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129화 (1부 완결) (107/686)

終章 ― 풍운일상(風雲日常)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응? 뭘 말하는 건가?”

“호북과 안휘 사이의 이름없는 산에 누가 객잔을 지었다는구만.”

“뭣? 그 산적떼가 우글우글한 곳에? 거기, 무슨 녹림의 대단한 고수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황실에서 광살부마를 토벌한 뒤에 몇 명 안 남은 간부 중 한 사람이라고 했어.”

“허어, 누군지 몰라도 제정신이 아니구만. 큰 표국의 표행도 털리기 일쑤라던데 거기에 아예 객잔을 짓는다는 게 말이나 돼?”

“팔부능선쯤인가 봐. 산을 넘어다니는 상인들이 분명히 객잔을 봤다더군.”

“미쳤어. 만약 진짜라면 아마 한 달도 못 버틸 걸세.”

“그게 말이지, 사실은 벌써 석 달이나 되어 간다는군.”

“서, 석 달이나?”

“그리고 이건 이상한 일인데, 그 객잔이 지어진 뒤로 산적들을 만났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왜, 예전엔 사흘에 한 번씩 거지꼴이 된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왔지 않았나?”

“그, 그랬지.”

“근데 최근 몇 달간은 그게 뚝 끊겼어. 산적들을 봤다는 사람도 없고.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꼭 누가 그 산적들을 해치우고 객잔을 차린 것 같아.”

“허어,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산적들을 해치울 정도의 무공이 있으면 왜 객잔을 차리나? 어디서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아니겠지?”

“그럼! 우연히 어떤 협객님이 산적들을 해치워 줬겠지. 그 객잔 주인, 참 운이 좋구만.”

“허허, 그 말이 맞군. 운이 참 좋은 모양이야. 거기다가 말일세, 음식 맛이 기가 막히다는군. 거기 소면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더구만.”

“으음, 그게 정말인가?”

“게다가 한 그릇에 고작 동전 열 냥.”

“싸다!!”

“소면의 양도 건장한 사내가 배부르게 느낄 만큼 푸짐하다더군.”

“가, 가고 싶어지는구만.”

“그렇지? 가고 싶어지지? 그래서 나도 오늘 한 번 가 볼 생각이네. 일부러 그거 때문에 가게 문도 닫고 왔어.”

“나, 나도 같이 가겠네.”

“응? 가게는 어쩌고?”

“에잇, 어차피 파리만 날리는 가게인데 뭘 새삼스럽게. 산적놈들 때문에 못 가 보던 언덕에도 올라가 보고, 맛있는 소면도 먹어 봐야지.”

“허허, 그럼 그러게. 함께 가세나.”

“그나저나 오래 살고 볼 일이구만. 그런 곳이 생기다니. 아참, 그 객잔의 이름이 뭐라고?”

“아,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 객잔의 이름은 말이지…… 뭐였더라? 그, 풍…… 풍…….”

“어? 뭐라고?”

“아, 생각났네. 풍운객잔(風雲客棧). 풍운객잔이라고 하더군.”

☆ ☆ ☆

남궁휴는 안휘와 호북의 경계선쯤에 있는 언덕에서, 대죽(大竹)으로 벽을 만든 목조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판에 풍운객잔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는 건물.

대나무 잎처럼 푸른색의 지붕이 건물의 외관과 잘 어울렸다.

항주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담한 크기지만, 고풍스러움과 깔끔함이 더욱 강해진 객잔이었다.

항주의 유명한 목장(木匠)인 임가(林家)의 사람들이 먼 길을 달려와서 만들어 준 건물이다.

건물이 완공되던 순간을 함께했던 남궁휴는, 저 건물이 백 년이 지나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고 보면 객주님의 인덕은 참 대단하단 말이지.’

남궁휴는 빙긋 웃었다.

저 객잔은 사실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원래 이 산을 지배하고 있던 흉살대도(凶殺大刀)와 수백의 산적들은 적룡기마대에 의해 하룻밤 만에 토벌되었다.

이 근방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남궁세가다.

뇌공대와 창천대가 직접 주기적으로 이 근방을 탐색하며 불온한 무리들을 색출하여 제거한다.

도심에서 꽤나 떨어진 객잔까지 장사 재료를 가져다주는 것은 최근에 상계(商界)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부(巨富) 왕분이다.

이곳까지 물건을 보내는 운송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왕분은 장기린에게는 원가밖에 안 되는 돈을 받고 식재료나 필요한 물품 등을 배달해 준다.

예전에 목숨의 은혜를 받은 것을 아직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오셨군요.”

“아, 부 형.”

남궁휴는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부운화.

적룡기마대의 둘째이자 최근에 무당파의 숨겨진 신검(神劍)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남궁 소협도 안면이 있으셨겠군요.”

부운화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하하, 친동생처럼 귀엽게 생각하던 녀석들이니까요. 무당파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외출을 허가받는 나이가 되었다니, 놀랍습니다.”

“무당에선 지금의 이대 제자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아이들이라고 평합니다. 조금 과할 정도로 무공에 집착하는 면이 있습니다만, 그것만 빼면 성격도 쾌활하여서 장로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 녀석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죠.”

남궁휴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나저나 장사가 잘되는군요.”

“예. 최근엔 입소문도 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다가 명소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아쉽군요. 되도록 처음의 한적한 풍경을 유지했으면 싶습니다만.”

객잔을 응시하는 부운화의 눈빛이 아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부 형은 최근에 군부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돌아간 것까지는 아닙니다. 여전히 무당파에 적을 두고, 가끔 조언을 하는 위치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황실 직속의 권위가 있는 직책이라고 들었습니다. 부 형이 황실에 계시니…… 이거, 더욱더 황실에 밉보이면 안 되겠습니다.”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남궁세가의 정보망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군요.”

“뛰어난 동생이 뇌안각주 자리를 꿰차서 말이죠.”

“아…….”

“그런데, 언제 데리러 오실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부운화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저는 말입니다, 아끼는 동생이 이미 임자가 있는 객주님을 사모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만, 최근에 객주님 못지않게 멋진 사내를 발견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있습니다.”

“…….”

“무당파라면 혈연으로 엮인다 한들 세가의 중신들도 불만이 없을 겁니다.”

“그건…….”

“아아, 부 형. 너무 앞서 갔다고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 예전에 못난 모습을 보이면서 챙겨 주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오라비 역할을 좀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으음…….”

“이제 혼기가 꽉 찬 나이라서 말입니다. 최근에 밤에 자주 만나는 것 같던데…….”

“커험! 크흠! 그보다 남궁 소협,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부운화는 눈에 빤히 보이게 화제를 전환했다.

남궁휴는 빙긋 웃으며 그 행동에 순순히 따라 주었다. 최근엔 장기린이 부운화를 놀려 먹는 이유를 서서히 깨달아 가는 남궁휴였다.

부운화는 뭐든지 해내는 만능인이지만, 이런 면에선 솔직하지 못했다.

억지로 해선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조금씩 몰아가다 보면 언젠가 함락될 것이다.

“남궁 소협은 한 달 만에 온 것입니까?”

“예. 다른 일로 바쁘다 보니…… 객주님께는 죄송하게도 한 달에 한 번씩밖에 시간을 못 내고 있습니다.”

“세가의 후계자로서 한 달에 한 번이나 시간을 내는 것도 대단하다 싶습니다만.”

“으음, 그래도 저는 모든 걸 다 버리고 객잔에 돌아간 강 형이 부럽습니다.”

남궁휴는 부끄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장기린은 한 달에 한 번조차 안 와도 되니 할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남궁휴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곳에 와야만 했다.

후계자로서 받는 압박감이 워낙 크다 보니 풍운객잔이야말로 그에게 단 하나뿐인 마음의 안식처였다.

“한 달 만에 오셨으니 모르고 있겠습니다.”

“예?”

“풍운객잔 옆에 다루(茶樓)가 하나 생길 것 같습니다.”

“다루…… 라니요?”

“이름은 낭화다루가 될 것 같습니다.”

“큽?!”

남궁휴는 목이 메여 눈을 부릅 떴다.

만약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그대로 뿜었을 것이다.

“그, 그건 설마……?”

“철우, 아니, 가면철왕이라 해야겠습니다. 가면철왕이 청월루에서 철수하는 것과 동시에 기적(妓籍)에서 빠졌다고 하더군요. 최근엔 아예 풍운객잔에서 기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기, 침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십니까?”

“…….”

“거기서 침묵하시면 오히려 무섭습니다만?”

부운화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엔 더욱 노골적이 되어서 말입니다. 대형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나서서 객잔의 일도 돕고…… 그것 때문에 손님들 중엔 낭화 소저와 대형이 부부인 줄 아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큽……?!”

“너무 노골적이니 오히려 형수님은 기가 찬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엔 어느 정도 낭화 소저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도…….”

“아니, 아니. 그럴 리가…….”

남궁휴는 식은땀을 흘렸다.

여인네들의 전쟁은 본래 피가 튀는 사내들의 전쟁보다 더 지독한 법이다.

당차고 활발한 진휘연과 차분하고 능숙한 낭화의 싸움이라니.

“저 안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졌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남궁휴에게 부운화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그래서 들어갔다 도로 나왔습니다.”

“…….”

“자, 같이 들어가시죠.”

“어, 어째서? 피해를 늘리려고 하시는 겁니까?”

“혼자 당하기 싫다는 것으로 해 두죠.”

“으, 으아아―!”

남궁휴는 항주에서 열화남으로 지내던 시절 이후, 처음으로 경박하게 비명을 질렀다.

평범한 삶이란 의외로 어렵다.

일평생을 함께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 가족을 만들고, 평생 굶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벌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과해서는 또 안 된다.

재물이나 권력은 불행을 이끌어 온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싸움의 나날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듯한 시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강한 의지만 있다면, 하늘이 정한 운명조차 뛰어넘을 수 있다.

그게…… 사람이다.

장기린은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깨끗한 행주로 탁자를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온다.

익숙한 인상이지만 키가 훤칠하게 크다.

귀엽게 동글동글했던 얼굴은 어느새 갸름한 선을 가진 미남이 되어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도복, 허리에 차고 있는 송문고검.

눈빛도 많이 차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장기린을 보자 두 사람의 얼굴은 울상이 된다.

세월을 뛰어넘듯,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울먹거리는 얼굴로 입을 뗀다.

장기린은 한 발 앞서서 말했다.

웃는 얼굴로.

환영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풍운객잔에 잘 오셨습니다.”

<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