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八章 ― 초청승부(招請勝負)
운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아, 그동안 얼마나 참았던지. 이제야 끝이네. 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았는 줄 알아?”
“소, 소매……?”
“소매 같은 소리 하네. 이런 멍청한 놈한테 아양이나 떨고 있는 꼴이라니. 내가 이번 일만 없었으면, 너 같은 놈이랑 말이나 섞었을 줄 알아?”
변신도 그런 변신이 없었다.
귀엽고 애교 있는 말투는 어디로 가고, 사갈(蛇蝎)처럼 지독한 성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운찬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짜증난다는 듯이 쳐 내는 손길.
하찮은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
어디에도 그가 사랑했던 소교의 모습은 없다.
“거짓말…….”
운찬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어. 청월루에선? 청월루에서 하찮은 보조 숙수로 있을 때도, 나에게 친근하게 잘해 준 이유는 뭐였어?”
“하! 너 생각보다 훨씬 순진하구나?”
소교는 비웃었다. 십 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되바라진 표정이다.
“뭐……?”
“네가 특별해서 잘해 준 게 아니야. 그때는 청월루에 점수를 따 놓을 필요가 있었거든. 그래서 누구든 잘해 주고 있었을 때였어.”
“……!!”
“사실 장 대인한테 네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이름도 까먹고 있었다. 어때? 이제 상황이 좀 파악이 돼?”
멍하니 서 있던 운찬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다.
가슴 밑에서부터 극심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너……!”
어깨를 다시 확 잡아채려고 손을 뻗는데, 정작 손을 뻗은 운찬이 뒤로 떠밀렸다.
어느새 양옆으로 다가온 파락호 둘이 운찬의 양어깨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
운찬이 반항하듯 몸을 비틀었지만, 평생을 싸움으로 살아온 파락호들에게 손쉽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큭……!”
도대체 어깨를 어떻게 잡은 건지,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순 없다.
운찬은 뱃속의 용기를 모두 끄집어내서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럼 저 홍매라는 여인은? 어머니와 같은 여인이 붙잡혔다던 것도 거짓이란 말이냐!”
“어머니?”
소교는 비웃는 어조였다.
“어머니는 무슨. 다 죽어 가는 영감 옆에서 청승이나 떨던 멍청한 년인데. 영감이 죽기 전에 한마디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하는 모자란 여자야.”
“뭐……?”
“도대체, 세상 어디에 첩을 챙겨 주는 본처가 있어? 그것만 봐도 알조지. 그러니 이렇게 이용이나 당하다가 끝나는 거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어조.
세상만사에 회의를 품고 오로지 독기밖에 없는 여인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운찬은 무심코 고개를 돌려 홍매라는 여인을 쳐다보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러움과 한탄의 눈물.
소교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이런 짓을 당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라면 칭송을 들어 마땅한 행동을 해 왔건만, 오히려 배신을 당하고 이런 흉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런 상황임에도 운찬에게 충격을 주는 말이 섞여 있었다.
“첩……이라고?”
“몰랐어? 이건 또 신기하네. 기녀질하는 년들 사이에 유명한 이야기인데. 저 홍매랑 나랑 같은 영감네 집에 있었어. 난 동녀였고. 죽을 때가 다 됐으면서도 계집을 어지간히 밝히는 노인이었지.”
운찬은 소교의 씩 웃는 얼굴을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담한 체구, 어려 보이는 얼굴 어디에 저런 색기(色氣)가 있었던 것인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새하얀 이빨을 보이는 모습이 놀랄 만큼 요염하다.
그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후끈 달아오를 지경이었지만, 그 열정은 뱀처럼 싸늘하게 식어 있는 눈빛을 보자마자 얼어붙어 버렸다.
“너는, 정말……!”
운찬은 말을 잃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화도 어느 정도여야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거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으면 뒷골을 잡고 기절한다는 말. 운찬은 그 말을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정신적 충격에 온몸이 덜덜 떨리고, 부릅뜬 눈으로 따가울 만큼 피가 몰려들었다.
운찬은 소교를 노려봤다.
철천지원수를 보듯, 모든 한(恨)을 담아.
“내가 너를 믿었다니……!”
씁쓰름한 피 맛이 배어 나왔다. 분노로 너무 이를 세게 문 탓이다.
하지만 요녀(妖女)이자 악녀(惡女)라고 불리기 마땅한 소교.
운찬의 시선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다.
“말이 길었군.”
운찬이 뭐라고 한마디를 더 내뱉기 직전,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장흠이 앞으로 나섰다.
깡마른 얼굴. 해골처럼 귀기 어린 인상 위로 섬뜩한 눈빛이 떠올랐다.
“우리가 원하는 건 풍운객잔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숙수인 네가 객잔에서 빠져나왔으니, 그곳은 이미 장사는 끝났다고 봐야겠지.”
“어찌하여…….”
운찬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 운찬의 얼굴엔 자괴감이 가득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말을 마치며 자연스레 시선이 소교를 향한다.
그가 묻는 것은,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는 거다. 청풍객잔 같은 거대한 객잔. 게다가 장흠파 정도 되면, 그밖에도 방법이 많았을 텐데. 왜 굳이 운찬의 가슴을 찢어 놓는 방법을 택했냐는 거다.
“나도 이런 방법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사태가 많이 복잡해져서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지.”
“사태가 복잡해졌다니……!”
“얘기를 들어주자니 끝이 없는 놈이로군. 네놈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다.”
청월루가 풍운객잔을 지키겠답시고 나선 바람에, 대대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는 풍운객잔에 손을 댈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장흠이 자존심 상하게 그런 일을 스스로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여 한쪽 벽에서 대기하고 있던 만석 형제를 불렀다.
“입 막고, 무릎 꿇려. 여기서 끝낸다.”
“예!”
다른 파락호들에 비해 어리숙한 구석이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명색이 항주 금선로에서 어깨 펴고 다니는 파락호다.
만석 삼 형제는 끝낸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운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 잠깐……!”
운찬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이대로는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걸 피하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다.
“잠깐!! 할 말이 있어요! 저를 죽이면 청풍객잔이 얻을 수 있는 큰 이득을 놓치는 겁니다!”
빽 하고 지른 소리.
튼튼한 광목천으로 운찬의 입을 틀어막으려던 만석 형제가 움찔하고 놀랐다.
운찬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장흠 역시 흥미를 느꼈는지 잠시 멈추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큰 이득이라니? 무슨 말이지, 그건?”
“말 그대로예요. 절 죽이면 청풍객잔은 큰 이득을 놓치는 겁니다.”
“말장난하지 말고, 빨리 말해. 난 그리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아랫니를 살짝 드러내며 웃는 장흠의 얼굴은 짐승처럼 섬뜩했다.
별말이 아니거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 곧장 처참하게 죽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포에 몸이 떨렸지만, 운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지하게 외쳤다.
“당신은 내 이름값을 아직 잘 모르는군요. 제가 이래 뵈도 대륙에서 가장 어렵다는 항주 요리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입니다. 와서 요리를 해 달라고 초청한 곳만 해도 스무 군데가 넘어요!”
절박한 마음에 외치는 것이었지만, 그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운찬은 주변 식구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대회에서 우승한 뒤로 요리계의 신성(新星)으로서 객잔들의 초청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중에는 황제가 자주 들른다는 북경루의 초청도 있었고, 대륙의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상해반점도 그를 초청했다.
다른 숙수들이 들었다면 부러움에 기절을 할 만한 이야기들.
하지만 운찬은 장기린에 대한 의리 때문에 가지 않았다. 사실 이번 일도 사랑하는 여인과 홍매라는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지만 않았다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청풍객잔에서 요리를 시작하면, 저를 따라 청풍객잔의 손님이 될 사람들이 백 명이 넘을 걸요? 저도 소면만 만드는 것은 지겹던 참이에요! 이참에 제대로 고급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금선로 전체가 주목할 거라고요!”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예요! 그러니 저를 살리는 게 이득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쓸데없이 나를 죽이는 것보다, 주방에 넣어 주기만 하면 청풍객잔에 큰 이득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다. 객주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쪽을 더 좋아할걸요?”
운찬은 절박하게 조르고 있었다.
물론, 풍운객잔에서 국수만 만드는 게 지겹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객잔 식구들과 함께 장사가 잘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했었으니까.
하지만 가끔 고급 요리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운찬은 그걸 미끼로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만 있다면 장기린에게 이런 음모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다. 최소한 거기까진 해야 했다.
“흐음…….”
차가운 눈빛으로 고민하는 장흠.
뒤에서 소교가 찬물을 끼얹었다.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뒤탈이 날 건 빨리 죽여 버려야지.”
더 이상 놀랄 마음도 들지 않는 잔혹한 성정. 냉랭하고 잔인한 목소리.
그런데 의외로 장흠이 그 말에 반대를 표하고 나섰다.
“아니, 일단 살려 둔다. 저놈 말대로 저놈이 객잔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장 대인!”
“객주에게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지. 그때까진 가둬두겠어.”
장흠이 손짓하자, 기다리고 있던 만석 형제가 운찬에게 재갈을 물리고 손발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읍! 으읍!”
당장 죽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일단 살려 주겠다고 했다.
불안감을 느낀 운찬은 장흠을 좀 더 설득하려 했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만석 형제에 의해 쌀가마니처럼 질질 끌려갔다.
마지막으로 쳐다본 소교는 불만스럽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치 운찬을 살려 준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처럼.
‘너는…… 너에게는, 내가 꼭 복수하고 말 거다. 소교!’
운찬은 피눈물이 나는 심정으로 가슴속에서 다짐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 창살이 만들어져 있는 딱딱한 돌바닥에 던져지면서도 운찬은 의지를 잃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살아서 장기린에게 사죄하고, 소교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으음, 이번 일은 어찌 되려나?”
“어찌 되든 상관없죠. 뭐, 그 인간만 다시 안 보면 좋겠어요.”
“그래, 그 객주라는 놈. 그놈 눈빛은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
만석 형제는 운찬을 창살 안쪽에 던져 넣은 뒤, 긴장도 하지 않고 그런 잡담을 나눴다.
사람을 가두는 것이 익숙한 모양새다.
운찬은 그 태연한 모습에 오히려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즉, 여기에 사람을 많이 가둬 봤고, 또한 죽어 나가는 것도 많이 봤다는 소리다.
‘이대로는 안 돼……!’
운찬은 가만히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흠은 일단이라고 표현했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어서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뜻.
운찬의 목숨이 그의 손아귀 안에 쥐어져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무엇을 할 수 있지?’
운찬은 만석 형제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계단 위로 올라가 버리는 사이,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양손은 등 뒤로 돌려져서 묶여 있고, 입에는 재갈을 물려 놓았다. 나무로 만든 창살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워낙 낡아서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모습임에도 별로 경계를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양팔이 묶여 있기 때문이겠지. 이런 상태로 탈출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이전에, 탈출을 생각조차 못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운찬은 그렇게 생각하며 창살 사이로 고개를 쭉 빼고 만석 형제가 올라간 계단을 살펴봤다.
‘빛이 들어온다. 문은 열려 있어.’
문이 열려 있는 것.
아마 창살이 낡았는 데도 방치해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제압당한 운찬을 경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운찬은 희망이 조금이나마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다면, 탈출할 수 있을 가능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탈출……할 수 있을까?’
상대는 장흠파.
금선로 오대객잔 중에 하나인 청풍객잔을 지키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파락호들이다.
운찬은 마음이 꺾이려고 했으나, 애써 이를 악물고 의지를 다졌다.
그의 눈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은 없을까 궁리하며 살피기를 이각가량.
“아……!”
운찬은 환호성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차가운 돌벽에 마치 누군가가 망치질이라도 한 것처럼 움푹 패여 있는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거다……! 이거면 탈출할 수 있어!’
움푹 들어가 있다는 것은 모서리가 있다는 것.
운찬은 곧장 등을 돌려 움푹 들어간 돌벽에 손목을 데고 마치 톱질을 하듯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직접 눈으로 보면서 움직이는 게 아닌지라 실수로 몸을 긁은 모양이었다. 팔뚝이 따끔거리더니 뜨뜻한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등판에 닿아 있는 돌벽은 이가 따닥따닥 떨릴 만큼 차가웠고, 안 하던 움직임을 해서 그런지 허벅지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게다가 밧줄은 상상 이상으로 튼튼해서 웬만한 힘으로는 끊어지기는커녕 실낱조차 뜯어지지 않는다.
괴롭다. 힘들다.
인내심의 싸움이다.
하지만 운찬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할……수…… 있어!’
예전의 운찬이라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린을 만나고 풍운객잔에 들어온 강운찬.
반 박자 빨라지는 방법을 배우고, 숨 쉬는 법을 배웠으며, 최근엔 걷는 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육체.
어느새 아랫배에서 뜨끈한 힘이 솟구쳐 몸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으나, 운찬은 그런 것은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할 수 있다’라는 일념으로 몸을 움직였다.
삼백…… 사백…… 오백…….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숫자도 세지 못할 만큼 몸을 비빈 뒤, 운찬은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소리보다도 작은, 그러나 자신에게만큼은 천둥이 치는 것만큼이나 큰소리를 들었다.
투두둑―!
‘됐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
하지만 긴장이 풀리자 몸에 힘이 빠져서 차가운 돌바닥에 엉덩이를 쿵하고 찧고 말았다.
운찬은 아픔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양손이 자유롭다.
뭘 해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창살이다.’
운찬은 손바닥으로 스무 개 남짓한 창살들을 하나하나 두드려 보았다.
퉁. 퉁.
속이 꽉 찬 소리가 났다. 아무리 낡고 썩었어도 원체 튼튼한 통나무로 만들었는지 여전히 튼튼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운찬의 눈빛에선 희망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할 수 있어……!’
그 자신에 대한 확신.
운찬은 풍운객잔에서 수련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마보(馬步) 자세를 한 시진이 넘게 취하고, 장기린이 보여 주던 신기한 발걸음을 따라 하길 석 달.
그때 장기린은 이 수련을 끝마치면, 단단한 돌바닥에도 발자국을 만들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각력(脚力)이 꽤나 세져서 요리를 하면서 하루 종일 서 있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심지어 혼자서 시장에 나가 식 재료를 잔뜩 사 오면서도 힘들기는커녕 발걸음을 쭉쭉 내딛어 금방 객잔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하나…… 둘…… 셋!’
속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힘차게 발을 쭉 뻗자 가장 구석에 있던 창살이 ‘뻑!’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나갔다.
통나무에 가까운 창살을 단번에 부러뜨리는 힘. 그저 집념의 결과로 보기엔 지나치게 강한 힘이다.
운찬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범부(凡夫)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겨우 창살 하나라곤 하지만, 워낙 창살이 굵었던 터라 사람 하나가 빠져나가기엔 충분한 틈이 생겨 버렸다.
다만 창살이 부러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신경이 쓰였었는데, 잠시 긴장한 채 계단 쪽을 올려다봐도 아무런 낌새가 없는 것을 보니, 위에선 아무것도 못 들은 모양이었다.
“휴우…….”
운찬은 잔뜩 졸였던 마음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반동강이 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창살을 새삼 놀라운 심정으로 내려다봤다.
‘형님. 하나부터 열까지 형님께 은혜만 입었군요. 그런데도 형님께 등을 돌리고 나오다니…… 제가 죽일 놈이에요.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면,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형님을 등지지 않겠습니다.’
사지(死地)에서 깨닫는 은(恩).
새삼스레 느낀 인연의 소중함은 운찬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맹세를 하게 만들었다.
운찬은 창살 틈을 빠져나와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위쪽에선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청풍객잔에 들어온 게 새벽녘이니,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깥은 대낮처럼 훤하다는 뜻.
운찬이 잡혀 왔을 때는 창문이 닫혀 있었지만, 지금은 또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운찬은 생선을 노리는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계단을 네 발로 기어올라가 겁 많은 들쥐처럼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있다! 문 쪽!’
감시자는 건물의 문 쪽에 있었다.
두 명의 사내.
허름한 회색 무복을 입은 파락호 둘이었는데, 지하 계단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벽에 기대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얼마나 경계심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벽 쪽의 창문은 딱 두 개만 열려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전각 안은 여전히 해 질 녘처럼 어스름한 상태였다.
창문이 열려 있는 문의 바로 앞쪽만 지나지 않으면 발각될 일은 없을 듯했다.
‘다만 문제는, 문 앞을 버티고 있는 저 두 사람인데…… 명색이 파락호니 앞에 사람이 서 있으면 곧바로 정신을 차릴 거야. 절대 몰래 넘어갈 수 없어.’
다른 입구를 찾고자 해도 입구는 파락호 둘이 지키고 있는 정면의 입구 하나뿐이었다.
창문을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새로운 창문을 열자면 소리가 날 테니, 분명 들킬 테고, 그렇다고 열린 창문을 이용하자니, 그건 바로 문 옆에 있는지라 문을 여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태.
장기로 따지자면 외통수에 걸렸다.
운찬은 난감함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네 발로 기어 문 쪽으로 착실히 다가가고 있었다.
‘안 돼도 해내야 돼. 이대로 죽는 건 사절이다.’
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심박이 너무 강하게 뛰어서 그 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스읍…….”
마침내 문까지 일 장 정도 남았을 때, 운찬은 배가 불룩하게 나올 만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인기척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숨소리다.
그러니 그는 문을 지날 때까진 숨을 쉬지 않을 생각이었다.
“크프프…….”
“푸르르…….”
파락호 두 사람은 아예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잠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해가 화창한 정오 무렵. 밤에 주로 생활하는 파락호들에게 있어서는 한밤중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한텐 행운이야.’
운찬은 숨을 참은 상태로 조심조심 두 사람의 사이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문이 반쯤 열려 있고, 파락호 두 사람은 그 문의 양쪽 벽에 기대서 자고 있는 상황이다. 양손과 양발을 아무렇게나 벌리고 자는 바람에 운신의 폭이 좁았으나, 운찬은 조심조심 마치 개울가의 돌다리를 건너듯 장애물들을 피하고 있었다.
발과 발 사이를 지나고, 파락호 한 사람이 잠결에 가슴을 벅벅 긁는 것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면서 마침내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운찬은 탈출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이 너무 좁아……!!’
반쯤 열린 문은 가까이에서 보니 사람이 통과하기엔 너무 좁았던 것이다.
꼼짝없이 문을 더 열고 지나가야 할 모양.
하지만 문을 건드렸다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테고, 소리가 나면 아무리 파락호들이 잠에 깊이 빠졌더라도 벌떡 일어날 게 분명했다.
‘과감하게 뚫고 간다!’
운찬은 재빨리 마음을 정했다.
이럴 때는 미적거리면서 조금씩 문을 여는 것보다, 확 문을 열고 재빨리 빠져나가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운찬은 숨을 너무 참아서 벌게진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코앞에 있는 한 뼘 정도 벌어져 있는 문을 노려보며 몸을 비스듬하게 비틀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하압!!’
속으로 발해지는 기합성.
그리고 운찬의 몸이 공중을 향해 날아올랐다.
삐걱―.
“푸르르…… 음?”
방만하게 풀어헤친 가슴팍을 벅벅 긁으며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던 파락호들이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가만히 있던 문이 삐걱거리며 움직였으니, 경계를 안 할려야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뜨고,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한 심중을 교환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시선이 반쯤 열린 채로 삐걱거리고 있는 문짝을 향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발소리라던가 하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설마 하는 생각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한 번 쳐다본 뒤,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람인가 보지.”
“아아, 그런가 보네.”
두 사람은 스스로 납득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열린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점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스름한 건물 안엔 두 사람의 코 고는 소리만 드렁드렁 울렸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반쯤 열린 문의 바로 아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운찬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꾹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문을 살짝 미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었다.
바닥을 찧은 무릎이 깨질 듯이 아팠지만, 꾹 참고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만약 거기서 기다리지 않고 도망쳤거나 소리라도 냈다면, 분명 들켰을 터.
머리 위에서 파락호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땐 어찌나 놀랬는지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어……!’
거기서 파락호들이 문을 열고 내다보기만 했더라면 들켰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은 천운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운찬은 파락호들이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멀리 본관 쪽은 조금 시끄러운 듯했지만,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운찬은 담벼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객잔 주변을 둘러친 담장은 못 돼도 이 장 이상. 잡을 곳도 없는 돌벽이라 운찬이 넘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담장을 뛰어넘을 수 없는 바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통해 뒷문을 통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잠깐, 이 목소린…….’
그렇게 전각과 전각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이동하길 잠시, 뒷문에 거의 다 와 갔을 때, 문득 꽤 큰 전각의 창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가 없어요. 정말 살려 두실 거예요?”
‘소교……!’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던 여인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곧이어, 뱀의 숨소리처럼 낮게 깔린 사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럴 리가 없지. 살려 두지 않을 거다.”
“그럼 왜……!”
“사람은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을 때 가장 약해지는 법이거든. 후후. 하룻 동안 꼬박 갇혀 있다가 나와서, 살려 줄 거란 기대감에 차서 나를 바라볼 때 죽이겠다고 말을 하면…… 아마 절망에 빠져서 눈에서 생기가 싹 사라져 버릴 거다. 난 그게 보고 싶은 거다.”
“아……!”
감탄하는 듯한 소교의 목소리.
장난으로 생명을 조롱하는 악인들의 대화다.
운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 대화를 자세히 듣기 위해 창문에 바짝 귀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역시 당신은, 정말로 잔인한 사람이군요.”
“후후,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할까. 아까 그 얼굴을 보지 못했나? 배신감에 치를 떨며 말도 제대로 못 하던데.”
“당신이 절망을 즐기듯, 저는 그 표정을 즐기죠.”
“후후, 그렇군.”
‘이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저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악귀다.
인의예지신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조차 잊은 것들은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음?”
“왜 그래요?”
“어디서 인기척이 느껴진 듯했는데.”
운찬은 화들짝 놀라 창문 밑에 바짝 엎드렸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기세가 표출된 모양이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발소리가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운찬은 땅에 코를 처박고 숨을 멈췄다. 말 그대로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착각이었나? 하긴, 이쪽에 사람이 올 리는 없지.”
“너무 예민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군. 대사를 앞두고 있으니.”
장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되돌아갔다.
곧이어 소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자를 죽이기만 하면, 일단 첫 번째는 완료가 되는 거네요. 기뻐요. 이대로라면 객잔을 통째로 삼키는 것도 머지않았어요.”
“말조심해. 일을 그르치고 싶어?”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치만 그렇게 되면, 당신도 약속을 지켜 주겠죠? 나는 대가를 받는 만큼 큰일을 해낼 자신이 있어요. 당신은 객잔을 맡고, 나는 기녀들을 다스리게 되는 거죠. 우리 둘은 객잔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사라락― 사락―
옷자락이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바닥에 뭔가가 툭 떨어지고,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장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확실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군.”
“호호, 물론이죠.”
“능력도 그렇고, 그 몸도 그렇고. 탐이 나긴 하는군.”
“아…….”
소교가 요염한 한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소교……! 소교……!’
운찬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하에 갇혀 있는 동안 사갈 같은 여자라고 되뇌며 마음을 정리했건만, 그래도 그동안 쌓인 추억들은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저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너무나 뻔하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사내와 정을 통하는 모습.
그 모습이 상상이 된 운찬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크윽……. 가슴이, 너무 아프다…….’
흙바닥을 움켜쥐고 몸을 뒤트는 운찬.
그의 눈에서 어느새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건 내가 아는 소교가 아니야.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여자다. 그러니 마음 아파할 것도 없어. 오히려 정이 떨어졌으니 잘된 거다.’
꽉 움켜쥔 운찬의 손바닥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보다 괴로운 법이다.
운찬은 귀에 들려오는 신음 소리와 가슴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필사적으로 지금 그가 해야 하는 일을 떠올렸다.
‘지금 달려들어 봐야 개죽음이야. 살야야 한다. 그게 우선! 그리고…… 형님, 형님에게 가야 해.’
운찬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기었다. 소리를 안 내도록 주의하며 담벼락과 건물 사이를 기어서 마침내 뒷문이 보이는 위치에 도달했다.
‘이제, 저 문만 넘으면……!’
뒷문만 넘으면 금선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면 그는 살았다고 봐도 좋다.
‘지키는 건 두 사람. 체격이 좋다. 저걸 뚫을 수 있을까?’
운찬의 눈이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후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절대로 낮잠을 자거나 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로지 강행 돌파뿐인데, 험상궂게 생긴 파락호들을 돌파하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한숨을 푹 내쉬는 운찬.
그런 그에게 놀랄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
뎅― 뎅― 뎅― 뎅―
“엇……!”
“뭐야! 이, 이 소리는……!”
갑자기 청풍객잔 본관이 있는 쪽에서 급박한 타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후문을 지키던 문지기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긴급 소집인데……? 저거, 본관으로 다 집합하라는 명 맞지?”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우리도 가야 하나?”
뎅― 데엥― 뎅―
“또 긴급 소집……!”
“안 되겠다. 가자!”
문지기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종소리가 들려오자 앞뒤 재지 않고 곧장 본관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한 행동력. 평소에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운찬을 살렸다.
두 사람이 뛰어간 덕분에 후문은 텅 비어 버린 것이다.
‘하늘이 돕는구나……!’
운찬은 천지 신령님께 감사하며 곧장 몸을 일으켜 달려 나갔다.
텅 빈 후문.
활짝 열린 통로가 눈앞에 다가온다.
그런데 잠시 후, 운찬은 방금 전에 감사를 표했던 하늘을 저주할 수밖에 없는 일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너, 뭐야?”
“……!”
기쁜 얼굴로 달려가던 운찬은 때마침 후문을 통해 들어오던 건장한 체구의 사내와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다.
운찬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클 것 같은 골격. 꽤나 마른 몸매에 탄탄한 근육. 햇볕에 그을린 갈색 피부에 머리를 말총처럼 뒤에서 하나로 묶어 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다.
‘이 사람은……!’
운찬은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고 말았다.
사내는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이름이 분명 마총.
예전에 풍운객잔을 찾아와 소면을 한 그릇 시켜 먹고, 정체가 탄로 나서 장기린으로부터 도망쳤던 자객이다.
마총은 그 당시 운찬을 보지 못했을 테지만, 운찬은 그의 얼굴을 확실하게 봐 두었다. 평소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을 잊어버렸을 테지만, 나중에 그가 청풍객잔의 자객이었다는 말을 듣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왜 이 사람이 하필……!’
뎅― 데엥― 뎅―!
운찬이 놀라는 사이, 청풍객잔 안쪽에선 여전히 위급한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총의 날카로운 시선이 종소리가 나는 본관 쪽을 향했다가, 스윽 하고 운찬의 전신을 훑어본다.
운찬은 자신의 몰골을 떠올리곤 ‘아차!’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는 지금 바닥을 기어 온 탓에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게다가 양팔엔 밧줄에 묶였던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고, 손바닥에 난 상처에선 핏물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몰골.
‘나 감옥에서 탈출했소!’라고 남들에게 알려 주는 듯한 모양새다.
눈이 가늘어진 마총이 운찬을 향해 성큼 다가왔다.
“넌 뭐냐고 물었다. 대답 안 해?”
“…….”
“수상한 놈이군. 본관에 데려가서 진상을 밝혀야만 하겠다!”
사납게 엄포를 놓으며 다가오는 마총.
짧은 시간, 운찬의 눈이 재빨리 주변의 많은 것들을 훑었다. 이제 한 걸음만 밖으로 더 내딛으면 바깥인데,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
다리에 힘을 주고 아랫배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마총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전력을 다해 옆으로 튀어 나갔다.
“타핫!”
직선으로 튀어 나간 운찬이 마총의 앞에서 직선으로 방향을 꺾었다. 돌아서 나갈 요량이다.
마총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 이대로라면 마총과 후문 사이에는 일 장가량의 틈이 있다.
운찬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후문의 문턱을 밟았다.
그런데 그 순간, ‘푹!’하고 싸늘하고 차가운 뭔가가 어깨에 박혀 들었다.
척추를 치달아 오르는 격통.
뼈에까지 닿아 있는 칼날이 찌꺽찌꺽 소리를 낸다.
“으아악……!”
비명이 절로 나온다.
칼날이 몸에 박히는 감각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 박힌 단검이 덜렁거리며 상처를 후벼 판다.
운찬은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깨의 단검을 잡아 뽑았다.
울컥―
“끄으…….”
어깨 부분의 옷이 순식간에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상처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음에도 쉬지 않고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운찬은 손을 흠뻑 적신 자신의 피를 보며 눈빛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모르는 자가 도망친다고 해서 곧바로 칼날을 던져 버리는 과감함.
지금껏 상식적인 삶을 살아온 운찬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행동이다.
“꽤나 좋은 움직임이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칼싸움도 한 번 안 해 본 애송이였군.”
마총은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다가와 운찬의 뒷덜미를 덥석 잡아챘다.
운찬이 반항하려고 했으나, 팔을 휘두르기도 전에 ‘짝!’하고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반항하지 마라. 다음번엔 반대쪽 어깨를 찍어 버릴 테니까.”
“……!”
“참고로 지금 흘린 피의 두 배만 더 흘리면, 넌 출혈 과다로 죽을 거다.”
운찬은 대번에 기가 죽어 버렸다.
장기린에게 쉽게 당했다고 해서 마총이 만만한 존재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일급 살수로서 수백 명의 사람을 죽여온 암살자. 운찬이 대항하기에는 급이 다른 존재였다.
실제로 살기를 품고 노려보자 운찬은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다.
“경계령이라니, 무슨 일이지?”
태연하게 말하며 성큼성큼 나아가는 마총의 손에 붙들려 운찬은 다시 청풍객잔의 본관을 향해 질질 끌려갔다.
후문이 멀어지고, 그가 간신히 통과해 온 전각들을 다시금 지나친다.
운찬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제 죽었구나.’
청풍객잔의 본관에 도착하고, 장흠이 불려와 얼굴을 대면하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운찬은 삶의 의지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후회가 막심하고, 죄책감이 하늘을 찌른다.
운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난 이렇게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이곳을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너무나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운찬은 갑자기 땅바닥에 얼굴을 ‘퍽!’하고 박아 버렸다.
“쿠엑? 퉤. 퉤! 이, 무슨?!”
운찬은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 내며 화가 나서 고개를 번쩍 들었으나, 이내 마총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도 잊은 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다.
어느새 마총이 뒷덜미도 놓아줘서 자유로워져 있었으나, 그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다.
빠아악―!
와장창!
“으아악―!”
“막아! 막아라!”
“제길 뒤를 노리……으아악!!”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는 나무 봉이 하나 움직이고 있었고, 운찬으로선 단 한 사람도 상대하기 버거운 파락호들이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날아가고 있었다.
양중호(羊中虎).
양 떼 속에 들어간 범도 이 정도로 날뛰진 못할 것이다.
“저, 저자가 왜……?”
마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마총은 운찬에게는 사신 같은 존재였으나, 지금 나타난 존재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위치다.
“세상에…….”
운찬은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온갖 감정들이 폭발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파락호들을 일격에 날려 버린 뒤, 주변을 압도하던 자가 운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마총은 어느새 뒤로 멀찍이 물러나 버렸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던 운찬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객주님…….”
“아아, 그래.”
단신으로 청풍객잔에 쳐들어와 한 자루 나무 봉으로 모두를 날려 버린 존재.
장기린은 운찬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데리러 왔다, 운찬.”
운찬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 ☆ ☆
그때로부터 일각 전.
장기린은 청풍객잔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철우는 신호만 보내면 언제든지 쳐들어가겠다며 폭연전(爆煙箭)을 건네줬지만, 장기린은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내 싸움이다.’
철우에게 매번 도움을 받아서야, 그건 스스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리라.
객잔의 식구가 공격을 받았다. 그럴 때는 이쪽의 힘을 보여 줘야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터.
이럴 때를 위해 금선로의 객잔들은 파락호들을 데리고 있는 것이지만, 풍운객잔엔 그런 것이 없으니, 스스로 나서야만 한다.
풍운객잔의 힘.
풍운객잔의 무서움을 보여 줘야만, 앞으로 청풍객잔에 대해 감히 이런 짓을 벌이지 못할 것이다.
쿵! 쿵! 쿵!
대궐처럼 커다란 정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안쪽에서 험상궂은 사내 하나가 옆의 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시오?”
하인이 아니라 파락호의 인상이다.
장기린은 앞머리를 걷어 내고는 사내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풍운객잔의 주인이다. 청풍객잔의 주인을 만나야겠으니, 안내해라.”
“……뭐, 뭐요……?”
사내는 장기린의 살벌한 눈빛에 질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면서 되물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모양.
장기린은 그 사내를 옆으로 확 밀친 뒤, 열린 문을 통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자, 잠깐! 하, 함부로 들어가면……히익!”
찌릿―
다시 한 번 노려봐 주자 입을 꾹 다물고 주저앉아 버린다.
마침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었던 듯, 근처를 배회하던 파락호들이 갑자기 등장한 장기린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뭐야? 이 시간에?”
“누구야, 저거? 대형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근처의 파락호들이 몰려든다.
숫자는 다섯 명.
장기린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본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보다 못한 파락호 하나가 장기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봐, 당신 누구요? 신분을 밝혀야 들어갈 수 있소.”
“객주는 본관에 있겠지?”
“그게 무슨…… 허억!”
장기린은 손을 쳐 내며 눈을 노려봐 주었다.
사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사내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가 의아한 듯 멀뚱멀뚱 서 있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스, 습격이다! 습격!”
“뭣……?”
“동업자야! 사람을 불러! 목표는 객주님이다!”
심상치 않은 어조에 놀란 파락호 하나가 품속에서 호적(號笛)을 꺼내 불고, 주변에 있던 파락호들 스무 명가량이 각자 무기를 들고 쫓아 나왔다.
장기린은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오늘은 풍운객잔의 힘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럴 때, 관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놈! 습격자입니다!”
튀어나온 사내들 중엔 장기린도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만석 형제. 최초에 장기린을 청월루에 안내해 주었던 사내들이다.
만석 형제는 파락호 하나가 손가락으로 장기린을 가리키자, 장기린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저, 저, 저자는……!!”
만석은 대경하여 주변 파락호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비상, 비상이다! 긴급 경계를 울려라! 청풍객잔의 전력을 모조리 끌어와! 독두파에도 비상을 알려!”
“도, 독두파에도요?”
“그래! 빨리 움직여!”
사내들은 이해를 못 하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장기린을 쳐다보는 만석의 얼굴에 깊은 공포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묵묵히 타종을 치기 위해 달려갔다.
어느새 삼십이나 되는 파락호들이 장기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각자 단검, 칼, 박도 같은 무기들을 들고 있으니, 그 기세가 매우 흉흉한 데다, 자리를 잡고 있는 것에서 묘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진법도 사용하는 듯했다.
놀라운 일.
중소 무림 문파가 부럽지 않은 방어력이다.
본래 금선로의 파락호들은 객잔에 찾아오는 무림인들이 행패를 부릴 경우, 그것을 제압해야 했다.
무림인들은 강하지만, 금선로의 파락호들 중에는 무림에서 공적으로 몰려 쫓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암흑계로 들어와야 했던 무림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인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고요했다.
살기가 충천(衝天)하고, 당장이라도 피가 튀어 오를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장기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보고, 이내 시선을 책임자인 만석에게로 향했다.
“나는 청풍객잔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 우리 객잔을 자꾸 들쑤시는 이유를 묻고, 숙수에게 손을 댄 것에 대한 책임을 따지러 온 것이지.”
“……!”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내 앞을 막는 자들은 몸이 성치 못할 것이다.”
장기린은 흘러가는 바람처럼 담담하게 말했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말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만석은 그 말에 격동하여 손끝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에 떠오른 것은 두려움과 불안감.
예전에 느꼈던 장기린의 강함이 떠오르며, 그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안겨 줬다.
“뭐야? 이 자식이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청풍객잔이 졸로 보이냐!”
“네깟 놈이 우리 객잔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장기린의 진가를 모르는 자들. 장흠파의 파락호들은 흥분하여 각자 한마디씩 내뱉고 있었다.
숨을 씩씩대며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당장 명령만 내려지면 장기린을 난도질해 버릴 기세였다.
“큭!”
장기린은 그런 파락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만석을 보며 다시금 물었다.
“그런가. 그 침묵이 네 대답인가?”
“…….”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두 눈 똑똑히 뜨고 잘 보아 두어라. 이게, 풍운객잔을 건드릴 경우 생기는 일이다.”
쾅!
“어엇?!”
힘차게 내딛는 발.
청석 바닥이 폭발하듯 깨져 나가며 주변 파락호들의 눈에 장기린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장기린의 몸은 어느새 공중으로 이 장이 넘게 뛰어올라 삼중으로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을 단번에 넘어서고 있었다.
“으아악―!”
“히, 히익―?!”
한 마리의 비조(飛鳥)처럼 내려앉는 장기린.
그는 이곳의 책임자인 만석 형제의 앞에 떨어지자마자 곧장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만석.
하지만 그는 순순히 당하지 않고 단검을 빼 들고 저항했다.
“캬핫!”
휘익―! 휘리릭!
한 척 길이의 단검이 꽤나 날카롭게 종횡으로 움직인다.
만석 또한 무공을 익힌 몸.
요지구검(了知九劍)이라는 검술로, 아미파의 파계승으로부터 한 수 배운 것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위력 덕분에 만석을 장흠파의 이인자까지 올려놓은 무공이었다.
만석은 검만 들면 사람이 달라졌다. 눈빛에 살기가 가득해지고, 휘두르는 검은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사람을 베어 낸다.
쉬이이익―
“캬핫!”
이번에도 마찬가지.
목과 어깨를 노리는 척하다가, 명치가 있는 심와(心窩)를 노리는 손속은, 오로지 상대를 죽일 생각만 가득한 살검(殺劍)이다.
따앙!
장기린은 명치를 찔러 오는 단검의 칼날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몸을 바깥쪽으로 한 바퀴 빙글 돌리면서 주먹을 반쯤 쥔 반권(半拳)으로 만석의 어깨를 후려쳤다.
빠악―!
“큭!”
원래는 턱을 노린 일격이었으나, 만석은 의외의 반사 신경으로 어깨를 치켜세워 막아 낸 것이다.
장기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무릎을 들어 복부를 차올리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길쭉한 창날이 뱀처럼 치솟아 올랐다.
타앙―!
뒤로 물러서는 장기린.
그 덕에 궁지에 몰렸던 만석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형님을 지켜!”
“합공이다! 공격해!”
장기린을 막아 세운 것은 만석의 동생 두 사람이었다. 삼 형제 중 둘째는 창날이 마름모꼴인 장창을 들고 있었고, 셋째는 날이 두꺼운 박도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무기를 쥔 자세하며 뿜어지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만석은 물론이고, 나머지 동생 두 사람도 무기를 들자 사람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기린에게 있어서는 막내 진구보다도 훨씬 미약한 힘이었다.
그는 옆의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만석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쉬이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툼한 박도가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쩌엉!
“헛……?”
장기린은 칼날이 맨손에 튕겨지자 놀라는 셋째는 내버려 둔 채, 정면의 만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만석은 몸을 낮추고 단검으로 장기린의 허벅지 근처를 노리고 있었다. 낫으로 볏단을 베어 내듯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단검.
장기린은 펄쩍 뛰어 단검을 뛰어넘었다. 마치 거대한 흑마를 타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움직임.
전장의 움직임이다. 발 디딜 곳 없을 만큼 빼곡한 병사들의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박살 내던 치열한 전투의 경험이 움직임에서 묻어 나오고 있었다.
만석은 요지구검의 구결을 살려 튕기듯이 뒤를 돌았으나, 이미 장기린은 모든 움직임을 꿰뚫고 만석의 발등을 뒤꿈치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
“캇……!”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발등. 첫째와 둘째 발가락 사이는 몸의 온갖 신경이 몰려 있는 요혈이다.
예로부터 수족(手足)은 온몸의 장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특히 발등의 요혈은 척추와 후뇌로 곧바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신경혈.
그것이 정교하고도 난폭하게 짓밟히자, 만석은 순간적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감각을 강제로 느껴야만 했다.
빠악―!
거기에 손날로 목의 측부를 일 타.
만석은 그걸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형님!!”
창을 든 둘째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다.
앞으로 한 번 찌르고, 곧장 그 주변에 커다랗게 원(圓)을 그리는 움직임.
창을 들고 있긴 하지만, 그건 분명 만석이 쓰던 것과 똑같은 요지구검의 움직임이었다.
아니, 이제 창을 들고 있으니 요지구창이라고 해야 할까.
장기린은 그 이름은 몰랐으나, 만석 삼 형제가 모두 같은 투로를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수련했군.’
이미 한 번 본 무공을 다시 상대하는 것.
장기린에게 있어서는 몸풀기조차 안 되는 간단한 일이다.
쉬이익―
둘째가 창으로 좌상(左上)을 찌르고 곧바로 대각선으로 내리긋는 순간, 장기린은 정면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흠칫!
둘째의 몸이 격동하듯 흔들렸다.
무공으로 따지면 조문을 찔린 거다.
그것만으로 둘째가 노리던 수는 모두 파괴되고, 요지구검의 초식은 헝클어져 버렸다.
“쿨럭……!”
기혈이 엉켜 피를 토하는 둘째.
장기린은 그런 둘째에게서 창을 빼앗아 창날을 바닥에 대고 발로 짓밟아 끝 부분을 부러뜨려 버렸다.
“창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장기린은 창날이 사라진 창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우고, 그대로 좌측으로 일 회전했다.
후우우웅―
공기가 갈라진다.
지극히 단순한 그 동작에, 핏물을 토하던 둘째는 물론이고, 장기린의 뒤쪽에서 박도를 내리치려던 셋째까지 휩쓸려 뒤로 삼 장이나 날아가 버렸다.
폭풍에 휩쓸린 조각배와 같은 모습.
주변에서 지켜보던 파락호들의 입이 절로 쩍 벌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콰당!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은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이 멎었다.
죽은 것은 아니다.
기절.
장기린은 이곳에 힘을 보여 주러 왔을 뿐, 전쟁을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다. 살수는 자제하고 있었다.
“뭐, 뭐야……?”
“만석 형님들이 저렇게 쉽게? 구파의 무림인들도 저 셋한테는 쩔쩔매던데……!”
“저거, 도대체 누구야?”
“풍운객잔의 주인. 객주가 직접 왔어.”
타앙!
장기린이 봉밖에 남지 않은 창으로 바닥을 ‘쿵!’ 내리치자, 파락호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의 오연한 눈빛에 파락호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우두머리를 잃어 기가 좀 죽었으나, 여전히 전의(戰意)를 잃지 않은 모습이다. 꺾이지 않고 눈을 빛내며 경계하듯 장기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우두머리, 장흠이라고 했던가. 부하들을 확실하게 장악한 모양이군.’
뛰어난 장수는 그 말단 부하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법.
지배 수단이 공포든 덕이든, 장흠이라는 자가 능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부하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니, 중간 간부인 만석 삼 형제가 당했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전의를 불태울 수 있는 것이다.
뎅― 데엥― 뎅―!
어느새 청풍객잔에선 긴급 경계를 알리는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방에서 하나둘씩 사내들이 모여들고, 장기린의 주변을 둘러싼 포위망은 점점 두터워져 갔다.
새로 도착한 사내들은 포위망에 갇힌 장기린을 보며 옆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야? 저건.”
“풍운객잔의 주인.”
“뭐? 그럼 철우파에서 쳐들어온 거야?”
“아니, 혼자 왔다.”
“혼자?! 그런데 왜 긴급 경계령이……?”
“눈이 있으면 봐라. 만석 형님들이 당했어. 그것도 일 수에.”
새로 온 사내들은 그 말에 입을 딱 벌리고, 그제야 긴장을 한 채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반짝이는 검광이 드러나자 주변 공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이 정도면 됐겠군.”
지금까지 모인 인원은 대략 사십 명 정도.
게다가 경계령 때문에 앞으로 더 늘어날 테니, 그 정도면 풍운객잔의 힘을 보여 주기엔 충분한 숫자다.
휘리리릭―
장기린은 꼿꼿이 세워 두었던 창봉을 능숙하게 휘둘러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었다.
창끝은 아래로, 양다리는 편안하게 어깨 너비로 벌리고, 양팔과 어깨는 긴장을 푼 채 자연체를 유지한다.
그가 시선을 향하자 파락호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거, 겁먹지 마라!”
“연습한 대로만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만석 형님들이 없다고 해서 당황하지 마라!”
중간 중간에 있는 노련한 사내들이 희망찬 말로 활기를 돋운다.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북돋아 주는 장흠파의 파락호들, 기세에 눌려 있던 그들이 각자의 창검을 든 채 조금씩 장기린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보여 주기 위한 싸움이다.’
장기린은 창끝을 앞으로 향하며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화아악―!
“헛.”
“컷……?”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 살기.
전장에서 수천을 압도하던 장군기(將軍氣)다. 적룡기마대를 이끌고 무인지경으로 적진을 돌파해 적장의 목을 베어 내던 그 시절의 기세가 장기린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풍운객잔에서 수행을 하며 살기를 지워 낸 것.
평범한 생활을 하기 위해 살벌한 눈빛을 죽였던 것.
모두 잊었다.
지금 이 순간의 그는 붉은 악귀라 불리던 장기린.
몽고의 대장군들조차 줄줄이 도망치게 만들었던 천하에 다시없을 비범한 기세다.
아무리 전(前) 무림인들이 많다지만, 객잔의 파락호들 따위가 받을 수 있는 기세가 아닐 터.
주변의 파락호들이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육체와 정신이 압도당해 몸이 비틀비틀 흔들린다. 기껏 만들어 놓은 진형이 일각에서부터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객잔 전체가 좁다 하고 터져 나간 기세.
힘을 조금도 자제하지 않은 장기린의 존재감은 전신(戰神)의 그것이다.
“으, 아…….”
“으으…….”
공포에 질린 파락호들을 향해 장기린은 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그의 애마 흑룡을 타고 있을 때처럼.
호쾌하게 발을 내딛고, 그 힘을 가득 담아 창봉을 앞으로 내찌른다.
퍼억―!
“쿠엑……!”
복부를 얻어맞은 파락호.
등 뒤에 있던 사내들 네다섯 명과 함께 튕겨 나가 우르르 바닥을 구른다.
곧이어 수평으로 휘두른 창봉에 사내들이 마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튕겨 나가고, 우연히 가까이 접근했던 사내들은 손짓 한 번에 갈비뼈가 부러지며 주저앉는다.
하늘을 찌르는 장군기.
인간을 초월한 듯한 파괴적인 힘으로 한 번에 서너 명씩 날려 버리니, 싸움은 일방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사십 명의 파락호들이 바닥에 눕는 것은 순식간.
장기린은 마지막으로 서 있던 파락호 세 사람을 날려 버린 뒤,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지닌 자가 멀찍이서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느낌, 살수다.’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서 있었다.
예전에 입으로 우모침을 뿌리려고 했던 자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장기린을 쳐다보며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는데, 그 옆에 장기린이 이곳까지 찾아오도록 만든 장본인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었다.
‘운찬.’
장기린은 걸음을 옮겨 그 앞으로 다가갔다.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한 얼굴.
가슴 깊이 상처를 입고 혼이 빠져 버린 것 같은 표정이다.
‘이 녀석…….’
장기린은 울컥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큰맘먹고 나갔으면 행복할 것이지, 어째서 이렇게 처참한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게 다 그들 때문이다.
장흠, 소교.
그리고 청풍객잔.
“객주님…….”
“아아, 그래.”
장기린은 씁쓸한 분노를 다 지운 채, 운찬을 향해 안심하라는 뜻으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데리러 왔다, 운찬.”
운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장기린은 운찬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준 뒤, 시선을 돌려 마총을 바라보았다.
“우린, 구면이군.”
“으윽…….”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마총. 당장이라도 등을 돌려 도망갈 것 같은 분위기다.
“뭐하는 거냐! 마총!”
“윽……!”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도망치려던 마총의 몸이 제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장기린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봤다.
정문과 반대 방향.
후문이 있는 쪽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깡마른 얼굴에 호리호리하고 길쭉한 몸매지만, 허약하지 않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내였다.
무엇을 하다 급하게 나왔는지 맨몸에 장포만 걸치고 있다.
인상은 사납고, 움푹 들어간 볼과 얇은 입술에서 음험한 성품이 보인다.
장기린은 그 사내를 보자마자, 그가 바로 장흠파의 두목 장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기세는 이곳에 있는 파락호들 중에서도 눈에 띌 만큼 독특하고 사나웠던 것이다.
‘양팔이 길고 균형이 잡혀 있다. 어깨보다는 손목을 자주 쓴다. 장병(長兵)보다는 단병(短兵)을 쓰는군. 소매 뒤에 숨긴 걸로 추측해 보자면…… 한 척 길이 정도 되는 단검이다. 그것도 양수(兩手)로.’
체형을 본 것만으로 한눈에 모조리 파헤쳐졌다.
장흠의 힘, 장흠의 능력, 어떤 무기를 쓰고 어느 정도로 위험한가 하는 것까지.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장기린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저렇게 소리칠 수 있다는 점만은 높이 사 주어야 할 듯했다.
“풍운객잔의 객주 장기린이다.”
“뭐? 네가?”
“그렇다. 내 아우에게 상처를 입힌 대가. 각오는 해 두었겠지?”
모든 일의 원흉이 바로 장흠이다.
이자만큼은, 장흠만큼은 죽여도 좋지 않을까.
후우욱―
“……!!”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살기가 유형화된다.
얼굴이 굳어진 장흠이 황급히 장기린의 등 뒤를 살폈다.
긴급 경계령이 내려졌으니 부하들이 모두 모였을 터.
하지만 사십 명이 넘는 사내들은 다들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진 것을 보니, 일어나서 싸울 수 있을 분위기가 아니다.
그밖에도 종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들이 속속 모여들고는 있으나, 쓰러진 동료를 보고 경악하여 움츠린 꼴이, 도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대단한 실력자……! 경계령이 내려지고 고작 일각이다. 일각 만에 사십 명을 전부 눕혀? 소림의 나한이 와도 이 정도로 밀리지는 않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장흠의 눈이 위험하게 번쩍이며 간교한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일단 대화로…….”
쉬이익―
“……!!”
일단은 한 발짝 물러서려고 했던 장흠이지만, 장기린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예의?
대화?
법도?
장기린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필요한 것은 상처 입고 괴로워하는 운찬의 복수.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뿐이다.
순식간에 장흠의 코앞으로 쇄도한 장기린이 주먹으로 장흠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큭……!”
장흠은 간신히 팔꿈치를 들어서 주먹을 막았으나, 막은 자세 그대로 뒤로 퉁겨져 나갔다.
황소가 들이받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
장흠이 그 거대한 충격에 경악하는 사이, 장기린은 곧장 몸을 날려 뒤로 튕겨지는 장흠을 따라잡았다.
꽈아앙!
“끄윽……!”
아직 공중에 떠 있던 장흠을 쫙 펼친 손바닥으로 일 장을 내리치자, 장흠이 짓밟힌 개구리처럼 억눌린 신음을 흘린다.
왼쪽 팔꿈치 아래가 덜렁거리는 것을 보니 관절이 박살 난 모양.
장흠은 한쪽 팔을 못쓰는 상태로 구르듯이 일어나 황급히 어딘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장기린은 급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운찬이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치 사냥감을 몰아가듯 장흠의 뒤를 쫓을 뿐이다.
저벅저벅.
장흠은 후문 쪽에 있는 전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작지만 화려한 전각.
장흠의 뒤를 쫓아 문을 넘자마자 ‘철컥’하고 뭔가가 맞물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크하! 잡았다!”
천장. 벽. 바닥. 주변의 모든 방향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한쪽 면에서 화살이 스무 개씩.
그게 육방(六方) 중, 뒤를 제외한 오방(五方)에서 각각 쏘아지자, 마치 밀려오는 해일을 맨몸으로 받아야만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관 장치인가.’
장기린은 당황하지 않고 한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물레방아가 돌 듯 창봉을 회전시키자 날아오던 화살들이 힘을 잃고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
아마 꽤나 공을 들여서 만든 비장의 한 수였던 듯, 장흠은 심히 당황한 듯 보였다.
의미가 없이 비도를 몇 번 던지더니, 장흠은 안쪽의 방을 향해 뛰어들었다.
“뭐, 뭐? 이게 무슨 짓이야!”
“가만히 있어!”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은 아직 앳된 구석이 남아 있는 익숙한 목소리.
장기린은 분노로 눈을 번뜩이며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후좌우 삼 장 정도 되는 넓은 방.
장흠이 뒤에서 목을 잡고 인질로 삼고 있는 것은 운찬을 현혹해서 객잔 밖으로 끌어낸 소교였다.
“네가 아끼는 그놈이 이년을 사랑하는 건 잘 알고 있겠지? 가까이 오면 죽이겠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
“…….”
장기린은 말없이 방 안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한쪽에 있는 침상은 축축하게 젖은 채로 몹시 흐트러져 있다. 장흠은 맨몸에 장포를 걸친 모양새. 게다가 소교 또한 알몸에 모포를 간신히 둘렀을 뿐이다.
“……그런가.”
장기린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방 안의 전경과 두 사람의 몰골을 보고 모든 전황을 파악한 것이다.
“역시, 모두 계획된 것이었나.”
뒤따라오던 운찬이 방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서는 것이 느껴진다.
장기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눈으로 창봉을 들어 장흠의 얼굴을 겨눴다.
“상관없다. 죽여라.”
“뭐……?”
“그 여자의 목숨은 상관없다. 좋을 대로 해. 다만, 네놈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 알아 둬라.”
후우욱―
방 안이 좁다 하고 터져 나가는 기세. 그것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살기인 바.
“크윽……!”
다급해진 장흠은 소교를 장기린 쪽으로 확 밀어 버리고, 그 자신은 창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꺅……!”
넘어질 것처럼 장기린 쪽으로 밀려 나오는 소교.
장흠은 창문을 박살 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다.
피슈슈슉―
“아……!”
창문을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몸을 휙 돌린 장흠은 소매 속의 단검을 빛살처럼 뿜어냈다.
비도(飛刀).
번개처럼 쏘아진 두 줄기 검광이 장기린의 방향, 정확히 말하자면 소교의 등을 향해 정확히 격중했다.
‘푹!’하고 파고드는 칼날.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은 소교가 눈빛이 흐려지며 바닥에 털썩 쓰러진다.
“네놈……!”
장기린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장흠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장흠과 소교.
운찬을 꿰어 내기 위해 힘을 합쳤으나, 결국은 그것밖에 안 되는 사이였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선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사이.
장흠은 소교가 피를 뿌리고, 잠시나마 장기린의 발을 멈추게 하기 위해 지체 없이 소교에게 칼을 날린 것이다.
‘비밀을 묻어 버리겠다는 생각도 있었겠지.’
장기린은 시선을 내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소교를 응시했다.
단검들은 치명적인 요혈들만 꿰뚫고 있었다.
하나는 목으로 이어지는 척추를, 하나는 뒤쪽에서 심장과 폐를 찔렀다.
“쿨럭……!”
핏물을 토해 내는 소교.
척추가 끊겨 버린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소교―!”
뒤에서 달려온 운찬이 절규하며 소교를 안아 든다.
사갈 같은 여인.
그를 배신하고, 목숨마저 빼앗으려 했던 여인이건만, 그럼에도 단 몇 시진밖에 안 된 미움의 감정보다 그동안의 사랑이 더욱 컸던 탓이다.
운찬은 눈물을 흘렸다.
생기를 잃어 가는 육신을 붙들고 비통하게 절규했다.
“으아아아―!”
소교는 운찬의 품에 안긴 채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련지.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다. 자기 이외의 사람들은 이용의 대상일 뿐이었고, 진심으로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품에 안긴 것은 자신의 욕심으로 희생시키려고 했던 사내다.
운찬의 눈빛엔 애증이 모두 담겨 있다.
소교는 피식 웃으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아, 아아…….”
이미 제대로 된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것인지, 소교는 운찬을 보며 몇 번 웅얼거린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소교, 소교, 소교……!”
운찬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운찬.”
“…….”
운찬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꺽꺽거리며 슬픔을 삼켰다.
복잡할 것이다.
그녀의 본성이야 어찌 됐든, 이 순간 운찬은 사랑했던 여인을 잃어버린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려고 했었던 반려.
그것을 잃은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가 만무한 것이다.
“운찬, 진정이 되면 곧바로 이곳을 나가라. 문지기도 없을 테니 쉽게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풍운객잔으로 돌아와. 거기가 우리들의 집이다.”
“…….”
“복수는…… 내가 해 주마.”
입을 꾹 다문 운찬에게서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장기린은 곧바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전각을 나오고,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전력을 다했다.
온힘을 다리에 집중해 순식간에 전각 몇 채를 지나쳐 먼저 달려가던 장흠을 따라잡았다.
“뭣……?!”
막 정문을 넘으려던 장흠은 금세 쫓아온 장기린을 보며 놀란 모양.
황급히 단검을 하나 더 꺼내 장기린에게 휘두르는데, 그 동작이 만석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우드득!
“끄……아아?!”
장기린의 창봉 끝이 장흠의 손목을 냉정하게 부러뜨렸다. 단검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힘을 잃은 손가락들이 처마 밑에 달린 풍경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장기린은 창봉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위로, 아래로, 다시 위로, 그리고 아래로.
격타음이 다섯 번 울리고…….
팔뚝, 팔꿈치, 어깨, 발목, 정강이 순으로 뼈가 부러져 나갔다.
“끄아! 끄아악! 끄아아악―!”
온몸의 뼈를 잘근잘근 부숴 나가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장흠은 말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절규하며 몸을 비틀었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장기린은 마치 저승에서 기어올라 온 잔혹한 저승사자처럼.
냉정한 눈빛으로 창봉을 수족처럼 자유롭게 움직여 장흠의 신체에서 멀쩡한 부분이 없도록 때려 대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끝났으면 왼쪽 다리를, 그리고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을 끝낸 뒤엔 골반과 쇄골을 박살 냈다.
장흠은 기절했다가, 고통 때문에 다시 깨어나고, 그리고 다시 기절하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탈진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장흠의 몸에서 멀쩡한 부분은 두개골과 갈비뼈뿐이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평생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치명적인 상세였다.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보는 사고(思考). 남을 괴롭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비틀어진 심성. 앞으로도 영원히 이 세상에 해를 끼칠 종자가 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만들었다.”
“……!”
“스스로 죽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그건 네가 선택하라.”
무심한 목소리로 판결을 내리는 장기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듣고 있던 장흠의 눈에 깊은 공포가 새겨졌다.
이렇게까지 보복을 하면서도, 장기린의 눈에선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대로 행동했다면 일격에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꾹 참고 단지 병신으로 만들었다.
철저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
잘못 건드렸다.
이자는 진실로 무서운 자. 그를 건드린 것이 자신의 일생일대의 실수라는 것을 깨달으며 장흠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뭐, 뭐야 이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장흠! 장흠, 어디 있어?! 독두파는? 독두파를 불러! 어서!”
갑작스레 돼지가 멱을 따는 것 같은 목소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빛낸 장기린은 장흠의 뒷덜미를 붙잡고 청풍객잔의 본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장흠의 사지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장기린이 본관에 도착하자, 그곳엔 마치 궁궐의 문사(文士)처럼 새하얀 비단 백의를 걸친 돼지가 공황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주변엔 바닥에 널브러진 사십 명의 사내들 말고, 다행히 참변을 피했던 사내들 열 명이 모여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어……?”
백의를 입은 돼지.
청풍객잔의 주인인 방태풍이 장기린을 보며 실처럼 가는눈을 나름대로 부릅떴다.
“넌 뭐냐!”
장기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풍운객잔의 주인 장기린이다.”
“뭐……? 풍운객잔……?”
“그렇다. 네가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하던 그 풍운객잔의 주인이다.”
방태풍의 눈빛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변화한다.
새우처럼 가는눈으로 장기린의 행색을 훑고, 마침내 그의 손에 질질 끌려오던 반(半)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자, 장흠?! 그 몰골은 대체……?!”
방태풍이 평소에 무시하긴 했지만, 그래도 장흠은 암흑가에서 최고들만 모이는 금선로에서도 손꼽히는 두목 중에 하나였다.
이런 식으로 무참한 모습으로 끌려올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대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
그건 곧 공포를 의미한다.
방태풍의 비대한 몸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이제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십 명의 사내들을 쳐다보고, 설마 하는 시선으로 장기린을 바라봤다.
“설마, 혼자서 이걸 전부……?”
“풍운객잔을 건드린 대가다.”
“……!”
방태풍은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굴렸다.
“건드린 대가라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이건 전쟁이야! 이런 짓을 벌인 이상 전쟁이란 말이다!”
“전쟁. 못 할 것도 없지.”
“……!”
“이것이 전쟁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적장을 죽이면 끝나는 건가?”
장기린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방태풍은 그의 심장이 콩알만 하게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런 짓을 했다간, 평생 관에 쫓기면서 살아야 할걸? 그, 그래! 나에게 연결된 인맥이 얼마인 줄 아는 거냐? 네놈이 나를 죽이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래, 그건 그렇겠지.”
장기린은 순순히 인정했다.
너무 순순히 인정해서 방태풍이 놀라 버릴 정도였다.
“난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풍운객잔을 건드릴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뭐……?”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는 방태풍.
그러다가 잠시 후, 그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대가라니! 무슨 소리냐? 난 최근에 네놈들을 건드린 적이 없어! 청월루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바쁘단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은’이겠지만, 이번엔 장기린이 놀라 버렸다.
억울해하는 방태풍의 눈빛은 진짜였던 것이다.
“설마, 이놈이 단독으로 벌인 일인가?”
“뭐……?”
“……그렇군. 그렇다면 잘 들어라. 이놈이 청월루의 침모인 홍매를 납치했다. 그리고 소교라는 여아와 손잡고 우리 풍운객잔의 숙수를 빼돌려 죽이려고 했었지.”
“……?!!”
“홍매는 아마 이놈의 처소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 숙수는 도망치는 것을 내가 간신히 살렸다. 지금 이 상황은 그에 대한 대가다.”
방태풍의 몸에서 흘러내리던 식은땀이 두 배로 많아졌다.
그의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교차되고 있었다.
장흠이 단독으로 벌인 일.
풍운객잔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지만, 그 때문에 청월루까지 건드렸으니, 잘못하다간 전면전이 일어나게 생겼다.
‘이 멍청한 놈. 왜 이런 짓을……!’
사실 장흠은 이 일을 통해 방태풍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계획이었으나, 그것을 모르는 방태풍은 단지 장흠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장기린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한시라도 빨리 그 홍매라는 여인을 청월루에 되돌려 주고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독두파는 어디로 간 거냐? 젠장! 이럴 때 없다니. 그놈이 있어야 청월루와의 싸움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거 아냐?’
방태풍은 분노를 억누르며 장기린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이걸로 원한은 풀렸나? 이걸로 된 거야?”
방태풍은 거만하게 배를 내밀고 있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아 장기린의 진가를 모른다는 점.
그리고 쓸데없이 큰 배포로 오만하다는 점이, 그가 감히 이런 상황임에도 장기린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부족하다.”
“그럼 원하는 게 뭐냐?”
“앞으로 영원히 풍운객잔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
“풍운객잔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도 너희 청풍객잔을 건드릴 일은 없을 것이다.”
“……좋아. 약조하지.”
“문서로 써라. 청풍객잔은 앞으로 영원히 풍운객잔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방태풍이 인상을 썼다.
그는 사실 말로 하는 약속 따위 일단 내뱉어 놓고 나중에 뒤집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서는 다르다.
그런 게 남아 있는 한, 청풍객잔은 정말로 앞으로 영원히 풍운객잔을 건드릴 수 없게 된다.
금선로 암흑가의 평판이란 것은 무서워서, 한 번 그런 약조를 어기게 되면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 그건 곤란하다.”
“……곤란하다고?”
“그, 그렇다! 그래! 이런 식의 폭력에 굴해서야 장사를 할 수 없지! 이런 방법으로 그런 걸 결정할 수는 없다.”
제법 당당하게 말하긴 했으나, 방태풍은 장기린이 인상을 쓰는 것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눈앞의 위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풍운객잔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때, 방태풍의 머릿속에 계책이 하나 번뜩였다.
‘그래, 이 녀석은 관가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합법적으로 살려고 하고 있어.’
그는 재빨리 머릿속의 계책을 입 밖으로 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자. 거기서 지는 쪽이 상대방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는 거다. 어때? 이거면 합법적이지 않나? 관가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을 거다. 우리가 진다면, 앞으로 영원히 풍운객잔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조하지.”
“……무엇으로 승부를 할 생각이지?”
‘됐다아―!’
승부가 뭐냐고 물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계책은 반쯤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방태풍은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며 표정을 관리했다.
장기린의 시선엔 아직 경계심이 가득했다.
“초청 승부(招請勝負)다!”
“초청 승부?”
“금선로의 손님들 사이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것이지. 연회를 열어 객잔을 아껴 주는 진정한 친구를 부른다. 그리고 그 친구들끼리 대화와 문필을 통해 어느 쪽이 합당한지, 그리고 어느 쪽이 정당한지를 승부하는 것이다.”
“…….”
“이것은 실제로 객잔들 사이에서 분쟁을 해결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의심이 간다면 청월루에 물어봐도 좋아. 어떤가? 이걸로 해 볼 텐가?”
방태풍은 고심하는 장기린을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금선로의 객잔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초청 승부는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다만, 여기엔 숨겨진 것이 있다.
이 승부는 대화나 문필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
실제로는 손님들의 지위, 계급을 놓고 비교해서 더 높은 고위 관료를 손님으로 모신 쪽이 승부에서 이기는. 그런 권력 싸움인 것이다.
‘나에겐 문 대인이 있다. 대륙 최고의 지부대인이자, 곧 삼공의 지위에 오를 문 승상. 그분이 있는 한, 이 승부는 내가 이길 수밖에 없어.’
그런 방태풍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린은 장흠을 바닥에 내려놓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민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장기린은 들고 있던 창봉을 옆으로 내던지며 말했다.
“그 승부. 받아들인다.”
“……정말인가? 나중에 뒷말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 초청 승부. 풍운객잔과 청풍객잔은 초청 승부를 통해 이번 일을 끝낸다.”
“좋다! 나도 거기서 진다면 뒷말은 하지 않겠다!”
방태풍은 치솟는 웃음기를 꾹 억누르고, 억지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멍청한 놈! 걸렸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약조의 뜻으로 포권을 취하는 방태풍.
그에게 마주 포권을 해 주고 뒤를 돌아 나오는 장기린의 입가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깃들어 있음이다.
춘절을 얼마 넘기지 않은 신년의 어느 날.
이렇게, 풍운객잔에선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