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94화 (75/686)

14권

第九十一章 ― 기린신위(麒麟神位)

“네놈이…… 그놈이로구나!”

삼호방주의 얼굴에선 경악과 감탄이 숨겨지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편 채 갈색의 준마 위에 앉아 무심한 눈빛을 보내는 장기린에게서 절대로 그 자신에게 뒤처지지 않는 막강함을 느꼈던 것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차분한 자세를 보면 이미 무공이 손가락 끝까지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눈빛.

장기린의 눈빛이 그 무엇보다도 삼호방주의 시선을 끌었다.

‘미친…… 눈이다.’

무심하면서도 차분하고, 청정한 도향을 흩뿌리는 것 같으면서도 그 눈 깊숙이엔 미친 듯한 살기가 숨어 있는…… 초절정 고수에게만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삼호방주는 최근 들어 지루함만을 느끼고 있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꼈다.

도도한 강물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는 내기(內氣).

굳이 태양혈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는지를 살피지 않더라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안목 정도 되면 남녀노소의 구분과 무공의 강약에 상관없이 상대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

삼호방주의 눈엔 장기린의 주변으로 흐르는 융통무애한 진기가 마치 대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주변에 섞여 드는 모습이 보였다.

“믿기지가 않는군…… 믿기지가 않아!”

삼호방주는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어찌 이런 자가 존재할까.

하늘의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지글지글 달궜다. 주변을 둘러싸듯 둥그렇게 자라 있는 수풀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

장기린은 샛노란 화광 속에서 기이하게 번뜩이는 삼호방주의 두 눈을 지그시 마주 응시하고 있었다.

장기린의 눈빛은 어디까지나 차분하고 냉정했다. 다만 지그시 좁혀진 미간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그의 동료들이 다친 것에 대한 극렬한 분노가 숨겨져 있을 뿐이다.

천천히,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장기린에게 삼호방주의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사문이 어디냐? 아니, 아니지. 그런 건 의미가 없지. 어떻게 수련했나?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준에 올랐지?”

“…….”

“방금 저놈도 제법 재미있었지만, 너는 그야말로 감탄만 나오는군. 네놈, 정말로 그 외모만큼의 나이이긴 한 것이냐? 혹시 반박귀진(返樸歸眞)을 넘어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도 한 거 아닌가?”

반박귀진은 내공이 극한에 이르러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경지를 말하고, 반로환동은 환골탈태하여 도리어 겉모습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처럼 어리게 변하는 경지를 뜻했다.

살기를 모두 씻어 내고 청정한 도향을 흘리게 된 장기린은 반박귀진의 경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이 그대로의 외모이니 반로환동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스윽―

장기린은 삼호방주의 말을 무시한 채 칼날이 붙어 있지 않은 무인창(無刃槍)을 앞으로 겨눴다.

“적룡기마대.”

곧바로 뒤쪽에서 쩌렁쩌렁한 대답이 울려 퍼졌다.

“옛!!”

“저 뒤의 여섯을 없애고, 부상자를 수습하라.”

“조오온―며어엉―!”

삼호방주의 뒤에 시립해 있던 무인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우렁찬 기합성에 실려 있는 패기가 처음과는 전혀 딴판으로 달랐던 것이다.

고오오오―!

보이지 않는 무거운 기류가 주변을 휘감는 듯한 느낌. 삼호방의 무인들은 모두가 숨이 턱 막히고 손발이 무거워지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장기린 때문이다.

적룡기마대는 장기린이 선두를 이끄는 경우 그 기세와 전투 능력이 전혀 딴판으로 달라진다. 지금까지 전장에서 보아 온 장기린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그들을 하나로 뭉쳐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오오옷―!”

수십 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로 합쳐졌다.

이전보다 몇 배나 늘어난 듯한 존재감에 삼호방의 무인들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놈들……!”

삼호방주는 황당한 얼굴로 그런 자신의 수하들을 노려보았으나, 이미 기세에서 밀려 당황한 그들은 삼호방주의 날카로운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허어……!”

삼호방주는 탄식했다.

장기린과 적룡기마대에 대해 감탄할수록 자신의 부하들에 대한 실망이 커졌던 것이다.

쿵! 쿵!

창수들이 일제히 창끝으로 땅을 내리찍는다.

스릉! 챙!

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른 뒤 앞으로 겨눈다.

전투 후에 남아 있던 스무 명과 새로 나타난 스무 명의 적룡기마대원이 일제히 대오를 맞춰 정면을 노려보자, 삼호방주의 뒤에 서 있던 여섯 무인의 얼굴이 일제히 하얗게 질렸다.

“이거…….”

“큰일 나는 것 아냐……?”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다고 했으나, 장기린이나 삼호방주에게는 그 목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강장호와 강산호.

파륵삼호의 첫째와 둘째에게도 그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이놈들이……! 죽고 싶어?”

강산호가 험악한 얼굴로 윽박질렀다.

“죽고 싶다면 도망쳐 봐라. 삼호방의 배신자로 낙인찍어 현상금을 걸어서 온 대륙의 흑도 무인들이 다 네놈들을 쫓게 만들 테니!”

“……!!”

삼호방 무인들에게 있어 으르렁거리는 듯한 강산호의 목소리는 지옥염라의 목소리마냥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강산호는 결코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가 현상금을 걸겠다면 거는 것이다. 그리고 흑도에서 현상금이 걸리게 되면, 그들은 그 순간부터 여생을 편히 보내는 건 포기해야 했다. 잠을 자거나 물을 먹으러 가는 때까지도 살수나 낭인들이 그들을 노릴 테니 말이다.

“으으…….”

“끄응…….”

삼호방 무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얼어 있는 사이,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차가운 얼굴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던 강장호가 무감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대오를 정렬해라. 방주님의 뒤에 있다면 안전할 것이다.”

“예, 옛!”

강산호의 묵직한 존재감과 강장호의 차갑고 이지적인 위압감이 합쳐지자 삼호방의 무인들은 감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대열을 정렬하고 자세를 바로잡는 삼호방의 무인 여섯 명의 얼굴에 평소와 같은 전의가 감돌기 시작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한 상황.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생각하자 온갖 풍파를 헤쳐 온 흑도의 무인들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었다.

따각, 따각, 따각…….

그때, 장기린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당신.”

무인창의 창끝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삼호방주가 서 있었다. 그 상태로 천천히 시선을 돌린 장기린은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열 명의 대원을 바라봤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노가 무섭게 끓어올랐다. 그를 믿고 따르던 병사들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살아도 되건만, 그래도 대주의 복수를 돕겠다고 무기를 잡고 일어선 병사들이란 말이다.

“큭…….”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과 그 생애를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곳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싸우다 보면 언젠가 희생이 나올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텐챠이 수호대를 상대로 싸우다가 죽었어야지, 이런 곳에서 삼호방 따위에게 당해선 안 되었던 거다.

꾸욱!

창대를 거머쥐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어찌 보면 차분한, 하지만 무서운 분노가 숨겨져 있는 목소리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전율했다.

단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런데도 그들은 너무나 실감나는 실재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놈……!’

장기린의 목소리에 격동한 것은 삼호방주도 마찬가지였다.

삼호방주 강추산은 평소에 단 한 번도 분을 참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 그는 처음으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흥분하면 진다.

그건 길거리 시전 싸움판에서부터 초고수들의 비무에 이르기까지 만고에 공통인 진리다.

삼호방주는 자신이 삼대천과 일천 기병에게 습격당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막강한 대적을 만난 느낌.

평소에 흑도의 거마로서 떠받들어 살아왔으나, 강추산은 타고난 성품상 그렇다고 해서 나태해지거나 자만심에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기에 그는 장기린의 대단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긴장감.

그는 말 위에서 오연히 내려다보는 젊은 용의 기품에 감탄과 질투를 느끼며, 자세를 바로잡고 곧바로 전력을 끌어 올렸다.

화아악―!

순식간에 양팔에서 어깨까지 뒤덮는 청록빛 휘광과 함께 작상보(炸上步), 극상의 경신법이 폭발하듯 펼쳐졌다.

“위험……!”

이미 작상보의 위험성을 상대한 적이 있던 추룡이 자신도 모르게 경호성을 내뱉었으나, 그건 그야말로 사족(蛇足)에 불과했다.

이미 삼호방주의 행동을 털끝 하나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던 장기린이 매끄러운 동작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까아앙!!

“……!!”

귀를 찢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허공에서 삼호방주가 튕겨 나고 있었다. 녹빛의 청람수가 장기린의 창술에 위력이 밀렸기 때문이다.

쉬이익―!

마치 수면 위를 튕기는 물수제비처럼 허공을 날던 삼호방주의 몸이 갑자기 반전했다.

삼호방주는 왜소한 체구였지만, 유연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으로 허공에서 용트림을 하듯 허리를 꺾었다.

둥그렇게 말리는 몸.

활시위를 놓듯 사지를 쫙 펼친 육신이 허공을 박차고, 이번엔 직각으로 꺾여 위쪽으로 솟구쳐 올랐다.

파아앙!

허공답보(虛空踏步).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밟고 몸을 움직이는 초절정 고수의 신위(神位)였다.

“차하앗―!”

화아악―!

강렬한 기파와 함께 삼호방주의 양팔이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왼손은 청람수.

오른손은 붉은빛의 파갑수다.

쾌(快)와 중(重), 꿰뚫는 관(貫)과 부수는 파(破)의 조화다.

추룡에겐 보여 준 적이 없는 모습.

전력을 끌어 올린 삼호방주는 천하에 적수할 자가 몇 없는 초고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우우웅!!

파아앙! 파바밧!

번개가 번쩍이듯 좌우로 종횡무진하는 삼호방주의 신법은 그야말로 일절.

거기에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속도로 양손을 휘두르는데, 쾌공답지 않게 일격, 일격에 천 년 거암을 박살 낼 것 같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약점을 찾아보기 힘든, 완성된 무력.

그것이야말로 초절정고수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쩌엉! 쩌저정!

한편, 삼호방주가 무림십대고수 이상의 강대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면, 장기린은 아무리 폭풍이 몰아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태산(泰山)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차분한 눈빛, 흔들림없는 태도.

삼호방주가 수많은 사선을 헤쳐 나오며 살아남은 노강호라지만, 장기린도 절대 그에 뒤지지 않았다. 전장에서 만 단위의 생명을 거두는 사투를 벌여 왔으며, 검선을 만나 체계적인 무공의 기틀을 배웠다. 무림십대고수에 올라 있는 맹호도 방극과 싸워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무림 십대고수를 넘어선다는 흑도의 거마를 상대하며, 그는 스스로의 위치와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강하다.’

지고한 위치에 오른 검존을 이미 만난 뒤라서 그런 걸까.

삼호방주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있고, 청람수와 파갑수의 투로가 훤하게 눈에 들어왔다.

작상보가 희대의 절학이라지만, 그에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삼호방주는 강하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초강자이지만…….

‘……그래도, 내가 질 일은 없다.’

장기린은 스스로의 실력에 한층 확신을 가지며 무인창을 휘두르는 팔에 힘을 더했다.

쩌어엉!

청람수의 강기와 무인창이 부딪치자 쇠끼리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챠아핫―!”

삼호방주는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서며 힘을 해소한 뒤 다시 달려들었다. 양팔을 휘둘러 청람수를 전개하는 듯했던 삼호방주가 갑작스레 땅바닥을 걷어찼다.

푸화악!

“……!”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시야가 누렇게 가려진다. 장기린은 가볍게 손을 휘둘러 흙먼지를 옆으로 걷어냈다.

하지만 흙먼지를 걷어내는 데 쓰인 짧은 틈.

그 틈새를 노리고 삼호방주가 장기린의 좌후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쒜에에엑―!

기마에 올라타고 있는 장기린의 왼쪽 다리를 노리고 청람수가 날아들었다. 장기린이 무인창으로 막으려고 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불꽃이 피어오르듯 작상보가 펼쳐졌다.

창끝을 발로 밟고 뛰어오르는 삼호방주.

머리 위를 타고 넘으며 주먹을 내뻗는 그의 움직임이 웬만한 곡예단 못지않았다.

쩌엉!

장기린은 정수리를 노려오는 주먹을 창의 손잡이로 짧게 끊어 치며 막아 냈다.

삼호방주는 확― 하고 뒤로 튕겨 났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넘어지듯 몸을 뒤로 젖히며 내뻗는 오른발.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져 나온 각법은 장기린의 이마 한 치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신기의 보법과 강렬한 권강을 주로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삼호방주에겐 이런 예상치 못한 한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제법이구나!”

삼호방주는 흥이 난 듯 사납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노년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강렬한 박력이 느껴졌다. 마치 절벽 위의 구름다리처럼 몸을 흔드는 삼호방주는 시종일관 독특한 움직임을 고수했다.

흔들흔들.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언제 손이나 발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모양새. 하지만 그러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으니, 기괴한 움직임만으로 이미 일가를 이뤘다는 느낌이다.

삼호방주에게선 다른 무인들로부터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공격들이 연신 지칠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바닥의 돌멩이를 은밀히 걷어찬다든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양손으로 말을 때리려 한다거나, 얼굴을 향해 침을 뱉고 낭심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나이 정도 되면 체면을 중시할 만도 하건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기색이라고는 추호도 없었다.

‘이것이 흑도인가?’

장기린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웬지 모를 향수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장에서의 경험과 비슷한 공통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흑도의 무인들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납고 거친 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일수록 일정한 위치 이상 올라가면 품위를 지키려는 경우가 많다.

삼호방주라는 사람이 특이한 것이다.

싸움에는 품위도 뭣도 없다는, 그런 자신만의 독특한 무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까아앙―!

“흡……!”

일연적룡무의 강력한 파괴력이 창끝에 실리기 시작했다. 일격필살의 막강한 위력과 검선에게 배운 유능제강의 묘리가 합쳐지니 삼호방주의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이 서서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히히힝―!

고삐를 잡아당기자 갈색의 건장한 말이 앞발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말이 쿵! 하고 다시 앞발을 내려놓는 것에 맞춰서 장기린의 창이 수직의 참격을 내려쳤다.

퍼어억!!

“……!”

인마일체(人馬一體).

모든 것이 하나로 합일된 일격이다.

처음으로 삼호방주의 몸에서 선혈이 튀어 올랐다. 왼쪽 팔뚝이었다. 장기린이 말의 무게까지 합쳐서 내려친 일격은 청람수의 강기를 박살 내고 육신의 살점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쉬이익!

파팡!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데도 삼호방주의 얼굴은 침착했고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싸움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고방식도 난폭하고 사납지만, 그래도 그는 무인으로서 항상 정심(貞心)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파파팡!

연이어 날아온 권격을 무위로 돌린 뒤, 장기린은 갈색 말을 앞으로 몰아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말이 뒷발을 박차는 순간, 허벅지로 하체를 꽉 지탱하며 허리를 회전시킨다.

찰나를 노리고 앞으로 쏘아지는 일직선의 찌르기.

순속의 일격이 공간을 꿰뚫었다.

쒜에에엑―!

“……!”

거대한 위협을 느낀 삼호방주는 본래 하려던 공격을 멈춘 채 양손을 모아 창이 날아오는 가슴 부위를 방어했다.

따아앙!!

“……!!”

상대 호흡의 틈새를 노리는 절묘한 찌르기.

얼마 전에 맹호도 방극을 상대로도 위력을 발했던 일연적룡무의 첫 번째 초식이다.

삼호방주는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이, 이건…….”

삼호방주가 놀라든 말든 장기린의 창끝은 흔들림이 없었다.

태산과도 같은 부동심.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에는 오로지 상대를 탐색하는 사냥꾼의 시선만이 남아 있다.

쩌정! 쩌저저정!

찰나를 노리는 놀라운 무공을 목격한 삼호방주는 잔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법, 각법, 권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거친 파공음이 연신 터져 나오고, 허공을 자유자재로 밟고 뛰어다닐 수 있는 작상보가 불꽃의 잔상을 남겼다. 하지만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권격에도 장기린은 묵묵히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방적인 공격이다?

아니다. 자세히 보면 오히려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는 삼호방주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쩌엉!

마침내, 일방적으로 쏟아지던 공격의 흐름이 끊어졌다. 청람수를 튕겨 내자마자 다시 한 번 전개된 일연적룡무의 첫 번째 초식. 초절정의 고수가 숨을 들이켜고 다시 내쉬는 그 짧은 틈을 노리고 삼호방주의 목젖을 향해 뭉툭한 창끝이 쏘아진 것이다.

까아앙!

그야말로 천운에 가깝게 간신히 공격을 막은 삼호방주는 여력을 해소하기 위해 양팔을 크게 휘저어야만 했다.

삼호방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이 바로 승부를 결해야 할 시점.

숨겨 둔 한 수를 꺼내 들 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후우우욱!

파아앗―!

삼호방주가 양손을 아래쪽으로 털어 내자 양쪽 소맷자락이 어깨까지 터져 나갔다. 왜소해 보이던 육신이었으나 막상 소맷자락이 사라지자 마치 금강석처럼 극도로 단련된 모습이 드러났다.

피가 몰려 흑갈색으로 변한 피부. 그 위에 힘줄들이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와 거미줄처럼 양팔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카하아앗―!”

삼호방주의 극도로 진지한 모습에 주변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설마……!”

오직 강장호만이 무언가를 예감한 듯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삼호방주는 양팔을 좌우로 넓게 펼쳤다가 가슴 앞에서 양손 깍지를 낀 채 맞잡고 있었다. 왼팔엔 푸른빛의 청람수, 오른팔엔 붉은빛의 파갑수를 극성으로 전개한 채였다.

파지지짓!!

그 두 가지 기운이 합쳐지자 막강한 경력을 만들어 냈다. 삼호방주가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 강력한 기류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의 핵이 된 것처럼 강력한 와류가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삼호방주의 양팔을 덮고 그 기세를 몰아 어깨까지 뒤덮었다.

“캬하아아앗―!”

고오오―!

주변 이십여 장이 모조리 진공 상태가 되어 버린 듯한 충격 속에서 삼호방주는 작상보로 허공에 뛰어올라 장기린을 향해 깎지 낀 양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

표정을 굳힌 채 무인창을 수평으로 들어 올리는 장기린.

이번만큼은 그도 태만히 상대하지 못했다.

삼호방주의 맞잡은 양손에서 시작되어 어깨까지 뒤덮은 와류의 힘은 척 보기에도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청(靑)! 파(破)! 무적수(無敵手)!!”

콰아아―!

청람수와 파갑수가 힘을 합하니, 그 위력은 무적이라!

쩌어엉!!

맨손과 단단한 철창이 부딪쳤는데도, 충격을 느낀 것은 오히려 장기린이었다.

휘청이는 허리.

백 근짜리 철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강렬한 충격이 그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껏 잘 버텨 주던 갈색의 말이 다리가 부서지며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두둑!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장기린은 탄식했다.

히히힝……!

구슬프게 울며 쓰러진 말은 양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관절 부위에서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큰 상처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장기린의 실책이다. 말의 생명은 곧 다리이거늘, 지금 타고 있는 말이 흑풍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평소대로 행동한 바람에 갈색 말이 버티지 못하고 다치게 된 것이다.

‘그보다…… 방금 그 공격은 정말 강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맹호도 방극이 비전 절초로 사용했던 폭호도보다 반 수 정도 더 강한 느낌이었다.

“미안하다.”

장기린은 피 거품을 토해 내는 말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내력을 운용해 마지막 숨을 거둬 주었다.

다리가 부러진 말은 살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늘려 줄 바에야 지금 이곳에서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그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스윽―

장기린은 조용히 눈을 감은 갈색 말을 한 번 일별한 뒤, 다시 삼호방주를 쳐다봤다.

삼호방주는 장기린이 자신의 비전 절초를 막아 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듯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노옴……!”

그리고는 크게 분노하며 전심전력으로 다시 부딪쳐 갔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작상보.

섬광이 번뜩이며 코앞으로 다가온 삼호방주가 강렬한 기파를 터뜨리며 다시금 청람수와 파갑수를 날렸다.

쩌엉!

청람수와 파갑수가 미처 다 전개되기도 전에 중간에서 막혔다. 뭉툭한 무인창이 둥그런 반원을 그렸다. 장기린은 땅에 내려선 순간부터 움직임에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쿵, 쿵!

한 발씩 내딛는 진각은 백 년의 거목처럼 굳건하고, 휘두르는 철창은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듯 기기묘묘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땅이 움푹 파이고 공기가 요동치는 격전이다.

삼호방주가 틈을 노리고 반격을 시도했으나 장기린의 선공에 막혀 허무하게 실패했다. 오히려 그 뒤에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날아온 창격에 옆구리의 일격을 얕게나마 허용하고 말았다.

퍽! 소리와 함께 삼호방주의 몸이 옆으로 튕겨졌다.

‘아앗!’ 하고 주변 삼호방 무인들의 입에서 다급한 경호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튕겨지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삼호방주는 다시 장기린에게 덤벼들었다.

지독한 살기, 끈질긴 투기로 짐승처럼 눈을 빛내며 달려드는 삼호방주.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는 팔의 상처.

그리고 조금 전에 갈비뼈가 서너 대는 부러졌을 게 분명함에도 덤벼오는 삼호방주에게선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비록 비열하고 잔인한 적이지만 그 굳건한 심지만큼은 무인으로서는 배워야 할 점이다.

“캬하아앗―!”

거기에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기합성.

왼쪽엔 청람수, 오른쪽엔 파갑수의 진기를 끌어 올리고 허공에서 양손을 맞잡는다.

삼호방주가 익힌 최고의 무공, 청파무적수였다.

콰아아!!

고오오오―

이번엔 소리부터가 처음과 달랐다. 목숨을 건 공격이기에 그렇다. 무인창을 거머쥔 장기린의 양손에도 자연히 힘이 들어갔다.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리는 참격에 강력한 내력이 담겼다.

꽈아앙!!

처음과 동일한 경합이었으나 이번엔 삼호방주가 뒤로 튕겨나지 않았다. 무공의 위력이 대등했다는 뜻이다.

장기린의 양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천수여래상처럼 수십 개의 잔상을 만들어 내는 팔. 동시에 칼날이 없는 무인창도 수십 개로 늘어나며 사방을 그물처럼 점령했다.

일연적룡무.

그 두 번째 초식이다.

“캬하아앗―!”

삼호방주는 철저히 저항했다. 한 번 전개할 때마다 큰 부담이 걸리는 청파무적수를 연거푸 사용했다.

하지만 그물은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점점 더 몸을 옥죄는 법.

장기린이 명치 앞, 단전의 앞에서 양손으로 거머쥔 무인창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주변을 장악했다. 삼호방주가 전개한 청파무적수가 낙엽이 바스라지듯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서서히, 마치 깊은 진흙 늪에 발이 빠지듯 삼호방주는 힘을 잃어 갔다.

발악을 하듯 몸을 뒤틀고 무지막지한 괴력을 뿜어내지만, 천수여래마냥 천지 사방을 장악하는 창영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강을 쾌와 유로 제압하는 투로.

일연적룡무의 두 번째 초식이야말로 장기린이 가진 가장 무공(武功)다운 무공인 것이다.

쩌어엉!

세 번째 청파파갑수가 날아왔다.

삼호방주는 강한 힘으로 장기린의 무공을 깨부수려 했지만, 마침내 육신에 한계가 찾아왔는지 코와 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삼호방주가 아무리 강한 힘으로 두드려도 장기린은 태산처럼 굳건하며 흔들림이 없었다. 이화접목으로 모든 힘을 땅밑으로 분산시키고, 끊임없이 몸을 휘도는 진기가 그 충격을 상충시키기 때문이다. 마침내 끝을 모르던 삼호방주의 투기도 서서히 절망을 느끼며 잦아드는 듯했다.

후와아아악―!

그러자 장기린의 무인창이 이번엔 더더욱 많은 수의 잔상을 남기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삼호방주의 손이 어지러워진다.

황급히 청파무적수를 중지하고 청람수와 파갑수로 쳐 내 보려 하지만,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교묘하게 파고든 창끝이 삼호방주의 어깨를 관통했다.

퍼어억!!

“……!”

삼호방주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이걸로 끝인가! 하지만, 강했다.’

이미 승부가 난 거나 다름없더라도 상대가 완전히 쓰러지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장기린은 무인창을 크게 휘둘러 이번엔 대각선으로 참격을 날렸다. 삼호방주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청람수를 전개한 채 발악적으로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교차하는 마지막 승부수.

그 끝은…… 삼호방주의 가슴이 길게 갈라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푸화악―!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삼호방주는 관통당한 어깨와 일 척이 넘게 갈라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이놈……! 나를…… 왕이 될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그래도 한때나마 정점에 오른 자라는 것일까.

비록 패배하고 처참한 몰골이 되었을지언정 기는 죽지 않는다.

장기린은 여전히 호안을 부릅뜨고 있는 삼호방주를 묵묵히 응시했다.

처음엔 복수심으로 싸움을 시작했으나, 결국엔 무공을 겨루는 비무처럼 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들던 삼호방주의 투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장기린도 그저 무념(無念)으로 맞서 싸우게 되어 버린 것이다.

“큭, 이걸로 끝이 아니다……. 오왕…… 아니, 북천맹의 요인들이…… 쿨럭!”

삼호방주는 결국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피거품을 토해 냈다. 지금껏 한 치의 인정도 없는 잔인한 삶을 살아온 거마가 빈사 상태에 처한 것이다.

“아버님!!”

바로 그때, 옆에서 튀어나온 강산호가 청람수의 푸른빛으로 뒤덮인 큼직한 주먹을 휘둘렀다.

아버지인 삼호방주가 당하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덤벼드는 그 용기만은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제법 강하지만, 무림오존의 경지에 필적하는 지금의 장기린에게 있어서는 별거 없는 공격이었다.

쩌엉!

“커헉……!”

가볍게 휘두른 무인창에 강산호는 마치 마차에 치인 어린아이처럼 뒤로 튕겨 났다. 팔목이 어색하게 위로 꺾인 채 극심한 내상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

장기린이 강산호를 향해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내는 순간,

쉬이익―!

또 하나의 그림자가 비조처럼 앞으로 쏘아져 왔다.

“흠……!”

장기린은 이미 눈을 감고 있어도 주변 십 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공깃돌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당연히 측면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느끼고 반응하였으나, 놀랍게도 그 공격이 노리는 건 장기린이 아니었다.

파아앗! 쉬쉬쉭―!

“쿨럭……!”

쏜살같이 날아오던 그림자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삼호방주의 몸을 들쳐 엎고 그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꽃이 터져 나가는 듯한 작상보.

파륵삼호의 첫째, 강장호였다.

차분하고 도도해 보이던 그가 평소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주를 꾀하고 있었다.

“서라!”

장기린의 몸이 움직였다.

이미 다 잡은 삼호방주다. 여기서 놓쳐서는 앞으로의 싸움에도 큰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한데 장기린이 그 뒤를 쫓으려는 순간, 강장호가 한쪽 어깨로 삼호방주를 짊어진 채 품속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꺼내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치이익!

연기와 함께 타오르는 불꽃.

장기린은 불길함을 느꼈다.

‘이런……!’

잠시 후, 그 시커먼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장기린은 크게 당황하여 무인창을 움직였다.

강장호가 집어 던진 것은 화탄이었다.

관에서 금지한 금용 무기. 그것도 겉면의 마무리가 잘된 것으로 보아 숙련된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품이었다.

화탄은 보통 주변 삼 장가량을 초토화시킨다.

고수든 초고수든 예외는 없다.

모든 것을 불꽃 속으로 빨아들이고, 거기에서 각각 무림 고수의 암기술과 맞먹는 힘을 담은 쇳조각들이 튀어나가면 그 주변은 참혹한 참살이 일어나는 것이다.

후우웅―

장기린은 무인창의 움직임에 극도로 집중했다.

지금 주변에 있는 생명은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적룡기마대원들이 있다. 부상당한 추룡이 있고, 대석이 있으며, 한창 삼호방 무인들 여섯 명을 박살 내고 있는 진구도 있다.

화탄이 폭발하면 그들이 다치게 된다.

운이 좋으면 파편 한두 개 박히는 걸로 끝나겠지만, 운이 나쁘면 급소에 파편을 얻어맞고 죽을 수도 있다.

장기린은 동료들이 죽임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창을 들어 올린다.

그런 뒤,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의 대기를 느끼며 천천히 아래로 내리긋는다.

무림십대고수였던 맹호도 방극을 제압했던 무공이다.

심즉통(心卽通).

마음이 일면 곧 통하는 경지를 말한다. 일연적룡무의 마지막 세 번째 식(式)은 심즉통의 경지를 필요로 하는 무공이었다.

검선은 말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마음만큼 약한 것은 없지만, 또한 그만큼 강한 것도 없다고.

한 번 약해지면 한낱 미물에게도 이길 수 없지만, 한 번 강하게 날을 세우면 나라도 뒤엎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장기린은 마음을 칼처럼 날카롭고 대해의 파도처럼 거칠고 강력하게 가다듬었다.

자신의 힘을 확신한다.

자신의 강함을 믿는다.

어린아이가 손발을 놀리듯, 창을 내리긋는 그의 움직임에 천지가 진동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오오―!

그리고 그 믿음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 장기린은 주변의 대기를 모조리 휘감아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창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번쩍!

눈이 시리는 불꽃과 함께 후끈한 열기가 정면으로 끼쳐 들었다.

폭음은 그다음에 들렸다.

강력한 파괴의 불꽃이 다 지나간 다음, 마치 불꽃이 끈으로 묶어서 질질 끌고 가듯 소리가 그 뒤를 따라서 왔다.

꽈아앙! 꽈과과광! 꽈과광!!

폭음은 세 번이나 연달아 터졌다. 첫 번째는 내부에서 점화된 화약이 터지는 소리였고, 두 번째는 분리된 화탄의 파편들이 다시 한 번 작약하여 폭발하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은 그 파편들이 단단한 땅바닥을 걸레쪽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는 소리였다.

후두두둑!

“…….”

만약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허공에서 폭발했다면 많은 인원이 크게 다쳤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린의 능력 덕분에 폭약은 단순히 땅바닥만을 뭉개는 선에서 끝나 버렸다. 신기하게도 마치 발에 짓밟힌 생쥐마냥 폭발은 바닥에만 깔렸을 뿐, 그 이상 위나 옆으로 퍼져 나가지 못했다.

후우웅―

모든 것이 끝난 뒤,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에도 장기린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흙먼지가 자욱한 땅 위에서 장기린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어느새 강장호와 강산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탄으로 시간을 벌어 놓고 그사이에 도망친 것이다.

“추룡, 대석! 뒤를 수습해라!”

장기린은 그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강장호가 도망친 방향은 잘 알고 있다. 펄쩍펄쩍, 마치 호랑이가 뜀박질을 하듯 호쾌한 몸놀림으로 장기린이 나아갔다.

그 속도는 작상보에 못지 않게 빨랐으나, 장기린은 도독부 인근으로 이어진 강장호의 마지막 흔적 앞에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런……!”

안가(安家)라는 것이 있다.

흑도의 문파에 소속된 자들이라면 하나쯤은 반드시 준비해 둬야 하는 필수적인 곳인데, 친우나 동료는커녕 가족들조차 모르도록 준비해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흑도의 문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성상, 비열한 수단들이 많이 사용된다.

배신과 하극상은 기본이요, 살수를 고용해 암살을 꾀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니 도주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아무도 모르는 퇴로나 은신처 하나 갖고 있지 않아서야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만약 그 정도 준비조차 해 놓지 않는다면 그자야말로 흑도에서 ‘죽어도 싼 놈’이 된다.

장기린은 자신이 그 안가라는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가의 입구에 도착했다.

급하게 들어가느라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는 수풀을 조금 걷어 내자 사람이 인위적으로 깎은 듯한 토굴이 나타났는데 그 입구가 천장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입구를 막았군.”

강장호가 얼마나 치밀한 성격인지는 첫인상에서 어느 정도 느끼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기린이 나타날 줄을 몰랐던 이런 사소한 싸움에서까지 미리 안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도주하면서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뒤처리를 할 줄이야.

장기린은 입구를 가로막은 돌덩이들을 부숴 버리기 위해 무인창을 들어 올리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지형을 보니 전체적으로 천장이 약하게 만들어져 있다.

일부러 그걸 노리고 만든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장기린이 길을 뚫기 위해 힘을 썼다간 자칫 더 깊은 곳까지 통로가 무너져 내릴 것이 눈에 선했다.

“놓쳤나…….”

장기린은 결국 떠올리기 싫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치명상을 입은 삼호방주, 강장호와 강산호까지. 삼호방을 괴멸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 대가는 클 것이다.”

비록 지금 놓쳤다고는 해도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삼호방주가 이걸로 끝이 아니라고 했던가?

장기린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는 복수라고 할 수 없다. 엉뚱한 곳에서 희생당해야만 했던 적룡기마대 스무 명. 그 대가는…… 삼호방이 두고두고 후회할 뼈아픈 손실이 될 것이다.

휙, 몸을 돌리는 장기린.

그의 발걸음이 성큼성큼 그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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