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47화 (113/686)

第四十四章 ― 복룡출현(伏龍出現)

“예? 없다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현백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서 되묻고 말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금룡마장(金龍馬場)이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황실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마장이었다.

마장이란 말을 키우는 목장으로, 필요에 따라 주인의 말을 맡아 주거나 빌려 주기도 하는 곳이다.

현백은 이곳에 말을 빌리러 왔다.

말의 이름은 황아(黃蛾).

누런 피부에 나방처럼 생긴 점을 등 한가운데에 가지고 있는 놈이었는데, 황아가 마차를 끌면 사흘거리를 그 절반인 이틀 만에 주파한다고 해서 반장마(班長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항주에 가고 싶은 현백으로서는 꼭 필요한 말이다.

때문에 열흘 전부터 오늘 황아를 빌리기 위해 선금까지 치르고 약속을 잡아 놨는데, 막상 당일 날 되니까 이미 나가고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백번 사죄하겠습니다.”

금룡마장의 책임자인 장 노(張老)는 현백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사과가 진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풀기엔 너무나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장 노,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열흘 전부터 부탁드린 건데, 당일 날 황아를 내보내 버리다뇨? 저에 대한 신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다는 말로 될 게 아니잖습니까? 이거 정말로 섭섭한데요?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무슨 일인지도 말 안 해 주실 겁니까?”

장노는 우물쭈물하며 난감해할 뿐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게……. 도저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장노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신 황아 다음 가는 장사인 녹산(綠山)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시간을 반으로 줄여 주는 반장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삼분지 이까지는 거리를 줄이실 수 있을 겁니다. 선금도 돌려 드리고, 이번엔 요금을 일절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하지만 장노…….”

“부탁드리겠습니다! 우 대인!”

순간, 현백의 눈이 번뜩였다.

비록 현백이 관직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장노도 중화 최고의 마장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부호였다.

나이 차도 많이 나는 현백에게 이렇게나 고개를 숙인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뭔가가 있다.’

이상한 기색을 감지한 현백.

그의 영민한 머리가 작금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바로 당일 날 황아를 요청했다. 장노는 신의를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보통 손님이라면 천금을 준다고 해도 다른 손님에게 예약된 말을 내줬을 리가 없어. 도대체 얼마나 힘이 있는 상대일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왔기에 장노가 자신의 신의를 꺾었지?’

문득 현백의 머릿속에 사흘 전 황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떠올랐다.

‘사흘 전, 팔기군에 비상이 걸리고, 동창, 금의위가 소집되었으며, 수황위사 스무 명이 쓰러져서 실려 갔었지. 황제 폐하를 비밀리에 지키는 백시(百矢)들이 자리를 이탈해서 난리가 나기도 했었어.’

황실이 거의 뒤집어지다시피 했던 큰 사건이었다.

당시 현백은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했었으나, 위에서 일방적으로 함구령이 내려졌기에 더 이상 묻지 못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오늘 갑작스레 벌어진 ‘이상한 일’에서 현백은 그 사건과의 연관성을 느꼈다.

특이한 일은, 특이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법이다.

만약 사흘 전의 그 사건이 어떤 계기가 되어, 황제를 자극했다면?

그래서 황제가 다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암행(暗行)을 나왔다면?

‘그래, 장 노가 이 정도로 자존심을 꺾으려면 황제 정도는 되어야겠지.’

황제가 황아를 원한다면?

내주어야 한다.

설령 이미 다른 사람에게 약속이 되어 있더라도, 마장의 평판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내주어야 한다.

만인지상.

신의 아들인 황제에게 거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그래, 그렇다면 이해가 돼. 다만…….’

다만, 궁금한 것은, 그 ‘계기’가 도대체 무엇이었냐는 것.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 대인!”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황아를 빌려 간 ‘그분’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장노?”

장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끄응’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답해 주었다.

“항주, 항주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

“아, 그러고 보니, 우 대인께서도 항주로 간다고 하셨죠? 무슨 일입니까? 항주에 뭔가가 있습니까?”

장노는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두 눈을 번쩍 빛낸 현백.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항주에는 붉은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탐을 내는 붉은 용이지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예?”

“하하. 못 들은 걸로 하십시오, 장노. 그럼 녹산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현백은 웃는 얼굴로 떠나갔다.

☆ ☆ ☆

청풍객잔의 객주, 방태풍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복잡한 일이 너무나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청월루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면서 생긴 긴장감 때문에 방태풍은 요 며칠간 뱃살이 다섯 근이나 빠졌을 정도였다.

‘마음대로 측간도 갈 수 없으니. 이거야 원.’

언제 어디서 살수(殺手)가 나타날지 알 수가 없으니,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도 없었다. 식사도 은수저로 조심하며 먹어야 했고, 잠도 반쯤 긴장한 채 선잠을 자야 했다.

청월루는 실제로 살수를 보냈다.

성공하진 못했으나, 방태풍을 말려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수의 살수를 끊임없이 보냈던 것이다.

최근엔 실력 있는 보표를 고용해 볼까 생각했지만, 그 또한 청월루가 손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본래는 청풍객잔을 지키는 장흠파가 해야 할 일이건만, 지금 장흠파는 산산조각 나서 사실상 해체가 된 상태였다.

게다가 대장인 장흠이 반신불수가 되었으니, 앞으로도 장흠파가 금선로에 등장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독두파 하나인데…….’

왜일까.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장흠파가 있을 때는 제발 독두파 좀 보고 배우라며 항상 구박을 했었지만, 사실 방태풍에겐 장흠파가 훨씬 대하기 편했다.

독두파는 너무 제멋대로였다.

자아가 강하고, 방태풍의 말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우선했다. 게다가 무작정 믿기엔 묘하게 신뢰가 안 갔다.

이번에 청월루 건도 그렇다.

청월루를 습격해서 쓸어버릴 수 있다기에 은자를 삼천 냥 가까이 투자했건만, 아직까진 제대로 된 결과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쳇, 일처리는 투박해도 장흠파가 좋았어.’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더구나 방태풍은 최근에 독두파를 대할 때마다 묘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방태풍처럼 급격하게 성공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런 ‘육감’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할 때가 있다.

“방 객주, 안 들어오나?”

“아, 예! 들어갑니다!”

방태풍은 굳어 있던 안색을 풀고 안쪽으로 날듯이 뛰어 들어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이다.

문표는 항상 방태풍의 그런 움직임을 볼 때마다 껄껄 웃으며 ‘계집아이’ 같다고 놀리곤 했다.

“방 객주.”

“예, 대인.”

“저 치들 좀 바꿀 수 없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인상이 너무 험악해. 술맛이 떨어진다고. 게다가 예쁜 기녀들이 저런 인상이 있으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겠나?”

문표는 혀를 끌끌 차며 불만을 표했다.

방태풍은 서둘러 손짓을 해 ‘그 치’들에게 문을 닫고 나가도록 지시했다.

방문 앞을 지키던 독두파의 덩치 두 사람은 별다른 대꾸 없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대인.”

“에잉, 사람이 그렇게 없나?”

“예. 일단 장흠파가 그렇게 무너지는 바람에…… 지금은 호불호를 따질 여유가 없어, 독두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정 그렇게 힘들면 내가 사병을 좀 빌려 주는 게 어떤가?”

방태풍은 양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어이쿠, 대인께 그렇게나 신세를 질 수야 없지요. 일단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태풍은 겉으론 정중하게 사양했으나 속으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대체가 방심할 수가 없어. 여우를 피해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넣으라는 거야, 뭐야?’

문표의 사병이 청풍객잔을 지킨다?

그러면 정말로 끝이다.

문표에게 청풍객잔이 얻는 이득의 오 할은 빼앗기게 될지도 몰랐다.

“문 상국님, 저에게도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아! 이런! 미안하네, 자형(紫荊). 내가 깜빡했구먼그래.”

문표는 턱살을 출렁이며 웃은 뒤, 자리에 허리를 펴고 꼿꼿이 앉은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중년 사내를 방태풍에게 소개했다.

“방 객주, 인사하게. 여기 이 친구는 개봉 이씨세가의 가주, 자형일세. 내 어릴 적부터 동문수학한 친구지. 지금은 통정사(通政司)의 통정사(通政使)를 맡고 있네.”

“통정사……!”

방태풍은 깜짝 놀라 정중하게 인사했다.

통정사는 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나, 황제가 내리는 칙령들을 총괄하는 부서로, 황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에 중앙 관직 중에서도 최고위 관직으로 분류되는 자리였다.

황제에게 올라가는 상소를 관리한다.

즉, 대륙의 모든 관리들이 올리는 상소의 최후 결정권이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실제로 한나라 때는 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를 관리하던 십상시가 천하의 권력을 차지했었다.

공식적인 직위는 정삼품.

하지만 실질적인 힘은 정이품의 도어사들도 쩔쩔맬 만큼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자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청풍객잔을 맡고 있는 방 모라고 합니다.”

“하하, 반갑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통정사 이자형은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래 정치란 것은 겉과 속이 다를수록 잘하는 법이 아니던가.

짧게 기른 수염, 듬직한 체구, 온화한 표정.

하지만 중간 중간 드러나는 날카로운 눈빛은 절대로 그를 만만하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지부 대인 문표와 가깝게 지내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방태풍은 이자형이 절대로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방 객주, 자형은 내가 불렀네. 나중에 만나기 전에 미리 안면을 터 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안면을 트다니요?”

“그, 초청승부인가 뭔가 말이야. 하지(夏至)가 오기 전에 한다고 했던가? 그때쯤엔 내가 바빠서 오지 못할 것 같더군.”

“아, 아니! 문 대인께서 못 오신단 말씀입니까?”

“커험, 확실한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때 하필 황실에서 관리들의 대회합이 있단 말일세. 그게 한 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를 모르는 일이라 섣불리 약속을 할 수가 없다는 거지.”

방태풍은 당황한 안색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그때쯤 황실 백관(百官)들의 대회합이 있다는 것은 방태풍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어떻게 진행되는 줄은 몰랐기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 몰랐던 것이다.

‘곤란한데……!’

방태풍은 불안해졌다.

풍운객잔은 보잘것없는 곳이고, 절대로 문표 같은 고위 관료를 알고 있을 리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그 장기린인가 뭔가 하는 객주 놈도 방심하는 사이에 쳐들어와서 장흠파를 뒤집어 놓지 않았던가?

방태풍은 그 뒤로 풍운객잔을 우습게 보다가 당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하자고 다짐을 해 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문표가 오지 못한다?

불안하다. 파란의 전조다.

이미 방태풍은 이런 식으로 사태가 미묘하게 틀어지다가 순식간에 역전을 당해 버리는 피해를 여러 번 당했다.

‘잠깐, 문 대인이 나한테 안면을 트게 해 준다고 말했지.’

방태풍은 이런 쪽으론 눈치가 빠른 편이다.

곧바로 문표의 생각을 읽고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과연, 그래서 이쪽의 이 대인을 소개시켜 주신 거로군요!”

“허허,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하는 거야. 눈치가 빠르거든.”

문표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자, 옆에 있는 이자형도 부드럽게 웃었다.

“세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성공하는 법이지요.”

“물론이야! 하하, 그러니 여기 방 객주도 이곳 금선로에 번듯하게 객잔을 차린 것이 아니겠나. 이곳 청풍객잔의 별호가 뭔지 알지? 비안화숙(秘安話宿)일세. 비밀이 안주하고, 말이 머무는 곳이란 뜻이야. 어떤 비밀 이야기도 입을 꾹 다물고 지켜 준다는 것이 여기 이 방 객주의 약속일세.”

문표는 절친한 동생을 대하듯 방태풍의 어깨를 손으로 팡팡 두드렸다.

이자형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거 참, 정치하는 관료들에게 있어서 비밀이 지켜지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요.”

“그래, 그렇지. 내가 상국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주기적으로 관리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연회를 열까 생각 중이야.”

껄껄 웃는 문표의 옆에서 방태풍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상국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연회를 연다.

그렇게 되면 수입이 늘어난다?

그렇다, 분명히 수입이 늘어난다. 다만, 그만큼 문표에게 바쳐야 하는 액수도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습니까? 문 상국의 가택도 대단히 아름답지 않습니까? 관리들은 아무래도 문 상국의 거처에 초대받는 것을 더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 참! 영광이라니!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닐세!”

문표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론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우리 안사람이 그런 연회를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앞으로도 내 집에서 연회를 여는 일은 웬만해서 없을 걸세.”

“아…… 그렇군요. 하긴, 요화(曜嬅) 공주께선 연회를 싫어하셨었지요.”

“그렇네. 아무리 나라도 안사람을 화나게 하는 건 껄끄러워서 말이야.”

문표는 껄껄 웃었고, 이자형도 조용히 따라 웃었다.

문표가 상국에 오를 정도의 거물이면서 고작 부인에게 휘둘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의 부인은 공주.

즉, 황실의 피를 이은 황족이었던 것이다.

문표가 지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에는 부인의 덕도 컸기에, 그도 부인에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만한 직위면 삼처사첩을 두는 것도 흠이 아닌데, 그는 단 한 명의 첩도 두지 않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문 대인께서 연회를 여신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 여흥을 준비하겠습니다.”

“하하! 부탁하겠네, 방 객주.”

“걱정 마십시오!”

방태풍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술을 따르자, 문표는 의식적으로 웃으며 그 술잔을 받아 들었다.

“그건 그렇고, 방 객주.”

“예, 문 대인.”

“초청승부 말인데,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

풍운객잔을 손에 넣는 것은 문표에게도 꽤나 중요한 일이다.

문표가 도와줄 경우, 풍운객잔 자리에 분점을 세웠을 경우, 이미 방태풍이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문표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예, 문 대인께서 직접 와주신다면 좋겠지만…… 아마 이 대인께서만 오셔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 풍운객잔에는 제대로 된 인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방태풍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표는 영 미심쩍었다. 최근 들어 청풍객잔의 행사에는 허점이 많았던 것이다.

“혹시, 주변의 도움으로 누군가를 데려오면 어떻게 할 건가? 청월루가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하하! 청월루의 인맥도 알고 있지만…… 문 대인은커녕 여기 이 대인과 맞상대를 할 만한 사람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그만한 능력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회합을 빨리 마치신다면 연회에 들러 주십시오. 풍운객잔이 저희 손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방태풍은 이자형의 신분을 알고 나서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풍운객잔 따위가 통정사 이상 가는 관료를 데려올 수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방태풍은 시대의 풍운아처럼 호쾌해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금 괴롭히면서 속셈을 알아볼까?’

방태풍의 두툼한 볼살 사이로 가자미처럼 작은 눈이 음습하게 빛났다.

함께 웃으며 술을 마시는 문표와 이자형.

청풍객잔의 밤은 이렇게 각각의 음모와 함께 깊어지고 있었다.

☆ ☆ ☆

풍운객잔의 아침은 운찬이 식 재료를 구매해 오면서 시작된다.

장소는 매일 열리는 항주 대시(大市).

식 재료의 신선도를 살리기 위해 가장 가까운 농가에서 야채를 보급하는 청과상이 있는 곳을 선택했다.

운찬이 이곳에서 오전에 필요한 배추와 청경채, 무와 당근 같은 야채들을 구입해서 들고 가고, 나머지는 정오까지 객잔에 배달을 부탁하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뭐, 뭐라구요?”

하지만 그 일상은 운찬의 갈라지는 목소리와 함께 종막을 고했다.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나도 처자식이 있는 몸인데 장사를 못하게 되어 버리면 우리 가족이 다 길거리에 나앉고 말아.”

“하,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강 숙수도 잘 알잖아? 이 바닥이 어떤지.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해 좀 해 줘.”

운찬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깽판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앞에서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과상의 주인을 보자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주인뿐만이 아니었다.

잘 보면 평소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야채들이라든지, 과일이 차곡차곡 쌓여 있던 상자의 파편 같은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독두파…… 라고요?”

“그래, 독두파였어.”

운찬은 이를 악물고 분을 참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어젯밤 분명히 청풍객잔에서 보낸 파락호들이 이 청과상을 덮쳤을 것이다.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조건 때려 부순 뒤, 필사적으로 말리려는 주인을 한 대 쥐어박고 풍운객잔과 거래를 한다면 다시 찾아올 거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청과상의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상대는 금선로 오대객잔 중 하나를 맡고 있는 파락호.

관군은 돕지 않을 것이고, 다른 파락호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파락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자릿세를 바쳐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겨우 시장에서 야채나 파는 청과상 입장에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는데다가, 설령 그 자릿세를 각오한다고 해도 객잔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서 독두파를 상대할 만한 파락호는 항주에 없었다.

결국 청과상의 주인은 그들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비열한 짓을……!”

운찬은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청풍객잔.

또다시 청풍객잔이다.

그들에게 억울하게 납치당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런 시장통의 상인까지 족쳐서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미안하네, 강 숙수. 미안해.”

운찬은 힘없는 주인의 사과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됐어요…….”

운찬은 등을 돌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운찬의 발걸음은 지친 그의 마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 ☆ ☆

그날, 풍운객잔을 겨냥한 사건은 또 한 번 일어났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탁자 사이에서 난동을 피우는 손님이 나타난 것이다.

“무슨 소면 맛이 이래! 이걸 먹으라고 가지고 온 거야?”

와장창 하는 소음과 함께 소면을 담았던 그릇이 바닥에 던져져 박살이 났다.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덩치가 산만 하고, 척 보기에도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파락호였다. 그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껏 가슴을 펴고 주변을 향해 보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객잔 안은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렸다.

주변에서 호기심과 경멸이 뒤섞인 눈빛이 사내에게 쏟아졌지만,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한지 시선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인 나오라고 그래! 주인! 이딴 음식을 사람한테 팔아도 되는 거야? 앙? 주인 어디 있어!”

사내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소면 맛이 어때서? 혹시 실수로 저것만 맛이 이상했나?”

“그럴 리가 없잖아. 이렇게 맛있는데. 척 봐도 시비를 걸러 온 것 같지 않아?”

“하긴, 그래. 파락호처럼 생겼네.”

“풍운객잔이 어디에 밉보인 모양이구먼.”

“거기 아냐? 거기. 청풍객잔? 곧 초청승부를 한다며? 금선로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쯧쯧. 객잔에 지켜 주는 덩치들이 없으니 이런 꼴이 나는 거야. 이래서 힘없는 곳은 서럽다니까.”

손님들은 제각각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수군거렸고, 그들 중엔 도저히 시끄러워서 못 먹겠다며 소면을 남긴 채 나가 버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아칠과 아팔은 그 파락호 사내에게로 달려가 웃는 낯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맛이 안 좋으셨나요?”

“죄송해요. 소면 값은 받지 않을게요. 그냥 가셔도 돼요.”

아칠과 아팔은 최대한 정중하게 사내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러 소란을 만들 의도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말 한마디에 순순히 돌아갈 리가 없었다.

“누가 꼬맹이 나오라고 했어? 주인 나오라고 하라니까! 주인 어딨어! 주인!”

“저기, 손님. 이러시면 곤란…….”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꺼져!”

퍽! 소리와 함께 어깨를 밀쳐진 아칠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자그마한 몸이 이미 소면 그릇이 깨져 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파편에 베였는지 아칠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칠, 피!”

“괘, 괜찮아.”

아칠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아팔은 원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그 파락호 사내를 쏘아보았다.

파락호 사내는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험악한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쪼그만 게 어딜 노려봐! 죽고 싶어? 오냐, 내가 오늘 버릇을 가르쳐 주마!”

씩씩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의 몸집은 아칠과 아팔의 다섯 배는 되어 보였다.

아이들을 때리려는 듯 주먹을 번쩍 치켜드는 사내.

하지만 그가 주먹을 내려치기 전에, 그의 손목을 단단한 손가락이 턱 하니 붙잡았다.

“버릇은 당신이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엉? 네놈은 뭐야!”

“나? 나는 이 꼬마들이 다치길 원치 않는 사람이지.”

파락호의 손목을 붙잡은 것은 남궁휴였다.

반듯한 외모, 귀티 어린 얼굴이지만, 객잔에서 하인 일을 하고 있는 탓에 복색이 허름했다.

게다가 한쪽 손엔 대문을 쓸다가 들어온 탓에 싸리비가 들려 있으니, 파락호 사내는 남궁휴를 대번에 우습게 봤다.

“이런 건방진 자식이. 넌 뭐야, 인마!”

휙 하고 주먹을 휘두르려는 파락호.

하지만 남궁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젖히는 것만으로 주먹을 피해 냈다.

“……일단 나가지?”

“어? 어? 이, 이 자식, 이거 안 놔?”

“조용히 해. 다른 손님들께 방해되잖아.”

남궁휴는 안 나가려고 버티는 파락호의 손목을 꽉 붙들고 강제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남궁휴는 대문 밖으로 나간 뒤에야 사내의 손목을 풀어 주었다.

사내는 벌겋게 달아오른 손목을 문지르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남궁휴를 노려봤다.

“이 자식, 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무슨 짓을 했는데?”

“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네가 곱게 죽을 수 있을 줄 알아? 사지가 다 뽑히거나, 처절한 고문을 당한 후에 죽게 될 거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내의 말은 누가 들어도 기가 찬 내용이었다.

“아, 그래?”

그래서 남궁휴 또한 대충 대답했다.

“어? 안 믿어?”

“그래, 안 믿어.”

“이런 호래자식이, 나를 우습게 보고……!”

“닥쳐.”

섬뜩한 목소리.

남궁휴의 나직한 일갈에 파락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뭐, 뭐야?”

“네놈은 두 가지 죄를 범했다. 첫째, 감히 풍운객잔에 시비를 건 것. 둘째, 객주님이 귀여워하는 꼬마 점소이들에게 해코지를 한 것.”

“……뭐?”

“그래도 못 알아듣겠다면 몸으로 때워야지.”

말에서 ‘―지.’ 자가 끝나기도 전에 번개처럼 날아간 주먹이 파락호 사내의 명치를 후려쳤다.

“커헉!”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굽히는 사내.

하지만 허리를 굽힌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등의 허점이 훤히 드러난 순간, 남궁휴는 눈을 번뜩이며 양 주먹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휘둘러 댄 것이다.

“으라라라랏―!”

퍽. 퍽. 퍽! 두두두두!

“끄아아악……!”

파락호 사내는 눈을 허옇게 뜨며 기절하려고 했으나, 기절을 하기 전에 극심한 통증이 다시 그를 깨워 주었다.

주먹질이 끝났을 때, 사내는 바닥에 축 늘어져 콜록거리는 기침만 계속하고 있었다.

새우처럼 구부려진 몸이 그가 지금 얼마나 큰 통증을 느끼는지 말해 주었다. 복부와 등허리에 얻어맞지 않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남궁휴는 손을 탁탁 턴 뒤, 그런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청풍객잔에서 왔지?”

“…….”

“그래도 너는 운이 좋은 거야. 왜인 줄 알아? 하필이면 객주님이 지금 없었거든. 객주님이 계셨으면 너는 오늘 최소한 반신불수야. 운이 좋았던 거라고.”

파락호 사내는 반신불수라는 말에서 몸을 움찔 떨었다.

남궁휴는 혀를 쯧쯧 찬 뒤 말했다.

“내가 이 바닥을 조금 알아서 충고해 주는 건데. 너 같은 공갈쟁이들은 청풍객잔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는 게 좋아. 독두파도 아니지? 그냥 이번 일 때문에 고용된 거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남궁휴가 듣기론 독두파는 매우 폐쇄적인 곳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설령 들어간다고 해도 머리를 다 민 뒤, 철저한 정신교육과 육체 단련을 한 뒤에야 조직원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처럼 허풍만 센 사람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다시는 나타나지 마. 만약 다시 나타나면, 그땐 정말…… 죽여 버린다.”

남궁휴는 과거 암흑가에서 구를 때의 거친 말투로 경고했다. 날카로운 눈빛 속엔 살기마저 섞여 있었다.

실제로 남궁휴는 풍운객잔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손을 더럽힐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도 그것을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몸을 움츠리기만 했다. 그는 잠시 후 몸을 일으켜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후우…….”

남궁휴는 사내가 시야에서 안 보일 만큼 멀어지자 한숨을 내쉬었다.

“예감이 안 좋은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청과상 사건과 방금 있었던 사건은 절대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청풍객잔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래 치사한 쪽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상대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사사건건 방해를 하고 나오면, 풍운객잔 입장에선 상대하기가 매우 껄끄러워진다.

청과상 사건도 그렇다. 오늘은 다행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운찬이 열심히 발로 뛰어 야채를 구입한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독두파가 다시 새로운 청과상을 협박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청과상을 또 찾아야 한다.

매일 새로운 청과상을 찾아서 야채를 구입해야 하다니. 그게 할 짓이겠는가?

게다가 조만간 풍운객잔에 야채를 대면 큰일을 당한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땐 정말로 야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렇다.

남궁휴가 한 번 더 오면 죽여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만약 청풍객잔이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써서 이런 식으로 난장을 피우면 장사에 큰 지장이 생긴다.

아무리 단골 식당이라도 거기서 보기 싫은 인간이 매일 난장을 피우고 있으면 가기 싫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손님을 잃으면 끝이다.

풍운객잔은 장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상당히 치사하게 나오는데, 청풍객잔.”

명색이 오대객잔 중의 하나인데. 이런 짓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뜻일까?

문득 남궁휴는 그의 능력 있는 여동생이 생각났다.

“연이에게 부탁해 볼까?”

남궁연.

남궁세가 항주지부를 맡고 있는 자랑스러운 여동생.

그녀에게 물으면 해결책을 바로 제시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남궁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장기린의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싫어할 것이다.

“풍운객잔은 내가 지킨다. 만약 한 번만 이딴 짓을 하면, 그땐…….”

남궁휴는 분노를 가슴속에 꾹 누르며, 거리 저편에 화려하게 서 있는 청풍객잔을 노려보았다.

치사한 것들. 악의 소굴.

확 기둥뿌리가 박살 나서 전각이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말과 마차들로 붐비는 북문(北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호패와 소지품을 검사한 뒤에 성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고, 검사를 받는 사람들도 그를 당연하게 여기고 익숙한 동작으로 가진 물건을 보여 주었다.

꽤나 번거로운 절차지만, 검사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익숙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시간은 생각보다 별로 걸리지 않았다.

신분을 증명할 호패가 있고, 많은 양의 금이나 병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않다면,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별지장이 없었다.

이제 곧 해가 쨍쨍 내리쬘 정오인데도, 관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도시라는 것은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반복되기 때문에 대도시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물건이 들어오고, 돈이 움직여야 도시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기린은 사람들로 붐비는 북문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 꼭 도시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항주에 온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그러고 보면 제대로 근처를 구경한 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풍운객잔이 문을 닫으면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지.’

휘연, 운찬, 휴, 아칠, 아팔을 모두 데리고 가는 여행이다. 분명 즐거울 것이다.

“정말로 철우 씨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될까요?”

그때 들려오는 걱정스런 목소리.

옆에 서 있는 휘연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어제 철우의 얼굴을 봤잖아? 지금 말해 봤자 서로 괴로울 뿐이야.”

어제의 일을 떠올린 휘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젯밤.

장사를 끝내고 식구들이 잠이 들 때쯤 철우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풍운객잔을 찾아왔다.

그는 장기린을 향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했다. 금선로의 사정이 변해서 청월루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오대객잔이 똘똘 뭉쳐서 청풍객잔에게 제약을 걸었고, 그 때문에 청풍객잔에 무력으로 보복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번 초청승부에까지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어서 손발이 꽁꽁 묶여 버렸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하다며 철우는 반시진이 넘게 계속해서 사과했다.

장기린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약속을 못 지킨 철우는 그야말로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간 게 바로 어제인데.

오늘 바로 어려운 일을 가지고 찾아갈 수는 없었다.

“이제 내일이 바로 초청승부야. 여기서 승부가 나고 나면…… 그때 가서 담판을 지으면 돼.”

“하지만…… 아뇨,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휘연은 뭔가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그렇게 말해 주었다.

현명한 여인이다.

장기린이 상황을 다 알고 있다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그에 대한 판단을 모두 장기린에게 믿고 맡겨 주었다.

장기린이 고맙다는 뜻으로 어깨에 손을 얹자, 따뜻한 눈빛으로 웃어 주었다.

장기린은 그 웃음을 보자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어, 저기 와요. 저 마차 아닌가요?”

“어디…… 아니, 저건 아냐. 현백은 서찰에서 녹색 갈기를 가진 말이라고 했어.”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고, 휘연은 이내 수긍했다.

두 사람이 지금 이곳에 나와 있는 것은 현백을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이틀 전에 어떤 표국을 통해 전달된 서신에는 현백이 오늘 정오쯤에 금선로에 도착할 거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현백은 서신에 자신의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이 녹색 갈기를 가진 말이라고 써 두었다.

하지만 휘연이 가리킨 마차는 몸집이 큰 황색 말이 끌고 있었다.

‘말이 굉장히 힘이 좋게 생겼군.’

모양 좋게 쭉 뻗은 다리. 마치 갑옷처럼 온몸을 감싸고 있는 탄탄한 근육은 저 황마(黃馬)가 굉장한 명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이빨과 혀를 살펴보진 못했지만, 완벽한 육체와 당당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황마가 자신이 예전에 타고 있던 흑룡에 못지않은 명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휘연, 이쪽으로 와.”

“아, 네.”

옆을 지나가는 마차를 피하기 위해 휘연의 어깨를 당기자, 휘연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순순히 안쪽으로 다가왔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코끝을 스치며 은은한 연꽃향을 흘렸다.

기분 좋은 향기다.

장기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려는 그 순간.

찌릿!

“……!!”

장기린은 휘연을 등 뒤로 감춘 채 황급히 몸을 돌렸다.

마차가 옆을 지나갔을 뿐이다.

마차의 창문이 꽉 닫혀 있었기에 안에 있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서로를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도 소름이 돋았다.

단지 옆을 지나갔다는 것만으로.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장에서 다져진 장기린의 날카로운 육감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건, 대체…… 누구냐?’

이렇게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 얼마만일까.

만적 반야혼?

아니, 그는 장기린과 동류지만 만났을 때 그에게 이 정도로 전율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건 흥분이나 승부욕과는 다르다.

공포.

생명에의 위협.

생존과 관련된 전율이다.

생쥐가 지진을 예측하고 먼저 피난을 가듯이. 도살당할 소가 도축자를 알아보듯이.

누군지는 몰라도 반야혼 이상 가는 존재다.

장기린은 그렇게 확신하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마차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히히힝―

“…….”

착각일까. 마차는 마치 장기린의 시선을 느끼는 것처럼 잠깐 멈춰 있다가, 이내 다시 터벅거리는 속도로 멀어졌다.

장기린은 그 마차가 인파 속에 섞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방금 전에 흐른 식은땀이 축축하게 등을 적시고 있었다. 장기린은 눈도 깜빡할 수 없었다.

“객주님? 왜 그러세요?”

장기린은 은방울처럼 맑고 영롱한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괜찮으세요? 땀을 흘리는 것 같은데요?”

“괜찮아.”

휘연은 품에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장기린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휘연이다.

그녀가 연인에게 하는 듯한 애정 어린 행동을 하자 주변의 시선이 더더욱 모여들었으나, 휘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 저기 온다.”

장기린은 휘연의 시선을 조금 피하고 있다가, 이내 관문을 통과해 다가오는 마차를 보고 반색했다.

마차는 정말로 녹색 갈기를 가진 말이 끌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황마보다는 못하지만, 충분히 멋진 말이다.

마차는 장기린이 손을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멈춰 섰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마부는 장기린을 보며 물었다.

“혹시, 붉은 용이십니까?”

“……그렇소.”

장기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그런 이름으로 물을 줄이야. 현백의 장난기는 여전했다.

“기린!”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삼 년간 보지 못했던 친구가 양팔을 벌리며 뛰쳐나왔다.

귀티가 흐르는 외모.

선명한 이목구비에 총명한 눈빛이 인상적인 서생이었다.

잠시 못 보던 사이, 친구는 훨씬 성숙한 느낌을 풍기는 사내가 되어 있었다.

장기린은 덥썩 끌어안는 현백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게 얼마만이야! 반갑다! 반가워! 서신을 받았을 땐 내가 몇 번이나 눈을 의심했었다는 거 아나?”

“그랬나?”

“당연하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서신을 보낸 적이 없는 친구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데! 나는 그때 누군가 다음 날 세상이 멸망한다고 말해도 믿었을 거야.”

현백은 환한 얼굴로 등을 팡팡 두드린 뒤에야 장기린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휘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쪽이 ‘제수씨’인가?”

현백의 짧은 한마디에 휘연의 표정이 무너졌다.

“제, 제, 제수씨라뇨. 아, 아직, 그런 사이는…….”

“아직? 아, 다행입니다. 그럼 이 친구에게 희망은 있군요. 혹시 이 친구가 헛물을 켜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습니다.”

“그게…… 음…….”

휘연은 당황하면서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그렇다고 하기엔 곤란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휘연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장난은 그만둬.”

보다 못한 장기린이 나서서 도와주었으나, 그건 현백에게 오히려 역효과였다.

“어? 당황하는 거야? 이야, 그런 표정 오랜만에 보는데? 기린.”

“……!”

그렇다. 현백은 장기린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현백은 장기린의 속을 꿰뚫어 보듯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휘연에게 척 하니 포권을 취했다.

“이거 진짜군요. 반갑습니다, 제수씨. 제 이름은 우일현, 자는 현백입니다. 태어날 때 마당에 있던 측백나무가 벼락을 맞고 까맣게 타 버려서 현백입니다.”

“아, 저기. 예, 저는 진휘연이라고 해요.”

“하하, 반갑습니다. 이 친구가 세상 사는 요령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제수씨를 지켜 줄 듬직한 사내입니다.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그, 그게…….”

“현백!”

다시금 휘연의 얼굴이 빨개졌고, 장기린이 나직하게 호통을 쳤다.

현백은 어깨를 으쓱하며 양손을 휘저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나저나 나 몰래 항주에 와서는 이런 알콩달콩한 삶을 살고 있었다니. 자네가 부러워지는데?”

“알콩달콩이라니…….”

“아아! 외롭구나! 따스한 봄기운이 주변에 이렇게 만연한데, 나는 홀로 고독하다니! 내 짝은 어디에 있으련가. 나는 이대로 홀로 늙어 가야 하는 것인가! 아아! 절대 고독이여!”

과장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현백은 경극의 배우로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능청스러웠다.

휘연의 입에서도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장기린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가자, 객잔을 보여 주지.”

“호오. 자신 있나 보지, 친구? 난 북경 생활을 하면서 눈이 꽤 높아졌는데? 날 만족스럽게 대접하려면 꽤나 힘이 들 거야.”

“그딴 기대를 하고 왔다면 당장 돌아가.”

“냉정하긴. 하나도 안 변했어.”

“너야말로 하나도 안 변했군. 어떻게 그 입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거지?”

“하하! 여인들은 의외로 과묵한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해. 자신을 재밌게 해 주는 즐거운 사내를 좋아하지.”

“……방금 절대 고독이 어쩌고 하지 않았어?”

“단 한 명의 ‘짝’이 없다는 거지. 나한테 목매는 여인들은 북경에 한 수레나 있다네, 친구.”

장기린은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하하! 감탄했나? 미안하지만 비법은 알려 줄 수 없어.”

“필요 없어.”

“하긴, 제수씨가 있으니 필요 없겠지.”

“…….”

“알았어, 알았어. 주먹은 쥐지 말게.”

계속해서 티격태격하긴 했으나, 둘 사이엔 함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한 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휘연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장기린이 이렇게나 허물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처음 봤다.

서슴없이 장기린에게 장난을 치는 현백도, 그런 장난을 받아치며 틱틱거리는 장기린도, 휘연에게 있어서는 모두 새롭고 신선한 광경이다.

‘신기해.’

휘연은 장기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아 참!”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현백이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탄성을 내질렀다.

“깜빡했다! 난 혼자 온 게 아니야. 여기 동행이…….”

“이제야 생각난 거야?!”

갑자기 마차 안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현백의 머리를 퍽! 하고 때렸다. 꽤나 정확도가 뛰어난 투척술이다.

현백은 컥! 하고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머리를 후려친 물건을 받아 들었다.

신발.

여자아이들이 신을 법한 당혜였다.

“기다리다 죽을 뻔했잖아!”

씩씩거리며 한 발로 폴짝거리며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소녀.

“아……!”

그 소녀의 얼굴을 알아본 휘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화 매!”

“휘연 언니!”

구양화도 휘연을 보자마자 폴짝폴짝 뛰어와 품에 꼬옥 안겼다. 휘연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장기린은 구양화의 얼굴을 보자, 마차 안에 있는 나머지 한 사람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객주님.”

마차에서 내리는 순박한 인상의 청년 도인.

반야혼을 쫓던 무당파의 검객, 일해검 백연이었다.

“세상이 좁다더니, 이렇게도 인연이 되는군요. 설마 현백 문사님께서 만나러 간다는 친구 분이 장 객주님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제가 왠지 아는 곳 같다고 했잖습니까?”

백연은 어깨를 떨 정도로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명심하십시오. 문사들은 원래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존재입니다.”

“이럴 수가!”

“하하!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런 만남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야 즐거운 법입니다.”

머리를 감싸 쥐는 백연과 껄껄 웃어젖히는 현백.

옆에서 지켜보던 장기린은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보는 현백은 여전히 밝고 명랑했으며, 재기발랄한 장난기로 가득한 사내였다.

“일단 객잔으로 가지. 길가에서 이러는 건 좋지 않아.”

장기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에 올라탔다.

☆ ☆ ☆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자면, 청풍객잔에서 풍운객잔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지?”

요새 연이어 겹친 일로 손님이 줄어든데다가,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 사이인 미시(未時)경은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텅 비어 있는 객잔 안에서 현백은 장기린의 설명을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이 자리를 탐내고 있어.”

“흐음. 그 객주라는 인간, 보나마나 탐욕으로 가득한 배불뚝이 돼지겠구먼.”

마치 직접 만나 보기라도 한 듯 정확한 묘사였다.

장기린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맞아.”

“하하,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서 눈은 새우처럼 작고, 잔머리를 굴리면서 높은 사람한테 아부하는 걸 잘하는 야비한 인간이겠지.”

“……!”

“이야기만 들어도 알아. 쓸데없이 객잔의 분점을 내려는 생각하며, 권력을 능숙하게 이용하는데다 파락호들을 이용한 저열한 술수까지. 황실에도 그런 인간들은 수두룩하거든. 대충 견적이 나온다는 이야기야.”

장기린은 조용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현백을 보며 감탄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한 번에 핵심을 꿰뚫어 보는 현백의 통찰력은 놀라울 뿐이다.

장기린은 지금까지 현백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무식하게 공격을 해 대면 좋을 텐데. 이번엔 일이 조금 어렵겠어.”

“……그래?”

“초청승부라는 건 북경에서도 유행하는 거야. 승부의 결과에 따르는 것은…… 뭐랄까, 의무적인 거라고나 할까. 한 번 결과가 나오면 뒤집기는 힘들어진다는 의미지.”

장기린은 미간을 좁혔다.

“결과를 뒤집는다고?”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잖아? 평화적인 승부 다음에는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 있기 마련인데…… 초청승부는 그게 힘들다고나 할까.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반기를 들면 주변의 평판이 최악으로 떨어지니까…… 결국 안 하니만 못한 결과가 된다는 뜻이야. 결과가 나오면 무조건 승복하던가,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하지.”

“음…….”

“그 돼지가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것치곤 상당히 뛰어난 판단이었어. 역시 잔머리는 만만히 볼 수 없겠는데.”

현백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게다가 청풍객잔에 연루된 자가 지부 대인 문표라면…… 더더욱 어렵지.”

“……그런가.”

“어어, 잠깐. 미리 포기하지는 마. 전략의 승부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건 잘 알고 있지?”

현백은 갑자기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알고 있어.”

“하하, 저쪽은 재빠른 상황 판단으로 지(地)와 인(人)의 이점을 먼저 챙겨 갔어. 항주에서 초청승부를 하고, 정계의 이인자나 다름없는 문표를 끌어들인 게 그것이지. 하지만 천(天)의 이점은 아직 미지수야. 우린 그것에 승부를 걸어야 해.”

“천의 이점?”

“천기(天氣). 시기(時氣). 마침 지금 북경에선 백관(百官)들의 대회합이 열리고 있어. 지부 대인 문표는 자기가 승상이나 상국의 자리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가 거기서 결정되기 때문에 참석을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이야. 아마 지금쯤 대회합에서 제후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을걸?”

“그 말은……!”

“그래, 하늘이 돕는 거지. 문표는 초청승부에 참가할 수 없어.”

장기린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던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문표가 승부에 참가할 수 없다.

그 말만으로도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에서 서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꼭 문표가 아니더라도, 청풍객잔은 고위 관료들과의 인맥이 넓다고 들었어요. 다른 관료를 불러 두지 않았을까요?”

휘연이 걱정스럽게 질문했다.

“제수씨는 머리도 좋으시군요. 감탄했습니다.”

“아니, 그게…….”

다시금 얼굴이 붉어지는 휘연.

주변에서 ‘제수씨라니!’, ‘그게 무슨……!’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으나, 중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그럴 겁니다. 이야기로 들은 돼지의 성품대로라면 분명히 뭔가 방도를 준비해 두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문표만 아니라면 저에게도 승산은 있습니다.”

“그…… 래요?”

“예. 하하, 믿어 주십시오. 저도 황실에서 지내면서 꽤나 주워들은 게 많습니다. 문표만 아니라면 다른 상대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요.”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짓는 현백.

장기린을 비롯한 풍운객잔의 식구들은 그런 현백을 믿어 보기로 결정했다.

☆ ☆ ☆

다음 날, 청풍객잔에선 대대적으로 문을 개방한 채 초청승부를 벌인다는 글귀를 금선로 곳곳에 붙여 놓았다.

초청승부라는 것은 그 마을의 연회나 다름없다.

각 객잔의 하인들과 근처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제법 세력 있는 부호와 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그 소란의 한가운데.

고급스럽게 장식된 몇 대의 마차가 모여들었다.

“문 대인, 설마 대회합이 중지될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크흠, 그러게 말일세. 황제 폐하께서 급환으로 회합에 참석할 수가 없다니. 이번엔 내게 중요한 안건이 걸려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열흘 후엔 다시 연다고 하니까. 다행인 일 아니겠습니까?”

“열흘이라…… 할 수 없지. 그 정도야 참아 보는 수밖에. 하지만 덕분에 자네는 마음이 놓이겠어. 내가 이렇게 초청승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하하, 물론입니다. 문 대인께서 참석해 주신 덕분에 이 방 모는 마음이 크게 놓였습니다!”

껄껄 웃는 웃음소리가 커다란 마차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나저나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나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단 말일세.”

“이거 죄송합니다. 초청승부를 한다는 게 워낙 유명해져 버려서…….”

“특히, 저 마차 말이야. 도대체 뭔가 저 마차는. 대문을 가로막고 서 있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이 문표의 앞을 가로막아도 되는 건가?”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시정하겠습니다.”

굽실거린 사내가 창문을 통해 청풍객잔의 대문을 바라봤다.

그곳엔 한 대의 마차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 네 마리가 끌어도 남을 법한 커다란 마차였다.

튼튼한 외양. 고급스런 장식.

가문의 깃발이 꽂혀 있지 않아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꽤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이 탈 법한 마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말이군.’

하지만 그 마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말이다.

사람의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몸집.

마차를 이끄는 말은 황색(黃色)빛을 띠고 있었다.

<7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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