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60화 (51/686)

第五十七章 ― 숙적조우(宿敵遭遇)

풍운객잔의 아침 식사는 모든 식구들이 함께 먹는 것이 규칙이다. 장기린, 휘연, 운찬, 아칠, 아팔, 휴. 여섯 명의 식구들에 최근에는 장기로 투숙하고 있는 구양화와 백연이 함께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대체로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부드럽고 싱거운 음식이 기본이지만, 가끔 장기 투숙 중인 부잣집 아가씨의 투정에 의해 단 음식이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두포에 미화당에 유각……. 운찬, 오늘 무슨 날인가?”

“아뇨, 그게…… 하하…….”

운찬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이 빨개진 채 당황해했다.

그가 흘깃거리며 눈치를 보는 방향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새침한 얼굴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쪽의 대화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물엿이 듬뿍 묻은 쌀 과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행복해하는 중이었다.

“하여간…….”

어째선지 운찬은 구양화에게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잦았다. 최근엔 뭔가 약점이 잡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먹을 만한 것은…… 소룡포뿐인가?’

장기린이 딱히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식량이 풍부한 경우엔 아무래도 단것을 먹기가 꺼려졌다.

소룡포는 두툼한 반죽 안에 간장으로 간을 한 다진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만두다. 장기린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단점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만큼 금방 식탁에서 사라져 버린 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단것에는 질려 버린 휴나 백연, 아칠, 아팔이 무서운 속도로 소룡포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미화당이나 유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엔 그들도 단 음식을 좋아했지만, 요 근래 계속해서 식탁 위에 단것들이 올라오자 마침내 질려 버린 것이다.

단 음식을 계속해서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은 구양화가 유일했다.

‘이게 마지막인가…….’

마지막 남은 소룡포를 집어 들며 장기린은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장기린은 아침식사를 꽤나 많이 하는 편이라 소룡포 하나로 만족하기엔 양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객주님, 이거 더 드세요.”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휘연이 자신의 몫으로 가져갔던 소룡포를 장기린의 그릇 위로 옮겨 주었다.

장기린이 놀라서 바라보자 휘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로는 양이 부족하시죠? 저는 괜찮으니까 드세요.”

“하지만, 이러면 휘연이 부족하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저는 유각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면서 보란 듯이 유각을 하나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도토리를 갉아먹는 다람쥐처럼 양손으로 유각을 붙잡고 조금씩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그 움직임이 어쩐지 귀여워서 장기린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휘연의 것을 다 뺏을 수는 없지. 반씩 나눠먹도록 해.”

“아뇨,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아니라는 듯이 말하지만 휘연도 단 음식에 상당히 질렸다는 것을 장기린은 알고 있었다.

“내가 편하지 않아. 먼저 먹고 줄 테니, 반은 먹도록 해.”

“아이참. 객주님, 괜찮다니까요.”

“잠깐만, ……자.”

장기린은 휘연이 넘겨준 소룡포를 세 입 정도 베어 먹은 뒤, 우물거리면서 휘연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먹던 것을 넘겨준다는 거부감은 없었다.

전장은 항상 보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휘연은 나눠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점을 의식해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끄러워하며 장기린이 다시 넘겨준 소룡포 반쪽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가, 감사해요.”

“그건 원래 네 거였어.”

“그래도…….”

장기린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그릇 위에 있던 또 하나의 소룡포를 먹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휘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이 넘치네요.”

“끼어들 틈이 없어요.”

아칠과 아팔이 장기린과 휘연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넘겨줬어요.”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대서 먹던 걸 나눠 주고.”

“그걸 또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쁘게 받고.”

“객주님이 식사 시간에 웃는 거 처음 봤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객주님이 밥 먹다가 웃은 건 처음이야.”

“사랑의 힘은 위대하구나. 식탁이 달콤한 공기로 가득 차 있어!”

두 사람은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한편, 운찬과 휴는 장기린과 휘연의 모습을 보고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

“대체 언제 저렇게 된 걸까요?”

“이유는 아마 어제의 뱃놀이 때문일 겁니다만…… 하하, 이거 신선합니다. 다른 사람은 감히 말도 못 붙일 정도군요.”

휴는 장기린과 휘연이 잘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형님에게 저런 면이 있었을 줄이야……!”

“뭐, 사내는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형님은 뭐랄까, 좀 더 무뚝뚝한 편일 거라 생각했어요. 혼인을 해도 부인에게 웃는 모습 한 번 안 보여 줄 것 같은 사내 있잖아요.”

“음,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저는 형님한테 저렇게 다정한 면이 있으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장기린의 그런 모습이 의외인 것은 휘연도 마찬가지인지, 옆에서 그녀를 아끼는 듯한 ‘연인의 말’을 할 때마다 휘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물론 곤란한 느낌의 당황이 아니라, 행복해서 당황하고 있는 느낌이다.

“으음, 혹시 일부러 눈치채라고 저러는 게 아닐까요?”

“하하, 설마 그렇겠습니까?”

휴는 웃었고, 운찬은 우울해졌다.

“으음, 이러면 안 되는데…….”

“예?”

“배가 아프네요. 크흑, 마음이 저려요. 연인…… 행복해 보이는 연인…….”

운찬은 엉엉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행복한 연인의 광경은 그게 설령 그가 동경하는 형님의 모습이라도 지독한 연애의 상처를 입고 독신을 맹세한 운찬에게 있어서는 독이었던 것이다.

“크흑, 이럴 때는 달콤한 것들을 대량으로……!”

“헛, 이 아침은 그런 이유였습니까?!”

“물론 청탁도 있었지만, 오늘은 저도 단것이 필요하네요! 단것으로 잊겠습니다. 단것으로 극복합니다!”

운찬은 유각과 미화당을 양손에 들고 우적우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찐득하게 늘어지는 물엿이 운찬의 입에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아앗! 그건 내 거야!”

“음음, 다른 것 먹어.”

“미화당! 마지막 미화당이이―!”

“다른 것 먹으라니까.”

“이잇! 그럼 나는 유각을 먹겠어!”

지기 싫어하는 구양화가 운찬에게 보란 듯이 유각을 한 움큼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평소에 백연에게 입이 닳도록 말하던 식사 예절 따위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인 것인지, 구양화는 단 음식과 관계만 되면 이성을 잃었다. 구양화는 운찬과 경쟁하듯 단 음식들을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으음…….”

휴는 질려서 뒤로 물러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것 같은 단맛이 상상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가 질린 얼굴로 씁쓸한 오룡차를 들이켜는 사이, 휘연과 정담을 나누던 장기린이 문득 식탁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백연?”

“…….”

“백연, 왜 그러시오?”

“……아, 예?”

백연은 식탁에 앉을 때부터 혼이 빠져 버린 듯한 멍한 얼굴이었다. 자기 몫의 그릇에는 소룡포 하나만 갖다둔 채 의미없이 깨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실없이 헤헤 웃고 다니던 그로서는 너무나 이상한 모습.

장기린은 백연을 보면서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래, 저 얼굴은…….’

죽을 게 당연시되는 전장에 나가야 하는 어린 병사들이 꼭 지금의 백연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 있었소?”

“……하하, 아뇨. 오늘 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문득 그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백연은 애써 웃음 짓고 있었다.

“괜찮소?”

“예?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백연이 숨기고 싶다면 굳이 캐낼 것까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화제를 돌려 다른 대화를 이어 나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식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 ☆ ☆

항주 외곽, 귀견장.

평소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는 텐챠이였으나, 오늘만큼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양팔을 벌려 막 도착한 손님들을 환영했다.

“하시르! 우르칸! 자이혼!”

그는 북부 초원에서 신처럼 추앙받는 세 장수의 이름을 불렀다.

몽고 최고의 모사, 하시르.

하늘이 내린 신력, 우르칸.

독수리의 눈을 지닌 자이혼.

그 세 사람을 일컬어 사람들은 삼대천(三大天)이라고 불렀다. 세 사람은 그 누구도, 심지어 대칸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야수들이었다.

그나마 그들이 텐챠이를 따르는 이유는 텐챠이와 그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믿을 만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텐챠이는 강하다.

삼대천도 강하다.

네 사람이 모두 모여 있었을 때 그들은 불패(不敗).

그 신화는 지금까지 깨진 적이 없었다.

그랬다.

심지어 ‘적룡기마대’를 상대했을 때도.

“장군.”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텐챠이가 그런 허례는 필요없다는 듯이 손을 내젓자, 우르칸과 자이혼은 두 사람은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긴장을 풀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제자리에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은 무격(巫覡)이자 부드러운 품격을 지닌 하시르뿐이었다.

“항주의 관문지기들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더군요. 그 덕분에 수월하게 들어왔습니다.”

양쪽 허리에 쌍도를 차고 넓은 삿갓 아래 까무잡잡한 얼굴을 드러낸 하시르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시르는 별로 특색이랄 게 없는 밋밋한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이렇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가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텐챠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잘된 일이 아닌가. 명(明)의 기강이 고작 그 정도라면 우리가 하려는 일은 더욱 수월하게 끝나겠지.”

“그 말씀대로 명조도 다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이다. 우리 넷이 다 모인 이상, 이제 원의 재건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텐챠이는 기꺼워하며 우르칸과 자이혼에게도 말을 건넸다.

“우르칸, 자이혼. 두 사람은 어땠나? 이곳까지 오는 여정이 힘들지는 않던가?”

“별로…….”

“힘들 것은 없었다. 다만 지루했을 뿐이지.”

자이혼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외날대부를 꺼내 가죽으로 날을 닦고 있었고, 우르칸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기지개를 켜며 전신으로 지루함을 표출했다.

삼대천은 기본적으로 기력이 넘쳐 나는 자들이다.

그저 숨죽이고 숨어드는 이런 임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흠, 오는 길이 많이 심심했나 보군. 그럼 내가 이곳에서 키우고 있는 전사들을 한 번 만나 보는 게 어떤가? 흥밋거리 정도는 될 텐데.”

“전사?”

“흥밋거리는 된다?”

우르칸과 자이혼이 눈을 빛냈다.

텐챠이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가 ‘흥밋거리’가 된다고 했다면, 분명 새로 키우는 전사들로부터 웬만한 수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는 뜻이다.

특히 모사이자 지장(智將)인 하시르는 지대한 흥미를 보였다.

“경험있는 전사들이 많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만, 훈련의 성과가 괜찮았습니까?”

“아아, 기대 이상이었지. 말을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대초원이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말이야.”

“병력은 어느 정도 모였습니까?”

“당장 쓸 수 있는 숫자는 일천 정도.”

“…….”

하시르는 눈에 띄게 실망의 기색을 보였다.

일천이라면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앞으로 하려는 일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소박한 숫자였던 것이다.

“실망했는가?”

“예.”

“하하, 망설임도 없이 즉답이군. 하지만 한 가지 더 말해 줄 게 있지. 일천 명 전원이 지랑(地狼) 급의 실력이다.”

“지랑 급의……!”

텐챠이 수호대에선 실력순으로 계급을 매긴다.

천랑(天狼). 지랑(地狼). 인랑(人狼).

십만 기병 중에 고르고 고른 정예인만큼 인랑 급의 전사만 해도 보통 군대에선 백인장 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랑 급의 전사라면 천인장급.

천랑 급의 전사는 웬만한 장군 급의 인물과 겨뤄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의 칭호였다.

실제로 텐챠이 수호대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에도 천랑 급의 전사는 고작 서른 명.

그 서른 명의 대주가 바로 지금 이곳에 있는 삼대천이었다.

“대단하군요. 일천 명이 모두 지랑 급이라니. 어떻게 그런 실력으로 키우셨습니까?”

“우리의 전사(戰史) 중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비극적이었던 전투를 기억하나?”

“칼간…… 장가구의 혈사 말입니까?”

“그래, 그곳. 그때 카라코룸을 급습하려던 명나라는 그들이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인근 마을에 생존자를 단 한 명도 남기지 않았지. 그때 죽은 숫자만 일만. 여자와 아이까지 모조리 도륙당한 슬픈 역사다.”

“분명 그렇습니다만, 지금 그 이야기는 왜……?”

“그때의 생존자들과 근처에 살던 친척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 있었다. 나도 우연히 발견하였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장가구 혈사의 증오를 잊지 않고 모두가 뼛속 깊이 명나라에 대한 증오를 새겨 두고 있었다.”

“그 말씀은…….”

“그래, 지금의 일천 명은 그 마을 출신이다. 모두 그때의 증오를 발판 삼아 훈련을 소화해 내고 있기 때문에 실력이 빨리 늘고 있어. 그들은 오히려 훈련을 괴로울 만큼 혹독하게 해 주지 않으면 불만을 제기하는 독종들이다.”

“흐음, 그 정도입니까?”

“그래. 키우는 재미가 있는 녀석들이다. 어쩌면 지랑 급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 싶은 재목도 몇몇 보인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흥미가 생기는군요.”

하시르에게 동조하듯 우르칸과 자이혼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그럼, 한 번 보러 갈까?”

텐챠이는 그들을 이끌고 기병들의 수련장으로 향했다.

“히야앗―!”

“챠앗! 타핫―!”

우렁찬 기합성이 절도있게 울려 퍼졌다. 육체가 강건하게 단련된 일천 명의 사내가 일제히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제대로 실려 있고, 움직이는 튼튼한 하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주변의 공기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각기 백인장으로 뽑힌 대장과 깃발병의 명령에 따라 금방 대열의 방향을 바꾸거나, 움직이는 속도를 바꾸며 진형을 변화시키는 모습들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능숙하게 이루어졌다.

이 정도로 잘 훈련이 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 전쟁터에 투입해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텐챠이와 삼대천은 병사들이 훈련을 마치는 모습을 일각가량 지켜본 뒤 망루에서 내려왔다.

깃발을 움직여 훈련하던 간부들이 텐챠이가 훈련소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것을 중지시키고 한달음에 마중을 나왔다.

“장군!”

“장구우운―!”

십여 명의 간부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천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함부로 입을 여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천 명이 모여 있음에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음!”

텐챠이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병렬의 중심으로 걸어가 옆에서 대기 중이던 부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관은 당연하다는 듯이 단단한 나무로 만든 두꺼운 목봉을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두께는 삼 촌(寸). 색깔은 거무튀튀했고, 오랫동안 써온 물건인 듯 반들반들하게 손때가 탄 물건이었다. 단순한 나무 봉이라고 해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텐챠이의 손에 들린 이상, 병사들에겐 그 어떤 신병이기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

“오늘의 상위 열 명은 누구인가?”

텐챠이의 묻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듯 열 명의 젊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섰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구에 몸에 수많은 상처들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그들은 흥분한 듯 숨을 뜨겁게 몰아쉬며 텐챠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이고, 전의로 가득 찬 눈빛이 호기롭게 텐챠이를 향해 쏘아졌다.

텐챠이는 그런 열 명의 눈빛을 하나하나 똑바로 마주쳐 주었다.

“좋군. 덤벼라.”

텐챠이가 목봉을 들지 않은 왼쪽 손을 까딱하는 순간, 열 명의 젊은 전사가 텐챠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랑 급.

즉, 다른 군대로 가면 최소한 천인장 자리 하나쯤은 꿰찰 수 있는 실력자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올라 있는 전사들이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표범처럼 날쌔고 늑대처럼 강렬했다.

게다가 그들은 무차별로 달려드는 게 아니라, 훈련 받은 대로 대형을 짜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이 첫 번째 실력자.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텐챠이의 좌후(左後)와 우후(右後)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나머지 일곱은 그들 사이사이로 달려들어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키야앗―!”

얇은 끈을 이마에 두른 청년.

첫 번째 전사가 텐챠이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달려오는 기세를 그대로 살려 목봉을 양손으로 쥐고 힘차게 대각선으로 내려쳤다.

텐챠이는 그 공격 동작이 마무리에 이를 쯤에야 움직였다.

쒸아아아악―!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젊은 전사가 내리친 목봉이 그의 어깨에 닿기 직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텐챠이의 목봉이 젊은 전사의 목봉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빠직!

반대쪽 목봉이 젓가락처럼 가볍게 부러졌다.

젊은 전사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도 목봉을 놓지 않았지만, 일격을 버텨 낸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려운 설명이 필요없다.

그저 텐챠이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끼요옷―!”

“히야앗―!”

정면의 공격이 허무하게 무산된 가운데, 제이위와 삼위의 전사가 한 명은 하체를, 한 명은 상체를 노리고 뛰어들었다.

텐챠이는 하체를 노리고 날아드는 목봉을 발로 쾅! 밟아 버렸다.

동시에 상체를 노리고 달려들던 전사의 옆구리를 목봉으로 후려치자, 그 전사는 마차에 치인 것 같은 속도로 허공을 날아 땅에 부딪치고, 다시 튀어 올라 옆으로 미끄러졌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전사는 몸을 잠시 꿈틀거리다가 잠잠해졌다.

텐챠이는 그 모습을 흘깃 일별한 뒤, 그대로 몸을 낮춰 하체를 노렸던 전사의 목덜미를 손으로 콱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목을 붙잡힌 젊은 전사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부우우웅―!

“크아앗―!”

마치 투석기의 돌처럼 전방으로 투척당해 거리를 두고 있던 전사 두 사람과 함께 땅바닥을 굴렀다.

우두둑―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던져진 전사는 그대로 기절했고, 인간 포탄에 얻어맞은 두 사람도 각각 팔이 한쪽씩 부러진 채 쉽사리 일어서질 못했다.

“쿨럭…… 쿨럭…….”

쓰러진 다섯의 기침 소리가 허무하게 들려왔다.

순식간에 절반의 전사들이 쓰러진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텐챠이는 계속해서 노도와 같은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무차별로 달려들어 전사들을 목봉으로 후려치고 목덜미를 붙잡아 집어 던져 버렸다.

그 와중에 머리를 얻어맞고 피를 뿜어 내거나 갈비뼈가 부러져 숨을 거칠게 쌕쌕거리는 전사들도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 전장을 이탈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훈련조차 목숨을 걸고 하고 있었다.

텐챠이는 일당백.

아니, 일당천의 기세로 전사들을 섬멸하고 있었다.

지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장난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가볍게 전사들을 쓰러뜨리고, 걷어차고, 집어 던졌다.

그에게 타격을 주기는커녕 옷깃을 스치는 일도 없었다.

텐챠이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전사들 쪽은 숫자만 많을 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캬하앗―!”

그때, 얇은 천을 이마에 감고 있는 청년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목봉으로 텐챠이의 등을 찔렀다.

가장 처음에 쓰러진 전사였다.

기절한 것처럼 누워 있다가 텐챠이가 근처에 오자마자 기습을 한 것이다.

“시도는 좋았다. 하나…….”

빠아악―!

“끅……!”

순식간에 몸을 반 회전한 텐챠이에게 어깨를 얻어맞은 젊은 전사.

그는 충격과 고통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릎을 꿇었다.

“기술에 연연하지 말고 실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하도록.”

“……예.”

텐챠이에게 한마디 충고를 듣는 것은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젊은 전사는 한껏 만족한 표정을 지은 채, 이번에는 정말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모두가 쓰러지는 데에 불과 반 각조차 걸리지 않았다.

텐챠이는 숨을 몰아쉬기는커녕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모습으로 피가 묻은 목봉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에게 넘겨주었다.

전투가 끝났다.

젊은 전사 십 인의 사투를 지켜보던 나머지 일천 명의 전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텐챠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일 있는 일.

언제나와 같은 귀견장의 하루였다.

“더 강해지셨군.”

“한층 움직임이 부드러워졌어.”

“예전엔 그래도 공격할 틈이 보였는데, 이젠 어딜 공격해야 할지 모르겠다.”

삼대천은 각자 감탄과 호승심이 섞인 눈빛으로 텐챠이를 응시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전사들의 정신력도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텐챠이였다.

산을 쪼갤 듯이 강렬한 공격.

흐르는 물처럼 매끄러운 움직임.

그리고 상대를 짓누르는 태산 같은 존재감.

원래 몽고 최고의 전사였지만, 이제 그보다 더욱 강해진 텐챠이는 대륙 최고를 논할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각자 자신을 최강이라 생각하는 삼대천으로서는 텐챠이에게 호승심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감상이 어떤가?”

한차례의 싸움을 끝내고 온 텐챠이는 삼대천에게 감상을 물었다.

“결정적인 살기가 없습니다. 예리함이 부족합니다.”

“좀 더 맷집을 길렀으면 좋겠다.”

“투지만 앞서고 차분함이 부족하군.”

하시르, 우르칸, 자이혼. 각자의 감상은 그들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하,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쓸 만은 한가 보군.”

텐챠이는 흡족하게 웃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삼대천은 저런 충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군―!”

“음?”

그때, 텐챠이를 향해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왔다.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린 독두에 미간에 있는 큰 사마귀.

현재 청풍객잔에서 독두파를 이끌고 있는 흉월이었다.

“무슨 일이냐?”

“제가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흉월은 옆에 서 있는 삼대천을 힐끗 쳐다봤다.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이쪽은 삼대천이다.”

“삼……! 뵈,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흉월은 깜짝 놀라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삼대천의 이름은 전설이나 다름없다.

반면, 삼대천은 흉월의 인사엔 별로 관심도 갖지 않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텐챠이는 씁쓸해하는 흉월에게 손을 내젓고 화제를 되돌렸다.

“저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하도록.”

“아, 예. 다름이 아니고, 항주 관청 상방(商房)에 저희 쪽 정보를 캐는 자가 있습니다.”

“상방이라면…….”

심상치 않은 이야기에 텐챠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예. 저희 귀견장을 숨겨 주고 있는 관리가 있는 곳입니다.”

“즉, 귀견장을 찾고 있다?”

“예,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누가 찾고 있지?”

“무림맹 쪽입니다. 전부터 뒤꽁무니를 쫓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이번엔 상당히 근접하게 쫓아왔습니다.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무림맹이라…… 끈질기군.”

텐챠이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거사’는 앞으로 단오절에 있을 황족의 방문 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황실도 바보가 아닌 만큼 그 행사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일이 쉽지가 않았다.

황실에선 금선로에 두 개의 거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금의위, 동창과 협약을 맺고 있는 서호제일의 창해루.

다른 하나는 무림맹이 비밀리에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는 청월루였다.

금의위나 동창 쪽은 미리 심어 둔 밀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청월루의 소위 ‘무림인’이라는 것들은 최근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슬슬 짜증이 나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청월루인가?”

“아뇨, 청월루의 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쪽 사람입니다. 무당파의 일해검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무당파는 안다. 하지만 일해검은 처음 듣는데?”

“나름 신진 고수로서 유명한 모양이던데…… 어떤 공격이든 부드럽게 흘려 버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한답니다.”

“흠, 재밌는 녀석이군.”

“원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자였는데, 최근에 이쪽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무당파를 통해 지령이 전달된 모양입니다.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감이 좋은 건지, 최근에 꼬리를 잡힌 일들은 다 일해검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건 거슬리는군.”

“예. 어떻게 할까요? 실력이 좋으니, 저희 쪽 피해가 꽤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이때 흉월은 텐챠이가 당연히 그냥 놔두라고 지시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귀견장의 행동은 ‘준비될 때까지 무조건 숨어라’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죽여라.”

“……예?”

“그만큼 거슬린다면 죽여야 하겠지. 다만…….”

텐챠이의 시선이 삼대천을 향했다.

“자네들이 나섰으면 싶은데.”

“아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시르는 삿갓을 위로 젖히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의 일해검이라…… 저도 흥미가 생기더군요.”

“듣고 있었나?”

“예. 그 ‘어떤 공격이든 부드럽게 흘려 버린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걸립니다.”

여전히 웃고 있긴 하지만 하시르의 눈빛에선 사냥을 앞둔 맹수의 것과 같은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누군지 건방진 놈이군. 핫! 내 주먹도 흘려 낼 수 있는지 보고 싶은데.”

우르칸은 호승심이 생기는 듯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뭐, 그것만큼은 나도 너와 동감이다.”

자이혼 역시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빛냈다.

삼대천이 일해검을 노린다.

흉월은 그 말이 주는 기대감에 잠시 마음이 들떴으나, 이내 다급하게 텐챠이에게 진언을 올렸다.

“자, 장군, 하지만 만약 일해검을 죽이게 되면 너무나 눈에 띄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럼 저희의 존재가 드러날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귀견장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지금껏 준비해 온 거사가 수포로 돌아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텐챠이는 어디까지나 태연했다.

“알려져도 상관없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항주의 행사가 위험하다는 것이 좀 알려졌으면 좋겠군.”

“예에?”

깜짝 놀라는 흉월.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는 가운데, 하시르만이 텐챠이의 의중을 알아챈 듯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과연. 알아챈 모양이군, 하시르.”

“예. 확실히, 저쪽에서 알아차려도 저희에겐 손해 볼 게 없겠군요.”

“그 말대로다. 황제가 이쪽을 경계하면 남경 쪽의 병력을 항주로 빼내겠지. 그렇게 되면…….”

“일천 명의 기병으로 텅 빈 남경을 향해 진격하면 되겠군요.”

“그래. 그와 동시에 거용관 너머에선 투마르가 전(前) 텐챠이 수호대와 삼만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나라는 끝이지.”

“하지만 장군께선 황제도 놓치지 않으시겠지요.”

“그것까지 알아챘나?”

“저희를 부른 것이 겨우 양동작전 때문일 리가 없지요. 황제와 남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심산이 아니십니까?”

“그렇다. 그 말 대로다.”

황제, 남경, 그리고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대화였다.

흉월은 그의 머리를 아득히 뛰어넘는 이야기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젓고 말았다.

과연 텐챠이.

지(智)와 용(勇).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몽고에서 적수가 없던 최강의 장수다웠다.

‘……잠깐, 적수가 없다?’

흉월은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기, 장군.”

“왜 그러나?”

“그러고 보니 조사하다가 마음에 걸린 것이 있는데…… 일해검이 머무르고 있는 곳이 청월루가 아니었습니다.”

텐챠이는 머무는 곳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려 했으나, 흉월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챘다.

“청월루가 아니면?”

“그게…… 저기, ‘풍운객잔’이라는 곳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조사해 보니 항주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잠시 간의 정적.

그리고 텐챠이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커헉…….”

그 기세를 정면에서 느낀 것만으로 흉월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삼대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채 각자의 무기에 손을 얹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텐차이의 두 눈에선 강렬한 광망이 쏟아지고, 전신에선 패도적인 살기가 뿜어졌다.

그만큼 텐챠이의 기파는 이제껏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을 만큼 강렬했다.

다른 일이라면 아무리 충격적인 소식이라도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텐챠이는 지금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거사를 위해 애써 옆으로 밀어 두었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숙적의 이름이 지금 흉월의 입에서 다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내가 생각하는 그곳인가?”

“으, 예, 예. 그, 그렇습니다.”

“그곳은 관부든 무림이든 어떤 곳과도 관련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그에 대해 물었을 때, 풍운객잔은 단순히 퇴역 군인이 평범한 삶을 위해 구입한 객잔이라고 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나?”

심상치 않은 어조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흉월은 다시 한 번 전율했다.

지금 대답을 잘못하면 그 즉시 죽는다. 풍운객잔에 있는 ‘그’의 이름은 텐챠이에게 있어서 그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

“지,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우연히 일해검이 그곳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야기, 확실한가?”

“예, 예. 주변 객잔들의 반응을 볼 때 구 할 정도 확신합니다.”

“일 할은 불안하단 말이군.”

“…….”

“됐다.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 너에 대한 판단도 그때까지 보류하지.”

흉월은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감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텐챠이는 왼쪽 눈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흉터를 손으로 매만졌다.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들은 탓인지 그 흉터가 다시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삼대천에게 명했다.

“일해검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다. 주변에 알려지도록 죽여라.”

“알겠습니다.”

간단한 듯하면서 복잡한 주문이었으나 하시르는 망설 없이 대답했다.

“…….”

말없이 몸을 돌리는 텐챠이.

그의 얼굴은 무섭도록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 ☆ ☆

해시(亥時:저녁9시―11시) 경이 되면 보통 금선로의 객잔들은 모두 한창 손님을 받아 분주할 시간이지만, 풍운객잔은 이 시간에 문을 닫는다.

기녀도 없고, 술장사도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간 쯤 되면 어차피 손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투숙객이라고는 백연과 구양화, 두 사람밖에 없는 마당에 굳이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둘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손님이 많은 것 같던데.”

최근 들어 잠시 줄어들었던 손님들이 다시 한창때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운찬의 요리 솜씨와 아칠, 아팔의 빠르고 귀여운 접객 덕분에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덕분이다.

물론 쉬지 않고 일하고 청소하는 휴와 그 모든 것을 총괄하는 휘연 또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장기린은 풍운객잔은 모두의 노력 덕분에 성세를 이어 간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속에 되새겼다.

“최근에 너무 잘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대론 평범한 생활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 신경 쓰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손님이 늘어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엔 그저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가 어느 쪽을 더 바라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것이겠지.”

적어도 생명의 무게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는 삶이었다.

그에게는 그를 아껴 주는 식구들과 점점 장사가 번창해 가는 객잔,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그는 행복했다.

장기린은 빙긋 웃으면서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휘연! 아직 일이 안 끝났어?”

장기린은 객잔 안으로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 시간에 객잔 안엔 휘연밖에 없을 터였다.

항상 객잔에 가장 오래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휘연이었다.

다른 식구들이 모두 뒷정리와 청소를 끝내고 침소에 들어간 뒤에도 휘연은 항상 늦게까지 남아 장부를 다 정리하고 계산을 맞추는 일을 끝낸 뒤에야 침소에 들었다.

한때 객잔 식구들이 늦게까지 일하는 휘연이 신경이 쓰여서 도와주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휘연은 이 일만큼은 자신이 해야 한다며 오히려 도우려 하는 것이 방해하는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휘연의 일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휘연?”

장기린은 등불이 켜진 채 조용하기만 한 객잔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대답이 없던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 잠시 침소로 돌아간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안쪽에선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깜빡 잠이라도 든 건가?’

그렇다면 휘연이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장기린은 웃으면서 인기척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쿠웅―!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는 불신감.

시간이 느려진 듯한 감각 속에서 장기린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조우했다.

“객주님…….”

순간, 위태로우면서 절박한, 곧 꺼져 버릴 촛불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연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어깨를 떨고 있었다.

사랑스런 얼굴, 호수 같은 눈망울엔 불안한 공포와 함께 무언가를 결의한 듯한 단호함도 엿보였다.

“괜찮아요…….”

떨리는 목소리가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괜찮다?

무엇이 괜찮은가.

‘안 돼!’

장기린은 속으로 외쳤다.

지금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도, 그가 앞으로 겪어야 하는 미래도.

스릉―

휘연의 목에는 서늘하게 빛나는 은빛의 칼날이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차갑고 무거운, 그러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진 얼굴이군. 오랜만이야.”

그 순간, 얼굴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꿈틀― 하고 웃었다.

<9권에서 계속>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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