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80화 (64/686)

第七十七章 ― 적룡신위(赤龍神威)

삼 척짜리 지팡이가 갑자기 육 척짜리 철봉으로 확 늘어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눈을 의심할 만큼 신기한 광경이었다.

서유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제천대성의 여의봉(如意棒)을 떠올릴 것이다.

기문 병기가 수두룩한 무림강호에서도 장기린의 무인창처럼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보기 드문, 특이한 병기였다.

“그거……!”

다만 한 사람.

맹호도 방극은 무인창을 보면서 그 모습에 놀랐다기보다는 뭔가를 떠올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거, 당가 놈의 작품 아닌가? 맞지? 내가 이 맹자(猛者)를 받아 오면서 옆에 놓여 있는 걸 봤던 것 같은데……!”

놀랍게도 방극의 비정상적으로 큰 대도(大刀)도 당 노인이 만든 병기인 모양이었다.

세상이 참 좁다.

검선과의 수련이 끝난 후 밖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싸우는 상대가 똑같이 당 노인이 만든 무기를 들고 있다니.

장기린은 묘한 인연의 끈을 느끼고 있었다.

“맞소, 당 노인의 작품이오.”

“호오, 그렇다면 우습게 볼 수 없지. 분명 담금질이 제대로 되어 있는 무기겠군.”

“그렇소.”

장기린은 자세를 낮추며 무인창을 들어 올렸다.

왼발은 한 발 앞으로, 오른발은 바깥쪽을 향해 직각으로 돌려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 자세에서 창끝은 정면에서 조금 위로.

기본적인 거창(擧槍) 자세였다.

장기린이 본격적으로 거창 자세를 취하자 느껴지는 기세가 확연히 달라졌다.

“으음……!”

당장 방극의 입에서부터 신음이 흘러나왔다.

허점을 찾아볼 수 없는 자세.

거창 자세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에서 상대가 백련(百鍊)의 고수라는 것을 시사했다. 기수식 하나 만으로도 방극을 긴장시킨 것이다.

“그럼 먼저 가겠소.”

“……와라.”

방극은 자신의 칼인 맹자를 양손으로 거머쥐고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장기린은 창끝을 방극에게 겨눈 그 자세 그대로 손 안에서 무인창을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크게 숨을 들이켜고,

그 숨을 다시 크게 내쉰다.

호(呼)와 흡(吸).

자연의 기와 사람의 기가 서로 소통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장기린의 시선이 자기 스스로를 관조하고, 그다음엔 칼을 겨눈 상대인 방극을 살펴봤다.

방극의 눈빛을 살피고, 코와 입으로 드나드는 숨의 크기를 살피며, 그의 발끝과 손끝, 그리고 몸 전체가 호흡을 하는 순간을 보고 그 호흡의 박자를 파악했다.

호흡은 일정한 박자를 띤다.

사람의 육신은 이 박자에 지배된다.

심장 박동, 혈류의 움직임, 머릿속 생각의 속도.

그 모든 것이 호흡의 박자에 지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숨을 내쉬는 순간.

폐부에 있던 공기를 모두 내뱉고 다시 숨을 들이켜려는 그 찰나의 순간은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온몸이 약점이 된다. 온몸의 기가 빠져나가 몸속이 진공(眞空)이 되면 작은 공격도 내부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를 노릴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사람의 가슴을 툭 미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기절시킬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숨을 내뱉고, 다시 숨을 들이켜려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노리는 것은 의식적으로 하려 하면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통과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지만 장기린은 그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

반개(半開)한 장기린의 눈에 흑백의 세계가 비쳐지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한 세계.

장기린은 그 초신속(超神速)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었다.

평소엔 어려운 일이라도 초신속의 공간에 들어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시간이 느려지면 상대방의 움직임도 느려진다. 숨을 내뱉는 방극의 몸짓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후우우…….”

방극은 크게 들이켠 숨을 천천히 몇 번에 나눠 내뱉고 있었다. 장기린이 언제 덤비더라도 반응할 수 있게 호흡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지면 달이 뜨듯.

한 번 들이켠 숨은 모두 소진하는 순간이 오고 만다.

그건 아무리 초절한 고수라도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덮어쓰고 있는 삶의 굴레였다.

마침내 길게 숨을 내뱉던 방극이 덤벼오지 않는 장기린에게 의아해하며 가지고 있던 모든 숨을 내뱉는 순간,

번쩍!

쒜에에에에엑―!

“……!!”

장기린이 들고 있던 무인창이 갑자기 세 배 이상의 길이로 늘어났다.

길이가 늘어났다?

아니다. 자세히 보면 너무 빨라서 잔상이 남아 길어 보였을 뿐, 무인창이 앞으로 쏘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방극의 두 눈엔 그야말로 경악이 어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뜬 눈.

무인창의 첨격(尖擊)이 그의 명치 위 가슴의 한가운데로 날아들고 있었다.

다급해진 방극의 몸에서 불꽃같은 기운이 확! 하고 피어오른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따아앙!

“크윽……!”

방극은 잉어가 수면 위로 부상하듯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어서야 간신히 무인창을 쳐 낼 수 있었다.

그는 뒤로 무려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휘두르는 칼에 충분히 힘을 실을 시간이 없었기에, 장기린의 공격의 여력을 소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일 초.”

초식 수를 세는 장기린의 목소리에 방극의 얼굴이 확―하고 붉어졌다.

장기린은 어느새 창을 내지르기 전의 자리로 다시 되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창을 앞으로 겨누고 있었다.

“미, 믿을 수가 없다. 네놈, 설마, 방금 그걸 노린 것은…….”

무작정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방극 본인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장기린이 보여 준 움직임은 지극히 단순했다.

창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줄 아는 찌르기에 불과한데, 중요한 건 그 찌르기를 날린 시점이다.

맹호도 방극이라는 초절정고수가 숨을 모두 내뱉고 다시 숨을 들이켜려는, 찰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 짧은 순간을 정확하게 노리고 찔러 온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놈은 무림오존에 버금가는 괴물이다. 방심해선 안 돼. 전력을 다해야 한다.’

맹호도 방극은 마음을 다잡고 칼끝을 바로 세웠다.

장기린의 창끝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공격이 찰나를 노린 속공(速攻)이었다면, 이번엔 창끝의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이는 느릿느릿한 만공(晩攻)이었다.

창끝이 오른쪽으로 작게 원을 그리는데, 그러면서 창대는 왼쪽으로 큰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원과 원이 중첩되는 듯한 모습.

그러다 갑자기 창봉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후우웅―!

속도는 느린데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타핫!”

방극은 더 이상 태만하지 못했다. 전력을 끌어 올려 대도(大刀) 전체에 불그스름한 강기(剛氣)를 두르자 안 그래도 커다란 칼이 절반은 더 커져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아……!”

“우아…….”

강운찬의 부축을 받으며 앉아 있던 남궁휴가 감탄을 토해 냈다.

강기를 두른 방극의 칼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패기를 뿌리고 있었다. 저것에 얻어맞으면 뼈도 추스르지 못하고 박살이 날 것이다.

한편, 방극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칼은 창을 후려치지 못했다.

칼날이 창에 닿으려는 순간, 창이 허깨비처럼 휙― 사라지며 이번엔 정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날아오는 것이었다.

후우웅―!

“음……!”

방극은 이번엔 왼쪽으로 칼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도 창은 휙―하니 사라져 버렸다. 왼쪽으로 막으려면 오른쪽, 오른쪽으로 막으려면 왼쪽으로 날아든다.

동시에 눈에 보이는 창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장기린의 몸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양팔과 창만은 수십 개로 분열하여 주변을 촘촘한 그물처럼 둘러싼 것이다.

후우웅―! 쉬익! 쉬쉬쉭!

장기린은 중심을 꼿꼿이 세운 채 그 어느 때보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때 장기린은 일격필살의 살초들만 익히고 사용했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검선과의 수련으로 기(技)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이 세상엔 꼭 죽여야만 하는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대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무공(武功).

뛰어난 무공은 상대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 있는 법이 아니던가.

게다가 힘을 힘으로 깨는 방법은 하수들에게나 통하는 방법이다.

상승의 영역으로 갈수록 상대의 허점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무력이 필요했다.

“크하앗―!”

부우우웅―!

하지만 방극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곧바로 장기린의 내심을 깨닫고 전력을 다한다.

뿜어지는 막강한 기파.

커다란 마차도 단번에 두 동강 낼 수 있을 듯한 대도를 강력하게 휘두르는데, 거기서 만들어진 강력한 도풍(刀風)이 장기린이 전개하던 초식의 일부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것 봐라?’

십대고수의 수준이란 장기린이 검선을 만나기 전의 위치였다.

무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눈아래로 본 것이 사실이건만, 맹호도 방극은 그런 그의 예상을 뒤엎고 있었다.

십대고수로서 필살의 한 수를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다.

회오리바람을 두른 듯 사납게 요동치는 대도를 맞아 장기린은 더욱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후우웅―! 후웅! 후웅!

따당! 따다당! 따당!

천수여래가 하강한 듯, 수십, 수백 개로 변한 창봉이 집요하게 방극을 노렸지만, 방극은 강력한 위력을 지닌 도법으로 차근차근 그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일 격, 일 격이 묵직하기 짝이 없다.

장기린은 마지막으로 깡! 하고 소리가 나도록 방극의 칼날을 한 번 후려친 뒤 뒤로 물러섰다.

“이 초.”

방극은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우…… 후우…….”

그는 애써 태연한 심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속은 매우 혼란스럽고 다급해져 있었다.

‘무림오존을 만날 경우 써먹으려고 익힌 폭호도(爆虎刀)를 겨우 이 초에서 써먹을 줄이야! 이래선 안 된다. 삼 초도 못 버티고 물러설 수는 없지. 정 안 되면 동귀어진으로라도 버텨야……!’

방극은 처절한 심정으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 방극을 유심히 지켜보던 장기린.

그가 마지막 삼 초를 전개하기 위해 무인창을 양손으로 잡고, 그 창끝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마지막 삼 초요. 이걸 막으면 살려 주겠소.”

“……와라.”

방극이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졌건만, 장기린은 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옆구리나 하체 부근의 허점이 훤히 드러난 상태.

장기린은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검선에게 사람의 몸에는 단전이 세 개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다.

하단전은 하복부에, 중단전은 심장 부근에 있으며, 상단전은 미간보다 조금 위, 머릿속에 위치한 단전이었다.

지금의 이 세 번째 초식은 상중하, 삼단을 합일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의 눈이 무심하게 방극을 응시했다.

방극과 그 주변을 둘러싼 기의 흐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완성된 거대한 흐름이 방극의 주변을 마치 돌담을 쌓듯이 차곡차곡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

처음엔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의아한 눈빛이던 방극이 경악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내 왔다.

그는 몸을 뒤틀어 보려는 듯 어깨와 무릎을 꿈틀거렸지만, 이미 장기린의 ‘의지’에 온몸이 꽁꽁 묶여 버린 방극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방극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시뻘게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온몸에서 막강한 기파가 줄줄이 뿜어져 나왔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진흙 늪 속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처음엔 허우적거리며 몸을 뒤틀지만, 무겁고 끈적끈적한 진흙이 점차 몸에 달라붙을수록 움직임은 무뎌져 가고, 결국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금 방극이 그랬다.

장기린의 강력하고도 집요한 ‘의지’에 온몸이 제압당한 그는 처음 자세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스으윽―

그 상태에서 장기린은 들고 있던 창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 방극의 머리에 갖다 대었다.

툭.

무인창의 창끝이 방극의 미간에 닿았다.

승부의 종결이다.

여기서 장기린이 힘을 좀 더 줬다면 방극이 즉사했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연무장 안에 아무도 없었다.

“허…….”

방극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네놈은 도대체 뭐냐?”

방극은 칼을 쥔 손에서 힘을 빼고 양팔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뒤틀 때는 꿈쩍도 안 하던 몸이 마음껏 움직여졌다.

“무슨 말이오?”

“방금 그거. 말도 안 된다. 이런 게 가능한가?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가 있지?”

“…….”

“이게…… 심검(心劍)인가?”

주변의 모두가 경악했다.

방극이 칼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맥없이 패배한 것만 해도 충격적이건만, 그는 장기린을 향해 방금 심검을 전개한 게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심검이란 전대 고수인 무림오존들만이 올랐다고 하는, 무학에 있어서 지고한 경지였다.

아직 이십대에 불과한 청년인 장기린이 이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다름 아닌 맹호도 방극이 한 말이다.

허언일 리가 없기에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이 장기린을 향했다.

“아니오.”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심검이란 마음의 검이며, 마음의 검이란 검사가 칼을 처음 잡을 때부터 갖게 되는 심상(心狀)이니, 무학의 경지에 있어서 심검이란 그 마음의 심상을 현실로 끌어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라고 했소.”

검선이 해 준 말이었다.

순간, 방극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장기린의 대답에서 왠지 모를 깊이가 느껴진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방금 그게 심검이 아니냔 말이다.”

“아니오. 나는 심검을 쓰는 법을 모르오.”

“그럼? 방금 그건 대체 뭐지?”

“나는 당신이 반항하지 않고 제압당하기를 바랐고, 그게 현실이 되었을 뿐이오.”

“……!”

눈을 부릅뜬 채 숨도 멈추고 제자리에서 굳어 버린 방극.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핫! 하하핫! 하하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그는 온몸을 떨며 전율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랬던가. 그런 것도 ‘무공’이라 하는 것인가.”

남궁휴가 방극의 움직임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듯이, 방극 또한 장기린과의 싸움에서 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대단하다. 의발상인(意發傷人)의 경지에는 이미 오래전에 올랐건만, 그걸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장담하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무림엔 괴물 같은 존재가 하나 탄생할 것이야.”

방극은 새파란 젊은이에게 패하였음에도 별반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상대가…….

단순히 젊은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무림에 있을 생각은 없소.”

“뭐라? 그럼 너는 이곳에 왜 있는 것이냐?”

방극은 짐짓 화를 내듯 소리쳤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은원을 마무리 짓기만 한다면 나는 곧바로 무림을 떠날 것이오.”

“허어, 네놈은 야망도 없느냐? 무림을 제패하고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없소.”

“허어!”

방극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내 오늘 많은 것을 깨닫는다. 헛살았구나, 헛살았어. 지난 육십 평생을 헛산 모양이야.”

꾸웅!

방극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맹자도(猛者刀)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 무게가 어찌나 육중한지, 단단한 청석 바닥이 망치로 후려친 듯 진동했다.

“자, 그럼…… 죽여라.”

아직 장기린의 무인창이 방극의 미간에 닿아 있는 채였다.

삼 초를 버티지 못했으니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방극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 채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슥―

그 수난, 장기린은 무인창을 거둬들였다.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철컥거리며 조작해 다시 삼 척짜리 지팡이로 되돌리기까지 했다.

“……뭐냐, 이건?”

방극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은 죽었소.”

“허……?”

“맹호도 방극이 죽었으니 남궁무회의 의뢰는 실패했소. 강력한 적이 하나 줄었으니 마음이 편안하군.”

방극은 입을 뻐끔거리며 굳어 있었다.

남궁무회와의 관계만 끊으면 그걸로 됐다는 태도다.

딱히 약속을 받아 낸 것도, 그러라고 말을 한 것도 아니건만, 나름 그런 쪽에서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맹호도 방극의 성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허허, 허허허.”

장기린의 비범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동시에 느끼는 방극.

그는 바닥에 꽂아 두었던 대도를 다시 등 뒤의 도갑으로 돌려 넣으며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방극은 처음으로 온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장기린이오.”

“사문은?”

“딱히 없소.”

“……딱히 없다고?”

“무공은 아버지와 같은 분에게서 배웠소. 하지만 사문은 아니오.”

그가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법’이나 ‘걷는 법’, ‘숨쉬는 법’과 같은 무공을 배운 것은 대장군 공손웅으로부터였다.

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장군은 오히려 장기린이 배운 무공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얻어 와서 가르쳐 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으니…….

대장군에게 배웠다고 한들 그게 사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있소. 최근에 내 무공의 기틀을 만들어 주신 분이오.”

“허어, 그게 누군가?”

“가르쳐 드릴 수 없소.”

검선 구양재인.

장기린은 그 이름을 함부로 밝힐 수가 없었다. 앞으로 그가 하려는 일을 생각하면 그 여파가 얼마나 커질지 아직 모른다.

큰 은혜를 입은 분인데, 자칫 그의 일로 안 좋은 영향을 받게 할 수는 없었다.

‘하오문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알아서 조심하겠지.’

그들이 검선에게 보이는 공손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천하제일 신비인이 따로 없구만.”

방극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도 한 가지는 가르쳐 줄 수 있겠지? 나를 제압한 그 삼초식의 무공…… 이름이 뭔가?”

“이름…….”

그가 쓴 삼초식의 무공은 지난 이백여 일간 검선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서 얻은 깨달음의 정화였다.

이름 또한 검선이 지어 주었다.

일연적룡무(一衍赤龍舞).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져 크게 순행하는[一衍],

적룡(赤龍)의 춤[舞]이라는 뜻이었다.

좋은 뜻에 훌륭한 이름이지만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 그건 나중에야 알게 된 검선 구양재인의 욕심이자 장난이었는데, 일연(一衍)이라는 글자가 검선의 무공인 일연성라대검(一衍星羅大劍)과 비슷했던 것이다.

본래 무공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종통(宗統)을 이었다는 표식이나 다름없다.

어느 정도 위치와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검선과의 인연을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적룡…… 무요.”

“적룡무? 적룡의 춤? 괜찮긴 한데…… 뭔가 심심한 이름인데? 혹시 앞이나 뒤에 뭔가 더 붙는 글자 없나?”

아니나 다를까.

방극은 눈을 번뜩이며 캐묻고 있었다.

이래서 늙은 생강이 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무공의 이름을 듣고 사문을 유추해보려고 했던 수작이 틀림없었다.

“있소, 앞쪽에.”

“호오, 무슨 글자기에?”

“알려 줄 수 없소. 스승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폐를 끼친다? 즉, 스승님이 유명한 사람이란 말이렷다.”

“…….”

장기린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남궁휴를 향해 몸을 돌렸다.

“휴!”

“예, 예!”

휴는 갈비뼈가 부서지면서 큰 고통을 느끼는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늘 싸움에서 뭔가를 좀 배웠나?”

“……예, 많이 배웠습니다.”

“배후를 잡은 것까진 훌륭했어. 하지만 선택한 검술이 문제였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네가 사용했던 검술,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검술이었겠지?”

“아…… 예, 섬전십삼검뢰는 익히기만 하고 따로 수련은…….”

“쾌검이라서 그걸 선택했던 모양인데, 그게 실수다. 싸움은 가장 익숙한 기술로 해야 돼. 배후를 잡았을 때 네가 가장 오랫동안 익힌 검술을 썼다면, 이기긴 힘들었겠지만 적어도 꽤나 큰 상처 정도는 남길 수 있었을 거다.”

“……!”

남궁휴는 큰 깨달음을 얻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운찬.”

“네!”

“넌 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하다. 실력이 안 되면 상처를 입을 것을 각오하고 달려들었어야지. 그렇게 몸을 사려서는 절대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으으, 예!”

“날이 있는 무기를 상대로 싸운 적이 없어?”

“……예.”

운찬이 무공을 배운 것은 독각풍권이라 불리는 권공의 고수.

배울 때나 대련을 할 때나 항상 맨손 박투를 사용했다.

남궁휴와의 대련도 마찬가지였다. 남궁휴는 운찬과 실력을 맞추고 싸우기 위해 검을 뽑고 싸운 적이 없었다.

가끔 손날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진검을 뽑아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는 휴가 검을 뽑고 수련해라. 운찬은 그럴 실력이 돼.”

“예!”

“네!”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한다.

방극은 세 발자국 뒤에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뇌공대는 감탄과 혼란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각이나 낭비했군. 시간이 없어.”

장기린은 남궁무회가 연무장을 빠져나갔을 때부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이씨세가까지 전서구가 날아가는 데 반 시진, 소식을 받아 든 이씨세가가 병력을 모으고 출진 준비를 하는 데 반 시진, 출진한 병력이 남궁세가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진 반. 즉, 앞으로 대략 세 시진하고 일각 정도가 남았다는 뜻이군. 중간에 막으려면 앞으로 한 시진 반 정도가 남았어.”

“객주님……?”

남궁휴와 강운찬은 장기린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말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객주님! 대단하신데!’

‘무공에 대해서도 박식하고, 이씨세가의 기밀 정보도 다 꿰고 있다. 대체 어떻게? 객주님은 어떻게 그 모든 걸 알고 계신 거지?’

서로 생각의 방향은 달랐지만 감탄하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장기린은 하오문에게 미리 받아 두었던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검토한 뒤 마음을 결정했다.

“뇌공대주!”

그는 유자항을 불렀다.

이전부터 장기린과 남궁휴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유자항이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로 오시오.”

“…….”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소?”

유자항이 내심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소리였다.

유자항은 굳은 얼굴로 잠시 망설이다가 옆에서 그와 똑같이 굳어 있는 얼굴의 뇌공대원들을 한 번 둘러본 뒤, 연무장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자항은 초절정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남궁세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그는 남궁휴, 강운찬과 방극의 대결, 그리고 방극과 장기린의 대결을 연이어 보며 크게 감탄한 상태였다. 장기린의 말대로 이젠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남궁혁은 오만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망나니지. 그 어미인 이화는 표독스럽고 귀천(貴賤) 의식이 강하며, 그 외가인 이씨세가는 호시탐탐 남궁세가를 잡아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소.”

“…….”

“내가 장담하지. 여기 있는 휴는 남궁세가의 후계자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오.”

장기린의 진지한 목소리는 약속을 들은 상대가 그 말을 온전히 믿게 만드는 강한 힘이 있었다.

“당신이 남궁세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남궁무회를 선택했다면, 이젠 그 선택을 바꾸는 게 좋을 것이오. 남궁휴는 지금의 가주인 남궁무원과는 또 다른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뛰어난 능력으로 세가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인재니까.”

“큭…….”

“마지막 기회를 주겠소. 휴를 따르겠소, 아니면 남궁무회를 따르겠소?”

뇌공대주 유자항은 잠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휴에겐 곧은 성품과 뛰어난 능력이 함께하고 있었다.

세력이 없는 것이 흠이었으나, 지금은 장기린과 같이 무력의 끝을 알 수 없는 강자가 뒤에 버티고 있었다.

세력이 문제가 안 된다면…….

그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공자.”

“예.”

“당신은 남궁무회를 물리치고, 남궁세가를 더욱 강하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까?”

남궁휴는 운찬의 부축을 잠시 마다했다.

그리곤 스스로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강하게 눈을 빛내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강한 신념이 깃든 목소리.

유자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유자항이 손을 들어 올려 손짓을 했다.

우르르 몰려든 뇌공대의 정예 오십 명.

그들은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는 유자항을 따라 똑같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크게 예를 표했다.

“지금부터 이 유자항과 뇌공대, 대공자를 모시며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충(忠)―!”

처척!

뇌공대 전원이 함께하는 예는 엄숙하고 진지했다.

남궁휴 역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그들에게 신뢰를 약속했다.

혼탁한 기운에 삼켜져 있던 남궁세가.

불순한 모든 것들을 쓸어 낼 강력하고 청량한 바람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젠 내 차례군.’

뇌공대가 남궁휴의 편이 되었다면 이제 내부의 싸움은 백중세로 접어들었다.

남은 것은 이씨세가로부터의 원군.

장기린이 나서야 할 순간이었던 것이다.

☆ ☆ ☆

스스슥―

풀잎이 눕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적막한 날이건만, 평소에 인적이 드문 안휘성 북부의 들판은 마치 큰 들불이라도 일어난 양 매우 소란스러웠다.

모든 것은 한 떼의 사람 때문이었다.

무려 오백 명이나 되는 정예 무사들.

가슴에 이(李) 자를 새긴 흰색 무복을 입은 그들은 안휘성 북부 이씨세가에서 파견된 원군이었다.

모든 것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만큼 발 빠르게 이루어졌다.

전서구를 받고 출정 준비를 마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이각. 그 뒤로 싸움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전력을 다해 달려온 그들은 합비 인근에 위치한 남궁세가를 향해 질풍처럼 내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이 드디어 남궁세가를 집어삼키는 날이구나!’

이번 이씨세가의 출정을 담당한 이중혁(李中奕)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동생 이화가 남궁무원 같은 태평한 놈에게 시집간 뒤로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

남궁무회의 전서구가 오는 순간, 그는 환희에 찬 비명을 질렀을 정도였다.

이씨세가는 표면상의 얼굴일 뿐.

그들에겐 숨겨진 정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스런 배후가 무림에 다시 진출하는 첫 번째 교두보로서 선택한 것이 정도의 명문세가이자, 무림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였던 것이다.

그를 위한 준비는 벌써 칠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이씨세가에 갇혀서 한참이나 기다려왔던 이중혁은 출정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몸에서 한없이 힘이 솟구치고 있었다.

‘음, 저게 뭐지?’

그러던 중 이중혁의 시선에 기묘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인적이 드문 산길을 골라서 가는 중이건만, 들판의 중간에 박혀 있는 바위 위에 한 사람이 앉아서 그들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갓 서른쯤이 된 것처럼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한 손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를 들고 있고, 자세히 보니 오른쪽 귀는 반쯤 잘려나가 뭉개져 있었다.

그런데도 기이하게 도문의 도사를 보는 듯한 청정한 기분이 들었다.

이중혁은 자신도 모르게 뒤따르는 오백 명가량의 인원을 정지시켰다.

“그쪽은 누구시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이중혁을 응시하더니,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간에 점, 얇은 입술, 갸름한 턱. 이중혁이 맞군.”

“……!”

순간, 이중혁은 섬뜩함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챙―!

빠른 속도로 검을 뽑고 상대를 겨눴다.

급작스럽게 시작된 출정인데, 그 중간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다. 좋지 않은 의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씨세가에서 평소에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지? 간(奸)하여 신세를 망친 여인들만 해도 십 단위가 넘고, 주변에 행패를 부리듯이 높은 세를 뜯어가서 민초들의 한이 하늘에 닿았다던데.”

“너는…… 누구냐?”

“너에게 알려 줄 이름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중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군. 네놈은 혼자다. 오백 명의 무사들이 보이지 않는 거냐?”

그랬다.

이중혁의 뒤엔 일류의 경지를 넘은 든든한 오백 명의 무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무림오존이 나타나도 두렵지 않다.

이중혁은 그렇게 확신하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살려 줄 필요가 없는 상대다. 운화!”

“예, 대형.”

히히힝―!

이중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답이 들려온 좌측에서 터벅터벅, 희대의 명마를 탄 잘생긴 청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추룡!”

“예! 형님!”

이중혁의 고개가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우측.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는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역시나 커다란 말을 타고 등장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선두에 선 것이 두 사람일 뿐.

그 뒤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거구의 사내와 철섭선을 든 마른 몸매의 사내, 그리고 커다란 철창을 든 까무잡잡한 인상의 어려 보이는 청년이 뒤이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적룡기마대!”

“예!”

들판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외침에서 느껴지는 전의(戰意)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중혁과 오백 무사들의 얼굴이 순간 긴장으로 굳어졌다.

어찌 이런 자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하나같이 기마에 올라탄 사내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사방을 포위하며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의 첫 싸움이다. 단 한 명도…… 살려 두지 마라.”

“예!”

힘찬 대답과 함께 기마들이 울부짖었다.

우르릉―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어 올랐다.

무림에 나타난 적룡기마대!

그 붉은빛의 폭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1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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