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五章 ― 운찬표적(雲燦標的)
항주(杭州) 금선로(金仙路).
온갖 향락이 다 모여 있는 유흥의 도시 중에서도 가장 값비싸고 호화로운 것들만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금선로다. 오죽하면 이름이 황금[金]으로 신선[仙]이 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금선일까.
화려함은 돈. 돈은 곧 욕망. 금선로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다 하나로 합치면 정말로 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금선로에서는 모든 것이 비쌌다. 땅값이 비쌌고, 물가도 비쌌으며, 그러니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의 전낭도 당연히 두둑해야만 했다.
금선로에선 같은 물건을 사도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비쌌는데, 그건 이른바 ‘자리값’이라는 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화주(火酒)의 가격만 해도 동전 오십 문. 물론 그나마도 서민적인 것은 갖다 놓지 않는다는 풍조 때문에 대부분 팔지 않았지만, 금선로 밖에서는 화주의 가격이 보통 열 문 안팎인 것을 생각할 때, 그 가격 차가 얼마나 큰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차별(差別)을 원한다.
주인과 노예라는 의미의 차별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극진히 대접해 주길 바라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차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금선로를 찾는다.
차별을 받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은 감히 들어갈 생각도 못 하는 비싸고 화려한 곳으로 가서 최고급의 대접을 받는다.
그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들과 친해지고, 그들만의 집단을 만듦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지를 재확인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
만석의 땅을 가진 대부호나 사품 이상의 관직을 가진 관리쯤 되면,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는 돈인 것이다.
삼십 일에 은자 한 냥을 버는 사람이 동전 스무 개를 쓰는 것과, 삼십 일에 은자 이만 냥을 버는 사람이 은자 이백 냥을 쓰는 건 결국 똑같은 부담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곳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금선로는,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제공하는 구름 위의 땅이었다.
돈이 있는 곳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고, 욕망이 있는 자들은 자연스레 돈을 좇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항주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똑같은 하인 노릇을 해도 다른 곳에선 겨우 밥이나 먹여 주는 반면에, 항주에선 몇 년만 마음먹고 일하면 한재산 톡톡히 챙길 수가 있었다.
게다가 금선로는 기분이 좋아진 손님이 가끔 한 푼씩 던져 주는 돈도 기본이 은자인 것이다.
그만큼의 차이가 나는데, 사람이 몰리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뒷골목 파락호나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하오문의 종자들도 실력이 좀 있다 싶으면 항주로 올라오는 것이 상식이었다.
금선로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오가는 곳이니만큼 그것을 둘러싼 이권 다툼 또한 치열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비안화숙(秘安話宿)의 청풍객잔.
비밀스런 대화는 절대로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는 그곳에서, 정작 그 객잔의 주인인 방태풍은 객잔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비대한 육체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비단옷을 입은 데다 머리에 고상한 문사건까지 두른 방태풍은 여전히 사람의 옷을 입은 돼지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흥분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방태풍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사람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얼굴 만면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인상을 썼다.
“이봐, 방 객주. 목소리 줄이지 못해?”
“하지만 문 대인……!”
“어허! 이젠 내 말을 우습게 보는 건가? 이 사람, 그동안 좋게 봤는데, 안 되겠어?”
북경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지부대인이자, 곧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를 거라는 항주 지부대인 문표는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방태풍의 비대한 몸이 움찔 떨렸다.
그가 아무리 청풍객잔의 주인이자 금선로에서 제법 떵떵거리는 거물이라고 해도, 정계를 주름잡는 문 대인에 비하면 발끝에 채이는 귀찮은 개처럼 미미한 존재다.
하지만 개도 며칠이나 밥을 먹지 못하면 주인에게 사납게 짖는 법이다.
방태풍은 기죽지 않고 따졌다.
“하지만,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문 대인께선 분명히 풍운객잔을 금방 무너뜨리겠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그곳이 건재한 것입니까?”
“…….”
“그, 담당 관청의 금 복야라는 자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문 대인께서 손을 다 써 두셨다고 했었는데, 왜 아무런 일도 없는 겁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으니, 지금 풍운객잔은 장사가 엄청나게 잘되고 있단 말입니다!”
한껏 불만을 쏟아 낸 방태풍은 숨을 씩씩거렸다. 풍운객잔이 장사가 잘되고 있으니, 점점 손을 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문 대인에게 건넨 은자가 얼만데,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덮을 수는 없다.
솔직히 속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든 항의를 하고 문 대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보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풍운객잔을 내버려 두기라도 한다 이건가?”
“그건 아니지만…….”
“아니, 지금 그 말은 그런 뜻이지 않은가.”
문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있다.
등골이 섬뜩해지는 냉랭한 눈빛.
금세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방태풍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문 대인. 저에겐 너무나 중대한 일인지라 잠시 흥분을 했습니다.”
“커험! 그래도 그렇지. 오늘의 태도를 보니, 내가 최근에 방 객주를 너무 편하게 대한 게 아닌가 싶구먼.”
“어이쿠, 그럴 리가요. 문 대인께서 저희 객잔에 와 주시는 건 삼생(三生)의 영광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그 감사함을 잊은 제가 멍청한 놈이지요.”
방태풍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숙일 사람한테 재빨리 숙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처세의 기본이다.
하늘 위의 존재인 문 대인에게 할 말을 하면서 기분을 맞춰 주는 것, 그것이 이번 만남의 핵심이다.
“커험!”
그런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도 문 대인의 화가 풀리는 기색이 아니다.
방태풍은 황급히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이마가 벌겋게 부어오를 만큼 머리를 세게 찧는 것이 다섯 번이 넘어갈 때쯤, 그제야 문 대인은 방태풍을 말렸다.
“어허, 왜 이러시나. 꼭 내가 그런 걸 시킨 것 같으이.”
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마치 봄날의 춘풍처럼 따뜻하다.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한 태도였다.
‘이 가식적인 늙은이.’
방태풍은 기가 찼지만 얼굴에 내색하진 않았다. 관리들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이 하루 이틀이었던가.
물론, 남들이 보기엔 방태풍도 그런 종자였지만, 스스로는 절대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자, 그만 일어나시게.”
권유가 세 번째가 되었을 때 방태풍은 조심스레 자세를 바로잡고 똑바로 앉았다.
한 번 잘못했을 때, 문 대인에겐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된다. 정계의 일인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속이 비정하고 냉혹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치적 친구였던 자를 다음날 역적으로 몰아 목을 베어 버리는 것도 태연히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 대인. 수하의 객잔 주인 따위는 언제 버려도 상관없는 돌멩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도 방 객주의 심정은 이해하네. 그 비천한 객잔이 의외의 힘으로 계속 버티고 있으니 성질이 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지금 분을 참지 못할 지경이야.”
쿵!
문 대인이 탁자를 내리치자 술병과 술잔들이 덜컥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방태풍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문 대인의 눈빛이 무섭도록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방태풍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무, 무슨 눈빛이……!’
살기로 가득 찬 눈이 아니다.
가끔 무관이나 장군 들에게서 느껴지던 패기도 아니다.
단지 분노해서 눈을 부릅뜬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감히 두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문표의 비대한 몸이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이 문표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단 말일세. 그 분노를 자네가 알 것 같은가?”
방태풍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문 대인의 시선에 뒤통수가 뚫리는 듯했다. 고개를 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방태풍은 후회했다. 그는 감히 항의를 할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방태풍이 부탁한 게 ‘계기’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의 문 대인은 그의 부탁 때문에 풍운객잔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문 대인의 순수한 분노. 상처받은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자네는 더 이상 조급해할 필요 없어, 풍운객잔은 곧 금선로에서 사라질 것이야.”
방태풍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거면 됐어. 알아서 나선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방태풍은 몇 번이고 문 대인에게 사죄를 한 뒤, 즐거운 잡담을 조금 하다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떠나는 그를 향해 문 대인의 무시무시한 시선이 쏘아졌다.
방태풍은 최고급 주안상과 여인들을 들여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 ☆
쿵!
두툼한 손바닥이 탁자를 내려치자 술병과 술잔이 옆으로 넘어져 나뒹굴었다. 조금 전과 똑같은 상황. 하지만 이번엔 방태풍이 상석에 앉아 있다는 점이 달랐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방태풍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것은 장흠파의 장흠과 독두파의 흉월이었다. 청풍객잔에 대한 권리를 두 파에서 나눠 갖고 있다는 묘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장흠은 예민하고 깡마른 얼굴로 고통을 인내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고, 흉월은 번쩍번쩍한 대머리와 건장한 체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방태풍은 그런 두 사람을 보자 더욱 화가 뻗쳤다. 둘 다 파락호답게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는 왜 풍운객잔 따위를 처리하지 못한단 말인가.
“문 대인도 문 대인이지만, 네놈들도 큰 문제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풍운객잔을 무너뜨리라는 내 명령은 무시하는 거냐? 엉?”
방태풍은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던질 듯 들어 올렸다가 입을 꾹 다물며 다시 내려놓았다. 두툼한 볼살 위로 날카롭게 치켜뜬 눈이 두 사람을 노려봤다.
“이봐, 흉월!”
“예.”
흉월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전에 말한 건 어떻게 되었어?”
“청월루를 치는 건 말입니까?”
“그래, 그거!”
흉월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뭐야?!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났어! 지금이 때가 아니면,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거야?”
“실력 있고 믿을 만한 낭인들을 모으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는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장흠은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방태풍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방태풍은 독두파에게 청월루를 칠 병력을 마련하라며 은자로 천 냥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쓸데없는 곳엔 동전 한 푼도 쓰길 아까워하는 방태풍으로서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셈.
그런데 삼 개월이 지났는 데도 독두파는 미적거리면서 성과를 보여 주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성질 급한 방태풍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 정도나 참았다면 오히려 잘 참았다고 칭찬을 해 줘야 할 정도였다.
‘흥! 그 돈, 분명히 다른 곳에 쓰고 있을 테지.’
장흠의 눈엔 지금 돌아가는 꼴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가 몰래 암시장의 정보통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독두파는 방태풍에게 받은 돈으로 낭인을 구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건 네가 나를 배신하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 대가다. 이 돼지 같은 놈.’
장흠은 그러한 사실을 방태풍에게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방태풍이 의리를 저버리고 독두파를 영입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이젠 오로지 청풍객잔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조금? 조금이 언젠데! 아니, 아니지. 물을 필요도 없지. 최대한 빨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
“예.”
방태풍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탁자를 ‘탕!’하고 내리치며 이번엔 장흠을 쳐다봤다.
“이봐, 장흠!”
“……왜 그러십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남의 일 보듯이 수수방관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란 말이다! 흥! 좋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두지! 독두파와 장흠파! 둘 중에 풍운객잔을 먼저 쓰러뜨리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쪽에게 앞으로 청풍객잔의 보호를 맡기겠어. 이걸로 결착이다! 이번 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다!”
방태풍의 느닷없는 선언에 장흠은 옆에 앉아 있는 흉월을 힐끗 쳐다봤다.
한참 독두파를 믿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원점으로 되돌리다니. 제멋대로도 정도가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대해서야 남아 있을 자는 아무도 없다.
“…….”
그런데 정작 흉월은 아무 말 없이 평소 그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노력해 온 것이 억울할 텐데도 불구하고, 마치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데…….’
장흠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지금 문제는 독두파가 딴생각을 한다는 게 아니라, 방태풍이 질리지도 않고 또다시 장흠파와 독두파의 경쟁을 붙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두 번 해야 속아 주지. 그렇게 계속해서 싸움을 붙이면, 우리가 분발할 마음이 생길 것 같은가?’
분발은커녕 화가 나서 다 엎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얄팍한 수, 다 알지만……. 이번까지만 속아 주지. 아직까진 네 신뢰를 얻어야 하니까.’
장흠의 얇은 입술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고 그동안 준비해 둔 작전이 하나 있었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생각보다 빨리 독두파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돕는군.’
장흠은 웃음을 감추고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겠습니다.”
방태풍은 턱살이 떨리도록 고개를 끄덕인 뒤 흉월에게도 시선을 보냈다.
“그쪽은?”
“알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순순히 대답이 흘러나오자, 방태풍은 그제야 흡족한 듯 볼살을 푸들거리며 웃었다.
“크흐, 좋아. 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난 인내심이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장흠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흉월과 함께 조용히 방에서 물러났다.
방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을 때 흉월과는 시선이 잠시 마주쳤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각자 반대 방향의 계단을 통해 청풍객잔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기분 나쁜 눈빛이야.’
장흠은 때때로 흉월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섬뜩한 느낌을 받곤 했다. 흉월의 눈빛은 돈을 원하지도 권력을 원하지도 않는 매우 무심한 눈빛이다.
장흠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런 눈빛을 한 자가 무엇보다 무서운 자였다.
마치 뭔가 숭고한 목적이라도 있는 양. 다른 사사로운 것에는 일절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눈빛이다.
그런 자에게는 유혹도 통하지 않고 타협도 되지 않는다. 그저 뜻대로 하거나, 죽거나.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인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큭! 그래 봤자 병력과 돈을 모아서 객잔을 차지할 생각이겠지. 중요한 건 그 전에 내가 먼저 그놈들을 쳐 낼 수 있는가다.’
바로 그날을 위해 장흠은 현재 뒷골목에 새로 흘러 들어온 실력 있는 낭인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장흠은 그렇게 생각하며 청풍객잔의 뒤쪽에 있는 장흠파의 구역으로 갔다.
끼이익―
“아, 형님. 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장흠의 수족인 만석 삼 형제가 벌떡 일어나 포권을 취하고,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일급 살수 마총이 비척비척 일어나 슬쩍 고개를 숙인다.
장흠은 그들을 쭉 한 번 돌아본 뒤, 대뜸 질문을 던졌다.
“홍매(紅梅)에 대한 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겠지?”
만석 형제와 마총의 안색이 확 변했다.
“네. 아직까지 아무 문제없습니다, 형님.”
“믿어도 되겠냐?”
“물론입니다, 형님.”
장흠은 말없이 품속에서 짧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손잡이 끝에 달린 고리에 손가락을 끼우고 휙휙 돌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만석 형제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휘리릭― 착!
장흠의 단검술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래킨다. 너무나 능숙하고 빠르며,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처음엔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돌리던 단검이 약지, 중지, 검지, 마지막엔 엄지에 걸려 한 바퀴 회전한 뒤, 다시 새끼손가락으로 되돌아왔다.
그 능란한 기술엔 일급 살수인 마총마저 감탄을 할 정도.
반면, 코앞에서 단검이 휙휙 지나다니는 것을 본 만석 형제는 딱딱하게 굳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장흠이 이런 식으로 단검을 보여 주는 것은, 실패하면 죽는다는 ‘경고’인 것이다.
“금선로의 뒷골목은 비정하지.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목을 날리는 게 이쪽 세계의 법칙이야.”
“…….”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해 놓고, 풍운객잔의 주인한테 오히려 겁먹고 돌아왔지.”
“아, 아닙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만석 형제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장흠은 그런 그들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단검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세 형제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진행해. 이번엔 정말로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예, 예!”
만석 삼 형제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장흠은 말총머리를 한 일급 살수 마총에게도 손짓을 했다.
“이봐, 마총.”
“말씀하시오.”
“자네가 맡은 짐은? 잘 간수하고 있나?”
“물론이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이오.”
마총은 씁쓸한 얼굴이었다.
“어려울 게 없다면 좋지만, 그러다 방심해서 짐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다 자네에게 갈 거야.”
“……잘 알고 있소.”
“그래. 이번 일은 중요하니까. 제대로 협력하길 바라지.”
“그런데…….”
마총은 영 내키지 않는 듯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솔직히, 이번 짐은 없어도 되는 것 아니오? 내가 어제 미끼를 봤는데…… 거참 귀물(鬼物)이더군. 보니까 그런 짐 같은 건 필요도 없어 보이던데.”
“흠. 미끼 때문에 짐을 잡아 두고 있는 게 아니야.”
장흠은 수염이 까끌까끌하게 나 있는 턱을 쓰다듬었다.
마총은 그의 대답에 놀란 눈치였다.
“그럼……?”
“미끼가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짐을 잡아 둔 거지. 그것 때문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야.”
“그런…… 거였군.”
마총은 감탄 반, 경악 반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계속 긴장을 풀지 말고 있도록.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정말로 빚은 다 청산해 줄 테니까.”
“……알겠소.”
마총이 장흠파에 묶여 있는 이유는 잔뜩 쌓여 있던 노름빚을 장흠이 갚아 준 것 때문이었다.
마총은 그 말에 의욕을 얻은 듯 숙소의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크으.”
장흠은 몸을 휙 돌려 담장 너머, 유난히 눈에 띄는 한 건물을 노려보았다.
그리 높지 않은 이 층짜리 전각.
금장 장식을 주렁주렁 달아 놓은 주변의 객잔들과는 다르게, 수수하게 대나무로만 장식한 특이한 건물.
그곳이 지금 장흠이 빼앗아야 할 장소다.
“풍운객잔. 기다려라.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은은한 노을빛 아래, 장흠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 ☆ ☆
“자, 아― 하세요.”
교태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아니, 저기 그게…….”
“어서요. 아니면, 혹시 제가 싫어지신 건가요……?”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일은 대명 제국이 멸망한다 해도 있을 수 없어!”
당당하게 외치는 청년의 목소리.
대명 제국의 멸망이 조건으로 내걸렸다. 이 얼마나 장대한 조건인가.
“그럼, 어서 아― 하세요. 저는 이걸 꼭 먹어 주셔야 팔을 내릴 거예요?”
“안 돼! 그럼 소매(小妹)의 팔이 아프잖아?”
“그러니까요. 빨리 아―해 주세요. 네?”
소녀가 짐짓 토라진 듯 볼을 부풀리며 말하자, 코앞에 음식을 앞둔 청년은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긴장을 하긴 했어도, 그 이상으로 행복하고 기쁜 듯한 표정이다.
아니,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것 같기도 하다.
“으음, 소매, 저기…….”
“아잉, 그러지 마시구요. 네? 네? 네?”
“에잇!”
그리고 마침내 살짝 벌어진 입속으로 음식이 쏙 들어가자, 청년은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었다.
“맛있어.”
“그렇죠?”
“응. 소매가 먹여 준 덕분이야.”
“아이, 참. 또 그런 말을.”
볼을 사르르 붉히는 소녀.
그 모습에 또 헤실거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는 청년.
아직 날이 풀리려면 멀었음에도, 따스한 봄 공기가 주변을 감도는 듯한 광경이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와 함께 사방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부끄러운 애정이 반짝반짝 빛났다.
행복의 편린(片鱗).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고문을 당하는 듯한 괴로움이다.
“휴.”
장기린은 대장군에게 카라코룸으로 진격한다는 군략을 들었을 때만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녀가 애정을 가지면, 다 저렇게 되는 거냐?”
장기린은 진지했다.
단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에 소름이 돋을 수 있다는 이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대(大)남궁세가의 장남.
항주팔도신 중의 하나이자, 화류계의 살아 있는 전설. 그러면서 풍운객잔의 하인 일을 하고 있는 남궁휴는 장기린의 기백에 눌려 시선을 회피했다.
“저러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달까요…….”
“누구나 다 저러는 게 아닌 거냐?”
“예. 뭐, 남녀 간의 연정(戀情)이라는 게, 평소엔 절대로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미약(迷藥) 같은 거라 말입니다.”
남궁휴는 과연 색(色) 쪽의 풍부한 경험 덕분에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내였다.
장기린은 조금 감탄하며 되물었다.
“미약……!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
“예에. 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도, 사실은 왕이 연정에 빠졌을 때의 일을 말하는 거잖습니까? 나라가 망할 정도의 일도 할 수 있으니, 저 정도야 약과겠지요.”
“대단하군……. 하긴, 저런 모습을 매일같이 대신들 앞에서 보여 주면, 당장에라도 반란이 일어나겠어.”
남궁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말했으나, 장기린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휴. 너도 진지하게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있겠지?”
“으음……. 예, 몇 번 있습니다.”
“그때, 너도 저런 짓을 했나?”
장기린은 대답 여하에 따라 연애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을 모조리 뒤엎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휴도 ‘저런 짓’을 한 경험이 있다면, 그건 나중에 장기린도 ‘저런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적룡기마대의 대장이자 북부 전장에서 붉은 악귀라 불리는 장기린이.
‘절대 안 되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글……쎄요. 저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서로 간의 애정을 보여 준 일은 몇 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남궁휴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없었다.
“애정을 보여 주는 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묻는 건 ‘저런 짓’을 했냐고 묻는 거야.”
“으음, 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믿는다고?”
“예. 보통, 연정에 빠져 버리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요. 나중엔 머리를 싸매고 후회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어…….”
“특히, 남녀 간의 연애를 처음 해 보는 경우엔 더더욱 그런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
장기린은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뭔지를 모른다.
즉, 피 냄새에 도취된 신병이 자기가 사람을 죽이는 줄도 모르면서 칼질을 해 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럴 수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이었다니…….
장기린은 연정이라는 것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잠깐! 그럼……?’
그 순간, 장기린의 머릿속에 어떤 불길한 가정이 떠올랐다.
“휴.”
“예, 객주님.”
“으음,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예. 말씀하십시오.”
장기린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나도 휘연이 음식을 먹여 줄 때 저렇게 보이나?”
남궁휴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큽!’하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웃음을 참는 건가?”
“큽! 아, 아뇨. 큽! 그, 그런 게 아니…… 큽!”
“…….”
“크흐흡! 사실, 맞습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큽!”
장기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휴를 쳐다봤다.
남궁휴는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굽히고선 한참이나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휴.”
장기린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남궁휴는 그제야 허리를 꼿꼿이 폈다.
“크흡, 죄송합니다. 크, 크흠! 객주님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객주님과 침모님은…… 옆에서 보기에 흐뭇해지는 모습이니 말입니다.”
“흐뭇……?”
“예. 저런 짓처럼 부담스럽게 과시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서로 의젓한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응원해 주고 싶어지는 느낌입니다.”
“으음……. 그래?”
장기린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보기 좋다니 기분은 좋지만, 어째 어린애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 다시금 말씀드립니다만, 칭찬과 부러움의 뜻으로 한 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래.”
장기린은 재빨리 수습하는 남궁휴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아직까지 저런 짓을 하고 있는 한 쌍을 바라봤다.
“어쨌든, 저건 일반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으음.”
장기린은 혀를 찼다.
‘운찬, 소교.’
두 사람이 저런 식으로 급격히 사이가 발전한 것은 춘절에 있었던 신년회가 계기였다.
여심대회전이라고 명명된 그날, 운찬이 보여 주었던 장기―정확히 말하자면 소교의 모습을 조각한 얼음 조각상―를 보고 소교가 감동을 받았고, 동시에 그 순수함에 경탄한 주변의 기녀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소교가 용기를 내서 운찬에게 고백한 것이다.
물론, 그전부터 소교를 힐끔거리며 눈치만 살피고 있던 운찬은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며 오히려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누더니, 이삼 일쯤 지난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처럼 저런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든.
객잔 안이든 밖이든.
문득 눈을 돌리면 두 사람은 한데 붙어서 사방에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운찬을 보면 소교가 있고,
소교를 보면 운찬이 있다.
둘은 전생에 견우직녀였는지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장기린은 최근 들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운찬과 소교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다.
‘난 어째서 저 둘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거지?’
장기린은 자신의 감정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운찬과 소교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아끼는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워한다면 당연히 응원을 해 줘야 하건만, 어째선지 항상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야…….’
장기린은 자신이 이렇게 속이 좁았었나 하고 의아해했다.
질시나 부러움인가 하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그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졌다.
마치 비 오기 전날 흐린 공기를 느끼며 기분이 가라앉는 것처럼. 운찬과 소교를 보기만 하면 괜스레 불쾌한 기분이 들곤 했다.
“휴. 혹시, 너도 저 두 사람을 보면 기분이 가라앉나?”
장기린의 질문에 휴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예? 으음, 글쎄요.”
“솔직하게 대답해.”
“좀 얄밉고 유난을 떤다 싶기는 하지만…… 가라앉는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장기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휴는 그렇지 않단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상하다는 뜻일까?
“객주님. 일단은 좀 두고 보시죠. 저것도 다 한때입니다. 곧 감정이 식으면 그땐 주변에서 시켜도 못 하게 될 겁니다.”
장기린은 그 말에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방 안을 들여다보자 운찬과 소교는 서로의 옆구리를 간질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아이, 찬랑(燦郞)도 참.”
“하하하! 소매야말로 너무하다고! 에잇!”
“꺄아, 자, 잠깐. 꺄하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이쪽은 한숨 소리가 늘어 간다.
휴가 어색한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 식을 겁니다. 예, 식을 거예요.”
그 말에 숨길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건 잘못이 아닐 것이다.
장기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등 뒤로 계속해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녁놀이 질 때쯤, 아칠, 아팔과 함께 새로 주문할 식탁과 의자를 보러 갔던 휘연이 객잔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잘 어울리는 노란색 경장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뒤에서 묶은 모습. 수수한 차림새지만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열이면 열 뒤돌아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외모를 지녔다.
그 덕분이랄까. 이득이 되는 점도 많다.
어떤 가게를 가던지 덤으로 물건을 몇 개 더 얹어 주거나, 가격을 깎아 주기 일쑤인 것이다.
오늘은 길목에 있는 당과 장수에게서 당과를 몇 개 사서 아칠, 아팔과 나눠 먹었는데, 당과 장수가 미인에게 주는 덤이라며 당과를 한 접시나 더 준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휘연은 아직도 많이 남은 당과를 오독오독 씹으며 침소로 향하던 중, 별채의 마당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기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객주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비스듬하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장기린의 눈빛이 빛났다.
“아아, 휘연 왔나?”
“네. 왜 여기에 계세요? 방에 들어가 계시지 않구요?”
휘연은 걱정스레 물으며 장기린의 앞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는 대나무 잎사귀로 만든 넓적한 그릇에 삼 장 너머까지 단내를 솔솔 풍기는 당과가 올려진 채다.
‘당과인가…….’
장기린은 고민하던 것도 잊은 채 피식 웃고 말았다. 당과라고 하면 강렬한 기억이 하나 있지 않던가? 그때의 그도 지금의 휘연처럼 한 손에 저 대나무 잎사귀 접시를 든 채였다.
“어어? 이젠 웃으시네?”
휘연은 눈을 새치름하게 뜨며 장난스레 장기린을 흘겨보았다.
“울다가 웃으면 큰일 나는 거 모르세요?”
“……그거, 여인이 할 말이 아니지 않나?”
“어머나, 무슨 말씀이실까? 저는 큰일이라고밖에 안 했는데요?”
섬섬옥수를 뺨에 가져다 대며 말하는 휘연은 경극단 무희 저리 가라 할 만큼 능청스럽다.
헛웃음이 절로 나오면서 절로 마음이 즐거워진다.
“애초에 울지 않았어.”
“에이, 우울해하면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데, 그 정도면 운 거나 마찬가지죠.”
“그런 건가?”
“네. 그런 거예요.”
남들이 들으면 바보 같다고 놀릴 문답이지만, 장기린의 입장에선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기린은 휘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가 있기에 자신이 웃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휘연이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쳐다보세요?”
“휘연.”
“네?”
“묻고 싶은 게 있어.”
휘연은 묘한 기대감이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소교라면, 강 숙수님과 사이가 좋은 그 여자아이요?”
“그래, 그 아이.”
어느새 휘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눈빛은 싸늘했고 분위기도 냉랭하다.
‘뭐야, 왜 그러지?’
장기린 같은 사내가 여인의 섬세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는 왜 휘연이 갑자기 냉랭해진 건지 몰라 당황하기만 했다.
“흐응, 그 아이는 왜요?”
“뭐라고 해야 할까. 요새 볼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신.경.이. 쓰여요?”
휘연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진다. 눈초리도 상당히 올라간 것 같다.
장기린은 움찔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아아, 그래. 신경이 쓰여.”
“어.떻.게. 신경이 쓰이는데요?”
“이걸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말하세요.”
즉답. 즉명.
휘연의 기세는 전장의 장수 못지않게 위압적이었다.
“으음, 어째선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운찬과 그 아이를 보고 나면 기분이 가라앉고 불쾌해진다. 난 이걸 이해할 수가 없어.”
“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기린이 긴장을 해야 했을 만큼 무시무시했던 기운이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휘연은 시선을 돌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바보 같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휘연?”
장기린이 의아해하며 불렀으나, 휘연은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이 곧장 소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아이에 대해서라면 동감이에요. 객주님.”
“어? 그래?”
“네. 저도 그 아이를 봤을 때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인상을 받았어요.”
장기린은 깜짝 놀라 휘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째서?”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그냥 예감이랄까요.”
“예감…….”
“네. 겉보기론 착하고 좋은 아이 같은데…….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어요.”
장기린은 휘연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상하고 인정이 많은 여인이었다. 얼마 전에 백연이란 청년과 함께 왔었던 구양화라는 소녀에겐 휘연이 얼마나 자상하게 대해 주던가? 친자매라도 그렇게까진 안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녀는 구양화를 진심으로 예뻐했었다.
장기린은 그런 휘연이 소교에게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는 점을 예사롭게 넘길 수가 없었다.
자신에 이어 휘연까지 그 아이를 싫어한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정확히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으음, 글쎄요. 굳이 집어내자면…….”
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눈빛……이겠네요.”
“눈빛?”
“네. 강 숙수님께 대하는 걸 보면 굉장히 사근사근하고 싹싹한 성격 같은데…… 정작 눈빛을 보면 굉장히 차분할 때가 많거든요.”
“음, 차분하면 안 좋은 건가?”
“안 좋다기보다는……. 진심이 아니라는 거죠.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대를 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차분하게 바라볼 수가 없으니까요.”
휘연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기린은 휘연의 말을 듣고 납득했다.
즉, 소교는 순수하게 운찬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소교는 운찬을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하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건가?”
“……글쎄요. 거기까지는 확답을 할 수가 없겠네요. 그저 느낌일 뿐이니까요.”
“하긴, 그렇겠지.”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데, 꼭 감정이 최우선은 아니니까요. 저는 그렇지 않지만…… 사람마다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다 다르다고 들었어요.”
장기린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휘연은 거기서 몸이 좀 피곤하다며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휘연의 뒷모습은 어쩐지 기운이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장기린은 휘연의 어깨가 축 처지게 만든 게 자신의 탓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쳐다보지만, 달은 이쪽의 속도 모르고 환하게 빛나기만 할 뿐 아무런 답도 내려 주지 않았다.
전장에서와는 다르게, 뭐든지 어색하고 서투른 자신이 한심하다.
속절없는 마음과 함께 또 하루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객잔을 찾은 소교는 곧장 운찬이 작업 중인 주방으로 쪼르르 들어가서 운찬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것을 보니 즐거운 대화인 모양이다.
장기린은 활짝 열린 주방 문을 통해 그런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여, 마침내 자신이 느꼈던 불쾌감의 이유를 발견했다.
휘연의 말이 맞았다.
정답은 눈빛이었던 것이다.
장기린의 전직은 군인. 군인이란 적병을 쫓아 죽이는 것이 일이며,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쓴다는 점에서 사냥꾼의 일과도 상통하는 점이 많다.
장기린은 소교에게서 그런 사냥꾼의 눈빛을 종종 발견하고 있었다.
평소엔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 아주 가끔, 운찬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을 때나, 주방 일 쪽으로 정신이 쏠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소교의 눈빛에선 사냥감을 노리는 특유의 집요하고 냉철한 눈빛이 문득문득 새어 나오는 것이다.
‘그래, 저게 문제였어.’
위화감.
불쾌감.
그 모든 것의 정체는, 애정과는 다른 느낌의 저 눈빛 때문이었다.
“휴.”
옆에서 비질을 하던 남궁휴가 곧장 대답했다.
“예, 객주님.”
“여인이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사내를 본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닐 테지?”
장기린은 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소교에게 어떤 목적이 있고, 그것 때문에 운찬이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예? 사냥감……이요?”
“그래. 집요하고, 뭔가를 노리는 듯한 눈빛. 연인 관계인 두 사람 사이에선 그런 눈빛으로 볼 이유가 없지 않나?”
“아…… 혹시, 소교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그래.”
남궁휴는 말을 하기 전에 고민하는 듯 보였다.
“소교가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강 숙수님을 본다는 뜻이지요?”
“그래, 그거야.”
“음,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객주님.”
장기린은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휙 돌려 휴를 쳐다봤다.
소교가 다른 마음을 품고 운찬을 만나고 있다. 그걸 어떻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객주님, 이 땅의 모든 연인들 중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진심으로 몸 바쳐서 사랑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휴의 눈빛은 진지했다. 마치 아픔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정확한 답은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말로 서로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경우는 불과 일 할도 채 안 된다는 겁니다.”
“뭐……? 그럼, 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연인이 된다는 말이야?”
“아뇨. 분명히 좋아합니다. 연인이 된 이상 서로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단순히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람인 이상 머리로 여러 가지를 궁리하게 됩니다. 외모, 재력, 성격, 앞으로의 미래……. 그런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아…….”
“특히 여성은 더욱 그렇죠. 한 남자와 만나는 건, 그 인생 전부를 맡기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장기린은 남궁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혼인을 한다고 해도 계속하던 일을 할 수 있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혼인을 하게 되면 하던 일을 버리고 가정일에 집중하는 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남궁휴는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는 듯 손가락 하나를 척 들어 올렸다.
“여인들이 남성을 보는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력입니다.”
“재력? 돈 말인가?”
“예.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이라도 돈이 없어서 굶고 있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지요. 특히 최근에는 여러 가지로 정치가 불안정해서 농민들이 많이 굶어 죽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건 그렇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감각이 있는 여인이라면, 사내를 고를 때 재력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좋은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여인들끼리의 암투가 벌어질 정도이지요. 그러니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장기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남궁휴의 이야기대로라면 여인들은 재력을 중요시한다.
소교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 소교는 운찬을 노리고 있다.
그 말은…….
“즉, 운찬이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건가?”
“예, 물론이지요.”
의외의 사실에 놀라는 장기린과는 달리, 남궁휴는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강 숙수님은 얼마 전 요리 경연에서 우승하고, 이젠 금선로에 있는 객잔의 주방을 통째로 책임지고 있는 어엿한 숙수입니다. 그 정도라면 평생 굶을 걱정이 없이 넉넉한 돈을 벌 수 있는 사내라고 할 수 있죠.”
“아……! 그렇군. 그런 거였어.”
장기린은 그동안 운찬을 어리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청월루에서 뛰어나올 때의 그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에, 그 사이에 운찬의 실력이 주위에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알게 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자식을 장성시켜 장가를 보내는 것처럼, 뿌듯하면서도 뭔가가 허전했다.
‘음, 소교의 그 눈빛은, 그래서였다는 건가?’
좋은 신랑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되는 듯하다. 그걸로 마음속의 찝찝함이 다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찬이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이해하고 놔둘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재력만 보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알콩달콩하며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면, 조금 눈꼴시긴 해도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되었다.’
운찬도 주위의 인정을 받고 있는 어엿한 사내다. 그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옳으리라.
“한 가지…….”
“왜 그러지?”
“아뇨, 아닙니다.”
남궁휴는 잠시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장기린은 주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보니, 운찬의 헤실거리며 웃는 얼굴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휴.”
“예?”
“너도 어서 제 짝을 만나라. 운찬처럼 행복해야지.”
남궁휴는 씩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장기린도 마주 웃어 준 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르릉―
공기가 울린다.
하늘은 비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려져 있었다.
☆ ☆ ☆
“소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도 될까?”
“그럼요. 어떤 게 궁금하신데요?”
운찬은 지금의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어린 시절엔 요리를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던 집안에서 가출을 했고, 걸식하다시피하며 청월루에 도착해 주방 보조로 일하기 시작할 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가 생겼다.
자신은 명색이 풍운객잔의 주방을 통째로 책임지는 대표 숙수이고, 얼마 전에는 요리 경연에서 우승까지 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연애 놀음을 하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생긴 것이다.
‘이게 다 형님 덕분이지.’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그때, 청월루를 뛰어나온 것이 얼마나 잘한 결정이었는지. 그리고 장기린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만사형통. 일생의 복락이다.
현재가 즐겁고 미래도 창창한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찬은 자신의 앞에서 의아한 듯 눈을 또랑또랑 뜨고 있는 소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붉은색의 옷. 피부는 아기처럼 뽀얗고, 목은 사슴처럼 가늘다. 눈은 서호의 호수를 보는 것처럼 크고 깊었으며, 오뚝한 코와 자그마한 입술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귀여움을 느끼게 했다. 아직 젖살이 사라지지 않아 볼은 조금 통통하지만, 분명 나이가 들면서 젖살이 빠지면 꽤나 눈에 띄는 미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교의 진정한 매력은 그 외모에 있지 않다.
운찬을 지극 정성으로 아낀다는 점.
별로 해 주는 것도 없는데, 매일같이 찾아와 이렇게 즐겁게 장난을 친다는 점. 가끔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정을 표현해 이쪽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점 등이 운찬이 소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큰 매력이었다.
“찬랑?”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해 놓고 계속 얼굴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볼을 사르르 붉히면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는 소교.
그 모습은 꼭 껴안고 싶을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지만, 그럴 수록 마음을 잡고 물어봐야만 했다.
소교가 좋은 아이인만큼,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꼭 물어봐 둬야 한다.
“소매는 어린 시절에 가난했을 때, 지금 청월루의 침모이신 분께 구해졌다고 했었지?”
“……네, 맞아요.”
소교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가 이내 애써 웃는 얼굴로 변했다.
말은 구해졌다고 표현했으나, 돈을 주고 아이를 사 온 일이다. 그 시절의 기억은 소교에게 분명 좋지 않은 것만 잔뜩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찬은 마음이 아팠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물으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분은 어째서 소매를 동녀로 들이지 않으신 거야? 어째서 굳이 곁에 두고 침모의 일만 거들게 하신 거지?”
“…….”
대답이 멎는다. 눈을 내리깐 소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운찬은 항상 궁금해했었다.
보통 침모라는 자리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기루의 환경에도 익숙한 여인이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루와 기녀들을 총괄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기녀 출신이 맡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여인이 가난한 시골에서 여아를 돈을 주고 데려올 경우, 그건 십 중 십은 동녀(童女), 즉 미래의 기녀가 될 아이였다.
데리고 있던 동녀를 기녀로 보낼 경우 큰돈이 된다. 기녀로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데려온 아이가 정말 눈뜨고 못 봐줄 박색(薄色)일 경우인데…… 소교는 미래엔 눈에 띄는 미인이 될 것이 분명한 아이였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기녀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기녀를 시키지 않고 자신의 곁에만 두고 침모 일만 돕게 한다는 건…… 그침모가 소매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예를 들면 양녀(養女) 같은.
너무나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해서, 기녀로 만들지 못하게 곁에 두는 것이다.
“왜, 그런 걸 물으시는 거예요?”
소교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니만큼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운찬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눈으로 응시했다.
“알아야 하니까. 그 침모님께서 소교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아야, 나중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지 않겠어?”
“나중이라면……?”
“나중에. 우리가 혼인을 하게 될 경우 말이야.”
미리 각오를 하고 있었음에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만큼 혼인이라는 말은 입에 담기 부끄러운 단어였다.
“아…….”
굳은 표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는 소교.
기쁨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가엔 촉촉하게 이슬이 맺힌다.
“그래서군요…….”
“그래. 만약 침모님께서 소매를 친딸처럼 아끼신다면, 진지하게 찾아뵙고 말씀드리면 돼. 하지만 만약 다른 뜻이 있어서 소매를 기녀로 만들지 않는 거라면……. 나로서는 미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돼.”
침모가 혹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뜻.
그건 부잣집이나 권세 높은 대갓집에 첩실로 팔아넘기는 것이다.
기녀로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루에서 미모를 가꾸고 고풍스런 문화를 교육받았다.
즉, 미리 준비된 훌륭한 첩실인 것이다.
만약 침모가 그런 뜻을 가지고 있을 경우, 운찬은 소교를 신부로 데려오기 위해 그 대갓집에서 지불할 금액만큼의 돈을 내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운찬은 지금 소교에게서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뻐요. 찬랑.”
“소매…….”
소교는 그런 운찬의 생각을 짐작한 듯 옆으로 몸을 돌려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어요. 저희 침모님은 저를 친딸처럼 아껴 주시는걸요. 제 혼인에 관한 문제도, 제가 연모하는 사내와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조하셨었어요.”
“아……! 그게 정말이야?”
“네, 정말이에요.”
운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교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아직 다 자란 몸이 아닌데도 여자라 그런지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찬랑…….”
“내가 나중에 꼭 그 침모님을 찾아뵙겠어. 아! 그러고 보니 그분의 성함이 뭐라고 했었지?”
소교는 운찬의 품에 안긴 채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홍매(紅梅). 홍매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