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58화 (116/686)

第五十五章 ― 선상화해(船上和解)

소면과 함께 홍소육을 주문했던 마지막 손님이 떠나간 뒤, 떠들썩했던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한적한 객잔 안.

장기린은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문 그의 주변으론 자연스레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칠과 아팔은 힐끗힐끗 그런 장기린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바닥과 탁자를 쓸고 닦았고, 휴는 운찬의 주방 뒷정리를 도우면서도 계속해서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내밀고 장기린의 기색을 살폈다.

지금 객잔에 남아 있는 식구들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장기린이었다.

그는 오늘 하루 만에 극적인 상황을 몇 번이나 맞이했다.

특히 가장 큰 ‘사건’이 방금 벌어진 상황이니만큼, 남아 있는 객잔 식구들 모두가 장기린이 여기서 어떻게 행동할지 너무나 떨리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봐요, 객주님.”

그런 무의미한 침묵을 비웃듯이 앳되면서 카랑카랑한,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아아, 못 봐주겠네, 정말. 이래서야 되겠어요?”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몇 년 안에 대단한 미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아름다운 소녀가 눈살을 팍 찌푸린 채 마음대로 장기린의 옆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건 말려 주길 바랐던 신호잖아요. 휘연 언니랑 서로 같이 지낸 기간이 얼만데 그걸 못 알아듣고 저렇게 마음고생을 시켜요?”

“…….”

“아니, 혹시 알면서도 그냥 보낸 거예요? 그럼 질이 더 나쁜데!”

휘연은 조금 전, 그녀를 데리러 온 남궁혁을 따라 뱃놀이를 갔다. 평소와 달리 화려한 비단옷과 노리개로 자신을 꾸민 그녀의 모습은 데리러 왔던 남궁혁이 입을 쩍 벌리고 굳어 버릴 만큼 아름다웠다.

애초에 꾸미지 않아도 빛났던 외모였다.

거기에 금관을 씌우니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솔직히 그녀가 다 꾸미고 나왔을 때는 장기린도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휘연은 준비를 끝내고 나온 뒤 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괜히 화를 냈다.

남궁혁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린에게 오늘 남궁혁과 하기로 한 일들을 자랑하듯이 말하며 재밌을 거라는 둥, 장기린은 혼자서 객잔에서 뭘 할 거냐는 등의 이야기들을 한참이나 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남궁혁이 화를 참는 게 한계에 부딪친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빨리 가자고 종용할 때까지 계속해서 객잔 안에서 미적거렸다.

그녀는 마침내 밖으로 나서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를 바라는 절박한 눈빛으로.

“후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답을 쓰지 못하다니.

겁쟁이라고 해야 할까, 멍청이라고 해야 할까.

장기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밤하늘이 꼭 그의 마음속 같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진창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무기력했다.

“으윽……!”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구양화가 쿵쾅거리면서 다가오더니 장기린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어……?”

아직 유교주의가 남아 있는 명 제국의 풍속상 여인이 사내의 손목을 잡는 것은 금지된 행동.

물론 구양화의 나이 정도면 여인이라고 해야 할지 소녀라고 해야 할지 미묘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구양화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도저히 못 봐주겠네!”

“뭐를……?”

“전부 다!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휘연 언니가 너무 불쌍해서 도저히 두고 보지 못하겠어요!”

구양화가 성큼성큼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장기린은 저항할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그저 구양화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갔다.

두 사람은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뒤뜰로 나가 서로를 마주 봤다.

구양화의 키가 그의 허리를 조금 넘는 정도이니 마주 본다기보단 장기린이 일방적으로 내려다보는 형태였으나, 기세에서만큼은 오히려 구양화가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구양화는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뭘?”

“휘연 언니를 외면하는 거요!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죠?”

“…….”

“도대체 왜?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객주님도 휘연 언니를 아끼고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스윽―

장기린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륵 땅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자 구름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보름달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눈앞의 소녀에게 아무런 말이나 털어놓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야.”

“어……?”

“난 아주 위험한 지역에서, 매일같이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서 살고 있었고, 그래도 그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아 점점 직위가 상승하고 있었지.”

“아, 응…….”

구양화는 그게 장기린의 과거 이야기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는 조용히 경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특별한 휴가를 받아서 근처의 도시에 들렀는데…… 거기서 전쟁을 피해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한 여인이 탐욕스런 상인들에게 붙잡혀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았어.”

이름은 미향.

나이는 당시 열여덟이었던 장기린보다 한 살이 많았고, 겉으로는 당차면서도 속으로는 여성스럽고 섬세한 여인이었다.

그때의 모습, 상인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따지면서도 미세하게 손끝을 떨고 있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여린 속내를 감추고 힘내서 싸우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장기린은 사랑에 빠져 버렸다.

“평소엔 그런 일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그날은 어째선지 내가 스스로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여인을 구해 냈다. 그리고 갈 곳이 없던 여인은 내 살림을 봐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야.”

“그게…… 객주님의 첫사랑?”

“그런 셈이지.”

“그래서? 그 사랑은 어떻게 끝났는데요?”

“상대가 죽었어.”

장기린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으음…….”

구양화는 잠시 시선이 흔들리더니, 이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고 납득한 분위기였다.

“내 품 안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반 각동안 살아 있었다. 말은 한마디도 못했지만…… 온몸이 피에 젖은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상처 입은 짐승처럼 부들부들 떨리던 손이 뺨에 닿았던 것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의 향기.

그때의 감촉.

그리고 온 세상의 흑백이 반전하는 듯한 그때의 격렬한 감정까지도, 장기린은 바로 일각 전에 일어났던 일인 양 그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

구양화는 그런 장기린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입을 꾹 다문 채 장기린이 말을 끝내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그를 안쓰러워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았다.

장기린의 입장에선 그런 구양화의 태도가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어린아이―어린아이 같지는 않지만―의 어설픈 잣대로 동정이라도 했다간 오히려 화가 났을 것이다.

“그때는 절망할 틈도 없었지. 아니, 그때의 나는 절망할 줄도 몰랐어.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은 흔히 있던 일이다. 감정에 휩쓸려 우물쭈물하느니 칼을 잡고 일어나 복수하는 게 합리적이다. 복수는 반드시 한다. 적은 모조리 말살한다. 지금까지도 동료가 죽는 건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니까……. 그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리면서 배후에 있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서 죽였어.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그러다가 마지막 배후를 찾아서 알아낸 게 뭔지 아나?”

구양화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였어. 우연히 휩쓸렸다거나 운이 나빴다거나 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 정확히 그녀를 노려서 공격했던 거지.”

“…….”

“그제야 절망이란 걸 느꼈어. 그녀는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내가 상인들에게서 구해 낸 뒤 그녀를 붙잡지 않고 보냈더라면? 그럼 어디선가 좋은 남자라도 만나 지금도 행복하게 살아 있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충분히 좋은 여자였으니까. 어디서 뭘 하더라도 평범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왜 하필 나 같은 놈을 만나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거지?”

구양화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기린도 그녀의 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누구에게든 그의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때의 절망과 혼란을 걷어 내는 데 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 그 당시엔 나름대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그때의 난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였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어.”

실제로 장기린이 ‘붉은 악귀’라는 별호를 얻은 것이 바로 그때.

지금보다 훨씬 못 미치는 낮은 실력으로,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빠져나올 길 없는 사지(死地)들만 찾아다니며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던 것이다.

“난 그때 결심한 거다, 앞으로 평범한 여인과 사랑따윈 하지 않겠다고. 내 곁에 있으면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좋은 여자가 불행해지니까. 그때와 같은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난 여인과 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 거야.”

장기린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구양화를 마주 바라봤다.

이야기는 끝났다.

이것이 그가 휘연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까닭이다.

“그래, 이게 이유다.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자신이 내민 말에 더욱 확신을 가지려는 그때, 장기린은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어……?”

장기린은 멍하니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 구양화를 올려다봤다.

장기린은 땅바닥에 앉은 상태.

구양화는 제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상태.

소녀 이상, 여인 미만의 그녀는 빨갛게 부어 버린 오른쪽 손바닥을 반대쪽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도저히 못 봐주겠네!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뭐?”

장기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린 건 그녀인데, 어째서 그녀가 더 상처 입은 것처럼 슬퍼하고 있는가?

“결국 겁쟁이일 뿐이잖아! 과거에 크게 상처를 입었으니 겁이 나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겠다는 것뿐이잖아!”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간단한 이야기야!”

구양화는 숨을 씩씩거리면서 곧장 장기린의 말문을 막았다.

“말은 언니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겁이 나서 손을 뻗지 않겠다는 것뿐이야! 이기적이야! 잔인해! 언니는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언니는 저렇게나 슬퍼하고 있는데!”

“너……!”

“도대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뭔데? 고작해야 객잔 주인 아냐? 예전엔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도 당신은 평범한 삶을 얕보고 있어! 보통 사람들도 매일 죽을 위기 같은 걸 밥 먹듯이 넘기고 있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위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

허리에 척하니 양손을 얹고 소리치는 구양화에게서는 나이를 초월한 박력이 느껴졌다.

귀한 집안의 아가씨로서 갖는 품위와 위압감, 그리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 논리적으로 단련된 화술이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직접 안 겪어 봐서 모르지만 말이야, 백 오라버니나 주변의 하녀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보통 사람들은 그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한 고충이 굉장히 힘들다고 했어. 특히 부인이나 애가 있다고 생각해 봐. 그저 주어진 대로 고분고분 일하며 살다 보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드니까 가족이 굶어 죽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거야. 내가 굶어 죽지 않을 다른 방법은 없냐고 했더니, 다른 방법은 없다면서 이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말했어.”

“아…….”

“알아듣겠어?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싸움이라는 게 있는 거라고. 특히 예쁜 여자는 더해. 돈 많고 권력있는 자들의 눈에 띄면 정조를 빼앗기는 거라고? 그런 사람들 첩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여자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그건 여인 입장에선 죽을 만큼 싫은 일일걸?”

구양화는 씩씩거리던 숨을 조금 가다듬은 뒤, 차분하고 냉철하게 말했다.

“평범한 삶을 얕보지 마. 아무 걱정 없이 무탈하게 사는 건 꿈일 뿐이야. 어떤 삶이든 그 나름의 어려움은 있어. 그때 그 여자를 보내 줬더라면 행복하게 살았을 거다? 글쎄, 외모가 뛰어나서 상인들에게 붙잡혔다는 얘기를 생각해 보면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그 사람은 끝까지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 가?”

“그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당신을 원망한 적이 있어?”

“……아니.”

“그것 봐. 그 여자는 행복했다니까? 불행했다고 생각하는 건 당신뿐이야!”

단호하게 못을 박는 구양화.

그녀가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도, 어느새 그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장기린은 구양화의 말에 깊은 감화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좀 더 행복했을 상상을 해 본다면…… 그래, 당신이 그 사람을 지켜서 오래오래 함께하는 것 정도?”

“……!!”

장기린은 그 말에 전신이 번개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 ☆ ☆

“하하! 역시 항주의 야경은 명불허전이군. 지금까지 북경이나 남경의 축제도 봤지만, 역시 항주는 항주만의 특색이 있는 듯하오.”

“……네, 그렇네요.”

“저기 저쪽에 보이는 전각은 올라가면 서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서조각(西眺閣)이라 불린다지. 가 본 적이 있소?”

“아뇨.”

“흐음, 그럼 한 번 가 보는게…… 아, 이런. 사람이 너무 많군. 난 사람이 많은 건 질색이라서. 그럼 이제 슬슬 뱃놀이에 가는 건 어떻겠소?”

“…….”

“소저?”

“아, 네. 왜 그러시죠?”

“…….”

“제가 뭔가 실수라도?”

“아니, 아니오. 뭐, 상관없소. 원래 계획이었던 뱃놀이나 할까 해서 그랬소.”

“……네, 알겠어요.”

반발하는 것도 없이, 의견을 내는 것도 없이, 휘연은 그저 남궁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건 여인으로서 조신한 몸가짐일지도 모르지만, 남궁혁은 그녀의 그런 태도가 매우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휘연은 휘연이 아니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전혀 그녀답지 않았다.

그녀는 이 순간을 즐기지 않고 있다.

무엇을 말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 산속의 외침처럼, 그녀의 마음속이 그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꽉 차서 다른 것은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함께 있는 남궁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주변과 뒤를 흘끔거릴 뿐이었다.

그 사실이 남궁혁에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그가 이렇게나 무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승부욕을 자극하는군.”

“네? 뭐라고 하셨죠?”

“아니오. 별거 아니었소. 그보다 미리 준비해 둔 배는 마음에 드시오?”

“네. 비싸…… 아니, 좋아 보이는 배네요.”

나루터에 남궁혁이 미리 대절해 둔 배는 열 명이 넘게 타도 끄떡없을 것처럼 커다란 화선이었다. 돛과 선수에 장식된 화려한 금장식은 눈이 부시도록 예뻤지만, 기녀들과 악사들을 대동해서 부잣집 자제들이 난잡한 연회를 열 법한 그런 모양새라서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진휘연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굳이 그런 내심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고 순순히 남궁혁이 이끄는 대로 배와 이어진 난간에 발을 얹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섰다.

“뱃놀이…….”

이건 그저 뱃놀이.

하지만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을 가르는 하나의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진휘연은 복잡한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리는 연등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나, 그녀가 찾는 얼굴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저?”

한 걸음 앞에서 남궁혁이 그녀를 불렀다.

혹시 발을 내딛기가 불편하다면 잡아 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객주님은 날 붙잡지도 않고, 따라오지도 않고.’

생각할수록 야속했다.

이쪽의 마음을 다 알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슬펐다.

“제가 알아서 갈게요.”

휘연은 남궁혁의 도움을 거절한 뒤 스스로 뱃전 위로 올라섰다.

휘이잉―

배 위는 땅 위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올라선 높이가 조금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온도나 주변에서 비춰지는 광경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멋지네. 객주님과 왔으면 좋았을 텐데.’

좋은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좋은 음식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동시에 휘연은 지금 이 행동이 큰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홧김에 말을 내뱉고, 결국 그 실수를 고칠 만한 용기를 어느 한쪽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이런 상황까지 왔지만, 결국은 그녀가 조금만 더 양보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저기, 역시 저는…….”

돌아가자.

따뜻하고 속정이 깊고, 무엇보다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무뚝뚝한 얼굴의 객주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자.

그녀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남궁혁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에……?”

놀란 그녀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런 그녀를 뜨거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남궁혁은 입을 열었다.

“소저, 첫눈에 반했고, 지금도 당신이 너무나 좋소.”

“아니, 저기…….”

“제 첩이 되어 주시오.”

“그러니까…… 네?”

휘연은 귀를 의심했다.

순간적으로 그녀에 대한 구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혼이란 말도 맞을 것이다. 다만 그녀에게 청한 위치가 예상을 벗어났을 뿐이다.

“뭐가…… 되어 달라구요?”

휘연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첩이 되어 달라고 하였소.”

“첩…….”

“처가 되어 달라고 하지 못한 점은 안타까우나, 소저는 집안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무림에서 이름이 난 여고수도 아니지 않소?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안주인 자리는 역부족이오. 아니, 소저를 위해서도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별궁에서 한적하게 살아가면 그만인 첩이 되는 것이 더욱 행복할 것이오.”

말은 청산유수.

하지만 휘연에게 있어서는 동네 개가 짖는 것보다도 설득력이 없었다.

“돌아가겠어요.”

휘연은 차갑게 남궁혁의 손을 떨쳐 낸 뒤, 곧바로 등을 돌렸다.

애초에 남궁혁에게 마음이 기운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생기려고 하던 실낱같은 연민마저 남궁혁이 방금 전에 스스로 끊어 버린 것이다.

첩이라니…….

첩이라니!

남궁세가라는 거대한 가문과 지금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맞는 말일지 몰라도, 진휘연은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오늘은 그저 뱃놀이를 한 번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설마 그 자리에서 첩이 되어 달라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사건이었다.

“잠깐! 소저! 내가 혹시 실수라도 했소?”

“……실수라도 했냐구요? 아니, 됐어요. 이젠 상관없으니까요.”

“기다리시오!”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궁혁의 목소리에 격한 감정이 담겼다.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하는군. 아무리 마음에 들었던 여인이라고 한들, 무례를 참을 수 있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오.”

“무례? 무례한 건 그쪽이에요.”

“뭐요?”

“뱃놀이를 가자고 해서 와 봤을 뿐이에요. 그런데 연심을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손을 잡질 않나, 게다가 첩이 되어 달라니. 여인에게 있어서 그보다 무례한 일이 더 있나요?”

휘연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

하지만 천둥벌거숭이처럼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온 철부지 도련님에겐 납득이 안 가는 설명이었다. 그의 ‘상식’으론 이 시점은 여자가 좋다며 달려들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순진한 소리를 하는군. 열다섯 소녀도 아니면서. 설마 풋내 나게 연서부터 쓰고 손 한 번 잡으려고 두근거리고 그러길 바라는 건가?”

“그게 뭐 나쁜가요?”

“하? 정말로? 이봐, 소저. 원래 객잔의 침모는 퇴물 기녀들의 자리 아니던가? 그럼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지금 나를 달아오르게 하려고 수라도 쓰는 거요?”

“뭐…… 라구요?”

“자기 위치를 알아야지. 솔직히 객잔 침모에게 이렇게 대하는 건 대단한 건데, 곱게 자란 규중 아가씨도 아니고 말이야.”

숫제 휘연이 잘못한 양, 남궁혁은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다.

휘연은 남궁혁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모욕감.

비참함.

어두운 감정들이 숨이 막히도록 가슴을 꽉 메웠다.

애초에 남궁혁을 따라 나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고집 때문에 그녀를 하찮게 보는 남자에게 모멸 섞인 말을 들을 틈을 주고 말다니.

“당신, 최악이군요. 휴와는 전혀 달라요.”

“뭐……?”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여기에 왔던 것은 실수였네요. 돌아가겠어요.”

그나마 뺨을 한 대 올려붙이지 않은 것만 해도 휘연으로서는 극도의 인내심으로 스스로를 절제한 결과였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을 내뱉고 몸을 돌려 나루터로 이어진 선교에 발을 얹었다. 하지만 휘연이 배에서 내리기 직전, 딱딱하고 강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못 가.”

“아! 잠깐, 이게 무슨…….”

“장 옹!”

남궁혁은 휘연을 뱃전으로 끌어당긴 뒤 나루터와 연결되어 있던 나무 판자를 발로 차서 밀어 버렸다.

그러자 우당탕― 하는 소음과 함께 판자가 나루터 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배에서 내리는 길이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뒤 남궁혁이 곧바로 뱃전을 발로 쾅쾅! 두드리자 화선의 돛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백발의 노인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돛에 손을 댔다.

돛이 바람을 맞은 연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용골과 뱃전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며 선선히 나아가는 배.

나루터로부터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자 휘연은 놀라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세워요! 배를 세우라구요!”

“소용없어. 장 옹은 귀머거리라고. 그리고 정해진 선로를 한 바퀴 돌지 않으면 절대 배를 세우지 않지.”

“그런……!”

남궁혁은 이제 반말을 쓰는데다 난폭한 태도마저 숨기지 않고 있었다.

얼굴을 붉고 눈빛이 매서운데다 어딘가 섬뜩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그녀의 말이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인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휘연은 깜짝 놀라 돛의 아래에 팔짱을 끼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휘연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쳐다보기는커녕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휘연이 발로 바닥을 쿵쿵! 차 봤지만, 잠시 움찔했을 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미리 귀머거리 뱃사공을 준비해 두다니!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군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귀머거리 노인을 뱃사공으로 고용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휘연은 소름이 끼쳤다.

“흥,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서 운우지락을 나눌 생각은 했지.”

“이…… 비열한 색마!”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내 자존심을 긁은 당신이 나쁜 거야.”

남궁혁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흥분해서 씩씩거릴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고, 어깨를 꽉 붙든 손은 그녀를 절대로 놓아 주지 않았다.

“널 내 걸로 만들겠어.”

남궁혁의 얼굴이 휘연에게로 가까워졌다.

☆ ☆ ☆

“가능한 한 오랫동안 함께한다. 그리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지킨다.”

“그래! 그거야!”

구양화는 박수를 치며 긍정했다.

“정말…… 그런가?”

“당연하지! 여인들한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겠어?

“으음…….”

“객주님, 이상하네. 평소엔 그렇게나 자신만만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우유부단해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구양화.

장기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그가 한심한 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되면 자신감이 없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휴우.”

마지막 한숨.

그리고 장기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의에 묻은 흙먼지를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

“결심한 거예요?”

“음, 결심이라고 할까, 결정이라고 할까.”

“둘이 같은 거 아냐?”

“아니, 마음은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 대담한 말에 구양화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헤에, 한 번 결정하면 그런 말도 쉽게 나오는가 봐요?”

“그러게. 신기한 일이군.”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보다는 상쾌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 더 컸다.

감옥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이다.

구양화는 그런 장기린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서두르다니?”

“내가 무림영웅록에서 봤는데 말이야, 꼭 이렇게 구름이 짙고 음습한 날이면 색마들이 날뛰더라고.”

“……뭐?”

“그러니까 말이지, 남궁혁이라는 그 사람…… 망나니라고. 부잣집 도련님이자 제멋대로 하고 살아온 개차반이잖아. 그러니 수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험한 말로 남궁혁을 매도하는 구양화.

도저히 행동이나 하는 말로 봐서는 아직 십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무림영웅록이라니.

장기린은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 가끔 네 나이가 의심스럽다.”

“흥, 난 이미 어른스러운 숙녀라고.”

“…….”

“당장 안 가 봐도 좋겠어? 그 남궁혁이 노리고 있는 거라고? 게다가 밀폐된 배 안, 도망칠 곳이라곤 없는 서호의 한가운데에 갇혀 있는데? 남궁혁은 분명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짐승으로 변해서 휘연 언니를…….”

“그만, 그만! 알겠어. 찾으러 가지.”

사실 장기린도 계속해서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남궁혁은 믿을 수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런 만큼 구양화가 굳이 종용하지 않았어도 곧바로 출발한 생각이었다.

“그럼…….”

“아아, 잘 다녀와요! 언니를 꼭 데려와야 돼!”

장기린은 힘차게 손을 흔드는 구양화를 뒤로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아,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둘이라니까.”

멀어져 가는 장기린의 모습 뒤에서 구양화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객잔에서 한 청년이 장기린을 따라 뛰어갔다.

☆ ☆ ☆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혁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하아?”

남궁혁은 화가 났다기보단 어이가 없어져서 휘연을 바라봤다.

휘연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고 결연한 태도로 그를 거절하고 있었다.

“이것 놔요!”

“놓으면? 물에라도 뛰어들려고?”

“그래요!”

“제정신이 아니군. 밤중에, 그것도 그런 옷을 입고 물에 뛰어들면 수영도 못해. 바로 죽는 거야.”

휘연은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것 역시 그녀의 고집으로 장기린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입었던 옷이다.

“이제 무의미한 짓은 그만하고 얌전히…….”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안길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처음엔 침묵.

그리고 곧 남궁혁은 격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뺨을 맞았던 것에 대한 분노도 지금에서야 솟아올랐다.

“악!”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풀썩 엎어지는 진휘연.

그 때문에 치마가 살짝 올라가며 새하얀 종아리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남궁혁의 눈빛이 더욱 불타올랐다.

“흥, 계집 주제에.”

남궁혁이 마치 먹잇감을 노린 짐승처럼 휘연의 위로 올라탔다.

“놔! 이것 놔!”

“가만히 있어!”

여인 경험이 풍부한 남궁혁답게 능숙한 움직임으로 휘연의 경장을 벗겨 냈다. 휘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그녀의 양손은 남궁혁의 한 손에 붙잡힌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애초에 육체의 힘에서 너무나 큰 격차가 났다.

남궁혁은 그물에 잡힌 새처럼 덧없이 버둥거리는 휘연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휘연은 아름다웠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그를 표독스럽게 쏘아보는 모습은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남성에게 정복욕을 가져다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아플 거야.”

“윽……!”

남궁혁은 휘연의 목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휘연은 고개를 휙 돌리며 남궁혁의 귀를 깨물었다.

“으아악!”

귀라는 곳은 의외로 신경이 몰려 있어서 예민한 곳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고통도 그만큼 배가된다는 뜻.

휘연이 사력을 다해 왼쪽 귓바퀴를 깨물자 남궁혁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퉤!”

남궁혁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자 휘연은 입에 가득 들어온 남궁혁의 피와 살점을 더럽다는 듯이 옆으로 뱉어 냈다.

절대로 남궁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었다.

입가가 새빨갛게 피범벅이 된 채 노려보는 휘연의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남궁혁도 소름이 끼칠 정도.

“으윽, 뭐, 이런 계집이……!”

남궁혁은 너덜너덜한 귓불과 바닥에 흥건한 자신의 피를 보며 질린 듯한 얼굴이 되었다.

휘연도 변했다.

이젠 더 이상 처음에 홍화객잔에 팔려 갈 때처럼 순순히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싸워서라도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남궁혁에게 싸워서 이길 수는 없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항할 것이다.

“이게! 죽고 싶어?”

아무리 윽박질러도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한 당당한 눈빛이 더더욱 성질을 돋웠다.

남궁혁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력을 다해 내려칠 생각으로.

감히 그에게 상처를 입힌 건방진 여자를 찍소리도 못하게 제압할 생각으로 주먹을 내려치려는 그때,

후웅― 후웅― 훙훙―!

“엇……?!”

빙글빙글 회전하며 남궁혁이 반응조차 못할 속도로 날아든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강렬하게 후려쳤다.

“크윽……!”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혁은 팔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나마 순간적으로 진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기에 그 정도였다.

무방비한 상태로 얻어맞았으면 뼈가 부러졌을 법한 강한 충격이었다. 남궁혁은 격통이 느껴지는 어깨를 손으로 꽉 붙든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큭, 이게 무슨……?”

자세히 보니 날아온 것은 나룻배의 노를 반으로 뚝 부러뜨린 조각이었다.

남궁혁은 경악한 얼굴로 그 조각이 날아온 방향을 응시했다.

도대체 누군가?

어떤 투척술을 익혔기에 나름대로 신진 고수라 손꼽히는 그가 눈치조차 못 채게 암습을 가할 수 있었을까?

“어? 어? 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부릅뜨는 남궁혁.

그때, 한 사람의 인영이 어둑한 나루터로부터 비조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무려 오 장이나 떨어진 거리를 한달음에 뛰어넘어 쿵! 하고 뱃전에 내려선 인영.

그 모습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맹수.

거대한 대호가 눈앞에 있는 듯한 위압감과 함께 번뜩이는 눈빛이 그를 노려보았다.

“네놈…….”

강렬한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휘연을 향했다가 다시 남궁혁에게로 돌아왔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힉?”

지옥의 유부에서 올라오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에 남궁혁은 온몸으로 전율했다.

☆ ☆ ☆

“남궁세가의 도련님이 빌린 배?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커험, 못 들었어, 못 들었어. 그런 일이 있었으면 소문이 났겠지. 아무렴.”

장기린은 곧바로 서호의 뱃놀이가 열리는 나루터로 향했으나, 그곳에 있는 뱃사공들로부터는 쓸모있는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남궁혁이 비밀로 하면서 배를 빌린 것인지, 근처 뱃사람들 사이에 전혀 소문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남궁세가의 도련님이라고 말해 봤자, ‘호오!’ 하고 무심한 감탄사만 발할 뿐, 제대로 아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휘연의 인상착의도 말해 보았지만, 뱃사람들은 그야말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이봐, 젊은이. 저기 바로 뒤에 있는 배 보여?”

“저기 배 위에 미리 타고 있는 화려한 복색의 기녀들 보이지? 젊은이가 말한 대로 노란색 비단 경장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최소한 다섯이야.”

“거기에 짝을 이루는 사내들은 다들 좋은 집안 출신의 도련님들이고 말이야.”

즉, 남궁혁과 휘연의 조합은 이 나루터에선 너무나 흔한 구성이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이미 말했잖습니까. 그녀는 기녀가 아닙니다. 옷 만 화려할 뿐, 화장도 잘 안 하고 장신구도 별로 없는…….”

“기녀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그런 한 쌍은 여기에 널리고 널렸어. 게다가 오늘은 연등제이고 말이야. 솔직히 겨우 그 정도 특징으로는 찾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웃은 뱃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술잔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장기린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잃어 버린 채 망연자실해하고 있었다.

‘설마, 뱃놀이를 하지 않은 건가?’

남궁혁이 말한 게 모두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휘연을 꾀어내기 위해 말했을 뿐, 실제로는 뱃놀이를 간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했다.

만약 그때, 무리의 한구석에서 혼자 술병을 홀짝이던 노인이 말을 걸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장기린은 아마 그 길로 전혀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며 헤매야 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도련님이라면 분명 엄청나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테지? 함께 있는 여인도 굉장히 아름다울 테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 두 사람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아까 남쪽 나루에 외부에서 온 배가 한참 동안 서 있더란 말이지. 누굴 기다리던 게 아닐까?”

“예?”

“뱃놀이할 때 주로 쓰는 화선이었어. 둘이 타기엔 꽤 크지만, 뭐, 한쪽이 세가의 도령이라면 크게 신경 쓰일 것도 아니고. 어이, 이봐들. 남쪽 나루의 그 배 봤나?”

노인의 말에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장정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각자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분명 외부의 배가 하나 서 있긴 했지.”

“뱃사공이 굉장히 나이 많은 노인이었는데, 귀가 먹은 것마냥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고.”

“맞아. 나도 몇 번이나 말을 걸었다가 대답이 없어서 그냥 왔어. 누군가 기다리는 것 같던데?”

순식간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자잘한 정보들이 모였다.

장기린은 ‘이거다!’라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노인과 뱃사공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곧바로 남쪽 나루라는 곳을 향해 달렸다.

초조함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던 나이답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째서 아닌 척 허세를 부리며 참고 있었던 걸까.

이렇게나 걱정이 되면서, 애초에 남궁혁이 좋지 않은 녀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면서 왜 고집을 피웠던 것일까.

‘휘연이 상처라도 입게 되면 그건 내 탓이다.’

지켜 주지 못한 탓.

필요없는 고집을 피운 탓.

“저건……!”

남쪽 나루에 도착한 장기린은 뱃전과 나루를 잇는 나무판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뱃전.

남궁혁이 반항하는 노란색 경장의 여인을 거칠게 붙잡자 여인이 반항하듯 뺨을 때렸다.

잠시 움찔하는 남궁혁.

하지만 그가 발작하듯 반대로 뺨을 때리자 여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휘연……!”

삼십 장 거리 밖에 있는 장기린에게까지 들려올 정도로 강한 소리가 났다.

바닥에 널브러지는 휘연.

그리고 남궁혁이 그 위를 덮쳤다.

뱃전이 장기린보다 높은 곳에 있는 관계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잠시 후 남궁혁이 비명을 지르면서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런 그의 귀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휘연이 저항했다.’

뿌듯한 마음.

기쁨.

“저놈……!”

그리고 그의 소중한 여인을 상처 입힌 남궁혁에 대한 극심한 분노.

장기린은 곧장 옆에 있던 작은 나룻배에서 노를 집어 들고 반으로 부러뜨려 허리를 회전시켰다. 팔과 팔이 거대한 원을 그리고, 그의 전력을 담은 노의 조각은 바람을 거칠게 가르며 앞으로 번개처럼 쏘아졌다.

후웅― 후웅― 훙훙―!

노의 조각은 마침 휘연에게 주먹을 내려치려던 무뢰한의 어깨를 사정없이 격타했다.

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궁혁이 어깨를 감싸 쥐며 무릎을 꿇었다.

“크윽……!”

당황하며 그를 노려보는 남궁혁.

장기린은 거기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전력을 다해.

십 장가량의 나무 바닥을 불과 다섯 걸음 만에 주파한 뒤, 이미 물살을 타기 시작한 배를 향해 단번에 뛰어올랐다.

쿠웅!

뱃전에 내려서서 남궁혁을 노려보았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부릅뜨는 남궁혁.

“네놈…….”

장기린은 바닥에 쓰러진 휘연을 쳐다봤다.

입가엔 그녀의 것인지 남궁혁의 것인지 모를 피를 잔뜩 묻힌 채 경장이 어깨까지 벗겨진 모습.

결연한 눈빛으로 남궁혁을 노려보던 그녀는 갑자기 뱃전에 나타난 그를 쳐다보며 놀랐다가, 이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변했다.

장기린은 안심하라는 뜻으로 그녀에게 눈짓을 보낸 뒤, 다시 남궁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힉?”

기세에 압도당한 것인가.

전율하며 뒤로 물러서는 남궁혁.

그는 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지만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럴 법도 한 게, 지금 장기린은 전혀 자제하지 않고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정면의, 그의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힌 ‘적’을 향해.

“너, 너, 너는 뭐냐……? 정체가 뭐, 뭐, 뭐지?”

남궁혁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장기린은 짧게 대답했다.

“풍운객잔의 주인.”

“그런……!”

“휴를 괴롭힌 것까진 이해하려고 했다. 가족 문제고, 휴가 스스로 괜찮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라.”

장기린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번뜩였다.

“내 여인을 상처 입힌 것. 그에 대한 대가는 각오했겠지?”

“거, 건방 떨지 마……!”

스릉―!

남궁혁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게 금청검이라는 별호를 가져다준 보검.

잘 담금질된 백련정강의 칼날은 달빛을 받아 서늘한 빛을 냈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남궁혁이다. 남궁세가의 후계자야!”

“그래서?”

“뭐……?”

“그게 어쨌냐고 묻고 있다.”

남궁혁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발악하듯이 이를 악물더니 왼쪽 발을 반보 정도 뒤로 빼며 검끝을 중단으로 향했다.

“그 무지함이 죄다. 죽어라……!”

피잉―

마치 팽팽하게 당겼던 활시위를 손에서 놓은 것처럼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배꼽 언저리, 중단을 향하던 검끝이 어느새 연어처럼 솟구쳐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성질이 급하고 불안정한 남궁혁이지만 그래도 무공을 쓸 때만큼은 제대로 진지한 모습이었다.

눈에선 은은한 청광이 흘러나오는 듯했고, 비스듬하게 선 자세에선 오랫동안 다듬어 온 수련의 흔적이 느껴졌다.

정갈하고 자유롭지만, 또 한편으론 강맹하고 패도적인 기운.

남궁세가 비전,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의 효능이었다.

“…….”

장기린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런 남궁혁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내면에 숨겨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남궁혁은 위축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이젠 후회해도 늦었어!”

가문의 후계에게만 전수되는 신공의 공능이 남궁혁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주고 있었다.

상대는 인상만 험악한 무지렁이.

실제로 무공을 쓰면 별것도 아닌 상대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내리쳤다.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의 일 초.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전뢰가 떨어지는 듯한 재빠른 쾌검이었다.

슈슈슉―!

가슴을 노리는 일격이었으나, 장기린은 그것을 가볍게 뒤로 물러서서 피해 냈다.

“어……?”

순간적으로 의아해했으나, 남궁혁은 우연이라 치부하고 한층 더 공격을 압박해 들어갔다.

섬전십삼검뢰는 한 번의 공격으로 끝이 아니라, 열 세 번의 초식을 어떤 형태로든 연이어서 쓸 수 있는 절공이었다.

일식과 이식을 연결해도 좋고, 일식 다음에 곧바로 심삼식을 써서 상대를 끝장내도 좋았다.

남궁혁은 그 중간쯤인 팔식을 사용했다.

뒤에서 앞으로 팔을 내뻗으며 상대의 목을 찌른 뒤, 한 바퀴 회전하며 허리를 베어 내는 초식이었다.

그 동작에 천뢰제왕신공의 진기를 실으면 그야말로 촌각을 반으로 잘라 낸 것밖에 안 되는 시간에 공격을 끝마칠 수가 있었다.

쒜에엑―!

휘잉―!

목을 찌르고, 곧바로 몸을 반 회전.

그런데 허리를 반으로 잘라 낼 듯한 기세로 휘둘러진 검이 갑자기 허공에서 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멈춰 섰다.

피이잉―

“큭……?!”

남궁혁의 보검이 마치 당장에라도 칼날이 부러질 것처럼 격하게 휘어져 있었다.

웅웅 울리는 칼날.

남궁혁은 도저히 믿기지 않은 광경을 본 듯이 눈을 부릅떴다.

정확히 노린 곳을 공격한 그의 검술에 잘못된 것은 없다.

다만 잘못된 것은, 그가 전력을 다한 검술을 겨우 손가락 두 개로 잡을 수 있는 괴물이 있다는 것뿐.

“무…… 슨……?”

너무 놀라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남궁혁은 손목을 비틀어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내찔렀다.

그도 나름대로 산적이라든가 삼류 흑도 방파들과 싸우면서 실전을 많이 경험한 몸이다. 칼날이 잡혔을 경우, 이렇게 대처하면 잡은 쪽의 손가락이 잘려 나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후우웅―

“엇?!”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검은 그가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르면서.

파라라락―

“큭……!!”

어느새 손을 떼어 낸 것인지 칼날이 자유로웠다.

남궁혁은 괜히 멋 부리려고 품이 넓은 옷을 입었던 것을 후회했다.

칼을 위로 그어 올리고 소매가 펄럭이는 순간, 앞에 있던 장기린이 시야의 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휘리릭―!

재빨리 몸을 비스듬하게 반 회전 하면서 양 팔꿈치를 허리에 딱 붙였다.

몸에 빈틈을 없애는 익숙한 대응.

옆구리로 파고들 여지만 없애면 나머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선수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섬전십삼검뢰라면 상대보다 한발 앞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옆? 뒤? 아니면 위?’

남궁혁은 고민을 할 틈도 없었다.

곧바로 머리 위에서 장기린의 다리가 앞뒤로 교차하며 아래로 내리찍어 왔던 것이다.

까앙!

“윽……!”

옳다구나 하고 검으로 발바닥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아래쪽에서 반대쪽 발이 올라오더니 검끝을 위로 걷어차 버렸다.

쾌검술을 쓰는 검사의 검을 발로 차다니.

게다가 위력 또한 엄청나서 남궁혁은 당장에라도 검을 놓칠 것 같은 아픔을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타탁!

장기린의 몸이 바람처럼 흔들린다.

몸놀림은 가볍게, 하지만 타격은 육중하게.

그는 아직 검이 발로 차인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남궁혁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남궁혁의 손목을 악수하듯이 부드럽게 붙잡았다.

“윽……!”

기성을 지르며 눈을 부릅뜨는 남궁혁.

보기엔 별것 아니게 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장기린은 남궁혁이 검을 잡고 있는 오른손의 혈을 쥐고 있었다.

근육과 신경이 모여 있는 혈을 제압하게 되면 손에 힘을 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뒤로 도망치면 손목을 떨칠 수 있을 테지만, 남궁혁은 자존심 때문인지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경질적인 남궁혁의 발길질이 날아왔지만, 그런 어설픈 공격 따윈 장기린이 무릎을 세워 중간에 막아 버렸다.

“놔!!”

“너야말로 놓아라.”

장기린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내는 남궁혁의 손목을 앞쪽으로 훽― 잡아당긴 뒤, 체중이 앞으로 이동한 틈을 노려 오른쪽 손으로 명치를 가격했다.

“컥……!”

숨이 막힌 소리를 내며 몸을 굽히는 남궁혁.

장기린은 이번엔 남궁혁의 몸을 뒤로 미는 것과 동시에 아까보다 힘이 빠진 손목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박아 넣듯이 찔렀다.

“……!!”

물론 손가락을 진짜로 손목에 박아 넣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 만큼 세게 손목의 인대를 자극하자 남궁혁의 손이 확! 펼쳐지며 그 손에 들려 있었던 금색의 보검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남궁혁의 눈이 자연히 자신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보검을 향했다.

차릉―!

장기린은 그 보검을 발로 차올려 집어 든 뒤, 남궁혁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에 다시 넣어 주었다.

물욕 따윈 없다.

오히려 이 검을 핑계 삼아 더 이상 엮이면 귀찮아질 뿐.

“이……!”

장기린은 뭐라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남궁혁을 뒤쪽으로 확 밀어 버린 뒤,

휘리릭!

“으아악―!”

왼손으론 남궁혁의 어깨를, 오른손으론 그의 무릎 뒤쪽을 붙잡고 냅다 뒤집어 잔잔하고 어두운 서호의 강물 속에 집어 던져 버렸다.

푸웅―덩!

“어, 푸! 네, 네놈! 이게 무슨 짓…… 어푸!”

남궁혁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허우적거렸지만 장기린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궁혁은 스스로 오늘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만약 휘연에게 이 이상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아마, 그는 살수를 자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객주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휘연.”

장기린이 이름을 부르며 양팔을 벌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망설이지 않고 그의 품 안에 뛰어들었다.

“으, 으우, 으으……!”

그녀는 장기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를 보니, 그녀가 그렇게 독한 눈으로 남궁혁을 노려보며 귀까지 물어뜯었던 당찬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에겐 여러 가지 모습이 있듯이, 휘연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 모양이다.

장기린은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휘연, 미안해. 내가 우유부단해서…… 휘연에게 이런 일을 겪게 했어.”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고집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매번 객주님이 구해 주시고…… 귀찮게만 만들고…… 저는…… 저는…….”

“아니, 내 탓이야.”

“아뇨, 제 탓이에요!”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었더라면 저는 객주님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지는 건데…… 제가 멍청했어요. 제가 바보였어요.”

휘연은 자책하고 있었다.

그것도 장기린에게 있어선 너무나 기쁘고, 듣는 쪽이 부끄러워질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역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장기린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담담하게 보이려 노력하며 속마음을 꺼냈다.

“휘연.”

“네?”

“역시, 난 네가 좋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는 휘연과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참고 애써 평정을 가장하는 장기린.

잠시 후, 휘연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 어라? 지금 울 상황이 아닌데. 어라……?”

휘연은 당황하며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황급히 소매로 훔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표정을 보여 주기 싫다는 듯 한참이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휘연.”

“……흑.”

“휘연?”

“흑, 으흑.”

휘연은 여전히 얼굴을 감춘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장기린은 당황했다.

애써 자신의 마음을 밝혔는데 어째서 휘연은 울고 있는 걸까?

설마 자신이 좋다고 하지 않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저기, 잠깐…….”

아무래도 얼굴을 봐야겠다 싶어서 휘연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하자,

“놓지 마세요!”

“……휘연?”

“잠시만…… 이대로 있어 주세요.”

어미에게 안긴 아기 원숭이처럼 장기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휘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소매로 눈물과 입가에 남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내더니, 진지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장기린을 올려다봤다.

“한 번만 더…….”

“음?”

“한 번만 더 말해 주세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거요.”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웃지 않는 애교?

절실한 귀여움?

너무나 간절한 눈빛이면서 애써 평온을 가장하고 있다는 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아, 그것 말인가?”

“네, 그거요.”

“으음.”

장기린은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휘연. 역시, 난 네가 좋다.”

“아……!”

“그래서 네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은 싫다. 앞으로도 계속 나랑만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어.”

“…….”

“그렇게 해줄 건가?”

휘연은 있는 힘껏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기쁨이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따스한 체온, 부드러운 감촉, 향긋한 체취.

그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장기린은 휘연의 등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하늘에 달만 하나 덩그러니 떠 있는 어두운 밤.

귀머거리 뱃사공은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묵묵히 서호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 ☆ ☆

“푸하―! 큭! 그 자식……! 죽여 버리겠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남쪽의 서호 나루.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귀신처럼 나루터 위로 올라선 남궁혁은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허리에는 왠지 무거워 보이는 금색의 보검을 차고 인상을 찌푸리며 오른쪽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궁혁은 나루에 오르자마자 신경질적으로 발을 쾅쾅! 굴렸다.

아무리 힘을 써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천하의 남궁세가의 적자가 웬 객잔 주인 나부랭이한테 얻어맞고 강물에 내던져지다니.

일생의 수치.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이 사실이 무림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는 평생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실력이 굉장하긴 했지만…… 아니, 아니지. 그런 거 요행이다. 내가 그때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반응을 잘 못했을 뿐이야. 땅 위에서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그래야 말이 되지. 난 남궁혁이야. 안휘성을 벌벌 떨게 만드는 신진삼청의 우두머리란 말이야!’

남궁혁은 한참을 씩씩거린 뒤, 이내 품속에서 폭죽과 화섭자를 꺼내 하늘로 신호를 올려 보냈다.

피유웅― 파팡!

하늘을 수놓는 자그마한 불꽃 하나.

그리고 새하얀 연기가 공중에 한참이나 머물렀다.

이제 신진삼청 중 나머지 두 사람이 이 신호를 보고 그에게로 올 것이다.

그러면 힘을 합쳐서 그 풍운객잔인가 하는 곳을 뒤집어엎기만 하면 된다.

자신을 욕보인 객잔 주인 놈은 질릴 때까지 실컷 패 버린 뒤 죽여 버리고, 그를 거절하고 귀까지 깨문 건방진 여인은 철저히 교육시켜서 노리개로 삼아 버릴 것이다.

“오늘 일을 평생토록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에서 피가 날 때까지 머리를 땅에 박게 될 거야!”

빠득― 빠득―

남궁혁은 이를 갈며 악의에 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손으로 잡았다가 놨다가를 반복했다.

도저히 분노가 가라앉지를 않고 있었다.

“거기, 동생.”

“동생……?”

“표정 보니까 이미 한바탕한 모양이네. 어때, 객주님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지?”

남궁혁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나루터보다 일 장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관도 위.

일단 형식상 그의 배다른 형이라고 되어 있는 사내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너.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데.”

남궁혁은 으르렁거렸고,

“어이쿠, 까칠하시구만. 왜, 싸움에서 지니까 아무나 잡고 분풀이라도 하고 싶어졌어?”

“너……!”

휴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본적으로 장기린을 제외한 모두에겐 유들유들한 면모를 보이는 남궁휴였다.

바보 같을 만큼 직설적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남궁혁과는 상성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까불지 마! 죽여 버린다!”

“이건 뭐,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세상 밖에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달을 나이 아냐?”

“정저지와(井底之蛙)를 말하는 건가?”

“그래, 우물 안 개구리. 이 세상엔 너보다 강하고 뛰어난 강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이거야. 이젠 철 좀 들어야지, 동생.”

“그깟 거 알고 있어! 다만 초라한 객잔 주인 따위가 또 다른 세상이란 걸 인정할까 보냐!”

남궁혁은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붙잡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절대로 이걸로 끝내지 않아! 내 동료 두 사람이 도착하는 대로 그 자식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풍운객잔이라는 곳도 박살을…… 컥!”

그 순간,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혁의 신형이 뒤로 밀려나 바닥을 굴렀다.

어느새 날 듯이 뛰어든 휴가 남궁혁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쳐 버린 것이다.

“이 무슨……?”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진 남궁혁.

그는 귀신에 씌인 듯한 기분이었다.

객잔 주인한테 물에 내던져지질 않나, 이번엔 쓰레기 낙오자라고 생각했던 휴에게 저항도 못하고 얻어맞았다.

“적당히 해! 멍청아!”

“네가, 어떻게……?”

“세가의 후계자면 후계자답게 처신하란 말이다. 네가 황태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세상이 다 만만해? 네 맘대로 박살을 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그가 사용한 것은 장기린에게 배운 ‘한 박자 빠른 움직임’이었다.

걷는 법과 숨 쉬는 법을 포함한 매일 같은 단련과 장기린에게 받는 조언.

그 모든 것들을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급속도로 받아들여 휴의 무공은 급성장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시험해 봤는데, 역시나 남궁혁은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할 수 있어. 내가 더 강해.’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휴는 지금의 이 일로 확신을 가졌다.

남궁혁처럼 절정의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고, 영약을 밥 먹듯이 먹은 것도 아닌데, 그래도 한 박자가 빠르다는 것만으로도 싸움에선 그가 더 강했다.

“바보 동생.”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잘 들어. 네가 철이 들지 않으면 남궁세가는 맡길 수 없어. 네가 지금 내가 있는 소중한 곳을 부수겠다면 전력을 다해 저지하겠어. 내 소중한 사람들을 괴롭히겠다면…… 다시는 그런 생각 못하도록 혼을 내 주겠어.”

입을 쩍 벌리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남궁혁.

그는 ‘큭!’ 하고 한 번 신음을 흘리더니,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스릉―!

다시 한 번 금색의 보검이 뽑혀 나왔다.

섬전십삼검뢰의 기수식을 취하며 전력을 다해 남궁세가의 후계자만이 배울 수 있는 천뢰제왕신공의 진기를 끌어올리는 남궁혁.

눈에서 빛나는 푸른색의 정광.

사방으로 웅혼한 기세가 퍼져 나갔다.

“타핫!”

휴는 그런 남궁혁에게로 뛰어들어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손으로 손날을 세운 채 그것을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천풍검법(天風劍法)?”

그 움직임을 본 남궁혁은 처음엔 헛웃음을 흘렸으나, 이내 빠른 속도로 그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천풍검법은 남궁세가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세가의 어린애들이나 심지어는 일부 하인들까지도 초식을 잘 알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공이었다.

물론 남궁혁도 천풍검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열 살이 되었을 무렵엔 천풍검법에만 파고들어 그 속의 숨은 변화가 몇 개인지 자다가도 셀 수 있을 만큼 정통했다.

그런데 휴가 사용하는 청풍검법은 달랐다.

훨씬 빠르고 강맹했다. 그리고 자유롭다.

어깨를 노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오른쪽 다리를 노리고 있고, 왼쪽 손목을 노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목을 향해 검이 날아들고 있었다.

“이 무슨……!”

하늘 위의 새처럼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움직임.

그 모습은 청풍검법이라기보다는, 훨씬 상위의 검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세가의 장로들이나 높은 위치의 가신만이 배울 수 있는 절공.

당연히 휴는 그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피잉―! 피융―! 피슉―!

“큭……!!”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남궁혁의 옷자락 여기저기가 찢어졌다.

연이어 날아오는 공격이 너무나 빠르고 정신이 없었다.

놀람, 황당함, 그리고 장기린과의 격투 후에 강물을 맨몸으로 건너온 피로감까지 겹치는 순간,

챙그랑―!

“이런…….”

손목을 얻어맞은 남궁혁의 손에서 검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을 떨어뜨린 것이 이것으로 오늘만 해도 두 번째.

망연자실한 남궁혁의 목에는 휴의 손날이 척하니 대어져 있었다.

“이게 진짜 검이었다면, 넌 손목이 잘리고 지금 목에 칼이 대어져 있는 거야.”

“…….”

“남궁혁, 나를 자극하지 마. 후계자로서 모자란 모습을 보이거나 지금처럼 내 소중한 보금자리를 위협하면…… 그땐 내가 남궁세가로 돌아갈 거야. 아버님께 다시 제대로 살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후계자 승부에 참여할 거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지?”

처음으로 동생이 아니라 남궁혁이라고 불렀다.

남궁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굳어 있었다.

휴가 남궁혁보다 강하다. 그리고 그가 후계자 승부에 참여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벅찬 것 같았다.

휴는 그런 남궁혁을 지그시 응시한 뒤, 손날을 치우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네 동료들이 오면 이대로 항주를 떠나서 세가로 돌아가. 더 이상 마주치지 말자.”

“어째서…….”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려던 휴는 남궁혁의 목소리에 붙잡혔다.

“왜 욕심을 부리지 않지? 나보다 강하면서 어째서 후계자 승부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지?”

“필요없으니까.”

“……!”

“난 지금의 생활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 골치 아픈 세가의 자리는 필요없어.”

마지막 말과 함께 휴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인적이 사라진 남쪽 나루터에서 남궁혁은 바닥에 떨어진 검도 줍지 않은 채 한참 동안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일각 뒤에 신진삼청의 나머지 두 사람이 허둥지둥 도착하자, 남궁혁은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그대로 항주를 떠났다.

“역시…….”

어스름한 달빛에 숨어 그 광경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지켜본 여인.

“계속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어.”

그녀는 남궁혁을 제압하는 휴의 모습에 감탄했고,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오라버니는 반드시 세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해.”

푸른색 무복으로 남장을 한 여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인연이 다시 얽히고설킨 밤, 항주의 밤공기엔 새로운 바람이 불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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