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70화 (119/686)

第六十七章 ― 항주탈출(杭州脫出)

“연? 네가 어떻게……. 그리고 당신은……?”

남궁휴는 혼란스러웠다.

남궁연이 이곳에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연의 뒤에 서 있는 차분한 인상의 사내는…… 왠지 모르게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그자들, 아니, 객주님과 같아!’

풍운객잔을 습격했던 세 명의 괴한. 그리고 장기린. 그들과 같은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가진 사내였다.

남궁휴는 본능적으로 부운화가 그 괴인 삼인방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원의 말로는 아직 움직이기 힘들 거라던데, 어떻게 일어난 거예요!”

“어? 아니, 그게…….”

“빨리 누워요! 지금이 아니면 누워 있을 틈도 없을 테니까.”

동생에게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남궁휴.

처음엔 남궁연의 박력에 밀려 순순히 침상으로 떠밀린 그였으나 이내 그녀의 말 중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누워 있을 틈이 없다니?”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 한 누워 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니면 간옹이 그를 쫓아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 이야기는…… 아니, 우선 이분에 대한 소개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분의 이름은 부운화. 장 객주님의 의형제분으로, 오라버니와 강 숙수님을 간옹 의원에게 데려다 준 장본인이세요.”

“의형제……?”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남궁휴.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형님의 의형제?!”

운찬은 벼락이라도 맞은 양 고개를 팍, 들었고,

“……형님?”

부운화 역시 눈을 가늘게 뜨며 운찬을 바라봤다. 둘의 눈싸움이 길어지자 남궁연이 끼어들었다.

“일단 설명부터 할게요. 풍운객잔을 습격한 자들……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 풍운객잔에 관리들이 가득한 거 알아요?”

“뭣!”

“누군가 뒤처리를 시작했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사람’도 뒤처리를 할 자신이 있다는 의미겠죠.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객잔 식구들의 뒤를 쫓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요.”

남궁휴와 운찬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쫓는다고?”

“그 괴물들이? 우리를?”

남궁휴와 운찬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명백한 공포. 그들에겐 전에 있던 싸움에서 생긴 두려움이 아직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겁이 나십니까?”

그때, 부운화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강합니다. 잔인한 성품을 지녔고,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론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곤 하죠. 당신들이 겁을 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러니 도망치자는 말입니다.”

“도망……?!”

“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후퇴해야 하는 법입니다. 괜한 오기를 부리다가 헛된 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지요. 그건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남궁휴와 운찬을 번갈아 응시하는 부운화의 눈빛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한 진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궁휴는 그 눈빛에 당황하며 뭔가에 저항하듯 빠르게 외쳤다.

“하, 하지만, 풍운객잔을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지켜 내야…….”

“중요한 것은 사람. 거점은 사람만 남아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되찾을 수 있다.”

“……!”

“그게 대형께서 과거에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게다가 이미 풍운객잔은 적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다시 되찾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힘을 보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운찬과 남궁휴가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침통해하는 사이, 남궁연이 첨언을 덧붙였다.

“뭘 고민하는 거예요? 답은 하나뿐이잖아요.”

“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간단한 문제예요! 상대는 어떤 수를 썼는지 몰라도 관부까지 장악하고 있어요. 섣불리 대항하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죠. 지금은 일단 몸을 피하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예요?”

풍운객잔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었으나, 결국 남궁연의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상대할 수 없는 적과 싸우는 것은 장기린도 원치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몸을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래, 알겠어. 연, 그럼 도주로는 어디야? 우리가 몸을 피할 만한 방법이 있는 거야?”

“물론이죠. 이미 방 노(老)를 통해 방법을 알아봐 두었어요. 뒷골목 쪽에 전문적으로 도성(盜城)을 돕는 자들이 있다나 봐요. 그들이 마련해 준 통로를 통해 관문 밖으로 빠져나갈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세가로 돌아가야죠.”

남궁휴를 바라보는 남궁연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남궁휴는 그 순간 뭔가를 직감하고 침묵을 지켰다.

세가로 돌아가자는 남궁연의 말이 단순히 몸을 피하자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가……. 연, 너는 날 아직 포기하지 않았던 거니.’

진중한 표정이 되는 남궁휴.

그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운화가 나섰다.

“이제 이동해야 할 시간입니다. 슬슬 준비하시죠.”

“지금 바로요?”

“예. 이미 이곳도 드러났을 테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부운화는 선언하듯이 그렇게 말한 뒤, 방 밖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진구! 간옹 의원을 모셔와라.”

“어? 지금요?”

“그래, 지금.”

“예. 알았…… 우왓! 가만히 있어! 난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문득 진구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나타난 진구의 양쪽 옆구리엔 십삼 세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소년이 짐짝처럼 들려 있었다.

“내려 줘요!”

“저희가 알아서 걸을 수 있어요!”

진구는 질린 얼굴로 버둥거리는 두 소년을 내려놓았다.

“꼬맹이들이 무슨 힘이 이렇게 세!”

불평하는 진구에게 아칠과 아팔은 혀를 베― 하고 내밀더니,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남궁휴와 운찬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말하며 재잘대기 시작했다.

“진구, 너는 애들과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운화는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쾌활하고 활기찬 성격을 가진 진구이기에 애들을 맡겼던 것이다.

“무슨 소리세요, 둘째 형? 저, 애들 싫어해요.”

“그래? 언제부터?”

“원래부터 그랬어요. 어린것들이 소리나 빽빽 지르고, 참을성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면서 끝까지 고집만 부리고…….”

“하핫!”

투덜대는 진구를 보며 부운화는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진구가 말하고 있는 건 진구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툭탁거리며 싸우면서 아이들에게조차 절대 안 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진구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진구야.”

“예, 둘째 형님.”

“동료들에게선 아직 연락이 없었나?”

부루퉁하게 서 있던 진구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동료.

지금 항주로 오고 있는 추룡과 대석, 그리고 적룡기마대원들을 말함이다.

“없었어요. 다섯째 형이 다시 확인하러 가긴 했지만,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했구요.”

“우생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렇겠지.”

부운화는 침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싸움은 할 수 없을 듯하다, 진구야.”

“쳇, 아쉬워 죽겠다구요.”

“일단은 후퇴다. 객잔 식구들의 퇴로를 확보한 뒤, 우리는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빨리들 도착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이 목덜미의 원한을 갚아 줄 텐데 말이죠.”

진구는 우측 목덜미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상흔을 손으로 매만지며 분한 듯이 숨을 씩씩거렸다.

삼대천 중 괴력의 우르칸, 그리고 신궁 자이혼을 섭우생과 함께 상대하려다가 생긴 상처였다.

이 대 일로도 벅찬 상대인데 둘을 한꺼번에 막으려고 했으니…….

부운화가 옆에서 돕고, 때마침 장기린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이 먼저야.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도록 해라.”

“에이,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장난치지 말고. 지금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야.”

“하하! 그럴수록 즐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건 둘째 형님이에요.”

부운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언제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싸워 온 적룡기마대.

동료들끼리 그 위기 속에서 가족과 같은 유대를 쌓다 보니 격의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제대로 하겠지.’

진구는 할 때가 되면 하는 녀석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삼십 명 이상의 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간부가 될 수 없었을 터.

“누가 날 불렀다는 거야?”

그사이, 짐 정리를 마쳤는지 커다란 봇짐을 등에 멘 사내가 나타났다. 짧게 깎은 머리에 소매를 걷어붙여 드러난 울퉁불퉁한 팔뚝.

뒷골목의 명의라 불리는 간옹이었다.

“나를 부른 게…… 그쪽 형씨인가?”

간옹은 부운화에 대해 가늠하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봤다.

“접니다. 인사는 처음에 드렸지요.”

“아깐 정신 없어서 잘 못 봤지. 환자가 환자를 데리고 우르르 몰려왔으니까.”

“그럼 다시 인사하죠. 부운화입니다. 대형께서 신세를 많이 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깍듯한 자세로 한쪽 주먹을 감싸 쥐는 정중한 포권.

부운화가 예를 취하자 명가에서 배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대형이란 건…… 그 장기린이라는 사람 말이지?”

“그렇습니다.”

“흐음…….”

간옹은 묘한 시선을 부운화에게 보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특이한 성품이군. 정반대이면서도 또 자세히 보면 묘하게 닮았고…… 게다가 이 살기. 아까 시끄러운 놈도 그렇더니, 단체로 과거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거야?”

간옹의 의미심장한 말에도 부운화는 평온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나, 한 발 뒤에 빠져 있던 진구는 달랐다.

“어이, 의원 나으리. 혹시 그 시끄러운 놈이라는 건 날 말하는 거야?”

“또 누가 있겠냐. 그걸 물어봐야 알아? 멍청한 놈.”

“뭣……!”

“그래서? 짐을 싸라고 해서 싸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거야?”

건들거리면서 묻는 모습이, 마치 침이라도 퉤, 하고 뱉었다간 영락없는 파락호였다.

저런 모습 뒤에 신의의 경지에 오른 의술(醫術)을 감추고 있다니,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옆에서 울컥해서 나서려는 진구에게 꿀밤을 한 대 때려 말린 부운화가 공손하게 답했다.

“안휘성입니다. 쫓는 자들도 다른 성내까지 쫓아오긴 힘들 테고, 이쪽 분들의 집이 있는 곳이니 가는 길에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운화는 손으로 남궁휴와 남궁연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흐음, 안휘라…….”

“갑작스레 터를 버리고 떠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부운화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원래 있던 곳에서 갑작스레 내쫓기듯이 떠난다는 것은 상당히 당혹스런 일일 터.

게다가 그의 대형이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이기에 더욱 죄송한 일이었다.

“뭐야, 부담스럽게. 그렇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쪽 대형한테 해 준 일에 대해서는 이미 그만한 대가도 다 받았으니 나한테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은(恩)은 은, 답(答)은 답입니다. 둘은 상쇄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먹물 좀 먹은 듯한 대답이구만.”

“게다가 이쪽의 사정으로 인해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으니 사죄할 일이 더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나참, 됐다고. 그 사람이나 형씨나 똑같구만. 이상한 면에서 고지식해.”

간옹은 혀를 차며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슬슬 자리를 뜰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니 형씨도 내 부탁이다 생각하고 더 이상 부담스럽게 굴지 마.”

“예, 알겠습니다.”

부운화는 손을 휘휘 내젓는 간옹에게서 몸을 돌렸다.

“남궁 소저.”

“네?”

부운화를 지켜보고 있던 남궁연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제 출발하시죠.”

“아, 네.”

남궁연의 눈빛이 바뀌었다.

진지하고 냉철한 눈.

정보를 다루는 뇌안각 지부장다운 눈빛이었다.

“마차는 두 대를 빌렸어요. 한쪽엔 휴 오라버니와 강 숙수님, 그리고 간 의원님께서 타시고, 다른 한쪽엔 저와 아칠, 아팔이 탈게요.”

“뭐야, 마차 안에서도 부려먹을 생각이야?”

“네. 혹시 중간에 상처가 악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에 대한 대가는 안휘성에 도착하면 확실히 지불해 드리죠.”

남궁연은 간옹에게 감사는 표할망정 미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받은 것이 있다면 그만큼 갚아 주겠다는 상인 같은 태도였다.

지금까지 그가 한 행동과 들은 풍문을 근거로 가장 합리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됐고.”

간옹은 납득한 듯이 뒤로 물러섰다.

“잠깐, 그럼 저 두 사람은? 함께 가는 거 아니었어요?”

숨을 쌕쌕거리고 있는 남궁휴를 대신해 운찬이 물었다.

“둘이 아니라 셋이에요. 저 세 분은 말을 타고 가시기로 했어요.”

“말을 타고……?”

의아해하는 운찬에게 부운화가 첨언했다.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기동력은 살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아…….”

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를 대비하는 듯한 부운화의 모습에서 묘한 박력을 느낀 것이다.

“자, 그럼 출발해요. 오라버니는 제가 부축할게요.”

남궁연이 남궁휴를 부축하고, 부목을 짚고 움직이던 운찬은 아칠과 아팔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도왔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여덟 사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주 뒷골목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 ☆

“급보입니다!”

“음?”

주변에서 귀견장이라고 부르는 음산한 장원의 내부.

중앙 천막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삼대천의 하시르는 원치 않던 말을 듣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저기, 시키신 대로 풍운객잔의 생존자를 찾아 뒷골목으로 갔는데…… 이미 의원의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의원도 함께 몸을 내뺀 듯합니다.”

“미리 몸을 뺐다?”

하시르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역시 쫓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군요. 하긴, 표풍검과 귀군사가 있으니 당연한 일일까요?”

하시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삿갓을 눌러썼다. 밖으로 나가기 전엔 언제나 삿갓을 쓰는 것이 하시르의 습관이었다.

“관문 쪽은 어떻습니까?”

“이미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에게 공문이 내려간 상태입니다. 생존자들의 인상착의를 전해 두었으니 관문을 지나가려고 하다가는 관병들에게 붙잡힐 것입니다.”

“흐음…….”

“뿐만 아니라 인상착의를 숙지한 관병들이 뒷골목을 중심으로 순찰을 돌도록 만들었습니다. 비슷한 자를 찾게 되면 저희에게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를 찾는 걸로 되어 있습니까?”

“역모에 연루된 죄인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관병들도 책잡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뛸 것입니다.”

관문을 막고 관병들로 수색을 시키며 상대를 역모의 죄인으로 만들었다.

올바르고 빠른 일처리였으나, 하시르는 잠시 숙고하다가 하나의 지시를 덧붙였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예?”

“당신은 관리들 쪽에 연락을 취해서 오늘 하루 항주 주변 수색병들을 철수하도록 만드세요. 제가 직접 텐챠이 수호대를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겠습니다.”

“직접, 말입니까?”

“예. 상대는 표풍검과 귀군사. 분명 어떻게든 항주를 탈출할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하시르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향하는 방향에선 차기 텐챠이 수호대 일천 명이 각자의 말에 올라탄 채 기마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을 울리며 힘차게 달리던 일천의 기마병이 갑작스레 고삐를 옆으로 틀었다.

훈련을 담당하던 기수가 방향 전환의 신호를 보낸 것.

기마병들은 거의 직각에 가깝게 단번에 방향을 전환했다.

설령 두 발로 직접 뛰는 보병이라도 갑자기 행군 방향을 직각으로 바꾸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사람의 몇 배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기마병이라면야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주인과 일심동체가 되어 있는 뛰어난 말과 그 위에 탄 특출난 전사들의 결합으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두―!

척! 척!

순식간에 일천 기의 기마병이 하시르의 앞에 몰려와 멈춰 섰는데, 그들에게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허리에 찬 박도와 하늘을 찌를 뜻한 군기(軍氣)가 눈부시게 빛났다.

하시르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합니다.”

히히힝―!

하시르는 미리 세워 두었던 자신의 말에 올라타 그들의 선두로 다가갔다. 푸른빛이 감도는 갈기를 휘날리는 백색의 명마가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위에 올라탄 삿갓의 사내, 하시르.

그의 목소리가 낭랑하면서도 나직하게 일천 명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여러분은 붉은 악귀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대답없는 침묵.

하지만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전사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분노. 살기. 증오.

과거에 있은 명군(明軍)의 대학살로 가족을 모두 잃은 그들에게 있어 붉은 악귀는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였던 것이다.

“지금 그의 가족들이 항주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심산이지요.”

히히힝―!

하시르가 타고 있는 말이 큰 소리로 울었다. 그와 함께 일천 전사의 가슴에도 뜨거운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우리들이 가족과 친우를 잃고 느껴야 했던 슬픔과 분노를 저들도 똑같이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지금 하늘로 올라간 우리 가족들의 영혼들이 기뻐하지 않을까요?”

푸르륵―

말들의 투레질 소리에 섞여 일천 전사의 소리없는 분노가 넘실넘실 전해져 왔다.

하시르는 무장으로서의 패기는 없었으나, 사람의 마음속을 자극할 줄 아는 뛰어난 언변과 선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갑시다. 그리고 붉은 악귀에게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는 겁니다.”

오오오―!

뜨거운 함성이 귀견장을 뒤흔들었다.

곧 선두로 나서는 하시르의 뒤를 따라 일천 명의 기마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대천의 나머지 두 명인 우르칸과 자이혼이 합류하며 더더욱 기세를 더한 그들은 항주의 외곽을 크게 도는 경로로 나아갔다.

☆ ☆ ☆

“으아아, 관병들이 왜 우릴 쫓는 거야!”

억울함이 가득한 진구의 외침은 마차 안에 있던 모두에게 들렸다.

뒷골목에서 마차를 타고 출발했던 일행은 그들의 탈출을 도와줄 사람을 만나기 전에 관도에서 관병을 만나 붙잡힐 뻔했던 것이다.

느닷없이 꺼내 드는 종이 위엔 일행의 인상착의를 묘사한 듯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부운화가 빠른 판단력으로 관병들을 기절시키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되었을지…….

그대로 관병들이 몰려들어 붙잡히지 않은 게 다행인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역범(逆犯)…… 이라고 했죠.”

남궁연의 목소리에선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느닷없이 역범이라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만큼 상대의 손이 관부에 넓게 뻗어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역범으로 몰리다니, 상상 이상이네요. 생각보다 훨씬 힘들겠어요.”

운찬은 불안한 듯이 계속 투덜거렸고, 남궁연은 침중한 기색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두두두두―

덜컹― 덜컹―

일행을 실은 마차 두 대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덜컹거리는 진동이 심했지만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상대가 관문과 관병들을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주변에서 훤히 볼 수 있는 넓은 관도를 이용했다가는 곧바로 추적당할 게 빤했던 것이다.

히히힝―!

그렇게 일각 정도를 달렸을 때, 마차의 양옆과 뒤를 호위하듯이 달리던 세 기의 기마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기마의 주인들이 제각각 고삐를 당기며 속도를 늦춘 것이다.

“추격이다. 이각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휘자의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모양이야.”

부운화의 말에 섭우생과 진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 이어질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것은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마차 안에서 이야기를 들은 남궁연이 놀라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추격이라고요? 말도 안 돼요. 관병들은 밧줄로 묶어서 숨겨 두었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저, 아마 저들은 관병과 상관없이 추적했을 겁니다.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빠져나갔다는 가정하에 도주로를 쫓아온 것이겠지요. 저쪽에 병법에 능한 자가 한 사람 있는 듯합니다.”

점잖은 목소리로 남궁연에게 대답해 준 것은 왼쪽에서 기마를 달리던 모사 섭우생이었다.

그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도 태연하게 앉아 철섭선을 살랑거리더니, 뒤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둘째 형님, 적들이 누군지 한 번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부운화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력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히히힝―

그 말과 함께 마차와 말의 속도가 동시에 느려지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부운화의 귓가로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스물. 경기병. 생각보다 빨라.”

“경기병이면, 관병은 아니지 않을까요?”

“으럇―! 관병이 아니면, 그놈들이겠죠?”

세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완전히 말 머리를 돌렸다.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마차 두 대만이 동떨어져서 계속해서 길을 나아갔다.

“잠깐만요! 무슨……?”

“먼저 가십시오. 저희도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당황해서 고개를 돌린 남궁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희는 이쪽이 되레 편합니다. 오히려 부상자가 함께 있으면 싸우는 데 방해가 됩니다.”

부운화의 목소리는 공격적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배려해 주는 따뜻함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싸움 앞에서는 냉철.

부운화는 적아를 불문하고 우선순위의 구분이 확실했다.

“아…….”

남궁연이 그 냉철함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세 사람과 마차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목적지를 향해 쉬지 말고 달리라는 부운화의 조언만이 그들에게 아련하게 전해졌다.

이제 남궁연의 모습은 부운화에게 보이지도 않았다.

부운화는 확인하듯이 허리춤의 쌍도의 손잡이를 툭, 하고 건드린 뒤 섭우생과 진구를 쳐다봤다.

“스물이면 정면으로 붙어도 될 테지만…… 그들 중에 삼대천이 있을 수도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촤악―!

옆에서 섭우생이 철섭선을 접은 채 손바닥에 두드렸다.

“하나면 상대할 만하고, 둘 이상이면 도주해야 합니다. 물론 둘째 형님도 알고 계시겠죠?”

“에엑―! 왜 도망쳐요! 이참에 실력을 제대로 보자구요. 전에 싸웠을 때 해볼 만했어요!”

진구는 자신의 애마 삭풍의 안장에 매어져 있던 적룡창을 들어 올리며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섭우생은 그런 진구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진구야, 네 목의 상처나 다시 한 번 보고 말해라.”

“으윽!”

“네 맘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냉정해져야지. 삼대천 둘이면 지금 우리 셋으론 간신히 동수를 이룰까? 거기다 기마병이 더 있다면 이길 수 없어.”

진구는 분한 듯 얼굴이 빨개졌지만, 섭우생의 지적에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섭우생의 지적은 지극히 온당했다. 트집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옳은 말이었다.

“그럼 정해졌군. 일단은 상대를 살펴보고 삼대천의 수에 따라 기습 여부를 결정하자.”

“예.”

“알았어요.”

부운화, 섭우생, 진구.

세 사람은 천천히 말을 움직여 길가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네 번째 수색조를 이끌던 쿠르친은 텐챠이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전도유망한 전사였다.

텐챠이와 싸워 봤다는 것은 한때 일천 명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사였다는 뜻이다.

그는 특별히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았지만 싸움 방식에 대해서 높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항상 상위권의 서열을 차지할 수 있었다.

“잠깐.”

쿠르친이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자 뒤따르던 스무명의 전사가 동시에 멈춰 섰다.

“음…….”

쿠르친은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바닥에 난 흔적을 살폈다. 앞으로 쭉 이어지는 바퀴 자국이 네 개. 따로 독립된 말발굽 자국이 세 쌍이었다.

항주 관도 근처의 오솔길에서부터 똑같은 흔적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쿠르친이 서 있는 지점에서 그중 몇 개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것은 말발굽 자국뿐.

사물을 주의 깊게 살피는 쿠르친이 아니었다면 미처 놓쳤을지도 모르는 미묘한 흔적이었다.

“기습을 주의한다. 주변을 경계해.”

스릉―! 스릉―!

뒤따르던 전사들이 제각기 무기를 꺼내며 주위를 경계했다.

순식간에 삼엄해지는 공기.

스물한 명의 날카로운 시선이 길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중 몇 명은 의심스러운 덤불이나 수풀 사이를 창이나 칼끝으로 찔러 보기도 했다.

휘이잉―

일순, 서늘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나머지 스무 명의 전사가 빨리 마차를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종용했지만 쿠르친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그렇게 반 각 정도 지났을까.

다그닥― 다그닥―

갑자기 쿠르친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삼 장 정도 앞쪽에서 목 뒤로 긴 회색 갈기를 휘날리는 명마가 걸어 나왔다.

명마의 위에 타고 있는 것 또한 인상이 범상치 않은 젊은 전사.

그자는 허리에 한 쌍의 장검을 차고 고요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흠!”

쿠르친이 침중하게 눈을 빛냈다.

누군지는 한눈에 알아봤다.

표풍검.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붉은 악귀의 가장 큰 조력자. 표풍처럼 회전하는 검술로 수많은 초원의 전사들의 생명을 앗아 간 학살자였던 것이다.

‘역시…….’

쿠르친은 전율을 느꼈다.

고요한 기운 가운데 그 무엇이라도 갈라 버릴 듯한 예리한 살기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의 그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적이었다.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제법이다. 정신없이 추격하던 도중에도 흔적을 판별하고, 게다가 우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다니. 기척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알았지?”

“감이다.”

쿠르친은 능숙한 한어로 답했다.

“감? 만약 그렇다면 아깝군. 원의 잔당만 아니었다면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개소리 하지 마라. 표풍검, 오늘 죽는 것은 너다.”

“……그건 조금 실망스럽군. 상대를 보는 눈이 없는 것인가?”

푸르륵―!

부운화의 말이 주인의 불쾌함을 느낀 듯 투레질을 했다.

“전원이 지랑대 급의 전사인 건 알겠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한 것 아닌가.”

천지인(天地人)으로 나눠지는 텐챠이 수호대의 계급 중 지랑대 급이라는 것은 각자가 천인장 수준은 되는 전사라는 뜻.

하지만 부운화는 숫자로 비교가 불가능한 삼대천 급의 강자였다.

말 위에 오연히 서서 스물한 명의 전사를 하나씩 살펴보는 부운화의 냉철한 시선을 보며 쿠르친은 이를 빠득! 하고 소리 나게 갈았다.

“분하지만, 분명 우리들만으로는 무리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하지만 우린 혼자가 아니다.”

주먹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쫙 펼치는 쿠르친.

그 순간, 맨 뒤에 있던 연락병이 품속에서 호각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우리의 생존 확률은 오 할 이상이다.’

쿠르친은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각만 불면 뒤쪽에 있는 ‘그분’이 온다.

지랑대 급의 전사가 아무리 강해도 부운화에게는 삼초지적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시간을 끌 자신이 있었다.

그분만 오시면 승기는 그들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삐……!

쒜에에엑―!

하지만 연락병이 호각을 불려는 찰나, 옆에서 날아온 철창이 정확하게 호각을 박살 내며 건너편 나무에 틀어박혔다.

“흡……!”

손가락이 날아갈 뻔한 전사는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정확히 호각만을 부순 투창술은 대단한 정확도를 뽐내고 있었다.

“호각 같은 거 불지 말라고. 귀찮게 되는 건 질색이야.”

키는 작지만 튼튼한 체구의 갈색 말이 수풀을 헤치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 위에 올라탄 것은 호전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갈색 피부의 젊은 청년. 어깨를 돌리고 목을 우두둑, 소리가 나게 이리저리 꺾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를 위압감을 자아냈다.

“전귀……!”

쿠르친이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전귀가 등장함으로 인해서 지금 쿠르친의 생존 확률은 삼 할 이하로 뚝 떨어졌다.

“나참,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상황을 좀 보자니까,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거냐?”

그때 쇠로 된 섭선을 팔랑이며 등장하는 또 한 사람.

뼈만 남은 것처럼 비쩍 마른 몸매지만,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전혀 왜소해 보이지 않았다. 속에 갑옷을 입고 그 위로 문사복을 입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잘 어울렸다.

“귀군사……!”

땅으로 꺼질 듯한 목소리로 신음을 토해 내는 쿠르친.

표풍검에 전귀에 귀군사.

혹시나 했지만, 이 셋이 모두 등장한 이상 생존 확률은 일 할 이하였다.

“다섯째 형. 이런 때에 잔소리라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게다가 호각을 막은 게 뭐가 잘못이라고?”

“확실히 그건 잘한 일이었지.”

“거봐요. 일단 금방 끝내야죠. 마차도 따라잡아야 하고, 더 머뭇거리다가 증원병이라도 오면 귀찮아진다구요.”

진구는 잔뜩 경계하고 있는 전사들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며 나무에 박혀 있는 철창을 도로 뽑아 들었다.

“크윽……!”

고민하던 쿠르친은 결단을 내렸다.

“텐챠이 수호대, 전원…… 끝까지 싸운다!”

오오옷―!

텐챠이 수호대 스무 명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환호성을 지르며 각자 대오를 짜 세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다섯은 귀군사, 다섯은 전귀.

나머지 열한 명은 표풍검을 향해서였다.

“끼요옷―!”

쿠르친은 가장 앞에 서서 부운화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달리는 말의 힘을 살려 꽉 움켜쥔 박도를 사선으로 내려쳤다.

쩡!

필살의 일격이었으나 부운화는 그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 냈다.

이화접목. 사량발천근.

가볍게 들어 올린 듯한 부운화의 검 속에는 그러한 유검(柔劍)의 묘리가 잔뜩 녹아 있었던 것이다.

쿠르친의 도를 옆으로 부드럽게 흘려보낸 뒤 제자리에서 빙글, 반 회전 하는 장군검.

이내 쿠르친이 내려친 힘을 고스란히 담아, 아니, 그것에 몇 배나 되는 힘으로 되돌려진 검격이 쿠르친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쉬이익―!

쩡!

“흡……!”

쿠르친은 식은땀을 흘렸다. 되받아치는 일격을 막아 낸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부운화의 일격에 그가 아끼던 박도에 금이 갔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그의 말은 다리를 휘청거리며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했다.

새삼 삼대천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표풍검의 무위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만약 거기서 한 번이라도 공격이 더 날아왔다면 버틸 수나 있었을지.

‘삼초지적? 잘못 생각했다. 일초지적이야. 표풍검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끼요오옷―!”

“흐아앗―!”

기합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간 열 기의 기마가 표풍검을 덮쳤다.

일 대 십.

당연히 십 쪽이 우세해야 할 싸움이건만, 밀리고 위태로운 것은 오히려 수가 많은 쪽이었다.

쿠르친은 아직도 충격으로 덜덜 떨리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붙들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각자 다섯 명씩 붙은 귀군사와 전귀 쪽이 생각보다 잘 싸워 준다는 점이었다.

푸화악―!

“조심……!”

쿠르친이 다급하게 경호성을 발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가만히 서 있을 땐 물처럼 고요했으나,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니 표풍, 아니,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와 같은 위력을 보였다.

공중에서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는 한 쌍의 장군검.

쩡! 쩌정! 푸확―!

말의 목이 종잇장처럼 찢겨지고, 달려들던 전사의 육체가 일도양단되어 피분수를 내뿜으며 옆으로 터져 나갔다.

푹!

가볍게 내찌른 검격이 전사의 가슴을 꿰뚫고,

서걱―

십자(十字)를 그리며 날아간 반대쪽 장군검이 전사의 목을 자연스레 잘라 냈다.

“끼요오오옷―!”

그래도 기죽지 않고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전사들을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세 개의 박도가 동시에 한 사람을 노렸지만, 부운화가 태연하게 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자 놀랍게도 죽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전사들의 무기가 뭔가에 홀린 듯이 허공의 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채채챙―!

빼앗긴 무기들이 뒤쪽으로 날아가 떨어지고, 신들린 듯 움직인 한 쌍의 장군검이 무기를 잃고 당황한 전사 셋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켰다.

푸화하학―!

치솟는 피분수가 하늘을 수놓았으나 부운화의 몸에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조용하고 부드럽다.

휘두른 장군검을 다시 회수하는 모습은 군더더기 하나없이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시체와 핏물 속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말의 태연한 모습 또한 경이로울 뿐이었다.

쿠르친은 그 아름답기까지 한 살육의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차라리 괴력의 우르칸이 맨손으로 병장기를 부수는 모습이 더욱 현실적이었다. 부운화의 싸움 방식은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법한 신장(神將)의 모습. 상대의 공격을 꿰뚫어 보고, 그 틈을 완벽하게 파훼하는 비현실적인 무공이었던 것이다.

“이런 괴물이…….”

쿠르친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적룡기마대가 나타나면 초원의 무사들이 공포에 질린 채 속수무책으로 도망쳐야만 했는지.

그리고 텐챠이와 삼대천이 직접 나서야만 적룡기마대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상대할 수 없다.’

이해 불능.

불가해(不可解).

스무 명의 수장인 쿠르친이 그렇게 느꼈을진데, 다른 전사들은 어떻겠는가.

죽는 순간까지 이빨로 물어뜯는 한이 있어도 싸운다는 텐챠이 수호대였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하다. 일격에 죽이지는 못하겠어.”

부운화의 입에서 담담히 흘러나오는 말은 조롱인지 칭찬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으…… 으으……!”

쿠르친은 부운화에게 압도되었으나, 그럼에도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그는 텐챠이 수호대.

때때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 자긍심을 가진 초원의 전사였다.

“칼간의 원한! 여기서 갚고 말겠다!”

“칼간?”

부운화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칼간.

장가구를 뜻하는 몽고의 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떠오르는 기억.

황제의 친정으로 진격을 시작할 때 정보 차단을 위해 민간인까지 모조리 죽여야만 했던 장가구 혈사가 일어났던 곳이다.

그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만이 넘는 인원이 그대로 목이 베이고 땅속에 묻혔다.

“생존자, 아니, 희생자의 친족인가?”

“흐아아앗―!”

쿠르친은 대답 대신 필살의 심정을 담은 도격을 날렸다.

쩡! 하고 부딪치는 박도.

부운화가 쿠르친의 일격을 막는 사이, 나머지 살아 있는 다섯 전사 또한 칼간이라는 말에 다시 자극을 받아 광기 어린 눈빛으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키야앗―!”

“흐야앗―!”

쩡! 쩡! 쩌정!

분노와 원한을 모조리 불태우며 귀신처럼 달려드는 다섯 전사의 투혼은 무력의 격차를 무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처음으로 부운화가 조금 뒤로 물러섰다.

다섯 명의 전사는 두 눈을 시뻘겋게 충혈되어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속에 깃든 것은 단순히 지금 생사대적을 향한 적의가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는 듯한 뿌리 깊은 원한이었다.

“그런가, 그런 거였나…….”

납득한 부운화.

불가해가 이해되는 순간, 광기로 인해 잠시 메워졌던 무력의 격차가 다시금 거리를 벌였다.

쩌저정!

휘두르는 일격에 다섯 개의 박도가 일제히 튕겨 나가고, 아름다울 만큼 고요한 궤적을 그린 쌍검이 전사들의 허리와 목을 휩쓸었다.

푸화하학―!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핏물 속에서 눈을 부릅뜬 전사들이 하나둘씩 차례대로 목숨을 잃고 거꾸러졌다.

모든 것은 첫 번째 전사의 양단된 상체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이뤄졌다.

멈춰졌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이제 달려들었던 열한 명의 전사 중 쿠르친 한 사람만이 남은 상황.

쿠르친의 손에 들린 박도가 파르르 떨렸다.

“크윽, 과연 강하다. 그러나…….”

지금 쿠르친의 실력은 부운화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텐챠이라면 어떨까?

그들이 목표로 삼아 지금껏 수련해 온 초원 최강의 전사라면?

“푸른 하늘의 늑대는 최강! 우리의 복수는 텐챠이 장군께서 해 주실 것이다!”

절규하며 달려든 쿠르친의 박도는 다섯 합을 버틴 뒤 손목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그는 끝까지 이로 물어뜯어서라도 싸울 기세로 달려들었으나, 완전무비(完全武備)의 경지에 오른 부운화의 검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쿠르친의 목을 날리고 몸을 검으로 꿰뚫어 바닥에 내려치며 마무리를 마쳤다.

“으음…….”

부운화는 쿠르친을 죽인 뒤 팔목에 남은 상처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저 긁혔다고 해도 좋을 만큼 피가 송골송골 맺혔을 뿐, 흘러내리지도 않는 약한 상처였지만, 절대 상처를 입지 않을 싸움에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적 산채에서 몽고군을 만나고, 텐챠이 수호대였던 지랑대의 전사와 싸웠을 때와 같았다.

쿠르친의 목을 베는 순간, 그가 목에 걸고 있던 쇠로 된 목걸이가 끊어지며 부운화의 팔뚝에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느낌이 좋지 않군.”

부운화는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린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촤아악―!

그때 즈음, 진구가 휘두른 적룡창이 마지막 전사의 가슴을 꿰뚫고, 섭우생이 휘두른 철섭선이 상대의 목을 갈라 놓았다.

남은 것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와 스물한 명의 시체뿐이었다.

각자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다가온 섭우생과 진구는 부운화의 얼굴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둘째 형님?”

“둘째 형?”

부운화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섭우생과 진구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이 정도로 뭘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느낌이 좀 좋지 않아서.”

부운화는 팔뚝의 상처를 잠시 매만진 뒤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마차를 따라잡아야지.”

“아, 잠시만요, 둘째 형님. 어차피 추적을 당했는데 유인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섭우생의 말이었다.

어차피 싸움이 일어났으니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아예 그들 세 사람이 시선을 끄는 게 어떻겠느냐는 소리였다.

“아니. 앞서 가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래선 안 돼. 마차의 흔적을 먼저 쫓을 수도 있는 일이고. 여기서 갈라지는 건 오히려 저쪽에 위험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 거야.”

“음, 마차의 흔적은 어느 정도 지울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이번엔 느낌이 안 좋아. 일단 마차와 합류한다.”

부운화는 평소와 달리 고집을 세우고 있었다.

이럴 때의 부운화의 말은 대부분 맞기 때문에 섭우생과 진구는 서로를 한 번 흘깃 쳐다본 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렇게 하죠.”

각자 말에 다시 올라타는 세 사람.

이내 그들은 피 내음이 가득한 싸움터를 뒤로한 채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북쪽. 관도가 아닌 소로입니다. 흔적이 잡혔습니다.”

“그곳에 다 모여 있는 것은 확실한가?”

“예. 쿠르친과 스무 명의 수색대. 모두 전멸입니다. 일방적인 싸움이었고, 생존자는 없습니다.”

“음, 쿠르친.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다.”

“통찰력이 있어서 장수로서 자질이 있었는데, 아까운 인물입니다.”

“그랬나? 하지만 죽었다면 그 운이 여기까지라는 것이겠지. 살아남는 운이 부족한 녀석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안 된다.”

“예. 전사에게 있어 운이란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지요.”

“다만 다 같은 초원의 아들로서 복수는 해 주어야겠지. 삼대천 모두를 데리고 가도록.”

“직접…… 안 가십니까?”

“함께 간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

“아…….”

“아니면, 삼대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아뇨,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그 말, 믿도록 하지.”

“예, 믿으셔도 좋습니다.”

환자들을 태운 마차와 합류한 세 사람은 한 시진 만에 다시 뒤를 추적하는 병력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세 사람만 남아 도주로를 열 여유가 없었다.

쿠르친과 스무 명의 기병이 단순히 그들의 흔적을 뒤쫓아 따라왔다면, 이번 추적자들은 그들의 도주로를 파악하고 앞, 옆, 뒤를 모조리 봉쇄하는 듯한 치밀한 움직임을 선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건지, 끈질기게 달려드는 텐챠이 수호대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피피핑―!

“조심……!”

부운화의 경호성과 거의 동시에 날아온 화살들이 마차의 옆면에 투두둑, 박혔다. 쫓아오던 기마병들이 쏘아 낸 화살이었다.

창문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있기라도 했다면 미간이 관통당했을 위치였다.

날아오는 화살들 중 대부분은 부운화와 진구가 쳐 냈지만 수십 개가 넘는 화살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노리고 날아오니 그걸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채채챙―!

“둘째 형! 숫자는 다섯, 우측에서 와요!”

우측은 진구가 막고 있는 방향이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지 수풀을 헤치며 뛰쳐나온 다섯 기의 기마 위엔 몸놀림이 재빠른 전사들이 날렵한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진구가 나서서 적룡창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 냈지만, 마차를 지키면서 싸우다 보니 상대를 쓰러뜨리기가 쉽지 않았다.

쩡! 따당! 챙!

진구의 움직임에 절도와 힘이 담겨 있다면 텐챠이 수호대에겐 일격필살의 기세로 휘두르는 살기와 민첩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진구는 상대를 말에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둘이나 셋씩 붙어서 공격을 방어하고, 나머지가 진구나 옆의 마차를 노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구가 놓친 기마병 하나가 마차의 몸에 큰 칼자국을 하나 새기는 순간, 진구의 입에서 잔뜩 격앙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드을―!”

쩌저저정―!

“크앗!”

진구는 괴성을 지르며 적룡창을 수십 번이나 내찔렀다. 수십 번의 찌르기를 한 호흡만에 펼치니 마치 허공에 창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부채가 하나 만들어진 듯했다.

그 부챗살 안에 들어가 있던 기병 세 사람.

그들은 미처 막아 내지 못한 찌르기 몇 개를 어깨나 팔목을 허용한 채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두두두두―

그들이 쓰러지든 말든 추적은 계속됐다. 말에서 떨어졌으니 중상을 입었을 테지만 생사를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챙― 채챙!

진구가 적룡창을 풍차처럼 휘둘러 나머지 기마병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사이, 왼쪽에선 섭우생이 분투를 하며 또 다른 적들을 막고 있었다.

“왼쪽, 셋! 아마 진로를 틀어지게 만들려는 듯합니다!”

섭우생의 철섭선은 말 위에서 사용하기엔 턱없이 짧은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휘둘러지는 도에 철섭선이 부딪치면 쩡!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칼날의 이가 나갔고, 빈틈을 파고들어 찌르면 웬만한 창봉보다도 강력한 힘으로 뼈를 부숴 놓았다.

섭우생의 움직임에 쓰러진 기병만 해도 벌써 열 명 가까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장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무공이 아니라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대국적인 시야에 있었다.

섭우생의 지시대로 시기적절하게 진로를 틀며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수십 기의 기마병들에게 붙잡혀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왼쪽으로 둘!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끊어야 합니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투로 섭우생이 조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뒤쪽으로부터 하나의 그림자가 왼쪽으로 펄쩍 뛰어 튀어나갔다.

두두두두―

모두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중에도 가장 발군인 사람을 고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이 사람이었다.

적룡기마대의 부대주, 부운화.

북쪽 전장에선 표풍검이라 불리는 그가 나서면 철벽처럼 막혀 있던 방향도 언제나 길이 열렸다.

한 마리의 명마가 회색빛 갈기를 휘날리며 날 듯이 달려 나가고, 그 위에 선 청년이 한 쌍의 장군검을 휘둘러 검격을 쏟아 냈다.

쩌정! 촤아악―! 푸확!

부운화가 검을 휘두르면 감히 세 번을 맞받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한 번, 아니면 두 번. 강유(剛柔)가 완벽하게 조화된 검술이 달려드는 전사들의 가슴이나 목을 무참히 갈라 내는 것이었다.

“끄아악!”

“크헉!”

모두들 상처를 입고도 명성이 자자한 텐챠이 수호대답게 끈질기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미 스스로의 무공을 거의 완성한 부운화는 번번이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할 만한 기회마저 냉정하게 끊어 버렸다.

강과 유의 조화.

거기에 한 치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자비한 손속.

유서 깊은 전통 무공과 지독한 살검(殺劍)의 조화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두두두두―

계속된 싸움과 추격으로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힘겹게 길을 열며 나아갔을 때, 드디어 일행의 앞길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나타나고 말았다.

번뜩.

“무언가 온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부운화였다.

멀리서 번뜩이는 인광(刃光)에 놀라 황급히 일행의 후미로 다시 나섰으나, 그때는 이미 수십 장이 넘는 거리를 격하고 놀라운 파괴력을 가진 철시가 내쏘아진 상태였다.

피이이이이잉―!

움직임이 먼저, 소리는 그다음에 나왔다.

꽝! 하고 화살이 마차의 윗면에 틀어박힌다 싶더니, 마치 포격을 맞은 배처럼 순식간에 위쪽 나무판을 한움큼이나 뜯어 가며 박살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미 시(矢)라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포(砲)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막강한 파괴력이었다.

“세상에……!”

후두둑 떨어지는 나무 파편들 사이로 경악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는 남궁연과 아칠, 아팔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로서는 ‘진정한 힘’을 사용하는 삼대천의 일인은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

“자이혼!”

부운화의 입에서 신음처럼 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황급히 뒤돌아본 그의 눈에 멀리서 긴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이국적인 복색의 사내가 보였다.

삼대천의 일인, 신궁 자이혼.

무시무시한 궁술을 지닌 그의 탄시는 이미 활의 경지를 넘어서 있는 것이었다.

그 힘은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는 무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귀한 것임이 분명했다.

번뜩! 번뜩!

“위험! 이번엔 두 개다!”

뒤쪽에서 날붙이의 반사광이 다시금 번뜩였다.

부운화는 불문곡직하고 몸을 움직여 날아오는 두껍고 큰 철시를 손에 들린 장군검으로 쳐 냈다.

따아아앙―!

“흠!”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는 것뿐이건만.

부운화의 장군검은 마치 절정고수의 필살의 일격을 막은 것처럼 웅웅― 울리며 떨고 있었다. 손목이 저릿저릿하고 어깨가 뻐근했다.

화살 하나에 담긴 내공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말을 달리면서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내야 하는 일이라 더욱 어려웠다.

부운화는 왼쪽으로 반원을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반원을 한 번 그려서 그의 몸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하나 만들어 냈는데, 그 한 번의 움직임에 나머지 하나의 철시도 옆으로 튕겨 나갔다.

푹. 푹.

두 개의 철시가 끄트머리만을 남긴 채 바닥에 깊숙이 꽂혔다.

그럼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두 개의 철시 사이에 숨어 날아오던 또 하나의 화살이 있었다.

“이런……!”

부운화는 다급하게 경호성을 발했다.

그를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이었다면 막았겠지만, 나머지 하나의 철시는 거리가 꽤나 떨어진 마차를 노리고 있었다.

쉬이이익―

꽈앙!

속절없이 날아간 화살이 남궁휴와 운찬, 그리고 간옹이 있을 마차의 중심에 꽂히며, 뒤쪽에 사람의 몸통만 한 구멍을 뚫으면서 그 속을 관통했다.

“우와앗―?!”

운찬의 비명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뻥 뚫린 뒤쪽의 구멍을 통해 안을 살피자 좌석에 앉아 있던 운찬의 사타구니 사이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세 치만 더 위로 향했어도 운찬의 가랑이에 박혔을 법한 위치였다.

운찬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굳어 있었다.

“우, 우왓, 으앗, 대, 대가 끊길 뻔했잖아! 아직 사용해 보지도 못했는데!”

억울한 듯이 외치는 운찬의 목소리가 재미있다.

지금 상황이 여유롭다면 한 번 웃음이라도 터뜨렸겠건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부운화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피이잉―!

자이혼이 철시를 쏘아 내고,

따앙!

부운화가 그 화살을 쳐 낸다.

마차를 노리는 자이혼과 그 앞을 막아서야만 하는 부운화.

그 둘의 신경전이 삼십 장이 넘는 거리를 격한 채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형님! 삼대천입니다!”

“알고 있어!”

“아니, 나머지 둘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형이 예사롭지가 않아요!”

부운화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섭우생의 철섭선이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소로의 끝쯤에서 좌측.

대략 사십 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수풀이 움직이며 무언가가 대규모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경로는 읽었지만 아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음에도 느껴지는 막강한 군기(軍氣).

삼대천 중 한 명 이상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이곳만 통과하면 더 이상 추격은 없을 것입니다. 저곳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안휘성. 저들도 성이 다른 곳까지 병력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리와 관병들을 손에 넣고 항주 안을 마음껏 휘젓고 있는 놈들이다. 안휘성까지 손을 뻗치진 않았을까?”

“그만한 시간이나 자금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목표는 항주입니다. 안휘성까진 손을 대지도, 댈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

“그리고 어차피 지금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저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습니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목소리였으나 여전히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부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섭우생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여기서 추적대를 막지 못하면 마차 안의 사람들이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남궁 소저.”

부운화는 거듭된 공격으로 지붕이 뻥 뚫려 버린 마차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죠?”

“이제 완전히 갈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앞의 다리만 건너면 안휘성이니 그때부턴 추적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앞으로 달리십시오.”

부운화의 표정과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고요했지만 그 안에선 숨길 수 없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잠깐만요. 갈라진다는 게 무슨 말이죠? 아까처럼 뒤에 남아서 싸우겠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남궁연은 부운화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대형이 아끼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한 일입니다. 이유로는 충분하죠.”

“그러니까 그 대형이란 사람이 무엇이기에……!”

“제 목숨과도 같은 사람.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가족입니다. 이번 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근엔 웃게 되셨더군요. 저에게 있어 이유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남궁연은 할 말을 잃었다.

드물게 속내를 드러낸 부운화는 물론이고, 섭우생과 진구도 그 말이 백번 옳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이길 수는…… 있어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지만 시간을 끌다가 도망칠 생각입니다. 죽을 일은 없습니다.”

별것 아닌 일인 것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부운화.

남궁연은 그의 그런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움을 받는 것은 고맙다.

하지만 무가의 자식.

그것도 대남궁세가의 장녀이자 뇌안각의 지부장으로서 무력한 아가씨마냥 보호받는 것이 결코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 빚은 꼭 갚아 주겠어요.”

“그러십시오. 저도 언젠가 소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을 겁니다.”

“꼭 살아 있어요.”

“예.”

짧은 문답으로 끝이다.

남궁연은 창밖으로 내밀었던 고개를 집어넣어 다시 자리에 앉았고, 마차 두 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내달렸다.

마차를 이끄는 마부들은 거듭된 전투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래도 든든한 아군을 보며 이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했는지 우직하게 말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일각 정도를 더 달렸을 때. 너비가 꽤 되는 대강(大江)과 그 위에 만들어진 석재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콸콸 흐르고 있는 강은 탁한 황갈색을 띠고 있었다.

최근 들어 습해진 날씨 때문에 물이 상당히 불어서 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변한 것이다.

잘된 일이다.

이것으로 마차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부운화는 그의 애마 은수의 속도에 박차를 가하면서 섭우생과 결의의 눈빛을 교환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마침내 다리의 초입에 도착하는 순간, 강렬한 군기와 함께 다리 옆쪽의 수풀이 갈라지고 있었다.

화아아악―!

땅이 쿵쿵 울리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강렬한 기파가 온몸을 찌릿찌릿하게 울렸다.

만만치 않은 상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대적(大敵)이었다.

히히힝―!

부운화는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양옆을 지키던 섭우생과 진구도 동시에 말을 멈춰 세웠다.

반면에 마차 두 대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다.

장애물도 없이 뻥 뚫린 관도.

이미 이별의 말을 나눴기에 돌아보는 사람도 없다.

부운화, 섭우생, 진구.

세 사람은 다리 너머에서 마차를 뒤쫓는 병력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한 뒤 아예 말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려 버렸다.

푸르륵―

부운화의 애마 은수가 닥쳐올 전투를 예감하고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장판파에서 장비가 몇 명을 상대했지?”

부운화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상대는 조조의 백만대군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 장판파의 지형상 삼천에서 일만 명 정도가 한계였을 겁니다. 그래서 만부부당(萬夫不當)이라는 말이 나왔죠.”

“일만이라…… 우리는 많이 부족하군.”

“장비는 촉국의 대장군이었잖습니까. 우린 기껏해야 은퇴한 병졸들인데, 비교가 가능하겠습니까?”

대답하는 섭우생의 말투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장난스러워서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부운화는 ‘하핫!’ 하고 웃었다.

“병졸이라니, 나름대로 나는 행군사마(行軍司馬)야. 대장군의 부관이라고.”

“제대했는데 무슨 관직을 따집니까?”

“하하, 그런가? 아무튼, 오늘은 장익덕의 흉내를 좀 내야겠어.”

스릉―

부운화의 손에 들린 쌍검이 날카로운 예기를 뿜으며 정면을 향했다.

다리의 입구 부분. 삿갓을 쓴 사내가 무려 오백이나 되는 기병들을 이끌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불과 다섯 명이 달라붙은 것에도 꽤나 애를 먹을 만큼 강한 전사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오백.

게다가 그 선두에는 삼대천 중에 가장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하시르마저 있었다. 더 멀리 바라보면 분명 그들에게 화살을 쏘아대던 자이혼도 이쪽을 향하고 있을 테고, 삼대천의 마지막 한 사람인 괴력의 우르칸도 언제 나타날지 몰랐다.

아무리 부운화와 적룡기마대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부운화는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양손의 장군검을 한층 더 꽉 붙잡았다.

툭, 투툭.

그때, 흐릿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군. 물이 불겠어.’

대강을 가로지르는 석조 다리의 바로 밑으론 황갈색 탁류가 콸콸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다리의 아래쪽에 물살이 닿을 만큼 물이 불어난 상태. 여기서 비가 더 온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늘의 도움인가.’

평상시라면 악재였겠지만, 지금의 그들에겐 하늘이 내려 주는 구명줄이었다.

부운화는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를 뚫고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군, 하시르. 지난번엔 인사도 못해서 미안했어.”

푸르륵―

부운화의 애마, 은수가 불편한 투레질을 하는 가운데, 푸른빛 갈기를 가진 백색마를 타고 있는 하시르가 부운화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랬나요? 저는 충분히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인사라는 건 서로 주고받아야만 하는 거다.”

“그렇다면 아쉽군요. 이번에도 인사를 받기는 힘들 것 같으니 말입니다.”

차분한 얼굴로 냉랭한 목소리를 내뱉는 부운화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태연자약한 목소리를 내뱉는 하시르. 두 사람의 대립은 마치 중간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첨예했다.

“이쪽은 오백의 정예 기병…….”

하시르의 시선이 뒤쪽에 시립해 있는 전사들을 향했다가 다시 부운화에게로 돌아왔다.

“그쪽은 단 세 사람이군요.”

푸르륵―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게 아니다!”

삿갓을 올리고 비웃는 듯한 시선으로 부운화를 응시하는 하시르. 부운화는 양손에 든 쌍검을 교차시키며 용맹하게 외쳤다.

챙!

“너희들 중 그 누구도 이곳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싸늘한 눈빛이 하시르와 뒤쪽에 위치한 오백 명의 전사들을 노려보는 부운화의 몸에서 뿜어지는 폭풍 같은 기세가 사방을 짓눌렀다.

화아아악―

“헛!”

“으음……!”

오백 명의 전사들은 ‘역시 표풍검’이라 생각하며 각자 신음을 흘렸다.

굉장한 존재감이지 않은가.

이 정도면 대장군인 텐챠이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전사들 중에선 다리가 풀려서 휘청거리는 자들도 몇 명이나 있었다.

나름 텐챠이 수호대라 불리는 정예 전사들이 이럴진대 보통 병사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기를 휘두르기는커녕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표풍검의 존재감은 굉장했다.

“과연, 그 기세…… 마차까지 놓치지 않으려면 생각보다 힘이 들 것 같군요. 하지만 당신들을 이곳에서 놓치진 않을 겁니다. 붉은 악귀와 관련된 자들은 모두 죽어야만 하니까요.”

하시르는 무시무시한 내용의 말을 지극히 담담하게 말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모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스릉―

하시르의 허리춤에서 한 쌍의 도가 뽑혀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으로부터 마치 안개처럼 모호하고 음습한, 그러면서도 별빛처럼 빛나는 기세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파는 텐챠이의 것처럼 웅혼하거나 부운화의 것처럼 격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하고 확실하게 주변을 장악하며 부운화의 기세를 차단하고 있었다.

“오오오―!”

“흐아앗―!”

부운화의 존재감이 차단되자 다시 용맹을 되찾은 오백 명의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땅이 울리고 하늘이 떨리는 고함 소리.

그 기세는 앞을 막는 것이 무엇이든 모조리 박살을 낼 수 있을 듯한 패기를 담고 있었다.

“……역시.”

부운화는 이런 상황임에도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차분한 얼굴, 고요한 눈빛도 여전했다.

하시르라는 사내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번에도 어떤 식으로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최대한 싸우고, 충분히 시간을 번 뒤에 후퇴한다. 그러려면 시기가 중요해.’

부운화는 섭우생, 진구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눈만 보고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였다. 이심전심으로 부운화의 생각을 읽은 두 사람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쏴아아아―

하늘에선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담아 퍼붓는 것처럼 빗물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투두두두―

온몸을 두드리는 빗물을 느끼며 부운화는 묵묵히 정면을 응시했다.

코앞이 안 보인다는 게 이런 상황일 것이다.

거세게 퍼붓는 빗물이 앞을 가리고, 그 사이로 적룡기마대 세 사람과 원의 잔당들이 내뿜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튼튼하게 지어진 석조 다리가 웅웅― 진동하고, 그 밑을 흐르는 황갈색 탁류는 혹시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바로 휩쓸려 내려갈 것처럼 넘실거렸다.

“와라.”

부운화는 짧게 말했다.

섭우생이 철섭선을 펼치고, 진구가 적룡창을 앞으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에 박차를 가해 서서히 속력을 높이는 하시르.

그리고 오백 명의 텐챠이 수호대가 그 뒤를 따라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핫―!”

“히야앗―!”

거센 기합성이 교차하고,

쩌어엉―!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강렬한 폭음이 주변의 빗물을 사방으로 튕겨 냈다.

항주 탈출을 위해 시작된 질주.

그 장렬한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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