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82화 (66/686)

第七十九章 ― 용호상박(龍虎相搏)

“대공자!”

단가주 단욱과 유자항의 환대를 받으며 남궁휴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운찬이 든든하게 옆을 지켜 주고 있었고, 뒤에선 가주이자 그의 아버지인 남궁무원이 천천히 따라왔다.

척! 하고 손을 모아 예를 표하는 유자항.

남궁휴는 유자항이 비켜 준 틈으로 들어가 놀란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는 남궁무회를 정면에서 똑바로 마주 봤다.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합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남궁무회는 안색 한 번 변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맹호도까지 끌어들여서 저를 죽이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을 하시려는 겁니까?”

“맹호도? 무슨 소리인지 난 모르겠다.”

남궁무회는 뒤쪽에 시립해 있는 무사들을 한 번 슬쩍 일별했다.

“네가 말하는 맹호도가 무림십대고수 중 그 맹호도라면…… 허참, 가관이구나. 네 아비가 나를 역도로 몰더니, 이젠 너까지 나를 그렇게 몰고 가는 것이냐?”

“네 아비라니, 총관이 가주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이미 역도로 몰린 판국이다. 더 지킬 예의가 어디에 있겠나.”

남궁무회의 말솜씨는 교묘해서 뭐가 선(先)이고 뭐가 후(後)인지 구별을 하기가 어려웠다.

빠득!

남궁휴는 이를 갈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구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꽈악.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남궁휴는 검을 잡고 눈을 빛냈다.

고개를 들자 남궁무회는 오히려 한 번 해보라는 듯 도발적으로 남궁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문답 없이 난전으로 변하면 오히려 그에게는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뽑을까?’

남궁휴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옆에는 운찬도 함께 있다.

비록 맹호도에게 입은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맹호도와 겨뤄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남궁무회를 상대로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치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처럼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만두거라.”

“……아버님.”

남궁휴는 고민을 멈추고 검에서 손을 뗀 채 뒤로 물러났다.

남궁무원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당겼던 것이다.

“무회.”

마치 청수한 문사와 같은 인상의 남궁무원.

그는 담담한 시선으로 남궁무회를 바라봤다.

“내가 가주에 오른 지 얼마나 됐더라? 올해로 이십 년 쯤 되었나?”

남궁무회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자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림에서 대협이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을 거야. 세가에서 온갖 귀찮고 더러운 일은 자네가 다 처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과찬의 말씀이오.”

“아니, 진심일세.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혼자 생각해 보았네. 가주의 자리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정말로 나는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는가.”

남궁무원의 깊고 심원한 눈빛이 남궁무회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종종 자네가 가주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네. 자네의 성품은 무가(武家)의 가주로서 어울리는 면이 많았으니, 처세(處世)를 하면서 자네를 떠올리면 도움 되는 부분이 많았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가주, 이만 가주의 자리를…….”

“하지만!”

남궁무원은 남궁무회의 말을 끊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가주가 되면 안 되네. 그건 세가를 풍비박산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야.”

“……!”

“내가 가주의 자리에 십 할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네만, 그렇다 해도 자네는 더더욱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자네가 가주가 된다면…… 처음엔 가문의 세가 강해지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개 취급을 받으며 전 무림의 주목을 받고 협공을 받아 멸문당하게 될 것이네. 그래서야 안 되지.”

남궁무회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면전에서 너는 ‘가주의 그릇’에 안 맞는다고 부정당했다.

그로서는 역린을 건드린 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가주!!”

“자네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자네를 아꼈네. 부족한 나를 도와 세가의 기틀을 공고히 해 줄 인재라고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이번만은 너무 멀리 갔네. 이씨세가와 야합하고, 휴의 목숨을 노렸으며…… 혁의 문제도 있으니.”

남궁무회의 눈빛이 흔들렸다. 남궁혁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심중을 건드린 것이다.

“더 이상 말은 필요없겠소!”

남궁무회는 오른손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위지가주, 사마가주. 이게 다 남궁세가를 위해 하는 일이오. 가주를 한적한 곳에 모셔야 겠소.”

“으음……!”

“알겠소!”

어차피 내친걸음.

위지광과 사마현은 망설임없이 각자 자신들이 이끌고 온 가문의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관을 따른다!”

“모두들 망설이지 마라!”

남궁무회가 자신을 따르는 창천대에게 소리쳤다.

“전 병력! 가주의 신변을 확보한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죽여도 좋다.”

마침내 같은 세가의 사람들끼리 상잔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채채챙!

모두가 칼을 빼 들고 눈을 부릅떴다. 이제 죽거나 죽임을 당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어 버렸다. 주변은 온통 살벌한 기세로 가득 찼다.

곧 공격을 시작하려는 창천대와 위지가, 사마가의 무사들도.

그 공격을 막아야만 하는 뇌공대와 단가, 정가의 무사들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무회!”

“……가주?”

“모두가 같은 세가의 가족이네. 겨우 이런 일로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야.”

너무나 당당하게, 어찌 보면 순진해 보일 만큼 올바른 말을 하는 남궁무원을 보며 남궁무회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주, 지금 이 순간까지 대협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오? 서로 싸우지 않으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겠소? 순순히 잡혀 주기라도 하겠소?”

“그러지.”

남궁무원은 순순히 대답했다.

“뭣……!”

“아버님!”

“가주님……!”

남궁무회, 남궁휴, 유자항…… 모두가 놀랐다. 남궁무원이 지금 한 말은 예정에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객주님을 기다리면 되는데……!’

남궁휴는 크게 당황해 되물었다.

“아버님, 대체 무슨……!”

“휴, 기다리거라.”

남궁무원은 평소에 유한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한 번 뭔가를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남궁무원은 남궁무회를 향해 진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갈 수는 없겠지. 무회, 비무로 나를 꺾게. 그렇다면 순순히 자네를 따라가도록 하지.”

“……!”

남궁무회는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남궁무원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 현명한 선택을 하셨소.”

“방심하지 말게. 나를 우습게 보면 크게 다칠지도 모르니.”

남궁무회는 피식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에서만큼은 자신이 남궁세가 제일이다. 남궁무원은 어린 시절부터 무재가 없었다. 남들은 사흘 만에 배우는 기본 검법도 열흘이나 걸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실력으론 자신은커녕 유자항조차 꺾지 못할 거라는 것이 남궁무회의 생각이었다.

“나도 굳이 같은 가문 사람들끼리 피를 보길 바라는 것은 아니오. 그 약속, 순순히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오.”

“걱정 말게. 약속은 지킬 테니.”

남궁무원은 걱정스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휴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준 뒤, 오늘 아침 그가 정성 들여 닦던 장검을 들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졸지에 남궁세가의 가주와 총관이 벌이는 일대 비무가 되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모두 둥그런 공간을 만들고 뒤로 멀찍이 물러섰다.

“가주, 정말 후회하지 않겠소?”

“걱정 말게.”

남궁무원은 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돌린 채 양팔을 늘어뜨리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세가의 가주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최고의 검술이다.

반면에 남궁무회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검끝으로 상대의 중단을 겨누는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남궁세가 최고의 쾌공이자, 실전에서 눈부신 위력을 발하는 실전적인 검술이었다.

“…….”

고요해진 공기.

주변은 누군가 숨만 크게 쉬어도 들릴 만큼 조용해져 있었다.

‘남궁무회…… 강하다!’

주변에서 둘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싸움은 남궁무회가 우세했다.

남궁무회는 세가의 얼굴인 총관으로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실전을 겪은 ‘알려진 강자’였다. 조금 더 있으면 무림십대고수에 들 거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떠도는데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반면에 남궁무원은 지금껏 비무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무인답지 않은 무인’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직접 검을 쓴 건 가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후계자 승부를 할 때였는데, 그때 남궁무회를 상대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패배했다는 사실은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가주의 자리에 오른 뒤 남궁무원은 검을 쓸 일이 거의 없었고, 설령 그럴 일이 생겨도 가능한 한 평화롭게 해결해 왔던 것이다.

찌릿찌릿―!

‘안 돼. 이건 상대가 안 된다.’

게다가 지금의 남궁무회는 전력을 다 끌어 올린 듯했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강렬한 기파. 단순히 검을 들고 있을 뿐인데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력한 검기(劍氣)가 줄기줄기 뻗어 나와 사방을 점령하고 있었다.

단 한 걸음만 움직여도 곧바로 남궁무원은 온몸이 베일 것처럼 보였다.

가주 직계에게 전수되는 제왕검형이 절공이라지만, 이미 초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은 남궁무회의 섬전십삼검뢰 역시도 뛰어난 무공이다.

가주로서는 불과 몇 초식을 막는 것이 고작일 터.

그게 주변에 있는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궁무회는 먼저 공격해 들어가지 않았다.

혹시 약자에 대한 예우로 선수를 양보하는 건가 싶었지만, 남궁무회는 그게 아닌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지켜보며 의아해하던 남궁휴는 이내 둘의 겨룸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스으윽―

“……!”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남궁무원의 검이 움직이고 있었다.

반의반 치 정도나 될까.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짧은 거리를 남궁무원의 검첨(劍尖)이 미묘하게 왕복하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남궁무원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상대인 남궁무회의 눈빛이 흔들리며 동요하는 기색이 점점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설마……?’

놀란 남궁휴는 자신의 눈을 비빈 뒤,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남궁무회는 온몸에서 ‘강자의 느낌’을 풍기고 있으니 강하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남궁무원.

지금껏 ‘인품만 있지, 검(劍)은 없다’는 비난을 받아온 창천대협이…… 놀랍게도, 도저히 공격할 틈조차 찾을 수 없는 철벽의 검술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나 강하셨던가……!’

남궁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크면 도리어 눈에 안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같은 세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지마저 몰라볼 만큼 남궁무원의 검술은 이미 지고한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런…… 이런……!”

주변에서도 서서히 그것을 깨달은 듯 경악에 찬 탄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 제일의 무인인 남궁무회가 검을 함부로 내지르지 못할 정도로 짓눌려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장면인가.

스스스스―

창천대협 남궁무원.

담담한 얼굴과 차분한 눈빛 아래로 거대한 존재감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검끝이 위로 조금 올라가자 사방에서 백 인의 병사가 창을 내찌르듯 삼엄한 검기가 일제히 확― 하고 일어났다.

“음……!”

남궁무회는 침음성을 흘리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위로 마주 올렸다.

그 순간, 확― 하고 갈라지는 공기.

섬전십삼검뢰.

그 여덟 번째 초식이 찰나를 가르며 쏘아진 것이다.

피이잉―

쉬익!

뒤에서 앞으로 팔을 뻗으며 상대의 목을 찌른 뒤, 한 바퀴 회전하며 허리를 베어 내는 초식이다.

예전에 남궁혁이 장기린을 향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초식이었으나, 같은 검술이라도 남궁무회가 사용할 때의 완성도는 차원이 달랐다.

선명하게 보이는 잔상.

두 개의 동작이 마치 동시에 전개되듯 허공에서 겹쳐졌다.

목을 찌르고, 허리를 베어 내는 공격이 동시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사람의 손이 두 개가 아닌 바에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듯하지 않은가.

남궁무원의 목숨이 대번에 위태로워 보였다.

“앗……!”

따당!

그런데 남궁무원이 장중한 동작으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자, 놀랍게도 섬전십삼검뢰의 한 초식이 허공에서 막혀 버렸다.

막으려고 초식을 전개한 게 아니라, 초식을 전개하는 데 괜히 장애물을 만났다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남궁무원의 검은 계속해서 남궁무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의 검이건만, 남궁무회가 다급한 기색으로 황급히 다음 초식을 전개했다.

쉬쉬쉭!

‘만상십일뢰(灣商十一雷)! 벌써 열한 번째 초식이라니. 많이 급했군.’

남궁휴는 두 사람의 대결을 집중해서 눈에 담았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싸움이다. 어느 것 하나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남궁무원은 편안한 듯 자연스러운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제왕검형.

말 그대로 제왕으로서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검술이다.

얼핏 보아선 느리기만 한 만검(晩劍)이지만 그 속에는 측량할 수 없는 만근의 거력이 담겨 있었다.

만검(晩劍)이면서 만검(萬劍)이라는 뜻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검이 벌이 날갯짓을 하듯 격렬하게 떨렸다. 그럼에도 남궁무원의 눈빛은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심하고 평온하게, 그러면서 강력한 힘을 실어 휘두르는 장중한 검술은 그야말로 제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따다다당!

“……!”

처음으로 남궁무원의 검세가 흐트러지며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남궁무회의 몸에서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이 극성으로 끌어올려진 뒤에 일어난 변화였다.

자만심을 버리고 전력을 다 끌어올린 남궁무회의 주변에선 파직!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전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천뢰기(天雷氣)!!’

남궁휴는 또 한 번 놀랐다.

남궁무원이 숨겨 두었던 검술 실력을 드러내 놀라게 했다면, 남궁무회는 세가의 가신에게 전수되는, 창궁대연신공이 극성에 이르러야만 볼 수 있다는 천뢰기라는 강기공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

“대단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놀라운 검술로 상대를 압박하는 남궁무원도 대단하지만, 막강한 힘으로 검술을 파괴해 버리는 남궁무회의 능력도 대단하긴 마찬가지였다.

“천뢰제왕신공……!”

“가주도 대단하다! 똑같은 천뢰기야!”

어느새 가주의 몸에서도 푸르른 창공과 같은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주변을 휘돌며 번뜩이는 전광(電光)은 결코 남궁무회의 그것에 못하지 않았다.

츠츠츠츠―!

파팟!

챙! 채채챙!

따앙! 따다다당!

격렬하게 검을 부딪치는 두 사람.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휘두르는 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허공에서 맞물리는 중이었다. 지켜보는 사람의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공방.

따다다당!

파바박! 파박!

폭풍과도 같은 일각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을 때는, 이미 두 사람 다 온몸이 만신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남궁무회가 먼저 허탈한 심산을 담아 나직하게 소리쳤다.

“가주……! 그동안 세상을 속였구려.”

남궁무회는 감탄과 경악이 섞인 눈빛으로 남궁무회를 노려보았다.

“속였다기보다는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네.”

“힘이 있다면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어찌 그걸 참고 살았소?”

남궁무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싸움이란 안 할수록 좋은 것이고, 분쟁이란 없을수록 좋은 것이지.”

“……가주는 가문을 잘못 타고 태어났소.”

“그런가?”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나는 가주를 이길 수는 없겠소. 하지만 지지도 않지. 그러니 아까 한 약속은 무효요. 역시, 피는 볼 수밖에 없겠소.”

공격 신호를 내리기 위해 손을 높이 들어 올리는 남궁무회.

그 순간, 남궁무원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겠나?”

“이미 내친걸음,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소. 난 당신의 자리에 올라 남궁세가를 만천하가 두려움으로 벌벌 떠는 위대한 이름으로 만들 것이오.”

“무회……!”

“나를 따르는 무사들이여! 모두 공격을……!”

콰앙!

“……?!”

남궁무회가 공격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려는 그때,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남궁세가의 중전에서 내전으로 이어지는 대문이 박살 나고 있었다.

지지대가 박살 나고, 경첩이 떨어져 나간 대문이 끼익― 비명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자연 모두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그쪽을 향했다.

강인한 근육을 꿈틀거리는 갈색의 말이 먼저 보인다.

사뿐사뿐, 당당한 걸음걸이로 선두의 기마가 내전에 들어서자 그 뒤를 따르는 일백오십의 기마병이 대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따라붙었다.

“저게…….”

“뭐야……?”

모두가 의아한 심정이 된 가운데, 정렬된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울렸다.

따각― 따각―

난데없이 나타난 기마대가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 앞에서 멈춰 설 때까지, 기묘한 위압감에 눌린 장내의 사람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꿀꺽.

모두가 긴장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객주…… 님?”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있던 남궁휴 역시도 놀란 기색이 역력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장기린을 불렀다.

적룡기마대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다.

“정렬!”

처척! 척!

선두에 선 장기린이 짧게 구령을 붙이자, 일백오십 명의 기마병들이 일제히 자세를 바로 했다.

절도있는 그 동작은 웬만한 훈련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적룡기마대가 오랜 훈련을 거쳐 호흡을 맞춰 왔다는 것을 눈치챈 몇몇 무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 이름은 장기린!”

장기린은 박력있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남궁세가의 후계자인 남궁휴 공자에게 도움을 요청받아 이곳에 왔소!”

“……!”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이 고개를 홱 돌려 남궁휴를 쳐다봤다. 장기린의 한마디로 그들에겐 적아가 판별이 된 것이다.

“아……?”

반면, 어안이 벙벙해진 남궁휴.

황급히 표정을 관리했으나, 당황한 얼굴을 이미 모두에게 선보인 뒤였다.

“이 무슨……! 또 다른 힘을 숨겨 두고 있었나……!”

남궁무회는 이를 갈며 남궁무원을 노려봤다.

그의 입장에선 남궁무회가 의뭉스럽게 힘을 숨겨 두고 있던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진구!”

“예!”

“그놈을 풀어 줘라.”

“예!”

진구는 명을 받자마자 자신의 등 뒤에 밧줄로 묶어 두었던 이중혁을 장기린의 앞쪽에 짐짝처럼 집어 던졌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바닥을 굴렀다.

특히 거칠게 비틀린 오른팔과 어깨는 척 봐도 심각한 상황.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남궁무회만은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경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중혁……!”

“이중혁? 설마 그 이씨세가의 장자?”

이중혁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아는 사람이 많았다. 현 가주의 부인인 이화 부인의 외가가 바로 이씨세가. 그 이씨세가의 장남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는……!”

한편, 남궁무회에게 이중혁은 다른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이씨세가에 전서를 보내고 지금처럼 급하게 일을 도모한 것엔 이씨세가에서 원군을 보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세가는 강하다.

원군을 이끌고 오기로 되어 있던 이중혁이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나타나는 것은, 남궁무회의 상식으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가주가 어떤 비장의 수를 숨겨 두었든 자신이 있었건만…… 남궁무회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씨세가에서 보낸 오백의 병력이 남궁세가를 향하고 있었소. 아마 총관의 반란을 돕기 위해서였을 테지.”

“……!!”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그게 사실이냐는 듯 남궁무회를 쳐다봤다.

이씨세가가 총관의 반란을 돕는다?

이상한 일이다.

남궁세가에 있는 이씨세가의 연줄은 이화 부인.

이화 부인은 가주의 부인이니 반란이 일어나면 오히려 말려야 할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왜 총관의 반란을 도우려고 할까?

이씨세가와 총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기에?

총관이 반란에 성공하면 어떤 이득이 있기에?

‘설마……?’

‘혹시?’

대부분은 의아해하고, 그중 머리 회전이 빠른 몇몇은 남궁무회를 향해 설마하는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장기린이 담담한 목소리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 오백은 이제 없소. 우리의 손에 모두 죽었지.”

“뭣……?!”

“남궁가주!”

장기린은 크게 동요하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남궁무원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남궁무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주에게 묻겠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을 쓰러뜨려 주면 되겠소?”

“……!!”

마치 뒷산에 풀을 베러 가겠다는 듯 가벼운 말투.

장기린의 태연한 그 말에 위지광과 사마현, 그리고 삼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이 분노의 빛을 띠었다.

“감히!”

“우리가 우습게 보이더냐!”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한 무사들을 말린 것은 의외로 두 가문의 가주였다.

“가만히 있거라!”

“조용!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위지광과 사마현 역시 분노했으나, 그들은 장기린과 그 뒤에 시립한 적룡기마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그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이씨세가의 오백 명을 모조리 죽였다지 않은가.

힘을 짐작할 수 없는 상대는 되도록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음…….”

남궁무원이 어두운 안색으로 잠시 고민하다 남궁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이 따뜻하면서 단호한 빛을 띠었다.

“장 소협에 관한 일은 앞으로 세가의 운명을 짊어질 가문의 후계자에게 맡기겠소.”

“……!!”

경악에 경악을 더해 가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반역이 일어난 상황에 등장한 갑작스런 원군. 거기다 가주가 남궁휴를 후계자로 선언한 것이다.

“가주!!”

남궁무회가 당혹스런 마음을 수습하고 분노를 가득 담아 외쳤다.

“어찌 이런 상황에! 게다가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망나니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오?”

“휴는 방탕하지 않네.”

“가주! 그걸 말이라고……!”

“방탕하기로 따지면 드러나지 않았을 뿐, 혁이가 더 심하지. 게다가 그 아이에겐 가주가 되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그 일을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겠나?”

“……!!”

남궁무회의 말문이 막혔다.

“이참에 모두에게 분명히 말해 두겠네. 내 뒤를 이어 가주가 될 사람은 여기에 있는 휴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네. 내 생각은 확고하고, 앞으로도 절대 변할 일이 없을 것이네!”

남궁무원은 그 뒤, 휴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휴, 말해 보거라. 너는 저 장 소협의 도움을 받겠느냐?”

“아버…… 님…….”

“후계자로서의 첫 결정이다. 네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

남궁휴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젠 후계자가 되었다는 확언까지 받았다.

어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 아버님. 장 대협!”

남궁휴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문의 안정을 찾기 위해 저를, 그리고 남궁세가를 도와주십시오.”

세가의 이름을 걸고 하는 부탁이다.

장기린은 수백 무사들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남궁휴를 잠시 지그시 응시하다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대공자의 부탁, 들어드리지.”

“고맙습니다.”

장기린이 승낙하자 남궁휴는 깊은 포권으로 예를 표했다.

객주와 하인으로서의 대화가 아니라, 적룡기마대주와 남궁세가의 후계자로서의 대화였다.

“우리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남궁무회는 크게 분노하여 외쳤다.

“우리의 숫자가 훨씬 더 많소! 어서 모두를 쓰러뜨리고, 가주를 조용한 곳으로 모십시다!”

“예!”

창천대가 검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고,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도 전투를 준비했다.

싸움의 시작은 남궁무회를 따르는 창천이대의 무사들로부터였다.

남궁무회가 남궁무원에게 다시 달려들자, 옆에서 지켜보던 뇌공대가 앞을 막아섰고, 뇌공대가 앞으로 나서자 창천이대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채채챙! 챙!

“와아아아―!”

“죽여라!”

전의에 불이 붙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고, 비명과 고함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실력이 비등한 자들끼리 붙으니 어느 한쪽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채챙!

“으악……!”

하지만 숫자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법.

가주와 남궁휴가 있는 쪽을 향해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도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하자 숫자가 적은 뇌공대는 금세 손이 어지러워지며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크윽!”

“막아! 막아랏!”

장기린이 나선 것은 바로 그때.

히히힝―!

큰 소리로 한 번 울부짖은 갈색의 전마가 번개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파아앙―

쉬이이이익―!

힘차게 뒷발을 뻗은 말이 앞으로 솟구치고, 장기린의 손에 들려 있던 육 척 길이의 무인창(無刃槍)이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투로.

단단한 철목(鐵木)의 창신이 놀란 얼굴로 칼을 뽑아 드는 사마가와 위지가 무사들의 철검과 부딪쳤다.

쩌저정!!

일격에 서너 개의 철검이 부서져 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도자기가 깨지듯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손목이 기괴하게 비틀린 무사 세 명이 일제히 뒤로 튕겨 나갔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힘, 강렬한 기세에 모두가 압도되었다.

“쿨럭!”

“크헉……!”

검이 박살 난 채 튕겨 나간 무사들은 일제히 피를 토하며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마, 막아! 막아라!”

“뒤쪽이다! 뒤쪽에서도 온다!”

후우웅―!

장기린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말 안장에 박차를 가한 채 무인창을 다시 한 번 휘둘렀다.

검선과 함께 참오하여 만든 무공.

일연적룡무의 두 번째 초식이었다.

창끝은 오른쪽으로 작게 원을 그리고 창대는 왼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는 움직임이었다. 장기린의 양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양손이 수십 개로 늘어난 듯한 모습.

천수관음상을 보는 듯,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장기린의 창이 수십 개로 분열하여 주변을 그물처럼 뒤덮었다.

쩌저저정!

“크왁!”

“푸흣……!”

주변을 파도처럼 휩쓰는 창영(槍影) 속에서 어떻게든 하나라도 막아보려 했던 무사들이 박살 난 무기를 든 채 처참한 몰골로 무너져 내린다.

“이노옴! 멈춰라!”

무인지경으로 파고드는 장기린을 막기 위해 황급히 달려드는 자, 위지광이었다.

검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이 고고하고 쓸쓸하면서도 살기가 넘쳤다.

고혼일검(孤魂一劍).

자잘한 흐름을 모조리 무시한 채 고고하고 강맹한 공격으로 삼켜 버리는 패도적인 검법이다.

위지광은 옆에 있는 무인 한 명을 옆으로 홱 밀어 버리고는 그를 대신해서 검을 부딪쳐 왔다.

쩌어엉!

“큭……!”

절정고수 위지광의 검법은 강맹했으나, 하늘로 승천하려는 적룡의 힘은 막을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손속을 교환한 것만으로도 휘청이며 뒤로 밀려난 위지광이 당황하여 신음을 흘렸다.

창에 실린 경력이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위지광은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공격의 틈을 찾아보려 했다.

허공에서 크게 휘어진 검로가 장기린의 다리와 말을 함께 노리고 쏟아졌다. 찌르기와 베기가 탁월하게 혼합된 검술. 고혼일검이라는 이름답게 적의 공격을 끊으며 날아오는 시점이 절묘했다.

‘하지만…….’

장기린은 냉정한 눈으로 위지광을 바라보며 사방으로 그물처럼 펼쳐져 있던 창영(槍影)을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쉬쉬쉬시식―!

“……!”

위지광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손발이 흐트러졌다.

결국 위지광은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른쪽을 노리는 듯하면서 왼쪽을 노리는 듯하고, 그렇다고 왼쪽을 막으려고 하면 위나 아래에서도 창영이 솟구쳤다. 실체가 없는 환창 같기는 한데, 그러면서도 일 격 일 격에 무서운 힘이 실려 있었다.

무림십대고수인 맹호도 방극마저도 비전 절초를 사용한 뒤에야 막아 낼 수 있었던 공격이다.

아직 초절정에 오르지 못한 위지광으로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공격이었던 것이다.

쩌저정!

“큭……!”

강하게 검을 때리는 일격에 손목이 위로 휙― 올라가고,

쩌어엉! 쾅! 콰드득!

다시 한 번 내찌른 일격이 검을 멀리 날려 버림과 동시에 위지광의 손목을 부러뜨렸으며,

후우우웅―!

이번엔 창의 움직임이 크게 휘어지며 태산압정의 한 수로 위지광의 정수리를 노렸다.

“……!”

휘둘러지는 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맹한 압력이 실려 있었다.

위지광은 주춤거리며 몸을 빼다가 압력에 밀려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

절정고수가 싸움 도중에 땅바닥에 주저앉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지광은 얼이 다 빠져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름 남궁세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로서 무림을 좁다 하며 날뛰고 다녔는데, 오늘 생전 처음 보는 자를 상대로 불과 이 초식 만에 쓰러진 것이다.

“위지가주!”

그런 위지광을 구하기 위해 이번엔 사마가의 가주인 사마현이 달려왔다.

위지가와 사마가는 이제 서로 같은 운명의 배에 올라탄 사이였다. 이 일에 가문의 명운이 걸려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이 무너져 버리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쉬이익!

“헛……!”

쩌엉!

하지만 검을 빼 들고 위지광을 구하러 달려들던 사마현은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다시 뒤로 튕겨지고 말았다.

장기린이 아니었다.

장기린의 뒤에서 회색 털을 가진 명마를 타고 있던 잘생긴 청년.

한 손에 고삐를 거머쥔 채 앞으로 나선 부운화가 장군검을 휘둘러 사마현을 막아 낸 것이다.

스으으― 척!

허공에서 크게 한 바퀴 회전한 장군검이 날카로운 검첨으로 사마현의 미간을 겨누었다.

마치 탄궁의 고수가 활시위를 겨누듯, 그 모습만으로도 섬뜩함을 느낀 사마현은 움찔하며 더 이상 나설 수 없었다.

‘아아, 어디서 이런 자들이……!’

사마현은 탄식했다.

대장인 장기린이라는 자도 그렇고, 그 뒤의 부하들도 그렇고, 정체를 알 수 없음에도 도저히 겉으로 보여지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자들뿐이지 않은가.

위지가의 가주 위지광의 단 이 초식 만에 쓰러지고, 사마가의 가주는 이름 모를 젊은 청년에게 가로막혔다.

주변 모든 무인들이 경악한 가운데 장기린은 차분한, 어찌 보면 무심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적룡기마대.”

“옛!”

“모두 쓰러뜨린다. 단, 죽이지는 말도록.”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일백오십의 기마대가 건각을 뽐내며 일사불란하게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 막아!”

“말을 노려라! 말을 노려!”

기마병을 처음 상대하는 자들은 어찌 그리 생각이 똑같은지.

건장한 전마의 몸무게는 적어도 사백 근에서 많게는 오백 근까지도 나간다. 거기에 머리와 몸통에 채운 마갑, 사람과 병장기의 무게까지 다 합하면 육백 근은 족히 되는데, 그만한 무게가 가속을 받아 달려오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겠는가.

게다가 이인 일조가 되어 서로를 지켜 주는 적룡기마대원들의 호흡은 그야말로 철벽이나 다름없었다.

보이지 않게 살짝 뒤쪽으로 빠져 있던 창수(槍手)가 말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방어하면, 정면에서 달려가던 대검수(大劍手)가 달려들던 속력을 그대로 살려 적을 베어 내는 것이다.

육중한 기마의 힘을 그대로 살리고, 가진바 무공까지 사용해 내려치는 무거운 대검의 일격!

그 힘은 아무리 남궁세가에서 무공을 단련한 무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막아 낼 수 없었다. 파도처럼 몰아친 적룡기마대의 공격에 일선에 있던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사들이 피를 흩뿌리며 나뒹굴었다.

채챙! 채챙!

“으악……!”

죽이지는 말라고 했던가.

적룡기마대원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지켰다.

단, ‘죽이지만 않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익혀 온 것은 일격필살의 살검. 죽이지는 않는다 해도 팔다리 중 한두 개를 날리거나, 거동할 수 없도록 중요 부위를 베어 내는 데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대검수들은 각자 정면에 있던 세 명 정도를 베어 낸 뒤 방향을 비스듬하게 틀어, 마치 깎아 내듯이 무인들에게 상처를 입히며 좌측으로 우르르 이동했다.

“이, 이런!”

“잡아!”

“쫓아라!!”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동료를 눈앞에서 목격한 무인들이 분노하여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검수들의 뒤에 따라붙고 있던 창수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한 조인 두 사람을 보호하고 상대의 빈틈을 용서없이 파고드는 섬세한 창술!

슈슈슉―!

“크윽……!”

“크앗……!”

무인들이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적룡기마대의 공격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무작정 달려들려던 많은 수의 무인들이 창에 다리나 어깨가 찔려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것이다.

“이 무슨……!”

사마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일류 무공을 익힌 위지가와 사마가의 무인들이 삼백 명이다.

그런데 손도 못 써 보고 당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마현은 자신이 나서서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찾고 싶었으나, 장군검을 척하니 겨눈 채 그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는 청년의 위압감에 눌려 단 한 발자국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장군검을 든 청년뿐만이 아니었다.

커다란 언월도를 든 사나운 인상의 청년, 양손에 묵직한 단추(短錘)를 들고 휘두르는 거구의 사내, 큼직한 철선을 든 장신의 사내와 크고 굵은 창을 들고 있는,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청년까지.

상당수의 인물들이 사마현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였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자들이 아무런 명성도 없이 갑자기……!’

사마현은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사마가와 위지가의 무인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가주인 남궁무원이 있는 쪽도 상황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남궁무회가 위지가나 사마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남궁무원을 잡기 위해 전력을 투입한 것이다.

남궁무회는 사마가나 위지가는 뒤를 막아 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뇌공대 백오십에 단가와 정가의 연합 오십 명을 합쳐서 총 이백.

그리고 이쪽은 창천대 이백이 함께하고 있었다. 게다가 숫자는 대등하지만 고수의 숫자는 남궁무회 쪽이 더 많았다.

“가자!”

“와아아―!”

남궁무회를 선두로 하여 원추형의 진형을 짠 그들이 무작정 가주가 있는 곳을 향해 돌파하기 시작했다.

가주가 뒤로 빠진 상황에서 남궁무회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제각각 불과 삼 초가 지나기 전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뇌전기를 번뜩이며 쏘아지는 섬전십삼검뢰는 하수가 감히 맞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파죽지세로 뇌공대의 방어를 뚫고 나온 남궁무회는 제자리에 담담히 서 있는 남궁무원과 그 옆에서 칼을 뽑아 든 채 잔뜩 긴장해 있는 남궁휴와 강운찬을 발견했다.

‘남궁휴, 다쳤군. 이 초식이면 충분하다. 그 옆의 강운찬이라는 놈도 이 초면 충분해. 도합 사 초. 동시에 상대해도 삼 초 이내. 그 뒤엔 가주와 맞부딪치겠지만…… 그때쯤이면 창천대가 도착한다.’

남궁무회는 가진바 이상의 힘을 내며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창천대를 흘깃 쳐다봤다.

전쟁에서 장수가 선두에 설 때 기세가 살아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선두에 선 장수가 신위를 뽐내면 그 덕에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고, 그렇게 오른 사기는 강렬한 군기가 되어 선두에 선 장수에게 다시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남궁무회는 거치적거리는 뇌공대 무인 세 명을 일검에 튕겨 낸 뒤 천리호정의 신법으로 훌쩍 뛰어 남궁무원과의 거리를 좁혔다.

쉬이익―!

그때, 옆에서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검.

남궁휴다.

다친 게 분명한 몸으로 쓰는 검술치고는 매우 날카롭다. 세가의 기본 검술인 천풍검법이었는데, 독자적으로 변형시켰는지 창궁무애검법과 비슷한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제법.’

몸 상태와 아직 어린 나이를 생각할 때 대단한 수준이지만, 아직 남궁무회의 상대는 아니었다.

남궁무회는 가볍게 손을 떨쳐 섬전십삼검뢰의 일초식을 뻗어 냈다.

쩌엉!

“윽……!”

남궁휴가 번개처럼 날아드는 공격을 겨우겨우 막아 내고, 그 경력을 버티지 못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쉭―

그리고 그 틈을 메우려는 듯 허공으로 몸을 띄워 달려드는 자.

강운찬이다.

한쪽 다리로 뛰어올라 발뒤꿈치를 내리찍는데, 그게 웬만한 쾌검수보다도 빨랐다.

‘미숙해.’

아직 뻗어 낸 섬전십삼검뢰를 회수하기 전이었으나, 강운찬을 상대로는 검을 들지 않은 왼손만으로도 충분했다.

파지직―!

부드럽게 뻗어 내는 손에 뇌전기가 담겼다.

꼿꼿하게 세운 검지와 중지로 내리찍는 발뒤꿈치로부터 한 치 위, 발목 근처의 혈도 네 군데를 순식간에 점했다.

뇌전처럼 치솟아 신체를 마비시키는 지법, 천뢰지(天雷指)였다.

“으윽?!”

강운찬이 놀란 신음을 흘리며 돌팔매질에 맞은 새처럼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하앗―!”

그럼에도 끈질기게 주먹을 뻗었다.

금계독립의 자세에서 내뻗는 쾌권.

벽력신권이다.

한때 멸문하기 전에 황보세가를 대표했던 무공인만큼 강력한 권공이지만, 남궁무회에게 있어서 입문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초짜배기가 사용하는 무공은 두려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타핫!”

남궁휴도 공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뛰어들면서 아래에서 위로 그어올리는 검공에는 천뢰제왕신공의 은은한 벽력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이뤄지는 공격.

마치 합격술이라도 연마한 듯 정확한 시점에서 호흡을 맞춰 날아드는 공격이었다.

“저리 비켜라!!”

눈을 번쩍 뜨고 뇌성처럼 소리치는 남궁무회.

그는 강력한 뇌전기와 함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치며 막강한 기파를 뿜어냈다.

파바밧! 쩌엉!!

그의 손에서 막강한 섬전의 검격이 연거푸 뿜어지고, 앞을 막아섰던 남궁휴와 강운찬이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순간에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강운찬은 일권을 내뻗었던 오른팔이 길게 베였고, 남궁휴는 검을 때린 경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제법 큰 내상을 입었다.

“크웁…….”

“큽……!”

정확히 삼 초 만에 열리는 길.

예상대로였다.

남궁무회는 이미 제압한 두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남궁무원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이미 그의 안중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가주인 남궁무원.

의외의 실력을 보여 주며 모두를 경악에 몰아넣었던 그만이 남궁무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스으으으―

“음……!!”

이제 남궁무원까지의 거리는 열 걸음 남짓.

그런데 남궁휴와 강운찬을 지나쳐 남궁무원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변했다.

마치 음습한 공동묘지에 들어간 것 같은 차가운 공기.

사방에서 누군가가 칼로 겨누는 듯, 날카롭게 치솟은 살기가 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남궁무회의 미간이 좁혀졌다.

의외로 뭔가 준비해 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휙― 하고 뒤를 돌아보는 남궁무회.

그 순간,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지금껏 보이지 않던 뇌공대주 유자항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뇌공일대! 끊어라!!”

“옛!”

넓게 포진해서 막고 있던 뇌공일대의 무인들이 갑자기 한곳으로 모이며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정확히는 남궁무회의 뒤.

창천이대와 창천삼대의 대주가 따라오던 지점이었다.

“……!”

남궁무회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뇌공대는 자신이 천리호정의 신법으로 거리를 벌리고 남궁무원을 향해 혼자 뛰어드는 틈을 절묘하게 노린 것이다.

퇴로가 끊긴 셈.

창천이대주와 삼대주는 절정의 경지에 가까운 고수였지만, 뇌공일대의 대원들 두셋이 달라붙자 뚫고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진형을 한 마리의 생물체라고 본다면, 방금의 일격으로 목이 잘려 머리만 뚝 떨어진 셈.

졸지에 남궁무회는 홀로 적진에 뛰어든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대체 언제 연락이 간 것인지, 식객당에서 죽치고 있던 식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남궁무회를 성토하며 가주를 돕기 시작한 것이다.

“가주를 구해라!”

“총관을 막아! 가주가 다쳐선 안 된다!”

“이놈들! 멍청한 짓을 그만두지 못할까!”

남궁세가의 식객들 중엔 뇌공대주에 맞먹는 실력을 가진 고수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한 다리만으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창천대의 무인들을 날려 버리는 독각풍권 황보숭. 그리고 어느 도문(道門)의 후예라는 세류검(細柳劍) 청궁 진인이 그랬다.

독각풍권의 강맹한 권격이 우렛소리와 함께 몰아칠 때마다 무인들 두셋이 바닥을 뒹굴었고, 세류검의 섬세한 검술이 흐늘흐늘 빈틈을 파고들 때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궁무회를 따라 나왔던 창천대의 무인들.

그들은 독각풍권과 세류검, 그리고 식객들의 등장으로 사방이 포위된 채 하나둘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

“허어……!”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애매한 신음을 흘리는 남궁무회.

그는 부릅뜬 눈으로 사방을 노려보더니, 이내 허탈한 얼굴이 되어 여전히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주를 응시했다.

“가주, 이런 계략도 꾸밀 줄 알았구려.”

남궁무회는 지금의 이 고립된 상황이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무회가 분노에 휩싸여 무작정 가주를 향해 달려들 것을, 가주는 싸우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는 다혈질의 성격이 탈이지.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싸움을 마무리하려면 이렇게 전략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네.”

“……이제 보니 창천대협이 아니라 천심호리라고 불려야겠소.”

남궁무회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오십 명의 무인이 오로지 그를 향해 검을 겨눈 상황이었다.

창천일대(蒼天一隊).

가주의 명령만을 따르는 남궁세가 최정예 무인들이었다.

그들 중 십여 명은 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며, 그 외 나머지도 일류의 끝자락엔 올라 있는 강자들이다.

대체 어딜 가고 안 보인다 싶었더니, 가주는 최후 비장의 한 수로 그들을 사용한 것이다.

“무회.”

“…….”

“앞으로 개심원(改心院)에서 무공을 참오하게. 그럼 이 일은 불문에 붙이지.”

남궁무회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핫! 하하하핫!”

개심원.

그곳은 소림의 개심동처럼 가문의 요인이면서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을 반성하도록 만들어 둔 독립된 별채였다.

말이 별채지, 사실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들어가게 되면 기관 장치와 진법에 갇혀 최소한 삼십 년 동안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밥은 세 끼 꼬박꼬박 나올 테고, 무공 수련에 필요한 것들도 무한정 제공된다.

다만, 평생 속세를 끊고 도인이 되어 살아야 하는 곳이다.

“가주, 가주……! 정말 마음이 넓소.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면서도 날 살려 주겠다는 것이오?”

“자네는…… 내 하나뿐인 형제일세.”

“…….”

“형제란 서로 싸울 수는 있지만, 서로 피를 봐선 안 되는 것 아니겠나.”

남궁무회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서 있더니, 잠시 후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틀렸소.”

“무회…….”

“내가 이기고 가주를 잡았을 경우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밖에다간 가주를 유폐시켰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죽였을 것이오. 권력이란 그런 것이지. 피도 눈물도, 혈육도 우정도 따지지 않는 게 이 비정강호의 생태라는 것이오.”

스릉―

남궁무회는 검을 들어 올렸다.

“자, 이 반역자를 벌하시오. 나는 가주의 권위에 도전했으며, 죽는 그 순간까지 친형의 목숨을 노린 천인공노할 패륜아요.”

“무회……!”

“창천대여, 너희의 가주를 지키려면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남궁무회는 허리춤에서 검집을 뽑아 뒤로 던져 버렸다.

검집을 버린다.

즉, 뽑아 든 검을 다시 검집에 꽂을 일이 없을 거라는 뜻이니,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고오오―!

목숨마저 내던지고 전력을 끌어 올리는 남궁무회였다. 불꽃처럼 피워 올리는 기세는 그야말로 막강.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창천일대의 무인들은 잔뜩 긴장한 채 검을 꼿꼿하게 세웠다.

저벅저벅.

창천일대를 이끄는 대주 임무생은 그런 남궁무회의 앞으로 다가와 검을 들어 올렸다.

“세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반역을 꾸민 총관을 가법으로 처벌하자면 즉참으로도 모자랄 터. 이 임무생이 가법을 집행하겠소.”

남궁세가에서 손꼽히는 다섯 명 중 마지막 한 사람의 말이었다.

총관 남궁무회, 창천대주 임무생, 뇌공대주 유자항, 위지가주 위지광, 사마가주 사마현.

이렇게 다섯 명을 무림에서는 강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창천대주, 물러나게.”

“가주!”

가주 남궁무원은 그런 임무생을 말리고 자신이 대신하여 앞으로 나섰다.

남궁무회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훨씬 유리한 상황임에도 남궁무원은 숨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다.

“총관에 대한 가법은 가주가 직접 집행하겠네.”

“…….”

남궁무회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곧장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남궁무원이 제왕검형을 전개하고, 남궁무회는 섬전십삼검뢰를 펼쳐 냈다.

상황은 처음 두 사람이 만나서 싸웠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뇌전기가 번뜩이고, 우레와 같은 기파가 터져 나가며, 땅거죽이 움푹 파일 만큼의 격렬한 싸움이 연신 이어졌다.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이러할까.

막강한 힘을 가지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뜨거워지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고, 남은 무인들은 가주와 총관의 싸움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결을 조용히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일세의 싸움.

일세의 대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채채챙! 챙! 챙!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 잔상과 잔상이 부딪치고, 점점 뜨겁게 달궈진 싸움의 열기가 하늘에 닿을 만큼 극에 이를 무렵,

푸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