(射日劍)을 만드신 사조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호통을 치시겠군.’
점창의 무공은 자고로 쾌속(快速)의 검공.
화살을 쏘듯, 해조차 찔러서 떨어뜨린다는 순속의 신공이다.
그런 것을 익힌 자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무공은 멋으로 배웠나 보군.”
“…….”
“그렇게나 겁이 난다면 됐다. 그냥 네가 밥과 물을 먹여 다오.”
반야혼은 어서 넣으라는 듯 입을 쩍 벌리기까지 했다.
양응룡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를 겁냈다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그런 제안을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굳이 밥을 먹여 주지 않아도 되는데 밥을 먹여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 잠깐.”
“뭐지?”
“좋아. 풀어 주겠다. 크흠! 네 정성을 봐서. 그리고 그나마 며칠간 보아 온 정리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한 듯 양응룡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때문에 양응룡은 보지 못했다. 반야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래. 그럼, 쇠사슬을 풀어 다오.”
“잠깐 기다려 봐.”
손목을 칭칭 감은 쇠사슬은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도록 두꺼운 고리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바깥의 사람이 풀려고 하면, 의외로 쉽게 풀 수 있는 구조다.
양응룡은 그 고리를 빼내기 직전, 반야혼에게 마지막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충고하는데, 딴생각은 먹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정말로 내 검이 너의 심장을 꿰뚫을 거다. 너는 절대로 막을 수 없어.”
“알겠다. 조심하지.”
반야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철컹―!
반야혼의 손목을 칭칭 감고 있던 쇠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음…….”
반야혼은 자유롭게 해방된 양손의 감촉을 느끼려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양응룡은 주먹밥이 든 주발과 물이 든 가죽 주머니를 앞으로 내밀었다.
“자, 밥이랑 물이다. 바로 앞에 있으니 잡아 봐라.”
“……그러지.”
반야혼은 받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으나, 어째선지 건네준 밥을 붙잡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주발이 깨져서 박살 나고, 동그란 주먹밥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양응룡은 아까운 그것을 보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이 아까운 밥을……! 왜 그릇 하나 제대로 못 잡……!”
양응룡은 그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아……!’
정처 없는 신음만 머릿속을 맴돈다.
양응룡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쿵!’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목이 뜨거웠다.
기습.
완벽한 기습이다.
주발과 주먹밥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것에 양응룡이 잠시 시선을 빼앗긴 사이, 반야혼은 발목의 쇠사슬을 붙잡았다.
단지 붙잡았을 뿐인데, 그 쇠사슬은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투두둑―’하고 약한 실타래가 끊어지듯이 반으로 뜯겨져 날아갔다.
쾅!
그다음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양응룡은 마차의 벽면에 밀어붙여지고 있었다.
단단하고 두꺼운 손바닥이 그의 입을 막았고, 단단한 무릎이 검을 뽑아 들지 못하도록 허리와 명치 부근을 제압했다.
사일검(射日劍), 추뢰수(追雷手), 분광검(分光劍).
그가 평생을 익혀 온 무공은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전신이 무기력해지며,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순진한 건 죄악이지. 당장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커다란 죄.”
완전히 제압당한 양응룡의 귀에 반야혼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난 원래 무기를 쓰지 않아. 모든 걸 맨손으로 해결하지.”
“크으윽……!”
“바로 이렇게.”
비어 있는 오른쪽 손으로 양응룡의 왼쪽 무릎을 붙잡는 반야혼.
그는 마치 맨손으로 두부를 으깨듯이 손쉽게 무릎을 부숴 버렸다.
“으으으으읍―!!”
양응룡은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지만, 입을 틀어막고 있는 반야혼 때문에 별로 소리가 나진 않았다.
인간을 초월한 악력이었다. 고통과 경악으로 땀에 절은 육체가 부들부들 떨린다.
마차 밖에서 위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반야혼이 병사들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 만든 마차인 탓에, 안쪽의 공기는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비명이 새어 나갈 수는 없다.
양응룡은 반항하기 위해 꿈틀거렸으나, 손안에 들어온 새끼 새가 된 꼴이었다.
반항할수록 점점 더 강하게 옥죄어 온다.
양응룡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 포기하는 게 좋아.”
포기하는 순간, 압박이 사라졌다.
반야혼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여유롭게 안대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드러난 두 눈으로 양응룡을 쏘아보았다.
반야혼이 뒤로 물러났다는 것은, 양응룡이 자유를 얻었다는 것과 같다.
곧바로 일어나 반격을 가하려던 양응룡.
하지만 그는 돌로 변해 버린 듯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아……. 아아……!”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통 새하얗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공포(恐怖).
“아, 으아. 아아……!”
동물이 일만 일 동안 연공을 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 또한 일만 일 동안 연공을 하면 신선이 된다.
만(萬)이라는 것은 그러한 숫자다.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수.
근본을 뿌리 채 바꿔 놓을 수 있는 위대한 숫자.
반야혼이 만적(萬敵)이라는 별호를 얻은 것은, 단지 그가 반란에서 만부부당(萬夫不當)의 무용을 뽐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 개의 목숨을 죽인 자.
만 명을 살해한 자.
그 또한, 반야혼이 만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만 명의 사람을 죽이는 순간, 반야혼은 변했다.
살기를 담아 노려보면 사람이 실제로 죽었고, 분노하여 살기를 뿜어내면 발밑의 식물들이 시들며 바짝 말라 버렸다.
죽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신(死神)이 된 것이다.
반야혼은 자신이 마침내 사람보다 상위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서, 홀로서기를 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두려운가?”
“아, 으아. 아아…….”
“걱정 마라. 너는 죽이지 않을 테니. 그동안 밥을 먹여 준 대가라고 생각해도 좋다.”
양응룡은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해서 신음성만 흘렸다. 그의 바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이미 이지를 반쯤 상실한 상태였다.
똑. 똑. 똑.
반야혼은 마차의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문이 열린다.
화창하게 드러난 바깥에는 병사 세 명이 한가한 얼굴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벌써 긴장이 풀린 건가.”
반야혼은 중얼거렸다.
“어……?”
병사들이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 병사들의 목이 날아갔다.
푸화아악―!
핏물이 튄다.
축제다.
“크핫!”
웃음을 터뜨린 반야혼은 살기로 타오르는 눈으로 그의 적들을 노려보았다.
“마, 만적이다!”
“탈출했다! 비상! 비상!”
“당황하지 마라! 모두 전투 위치로! 포위…… 커헉!”
당황한 병사들을 진정시키려던 호장 장철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끊어졌다.
커다란 마차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겁에 질린 말들이 날뛰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비명과 절규, 뭔가가 박살 나는 듯한 소음이 폭풍이 몰아치듯 연신 울려 퍼졌다.
그중엔 양응룡의 사부인 배홍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 무박자라니……!”
목에서 피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지를 잃어버린 양응룡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소란이 그치고 주변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마차의 악취마저 덮어 버릴 만큼 짙은 피비린내가 주변을 잠식한 곳.
“아, 으으, 아으…….”
양응룡의 신음 소리만이 무의미하게 흘러나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