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五章 ― 적룡분노(赤龍忿怒)
지룡파(地龍派)는 본래 시장터에서 자릿세나 받아 먹고사는 파락호들의 모임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그 어떤 무파와 싸워도 자신이 있을 만큼 전력이 급상승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지룡파가 북천맹 오왕 중 한 명인 삼호방주의 밑으로 들어간 뒤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삼호방은 지룡파를 강서성을 빼앗는 전초기지로서 사용했다.
삼호방 본파에서 파견된 서른 명의 정예 무사가 항상 지룡파에 상주했고, 그밖에도 강호관직론에 혹해 찾아오는 흑도 무인들을 모두 받아들여 편의를 봐주고 식객처럼 써먹는 것이 지룡파의 역할이었다.
지룡파가 있는 뒷골목 근처의 무인들은 모두 현재 지룡파에 소속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수만 해도 현재 무려 삼백여 명을 넘어섰다.
식객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웬만한 대문파가 부럽지 않은 대단한 전력임은 틀림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어제 강서성주의 저택에서 큰일이 일어났다! 조만간 우리도 도와야 할지 몰라!”
“옛!”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 빨리 빨리 움직이라니까!”
지룡파의 존주인 이장룡은 짐을 들고 나르는 무인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태양을 보며 초조한 듯 미간을 자꾸 찌푸렸다.
“팔극회에서 오기로 한 물픔들이 도착할 때가 지났는데…… 이봐! 나가서 알아보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이장룡의 명을 받은 무인 한 명이 재빨리 몸을 날려 밖으로 뛰어갔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는 건 곧 위험성이 늘어났다는 것과도 같았다. 이장룡은 초조한 심정에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왕복했다.
“이상해, 이상한데…….”
이장룡은 거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주변 환경 변화에 예민했다. 흑도무림이 크게 변한다는 걸 미리 느끼고 한발 앞서 삼호방에 투신했기에 지금처럼 꽤나 큰 일파의 문주가 된 것 아니겠는가.
‘불안해…….’
이장룡은 서서히 해가 밝아 오는 하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크게 불안했다. 당장에라도 뭔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문주님!!”
바로 그때, 아니나 다를까,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팔극회에서 오기로 한 물품이 중간에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길목에 잔뜩 박살 난 채로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뭣……!”
이장룡의 눈꼬리가 씰룩거렸다.
“사상자는?”
“다섯입니다. 물품을 가져오던 책임자가 다 당했습니다.”
“크읏……!”
이장룡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 물품은 단순한 물품이 아니었다. 게다가 팔극회와의 관계적인 문제도 있다. 그들이 보낸 물건을 잘 받기는커녕 소속원들을 지켜 주지도 못했다면 자칫 관계가 크게 뒤틀릴 위험도 있는 것이다.
“문주님! 큰일입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위험을 고했다.
“또 무슨 일이냐!”
“정찰을 나간 지룡삼조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찾으러 보낼까요?”
“……!”
그 순간, 이장룡은 직감했다.
그가 느꼈던 불안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의문의 적은 벌써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것이다.
“모두 전투 준비를…….”
콰아아앙―!
“……!!”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하던 그 순간, 지룡파의 대문이 마치 화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산산조각난 대문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불길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퍼억!
“쿠웩!”
그때, 부서진 대문을 통해 마치 뭔가에 차인 듯한 모습의 사내가 날아와 바닥을 굴렀다.
황토색 바탕에 노란색 문양. 지룡파의 도복이다. 그는 갈비뼈가 박살 났는지 피를 울컥울컥 입으로 토해 내고 있었다.
“무, 문주……!”
“누구냐!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느냐!”
“대, 대단한 자……. 지룡삼조가 한 호흡 만에…… 쿨럭, 문주와 지룡일조가 직접 나서야…….”
“뭣, 한 호흡……? 이럴 수가! 몇 명에게 당했지?”
“한 명…… 하지만 굉장히 강한 자…….”
“한 명? 한 명이라고?!”
이장룡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으나, 이미 내장이 파열된 그 무인은 절명한 뒤였다.
“모두 싸움을 준비해라! 전투다! 명심해라! 적은 강하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적습이다! 준비해라!”
뎅― 데엥― 데엥―
지룡파에 위급함을 알리는 경보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 지룡파의 손에는 제각각 특이한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지룡파의 문주 이장룡의 무기는 대도(大刀)였다.
절세의 신검은 아니지만 새파랗게 날이 빛나는, 어딜 가도 명도(名刀) 소리는 들을 법한 칼이다.
이장룡은 그 칼을 들고 문가에 버티고 섰다.
그 주변을 지룡일조라 불리는 오십 명의 무인이 우르르 몰려와 둘러싸고, 안쪽에서 이변을 느낀 삼호방의 정예 무인 삼십 명도 각자 무기를 들고 대문 쪽으로 뛰쳐나왔다.
고오오―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활짝 열린 대문.
이제 막 해가 떠서 밝아오는 하늘 아래, 따각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장룡은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설마했는데…… 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흑도의 정보망을 통해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현재 강서성주의 저택을 차지한 의문의 기마병대.
마치 군인 같은 행태에 집단 전술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한다는 자들. 신뢰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무림십대고수의 수준에 오른 자가 간부로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이 유명했다.
어제 있은 싸움에서 처음에 압도적인 무력으로 오백 명의 포위망을 산산조각 내 버린 사내와 나중에 정문을 지키면서 단 한 명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홀로 오백 병력을 막아섰던 쌍검을 든 자.
일부 호사가들은 벌써 그들에게 무쌍귀(無雙鬼)와 수호귀(守護鬼)라는 별칭까지 붙여 주었다.
무쌍의 패력으로 포위망을 뚫었으니 무쌍귀고, 귀신 같은 검공으로 정문을 지켰으니 수호귀다.
“꿀꺽…….”
이장룡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자는 쌍검이 아니라 긴 봉 같은 것을 들고 있으니, 아마 처음에 포위망을 뚫었다는 무쌍귀일 것이다.
무쌍귀는 바로 저 날 없는 철곤으로 수십 명을 박살 냈다.
이장룡은 자신도 그렇게 박살 나는 듯한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일천 명과 싸운 게 바로 어젠데…… 그 싸움이 별것 아니었다는 뜻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삼호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장룡은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제 북천맹에서 지원한 일백의 기마병도 있었고, 모여든 흑도의 무인들 일천 명 중에는 절정의 경지에 오른 잔살겸이나 중산마웅, 함산거마 같은 만만치 않은 무인들도 있었다.
보통 일천 명이나 되는 인원과 싸움을 했으면 한동안 몸을 추스르며 내실을 다지는 법이다.
일천 명이나 덤볐는데, 아무리 승리했다고 해도 당연히 저쪽에도 사상자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바로 그 다음 날 눈앞에 나타났다.
싸움귀도 이런 싸움귀가 없다.
“대열을 정비해라! 절대로 먼저 달려들지 마!”
“예……?”
“명심해라! 절대로 섣불리 달려들면 안 된다!”
이장룡은 재빨리 수하들에게 자중하라는 명을 내렸다.
지룡파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흑도에서 구르던 것들이라 혈기왕성하여 제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해 두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몇 명쯤은 달려들고 있었을 것이다.
지룡파의 무인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지만, 장기린에게 동요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후우욱―
상대는 단 한 명이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만인을 압도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들고 있는 무인창과 마상 위의 흔들림없는 자세에서 막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따각, 따각.
장기린이 다가오자 지룡파의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물러서지 마라!”
이장룡이 외쳐 보았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장기린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가장 앞줄에 서 있던 무인들은 이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룡파. 삼호방에 소속된 흑도 일문이라던데.”
그때, 장기린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청정한 도향을 흘리는 무신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모두를 훑었다.
“네가 문주로군.”
개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번에 찾아낸다.
장기린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이장룡은 움찔하였으나, 버럭 소리를 지르듯이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지룡파의 문주다!”
“삼호방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모르는가?”
이장룡은 잠시 갈등하다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
“알고 있군.”
장기린의 눈은 거짓과 진실을 판별할 수 있다. 어설픈 이장룡의 시도는 대번에 탄로나 버렸다.
따각, 따각.
그사이에도 장기린은 더욱 가까이로 다가왔다.
이젠 선두에 선 무인과의 거리는 고작 일 장 남짓.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무인이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야앗―! 죽어랏!!”
“안 돼!!”
이장룡이 다급하게 말렸으나 이미 늦은 일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무인은 장기린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장기린은 그에 반응해 이미 움직임을 끝마치고 있었다.
꽈아앙! 푸화악!
비스듬하게 내리고 있던 손목을 가볍게 뒤집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달려들던 무인의 몸이 허공에서 박살이 났다.
후두둑.
허공에서 반으로 조각난 시신이 피와 육편을 흩뿌렸다. 뒤쪽에 서 있던 이장룡과 삼호방의 무인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의 일격만으로도 장기린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무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으으으……!”
“이야앗―!”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냉철하게 상황을 살필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까이에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없듯이, 맨 앞줄에 서 있다가 피를 본 무인들은 순간 이성을 잃고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든 채 달려들고 말았다.
“챠하앗―!”
“죽어랏!!”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제각각 공격을 가하는 모습이 제법 사납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무림십대고수의 경지조차 넘어 버린 장기린이다.
히히힝―!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성질을 부리듯 날카롭게 울음을 터뜨리고,
푸화악―!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린 무인창이 무인 세 명의 허리를 동시에 양단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허엇……!”
“말도 안 돼……!”
곳곳에서 경악과 공포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람을 통째로 박살 내는 무공이라니.
이것이 정말로 인간의 무공인가!
히히힝―!
콰직! 콰직!
장기린이 타고 있던 황갈색의 말이 신경질이 난 듯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을 발굽으로 마구 짓밟았다.
장기린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손바닥으로 그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삭풍(朔風), 네 마음은 알겠지만 진정해라. 네 주인 대신 내가 탔지만, 싸움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히히힝―!
마치 그 말에 대답하듯이 울음을 터뜨리는 갈색 말은 척 보기에도 단단한 갑주로 몸을 감싼 듯 강인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몸집은 작지만 힘으로만 따지자면 흑풍에도 견줄 수 있는 강한 말이 바로 이 삭풍이다.
본래는 막내인 진구의 말이며, 진구는 부상 때문에 싸움에 나오지 못한 추룡을 보호하기 위해 저택에 남은 상태였다.
“크읏!! 막아! 막아라! 전원 둘러싸고 공격해!”
“우와아아―!”
그 말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룡일조의 무인들이 일제히 장기린을 향해 쇄도했다.
무공을 익힌 무인들답게 가벼운 몸놀림. 연이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동시에 달려드는데, 그 모습이 제법 체계적이다.
‘덤비는 자, 모조리 죽여 주마.’
장기린은 삼호방의 사건으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흑도의 무인들은 기회가 되었을 때 모두 없애는 것이 좋다는 것을.
히히힝―!
터엉!
힘이 장사인 명마, 삭풍이 마치 수소처럼 정면으로 달려들어 무인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버렸다.
“커헉?!”
설마 말에게 공격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인이 갈비뼈가 우그러진 채 뒤로 날려갔다.
그 상태로 앞으로 도약하는 삭풍.
장기린의 무인창이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푸화하학―!
쩌정! 콰드득!
“끄아악……!”
무기가 닿으면 무기가, 사람의 육신이 닿으면 육신이 부서져서 날아갔다. 마치 창끝에 화탄을 달아 놓은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때, 장기린의 창술이 변화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천수관음을 생각나게 하는 쾌공(快功).
수십 개로 늘어난 창의 잔영이 사방에서 달려들던 무인들의 가슴을 일제히 격타했다.
푸푸푸푸푹!
“커허……?”
십여 명이 단숨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십여 명을 튕겨 내고, 그 기세를 죽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들어 더욱 사람들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우직! 우드득!
앞을 가로막던 무인 두 사람이 어깨가 박살 난 채 옆으로 튕겨났다.
서걱!
때론 날이 달려 있지 않은 창임에도 신검이기(神劍異器)보다 더욱 날카롭게 적을 베어 낼 때도 있었다.
가슴이 쩍 갈라진 채 바닥에 주저앉는 무인.
상체가 박살 난 채 흩어지는 사람.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에 있는 듯했다.
하나는 극도로 완성된 무인이고, 다른 하나는 무지막지한 괴력을 지닌 괴물이다. 때론 유려하게, 때론 과격하게 적을 말살시키는 그의 움직임은 이미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위는 어느새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가 튀는 격전임에도 함성이나 비명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장기린이 싸우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기에 덤벼드는 자들은 당연히 장기린에게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구리가 뱀에게 잡아먹히듯이.
쥐가 부엉이에게 잡아먹히듯이.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듯했다.
슥―
그리고…… 장기린이 무인창의 손잡이 부분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팔꿈치를 허리에 붙였다.
히히힝―!
말안장에 박차를 가하자 돌진하는 삭풍.
그와 동시에 찰나의 찰나를 가르며 장기린의 관(貫)의 일격이 정면의 공간을 꿰뚫었다.
쒜에에에엑―!
콰드득!!
당한 것은 세 사람이었다. 처음 가슴을 꿰뚫린 무인은 상체가 아예 터져 나갔고, 두 번째는 절반이 날아갔으며, 세 번째는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생겼다.
그나마 다들 겁을 먹는 바람에 정면에 사람이 없어서 그 정도로 그친 것이지, 만약 정면부에 사람이 더 몰려 있었다면 모조리 몰살당했을 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히히힝―!
그 상태로 장기린이 말 머리를 옆으로 돌려 다시금 관의 일격으로 돌진하자, 이번엔 네 명의 육신이 박살 난 채 터져 나갔다.
“무쌍귀……!”
이장룡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천하에 맞상대할 자가 없다.
그렇기에 무쌍(無雙)이며,
귀신처럼 강하고 잔인하기에 귀(鬼) 자가 붙었다.
“괴물…… 괴물이다……!”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이장룡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장기린과 마주 바라봤다.
“크…… 흐흐…….”
이장룡은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다 불러라! 식객으로 와 있는 무인들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내가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여기서 무쌍귀를 죽이는 자에게는 지룡파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준다!”
지룡파가 가진 재산의 절반.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의 눈에 강렬한 빛이 감돌았다.
지룡파가 비록 삼호방의 휘하에 있는 중소 문파에 불과하지만, 이득을 철저히 따지는 흑도 문파인만큼 가진 재산은 대단했다.
본래 합법적인 일보다 불법적인 일들이 더욱 이득이 큰 법 아니겠는가. 지룡파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갖게 된다면 평생을 일 안 하고 떵떵거리면서 살고도 남는다.
“재산의 절반? 진짜로?!”
“좋아! 한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아서라! 목을 따는 건 나야!”
이장룡의 외침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안쪽에서 모른 척하고 있던 오백여 명의 흑도 무인들까지도 우르르 몰려나왔다.
상대는 단 한 명이다.
아무리 강해도 모두가 달려든다면 그들 중 한 사람 정도는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목숨의 위협보다도 강했다.
지금도 장기린의 주변엔 쓰러져 있는 사람만 해도 오십 명이 넘었으나, 그에 겁을 먹고 물러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하나쯤은……!’
‘만약 성공하기만 하면……!’
모두가 자신만큼은 다를 거라 생각하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의미없는 짓을 하는군.”
장기린은 그런 이장룡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무인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미리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이장룡과 지룡파는 그동안 크고 작은 악행을 수도 없이 저질러 온 자들이다.
이들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생을 마감한 불쌍한 민초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 모인 흑도 무인들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들일 터.
스윽―
허공을 가리킨 무인창이 오른쪽으로 크게 원형을 그리자,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엇……!”
적룡기마대원 백삼십 명.
거기에 추룡과 진구를 제외한 모든 간부들이 함께하고 있는 전력이다. 그들은 곧장 대문을 통과해, 마치 해일이 덮치듯 어정쩡하게 서 있던 지룡파의 무인들을 덮쳤다.
“으아악……!”
“막아! 막아랏!”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쓰러지는 것은 오직 지룡파의 무인들뿐이다. 바로 전날 일천 명의 무인들과 혈전을 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적룡기마대원들은 여전히 강하고 조직적이었다.
수하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던 이장룡. 그 역시도 장기린이 내뻗은 창에 꿰뚫려 머리가 박살 나고 말았다.
퍼억!
넘쳐흐르는 핏물 속에서 지룡파와의 싸움은 금세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장기린은 물론, 적룡기마대원들도 모두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이것은 이제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허무하게 쓰러진 대원들 스무 명에 대한 진혼의 제(祭).
삼호방을 모조리 멸절시키기 전까지는 절대로 꺼지지 않을 거대한 복수극의 서막이었다.
☆ ☆ ☆
지룡파가 멸문당한 뒤, 강서성 회음현 구산(龜山)에 있던 혈종파(血腫派)의 현판이 박살 난 것은 단 반나절 만이었다. 그 뒤에는 진강 서북쪽에 있던 금산의 흑수파(黑手派)가 멸문당했고, 그다음엔 금릉 서남쪽 봉황대에 있던 대붕파(大鵬派)가 멸살당했다.
그 무지막지한 행보에 무림이 경악하기도 전에, 지룡파와 함께 흑도의 중소 문파들 중에서 수위를 차지하던 갈룡파(喝龍派)는 장기린과 적룡기마대의 방문을 받아야만 했다.
“문주! 이건 무리입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상대는 이미 지룡파를 말살시킨…… 크악!”
푸확!
공간이 통째로 갈라지는 듯한 섬격에 갈룡파의 문주에게 충언을 하던 수하의 몸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무인창엔 칼날조차 달려 있지 않으나, 장기린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신병이기보다도 뛰어난 위력을 선보였다.
은은한 달빛 아래, 말 위에 앉아 마치 호수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장기린의 모습은 갈룡파의 무인들 모두에게 극심한 공포를 유발시켰다.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상식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저런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할 수가 없다.
스윽―
장기린의 작은 움직임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 전부가 움찔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갈룡파의 인원도 수백을 호가했으나, 적룡기마대에 의해 거의 전멸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문주 휘하의 정예 몇 명뿐.
후우웅! 콰직!
콰드드득!
하지만 그나마도 장기린이 무인창을 몇 번 휘두르자 허무할 만큼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렸다.
“이건, 천벌…… 인가.”
갈룡파의 문주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칼을 들고 마지막으로 달려들었다.
푸화학!
장기린의 무인창이 허공을 가르자 갈룡파 문주의 가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갈룡파의 문주는 멍하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 뒤, 이미 전멸당한 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갈룡파의 전경을 보며 급격히 빛을 잃었다.
뚝, 뚝…….
장기린이 아래쪽으로 늘어뜨린 무인창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는 마지막에 갈룡파의 문주가 눈에 담았던 광경을 무심하게 응시한 뒤, 말 머리를 돌려 갈룡파를 빠져나갔다.
고작 이틀 만에 강서성에서 내로라하는 흑도 문파 다섯을 멸문시켰다.
단일 단체의 행동으로서는 그동안 무림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쾌속의 행보.
하지만 장기린에게 있어서는 과거에 있던 일의 재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일 뿐이다.
“대형.”
히히힝―
부운화가 애마 은수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옆으로 다가왔다.
“이걸로 강서성의 주요 흑도 문파는 다 처리한 셈이군요.”
“그래, 그렇군.”
“방금 삼호방의 위치가 파악되었습니다.”
“삼호방?”
장기린의 시선이 부운화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파륵삼호의 둘째 강산호가 세를 규합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하오문과 뇌안각에서 각각 위치를 찾아냈다는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우생이 전에 삼호방은 끝까지 숨어서 전력을 보전할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생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만, 우생의 말로는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강산호가 평소에도 열등감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강장호가 지배권을 쥐고 있다면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 잘됐군.”
삼호방이 흔적을 드러냈다는 것은, 목숨을 잃은 스무 명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소식일 텐데도 장기린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부운화의 안색이 드러나지 않게 어두워졌다.
장기린이 풍운객잔에 오고 나서 얼마나 밝아졌던가.
사람다운 느낌을 물씬 풍기고, 시시때때로 웃는 모습에 저게 같은 사람이 맞는지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돌아오고 있어.’
최근에 연이어 피를 본 탓일까.
장기린은 최근에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예전에 전장에 있을 때처럼 무감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아직은 청정한 도향을 흘리고 있지만…… 이런 싸움이 길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부운화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히히힝―!
장기린은 말 머리를 돌려 싸움을 끝낸 채 대기하고 있는 적룡기마대원들에게 외쳤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하러 갈까!”
천천히 갈룡파를 빠져나가는 장기린과 적룡기마대.
그들의 뒤로 붉은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