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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十五章 ― 파륵삼호(破肋三虎)
―삼호방에는 세 마리의 호랑이가 있다.
파갑수(破鉀手) 강추산이 아직 방파를 세우지 않았을 무렵, 그는 각각 한 살 터울이 나는 그의 세 아들을 사나운 맹견과 함께 한방에 가둔 적이 있었다.
이름은 강장호, 강산호, 강인호.
그 당시 삼 형제의 나이가 일곱 살, 여섯 살, 다섯 살.
다섯 살이면 이제 갓 제대로 걷기 시작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여섯, 일곱 살 역시 다섯 살보단 조금 낫지만 아직 자기 몸도 다 추스르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투견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나운 맹견과 한방에 가둬 놓았다.
투견은 주인 외에는 복종하지 않는다.
단련된 턱 힘은 뼈도 끊을 수 있고, 성질을 사납게 하기 위해 항상 굶기거나 생피만 먹이기 때문에 건장한 어른도 자칫 잘못하다간 화풀이로 물려 죽는다.
그런 맹견을 아직 작은 아이들과 함께 두었으니…….
자신의 아이에게 하는 짓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행(奇行)이 아닌가.
세 아이의 어미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소리쳤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강추산은 절대로 문을 열지 못하게 수하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뒤 그 상태로 하루를 꼬박 그대로 놔 두었다.
“내 자식이 강하지 못하다면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다.”
흑도의 수뇌다운 냉혹하고 비정한 사상이다.
문 안쪽에선 연신 으르렁거리고 컹컹대는 사나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뭔가를 물어뜯는 듯 섬뜩한 소리도 들려왔다.
결국 실신한 어미가 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내실로 돌아간 뒤, 강추산은 태연하게 집무실에서 자신의 할 일을 마친 뒤 다음날 아이들이 있는 방 안으로 돌아왔다.
강추산의 곁에 있던 수하들은 모두 다 참혹한 광경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다. 상식적으로 사나운 맹견과 함께 갇힌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남겠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맹견은 며칠째 밥을 안 줘서 굶주린 상태라 목불인견의 참상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끼이익―
“허억!”
“흐엇!”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모두 다 크게 놀라고 말았다.
참상은 참상인데 그들이 예상했던 광경이 아니었다.
강추산 역시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크게 놀랐으나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낳았구나! 우리 집안에 호랑이가 세 마리나 있어!”
놀랍게도 세 아이는 이미 죽은 맹견 위에서 서로 장난치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맹견은 혀를 길게 빼물고 머리가 깨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막내인 인호는 죽은 개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놀고 있었고, 둘째인 산호는 죽은 개의 배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첫째 장호였다.
일곱 살.
나름대로 식견이 멀쩡한 그 아이는 오른손에 피투성이가 된 철불상(鐵佛像)을 들고 있었다. 방 안 한구석에 장식되어 있던 무게 다섯 근 정도의 철덩어리였다.
아무도 일곱 살짜리가 그걸 무기로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나, 장호는 그걸로 살아남은 것이다.
아직 젖살이 남아 통통한 왼쪽 팔뚝엔 맹견의 것으로 보이는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한 치나 찢어진 피부에선 피가 거멓게 굳은 채 말라붙어 있었다.
평범한 아이 같으면 아프다고 엉엉 울 만도 하건만, 장호는 한 손에 피투성이 철불상을 든 채, 죽어서 혀를 빼물고 있는 개의 머리만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하하핫! 삼호(三虎)! 내가 세 마리의 호랑이를 낳았으니 앞으로 방파의 이름을 삼호라고 짓겠다! 내가 죽더라도 세 마리의 호랑이가 방파를 이끌 테니 무엇이 두렵겠느냐!”
강추산이 그렇게 외친 지 이십 년.
삼호방은 강서성에 기반을 둔 흑도 최고의 방파가 되었다. 비록 강북 최대 방파인 사혈방과 비교되긴 하지만, 정파인 척하며 무명을 쌓는 사혈방과는 달리 삼호방은 정말로 악랄한 말종들만 모인 잔인하고 지독한 흑도의 방파로 거듭났다.
흑도의 강함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에 있다.
치사한 수법, 잔인하고 비겁한 술수.
그 어느 것도 망설이지 않고 쓰기에 흑도는 강한 것이다.
명분 또한 마찬가지다.
정파는 작은 행동 하나를 하려고 해도 명분을 신경 쓰고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눈치를 봐야 한다.
물론 그 덕에 쌓인 민초들의 신망이 바로 정파의 저력이지만…….
흑도는 그런 명분을 신경 쓰지 않고 언제 어느 때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목표를 성취해 낸다는 점이 대단했다.
삼호방주는 그 점을 확실히 안다는 점에서 수장의 자격이 있었다.
그는 흑도 문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강서성 암흑가와 뒷세계를 하나씩 점령해 나갔다. 보복은 잔인하고 확실하게, 그러면서도 지나친 원한은 쌓지 않도록 조심하여 무림 전체의 공분을 사는 일을 피했다.
심기에 거슬리지만 홀로 공격하자니 피해가 클 게 두렵고, 그렇다고 무림맹을 만들어 단체로 합공을 할 만한 명분은 없는 그런 수준을 유지하며 삼호방을 키워 낸 것이다.
“요새 강서성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아?”
강서성 본관에 근무하는 하급 병사들은 거리 시찰을 나오면서 불안한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산파가 당한 것 때문에 그래?”
“그것도 그렇고…… 어쩐지 거리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그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 그래도 걱정 마. 관은 관, 무림은 무림 아냐?”
“그야 그렇지만…….”
“그보다는 다른 걸 걱정해. 요새 들어 뒷골목에서 행패를 부리는 놈들이 많아졌다고.”
“휴우, 그렇지. 말세구만, 말세야.”
최근 강서성에는 범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배수의 소매치기나 좀도둑질 같은 게 아니라, 강도나 살인 같은 굵직한 범죄가 대부분이다. 그게 강서성의 암중 질서를 지키던 모산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손쉽게 유추할 수 있을 터.
지금도 병사들 십여 명은 중심가의 객잔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내들을 잡으러 출동한 참이었다.
‘어차피 잡으러 가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도망치겠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선 그게 당연한 일이다.
병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림인들은 관과 엮이는 것을 극히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에 병사들이 형식상 검문을 나가면 도망쳐서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가게 주인이 징징거리긴 하겠지만…… 뭐, 할 수 없지.’
무림인들은 도망치고, 병사들은 그 일을 대충 덮는다.
병사들 입장에선 정식으로 신고가 들어온 이상 귀찮아도 나서는 척이라도 해야 하고, 무림인들 입장에선 관에 찍혀서 좋을 게 없으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흐음, 여긴가?”
말하는 사이 그들은 문제가 일어났다던 객잔에 도착했다.
안화객잔(安畵客棧).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 때문에 강서성 성도에선 꽤나 유명한 객잔이다. 평소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사람이 많은 곳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객잔 주변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심상치 않은데…….’
병사들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으나,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객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서 오세요…….”
벌의 날갯짓마냥 떨리는 목소리로 점소이가 나와 그들에게 인사했다.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는 점소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퍼렇게 물든 눈두덩이, 터져서 피가 흐르다 만 입술. 옷은 걸레처럼 찢어졌고, 복부와 어깨 부근에는 흙발로 짓밟은 듯한 발자국까지 선명하게 나 있었다.
“으음…….”
병사들은 난감한 신음을 흘리며 서로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자연스레 점소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점소이는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이내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렇긴 할 건데 말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그, 글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점소이는 되도 않는 연기를 펼치며 딴청을 피웠다.
“흐음…….”
병사들은 점소이의 뒤쪽을 바라봤다.
뭔가 큰일이 있던 듯 사방에 박살 나 있는 탁자와 집기들.
식사 중에 탁자가 엎어진 듯 음식과 깨진 그릇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일단 좀 들어가지.”
“아, 예, 예. 이쪽으로…….”
병사들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함께 온 병사들의 숫자는 정확히 열일곱 명. 객잔이 웬만한 저택만큼 큰지라 내부로 들어서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창문이 전부 닫혀 있어 어두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엔 시간이 제법 걸렸다.
끼이익― 쿵!
누가 손을 댄 것이 아닌데도 객잔의 대문이 저절로 닫힌다.
병사들은 의아한 심정으로 대문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으음…….”
손님들이라고 봐야 할까.
각양각색의 복색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한쪽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 정도는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손에는 칼을 쥔 채 앞으로 엎어진 모습.
저항하다가 당한 흔적이다.
온몸에는 시퍼렇게 멍든 타박상이 가득했고, 팔다리가 부러졌는지 사지가 각각 기이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특히 갈비뼈가 부러진 것으로 보이는 옆구리는 더욱 심각해서 피부를 뚫고 나온 뼛조각이 드문드문 하얗게 보였다.
그럼에도 칼을 놓지 않았다는 점 정도는 칭찬해 줘야 할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독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광경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은 ‘싸움’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저항’을 했으나, 그나마도 성공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고문당했다.
상대에게는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본보기…… 본보기다. 이 두 사람을 통해 나머지 사람들이 반항할 엄두도 못 내도록 만들었어. 누구냐? 누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한 거지?’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손님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그 상석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
그들은 경악했다.
흔들리는 눈빛, 쩍 벌린 입으로 경악한 내심을 조금도 감추지 못했다.
“가, 강인호!”
강인호.
삼호방주 강추산의 세 아들, 파륵삼호(破肋三虎) 중의 셋째.
파륵이란 갈비뼈를 부순다는 뜻이다.
―삼호방의 세 호랑이를 만나면 갈비뼈가 박살 나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것이 강서성에선 누구든 유념해야 하는 금언(金言)이었다.
세 사람은 각각이 모두 더러운 성질머리를 가진데다 손속 또한 극히 잔인해서, 조금만 심경에 거슬리는 일을 해도 섬뜩한 푸른빛이 감도는 청람수로 상대의 갈비뼈를 박살 내 버리기 일쑤였다.
설령 죽일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무인으로서 사혈을 짚지 않고 갈비뼈를 박살 낸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잔인한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면 결코 편안히 죽을 수 없다.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과는 다르다.
갈비뼈라는 것은 상체의 온갖 중요한 내장 기관을 보호하는 성벽과도 같은 것.
특히 폐부가 꿰뚫리거나 횡경막이라도 찢어지면, 그 사람은 사레가 걸려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 속에서 폐 속에 핏물이 들어오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령 살아난다고 해도 평생을 병신으로 살아야만 했다.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한데 그런 짓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얼핏 장난처럼 저지르는 자이니 강인호의 성품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강인호는 겉으로 보기엔 제법 잘생긴 얼굴이었다.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턱 선은 날카로우며 콧대도 제법 우뚝 서서 인상이 강하다. 다만 단점이라면 옆으로 찢어진 눈이 항상 잔인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는 점일까.
야비하게 보이는 얇은 입술, 살짝 길어 보이는 얼굴형도 단점이다.
가끔씩 세상을 조소하듯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데, 그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항상 광기에 찬 것 같은 즐거운 표정 뒤로 잔인하고 냉정한 성품이 숨겨져 있다.
세상을 조소하는 삼호방의 세 번째 젊은 호랑이.
그것이 바로 강인호였던 것이다.
“어이, 의자. 흔들린다. 날 불쾌하게 만들 셈이야?”
“크윽…… 아, 아닙니다.”
강인호는 얇은 입술을 끌어올려 웃으며 그가 앉아 있던 ‘의자’를 손바닥으로 퍽퍽! 때렸다. 그때마다 ‘의자’가 고통스럽게 몸을 움찔움찔 떨었으나 강인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의자는 부부였다.
사내는 그의 엉덩이 밑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리고 있고, 여인 쪽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의 발을 올려놓을 지지대를 만들고 있었다.
“끄응…….”
“으으…….”
강인호가 건장한 체구를 뒤틀 때마다 두 사람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도저히 눈으로 참고 볼 수가 없다.
행패에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사람의 인격을 모멸하는 행동은 그 자신의 옹졸함을 나타낼 뿐이라고,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삼호방…….’
북천맹이란 이름 아래 천하의 모든 사파와 흑도 방파들이 모여들어 그 악랄한 명성을 더욱 크게 떨치고 있는 오왕 중 한 명의 세력이다.
“거기, 관군.”
“……우리 말이오?”
“그래. 본관에서 온 거야?”
병사들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톱을 틱틱 튕기며 말하는 강인호의 말투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으음…….”
병사들은 불쾌한 침음성을 흘렸지만, 일단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맞소. 본관에서 출두한 관.병.이오.”
관병이란 말을 굳이 강조했다.
그들은 관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한 것이다.
“그래? 그래서 지금부터 어쩔 건데?”
“……일단 정식으로 신고가 들어왔으니 객잔 주인에게 제대로 된 사정 설명을 듣고…….”
“객잔 주인이라면 저기 죽어 있는데?”
“……!!”
병사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객잔의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
꽤나 좋은 재질의 비단 화복을 입은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져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져 있었다.
마치 도망치려고 한 듯 등을 보이고 쓰러진 상태였다. 달리던 도중에 허우적대며 쓰러진 듯 자세가 민망할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는데, 등허리 부근에 밥공기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대단한 위력……!’
병사들은 속으로 감탄했다.
상처의 종류로 봐선 일격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사람의 몸에 깔끔하게 구멍을 뚫었다. 사람의 몸에 저만한 구멍을 뚫으려면 대체 얼마나 큰 힘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게다가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상처에선 피도 별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근처의 옷자락이 까맣게 탄 걸로 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을 사용했다는 게 짐작될 뿐이다.
“도대체…….”
병사들 중 한 사람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뭘 원하는 것이오? 신고를 한 객잔 주인, 그것도 무공도 모르는 민간인을 죽이다니. 이러면 명 제국의 지엄한 법률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르시는 거요?”
“카핫! 명 제국의 지엄한 법률?”
강인호는 낄낄대며 웃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앉았네. 명 제국 따위는 이미 밑창에 구멍 뚫려서 가라앉는 배나 마찬가진데, 지엄하긴 무슨.”
“뭣……!”
“강호관직론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 북천맹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다닌 지가 벌써 한참이나 됐는데…… 이젠 무인들이 곧 이 땅의 지배자야. 관청 따위는 아무런 힘도 없다, 이거야.”
“……!!”
병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강호관직론.
천하에 소문이 파다한데 그걸 왜 모르겠는가.
다만 역모에 연루된 무림 도당들이 외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설마 진심으로 황실과 관을 능멸할 작정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 참고 넘길 수가 없는 발언이오! 아무리 삼호방이 강대한 무림문파라고 한들, 감히 황실을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소?”
“삼호방 혼자? 아니, 그건 힘들겠지. 하지만 북천맹이라면? 가능해.”
강인호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느긋하고 잔인한 포식자의 눈빛으로 병사들을 쭉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눈치가 없는 작자들뿐이구만. 내가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자기들이 왜 여기에 불려왔는지를 모르니……. 쯧쯧.”
강인호가 혀를 차자 모두가 흠칫하며 놀랐다.
“그게 무슨……?”
“보자, 다섯, 여섯, 일곱…… 총 열일곱인가? 본관 관청의 상주 병사가 이백 명 정도 되니 최소한 너댓 번은 더 해야겠구만.”
“……!”
“얘들아!!”
강인호가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자, 객잔 밖에서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옛!! 삼공자님!”
“알아냈냐?”
“예!”
의미심장한 문답이 오갔다.
삼호방 무인들 중 가장 앞에 나서 있던 콧수염을 양쪽으로 길게 기른 사내가 강인호를 향해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 관청에선 봉화가…….”
“쉿. 말조심하고.”
“옛! 죄송합니다.”
강인호는 손을 휘휘 저은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병들을 바라봤다.
“이것들 다 죽여. 그리고 근처에 있는 거지 새끼 하나 잡아다가 관청에 보내서 이것들이 붙잡혔다고 말하라 그래. 그럼 적어도 스무 명은 더 뛰쳐나오겠지.”
“옛!”
우르르 몰려들어 온 삼호방의 무사들은 무려 오십 명이나 되었다.
병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낚싯대에 매달린 미끼를 덥썩 무는 멍청한 붕어처럼, 그들은 안화객잔 내부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상상도 못한 채 무턱대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칼날에 알아서 목을 들이미는 셈이었구나……!’
병사들은 당황하여 주변을 경계했으나, 이미 주변은 삼호방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난폭한 자들에게 물 샐 틈도 없이 포위된 상태였다.
“이런! 강인호! 정말로 황실과 관을 적대할 생각인가!!”
스릉!
채챙! 챙!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관청에서 관병들에게 지급되는 값싼 철검이다. 단순히 위압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허리에 패용할 뿐, 평소엔 실제로 사용할 일은 거의 없던 물건이다.
“우리 아버님이 북천맹 오왕의 자리에 오르셨다는 건 알지?”
“무슨……!”
“즉, 아버님이 왕이 되셨으니 나는 왕자의 신분이라는 거지. 그러니 네놈이 방금 주제도 모르고 이 몸의 이름을 부른 건 천인공노할 하극상이라는 뜻이야.”
병사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강인호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만약 동창이 들었다면 대번에 역모의 혐의로 잡혀갈 수준이었다.
강인호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더니 삼호방의 무사들에게 손으로 목을 긋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죽여.”
“옛!”
그 단순한 신호와 동시에 삼호방의 무사들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채채챙―! 챙!
“도, 도망쳐! 어떻게든 이 사실을 본관에……! 크악……!”
병사들 중 몇 명은 복수심에 불타는 심정으로 강인호를 향해 달려들었고, 다른 몇 명은 어떻게든 객잔 밖으로 몸을 날려 도주하려 하였으나…… 그들을 포위한 삼호방의 무사들은 너무나도 노련했다.
처절하게 저항하는 병사들을 상대로 전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차근차근 숫자를 줄여 나갔다.
하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사냥을 할 땐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게 아니라 적당히 활로를 보여 주면서 확실하게 끝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삼호방의 무사들은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슬쩍슬쩍 여유롭게 보여 주는 빈틈으로 병사들이 파고들었고, 그 순간 미리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삼호방의 무사들이 은밀하게 달려들어 몇 번이나 칼을 꽂았다.
“끄륵…….”
“크윽……!”
병사들은 순식간에 모두 쓰러졌다.
바늘에 꽂힌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릴 뿐,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흡!”
“흐윽!”
무릎을 꿇고 있던 객잔의 다른 손님들은 잔뜩 겁에 질려 고개를 푹 숙였다. 진득한 피 냄새가 그들의 숨을 틀어막고 있었다.
“나참,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아버님이랑 형님들이 직접 나섰으니 이런 짓을 할 필요도 없잖아? 그냥 쓸어 버리면 되는데 왜 나까지 나서서 이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느냔 말이야.”
강인호는 투덜거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신경질적으로 발을 퍽퍽! 구르며 몸을 비튼다.
“으읍……!”
당연히 그의 발밑 ‘의자’인 여인의 입에선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인호는 그 신음을 듣자마자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소리를 내! 의자가 소리를 내는 게 말이 돼?”
“읍……!”
“다시 한 번 내봐! 다시 한 번!”
강인호가 발을 세게 구른다.
그때마다 퍽퍽! 소리가 나고, 여인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꽉 틀어막은 손바닥 사이를 뚫고 신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으윽……! 아아악……!”
“이런 쓸모없는!”
벌떡 일어선 강인호가 마치 돌멩이를 발로 차듯 여인의 복부를 걷어차자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여인이 일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쾅! 하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여인의 등이 새우처럼 굽어졌다.
“부이인!!”
결국 참지 못한 남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의 아내를 향해 달려갔다.
여인은 이미 갈비뼈가 부러져 피를 게워 내는 상태였다.
사내가 핏발이 선 눈으로 강인호를 노려보았다.
“어찌 사람으로서 이런 짓을……!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거참, 시끄럽네.”
“금수만도 못한 인간. 너 같은 놈은 반드시 천벌을…… 크아악……!”
객잔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비명 소리.
어느새 휙 몸을 날린 강인호의 우권이 사내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었다. 청람빛이 번뜩였다.
마치 두부에 손을 넣듯 가볍게 들어간 손.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사내는 이미 절명한 아내의 위로 몸을 겹쳤다.
처참한 광경.
천도(天道)를 벗어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잔인하고 광기 어린 행동이다.
“또 나불거릴 놈 있어?”
눈을 희번덕거리며 묻는 강인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황실도, 관군도 이미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전율했다.
암흑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오로지 힘과 잔혹함이 지배하는…….
처절한 약육강식, 강자존의 세계가.
☆ ☆ ☆
채채챙! 채챙!
번뜩이는 칼날, 충천하는 화광 사이로 붉은색 핏물이 하늘을 수놓았다.
비명 소리, 고함 소리, 통한의 저주와 욕설이 하나로 거대한 합창을 이뤘다.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천하만민이 떠받들고 감히 거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대명 제국의 관청이 이렇게 불바다가 될 줄이야.
삼호방주 강추산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관청의 중앙로를 거닐었다.
바로 일 장 앞에선 관청의 병사들과 삼호방의 무사들 사이에서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강추산은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쓰러지는 쪽은 거의 대부분이 병사들 쪽이었다.
가끔 무과를 통과한 몇몇 포두들이 제법 잘 싸우고 있긴 하나, 그 외에는 다 쭉정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병사들의 수준이 형편없었다. 그나마 진형을 갖추고 창을 들고 있으니 버티는 것이었다.
무공의 격차는 밀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이제껏 나태하게 권위를 누리고 살아온 강서성 성주의 병사들과 흑도에서 치열한 암수를 뚫고 살아남은 역전의 무인들.
그 둘은 사실 비교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장호와 산호 녀석, 오늘따라 더 날뛰는구만.’
강추산은 흐뭇한 시선을 한쪽으로 보냈다.
무표정한 장신의 청년이 장남인 강장호, 덩치가 큰 우직해 보이는 청년이 둘째 강산호다.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삼호방의 압도적인 승세였으나, 특히 그 두 사람이 있는 쪽의 병사들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다.
푸른색. 청람빛의 기운이 번뜩일 때마다 가슴이 박살 난 병사들이 차례차례 무릎을 꿇었다.
강맹한 무공, 날렵한 몸놀림, 거기에 확실하고 철저한 마무리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이 없는 삼호방 최고의 무인 두 사람이다.
그들의 압도적인 돌파에 삼호방 무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캬하아―! 대공자를 따라라!”
“둘째 공자님도 함께 계시다! 쐐기형으로 모여서 뚫어 버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삼호방의 무인들은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병사들 입장에선 기가 질릴 수밖에 없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더니, 결국 커다란 틈을 만들어 냈다. 경계용으로 지급된 창을 들이밀어 보지만, 삼호방 무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죽여! 죽여 버려!”
“막아라! 절대 통과시키면 안 돼!”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사이, 뒤쪽 본채의 문이 벌컥 열리며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무엄한 놈들!! 웬 소란들이냐!!”
흰색의 문사복을 입고 머리에는 금빛의 관모를 썼다. 마른 체구에 가늘게 다듬어 기르는 수염. 평생 서책 말고는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듯하지만 얼굴에선 묘한 박력과 기품이 흘렀다.
그는 바로 강서성주였다.
쿵!
휘리리릭―
그가 나타나는 순간, 뒷짐을 진 채 산보하듯 천천히 걷고 있던 삼호방주 강추산이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무려 일 장 높이.
마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밀어 주는 것처럼 그는 허공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헛!”
“막아! 막아라!”
당황한 병사들이 창을 찌르려고 했으나 강추산은 찌르는 창끝을 밟고 오히려 더 위로 솟아올랐다.
날카로운 창날을 딛고 몸을 날리는 절정의 운신공(運身功)이었다.
강추산은 새처럼 훨훨 날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강서성주의 앞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삼호방주! 감히 나의 집에서 이런 행패라니, 제정신인가!”
강서성주는 당연히 강추산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산파와 삼호방, 강서성을 지배하는 두 개의 무파 중 한 곳의 지배자다. 강서성을 다스리는 성주로서 모를 리가 만무할 터.
하지만 만날 때마다 항상 웃는 표정을 짓고, 성주에게 한 수 낮춰 주는 듯했던 강추산은 이제 없었다.
당당한 얼굴로, 오히려 성주를 낮춰 보듯 오만한 시선을 보내는 한 남자만 있을 뿐이었다.
“강서성주.”
“뭣! 무례하다! 무례하구나, 삼호방주!”
“상황 파악이 늦군. 아직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나? 지금 나에게 관의 이름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
강서성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삼호방의 무인들.
그와 비례해 땅에 드러눕는 병사들의 숫자도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당신의 목숨.”
“이자가 미쳤구나! 지금 당장은 나를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에겐 경계령만 내리면 온 성에서 징집될 육천의 병력이 있다. 삼호방이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육천? 아, 이제 강서성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육천뿐이군. 그것도 강제로 징집해야 만들 수 있는 병력이.”
“……!”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흘러나온 실언이었다.
눈빛이 흔들리는 강서성주 앞에서 강추산은 자신의 짧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원래 강서성이 보유한 병력은 이만 정도라고 들었었는데, 징집을 해야 육천이라면…… 이번의 남경 탈환에 많이 참가시킨 모양이군. 이 정도면 강서성의 경비에는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소린데…… 나원, 명의 관료들은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그런 식으로 남경을 빼앗겨 놓고 강서성도 똑같이 해 두고 있어?”
강추산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찼다.
강서성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실 그는 그리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고, 하물며 태만하게 굴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성 밖으로 수색 병력을 이천이나 내보낸 상태고, 만약 남경에서 출군의 조짐이 있거나 근방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면 바로 연통이 오도록 연락망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외적에 대한 대비는 거의 완벽했다.
다만, 설마 무림문파인 삼호방이 관군을 향해 달려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뿐이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가?”
“대응이 시원찮군. 아까도 말했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순발력이 떨어져. 평생 글만 파던 사람이라 그런가?”
“황실이 있다! 대명 제국의 황실이 건재하거늘, 어떻게 감히……!”
“그 말도 마찬가지다. 고지식하고 답답해. 지금의 황실이 어디 예전과 같던가? 남경을 되찾을 힘도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는데 무슨. 이럴 때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키면 황실은 그걸 막을 힘이 없어.”
“허어……!”
강서성주는 어안이 벙벙한 듯 굳어 있다가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삼호방주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반기를 들었다? 왜? 이 성이라도 지배해 보려고?”
“물론. 이제 이 성은 나의 것이다. 북천맹의 오왕이자 삼호방의 방주인 나 강추산이 강서성을 지배할 것이다.”
“……하핫! 하하하핫!”
강서성주는 큰 소리로 웃었다.
“무지하다. 북천맹을 세웠다는 북방의 수괴도 그렇고, 그 말을 좋다고 믿고 따르는 작자들도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구나.”
“성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면 말조심하는 게 좋을 텐데.”
“명분! 민심! 위정자라면 이 두 가지를 항상 잊지 말고 가져가야 하거늘. 하핫! 이 말은 내가 죽고 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삼호방주, 나에게 학습 능력이 없다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내 말의 의미를 학습하지 못한다면 북천맹이란 곳은 일장춘몽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말이 많군.”
강추산은 더 이상 늙은 문사의 헛소리에 어울려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휙― 하고 내뻗은 손.
바람과 같은 권격과 함께 강서성주의 머리가 잘 익은 꽈리처럼 퍽! 하고 터져 나갔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내린 죽음.
강추산이 그나마 안면이 있던 강서성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병사들은 들어라! 강서성주는 죽었다! 이제 너희가 싸울 이유는 더 이상 없다! 항복하라! 당장 무기를 손에서 놓아라!”
강추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열세에 처해 있던 병사들에게 그 말은 치명적이었다.
근처의 병사들이 처참한 강서성주의 시신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이내 힘마저 빠져 창끝을 바닥으로 내리고 말았다.
그러한 현상은 폭우에 강물이 범람하듯 주변 병사들에게도 줄줄이 영향을 미쳤다. 병사들이 하나둘 창끝을 내리고, 심지어 몇몇은 손에서 창을 놓기까지 했다.
강장호와 강산호.
그리고 삼호방의 무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병사들에게 다가와 무기를 빼앗고 한쪽으로 우르르 몰아 두었다.
병사들은 힘이 빠진 듯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흐음…….”
강추산은 강서성주가 마지막에 남긴 말을 잠시 머릿속으로 곱씹은 뒤 시선을 돌려 저택의 전체를 살펴보았다.
앞쪽의 별채들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은 다 제압당했고 강서성주도 죽었으니, 이제 성주의 측근들 몇몇만 없애면 강서성은 고스란히 그의 손에 떨어지는 셈이었다.
“성주의 식솔들은?”
“지금 산호가 가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강장호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녀석, 너무 날뛰면 안 될 텐데.”
“이미 엄중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번 일은 약탈이 아니라고. 후환을 없애는 데 중점을 두라고 했습니다.”
“그래. 네가 말했다면 확실히 듣겠지.”
첫째 강장호의 장악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제각각 호랑이처럼 사나운 나머지 두 형제를 확실하게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삼호방 내에서도 강장호를 추종하는 무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 대 삼호방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지.’
타고난 야성과 잔인함에 진중함까지 갖췄다.
강추산은 다음 대의 삼호방이 더욱 성세를 누릴 것을 의심치 않았다.
“아버님.”
“왜 그러느냐.”
“병사들은 어찌할까요?”
강추산은 클클 웃었다.
“왜 새삼스럽게 그런 것을 묻느냐.”
“……그럼.”
“그래. 다 죽여라. 저택 내부에 들여놓을 정도로 성주와 친분이 깊었던 놈들이다. 우리의 앞길엔 전혀 쓸모가 없어.”
항복하라 권했다고 해서 살려 줘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바퀴벌레처럼 백해무익한 놈들을 굳이 그가 포용할 일은 없을 터.
강장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병사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삼호방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려 모두 없애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깜짝 놀란 병사들의 비명과 함께 삼호방 무인들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상황은 금세 종료되었다.
“삼호방이여!”
“옛!”
“이제 시작이다! 우리 삼호방이…… 이곳 강서성을 지배하는 것이다!”
“우와아아아―!”
강서성의 모든 재화, 인간, 재물.
그것들이 모두 삼호방의 것이 된다. 명 제국의 힘이 사라져 버린 무주공산이 그들의 영토가 된 것이다.
삼호방주 강추산과 파륵삼호 삼 형제!
그들을 필두로 한 수많은 흑도의 무인들!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강서성의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마치 그곳의 앞날에 낀 암운을 보여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