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53화 (47/686)

第五十章 ― 운찬지일(雲璨之日)(2)

“으, 아, 어, 으, 어……?”

운찬은 이미 언어라고 부를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을 연신 끔뻑거렸다.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버린 줄 알았다.

엄청나게 밝은 빛을 직접 목격하자 시야가 순간적으로 새카맣게 변했던 것이다.

처음엔 당황하며 양손을 휘저었으나 이내 눈앞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흐려졌던 시야가 서서히 다시 돌아왔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한심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구양화였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본 게 처음인지, 엄청나게 질린 표정이었다.

“무슨 남자가 그래? 겨우 폭발 한 번 본 거 가지고.”

혀를 끌끌 차는 목소리에 너무 놀라서 굳어 있던 감정이 울컥 폭발했다.

“겨우? 이게 겨우라고?!”

“……왜 소리를 질러?”

“당연히 지르지! 아직도 귀가 먹먹하다! 난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단 말이야!”

아직도 충격의 여파로 내장이 울렁거렸다.

구양화는 운찬이 소리를 지르자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조금도 기죽지 않은 얼굴로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비슷해.”

“비슷하다니? 뭐가?”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다며? 방금 폭발한 물건의 이름이 뇌홍(雷汞)이야. 사람의 손으로 벼락을 재현하는 신묘한 물건이다…… 라고 당 노인이 그랬어.”

운찬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 노인이 누군지는 알 바가 아니지만, 구양화가 한 말은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벼락을 재현한다.

딱 맞는 설명이다.

운찬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서 있던 나무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것을 보며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버렸다.

나무의 절단면에는 새카맣게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나무 밑둥은 누군가가 강제로 잡아 뜯은 것처럼 삐뚤삐뚤하게 뜯어져 있었고, 그 주변의 바닥은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땅이 원형으로 움푹 파여 있었다.

키가 십 장이 넘는 거인이 나무를 붙잡고 뜯어 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만약 나무가 피를 흘리는 생명체였다면, 지금쯤 주변이 핏물로 흥건했을 것이다.

“고작, 돌멩이 두 개로…… 이렇게 만든 거야?”

구양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지?”

“……대단해.”

“이제 다음번엔 목이버섯을 충분히 캘 수 있겠어?”

그렇다.

이 모든 건 목이버섯 때문이었다.

간신히 원래의 목적을 상기해 낸 운찬은 모래를 삼킨 것처럼 씁쓸한 심정으로 긍정의 뜻을 말했다.

“그래, 고마워. 네 덕분이야.”

“흐흥, 역시 난 대단하다니까.”

구양화는 감사의 인사를 받은 게 대단히 기분 좋은 듯했다.

운찬은 자그마한 가슴을 당당하게 쭉 내미는 구양화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뇌홍이라니, 그런 듣도보도 못한 무시무시한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상상외의 대단한 집안의 여식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운찬의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런 위험한 물건이 몇 개나 들어 있을지 모르는 하얀 주머니였다.

그런 것을 품 안에 넣고 다니다니.

목숨이 여벌로 몇 개나 있지 않는 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저기 말이야…….”

“응? 왜?”

“그거, 안 위험해?”

운찬은 구양화가 아무렇게나 손에 들고 덜렁거리고 있는 하얀색 주머니를 가리켰다.

“응? 이거?”

“그래, 그거. 아까 뇌홍인가 뭔가 하는 파란 돌멩이 두 개가 부딪쳐서 저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잖아.”

“아아, 그 말이었구나. 안 위험해.”

“……정말로?”

“정말정말로. 이 하얀색 주머니는 안쪽이 특수하게 제작된 거라서 충격을 막아 줘. 원리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밖에 꺼내서 둘을 부딪치지 않는 한 터지지 않거든.”

구양화는 ‘부럽지?’라고 뽐내듯이 말하며 하얀 주머니를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들었어도 눈앞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본 이상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운찬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하얀 주머니가 신경 쓰여서 죽을 것만 같았으나, 시선을 피하고 딴생각을 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참아냈다.

“어쨌든…… 일이 다 끝났으니, 돌아가자.”

운찬은 보따리를 가득 채운 목이버섯을 어깨에 짊어지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움직였다.

진이 다 빠져서 걷기도 힘들었다.

꼬마 아가씨와 놀아 주기 위해, 그것도 고작 버섯을 따러 왔다가 눈앞에서 나무가 폭발하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운찬은 다시는 구양화와 함께 외출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 ☆ ☆

목이버섯을 객잔의 창고에 옮겨 놓고 나자 시간이 꽤 비었다. 원래는 저녁 시간에 사용할 음식 재료들을 다듬어 두어야 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다른 식구들이 그 작업을 대신 해 주었던 것이다.

구양화는 객잔에 돌아오자마자 운찬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고 진휘연에게 달려가 안겼다.

딱히 그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없지만, 그래도 버림받는 사내의 기분이란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슬픈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재미없나?’라든가, ‘내가 그렇게 같이 있기 싫은 존재인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의외로 그런 점에서 소심한 법이다.

“나도 여심대회전에서 남궁휴랑 동점을 기록한 사내란 말이다!”

말하자면 항주 최고를 다투는 멋진 남자.

청월루의 기녀들을 휘어잡았던 쾌남.

아무도 없는 허공에 외쳐 보았지만,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울적해졌다.

화려했던 순간은 그때뿐, 그 이후로 오히려 그의 연애사는 깊은 아픔으로 얼룩져 있다.

소교…… 라는 여인 때문에.

‘아아, 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운찬은 아직 화창한 금선로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금선로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야 제모습을 찾는 금선로이기에,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하아, 시장에나 나가 볼까? 제철 채소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확인하고, 새로 단골 청과상이 되어 줄 사람도 찾아야 하고.”

그래, 일을 하는 거다.

일에 몰두해서 힘든 기억들을 다 잊어버리는 거다.

운찬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의식을 한쪽으로 되돌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청풍객잔과 독두파 때문에 단골 청과상을 잃은 것이 너무나도 뼈아팠다.

단골 청과상이 있으면 좋은 점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가격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이미 서로 아는 사이인만큼 언제 얼마만큼의 채소를 객잔에 배달해 주어야 하는지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단골을 잃었으니,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새로운 청과상을 찾아가서 친목을 다지고, 믿음을 얻고, 이런저런 마찰을 빚을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지려고 했다.

‘할 수 없지. 그래도 유화청과상이랑 진호청과상이 유명하니까, 그쪽부터 일단…… 어라?’

항주에서 유명한 청과상들을 머릿속에 꼽아 보던 운찬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윤기가 흐르는 녹색의 비단 경장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낭창낭창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었다.

옷과 색깔을 맞춘 녹색 당혜는 앙증맞았고, 비록 면사로 코 윗부분을 가리고 있어도 갸름한 턱 선과 앵두처럼 붉은 입술을 보면 그녀가 미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여인은 운찬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착각?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법이다.

면사여인은 분명히 운찬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째서 나한테……? 아, 아냐, 착각하면 안 돼. 저런 여인이 나한테 접근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야.’

이미 쓴맛은 볼 만큼 보지 않았던가.

운찬은 여성에 대한 불신감을 떠올리며 잔뜩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마침내 여인이 한 걸음 앞까지 다가왔다.

운찬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여인 또한 움직이지 않은 채 면사에 가려진 눈으로 지그시 운찬을 응시했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강 숙수?”

카랑카랑하면서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목소리였다.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면사를 걷어 냈다.

짙은 화장을 한 미인형 얼굴에 섬뜩할 정도로 색기 가득한 눈빛이 운찬을 사로잡았다.

“누구……?”

운찬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미인을 보면서 다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물러서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운찬은 눈앞의 여인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암사마귀를 만난 수사마귀처럼, 교미가 끝나면 머리부터 잡아먹히는 희생양이 된 듯한 착각을 느꼈다.

‘대단한 눈빛……!’

지금껏 운찬이 만나 본 여인 중에 누가 가장 성숙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낭화를 꼽을 수 있다.

지성, 미모, 그리고 풍부한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어른’의 분위기.

그 모든 것이 낭화를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여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성숙했다.

말 그대로 아찔할 정도의 색기(色氣)였다.

무서울 정도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한 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을 듯한 마성의 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내 이름은…….”

“예?”

“……옥승이라고 하는데.”

비밀스러운 말을 해 주듯 살짝 상체를 굽히며 이름을 말하는 옥승.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운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급히 뒤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어느새 옥승의 손이 운찬의 팔목을 꽉 붙들고 있었다.

“느, 놔!”

운찬은 그동안 장기린에게 배워 온 훈련의 힘으로 손을 뿌리쳤다.

숨쉬는 법, 걷는 법, 그리고 수천 번의 반죽으로 단련된 팔힘으로 탁! 하고 손목을 튕겨 냈다.

“음……?”

그 순간, 옥승의 눈빛이 변했다.

신묘하게 움직이는 발.

춤을 추듯이 녹색의 경장이 펄럭이더니 독수리의 발톱처럼 휘어진 손가락 세 개가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휘리릭―!

응조수(鷹鳥手).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바스러뜨리는 해남파의 수공 중 하나가 선보여진 것이다.

꽈악―!

운찬은 어찌해 볼 새도 없이 어깨를 꽉 붙들렸다.

“윽……!”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운찬은 어깨를 붙잡혔을 뿐인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양옆에서 다가온 험상궂은 인상의 덩치 둘이 위협하듯 운찬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운찬의 기가 대번에 죽어 버렸다.

“무, 무슨 일로……?”

운찬은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옥승이 아래가 박살 난 뒤로 여인이 되었다더니, 진짜였구나……!’

여인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점점 강해지는 운찬이다.

옥승은 그런 운찬에게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풍운객잔의 강 숙수님,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무슨…….”

운찬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새하얀 다리가 언뜻 보이는 듯하더니, 초록색 당혜가 운찬의 명치를 찍고 있었다.

“컥! 쿠, 쿨럭…… 쿨럭……!”

“요새 청풍객잔이 손을 놓았다고 해서 안심했나 봐? 이렇게 대낮에 멀쩡히 길거리를 활보하고 말이야.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옥승의 눈빛은 뱀처럼 차가웠다.

“풍운객잔 주제에 청풍객잔이 손을 놓았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는 착각은 하지 마. 청월루가 너희한테서 손을 뗐다는 거 알지? 청월루가 없는 이상 너흰 금선로 모든 객잔들의 밥이야. 알겠어?”

“쿨럭, 쿨럭. 밥이라니, 무슨…….”

“이제부턴 우리 홍화객잔의 옥룡파가 너희를 관리해 주겠다는 말씀이지.”

운찬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청월루가 정말로 자신들에게서 손을 뗐는가?

아니, 그보다도 하필이면 홍화객잔이라니.

그곳은 휘연 누님을 납치해 가려다가 실패한 곳이지 않은가.

‘안 돼. 절대 안 돼!’

운찬은 뱃속에서 오기를 끄집어냈다.

“헤, 헤에, 옥룡파가 그새 대단해졌나 보네. 남몰래 비급이라도 익혔어?”

“……뭐라고?”

“얼마 전 일 기억 안 나? 휘연 누님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해선 우리 객주님한테 거시기가 깨졌잖아? 이번엔 뭐가 깨지려나? 더 깨질 게 남아 있…… 끄억!”

뻑! 소리와 함께 이번엔 가슴을 정권으로 격타당해 몸이 뒤로 넘어갔다.

운찬은 쓰러지려고 했으나, 양옆에 붙어 서 있는 덩치들은 팔을 꽉 붙든 채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게 어디서 건방을 떨고 있어?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고 온 거 아냐? 앙?”

옥승은 새빨간 입술을 혀로 할짝 핥았다.

진심으로 분노했을 때만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끅, 우리 객주님이…… 장흠파를…… 쓸어버린 거 알지? 하아, 하아…… 너희도 그렇게 되고 싶어?”

운찬은 가슴을 얻어맞아 숨을 쉬기 힘든 가운데도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옥승은 캇! 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 이상한 객주의 실력은 놀랍지. 하지만 말이야. 세상은 힘으로만 돌아가는게 아니야.”

“뭐……?”

“너 말이야,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게 뭐라고 생각해? 목숨의 위협?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옥승은 차갑게 웃으며 긴 손가락으로 운찬의 코를 쿡 찔렀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가게의 평판이 떨어지는 거야.”

“……!!”

“생각해 봐. 우리 옥룡파의 동생들이 매일같이 가게에 찾아가 깽판을 놓으면 어떨 것 같아? 힘에선 그 괴물 같은 객주를 당해 낼 수가 없으니까 동생들도 얻어맞고 쫓겨나겠지?”

“다, 당연하지!”

“후후, 하지만 매일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손님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떠돌거야. ‘아, 풍운객잔은 음식이 맛있기는 한데 항상 싸움이 일어나서 가기가 싫어’라고 말이야. 그럼 결과는? 빤하지. 망하는 거야. 손님이 없어지고, 매출은 전무. 가게 문 닫아야지.”

옥승은 혀를 쯧쯧 차면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게다가 객잔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책임질 건데? 청과상을 협박해서 재료 구입을 막으면? 너희 식구들…… 그러니까, 얼굴 통통한 쌍둥이 점소이나 너 같은 애들이 밖으로 나올 때마다 우리가 기다렸다가 두들겨 패면?”

“우,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아!”

“후후후, 귀엽네. 미안하지만 너희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청풍객잔에서도 장흠파 놈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면서? 그런 물렁한 사고방식이 우리한테 통할 것 같아? 우린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끈질기게 너희를 괴롭힐 거야. 결국 너희가 포기할 때까지.”

옥승은 마지막에 ‘결국 너희가 포기할 때까지’는 귓가에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운찬은 너무나 분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악마다. 마귀다.

이렇게 사악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후후후후.”

옥승은 중성적인 웃음을 흘리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결국 진휘연을 우리한테 바치고 스스로 우리 홍화객잔의 보호 아래로 들어오게 될 거야.”

“으으……!”

“그리고 너희 객주에게 전해. 만약에 홍화객잔에 보복을 하러 오거나 우리 옥룡파를 건드리면, 우리가 전력을 다해 너희를 괴롭힐 거라고. 한 사람의 힘으론 모두를 지킬 수 없어. 그걸 명심하라고 해.”

옥승은 마지막으로 운찬의 다리를 걷어차서 쓰러뜨린 뒤, 마치 여인 같은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아, 분이 좀 풀리네. 오늘은 술을 한잔 마셔야겠어. 너희, 오늘 별실을 잡아 놔! 알겠어?”

“예!”

옥승은 덩치 두 사람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바닥에 넘어진 운찬은 주변의 행인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데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이나 일어나지 않았다.

손에서 피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고 신음을 삼켰다.

울분을 억누르고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눈물을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소매로 닦아 냈다.

운찬은 해가 거의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에야 몸을 일으켜서 풍운객잔으로 돌아왔다.

“어라? 강 숙수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진휘연은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운찬을 맞아 주었다.

다만 바지에 묻어 있는 흙이라거나 살짝 붉어져 있는 운찬의 눈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 아뇨. 별거 아니에요. 채소를 고르다 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서…….”

운찬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다행히 진휘연은 잠시 고개만 갸웃했을 뿐, 별로 의심을 하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항상 조심하세요. 강 숙수님은 우리 풍운객잔의 기둥이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이제 저녁 준비를…… 어머, 화 매가 벌써 잠들었네요.”

진휘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잠들어 있는 구양화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열둘.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나이다.

특히 오늘 하루는 꽤나 고되었는지 구양화는 진휘연이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방에 업어다 주어야 겠네요.”

“아, 그럼 제가…….”

“아뇨, 화 매는 여자아이니까요. 방까지는 제가 데려다 줄게요. 화 매도 그렇게 하길 바랄 거예요.”

휘연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렇네요.”

운찬은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진휘연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강 숙수님이 무슨 짓을 할까 봐 의심하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여자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런 게 여자아이들의 특성이잖아요.”

“네, 그렇죠.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네, 정말이에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다정한 진휘연은 혹시 운찬이 상처를 받을까 봐 신경을 써 주었다.

운찬이 괜찮다며 몇번이나 손을 흔들자, 그제야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단번에 구양화를 등에 업었다.

“영―차!”

진휘연은 생각보다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운찬은 진휘연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된 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진휘연에게 그의 복잡한 심사는 들키지 않은 듯했다.

툭―

“어……?”

그러다 문득 진휘연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발에 채이는 것을 발견했다.

새하얀 가죽.

동그란 주머니.

“으헛! 이건?!”

운찬은 뱀을 발견한 나무꾼처럼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어찌 저 모습을 잊을 수 있겠는가.

머릿속의 상념이 싹 날아가면서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저, 휘연 누님! 이거, 아마 그 아가씨 것…….”

운찬은 휘연을 불러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휘연은 운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뇌홍…… 이라고 했던가?’

운찬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집어 들고 멍하니 응시했다.

뇌홍.

푸른색 돌멩이.

오늘 낮에 숲 속에서 보여 주었던 그 강렬한 파괴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운찬의 눈빛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폭발. 파괴력.

즉, 힘이다.

이것만 있으면 운찬에게도 힘이 생긴다.

오늘처럼 옥승에게 당하기만 할 필요도 없고, 객잔식구들에게 일방적으로 폐를 끼칠 일도 없다.

“풍운객잔은 내 집이야. 내가 지켜야 해……. 내가 지켜야 한다고……. 옥승, 홍화객잔이 괴롭히도록 놔둘 수는 없어.”

운찬은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끝까지 자신을 받아 준 장기린.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자신을 대해 주는 객잔 식구들.

잃을 수 없다.

절대로, 그들을 잃을 수는 없다.

‘잠깐, 아까 뭐라고 그랬지? 옥승이 별실을 잡아 놓으라고 하지 않았나?’

운찬은 마지막에 옥승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호호호, 아, 분이 좀 풀리네. 오늘은 술을 한잔 마셔야겠어. 너희, 오늘 별실을 잡아 놔! 알겠어?”

‘그래, 그거야.’

손에 들려 있는 뇌홍.

풍운객잔을 위협하는 옥승.

그 둘을 연관시키자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탁월한 작전이 떠올랐다.

운찬은 청월루의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 홍화객잔에는 자주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다.

홍화객잔은 숙수의 솜씨가 없어서 요리가 별로 맛있지 않았고, 가끔 특실에 묵는 손님은 그런 요리에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사 총관은 종종 평소에 친분이 있던 청월루 대숙수에게 몰래 요리를 주문했던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대숙수는 매번 두둑한 돈을 받아 챙겼다.

상당한 비리이지만, 그 덕분에 운찬은 홍화객잔의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별실은 청월루의 구석 담장 바로 옆에 만들어져 있어. 거기엔 개구멍이 있고……. 가능해! 분명히 가능해!’

운찬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되뇌며 여러 가지 불안감을 강한 집념으로 바꿔 놓았다.

옥승만 없다면.

마귀 같은 옥승만 없어진다면, 풍운객잔은 지금처럼 안전할 수 있다.

풍운객잔은 스스로 지킨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놈들이 해를 끼치도록 놔두지는 않겠다.

“꼭, 해내겠어.”

강한 집념으로 빛나는 눈.

운찬은 하얀 주머니를 품속에 조심스레 집어넣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저녁 시간.

객잔의 영업을 끝내고 때를 노려야 했다.

☆ ☆ ☆

청풍객잔의 주인, 방태풍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마(魔)가 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장흠파는 괴멸됐고, 초청승부 이후 항주 지부대인인 문표는 청풍객잔에 발길을 뚝 끊었다.

명제국 최고 권력자가 없으니 다른 고위 관료들도 방문이 뜸해졌다.

그뿐인가.

청풍객잔이 초청승부에서 풍운객잔에게 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평판이 이만저만 떨어진 게 아닌 것이다.

‘더럽게 운 좋은 놈들……! 어떻게 그날, 하필 그분이……!’

방태풍은 생각할수록 이가 갈렸다.

그날, 황제를 배알했을 때의 전율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어떻게 초청승부에 황제가 등장할 수 있는가. 그것도 슬며시 풍운객잔의 편을 들면서.

“장 객주, 그날은 운이 좋았지만…… 킁,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방태풍은 새하얀 천으로 목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청풍객잔이 개관한 뒤로 유례없는 대위기.

하지만 방태풍은 그에 굴하지 않았다.

맨손에서 시작해 금선로의 오대객잔으로 만들어 낸 그였다.

지금껏 위기와 역경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전부 다 뛰어난 수완으로 해결해 왔다.

이번에도 이 사태를 해결할 만한 묘안이 있었다.

머리에서 번뜩인, 그야말로 천재적인 작전.

그랬기에 위험도 무릅쓰고 적진이나 다름없는 ‘홍화객잔’에 온 것이다.

‘큭, 갑자기 연락해서 많이 놀랐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늦는 것 아냐? 이 몸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이놈들.’

방태풍은 문득 울화가 치밀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밖에 누구 있어!”

“예, 무슨 일이십니까?”

방태풍이 소리를 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얼굴이 말끔한 사내가 대답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사 총관이랑 옥승한테 내 얘기를 전한 것 맞아?”

사내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사정했다.

“예, 물론 전했습죠.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 총관님은 지금 최상층의 귀빈이 오셔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하셨고, 옥승 대장님은 외부에 나가 계시다가 지금 들어오는 길이시랍니다.”

“에잉,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마 반 각 정도만 기다리시면…….”

“쯧, 연락 안 하고 온 건 나니까 할 수 없지. 근데 왜 이렇게 더워? 이 방은 원래 이런 거야?”

방태풍은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가 즐겨 입는 흰색의 비단 문사옷은 이미 그가 흘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별실은 통풍이 잘되는 곳이라 그리 덥지 않습니다만…….”

“더워! 덥다니까!”

“예에, 그럼 시원한 음료라도 올릴까요?”

“그래! 그렇게 해!”

말끔한 사내는 웃는 낯 그대로 뒷걸음질쳐서 물러났다.

방태풍은 그 모습 또한 못 마땅해서 혀를 찼다.

“에잉, 능글맞기는. 내가 부탁하러 온 것만 아니었어도……. 쯧.”

고의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홍화객잔의 간부를 만나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할 듯했다.

방태풍은 잠시 후 사내가 가져다준 시원한 화채를 먹으며 불만스럽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현재 시각, 술시(戌時).

어느새 창밖엔 환한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 ☆ ☆

“뭐? 청풍객잔의 주인이 찾아왔다고? 그 돼지가?”

“예. 지금 별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굴이 말끔한 사내의 보고에 옥승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어?! 왜 하필 또 별실에 들어갔어? 분명히 땀을 뻘뻘 흘려서 바닥이 흥건히 젖을 텐데! 아아, 오늘 별실에서 좀 즐기려고 했더니, 기분 다 망치네.”

“그게…… 남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는 만남인지라 별실로 안내하라는 사 총관님의 명령이 있으셨습니다.”

“하여간 사 총관, 이 아저씨는……!”

옥승은 표독스런 얼굴로 혀를 찼다.

“그래서? 그 돼지는 갑자기 왜 왔대?”

“저기, 이유는 사 총관님이나 옥승 대장님을 직접 만나야 말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그래?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옥승은 찝찝해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항주 암흑가에서 옥승은 굳이 따지자면 무투(武鬪)파라기보다는 지장(智將)파였다.

무작정 때려부수는 게 아니라 전체 흐름을 읽고 머리를 쓰는 종류인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방태풍이 이곳에 찾아와서 좋을 것이 없었다.

청풍객잔은 지금 용골이 부서져서 물에 점점 가라앉는 침몰선이다.

옆에서 다른 배가 슬쩍 밀기만 해도 곧바로 뒤집어질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이다.

‘그 돼지가 잔머리 하나는 끝내 주는데…… 뭔가 이상한 짓을 계획하는 건 아니겠지? 하긴,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지금 같은 상황에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을까? 잘못하면 우리한테 약점이나 잡혀서 물어뜯길 텐데.’

옥승은 잠시 ‘가지 말아 버릴까?’ 고민하며 망설였으나, 결국 그의 마음속 호기심이 승리하고 말았다.

‘그래, 어쨌거나 이야기나 한 번 들어 보자.’

옥승은 들고 있던 철섭선을 쫙! 펼치며 시종에게 명했다.

“그럼 안내해. 한 번 만나 볼 테니까.”

“예, 대장님.”

옥승은 본관에서 빠져나와 뒤뜰의 통로를 통해 별실이 있는 건물에 도달했다.

하늘이 새카맣고 달은 동그란 보름날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찌르륵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여름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 어디선가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져서 말이야.”

옥승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습니까? 전 잘 모르겠는데요?”

“으음…….”

“옥승 대장님을 사모하는 사내들이 최근에 무척이나 많아졌습니다. 그런 자들 중에 몇몇은 몰래 대장님의 뒤를 쫓으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합니다.”

옥승은 짐짓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뜻을 보였으나, 입과 눈매만큼은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래? 흐응, 하여간 사내들이란.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쫓아내 버려.”

“예, 대장님.”

“자, 그럼 저 방 안에 그 돼지가 있다는 거지? 어디 한번…… 어? 저게 뭐야?”

두 사람은 이제 별실의 안으로 들어와 복도에 도착해 있었다.

복도의 길이는 삼 장, 너비는 일 장이었다.

복도의 끝에는 방태풍이 기다리고 있을 별실의 방문이 닫혀 있었는데, 그중 옥승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방문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파란색 돌멩이였다.

“신기한 색깔이네……?”

돌멩이는 하늘빛처럼 새파랗고 영롱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진흙처럼 탁하기도 했다.

그 묘한 배합이 옥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돌멩이에서 느껴지는 깨끗하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한 이중적인 모습.

위험한 매력.

그 모든 것이 옥승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상하네요? 제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그래? 흔한 돌 같지가 않은데…… 저런 게 어디서 나온 거지?”

“그러게요.”

“흐음, 한 번 가까이서 볼까?”

아직 옥승과 시종은 복도의 초입에 서 있었다.

돌멩이까지의 거리는 이 장 남짓.

옥승은 그 돌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가려고 했는데, 그전에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방태풍의 비대한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

방태풍의 새우처럼 쭉 찢어진 눈이 옥승을 보고 크게 떠졌다.

아마도 옥승의 변화된 모습에 놀란 모양.

그러나 금선로에서 잔뼈가 굵은 능구렁이답게 순식간에 평정을 회복하고 옥승에게 포권을 취해 인사를 했다.

옥승은 탐탁지 않았으나, 어쨌든 함께 포권을 취해 예를 표했다.

“이곳에는 어쩐 일로…….”

“아, 잠시만 기다리시게.”

방태풍은 방문에서 세 걸음 정도를 쿵쿵거리며 물러서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옥승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눈에 들어온 파란색 돌멩이를 줍고 싶었다.

그렇게 돌멩이가 세 발자국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 즈음,

“아, 이게,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 있다!”

방태풍이 비대한 몸을 뒤뚱거리면서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쒜에에에엑―!

“어……?”

복도의 옆에 나 있는 창문 틈새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 ☆ ☆

운찬은 생전 처음으로 야행복(夜行服)이라는 것을 입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새카만 무복, 새카만 신발과 수투, 머리엔 두건을 쓰고 얼굴은 복면으로 가렸다.

운찬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긴장을 참느라 몇 번이나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개구멍 바로 앞에서 야행복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긴장감을 아는가.

만약 홍화객잔 옥룡파의 인물들에게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저승행이라고 생각하니 손이 떨려서 옷고름을 잠그지 못할 지경이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다음에도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수풀 속을 기어가는데, 바닥에 어찌나 장애물이 많은지!

가시가 달린 나무에 옷이 긁히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 엎드려 있자니 거미나 곱등이 같은 벌레들이 코앞을 지나다녔다.

심지어는 손가락 세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손등 위에 올라와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운찬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야만 했다.

‘드디어, 왔다!!’

별실의 복도가 보이는 창문 앞에서 기다리길 일각가량.

운이 좋았던 것인지 마침 본관 쪽에서 걸어오는 옥승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옥승이 그의 시선을 눈치챈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운찬은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두근, 두근.

사냥꾼에게 쫓기는 꿩처럼 머리를 수풀 속에 처박고 숨을 죽이길 잠시.

다행히도 옥승은 금세 경계를 풀고 별실의 복도로 들어왔다.

시종과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여유마저 보였다.

‘좋아, 이제 시작이다. 하나는 미리 안쪽에 넣어 뒀으니까,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저걸 던져서 맞추느냐는 건데…….’

미리 놓아 둔 푸른색 돌멩이는 운찬이 대기하고 있는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운찬의 위치가 창문으로부터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옥승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폭발했을 때 그 여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열 걸음은 떨어져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거, 되게 멀어 보이는데…….’

아는 사람은 안다.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돌멩이로 돌멩이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더군다나 실패하면 곧바로 죽음이다.

긴장감에 손이 떨려서 도저히 돌멩이를 맞출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떡하면 좋지? 아, 그래! 돌멩이를 꼭 하나만 던져야 하는 건 아니잖아? 두 개를 던지면 안 될까?’

위기가 왔을 때 사람의 머리는 더욱 민활하게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하나를 던져서 맞추기 힘들면 두 개를 던지면 된다.

두 개를 한꺼번에 던져 넣으면 최소한 셋 중에 둘은 서로 부딪쳐서 폭발을 만들어 내지 않겠는가.

‘아예, 그냥 세 개를 한꺼번에 던져 버릴까? 아냐, 그러다가는 일이 커질 수도 있어. 근데 이거, 하나에 얼마만큼의 힘이 있지? 그때 자그마한 돌멩이 두 개가 아름드리나무를 박살 냈는데…….’

지금 복도에 놔 둔 뇌홍 조각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것중에 가장 큰 조각이었다.

목표는 큰 게 좋다는 생각에 보통 뇌홍 조각보다 두 배나 큰 조각을 세워 둔 것이다.

거기다가 평균보다 큰 두 개의 조각을 한꺼번에 던진다.

그래서 세 개의 조각이 한꺼번에 폭발하면……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가지는 것일까?

운찬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에이, 몰라! 모른다고! 아무튼 옥승, 저 녀석을 혼내 주기엔 충분할 거야. 작은 것엔 신경 쓰지 말자. 나는 풍운객잔을 지켜야 해. 이 강운찬이! 저 녀석을 쓰러뜨리고 풍운객잔을 지켜 내는 거야!’

하나에 집중하면 그 주변의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운찬은 지금 첫 살인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운찬은 이게 그렇게 큰일이라는 의식조차 없었다.

운찬은 조그마한 창으로 복도를 엿보며 때를 기다렸다.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하늘이 돕는 것처럼 옥승이 복도에 놓인 돌멩이에 관심을 가졌다.

중간에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와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대화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걸음만, 한 걸음만 더……!’

운찬의 눈동자가 떨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푸른색 돌멩이뿐.

극도의 긴장감에 손이 흔들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려고 했으나, 신기하게도 장기린이 가르쳐 준 ‘숨쉬는 법’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기린이 가르쳐 준 ‘걷는 법’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손가락 끝, 솜털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근육이 이완되었다.

운찬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지금 운찬의 주변에 있는 수풀들은 운찬의 몸에서 생겨난 기(氣)에 밀려서 한 치 정도 물러난 상태였다.

수련한 무공(武功)이 실제에 드러나는 경지.

검(劍)으로 따지자면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였다.

운찬은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 두 개의 뇌홍 조각을 끼워 넣고 팔을 최대한 뒤로 쭉 뺐다.

상체는 비스듬하게 세우고, 양 다리는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두 발로 땅을 튼튼하게 디뎠다.

왼쪽 손은 손가락 두 개를 모아 던져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의식하지 못했으나, 오후에 구양화가 돌멩이를 던졌을 때 보여 준 자세를 운찬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운찬의 눈이 극도의 집중력으로 번쩍거리는 빛을 토해 냈다.

그때, 옥승이 한 걸음을 더 돌멩이 쪽으로 다가갔다.

‘지금! 던진다!’

운찬은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운찬의 몸은 행동을 끝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쒜에에에엑―!

바람이 찢어지는 파공음.

두 개의 돌멩이가 운찬이 노린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갔다.

동시에 날아가, 동시에 도착했다.

미리 세워 둔 돌멩이를 맞추며 작은 불꽃을 튕겨 냈다.

그리고 그것은…….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키며 홍화객잔 별실을 무너뜨렸다.

☆ ☆ ☆

방태풍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품속에서 오대객주 증명패(證明牌)를 꺼내려는 것뿐이었다.

항주 금선로에는 암무적인 규율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이제는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오대객잔끼리의 싸움을 금하는 금선지약(金仙之約)이고.

다른 하나는 오대객잔의 객주로서 삼 년에 한 번 있는 금선로의 ‘초거대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오대객주 증명패다.

오늘 방태풍은 그것을 걸고 홍화객잔과 거래를 할 생각이었다.

증명패는 명제국 고위층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로 통했다.

특히 삼 년 주기가 거의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같은 경우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그런 것을 걸게 된다면 홍화객잔의 입장에선 어떤 요구라도―그게 아무리 풍운객잔을 통째로 넘기라는 요구라도―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방태풍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방태풍은 속으로 절규했다.

그가 품속에서 증명패를 꺼내 드는 순간,

공교롭게도.

참으로 공교롭게도 그 순간 창밖에서 뭔가가 날아와 옥승과 그 사이의 공간을 폭파시켰다.

방태풍이 미리 세 걸음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마차에 치인 개구리처럼 온몸이 박살 나 있을 것이었다.

지금의 방태풍은 뒤로 데굴데굴 굴러가 별실의 구석에 처박힌 상태였다.

다행히 앞에 있던 문짝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한 덕분에 외상은 없었다.

다만 폭음이 너무 컸던 탓에 ‘위이잉―’ 하는 이명(耳鳴)이 들리고 얼굴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한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 안 돼…….”

무슨 일이, 어째서,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방태풍은 지금의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방태풍은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봤다.

참혹하게 터져 나간 복도.

바닥에선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기둥 세 개가 부러진 탓에 별실 전체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위험천만한 현장.

그곳에서 온몸의 절반이 새카맣게 탄 채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옥승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처절한 절규.

그 안에 담긴 고통이 듣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듯한 비명이었다.

그 옆에서 시종이나 하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옥승을 부축한 채 어떻게든 그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물론 하인도 멀쩡하진 않았다.

파편에 맞은 것인지 이마가 길게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윽……!”

방태풍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그 하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스며들어 붉어진 눈.

경계, 탐색, 그리고 적의가 담긴 눈이 방태풍을 노려보았다.

‘아, 안돼!’

그 순간, 방태풍은 어떤 ‘결과’를 예감했다.

“안 돼! 아니야! 아니라고! 그게 아니야!”

방태풍의 격한 부정과는 달리 상황은 급박하게 치닫고 있었다.

폭음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홍화객잔의 사람들이 옥승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앞다퉈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하인은 손가락으로 멀쩡하게 서 있는 방태풍을 가리키며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청풍객잔이다! 청풍객잔에서 습격했다! 옥승 대장님이 위독하다!”

“뭣……!”

그 한마디가 주변 모두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감히……!”

“우리 대장님을……!”

“습격이다! 습격이야! 청풍객잔에서 홍화객잔을 습격했다!”

“옥룡파를 불러! 저놈을 잡아!”

방태풍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대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이 만남은 방태풍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

하필 그가 품에서 증명패를 꺼내려는 순간, 복도가 폭발했다.

그리고 폭발 후에 방태풍은 멀쩡한 데 반해, 옥승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누가 봐도 상황은 명백하지 않은가.

“제, 젠장, 빌어먹을…….”

방태풍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곧바로 딱딱한 석벽에 등이 막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저놈이 범인이야!”

“잡아!”

살기를 띤 옥룡파 사내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아냐! 아니라고!”

방태풍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어 부정하면서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도 청풍객잔의 객주인데 곧바로 죽이진 않겠지? 일단 사 총관과 만나면 잘 이야기해 보자. 다행히 아직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절대 내가 한 짓이 아니라 하고, 오대객주 증명패를 넘기면서 교섭해 보는 거야. 그럼 이 상황을 잘 무마시킬 수 있어.’

방태풍은 그동안 금선로에서 굴러먹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순식간에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봐, 내가 아냐! 빨리 주변이나 살펴! 분명히 이 사고를 일으킨 놈이 주변에 있다고.”

“닥쳐!”

“어디서 거짓말을! 우리가 그리 우습게 보이나?”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방태풍은 그럴수록 오히려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이봐, 난 청풍객잔 객주 방태풍이야. 내가 왜 이런 일을 일으키겠어! 진짜 범인은 다른 데에 있다니까?”

“닥치라고 했지!”

퍽! 하는 충격과 함께 방태풍은 격하게 아파오는 옆구리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잔뜩 흥분하고 분개한 사내들은 방태풍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좋아, 이걸로 됐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방태풍이 노린 것.

그는 분명히 무죄를 주장했고, 이치에 합당한 말을 했으나 억울하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면 나중에 교섭할 때 훨씬 더 부드럽게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흐흐, 이제 순순히 잡혀서 앞날을 도모하기만 하면 돼.’

방태풍은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에게 붙잡혀 순순히 일어섰다.

그런데 하늘은 항상 가장 필요한 순간에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갑자기 쾅! 하고 별실의 옆벽이 박살 나며 대머리 사내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뭐, 뭐야?”

“독두파?! 이놈들……! 크윽?!”

푸화악―!

방태풍의 몸을 결박하고 있던 옥룡파의 두 사내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방태풍의 두 눈이 경악으로 동그래졌다.

평생에 이보다 더 눈을 크게 뜬 적이 없을 정도였다.

독두파의 사내들은 묵직한 박도(朴刀)로 옥룡파의 사내들을 볏단 베듯이 베어 버린 채 용감무쌍하게 외치고 있었다.

“객주님을 지켜라!”

“홍화객잔 놈들을 쓰러뜨려!”

“객주님을 호위해서 청풍객잔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본 홍화객잔의 옥룡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직적인 습격이다!”

“청풍객잔! 독두파가 쳐들어왔다아―!”

“벌써 몇 명이 당했어! 죽여! 습격자들을 죽여 버려라아―!”

뎅뎅뎅―!

홍화객잔에서 최상급 경계령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느새 우르르 몰려든 옥룡파의 사내들과 독두파의 사내들이 피 튀기는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수라장.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방태풍은 입을 쩍 벌렸다.

“으, 어어…… 으어어…….”

방태풍은 건장한 독두파 사내들에 의해 별실 밖으로 호송되는 내내 혼이 빠져 버린 듯한 신음을 흘렸다.

“이건 아냐, 이건 아니라고…….”

그의 중얼거림은 주변의 소란 속에 허무하게 흩어졌다.

우르르릉―!

콰과광!

“으아악―! 건물이 무너진다!”

“대피해! 일단 빠져나와!”

“우아아―! 정원에 불이 붙었다―!”

“번진다! 불이 번지고 있어! 빨리 물을 가져와!”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한 별실이 참혹하게 무너져 내렸다.

시뻘건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어두웠던 밤하늘을 뜨겁게 밝혔다.

오해가 오해를 부르고.

우연에 우연이 겹친다.

점점 커진 일은 이제 손쓸 수 없는 지경에 달하고 있었다.

‘인과응보인가? 인과응보인 거야?! 이건 내가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대가인 거야?!’

방태풍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건…… 이건……!”

그 와중에 어느새 홍화객잔의 담벼락 너머까지 끌려온 방태풍.

그는 혼을 담아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이건 아니라고오오―!”

☆ ☆ ☆

한편,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운찬은.

“으, 으아……. 무, 무슨 위력이……?!”

얼얼한 귀를 틀어막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주저앉아 있었다.

운찬은 몰랐다.

고작 두 배 정도 크다고 생각했던 뇌홍의 조각이 부피로 따지면 두 배의 두 배의 두 배. 즉, 여덟 배의 위력이 나올 만큼 어마어마한 물건이라는 것을.

거기다가 두 개의 뇌홍 조각을 더 던졌으니, 당연히 건물도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파괴력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도, 도망가자. 목적은 달성했어.”

운찬은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개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들었다.

물론 그 뒤에 일어난 피범벅의 거친 싸움과, 별실이 무너지고 화재가 일어나는 홍화객잔의 참상은 보지도 못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던 운찬의 하루.

그게 금선전쟁(金仙戰爭)이라 불리는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 되리라는 것은…….

운찬 자신도 몰랐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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