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六章 ― 주방풍랑(廚房風浪)
장기린은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조금 평탄해졌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일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짜여진 갑옷에서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찝찝하고 불쾌하다.
그가 꿈꿔 왔던 평범한 생활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침범당하고 있었다.
“숙수님. 여긴 아무리 봐도 고명이 너무 적은데요?”
“숙수님―. 국물을 안 부으셨어요―! 이러면 소면이 아니라고요.”
아칠과 아팔은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주방에 있는 운찬에게 실수를 지적하고 있었다.
“그, 그래? 미안하다.”
운찬은 다 죽어 가는 듯한 몰골로 그릇에 고명을 더 얹고 국물을 끼얹었다.
아칠과 아팔은 그런 운찬을 의아하게 쳐다보면서도 주문이 바빠서 다시금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장기린은 복도 벽에 기대어 선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든 소교. 그리고 소교가 주방으로 올 때마다 다투는 듯 한 번씩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크게 다툰 건가?’
오늘의 운찬은 특히나 심하게 망가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소교가 객잔에 찾아오지 않은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되어 가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나 괴로워하다니.’
사실 소교가 주방에 찾아왔을 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행위가 치졸하게 느껴져서 굳이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운찬의 실수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다행히 맛은 변하지 않는 듯하지만, 조금 전처럼 소면에 고명이 일정하지 않다거나, 국물을 붓지 않고 넘겨주는 등 평상시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들을 연달아 반복하고 있었다.
“후우, 이거 곤란하군.”
장기린은 고개를 저으며 안쪽 별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운찬에게 직접 캐묻고 싶지만…… 참았다. 운찬도 다 자란 사내.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벌써 말했겠지.’
그것 또한 하나의 믿음.
운찬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저리 고민하고 있는 것이리라.
☆ ☆ ☆
다음날 아침, 소교는 객잔으로 찾아와 곧바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큰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닌 듯하지만, 예전처럼 즐거운 웃음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장기린은 아칠, 아팔, 그리고 휘연과 함께 아침의 차(茶)를 즐기고 있었다.
휘연이 우연히 시장에서 구했다는 철관음이다.
혀끝에 느껴지는 맛이 맑으면서도 끝 맛이 진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휘연의 말로는 시장통에서는 웬만해서 구하기 힘든 상등품이라고 했다.
차를 좋아하는 남궁휴가 맛봤다면 잔뜩 풀어진 얼굴로 행복해했을 만한 맛이었다.
휴는 지금 필요한 도구가 있다고 해서 잠시 시장에 나가 있었다.
“요새 강 숙수님이 이상하죠?”
휘연은 안 그래도 장기린이 고민 중이던 화제를 꺼냈다.
“네, 이상해요.”
“실수도 잦아지시고, 잘 웃지도 않으시구요.”
“잠을 못 자는 건지 눈 밑이 퀭해요.”
“이러다 잘못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칠과 아팔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힐끗힐끗 주방을 쳐다보는 모습이, 운찬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봐야 할까 봐요.”
이번 문제는 휘연마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긴, 운찬의 몰골이 몰골이니만큼 누군들 걱정하지 안고는 못 배길 상황이긴 했다.
“안 돼.”
하지만 그럴 수록, 장기린은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운찬이 선택한 일이야.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둬.”
“…….”
슬쩍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휘연과 아칠, 아팔 형제.
셋 다 불만이 있어 보이지만 장기린은 모른 척 눈을 감아 버렸다.
사내들의 자존심은 사내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다.
운찬이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식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때는 굳이 캐묻지 않고, 그대로 물 흐르듯이 놔두는 것이 더 낫다.
“으음……. 그나저나 이번에 새로 사 오기로 한 식탁 말인데요.”
휘연은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시키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눈치가 빠른 아칠과 아팔도 재빨리 대화에 끼어든다.
지금 풍운객잔에 있는 식탁이 워낙 오래된 물건이라 똑같이 만들 수가 없어서 비슷한 재질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어떤 나무가 튼튼한지, 색깔은 어떤 게 어울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듣고 있자니, 문득 시원한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장기린은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물 한 잔 마시고 올게.”
우물이 있는 별채로 향하던 장기린이, 복도에서 운찬과 소교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거칠 것 없던 장기린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졌다. 운찬과 소교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찬랑, 이제 마음을 정해 줘요. 이번 일만 잘 보내면,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가 있다구요.”
“하지만 소매…….”
“벌써 열흘이나 지났어요.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몰라요. 찬랑이 이곳 풍운객잔을 떠나기로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설마 찬랑은 그게 싫은 건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왜 고민하시는 건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운찬은 괴로움이 절절히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형님을 배신할 수 없어.”
“형님이라면, 이곳의 객주님이요?”
“그래. 난 형님께 큰 은혜를 입었어. 이곳의 주방을 맡아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형님의 덕분이라고.”
“하지만 찬랑…….”
“그만! 그만해 둬, 소매. 난 소매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랑 때문에 형님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어.”
운찬의 목소리는 더없이 단호했다.
장기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들으려고 한 게 아니건만,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말았다. 평소엔 주방 안쪽에서 몰래 이야기를 나누더니, 오늘은 입구 근처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지 유난히 목소리가 크게 들린 것이다.
‘운찬,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이 대화를 듣고 운찬이 자신과의 일을 그렇게까지 은혜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 마음이 사랑하는 여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만큼 클 줄이야.
그런 장기린의 귀로 소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이건 큰 기회예요. 풍운객잔처럼 작은 곳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천 냥이 오가는 오대객잔의 주방을 맡게 되는 거예요. 찬랑은 여기서 월봉을 얼마나 받으시죠? 세 냥? 다섯 냥?”
“…….”
“그곳에 가면 최소한 열 냥 이상은 받을 수 있어요. 게다가 수십 명의 보조 숙수를 거느린 대숙수가 되는 거죠. 이건 평생에 다시 안 올 기회라고요.”
소교의 목소리엔 절박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청월루에서 몸값을 대신 쳐 주겠다고 했어요. 아시잖아요?”
“…….”
“찬랑. 찬랑은 저와 미래를 함께하는 게 싫은 건가요……?”
소교의 목소리를 풍랑을 맞은 배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지금의 기회를 잡고 싶은지 절박함을 알 수 있을 정도.
잠시 후, 그에 대답하는 운찬 역시 그녀 못지않게 괴로운 목소리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난 소매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어.”
“그렇다면……!”
“하지만, 난 형님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어. 소매의 몸값은 내가 벌어서 마련하면 돼.”
“어느 세월에요!”
어느새 소교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은자 이백 냥이 넘는 돈을 어느 세월에 벌어요!”
“이 년, 아니, 일 년 반만 잘 모으면…….”
“그걸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그걸 선택하지 않나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결국 언성을 높인 소교는 그 뒤로 야속하다는 듯이 등을 돌려 곧바로 주방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
어쩌다 보니 주방의 앞쪽에 있던 장기린으로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불가피하게 엿들은 것 같은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정면에서 딱 맞닥뜨렸으니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소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원망스럽게 장기린을 흘겨본 뒤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
‘앗!’하는 순간 벌어진 일.
반쯤 열린 주방 문 사이를 보자, 운찬은 소교를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까지 숙인 채 굳어져 있었다.
장기린이 앞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위기다.
장기린은 아무 말 없이 별채 쪽으로 몸을 옮겼다.
‘은자.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미래……인가?’
거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씁쓸하다.
짧은 대화였으나, 운찬이 그동안 고민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기엔 충분했다.
소교는 운찬이 풍운객잔에서 나오도록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운찬은 지금 풍운객잔에서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득인 모양이다.
돈도 얻을 수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도 꾸릴 수 있다.
그런데 방해되는 것이 하나 있다.
과거에 받은 은(恩).
그리고 장기린에 대한 의리이다.
그런 운찬에게 장기린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객잔을 떠나도 좋다고? 은혜 따위는 갚지 않아도 괜찮으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원하는 삶을 살라고?
그 어느 쪽도 말할 수 없다.
운찬은 안 그래도 객잔을 떠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장기린에게 갚아야 하는 은혜도 과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거기에 장기린이 나서서 한마디를 하는 것은 오히려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으리라.
‘만약 돈을 내준다고 한다면……?’
소교의 몸값이라는 은자 이백 냥.
하지만 장기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걸 운찬이 받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객잔에서 나가는 것을 볼모로 삼아 받은 돈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휘연에게 배웠잖나. 갚을 길 없는 호의는 오히려 적의보다 무섭다고. 그걸 잊으면 안 돼. 운찬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장기린의 낯빛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풍운객잔이라는 장기린의 둥지. 그리고 그가 아끼는 동생의 행복.
감히 저울질을 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하나만 선택할 수 있겠는가.
운찬을 내보내 주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하나뿐인 숙수 운찬이 나가 버리면, 풍운객잔은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음식을 팔 수 없는 객잔.
그건 곧 망한 것과 다름없을 터.
다른 숙수를 데려올 수도 없다. 운찬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숙수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풍운객잔은 신천지 소면으로 지금의 성세를 유지하는 것이니, 다른 숙수는 의미가 없다.
장기린은 고뇌했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운찬의 행복? 풍운객잔의 성공?
풍운객잔의 주인 장기린은 이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것일까?
“운화. 평범한 생활은 이렇게나 어렵구나.”
문득, 장기린은 꽤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둘째 동생이 그립다고 생각했다. 운화라면 서투른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 주었을 텐데.
별채 앞에 석상처럼 우뚝 서 있는 장기린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 ☆ ☆
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던 간에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가는 법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자 하는 손님들이 밀려들고, 운찬은 주방에서 신천지 소면을 만들었으며, 아칠과 아팔, 그리고 휴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모든 일을 마치고 하루가 끝나 갈 때쯤, 장기린은 마침 따뜻한 물에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휘연을 불러 자리에 앉혔다.
“묻고 싶은 게 있어.”
휘연은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해 보자. 그 소중한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반려(伴侶)야.”
“네?! 반려요?”
“그래. 그렇다면 아무리 버리는 것이 크다고 하더라도 버려야만 하겠지?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얻기 위한 것이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인 것이겠지?”
휘연은 반려라는 말이 자극적이었던 듯,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평생을 함께할 반려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니까요. 반려를 만나는 인연은 천금보다도 귀하다고 했어요.”
“그럼, 그 반려를 얻기 위한 일은 올바른 일인 거지? 주위에서도 응원을 해 줘야 하고?”
“네, 물론이에요.”
휘연은 그 순간 장기린이 하는 말의 뜻을 착각하고 말았다.
평상시라면 장기린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며 현명한 조언을 해 주었겠지만, 장기린이 직접 말하는 반려라는 말은 휘연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만큼 위력적이었다.
휘연은 그 말이 마치 장기린이 그녀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반려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실제로 휘연은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역시, 그렇군…….”
반면 장기린은 휘연의 그 말을 듣고 더더욱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게 올바르고, 그게 ‘평범하다’.
그러니, 그 일을 응원해야만 하는 장기린으로서는 절대로 운찬을 막아서는 안 된다.
운찬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기회의 폭을 넓혀 줘야만 한다.
“그래, 알겠어. 대답해 줘서 고맙다, 휘연.”
휘연은 상기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된……건가요?”
“그래. 그 대답으로 충분해.”
휘연은 장기린의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를 결심한 듯,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기린의 얼굴은 옆에서 보기에 굉장히 쓸쓸해 보였던 것이다.
“객주님……?”
하지만 그 순간의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기린이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기에, 그저 의아함을 느끼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 이걸로 됐어. 운찬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면 돼.’
어긋나는 마음.
서로 교통하지 못하는 생각.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생각들이 이 순간 크게 엇갈려 버린다.
밤중의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그 뒤로, 날이 갈수록 운찬의 실수는 점점 빈도가 늘어 갔다. 예전엔 다섯 번에 한 번, 혹은 열 번에 한 번 정도만 실수를 했다면, 이젠 다섯 번에 세 번 이상은 요리를 완성시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객잔 식구들이 모두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음식을 나르는 아칠과 아팔의 항의는 점점 심해졌고, 운찬은 항상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거멓게 죽어 가는 얼굴.
요 며칠 새 몸무게가 반으로 준 것 같은 몰골이다.
실제로 다른 객잔 식구들은 최근에 운찬이 제대로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물만 마셨고, 혹시 밥을 먹는다 싶으면 정신적 압박이 심한지 구석에서 먹은 걸 도로 토해 내곤 했다.
그러니 다른 식구들은 어쩌겠는가.
피곤과 고뇌에 찌든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거기에다 대고 심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아칠과 아팔도 이젠 항의를 한다기보단 그저 실수한 소면 그릇을 슬쩍 주방 안으로 다시 밀어 넣는 게 다였다.
그릇을 밀어 넣으면 운찬은 실수를 깨닫고 다시 부족한 것을 채워서 내보내 주었다.
아직까진 어떻게든 장사가 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언젠가 파탄이 날 게 분명했다.
요리를 만들고 손님에게 내보내는 공정(工程)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실수를 한 요리를 일일이 확인해서 다시 주방에 집어넣고, 그게 제대로 고쳐진 뒤에야 내보낼 수 있으니, 요리가 완성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 버렸다.
그러니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숫자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 빨리빨리 요리가 나오지 않아서 되돌아가 버리는 손님도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이거, 이젠 정말 안 되겠는데요.”
옆에서 지켜보던 남궁휴가 심각한 얼굴로 인상을 쓴다.
장기린이 주방에서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뒤로 열흘.
소교는 그사이 매일매일 찾아오고 있었다. 동틀 무렵 찾아오고, 주방 안에서 이각 정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은 한 번 언성을 높인 뒤 되돌아간다.
어떤 때는 애교를 부리며 간청하는 듯했고, 어떤 때는 화를 내며 다그치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 지속될수록 운찬의 얼굴은 수척해지고 있었다.
“객주님, 이젠 정말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너무 심한 듯합니다.”
걱정과 불만으로 가득한 휴의 말에, 장기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둬.”
“하지만……!”
“운찬은 어린애가 아냐. 자기 문제는 자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우린 운찬을 믿고, 그 결정을 기다려 주면 돼.”
남궁휴가 입을 꾹 다문다.
옆에서 걱정스레 지켜보던 휘연 역시 장기린의 말대로 더 이상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휘연, 아칠과 아팔, 남궁휴.
모두가 군말 없이 따를 만큼 장기린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린을 위해서 존재하고, 장기린을 위해 움직인다.
풍운객잔은 그런 곳이었다.
“…….”
꾸욱―.
휴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기린이 마음 편히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장기린이 움켜쥔 주먹은 피가 안 통하는지 새하얗게 변해 있다.
분을 참고 있는 것이다.
운찬이 괴로워하는 게 눈에 선하니 마음이 안 좋고, 그걸 해결해 줄 방도가 없으니 더더욱 마음이 안 좋다.
“쿨럭, 쿨럭―.”
주방 안쪽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기침이 들려온다.
운찬의 목소리.
예로부터 마음의 병은 곧 육신의 병이라더니, 무겁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마음이 결국 육신까지 망친 모양이다.
운찬의 기침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다가 정적을 맞았다.
혹시 쓰러진 건 아닐까 싶어 남궁휴를 보내자, 금세 돌아와 멀쩡히 서서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가서 일들 봐. 난 여기에 있을 테니.”
장기린은 팔짱을 낀 채 자리에 털썩 앉았는데, 금방 일어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설령 손님이 오더라도 비키지 않을 것이다.
장기린의 눈은 뚫어져라 주방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조심해서 가시고, 또 오세요―!”
영업이 끝나는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쾌활한 아칠, 아팔 형제가 마지막 손님을 입구까지 배웅한다.
갑자기 텅 비어 버린 객잔.
조용한 공기가 불길했다.
장기린은 석상처럼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휘연이 끓여 온 상등의 철관음을 마시면서, 전령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장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기만 했다.
나머지 객잔 식구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괜히 할 일을 찾으면서 장기린의 주변을 맴돌았다.
끼이익―
주방의 문이 열린다.
힘이 빠진 발소리와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온몸에 밀가루 칠을 한 운찬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움푹 팬 볼과 푹 꺼진 눈 밑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말해 준다.
운찬은 시체의 그것처럼 죽어 있는 눈동자로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지금껏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장기린을 발견하곤 몸을 움찔 떨었다.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는 운찬.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하고는, 이를 악물고 장기린의 앞으로 다가왔다.
“형님…….”
가뭄에 말라붙은 논두렁처럼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장기린은 말해 보라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좋게 보내 주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장기린은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운찬은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장기린을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쭉 들여다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입을 연다.
“형님.”
“그래.”
한참을 망설인 끝에 마침내 운찬은 주변의 식구들을 모두 충격에 빠뜨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저, 객잔을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