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128화 (106/686)

第百二十五章 ― 풍운지일(風雲之日)

흉안종타(凶顔鐘打) 우몽(禹朦)은 흑도에서 낭인으로 십오 년을 살았다.

단 일 년을 버티기도 힘들다는 치열한 흑도무림에서 십오 년이나 사지육신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랑할 만한 거리인지도 모른다.

배신, 하극상, 암습 같은 것이 일반적인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출난 실력이나 기술이 없다면 하루를 살아남기도 버거운 곳이 바로 흑도무림이다.

우몽도 나름 보통 사람보다 싸움 잘하고 조건이 좋아서 무림인이 되었다지만, 최연소로 낭왕이 된 주호 같은 괴물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저 먼지구덩이의 티끌과도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가 간신히 일류에도 들까 말까 한 정도의 무공으로 오랜 시간 흑도무림에서 버텨 올 수 있던 것은, 그나마 나름대로의 특별한 요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다.

둘째, 정도 이상의 욕심은 절대로 부리지 않는다.

진부해 보이긴 하지만 이 규칙을 지키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눈에 띄는 것’이 곧 잡아먹히는 지름길이다.

바꿔 말하면 절대로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비는 꽃과 비슷한 색깔로 자신을 위장하고, 벌레들은 풀이나 흙과 비슷한 색을 띠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통 흑도에 처음 들어온 무인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바로 ‘눈에 띄려고 하는 것’이다.

무림의 세계에선 명성이 높을수록 큰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초보 무림인들은 다들 자신의 능력을 좀 더 뽐내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기회만 있으면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명성을 널리 떨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행위는 언제든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가진다. 강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번이라도 지면 그 순간 명예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 목숨도 함께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몽은 자신에게 스스로 그러한 제약들을 걸었다.

유명하진 않지만 유능하게, 자존심을 세우지 않으면서 최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런 미묘한 상태를 유지하며 줄다리기를 하듯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애초에 우몽은 흑도의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꼼짝없이 농부로나 일할 운명이었으나, 길인지 흉인지, 지나가던 노인에게 무공을 한 수 얻어 배웠다. 절정은 꿈도 못꾸고, 평생 동안 수련하면 겨우 일류의 경지에나 오를까 하는 이류 무공이다.

우몽은 평범한 농민의 집안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 무공을 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마침 그 당시 주변을 횡행하던 화적 떼가 마을을 습격했다.

그는 그때 흑도 무림방파의 눈에 띄는 바람에 그쪽 세계에 소속되고 말았다.

우몽은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만약 그때 흑도 문파가 아니라 백도 문파의 눈에 띄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인생도 좀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우몽은 인상이 매우 안 좋다.

선천적으로 눈꼬리가 위로 치솟은 탓에 별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들은 그가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다.

키가 육 척이 넘는데다 덩치도 좋다.

게다가 어릴 적에 넘어지면서 이마가 길게 찢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남은 흉터 때문에 안 그래도 사나운 인상이 괴물같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우몽을 무섭게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외모가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흑도의 일을 도와줄 때뿐이다.

밀린 돈을 받아 줄 때라든지, 방파끼리의 싸움에서 선봉을 맡아서 상대에게 무서운 인상을 심어 준다든지 하는, 그런 일 말이다.

우몽은 그런 것이 싫었다.

타고난 인상 때문에 어쩌다 보니 잘못된 길로 빠졌을 뿐이지, 흑도의 일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괜히 멀쩡한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일.

물론 흑도에서도 뛰어난 자들은 고상한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사업적으로 보호비를 받고 명문정파와 대치하는 일을 행한다.

하지만 말단에 가까운 우몽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무인이라 하기도 뭐했다.

파락호보다 조금 더 깨끗한 일을 할 뿐, 근본적으로는 민초들을 쥐어짜며 뒷골목의 더러운 일을 도울 뿐이니 파락호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삶이다.

그래서 우몽은 지방 흑도 문파의 방주 호위를 맡아서 했다.

그렇게 하면 바깥에 명성을 떨칠 기회는 적어지지만, 대신에 보통 민초들을 괴롭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몽에게는 꿈이 있었다.

객잔 주인.

어릴 적부터 바라 왔던 오래된 소망이었다. 어린 시절에 떡하니 객잔을 차리고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객잔 주인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마 우몽이 사람들과 대화하기 힘든 삶을 살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몽은 흑도의 일이 지긋지긋했다.

지난 십오 년 동안 먹고 자는 것 빼고는 자린고비마냥 아껴 가며 돈을 모은 것도 오로지 객잔 주인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흑도에 몸을 담은 지 정확하게 십오년이 되는 날, 우몽은 방주에게 손을 씻겠다고 말한 뒤 안휘로 향했다.

안휘는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기회의 땅이다.

상업적으로 발달한 사천과 남경, 상해를 쭉 잇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며, 그 때문에 사람의 이동이 많다. 지가(地價)나 물가가 북경이나 남경에 비해 비싸지 않고, 오랜 시간 안휘의 터줏대감으로서 남궁세가가 치안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을 당할 염려도 없다.

북천맹의 난이 벌어졌을 때는 황산파가 크게 득세를 하여 잠시 뒤숭숭해지기도 했지만, 얼마 전 무림맹의 연합 공격에 의해 황산파는 안휘에서 쫓겨났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장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천국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우몽은 그 때문에 안휘로 왔으나, 의외로 비싼 물가에 좌절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있은 무림맹의 연합 공격의 탓이 컸다.

최근 들어 치안이 뒤숭숭해진 지역이 많으니, 황산파를 밀어내고 남궁세가가 확실히 장악한 안휘 땅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집값이 두 배로 뛰다니……!”

우몽은 절망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은 은자로 천 냥. 금자로는 오십 냥이었다. 금괴로는 한 개 반이나 되는 큰돈이지만 시세가 뛸 대로 뛴 성도 합비에서 그 돈으로 번듯한 객잔을 사는 건 무리였다.

보통 시골의 객잔은 금괴 반 개면 살 수 있다.

본래 우몽의 계획은 아무리 많아도 금괴 하나 이하의 가격에서 객잔을 구입한 뒤, 남는 돈으로 사람도 고용하고 집기들도 구매해서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안휘에 와 보니, 이제 웬만큼 장사가 되는 객잔은 최소한 금괴 세 개는 가지고 있어야 살 수 있는 시세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변두리의 객잔을 사서는 의미가 없고…….”

우몽은 자기자신을 너무나 잘 안다.

그는 사람 앞에 나설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사교성이 있다거나 장사 수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객잔을 처음 차리는 시점부터 시작하면 망할 것이 구 할 구 푼 확실했다.

그러니 반드시 지금 장사가 ‘잘되고 있는 객잔’을 구매해야 했다.

주인만 바뀌고 종업원이라든지 장사 방식은 그대로 고수해 나가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목이라도 좋은 곳을 찾아야 했다.

“크윽, 어떻게 하지? 다른 지역으로 가 봐야 하나? 아니, 이 거리에 쓸 만한 건물만 있어도 좋겠는데…….”

우몽은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서슬에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우몽의 주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쯧, 사람을 무슨 맹수로 생각하나.”

우몽은 기분이 상해서 우물거렸다.

울컥하고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움을 걸고 소란을 일으킬 필요까진 없다.

‘여기도 안 되겠어.’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는 찰나, 그는 마치 운명처럼 합비 중심로의 끝자락에 마치 덤처럼 붙어있는 작은 목조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저것도, 객잔……?”

겉으로 보기엔 전혀 객잔 같지 않다.

합비에서 좀 잘 나간다는 객잔들은 다들 최근의 화려한 풍조를 받아들여 건물에 붉은색 단칠을 하거나 새파란 기와를 올려놓는 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산속의 오래된 관제묘마냥 낡은 목조 객잔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목은 좋은데…….’

우몽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 허름한 목조 객잔은 엄연히 중심로 안에 있었다.

관문과 가깝고 끝부분이긴 하지만, 분명히 최근에 가장 발달했다는 합비의 중심부인 ‘장룡가(藏龍街)’ 안에 포함된다.

아마 처음부터 중심가에 지은 건 아닐 것이다. 삼사십 년 전쯤에 아직 중심가가 이곳까지 뻗지 않았을 때 만들어 둔 건물이 이제 중심부에 포함된 듯한 모습이다.

‘목이 좋으면 뭘 해, 건물이 저따윈데. 젠장, 보물을 썩혀도 정도가 있지, 이런 금싸라기 땅에 자리를 잡아놓고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우몽은 심사가 뒤틀렸다.

누구는 괜찮은 객잔 자리를 찾기 위해 고생을 하고 다니는데 누구는 떡하니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도 저렇게나 쓸모없이 놀려 두다니.

우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목조 건물의 정문.

낡은 현판(懸板)만큼은 제법 괜찮은 글씨였다.

“응? 풍운…… 객잔?”

이름이 뭔가 진부하면서도 특이했다.

우몽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님 한 사람 없이 한적한 객잔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쓰읍! 어서 옵쇼!!”

우몽은 입구에서 굳어져 버렸다.

지극히 낡고 초라한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전부였다. 장사가 오랫동안 안 되었는지 문지방에 먼지가 끼어 있는 게 빤히 보였다.

게다가 주인은 또 어떠한가.

야비한 입술에 염소수염을 매달고 둥그런 배를 쓰다듬으며 졸다가 벌떡 일어난 모습이, 가관도 아니었다.

‘뭐, 이런…….’

이런 꼴이면 장사를 왜 하고 있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드릴…… 히익!”

아니나 다를까, 객잔 주인은 우몽의 얼굴을 제대로 보더니,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여, 여긴 어쩐 일로…….”

“…….”

우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은 익숙했다. 이제 와서 하나하나 따지고 들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으음, 아니지. 무엇을 드릴깝쇼?”

‘음?’

“흐흐, 밥으로 하시겠수, 아니면 면으로 하시겠수?”

우몽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객잔 주인은 야비한 인상에 비해 놀랄 만큼 강한 담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담력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된다.

아예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우몽이 보기에, 마치 그의 사나운 인상을 보고 예전의 뭔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사냥감? 저건 봉잡았다는 듯한 얼굴인데…….’

우몽은 흑도에서 지내면서 저런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단번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래도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럼…… 면으로.”

“예이, 주문받았습니다!”

객잔 주인은 기분 좋게 외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 안쪽에서 뭔가 퉁탕거리더니,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객잔의 모습을 보고 익히 짐작은 했지만, 요리도 직접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집에서 먹어도 되려나…….”

본래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집에선 한참이나 지난 오래된 재료를 쓰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장사가 잘되는 집에 몰리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 것이다.

“자, 소면 나왔습니다요.”

우몽은 소면 그릇을 받아 보자마자 알았다.

이건 하품(下品)이다. 잘 봐줘야 간신히 중급에 들까말까한 정도?

가격이 매우 싸거나 급하게 배가 고프지 않는 한 웬만해선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다.

‘마치…… 나처럼.’

우몽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소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예상대로 맛이 밍밍하고 국물이 싱겁다. 고명이라고는 고작 소채 몇 조각밖에 없다.

하지만 면의 반죽만큼은 제법 잘되어 있는지 탄력이 괜찮았다.

탁.

우몽이 소면을 다 먹고 저금을 내려놓자, 객잔 구석에서 지켜보던 주인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맛은 괜찮으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흐흐, 열다섯 문 되겠습니다요.”

“…….”

우몽은 별말 없이 동전 열다섯 문을 꺼내 탁자에 올려 두었다.

열다섯 문이면 일반적인 보통 소면의 가격이다.

하지만 소면의 품질로 따져 보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인장, 말 좀 묻겠소.”

“예이, 물어보슈.”

“이 가게를 나한테 팔 생각 없소?”

객잔 주인이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굳혔다.

하지만 우몽은 봤다.

객잔 주인은 분명, 순간적으로 ‘심봤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크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는 척 능청을 떠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우몽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졌다.

“이 가게 말이오. 장사가 안 되는 것 아니오?”

“커험, 무슨 말씀이신지. 이래 봬도 보기보다 매출이 상당히 높습니다.”

“누가 봐도 망해 가는 집인데.”

“그 무슨 실례되는! 이것 보시오, 지금 우리 풍운객잔이 있는 곳이 어떤 자리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요? 안휘성 성도 합비! 그중에서도 최고 노른자 땅이라는 장룡가의 길가에 위치한 자리란 말이오!”

객잔 주인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열변을 토했다.

우몽도 그 점에 있어서만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객잔의 자리만큼은 대단히 좋았다.

“아니, 하지만 건물은 낡고 설비도 안 좋고, 그렇다고 요리 솜씨가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럼 손님이 올 리가 없잖소?”

“아니, 그게 입지가 좋다 보니 꽤나…….”

“그럴 리가 없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근처 상점에서 풍운객잔의 동향을 물어보고 왔소.”

객잔 주인의 눈썹 위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이제야 우몽이 그가 생각했던 ‘누군가’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참, 여간내기가 아니셨구만, 손님.”

“장사 쪽에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고 살았소. 척 보면 대충 건물이 언제 만들었는지 연도도 알 수 있지. 이건 삼십 년은 되지 않았소?”

우몽은 거의 검게 변해 버린 오래된 나무 기둥을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크흠, 그렇게까지는…….”

“그럼 몇 년이나 됐소?”

“……이십구 년.”

“삼십 년이구만.”

우몽은 딱 잘라 말한 뒤 가격을 정했다.

“금괴 반 개.”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그럼 얼마를 원하시오?”

“금괴 두 개 정도는…….”

“…….”

우몽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화려하게 꾸며진 삼층 누각 정도가 되어야 금괴 두 개에서 세 개의 가격이 된다.

지금 그가 절망하고 있던 것도, 장사가 잘되는 객잔의 가격이 금화 세 개였기 때문 아니던가.

“이제 보니 뒤집어씌울 속셈이었군.”

우몽의 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

눈꼬리가 위로 치솟아 오르고, 이마에 새겨진 흉터가 꿈틀거린다.

객잔 주인은 움찔하며 눈을 잠시 끔뻑거리다가 의외로 당차게 말했다.

“그, 그럼 할 수 없지. 이런 금싸라기 땅을 그 돈 받고 팔 수는 없소.”

“…….”

“살 거요, 말 거요? 알아서 하시오.”

우몽은 한참 동안 객잔 주인을 노려보았다.

진심을 담아 무공의 기까지 끌어 올려 쏘아보았다.

“으으…….”

객잔 주인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으나 그래도 이상하게 굴복하지 않고 뻣뻣한 자세를 유지했다.

희한한 일이다.

흑도무림인으로서 오랜 시간 살아온 우몽이기에, 그가 진심으로 노려봤을 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겁먹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마치 나보다 더 무서운 것을 이미 본 사람처럼…….’

원래 호랑이를 보고 놀란 사람은 늑대를 보고 잘 놀라지 않는 법이 아니던가.

우몽은 잠시 깊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엉?”

“은자 오백 냥. 어떻소?”

“……!!”

은자 오백 냥이면 금괴 하나의 사분지 삼 정도 되는 가격이다.

시골의 객잔보다는 꽤나 더 쳐준 셈이다.

하지만, 물론 장룡가에 인접해 있는 가게치고는 헐값이다.

“그, 그 가격은 여전히…….”

“이건 건물 값을 쳐줄 수가 없는 곳이오. 그리고 땅값만 생각하면 오백 냥은 꽤나 높은 편이지. 아니, 애초에 객잔을 열려면 건물을 새로 지어야겠구만. 어떻게 이런 꼴로 장사를 하려고 했는지, 그게 더 신기하오.”

“끄응…….”

“아마 이곳을 사려는 사람 중에 오백 냥 이상 준다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

“할 거요, 말 거요.”

우몽은 좀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 그래도 최소한 금괴 하나는…….”

“은자 오백 냥! 그 이상은 받을 생각도 하지 마시오.”

한참을 고민하던 객잔 주인이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소. 서류를 가져오겠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몸을 돌린다.

우몽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은자 오백 냥.

꽤 큰 지출이지만 합비의 장룡가에 가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싸게 먹힌 셈이다.

‘이제 이곳이 내 가게인가……!’

우몽은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본래 만사여의심(萬事如意心)이라고 했던가.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처음엔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느껴지던 낡은 건물이 상당한 역사를 지닌 고풍스런 객잔처럼 느껴졌다.

이제 흑도에서 암약하던 흉안종타는 없다.

객잔 주인 우 대인.

앞으로는 그 이름만을 쓰게 될 것이다.

“자, 여기에 있소!”

객잔 주인은 어느새 등에 질 수 있는 보따리를 하나 갖고 나와서는 품속에서 비단 안감에 싸인 서류를 꺼내 들었다.

“자, 이게 내 이름이고, 이게 내 호패요. 확인하시오.”

“음, 확인했소.”

“그리고 여기에 위임장을…… 이렇게…… 됐소. 이제 이름만 쓰면 완료되는 것이오.”

우몽은 꼼꼼히 서찰에 쓰여진 내용을 잘 살펴보았다.

땅의 권리며 입적 권한까지, 모든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당신 이름이 오영달이오?”

“그렇소.”

통통한 얼굴, 염소수염에 야비한 눈초리를 가진 중년 사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패를 보니 그가 오영달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럼…….”

우몽이 수결을 찍고 서명하려고 하자 갑자기 오영달이 그의 손을 퍽! 하고 쳤다.

“무슨……?”

“잔금을 치르고 서명을 하셔야지.”

“으음, 그건 관부에 제출할 때 치르는 것 아니오?”

“뭣? 그런 게 어딨소? 이거, 혹시 미리 서명해 놓고 나중에 돈 줬다고 딴소리하려는 거 아냐?”

오영달이 방방 뜨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몽은 귀찮아졌다.

어차피 서류상의 문제는 없다. 은자 오백 냥이면 정말로 괜찮은 가격이다. 이쯤에서 서둘러 마무리 짓는 것도 좋을 듯했다.

“알겠소. 마무리하지.”

우몽은 품속에서 오백 냥어치씩 나눠 놓은 주머니 중 하나를 꺼내 오영달에게 건네주었다.

오영달은 기쁨을 참는 게 역력한 얼굴로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우몽은 그 뒤에 곧바로 서찰에 수결을 찍고 서명했다. 미리 수결을 찍을 곳을 다 봐 두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 이제 이 ‘풍운객잔’은 당신 거요. 축하합니다.”

“아, 음…… 고맙소.”

어딘가 정신이 없는 얼굴로 오영달은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음…….”

우몽은 속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참느라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이젠 합법적으로 이 객잔과 토지가 그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 뒤에 남은 일들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일사천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합비 중심가를 관할하는 관청에 가서 신고하고 우몽이 소유주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확인 증서까지 받았다. 관청 직원의 일처리가 유난히 빨랐던 것도 좋은 일이었다.

오영달은 그 뒤에 곧바로 짐을 싸서 떠났다.

우몽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 며칠 더 있어도 된다고 말했으나, 가게가 팔리면 장사를 위해서라도 빨리 비워 주는 것이 예의라며 허둥지둥 떠나갔다.

‘의외로 예의가 있는 자였나?’

생긴 것은 야비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를 일이었다.

그때의 우몽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우몽의 생각이 바뀐 것은 이틀 뒤, 한창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데 드는 비용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의 일이었다.

오후의 한가한 객잔 안으로 몇몇 사내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에, 상체에는 뭔가 자신들만의 의미가 있는 자문(咨文)까지 새긴 자들이었다.

“여기 주인이 바뀌었다면서? 건물을 새로 지으려 한다던데?”

“무슨 일이시오?”

“근데 이 건물이 빚에 묶여 있다는 건 알고 있으려나?”

사내들은 우몽의 인상과 덩치를 보고 잠시 움찔했으나, 그래도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말했다.

품에서 꺼내 내미는 것은 은자 삼백 냥짜리 빚 문서였다.

그 돈을 빌린 것은 일 년 전.

이율은 삼 할이다.

우몽은 그 문서를 보자 머릿속에 번쩍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고리대……!!”

“음, 알고 있다니 말이 빠르겠구만.”

“잠깐, 잠깐. 그런 건 전 주인이 책임지는 것 아니오?”

“아니, 아니지. 사람의 명의가 아니라 이 건물의 소유자에게 빌려 줬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거든.”

“……!”

우몽은 다시 한 번 서류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빚을 진 쪽은 ‘풍운객잔의 소유주’라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합비 관청의 인장까지 찍힌 진품이다.

“그럴 리가! 관청에서 소유주를 바꿀 때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아아, 그렇겠지. 그 관청의 직원, 혹시 이렇게 머리가 벗겨지고 눈이 작은 사람 아니었나?”

“……그렇소만.”

우몽은 문득 불길함을 느꼈다.

“그 사람, 뒷돈을 받고 일을 설렁설렁 처리해 주기로 유명한 사람이야. 아마 이런 일은 일부러 이야기 안 했을걸? 괜히 이야기만 복잡해지니까.”

“……!!”

“우리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그 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서 말이지.”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는 그 말을 하며 객잔 이곳저곳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혹시 누군가 사람이 더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는 듯했다.

“아무튼 말이지, 당신도 이쪽 일에 대해 좀 아는 것 같은데.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는 알겠지?”

“그래서…… 변제해야 할 총액이 얼마요?”

“이율로 따졌을 때 이번 달 말까지 딱 육백 냥 정도?”

“…….”

으득, 하고 우몽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났다.

어떻게 고작 일 년 새에 원금의 두 배가 되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고리대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급하게 당겨 쓰고 곧바로 갚아 버리면 모를까, 가만히 놔둬 버리면 한도 끝도 없이 불어나는 괴물 같은 술수인 것이다.

야비한 눈으로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재빨리 떠나던 오영달의 얼굴이 생각난다.

설마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우몽은 지금이라도 그를 잡아 때려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 어이. 이봐, 그렇게 살기 뿜지 말라고. 그 마음은 알고 있고, 우리도 애들 풀어서 오영달이를 찾고 있으니까.”

“……그래서, 원하는 게 뭐요?”

“사실 원래대로라면 이쯤에서 행패부리고 겁 좀 줘야겠지만, 그래도 동종업에서 일한 것 같으니까 알려 주겠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육백 냥 갚아 버리고 할 일 하든지, 아니면 이 땅이나 건물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나눠 먹기 하든지.”

“그럴 수는 없소.”

우몽은 단호하게 말했다.

육백 냥이라니.

이 객잔을 사고 나서 지금 우몽이 가진 전재산이 오백 냥이다.

전재산을 털어 넣어도 그 돈을 다 갚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돈을 잃어 버리면 그때는 객잔을 재개장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럼 우리도 어쩔 수 없는데. 내일부터라도 매일 찾아와서 행패 좀 부려 볼까? 말해 두겠는데, 우리 감락파(?樂派)는 합비 뒷골목에서 가장 큰 조직이야. 아무리 형씨가 동종 업계 사람이라도 힘들걸?”

“…….”

“아, 그렇지. 다른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해.”

“그게 뭐요?”

“이자만 내는 거. 원금은 그대로 두고. 대신, 빚이 더 불지 않도록 이자만 내는 거야.”

우몽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빚을 당장 변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면 두 배, 세 배 늘어날 테니 일단 급한 불만 끄듯이 이자만 내는 것이다.

우몽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자가 얼마요?”

“은자 사십 냥.”

“뭣, 한 달에?!”

“이봐, 그 정도면 싼 거야. 지금도 은자 육백 냥인데 이대로 한 일 년 가만히 두면 이거 천이백 냥이 된다고. 그런데 은자를 한 달에 사십 냥씩만 내면, 일년이 더 지나도 그대로 육백 냥이잖아.”

“큭…….”

“그리고 만약 그 안에 전 주인을 잡게 되면 그 빚은 고스란히 다시 오영달이한테 돌아갈 테고 말이야.”

우몽은 이를 악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런 쪽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잘 알고 있었다.

오영달을 찾겠다고 말은 하지만, 이들은 실제로 굳이 그를 찾지 않아도 손해 볼 게 없다.

이미 우몽이라는 새로운 먹잇감이 그물에 걸려 펄떡거리고 있는 상황.

설령 오영달을 우연히 잡는다고 한들, 그걸 굳이 우몽에게 알려서 자유롭게 풀어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는 둘 다에게서 이자를 받는 거다.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그들은 이득을 두 배로 챙길 수 있다.

‘제대로 걸렸다. 빠져나갈 방도가 없어.’

우몽은 고민했다.

오백 냥을 강도 맞았다고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객잔을 팔아 버리고 빠져나갈까?

그게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구입한 땅과 객잔인데 불과 며칠 만에 다시 팔아 버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은 일을 천천히 처리해야 했다.

“큭, 일단…… 이자를 내겠소.”

“그게 현명한 방법이겠지.”

감락파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두 번 쳤다.

“자, 그만 돌아가자. 당신, 관청에 물어보니 이름이 우몽이라고 하던데, 보름 뒤에 다시 찾아왔을 때는 은자 사십 냥을 준비해 둬. 원래는 선불인데, 그래도 좀 여유를 주는 거야.”

“……알겠소.”

잠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서 있던 사내들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떠났다.

우몽은 쾅! 하고 근처의 탁자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그는 왜 처음으로 이런 객잔을 사고 만 건지.

“젠장……!”

합비는 남궁세가 덕분에 안전한 땅이라던데, 설령 그렇다 해도 어디든 이런 일은 있는 모양이었다.

“젠장! 젠장……!”

우몽은 몇 번이고 탁자를 후려쳤다. 탁자가 부숴지고 그의 손에서 피가 났지만, 가슴속의 울분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 ☆ ☆

“저기, 이걸로 제 빚은 탕감되는 것 맞습니까? 이거면 된 거죠?”

“아아, 그렇지. 정말 운이 좋았어. 도박빚을 졌는데 그걸 대신 뒤집어써 줄 사람이 떡하니 나타났으니.”

“흐흐, 하늘이 돕는 겁니다.”

“하늘은 무슨. 공모해서 한 사람 인생을 말아먹어 놓고 말이야.”

“다 자기 운명인 거죠.”

“당신 정말로 악질이야. 뭐, 그건 그렇고, 객잔의 새주인 말인데, 당신을 만나면 때려죽일 듯한 기세야. 가능하면 눈에 띄지 말도록 하라고.”

“안 그래도 인상이 더럽더라니…… 알겠습니다.”

“뭐, 그렇지. 그럼 가 봐. 이제 빚은 없어.”

“저기…….”

“응? 뭐야?”

“하늘도 돕고 있는데, 기왕 한 거 은자 백 냥 정도만 빌려 주시죠?”

“뭐? 하하, 나참, 당신 정말 구제불능이구만.”

“이렇게 운이 좋은 날엔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딱 검패 몇 판만…….”

“알았어. 얘기해 둘 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감락파 놈들 중 아무한테나 받아 가.”

“흐흐, 잘 생각했습니다. 한탕하면 제가 크게 술 한 번 사죠.”

“뭐, 그러든지.”

오영달이 떠나간 후, 장내엔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한 사람만이 남았다.

“후후,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뿐이야.”

사내의 웃음소리는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 ☆ ☆

우몽은 그 뒤로 방법을 찾아 헤맸지만 도저히 마땅한 수가 나지 않았다.

빚 문서는 진짜였다.

관청의 공인까지 받은 물건이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풍운객잔을 가지고 있는 한 그 빚은 갚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면 나도 오영달처럼 다른 사람한테 이 가게를 팔고…….’

팔고 나서 떠난다.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빚을 고스란히 넘겨 준 채 떠난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쾅! 하고 탁자를 내려친 우몽은 괴로워했다.

출구가 없는 동굴 속에 갇혀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기를 치다니.

그건 보통 사람의 등을 쳐서 먹고사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굳이 흑도에서 빠져나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애써 객잔 주인이 되고자 십오 년이나 돈을 모아서 이곳까지 나온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크윽…….”

우몽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처음엔 조금씩 마셨으나, 이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죽어라 마시게 되었다.

그 뒤 열흘간 그는 술에 빠져 지냈다.

출구가 없는 동굴 속.

세상이 점점 어둡게 변해 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시 원래 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것 같았다.

우몽은 절망하고 있었다.

술을 마신 지 열흘째 되는 날, 만약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다시 흑도무림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날도 술을 마시고 있던 우몽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밤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뜬 것일까.

눈이 부셨다.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무리가 너무나 밝아서, 사람들의 등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저기, 계세요?”

마치 영롱한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젊은 여인.

그것도 자세히 보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샛노란 옷이 너무나 잘 어울려 마치 날개옷을 입은 선녀 같았다.

“어…….”

우몽은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취기 때문에 지금 그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객주님?”

객주.

그렇다.

객잔의 주인이니 객주님이다.

우몽은 아직 현실감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멍하니 일어서서 대답했다.

“예?”

“왜 그래?”

대답은 동시에 나왔다.

우몽은 멍하니 그 여인의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마치 문사처럼 흰색 백창의를 입고 있는 사내였는데, 꽤나 긴 머리를 등 뒤에서 질끈 묶은 모습이 잘 어울렸다.

얼핏 보니 도사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한쪽 귀가 뭉개져 있으니 상당히 거친 삶을 살아왔을 거라고 추리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이 객잔의 주인이오?”

사내는 우몽을 향해 먼저 물었다.

올곧은 시선이다.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든 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 소.”

우몽은 힘겹게 대답했다.

그것이 첫 만남.

우몽의 인생에 불을 밝혀 준, ‘빛’과 만난 운명의 순간이었다.

☆ ☆ ☆

우몽은 본래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흑도에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남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특이했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이 절박해서였는지, 느닷없이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온 몇몇 인물들에게 자신의 모든 사정을 털어놓아 버린 것이다.

“오영달…… 설마했는데 정말로 그자였군.”

“객주님, 설마 항주에 있던 객잔의 이전 주인도 그 사람이었어요?”

“그래, 그때도 그자였지.”

항주에 있던 객잔의 주인이라는 자와 그 객잔의 침모라는 여인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았다는 그자 말씀입니까?”

“으아, 믿을 수가 없네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래요?”

우몽은 아직 술이 덜 깨 몽롱한 얼굴로 옆을 쳐다봤다.

질이 좋은 비단 무복을 입고 있는 잘생긴 청년과 다부진 몸에 앳된 얼굴을 지닌 청년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몽은 몽롱한 와중에도 지금 눈앞에 있는 네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지극히 안 어울리다고 생각했다.

“안 되겠군요. 지금 당장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오영달이라는 자를 찾아보겠습니다. 그 정도면 상습적인 범죄입니다.”

“으음, 그건 좀 지나친 것 아닐까?”

“강 형,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객주님께 그런 짓을 하고 도망친 자가 있는데 그걸 가만히 둘 겁니까?”

“……하긴 그렇네.”

두 청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뭔가를 결의한 표정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밖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감락파라니, 듣도 보도 못한 문파가 합비에서 암약하고 있었군요.”

“휴, 너도 몰랐어?”

“예. 신생 문파거나, 아니면 그만큼 꼬리를 잘 감추고 지냈나 봅니다.”

“이런이런. 이래서 집이 너무 커도 문제라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좀 더 확실히 단속을 해야겠습니다.”

우몽은 두 사람의 대화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감락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집안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크윽…….”

감락파 이야기가 나오니 또다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몽은 남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안 돼……. 역시 안 되는 놈이었어……. 나 같은 놈이 객잔 주인을 하려고 하다니, 분수에 안 맞는 일을 하려니까 하늘이 천벌을 내리시지…….”

우몽은 찡하니 치솟는 울음을 꾹 눌러참았다.

“역시 나는 흑도에 남아 있어야 했던 거야…… 이런 일은 안 맞는 거라고. 타고난 운명대로 살았어야 하는 건데…… 괜히 욕심을 부리니까 이런 꼴이…… 크윽…….”

술병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문다.

우몽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오른쪽 귀가 뭉개진 사내가 손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쾅!

“타고난 운명 따위는 없소!”

“……!!”

우몽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내의 눈은 무섭도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분노와 연민이 담겨 있었다. 어째서 화를 내는 걸까 궁금해지는 것과 동시에,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흡입력이 느껴졌다.

“잘 들으시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의지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소. 사람은…… 누구나 그런 ‘가능성’을 갖고 태어났단 말이오.”

사내는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포기하지 마시오. 당신도 충분히 꿈꾸던 삶을 살 자격이 있소.”

“…….”

“한때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은 때가 있었소. 그때는 크게 절망해 나는 이런 삶을 살 자격이 없나 보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려 하고 있소.”

우몽은 어느새 술이 깨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일갈은 그의 가슴 깊숙이 숨겨 두었던 여린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사내의 말은 별게 아닌데도 심금을 울릴까.

얼마나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큰 신념이 느껴지느냐는 말이다.

“객주님…….”

“형님…….”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 그 사내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술이 좀 깬 지금의 우몽은 알 수 있었다.

오른쪽 귀가 뭉개진 사내야말로 이 무리의 중심이다. 그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있었다.

‘부럽다.’

우몽은 처음으로 그 사내가 부러워졌다.

결코 선하고 평범한 인상이 아닌데도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러고 보니, 화상이…….’

우몽의 눈빛이 흔들렸다.

술이 깨고 나니 보인다.

사내가 입고 있는 품 넓은 백창의 사이로 기묘한 화상 흉터가 새겨진 팔과 가슴팍이 보였던 것이다.

‘양팔과 어깨, 가슴을 다 태웠어. 세상에, 저런 화상을 입고도 살 수가 있나……?’

놀랍게도 멀쩡한 부분은 얼굴과 목 부분밖에 없었다.

우몽은 가슴이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그에게는 깊고 처절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분명 절망하고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람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의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다.

“감락파라고 했나? 내가 처리해 주겠소.”

그 순간, 번뜩이는 눈빛에 우몽은 오금이 저려서 손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살기도 아니고 투기도 아닌데, 기이하게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묘한 위압감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사내가 말하자, 주변의 모두가 펄쩍 뛰었다.

“객주님! 안 돼요!”

아름다운 여인이 가장 먼저 말렸고,

“안 됩니다, 객주님. 신의께서 최소한 반년간은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정양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 맞아요, 형님! 그리고 이건 형님이 나설 필요도 없다구요. 그깟 송사리들 때문에 뭘 나서려고 하세요?”

비단 무복을 입은 잘생긴 청년과 앳된 얼굴을 가진 청년도 모두 강하게 반대의 뜻을 표했다.

한편, 우몽은 머릿속이 멍해지고 말았다.

처음엔 흑도 문파를 상대하는 게 위험해서 말리는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겨우 그깟 일로 나서면 안 된다고 말리는 게 아닌가.

우몽은 더듬더듬 다시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감락파는…… 합비 암흑가에서 제일가는 문파라고 했소. 내가 본 사내들도 보통내기들이 아니었고. 절대로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단 말이오.”

그만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으나, 오른쪽 귀가 뭉개진 사내는 우몽의 그 말을 듣자 오히려 반색하며 말했다.

“이거 봐,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잖아. 괜히 복잡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객주님!!”

여인의 목소리가 강한 힘을 담아 흘러나왔다.

“절.대.로. 안 돼요. 아시겠죠?”

“…….”

“아시겠죠?”

우몽은 처음으로 여인의 웃는 얼굴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내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혀서 우물거린다.

그사이, 아름다운 여인은 비단 무복을 입은 잘생긴 청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객주님, 여긴 우리가 나설 곳이 아니라구요. 일을 더 잘 처리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세요?”

“으음, 하지만 여기는 풍운객잔이고…….”

“객주님은 환자예요. 아시겠어요? 함부로 나서는 건 절대로 용서 못해요.”

다시 한 번 방긋 웃는 얼굴.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오른쪽 귀가 뭉개진 사내는 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직접 나서지 않을게.”

“잘하셨어요.”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형님, 잘하셨어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도와야 돼. 이런 꼴을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객주님,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집안이 안휘성에서는 제법 힘이 있지 않습니까?”

“으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들을 모조리 끝내 버리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선이 다시 우몽에게로 향하자 우몽은 멍하니 그 네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왠지 이들이라면 그의 인생을 좌우했던 큰 문제도 어려움없이 해결할 것 같았다.

“그 말은…… 나를 도와주겠다는 뜻이오?”

“그렇소.”

“어째서? 생판 처음 보는 남을……?”

우몽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엔 풍운객잔이라는 이름만 보고 들어온 것이었지만…….”

사내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본다.

“대화를 나눠 보니 나와 당신은 닮은 점이 많소. 그러니 ‘평범한 삶’을 위해 당신을 돕는 것이오.”

“그게 무슨…….”

“당신 같은 사람은 꼭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하오. 내가 그렇게 만들겠소.”

우몽이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비단 무복을 입은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하하, 객주님께선 어렵게 말씀하셨지만,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합리하게 피해를 입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도와 드리지요.”

“그, 그게…….”

“걱정 마십시오. 보름이 되는 날이 내일이라고 하셨나요? 그럼 내일 알게 되실 겁니다. 앞으로는 객잔을 잘 꾸며서 번창해 주십시오.”

청년의 자신만만하면서도 부드러운 웃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사업 잘하세요―!”

“술은 좀 줄이시구요!”

네 사람은 각자 한마디씩 덕담을 남기며 떠나갔다. 한쪽 귀가 뭉개진 사내는 우몽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는데, 마치 위로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으음…….”

우몽은 앞에 놓인 술병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내려놓았다.

“술은…… 못 마시겠군.”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왠지 더 이상 술을 마셔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몽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하루였다.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잘 모르겠다.

“이름도 못 물어보다니…….”

다음에는 꼭 이름을 물어보자.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전해서 객잔을 잘 키워 보자.

“그래. 그깟 은자 육백 냥이 다 뭐냐. 해 보자, 해 보자고!”

용기를 얻은 우몽은 큰 소리로 외쳤다.

빚이 남아 있든 없든, 이 결의에는 변함이 없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사내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화상을 온몸에 입었으면서도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으랏차!”

우몽은 다시 한 번 해 보자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우몽이 감락파의 멸문 소식을 들은 것은 비단 무복의 청년이 말한 대로 바로 그다음 날,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은자 사십 냥을 준비하고 있던 우몽은 뜻밖에도 합비 관청에서 나왔다는 관리를 손님으로 맞았다. 하급관료는 아니고, 꽤나 직책이 있어 보이는 중간 관리쯤 되는 사람이었다.

“감락파가…… 멸문했다고요?”

우몽은 한참이나 멍하게 서 있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음, 모르시는 겁니까? 풍운객잔의 주인에게 탄원을 듣고 감락파를 멸문시켰다고 하던데요? 저는 그에 대해 상세히 답변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누가 그런 말을……?”

“이런이런, 정말로 모르시나 보군요.”

관리는 잠시 우몽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어제 말입니다, 남궁세가의 후계자께서 갑자기 관청에 들이닥치셔서 얼마나 채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거기다가 고작 반나절 만에 남궁세가의 정예인 뇌공대와 창천대가 전원 집결해서 관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

“그로 인해 감락파는 물론이고, 합비 암흑가에 있던 세력들이 모조리 박살 났습니다. 감락파는 놀랍게도 지하에 큰 도박장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검거되었습니다.”

“그, 호, 혹시 오영달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아, 그 사람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감락파의 주요 간부와 함께 도박장에서 잡혔습니다. 남궁 소가주의 증언으로 뭔가 큰 벌을 받을 것 같더군요.”

“……!!”

“남궁세가 소가주께서는 앞으로 합비에서 패를 지어 민초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모두 처벌하겠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합비도 좀 더 살기 좋아지겠지요.”

관리의 자랑스러운 말투에서 남궁 소가주에 대한 경탄이 엿보였다.

“그…… 남궁 소가주께선…… 어떻게 생기셨습니까?”

“비단 무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헌앙한 청년이셨습니다.”

“아……!”

“역시, 아시는 분입니까?”

우몽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뒤에 있던 잘생긴 청년이 남궁세가의 소가주였다니.

‘대단한 사람이었어! 아니, 잠깐. 그럼 그 소가주가 객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쩔쩔매던 사람은 대체 누구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객주님이라 부른다면 객잔의 주인이라는 건데…… 언제부터 객잔의 주인이 남궁 소가주를 아우로 부릴 수 있는 자리가 된 것일까?

‘아,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그, 그분들은?”

“예?”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남궁 소가주의 일행분들이라면…… 바쁜 일이 있으시다고 서문으로 가셨습니다만.”

“……!!”

우몽은 관리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뛸 일은 별로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우몽은 서문 앞의 사람들을 쭉 살펴본 뒤,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성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서문 앞에서 마차에 막 탑승하고 있는 남궁세가 소가주와 그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아……!!”

우몽은 그들을 부르려고 했으나 이름을 알지 못하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짧은 틈에 그들은 마차에 타 버렸다.

다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몽은 안절부절못하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풍운객잔,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따가운 시선을 보내도 개의치 않았다.

“크흑…….”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간 참아 왔던 고생이 모조리 해결되어 버린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우몽은 땅바닥에 엎드려 마차가 떠난 방향으로 절을 올렸다.

그는 오늘 새로 태어났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았다.

“아자―!”

우몽의 외침은 합비 서문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