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97화 (78/686)

第九十四章 ― 삼호분열(三虎分列)

공기가 뜨겁다.

지글지글 들끓는 화염을 눈앞에서 보더라도 이 정도로 뜨겁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공기가 일렁이고, 피부에는 짐승의 숨결처럼 뜨거운 감각이 훅 끼쳐 들었다.

한참이나 숨을 못 쉰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멍했다.

습관적으로 입을 뻐끔거리는데, 그러는 사이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다.

살려 줘!

“으, 아아…….”

“히익, 사, 살려 줘……!”

산전수전 다 겪은 흑도의 무인들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들의 경험을 살릴 수 없었다. 아니, 경험을 살리기는커녕 마치 세상사를 모르는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맹목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덜덜 떨면서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손발을 땅에 다 붙인 채 바닥을 기기도 하고, 일부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애벌레마냥 몸만 꿈틀거렸다.

모든 게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강서성주 저택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

검은색 무복을 입은 채 팔의 관절에는 각반과 비구를 찼으며, 한 쌍의 장군검을 양손에 각각 들고 있는 자!

처음, 일백 명의 기마대가 돌진한 것을 시작으로 오백여 명의 흑도 무인들이 일제히 정문으로 돌격했으나…… 그들 중 무사히 문턱을 넘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금강야차가 세상에 현신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절대적인 강함!

압도적인 무력!

만부부당의 장수가 정문을 가로막으니 경지에 이르지 못한 무인들은 감히 접근도 할 수 없었다.

한 쌍의 장군검으로 펼치는 놀라운 검공은 완벽했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정밀했다. 놀랍게도 강력한 강공(强攻)에 부드러운 유술(柔術)의 이치까지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일격, 일격이 격중될 때마다 나타나는 위력은 범접할 수 없는 막강함을 품고 있으니, 그 모습은 무인으로서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완성되어 있지 않은가.

“말도 안 돼……! 무림십대고수 수준이라니!”

“그 정도 수준의 고수가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고……!”

대열의 후미에 있던 무인들은 치를 떨었다.

정문은 이미 시산혈해라는 말이 어째서 생긴 건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신체의 일부가 훼손된 시신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으며, 흘러나온 피는 이미 발등을 적실 정도로 큰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아무리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사는 인생이라지만, 이 정도로 잔혹한 광경을 만나게 되면 그들도 사람인 이상 이성이 마비된다.

“나, 난 포기야. 이런 건 말도 안 된다고.”

“그, 그래.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안 돼, 안 된다고. 난 여기서 그만할 거야.”

뒤쪽에 있던 자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이미 정문에 가까이 다가가 있던 자들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싸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으으……!”

그들은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도록 몸을 떨다가 결국 떠밀리듯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우와아앗―!”

제대로 무공을 익힌 무인인만큼 공격을 가하는 자세는 날렵하고 정확했다. 당황하고 공포에 질린 정신과는 달리 하체는 발경을 충실히 지탱하고 내려치는 칼끝엔 희미하나마 검기마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정문을 지키고 선 자는 무신(武神)이다.

푸화악―!

장군검이 허공에서 완벽한 반원을 그리는 순간, 달려들던 무인은 허리가 갈라지며 핏물이 고여 있는 바닥에 철퍽, 하고 널브러졌다.

단순한 칼질에 몸이 절단되는 압도적인 광경.

뒤이어 달려들려던 무인들이 움찔하며 절로 몸이 굳어졌다.

아무리 좁은 통로라지만 홀로 이백여 명을 베었다.

그 정도면 지칠 만도 하지 않은가.

어떻게 인간이 지금까지도 검격의 위력에 변함이 없단 말인가.

“더 덤비지 않는가.”

온몸이 새빨갛게 피로 물든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이질적이게도 너무나 평온하고 차분했다.

그 모습이 더더욱 공포심을 부추겼다.

지금까지의 행위를 마음만 먹으면 또 할 수 있을 것처럼 건재해 보였던 것이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무인들 중의 일부가 또다시 이탈했다.

도망친 것은 전부 합해서 이백여 명.

이곳에서 뼈를 묻은 것은 삼백여 명이다.

철퍽.

피에 젖은 무신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남아 있던 무인들의 몸이 움찔 떨리며 일제히 뒷걸음질쳤다.

“으아아―!”

정문 앞에 남아 있던 흑도 무인들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끝인가.”

시야에 남아 있던 흑도 무인들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 부운화의 몸이 옆으로 휘청 기울어졌다.

“부대주!”

뒤에서 적룡기마대로서의 자긍심이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대원들이 재빨리 다가와 부운화를 부축했다.

“아아, 괜찮다. 문제없다.”

부운화는 애써 부축을 떼어 내며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의 몸은 온통 진득한 핏물에 절어 있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움직임으로 열기를 내뿜다 보니 어느새 어깨 부근의 핏물은 바싹 굳어져서 새카만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홀로 무공을 익힌 무인들 이백여 명을 베는 것.

아무리 좁은 곳에서 상대했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가장 처음에 달려들었던 텐챠이 수호대 일백여 명이다.

텐챠이 수호대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오로지 돌격이 있을 뿐이며, 자신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이빨을 드러내는 종족이다.

그래서 그들 일백여 명이 달려들 때는 천하의 부운화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한두 명이야 말까지 통째로 갈라 버릴 수 있을 테지만, 그 뒤에 연이어 달려드는 자들까지 상대하려면 힘을 낭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부상자는 없나?”

부운화가 묻자 적룡기마대원 오십 명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래.”

없을 리가 없다.

적룡기마대원 오십 명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얼굴, 목, 팔 할 것 없이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개중의 몇 명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상을 입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대주에게 우는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다!’

적룡기마대원들은 더더욱 가슴을 쭉 펴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부운화는 정문을 홀로 지키며 오백여 명의 무인들을 막아 냈고,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텐챠이 수호대와의 싸움을 도왔다.

그런 사람에게 고작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 가지고 우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별거 아니더구만요.”

“하여간 몽고 달자 놈들, 발전이 없어요, 발전이.”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면 뭐가 해결이 되나? 왜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고 지랄이야, 지랄이.”

걸쭉한 목소리로 서로 농담까지 토해 내는 적룡기마대원들.

그게 부운화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쯤은 부운화도 잘 알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만약 텐챠이 수호대 일백 명에 삼대천 중 한 사람이라도 끼어 있었다면…… 아마 당하는 건 오히려 이쪽이 되었을 것이다.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야.’

부운화는 차분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나 지친 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정문을 지키랴, 텐챠이 수호대를 틈틈이 막으랴 신경을 두 배로 쏟았기 때문이다.

“둘째 형님!”

두두두―

그때, 섭우생을 필두로 후문을 지키던 대원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도 격전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부상을 입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책략의 힘은 역시 강하군.’

부상이 적다고 해서 후문 쪽의 적이 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텐챠이 수호대만 없다 뿐이지, 그쪽에도 분명 비슷한 수준의 흑도 무인들 오백이 몰려갔다.

그럼에도 이쪽에 비해 피해가 적은 건…… 섭우생의 두뇌 덕분이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섭우생은 도착해서 주변의 광경을 보자마자 탄성을 터뜨렸다.

부운화가 섭우생의 전술력에 감탄하듯, 섭우생은 부운화의 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수비력으로만 따지자면…… 대형조차 넘어서지 않을까?’

장기린은 막강하지만 공격과 돌격에 치우친 면이 많다.

하지만 부운화는 제자리에서, 지금처럼 어딘가를 ‘지켜 낸다’라고 할 때 그야말로 철벽이나 다름없는 무력을 선보인다.

특히 텐챠이 수호대로 보이는 기마병들 중 대다수가 말과 함께 두 동강 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솜씨가 아닌 듯한 위화감마저 들 정도였다.

‘이미 태극혜검이 살검과 완전히 조화됐습니다. 아니, 이젠 이미 태극혜검이라 부를 수 없겠군요. 완전히 새로운 검술이 되었습니다.’

부운화는 섭우생의 감탄이 부담스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별것 아니다.”

“하하, 둘째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정문을 단 한 명도 통과시키지 않으려면…… 으음, 대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너무 날 띄워 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있었다면 더 피해가 적지 않았겠냐.”

“무슨 말씀을. 어떤 전술이든 최후엔 막강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방식의 싸움이야말로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싸움일 것입니다.”

“……그러냐? 아무튼, 수고했다. 약속을 지켰구나.”

“예.”

섭우생은 볼이 움푹 파인 앙상한 얼굴로 씩 웃었다.

목표로 했던 것을 이뤘다는 성취감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정문에서 오백, 후문에서 오백.

거기에 텐챠이 수호대가 일백이나 동원되었던 싸움을 고작 일백의 기마대가 막아 냈다.

숫자상으로만 따져도 일 대 십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무림에 새어 나간다면 큰 파장이 일어나리라.

“그럼 이제…… 정리할까.”

“……!!”

부운화가 자연스레 흘린 말에 아직 싸움의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채 흥분해 있던 적룡기마대원들이 모두 움찔 몸을 떨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와 시체가 낭자한 정문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문과 후문의 시신의 숫자를 다 합하면 무려 팔백에 달한다.

이걸 다 치워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하아…….”

“이런…….”

적룡기마대원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라리 이천 명의 병사들과 싸우는 게 더 낫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 ☆ ☆

강서성 중심가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평범한 야산 중엔 여우가 많이 나온다고 하여 호산(狐山)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의외로 날카로운 돌이 많고, 낙상의 위험이 있어서 숙련된 사냥꾼 말고는 얼씬도 하지 않는 산이었는데, 만약 기억력이 좋은 누군가가 호산을 사시사철 관찰했다면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호산의 중턱 너머에는 가을이 지나도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 장소가 딱 하나 있다.

멀리서는 그것을 볼 수 있어도 산으로 들어와 가까이에 다가가면 찾을 수 없는 교묘한 위치였는데, 그곳에 작지만 정갈한 목조 전각을 세우고 그 주변을 이미 죽은 나무들로 채워 넣어서 산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 삼호방이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는 안가(安家)가 하나 있다.

삼호방 내에서도 삼호방주와 강장호밖에 모르는 곳이며, 심지어 안가를 만든 인부들조차 모두 죽여서 살인멸구를 한 비밀스런 장소였는데, 그 덕분에 추격의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었다.

“아버님.”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상당히 초췌한 안색을 한 강장호가 삼호방주를 불러보았으나, 낯빛이 창백한 강추산은 그가 몇 번이나 반복해 이름을 불러도 눈을 뜰 줄 몰랐다.

강장호는 강추산의 상의를 풀어헤치고 그가 입은 상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건…….”

상처는 평소의 냉혹할 만큼 이성적인 강장호가 탄식할 만큼 심각했다.

비스듬하게 쩍 벌어진 상처는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인 채 피부가 바깥쪽으로 말려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목숨이 위태로운 중상이다. 분명 뼈에도 손상이 갔을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어깨와 팔 부분의 작은 상처들도 만만치 않았다.

살점이 움푹 떨어져 나간 상처들은 혈관을 건드렸는지 새어 나오는 피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근육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위험하다!’

강장호는 검지와 중지를 모은 손을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양손 끝에서 시작해 어깨, 목, 상체로 이어지는 수십 개의 경혈을 연이어 격타했다.

심각해진 출혈을 막고 전신의 진기의 흐름을 되살려 주기 위함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추궁과혈을 시작한 강장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툭. 투툭. 투투툭.

한 번 시작한 추궁과혈은 반 시진이나 지속되었다.

온 전신의 경혈을 다 자극하여 활성화시키고, 다시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말은 쉽지만 심력과 공력의 소모가 큰 작업이었다.

“후우우…….”

반 시진에서 다시 이각을 더 넘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강장호의 입에서 긴 날숨이 흘러나왔다.

“조금…… 나아졌나?”

강추산의 낯빛은 처음보다 상당히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심각했던 내상을 바로잡고 생명의 활기를 되살렸다. 그 덕에 당장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나, 그렇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고비라는 것은 오늘의 것을 넘겼다고 해도 내일이나 모래,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의 행위는 응급처치에 불과하니 조속히 의원을 데려와야만 했다.

“이제 어쩔 거요?”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강장호는 등 뒤에서 그를 쏘아보고 있는 거구의 사내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요. 이젠 어쩔 거냐고 묻고 있소.”

강산호의 태도는 전에 없이 도전적이었다.

크나큰 체구에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꼭 적을 도발하는 듯했다.

“아버님이 깨어나시길 기다린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

“언제 깨어날 줄 알고? 지금은 우리끼리라도 나가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니오?”

“너…….”

강장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강산호는 아버지의 목숨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님을 버리자는 뜻이냐?”

“그 정도 상처면 이미 목숨은 다했다고 봐야지. 거기에 매달려 있는 거야말로 흑도 무인으로서 어리석은 짓이오.”

“그래도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거다.”

“큭, 언제부터 우리가 성인군자였다고. 우리가 무슨 명문대갓집 자손이오? 위아래를 따지게?”

그 삐딱한 태도에 강장호가 벌떡 일어났다.

“뭐 하자는 짓거리냐?”

강장호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하자 대단한 위압감이 발산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억눌러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은 강산호였다. 그는 위압감을 발하는 강장호를 정면에서 노려보며 한 치도 지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깟 효자 놀음은 큰형이나 하라 이거요! 어차피 아버지도 아들이라고는 큰형밖에 없는 것처럼 살았으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또 꺼내는 거냐?”

“못 꺼낼 건 또 뭐 있소? 이미 서로 다 아는 이야기인데!”

강장호는 침중한 심정이 되었다.

강산호는 이게 문제다.

무공에 있어서도 상당히 뛰어난 재질을 지녔고, 조금 과격하기는 하나 남자다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같은 형제에 대해 상당한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다.

큰형인 강장호에게는 물론이고, 때로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유롭게 사는 막내 강인호에게조차 질투를 할 때가 있었다.

“막내가 죽었소!”

강산호는 씹어뱉 듯이 말했다.

“파륵삼호 중 한 명인 우리 동생이 당했다는 거요. 그런데 뭐 느끼는 거 없소?”

“아직, 확인된 건 아니다.”

“확인할 게 뭐 있어! 얘기를 듣자니 아까 아버지랑 싸웠던 그 새끼가 막내를 죽였다던데!”

붉어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산호에 비해 강장호는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그래서?”

“……뭐요?”

“막내가 당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강산호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큰형은 사람으로서 뭔가가 잘못되어 있소. 우리가 아무리 막돼먹은 흑도 문파의 악종들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이오. 아버지에 대한 효(孝) 운운하기 전에 형제들에 대한 가족의 정부터 느끼라는 거요!”

“지금 네가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

“그렇소! 당신의 그 뱀같이 차가운 성격이 이젠 신물이 나!”

쾅! 하고 바닥을 후려친 강산호가 벌떡 일어나 강장호를 노려봤다.

키로 따지자면 강산호가 강장호보다 일 척은 더 크다.

강산호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주먹을 몇 번이나 거머쥐었으나, 결국 이를 악물며 손을 내렸다.

“난 그렇게 차갑지 못하니 나갈 것이오. 나가서 남은 흑도의 무인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강서성을 다시 되찾겠소.”

강산호의 그 말은 얼핏 좋게 들리지만, 아직 아버지인 강추산의 숨이 붙어 있는데다, 큰형인 강장호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삼호방을 자신이 갖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거나 다름없었다.

“후우.”

강장호는 잠시 그런 강산호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강산호의 욕심과 야망은 잘 알았다.

하지만 강산호에게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계획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다.

“네가 그걸 하겠다고?”

“그렇소!”

“잘 들어라. 아버님이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쓰러지셨다. 나로서도 정면으로 싸운다면 필패라고 생각한다. 그자는…… 괴물이야.”

평소 강산호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강장호의 입에서 ‘괴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강산호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런데 그런 자가 지금 우리의 뒤를 쫓고 있는데, 네가 삼호방의 힘을 모아 그자를 다시 치겠다? 정말로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

“그만둬라. 그렇지 않으면 개죽음을 당할 뿐만 아니라, 아직 저력이 남아 있는 삼호방을 오히려 재기불능의 상황으로 만들게 될 거다. 이건…… 형으로서 하는 마지막 충고다.”

“……!”

듣고 있던 강산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으나, 마지막 첨언 때문에 그로서는 강장호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웃기지 마시오! 만부부당이라는 건 다 개소리지. 숫자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소! 지금 몰려든 흑도 무인들을 규합하고 삼호방의 전력을 끌어모으면…… 강서성을 제압하는 건 시간문제일 터!”

“……어리석은 짓은 그만둬라. 그걸로도 모자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리가 없소.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북천맹에 도움을 요청하면 될 테지!”

“…….”

“이미 겪어 봐서 알겠지만, 북천맹은 강하오! 아무리 괴물 같은 작자가 하나 있더라도, 숫자가 이백도 안 되는 놈들 따윈 북천맹이 나서기만 하면…….”

“잠깐.”

강장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역시…… 너로는 안 된다.”

“뭐…… 요?”

“너는 북천맹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가 좋아서 같은 맹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준 것 같나? 왜? 왕의 칭호를 받으니까 북천맹과 죽마고우라도 된 것 같은가? 같은 혈족이라도 된 듯해?”

“……!”

강산호는 아직까지도 알아듣지 못하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리가 약해지면 북천맹은 우리를 가차없이 버린다. 강호관직론은 그런 제도란 말이다. 다들 대단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달려드는 모양인데, 막상 관직을 차지한다 해도 힘이 약해지거나 부상을 입으면 바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게 바로 그 강호관직론의 한계란 말이다.”

“……!!”

수많은 흑도 무인들이 무작정 강호관직론의 달콤한 면만을 보고 북천맹으로 달려가는 가운데, 강장호만큼은 그 허실과 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명심해라. 삼호방이 약해지면 북천맹은 곧바로 등을 돌린다. 더군다나 아버님께서 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면, 나머지 사왕(四王)에게 삼호방의 세력을 나눠 먹으라고 던져 줄지도 모른다.”

“그럴……!”

“믿어라. 너에게 내가 좋은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만, 그래도 내 판단이 틀린 적이 있었던가?”

“큭……!”

강산호는 거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강장호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절대로 좋은 형이나 가족은 아니었지만, 그 판단력과 뛰어난 두뇌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강산호는 지금껏 강장호가 예상한 일이 빗나가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숙하고 기다려라. 지금은 적의 힘을 알았으니 잠시 몸을 낮추고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

“지금 삼호방의 전력은 숨겨진 채 보존되어 있다. 만약 지금 네가 나가서 그게 밝혀지면 삼호방은 정말로 멸문지화를 당할 터. 너는 네 손으로 삼호방을 멸문시키고 싶은 것이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강추산을 추궁과혈해 주느라 심신이 지쳐 있던 강장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산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서로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노려볼 뿐이다.

“…….”

“…….”

강산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말없이 몸을 돌려 방에서 빠져나갔다.

탕!

문이 닫히는 소리가 더없이 크게 울려 퍼졌다.

“……힘들군.”

강장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하면 알아들었겠지.”

강산호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하지만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이 정도로 말했다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여러 가지로 심신이 지쳐 있던 강장호는 그렇게 납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장호는 이때 처음으로 틀렸다.

강산호가 지난 세월 동안 쌓아 온 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지금의 삼호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과격한 자부심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냉철하고 객관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는 강장호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항상 그에게 도움을 주던 냉철한 이성이 이번만큼은 발목을 잡고 늘어진 셈이다.

반 시진 후.

강추산의 육신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다시 한 번 추궁과혈을 해 준 강장호가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안가(安家) 안에 다른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그제야 불안감을 느낀 강장호가 안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살펴보자, 이미 그곳엔 사람이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이런……!”

강장호는 탄식했다.

통로를 빠져나가면 바로 강서성의 입구 근처로 나갈 수 있다.

반 시진이라면 이미 강서성 내부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이고, 강산호가 강서성의 내부로 들어갔다는 것은 아마 강장호가 해 준 조언을 모두 무시하고 그의 뜻대로 세를 모아 다시 한 번 강서성을 도모해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그런게 가능했다면 이미 강산호가 나서기 전에 강장호가 먼저 나서서 그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겠는가.

눈앞에 강산호가 있다면 얼굴을 후려쳐서 그 어리석은 생각을 뿌리째 뽑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강산호는 지금 눈앞에 없다.

아마 지금쯤 삼호방의 비밀 접선을 이용해 온 세상에 훤히 드러나도록 흑도의 무인들을 끌어모으고 있을 것이다.

휘이잉―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온다. 강장호는 흔들리는 옷깃을 손으로 붙잡고 아직 어두운 새벽녘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맣고 넓다.

알알이 박혀 있는 별빛은 찬란하게 빛나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검은 융단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드넓어 보인다.

“큭……!”

강장호는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려 묻고 싶어졌다.

세상이 그를 버리는가.

하늘은 삼호방이 패권을 쥐는 것을 원하지 않는가.

‘아버님……!’

잠시 강추산이 누워 있을 전각을 바라보던 강장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안쪽으로 들어가 강추산을 양팔로 안아 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강장호는 강추산과 함께 안가의 비밀 통로를 통해 산을 내려갔다.

☆ ☆ ☆

“결국…… 스물이나 희생되었습니까?”

섭우생은 침중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추룡과 대석을 구해서 돌아온 장기린이 표정이 굳어 있을 때만 해도 막연히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스무 명이라니.

이 모든 일은 군사인 그가 강장호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 전장에서 몇 년이나 함께 싸워 왔고,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름을 줄줄 외울 수 있는 친숙한 인물들이 스물이나 죽은 것은 모두가 군사인 그의 탓이라는 뜻이었다.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충격과 압박감이 몰려왔다.

“자책하지 말아라, 우생.”

그런 그를 장기린이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따지면 먼저 알아채고 도우러 가지 못했던 내 잘못도 크다. 아니, 최소한 속도를 더 높여서 반 각만 더 일찍 도착했어도 최소한 절반은 더 살릴 수 있었겠지.”

“대형……!”

“술은 충분히 마셨다. 우생, 이젠 춤을 춰야 할 때야.”

술은 가슴 아픈 고통.

춤은 복수를 뜻한다.

전쟁터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전쟁터라는 곳은 죽음이 일상화된 세계다. 매일같이 죽음이 있고, 시신이 생기며, 피를 본다. 특히 경험이 없는 새파란 신병인 경우 전장에 나와서 사흘을 버티기가 힘들 정도이니, 싸움을 한 번 나갔다 오기만 하면 얼굴을 익혀 두었던 친한 동료가 죽어 버리기 일쑤였다는 소리다.

그럴 때마다 병사들은 술을 마신다.

병사들뿐만이 아니다. 장교들 중에 격식이 없고 고지식하지 않은 자들은 그런 병사들 사이에 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한다.

노래는 천박하고 저속한 유행가를 부르고, 때론 웃통을 까뒤집고 미친듯이 춤도 추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곳에 모여 있는 모두가 시끄러울 정도로 웃고 떠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렇게 고통을 나눈다.

동료를 잃고 상심한 마음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유쾌하게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전장의 법도이며, 병사들이 슬픔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때론 그걸로도 부족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들은 춤을 춘다.

전장에서 복수를 위한 진혼의 춤을 추는 것이다.

전날의 희생이 다음 날 전투에선 더더욱 힘을 내 싸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그러한 일을, 적룡기마대는 지금껏 매일같이 반복해 왔다.

적룡기마대원의 희생은 드문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그들은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우생, 이번 일로 느낀 점이 있다.”

“어떤 점을 느끼셨습니까?”

장기린은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두가 모여 있었다.

차분하게 서 있는 부운화, 상처 때문에 온몸에 천을 두른 추룡, 그 못지않게 상처투성이인 대석, 군사인 섭우생과 막내인 진구까지.

거기에 이원, 이사, 모방, 개원을 필두로 한 백삼십여 명의 적룡기마대원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모두가 모여 장기린이 하는 말에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적룡기마대는 적룡기마대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

장기린의 눈빛에 점점 더 강한 힘이 실렸다.

“전략에 따라 나눠져서 지역을 차지하고 싸우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의 진짜 힘은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내가 이끌고, 부운화가 받쳐 주며 너희들이 각자 부대를 지휘해 줄 때 발휘되는 거야.”

대평야 전투, 장평 전투 등, 그 힘이 발휘되었던 전장들은 수없이 많이 있다. 모두의 눈빛이 그때의 기억을 더듬 듯 아련해졌다.

“하지만 대형, 그 당시엔 삼호방이 어디에 숨었는지를…….”

“그래. 그때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잘못되었던 거다. 안일했어. 우리야말로 무림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장기린은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올렸다.

“인근의 흑도 무인들은 모두 삼호방을 따른다고 했지.”

“예, 그렇습…… 서, 설마……?”

그 한마디로 장기린의 의중을 짐작한 섭우생이 경악의 외침을 토해 냈다.

“그렇다면 강서성 내의 흑도 문파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면 되는 거다. 그때쯤 되면 삼호방 놈들이 돕기 위해 나타나거나, 아니면 몰래 숨더라도 반대로 가르쳐 주려는 놈들이 많이 나타나겠지.”

“……!!”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조리 돌파한다. 그게 적룡기마대의 방식이다.”

북방 몽고의 전사들과 기마의 속도로 일전을 겨루고, 수만 명이 모인 병력을 단기필마로 종횡하는 그 호쾌함이야말로 적룡기마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두가 그때의 그 감정을 되살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기린의 말이 맞다. 희생당한 친우들을 위한 진혼의 싸움이 되려면 좀 더 호쾌한 싸움터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대형, 그러려면 광대하고 빠른 정보가 필요합니다. 흑도의 무인들이 워낙 잘 숨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지속적이면서 뒷골목의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는 그런 문파의 도움이…….”

“있잖아, 그런 문파가.”

“……!”

섭우생은 그 순간, 얼마 전에 장기린이 소개시켜 주었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하오문 당주인 춘삼과 남궁세가 뇌안각 총괄 당주인 남궁연이다.

섭우생은 그때, 그 둘이 문파의 힘을 동원해 돕는다면 실제로 강서성의 흑도 문파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아……!”

섭우생은 탄식하며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저는 군사 실격입니다.”

“아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우생. 앞으로 이동하면서 정보를 취합하고 갈 길을 정하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삼호방이 숨은 곳을 찾을 방법은 없어?”

“삼호방주나 강장호의 성격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입니다.”

“아니.”

장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 절대는 없어. 만약 삼호방의 흔적이 드러나거나 모습을 드러내는 실수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지?”

“그땐…….”

잠시 말을 끊은 섭우생.

그의 입에 군사로서의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되면, 그날이 삼호방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 ☆ ☆

강산호는 강서성의 뒷골목에서 입구에 세 개의 연등이 걸려 있는 주점을 찾았다.

이곳이 바로 삼호방의 주전력이 숨어 있는 곳이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삼호방주의 직속인 추산대와 삼호방 제일의 무사들이라는 강장호의 장호대원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장사를 하고 있었는지 안쪽에서 소채나 오리 고기를 시켜 놓고 술을 마시는 자들이 몇 명 눈에 들어왔다.

강산호는 그들을 무시하고 곧장 주인에게로 향했다.

주인은 강산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장부 같은 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봐.”

“예? 왜 그러십니까, 손님?”

“안내해.”

“무슨 말씀이신지…….”

시치미라도 떼려는 건지, 주점의 주인은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산호에게는 그런 장난질을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주인에게 한 발자국을 더 내딛으며 으르렁거리듯이 속삭였다.

“죽고 싶나? 그렇다면 말만 해. 당장 죽여 줄 테니.”

“저기, 이러시면 곤란…….”

“자, 말해 봐. 내 눈을 똑똑히 보면서 다시 한 번 지껄여 보란 말이다.”

마침내 덥썩 멱살을 잡은 강산호는 두 눈을 부릅 떴다. 주인은 당황하더니, 이내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강산호의 손목을 툭툭, 치며 눈치를 줬다.

“이,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주인은 밖으로 그를 데리고 나가 나직하게 말했다.

“둘째 공자님, 그건 서로 밀호를 이야기하는 단계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상관없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강산호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다급했다.

“형님과 아버님이 쉬이 운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셨다.”

“뭣……!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나중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다만, 지금 적들을 기습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병력을 모아 다오.”

“……상대는? 어떤 자들입니까?”

“강서성주의 저택에 모여 있는 그놈들이다.”

“……!!”

주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둘째 공자님, 그곳에 있는 자들은 무시무시하게 강합니다. 최근에 흑도 무인들이 일천이나 덤벼들었는데도 무사히 저택을 지켜 내서 흑도 무인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일천……?”

“예. 대공자님께서 지시하셨던 대로 어제 북천맹에서 보낸 기마대와 새로 모여든 무인들을 다 보냈습니다만…….”

“결과는 참패였다?”

“예.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둘째 공자님께선……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

“…….”

“뭐지, 그 표정은?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강산호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젖어들자 객잔 주인은 재빨리 의견을 거두고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빨리 준비해라. 싸움은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시작해야 하니까.”

“옛.”

주인이 물러간 뒤, 강산호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강장호가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역시 납득할 수 없었다.

삼호방은 강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건 원수들이다.

저들의 대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수천 명이 둘러싸서 협공을 한다면 당해 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기다려라. 이 강산호 님이 삼호방을 더더욱 높은 곳으로 데려갈 테니까. 왕이라는 칭호는 그런 냉혈한보다 나에게 더 어울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의욕에 불타는 강산호는 그의 뜨거운 시선을 강서성주의 저택을 향해 보냈다.

분열된 파륵삼호와 삼호방.

중요 요인들이 모두 등을 돌린 가운데, 그 틈을 타고 강서성주의 저택에선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적룡기마대가 저택의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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