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八章 ― 삼호상배(三虎相背)
강인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마 전 안화객잔에서 있던 일에 이어, 이번에도 홀로 따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도독부 군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물론 말이 설득이지, 실제론 강인호의 특성을 잘 살린 강탈과 협박이 될 예정이다.
“젠장, 왜 형들은 아버님 옆에 항상 있는 거지? 나만 밖으로 내돌리고?”
강인호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투덜거렸다.
삼호방의 파륵삼호는 우애가 좋아 항상 함께 붙어다녔다는 것도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
형인 강장호와 강산호는 항상 아버지인 강추산의 옆에 붙어 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힘든 일을 하며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항상 외따로 떨어져 밖을 나돌아야 하는 막내의 입장에선 불만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거 아냐? 삼호방이 나중에 왕국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항상 지시를 내리는 것은 강장호, 따르는 것은 강인호다.
때문에 서열을 미리 잡아 두기 위해 일부러 고생스런 일만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쳇, 이런 썅.”
강인호는 점점 들끓는 노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안 따라와!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괜한 성질을 부려 보지만, 강인호의 친위대인 인호당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대답했다.
강인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화가 나도 형은 형이다. 더군다나 강장호의 위압감은 아버지인 삼호방주 못지않으니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다.
아니,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막상 앞에 서면 툴툴거리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공자님, 다 왔습니다. 저곳이 도독부입니다.”
“저곳? 흐음…….”
강인호는 아직 수염이 나지 않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목책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주변을 크게 둘러싸고 있었다. 사방 일 리 정도 될까.
삼천에서 육천 사이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도독부라고 보기엔 상당히 허름한 모습이었다.
“어이, 니들, 각자 할 일 알지?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됐어. 있는 힘껏 행패를 부리라고. 시비거는 놈들은 다 패 버리고.”
“저기, 공자님. 위협은 몰라도 실제로 패면 병사들이 반격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인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이, 인호당주. 저놈 뭐야?”
“죄송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놈이라 교육을 덜 시켰습니다!”
“저놈, 도독부 병사들처럼 패 버려.”
“옛!”
순식간에 인호당 무인 두 사람이 방금 발언을 한 사내를 양쪽에서 잡아 인근의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앗! 자, 잠깐! 공자님! 공자님, 그게 아니라…… 으억!”
퍽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진심으로 패는 듯 보였다.
강인호는 그제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제깟 놈들이 반항은 무슨. 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게 미친개한테 물리는 일이야. 왜 그런 줄 알아?”
인호당은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였으나 감히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미친개는 말이 안 통하거든. 어떤 이유도 필요없어. 그냥 기분 나쁘고 물고 싶으니까 무는 거야. 그러니까 운이 나쁘면 괜히 아무 잘못도 않고 지나가다가 물릴 수도 있다, 이거지. 그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겠어?”
강인호는 자신의 말이 재미있는 듯 킥킥대며 웃었다.
“대가리가 정상적인 놈들이라면 아무도 미친개를 못 건드리지 않겠냐? 언제 어떤 보복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미친개는 말 그대로 미친놈이라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예측을 할 수가 없잖아? 막말로 몰래 뒤따라와서 집 안에 있는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애새끼들을 물어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즉, 삼호방에서 어떤 보복을 할지 모르니 병사들은 절대로 반격을 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주변의 병사들은 광기(狂氣)에 가까운 강인호의 성격에 치를 떠는 한편, 그런 무시무시한 무리와 한편이라는 묘한 안도감과 쾌감을 느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다.
잔인한 행패를 당하는 입장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이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성에 숨어 있는 선과 악의 이중성.
그게 예전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논란을 일으켜 온 화두가 아니겠는가.
“크크크크, 물론입니다, 공자님.”
“감히 누가 우리 삼호방을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인호당은 삼호방 내에서도 그런 ‘권력’을 중요시하는 망종들만 모인 곳이다.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다들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어 좀이 쑤시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하지. 이제 삼호방이 왕국이 되면 더 그렇게 될 거야. 구파일방 놈들도 설설 기게 될 테니 기대하라고.”
“옛! 기대하겠습니다, 공자님!”
“좋아. 그럼 잠깐 여기서 대기해.”
강인호는 인호당을 길목에 세워 두고 옆에 있는 수풀 사이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급히 소변이 마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수하들이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수풀 사이를 한참이나 걸어갔다.
“음……?”
강인호는 그곳에서 마치 원래부터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인상이 사나운 사내를 만났다.
“어이, 네가 강인호냐?”
얼굴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십자의 흉터.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바위처럼 단단한 체구에 사내답게 각진 얼굴형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이놈……!’
강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살폈다.
‘이렇게나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못 느꼈다. 게다가 이놈…… 강해.’
상대가 강한지 아닌지는 한눈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척 봐도 사람 꽤나 죽여 본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데다 건들거리는 말투와 달리 하체는 중심을 제대로 잡고 우뚝 서 있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고, 거기다 경험까지 많다는 소리였다.
“너, 뭐냐?”
강인호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부터 해야지, 이 후레자식아.”
“……허? 뭐라고?”
“들었잖아, 병신아.”
강인호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흑도 문파에서 태어나 지금껏 온갖 망종들을 봤지만, 이렇게 삼호방주의 아들인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껄렁거리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가끔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들이 가끔 욕을 내뱉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강인호는 그 뒤에 그 몇 배나 되는 처절한 보복을 안겨 주었다.
“이 새끼가……!”
강인호도 성깔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인간이다. 곧바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눈을 부릅뜨고 살벌한 기세를 뿜어냈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따위 말을 해? 죽고 싶나?”
“지랄하네.”
“……뭐라고?”
“귀머거리인 척하지마, 병신아. 네가 누구면? 황제 아들이라도 되냐, 새꺄? 카악― 퉤! 그 정도 되면 내가 존댓말 써 준다.”
누가 들으면 삼족이 멸할 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건들거리면서 바닥에 침을 탁 뱉는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놈은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야?’
강인호는 황당한 심정을 금하지 못했다.
도저히 말로는 상대가 안 된다.
산적이나 수적이라 해도 이 정도로 막장일까 싶다. 강인호는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미친놈이 있나……!”
“그 미친놈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는 안 물어보냐?”
“……가지가지 하는구만. 좋다, 왜 왔는데?”
“너 잡으러 왔지. 네가 이 동네에서 하도 지랄을 한다고 해서 말이지. 이야기 좀 들어 보니까 너 같은 개말종은 이 동네에서 없는 게 낫겠더라고.”
다리를 건들거리며 씩 웃는 사내.
마치 동네 파락호들이 주먹대장을 결정하자고 시비거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서? 날 없애러 왔다?”
“그렇지.”
“……암만 생각해도 미친놈이야. 내가 누군지 알면 이래선 안 되지. 네놈 혼자 날 감당할 것 같나?”
사내는 피식 비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번 덤벼 보지그래? 지금도 계속 틈을 노리는 것 같더만.”
“그럴까?”
“그래. 참고로 지는 건 너다.”
강인호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너, 이름이 뭐냐?”
“추룡.”
“유치한 이름이구만.”
“칼날 호랑이[刃虎]보다는 낫다, 병신아.”
입으로는 계속 설전을 주고 받으며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그러다 서로 할 말이 떨어져 입을 다무는 순간,
파앙! 콰드득!
쉬이이익―!
푸확!
섬광을 가르듯, 두 사람의 일격이 교차했다.
☆ ☆ ☆
“야, 공자님 너무 안 오시는 거 아니냐?”
땡볕 아래에 서서 한참이나 기다리던 인호당의 무인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뭘 그딴 걸 신경 쓰고 그래.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아니, 이상하지 않아? 무슨 볼일을 이렇게 오래 봐?”
“거시기에 병이라도 낫나 보지.”
한 사내의 대답에 주변 무인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끅끅, 그 말이 정답일세.”
“공자님이 좀 난잡하게 놀았어야지. 그만하면 병날 만도 해.”
“아, 나도 조심해야지.”
“킬킬, 네놈도 조심해라. 넌 치마만 둘렀다 하면 환장하는 놈이잖냐.”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는 거야. 정신줄 놓고 놀다간 한 방에 훅 간다.”
“아, 글쎄, 사돈 남 말 하지 말라니까.”
사내들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음담패설을 나눴다.
“아무튼, 그딴 거 신경 쓰지 마라. 괜히 공자님 성깔 건드렸다간 줄초상 난다.”
“끄응, 하지만…….”
처음 말을 꺼냈던 사내는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이상했다.
강인호처럼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잠깐이라도 지루한 걸 못 참는다. 그런데 이런 땡볕에 아무 짓도 안 하고 수풀에서 대체 뭘 한단 말인가.
‘안 되겠어. 들어가 봐야지.’
사내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그는 치도곤을 당할 각오를 하고 강인호가 들어간 수풀 쪽으로 걸어갔다. 대열을 이탈해 수풀에 발을 들이밀자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따가웠다.
“야! 어딜 가는 거야!”
“저놈이 정신이 나갔나? 얼른 이리 와, 자식아!”
인호당의 무인들은 전부 사색이 돼서 만류했으나, 사내는 무시하고 수풀로 서너 걸음 들어가 고개를 위로 쭉 빼 들었다.
울창한 수풀 너머, 뭔가 희끗희끗한 게 보이는 듯도 했다.
“어……?”
그런데, 보이는 그림자가 하나가 아니었다.
수풀 안쪽으로 들어오고 보니 어째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숲 안쪽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크, 크, 큰일……!”
소리를 치려던 사내.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켜는 순간,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손바닥을 목격했다.
후우욱―!
“엇……!”
커다란 그림자가 눈앞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놀람과 당혹이 섞인 신음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퍼어억!!
가죽 주머니에 물을 가득 채워 넣고 단번에 터뜨리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내들이 모두 놀라서 굳어 버린 가운데, 머리가 사라져 버린 시신이 수풀 안쪽에서 튕겨 나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무, 뭐야?”
“무슨 일이야!”
인호당 서른 명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 하나가 처참한 몰골이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말종들이라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머, 머리가 짓눌렸어.”
“뭐야, 낙석에 깔리기라도 한 거야?”
사내들은 질린 눈빛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을 살펴봤다.
경추가 부러지고 머리가 갈비뼈를 파고들었다. 둥그런 나무둥치에 쐐기를 박듯 머리뼈가 가슴을 파고든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힘이 작용해야 이런 상흔을 남길 수 있는 것인지…….
게다가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은 둘째 치고, 바로 몇 걸음 앞의 수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조심해! 무언가 있다!”
“제길,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인호당의 무인들은 제각각 무기를 빼 들고 수풀 안쪽을 경계하듯 둥그렇게 늘어섰다.
특히 인호당주 장패(張狽)는 커다란 대감도를 뽑아 들고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수풀을 향해 다가갔다.
수풀엔 강인호가 있다.
그리고 강인호가 들어간 수풀에서 인호당의 수하 하나가 피떡이 되어서 돌아 나왔다. 장패에게 있어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내가 너무 태만했군.”
장패의 목소리에 극심한 자책이 담겼다.
인호당주는 애초에 삼호방주가 강인호의 호위를 위해 만들어 준 자리였다. 그런데 강인호를 너무 믿고 호위로서의 일을 태만히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까.
만약 오늘 강인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아마 삼호방주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삼호방주는 실패를 용납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촤악―!
스스스스―
장패가 익힌 천중대도(天中大刀)는 타고난 신력을 요하는 만큼 한 번 전개하면 마치 폭약이 터지듯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도법이 다 그렇듯 날카로움 또한 있었다.
장패가 대감도를 횡으로 휘두르자 시야를 가리고 있던 수풀이 잘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으헛!”
“허엇!!”
그리고 드러났다.
거대한…….
키가 칠 척이 넘는 거구의 사내가.
“네놈은 누구냐!”
장패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눈앞의 사내는 얼굴이 마치 평범한 농민처럼 순박하게 생겼는데, 그와는 반대로 육신에 새겨진 흔적은 정반대의 삶을 말해 주었다.
굵은 허벅지와 통나무 같은 다리는 기마를 사용한 흔적이요, 웬만한 사람의 허리만 한 팔뚝과 어깨는 중병을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의 특징이었다.
실제로 그는 양손에 사람 머리통처럼 커다랗고 둥그런 철추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짙은 묵빛을 띠는 범상치 않은 신병(神兵)이었다.
‘저런 무기를 든 놈치고 약한 놈이 없다.’
신병은 주인을 잘못 만나면 오히려 주인을 죽이는 살신지화의 마물이 될 수도 있다.
신병을 노리는 사람은 많고, 힘이 부족하면 그 신병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스윽―
뽀얀 피부, 시골 청년처럼 순박한 인상의 얼굴이 장패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 순간, 장패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공포를 느꼈다.
어린아이처럼 투명하고 순수해 보이는 눈빛에서 왠지 모를 막대한 살기를 느꼈던 것이다.
“이놈……!”
이놈은 위험하다.
장패는 본능적으로 그걸 느꼈으나, 인호당의 다른 사내들도 장패처럼 감각이 예민한 것은 아니었다.
“뭐야, 이 뚱땡이? 이거, 네놈이 한 짓이냐?”
“확, 배때기를 쑤셔 벌라! 덩치만 크면 단 줄 알아? 너같이 큰 놈만 세어도 적어도 열 명 이상 내 손에 죽었어!”
“목을 그어 버려!”
“창자를 끄집어 내라!”
제각각 흉흉한 말을 내뱉는데, 누가 흑도 출신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말본새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
하나 순박한 인상의 사내는 심한 욕을 들었어도 화를 내거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저 처음 표정 그대로 멍하니 손을 들어 올리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어도 무게가 오십 근은 나갈 것처럼 보이는 철추를 마치 숟가락처럼 가볍게 들고 그걸로 머리를 긁었다는 점이다.
“음…… 이, 이 이상 들여보내 줄 수 없다. 들어가고 싶다면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
“……뭐여?”
인호방 무인들의 눈이 쭉 찢어졌다.
“이 새끼가 돌았나!”
“좋다! 쓰러뜨리다 못해 뭉개 주마!”
“배때기를 쑤셔 버려!”
급격히 흥분한 인호방 무인들 중 특히나 성질이 폭급한 세 사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달려들었다.
장패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을 뿐,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아마 이기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차하앗!”
“투하앗!!”
“끼요옷―!”
제각각 기묘한 기합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세 사람.
아직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무인들이지만, 미리 호흡을 맞춘 듯 상중하로 나눠 공격해 가는 합격술은 감탄이 나올 만큼 군더더기가 없었다.
쿠웅!
쉬이익―!
“…….”
세 개의 칼이 목전에 다가올 때까지 미동도 않고 서 있던 사내였으나, 막상 칼날이 몸에 닿으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사내는 몸 전체에 비해 다리는 짧고 굵으며 상체와 양팔은 상당히 긴 편이다.
척 보기엔 힘은 셀지언정 둔해 보이는 체형.
하지만 거대한 범고래가 물속에선 준마보다도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듯이, 순박해 보이는 사내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크허엉―!”
울부짖었다.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은 것이다.
“흐엇……!”
“크, 크헛……!”
흡사 음공(音功)에 가까운 파괴력을 지닌 고함이 터져 나오자 칼을 휘두르던 세 사람은 동작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귀를 틀어막고 징징 울리는 머릿속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의 머리통만 한 철추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철추.
부우웅―! 하고 거대한 바람을 몰며 움직인 철추는 주변에서 잠시 몸을 비틀거렸던 세 사람을 절묘한 시점에 자신이 만든 폭풍 속으로 끌어들였다.
퍼어억!
꾸웅!
푸화아악―!
“끄아악……!”
“아악……!”
보통 체구의 사내가 망치질을 해도 단단한 돌덩이를 깨부술 수 있다.
그런데 칠 척 장신에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되는 몸집을 가진 거한이, 그것도 최소한 오십 근이 넘을 듯한 통짜 철추를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으으……!”
“아아……!”
인호당의 나머지 스물일곱 명은 그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정면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이 터져 나가는 게 이렇게 쉽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퀴벌레를 발로 밟아 짓이기듯이.
거한이 휘두른 철추에 맞은 세 사람은 사방에 육편을 튕겨 내며 한낱 물주머니가 되어 제자리에서 폭사하고 말았다.
너무나 처참한 죽음.
처참하고, 잔인하며…… 또한 압도적이었다.
‘무시무시한 힘이야. 막아 낼 수가 없겠어.’
‘한 방이라도 스치면 죽는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건 속도야. 저렇게 크고 강한 힘이 실려 있는데도 공격 속도는 찰나에 불과했어.’
인호당의 무인들은 제각각 거한의 힘을 평가하며 긴장으로 뻣뻣하게 몸이 굳어졌다.
비로소 눈으로 보고 나서야 실감한 것이다.
상대는 절정의 경지를 넘은 무시무시한 고수라는 것을.
“이놈……!”
한편, 장패는 예상했던 대로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또 한편으로는 짙은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또한 중병인 대감도를 쓰는 무인으로서 신력과 파괴력으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인 천중대도 또한 무게와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무공이었다.
“후우웃―!”
장패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모으고, 모으고, 모아서, 응축된 힘을 칼 끝에 집중시킨다. 양손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긴장과 흥분으로 몸이 경직되었다는 증거였다. 장패는 신체의 각 관절을 우두둑 소리가 나게 이완시켰다.
“내 이름은 장패! 대삼호방 인호당의 당주다. 네놈은 누구냐!”
거구의 사내는 철추를 양옆으로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대석.”
“좋다, 대석. 내 칼을 받아 봐라. 나는 천중대도를 익혔다!”
장패는 가랑이를 넓혀 왼쪽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뒤 상체가 무릎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굽혔다.
“타하아아앗―!”
마치 활시위를 한껏 잡아당겼다가 놓듯이 장패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터어엉!
강하게 밟는 진각이 땅을 울리고, 양손으로 힘차게 휘두른 대감도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천지를 쪼갰다.
대석의 철추는 묘한 박자로 움직였다.
평상시의 움직임보다는 좀 더 빠르고, 그래서 묘하게 이쪽의 호흡이 흐트러져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쩌어어엉!!
“큽……!”
마침내 육중한 중병들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살이 떨리고 뼈가 울린다.
순간 온몸이 박살나는 것 같은 중압감이 몰아쳤으나, 장패는 철추의 일격을 정면으로 맞아 쳐 낼 수 있었다.
터엉! 하고 튕겨 나간 철추가 허공에서 멀어졌다.
‘할 수 있다!’
한 번 해내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인호당 무인들의 탄성과 응원 소리도 그에게 힘을 더해 주었다.
후우우웅―! 쩌어엉! 쩌엉! 쩌엉!
장패는 미친 듯이 몸을 뒤틀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토해 냈다.
천중대도(天中大刀).
하늘의 중심을 꿰뚫는 거대한 도 한 자루라는 뜻이다.
장패는 무아지경으로 칼을 휘둘렀다. 쳐 내고, 쳐 내고, 또 쳐 내며, 그를 향해 날아드는 모든 공격들을 쳐서 뒤로 튕겨 냈다.
사람의 몸을 두부처럼 깨부수던 육중한 철추가 그의 대도는 부수지 못하고 반대로 튕겨 나갔다.
그 고양감과 성취감이란!
그건 장패가 지금껏 겪어 보았던 어떤 쾌락보다도 강렬하고 짜릿했다.
터어엉!
휙―!
그렇게 오십 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대석이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난감하고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히더니, 양손에 나눠 들고 있던 철추를 가슴 앞으로 모아 손잡이 부분을 맞대고 각자 반대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끼리릭― 끼리릭―
철컹, 철컹.
“음……!”
그러자 연결된다.
두 개의 철추가 하나로 이어지며 칠 척 길이의 긴 쌍추가 되었다.
“쌍룡이우.”
대석은 조립을 마친 무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철추의 이름이 말인가?”
“철추 아니우. 창. 쌍룡창라고 부르는 거유.”
말투가 너무나도 순박하다.
처음엔 말더듬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눌하고 시골스러운 말투를 숨기기 위해 그랬던 모양이다.
장패는 새삼스런 눈으로 대석과 그가 들고 있는 쌍룡창을 바라봤다.
두 개의 철추가 합쳐지며 만들어진 창.
흔히 볼 수 없는 기묘한 생김새지만, 그러고 보니 철추의 정수리 부분에 가시처럼 뾰족한 칼날이 달려 있었다. 두 개의 손잡이를 붙여 칼날이 양쪽 끝을 향하는 구조이니 창이라고 못할 것도 없을 듯했다.
‘변할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양손을 쓸 때보다 자유롭지 못할 테니 내가 더 유리하지. 창을 쳐 내고 곧바로…… 이번엔 몸에 상처를 새겨 주마.’
장패는 결연하게 마음을 다 잡으며 칼끝을 대석에게로 겨눴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응원을 하던 인호당의 무인들도 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
장패는 침묵의 끝에 대석이 육중한 몸을 움직여 그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쿵, 쿵, 쿵!
지금까진 장패가 공격하고 대석은 제자리에서 그것을 맞받는 식이었으나, 처음으로 대석이 앞으로 치고나온 것이다.
후우우웅―!
파아아앗!!
‘동작이 크다! 기회!’
머리 위에서 크게 한 바퀴를 휘돌린 쌍룡창이 육중한 이빨을 아래로 내리찍고 있었다.
동작이 큰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겨 있겠지만, 그만큼 공격이 빗나갔을 때 생기는 빈틈도 클 것은 자명한 법.
장패는 대석 못지 않은 속도로 마주 달려들며 대감도를 비스듬하게 옆으로 쳐올렸다. 내리찍는 쌍룡창을 옆으로 쳐 내고 옆구리 부근의 빈틈을 공격할 생각이다.
‘나는 강한 힘에 속도와 기술을 섞었다. 이길 수 있어!’
쿵! 하고 내딛는 발, 크게 반회전하는 허리.
온몸의 무게를 어깨와 팔목에 실어 육중한 대감도를 휘두른다.
장패는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강한 공격을 날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마 나중에 다시 펼치려고 하면 못할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나온, 모든 잠재력을 다 쥐어짠 최고의 일격이었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만들어진 이 일격은 다른 때엔 따라 할 수 없는 신기였다.
‘이걸로! 승부를……!!’
째애앵!!
“……!!”
한데, 그 최고의 일격이 눈앞에서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대감도가 박살 났다.
도자기가 깨지듯 산산이 부서져 나간 칼날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장패는 시간이 느려진 듯한 감각에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아아……!’
정면으로 맞받은 것도 아니다.
내리찍는 쌍룡창을 비스듬하게 쳐 내려고 했을 뿐인데도, 그것만으로도 대감도가 버텨 내지 못하고 박살이 나고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은 속도와 기술을 무시한다.
장패는 평생을 매달려 온 화두를 지금 이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어째서 속도와 기술을 더하려고 했던가. 힘 하나만 압도적이어도 이렇게나 충분한 것을.
폭풍이 이는 듯했다.
내리찍는 쌍룡의 이빨엔 범인(凡人)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휘감겨 있었다.
‘난 참…… 멍청했군.’
힘이 동등하다?
해볼 만하니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이길 수 있다?
천만의 말씀.
그 생각 자체가 크나큰 착각이었다.
어째서 몰랐을까, 대석은 각각의 철추를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대감도를 양손으로 붙잡고 전력을 다해 달려들 때, 대석은 제자리에 버티고 선 채 한 손으로만 휘두르는 철추로 그의 공격을 대등하게 받아 낸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장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것을 기를 쓰고 전력을 다해 막아 내 놓고 대등하다고 좋아하다니.
그 이상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대석이 휘두르는 창은 철추 두 개가 합쳐진 것이었다.
철추 두 개.
즉, 오십 근과 오십 근을 합해 총 백 근의 무게였다.
오십 근짜리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것도 막기가 버거웠는데, 지금은 그 두 배나 되는 무게를 양손으로 휘둘렀다는 뜻이었다.
‘큭, 졌군. 대단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
대감도가 박살 나는 것도 이해되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신력.
천하에 짝이 없을 무쌍한 힘이다.
장패는 자신의 대감도가 박살 나고, 눈앞으로 거대한 철추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질끈 눈을 감고 웃음을 터뜨렸다.
퍼어억!
둔중한 소리.
온몸이 뻣뻣해지는 감각과 함께 장패는 마지막 의식을 그렇게 잃어 버렸다.
☆ ☆ ☆
“다, 당주가……!”
“당했어……?!”
인호당의 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패가 누구던가.
흑도 최강으로 군림하는 삼호방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바로 장패였다.
그가 사용하는 대감도는 빠르고 강력하며, 거기에 노련한 기술까지 갖췄으니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흑도뿐만 아니라 무림 전체에서도 천중대도 장패라고 하면 대부분 알아줄 정도로 뛰어난 고수인 것이다.
“저렇게 허무하게……!”
“자, 장패 님을 쓰러뜨리다니. 저놈은 대체 어떤 괴물인 거야?”
“정체가 뭐야? 정체가 뭐기에 당주님을 죽일 수 있는 거냐고!”
인호당 무인들은 불안하게 수군거렸다.
그들은 달려든 세 사람이 일시에 곤죽이 되는 모습을 봤다. 당연히 이길 거라 자신했던 인호당의 당주가 머리가 박살 나는 광경도 선명하게 봤다.
그러니 어째야 하겠는가.
이걸 덤벼야 하는가, 아니면 피해야 하는가.
덤비자니 무섭고, 도망치자니 후환이 두렵다.
지시를 내리는 당주마저 없어진 상황에서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
스으으― 척!
그사이 대석이 쌍룡창을 허공에서 한 바퀴 돌린 뒤 앞으로 겨눴다.
창에 겨눠지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머지 인호당의 무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겨눠지는 육중한 철추를 보며 어깨를 움찔 떨었다.
“들어오고 싶다면…… 덤벼.”
나직하면서 확고한 목소리에 수많은 무사들이 압도당한다.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고의 수문장이 수풀 앞을 가로막은 가운데, 적막함 속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 ☆ ☆
파앙! 콰드득!
쉬이이익―! 푸확!
섬광을 가르듯, 두 사람의 일격이 교차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잘려 나간 잎사귀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 새끼, 내 공격을 막아?’
추룡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가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그가 사용하는 황룡창은 일도양단의 언월도였다. 큼직한 반월형의 창날과 두꺼운 철봉은 상대의 방어를 깨부수고 그대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인호는 막았다.
재빠른 움직임과 순간적인 재치로 황룡창의 칼날이 어깨에 닿기 전에 재빨리 한 발을 앞으로 나서며 양팔을 허공에서 교차했던 것이다.
끼기긱!
까드드드!
그 결과가 지금의 상태였다.
절묘하게 간극(間隙)을 파고든 강인호는 양쪽 손등으로 황룡창의 창봉을 붙잡았고, 추룡과 밀고 당기는 힘싸움을 하는 듯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새끼가……!”
추룡은 인상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천하에 둘도 없을 다혈질이 바로 추룡이다.
그는 분명 죽일 기세로 창을 휘둘렀다. 그런데 천하의 개망종이라는 강인호 주제에 그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이런 수치와 모욕이 어디에 있겠느냔 말이다.
“크하아아아앗―!”
쩌렁쩌렁한 기합성.
그리고 힘차게 뒷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황룡창에 전력을 실었다.
강인호의 몸이 휘청였다.
균형이 흐트러지고, 당장에라도 꺾어질 듯 허리가 새우처럼 굽어졌다.
위기에 몰린 강인호.
하지만 강인호 역시도 흑도의 후계자로 살면서 온갖 경험을 다 해 본 노련한 싸움꾼이었다.
파바밧!
슬쩍 무릎을 굽히는가 싶더니, 한 발을 옆으로 빼는 것만으로 힘싸움에서 유연하게 빠져나간다.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린 황룡창이 쿵! 하고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 순간 휙! 하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육신.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덮치듯, 추룡을 향해 달려든 강인호의 주먹이 청람빛으로 번뜩였다.
‘청람수!’
삼호방주의 무공.
이야기 듣기로는 소뢰음사의 대수인에 필적할 만한 강공이라고 했다. 추룡은 몸을 반보 정도 뒤로 빼며 황룡창의 손잡이 쪽을 짧게 휘둘렀다.
장병이라고 장거리 공격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창대를 짧게 잡고, 어느 쪽 부분으로 공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단거리 싸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까강!
‘과연.’
철창의 손잡이와 맨손이 부딪쳤는데 마치 쇠끼리 부딪친 듯한 굉음이 울렸다.
강인호의 청람수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한 수였다.
추룡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싸움에선 간극이 매우 중요하다.
일권의 거리, 일족의 거리, 일도의 거리.
주먹을 쓰느냐, 발을 쓰느냐, 칼을 쓰느냐에 따라 서로 간에 최대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간극은 추룡에게 있어선 약간 불리한 거리였다.
아무리 추룡이 무기의 수급이 자유로운 경지에 올랐다지만, 이렇게 짧은 거리에선 황룡창의 위력을 제대로 뽐낼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강인호에게 있어선 물 만난 고기마냥 딱 좋은 상황이었다.
주먹을 내뻗고, 발로 차고, 뛰어넘고.
강인호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청람수의 강공을 여지없이 뽐냈다.
파바바밧! 휘리릭! 퍼억!!
‘이 새끼, 좋다고 날뛰는구만.’
청람수는 강기공이기 때문에 아무리 추룡이라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었다.
쩌엉! 쩌엉! 쩌저엉!
연신 뒤로 물러나던 추룡.
그는 이 이상은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창의 움직임을 변화시켰다.
용왕십삼기(龍王十三技).
추룡이 나고 자란, 장강수로채 수적들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무공이다.
추룡은 그 용왕십삼기의 모든 초식을 나이 열여섯이 되었을 때 다 외워 버렸다.
그 덕에 아버지인 장강용왕 추묵환이 추룡을 보며 기재라고 생각해 과한 기대를 품게 했지만…… 아무튼, 추룡은 그 당시에 용왕십삼기는 이미 다 익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게 아니었다.
용왕십삼기는 절공이다.
대대로 수십 년 동안 장강 총표파자의 독문 무공이 될 만큼 뛰어난 요소들이 무공 곳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추룡이 딱 그 꼴이었다.
무공이란 것은 초식의 형태만 외운다고 다가 아니다. 그 초식을 어디에 쓸지, 어떤 상황에 어떤 힘을 실어서 사용해야 절묘한 한 수가 될지, 동작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해야 최고의 위력이 나올지.
그런 수많은 요소들을 참오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용왕십삼기를 다시 살펴보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용왕십삼기는 적당한 빈틈을 갖도록 만들어져 있다.
채워 넣을 것은 채워 넣고, 뺄 것은 빼고.
다음 대 총표파자가 자신의 성향에 걸맞게 무공을 수정해 익힐 수 있도록 큰 줄기만을 잡아 둔 채 무공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어 두었던 것이다.
꽉 채우지 않고 적당히 비워 두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처음 용왕십삼기를 만들어 낸 초대 총표파자는 천재였음이 분명했다. 용왕십삼기는 구파의 무공에 비해 결코 빠지지 않는 절학이었다.
‘관(貫)!’
추룡의 어깨가 뒤로 쭉 빠졌다가 단숨에 앞으로 쏘아졌다.
용왕십삼기. 그 세 번째 초식인 관이었다.
장강용왕이 동정호 위에서 쓰면 웬만한 배는 일격에 가라앉혀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지닌 초식.
쒜에에엑―!
“흡……!”
강인호는 갑작스레 강렬해진 공격에 대경하여 옆으로 몸을 굴리듯이 피해 냈다.
하지만 추룡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번 내찌른 언월도를 다시 수습하지 않고 그대로 좌측으로 밀어 올렸다.
갈고리처럼 끝이 휘어진 언월도의 칼날이 마치 낚시질을 하듯 강인호를 걸어 올리려고 했다. 까앙! 하고 강인호는 다급하게 청람수를 전개해 칼날을 쳐 냈으나, 황룡창은 집요하게 그를 따라붙었다.
쉬쉬시시식―!
“……!”
먹이를 노리는 뱀의 모습이 이러할까. 커다란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언월도의 칼날이 십수 개의 잔상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그의 목을 노려 왔다.
용왕십삼기의 네 번째 초식, 추(追)였다.
쾌공(快功)이며 환공(幻功).
추가 한 번 전개되면 상대는 갈 곳을 잃고 허우적대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강인호는 일시 상대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뒤로 물러섰다.
즉, 거리를 벌였다는 것은, 곧 추룡에게 유리한 거리를 다시 선점했다는 뜻.
화아아악―!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단단한 육신으로부터 막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번뜩이는 눈빛, 사납게 꿈틀거리는 근육.
추룡의 황룡창이 정면을 크게 휩쓸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두근……! 두근……!
추룡은 이 순간 초절정의 벽을 깨고, 무림십대고수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박자가 없는 흑백의 세계.
세상의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고,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마냥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그러한 세계였다.
“너어어…… 느으은……!”
강인호의 말소리 역시 엿가락을 뽑듯이 길게 늘어졌다.
추룡은 강인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평범한 걸음걸이였으나, 강인호는 초속의 세계 속에서 그의 움직임을 잡아 내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해일(海溢)을 전개했다.
용왕십삼기 최후의 초식.
찌르고, 베고, 할퀴는.
본래는 삼첨양인도로 펼쳐야 하는 무공이지만, 추묵환과의 대결 이후 반년간 죽어라 참오하여 언월도로도 사용할 수 있게 무공을 수정했다.
칼날의 그림자가 사방을 덮었다.
퇴로를 차단하고 나아갈 길을 막는다. 이름 그대로 해일이 덮쳐드는 듯한 모양새였다.
광대무변한 자연의 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자연의 재해를 육 척 무기에 담은 것이다.
“이…… 건……!!”
무공을 알아본 것일까?
강인호가 경악한 시선을 숨기지 못했다. 강인호는 다급하게 피해 내려 했으나, 이미 초속의 세계에 들어선 추룡에게 있어선 거미줄에 걸린 벌레의 발악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툭.
해일처럼 몰아세운 추룡의 황룡창이 결국 강인호의 어깨에 닿았다.
그 순간,
푸화악―!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핏물이 하늘로 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