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3화 (132/686)

1권 3화

제1장. 기옥(祁鈺)(3)

“이게 무슨 짓이냐!”

“정의의 꿀밤이야.”

“가, 감히 날 때리다니! 어머님도 날 단 한 번도 때린 적이 없거늘!”

“응? 너 처음 맞아 보는 거야?”

이번엔 소호가 놀랐다.

“이럴 수가! 말로만 들었었는데. 그런 집이 정말로 있었어?”

소호는 믿기지 않았다. 이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는 꼬마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니.

“우우……!”

꼬마는 한껏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잔뜩 뿔이 났다.

“어른스러운 주해도 가끔 혼나는데. 그럼 너희 아버지는? 아버지도 안 때리셨어?”

“감히 아버님을 입에 올리다니!”

꼬마는 아까보다 훨씬 더 뿔이 난 채, 한껏 화를 억누른 채 이번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건방진 놈. 무례하다!”

“야. 무례하다니. 우리 엄마가 그랬어. 버릇없는 아이는 혼나야 한대. 그래야 나중에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하셨어.”

“내가 버릇이 없다고……?”

꼬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너는 감히! 이익! 감히, 지금 날 모욕한 것이냐!”

‘감히’라는 말은 꼬마의 습관인 듯했다.

마치 갓 잡은 붕어 같은 꼬마였다. 별일 아닌 일에도 펄떡펄떡 뛰면서 덤벼왔다.

“벌레 같은 놈! 내 너를 가만 두지 않겠다!”

“응? 가만히 있어! 야야, 가만히 있으라니까. 우왁! 야! 이게 정말!”

딱!

“으아악! 또, 또 때리다니!”

“너 정말! 계속 덤비면 몇 번이든 때릴 거야!”

“가만 안 둬어어어!”

아무리 사나워도 꼬마는 꼬마다.

걷어차는 발은 똑같이 다리로 막고 휘두르는 주먹은 한 손으로 제압한 뒤, 까불 때마다 정의의 꿀밤을 먹여 주었다.

반격이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러나 꼬마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캬악!”

“으갹? 야! 이게!”

짐승처럼 깨물기까지 하니 소호도 이젠 완전히 불타올랐다.

사생결단을 낼 기세로 덤벼 오기에 소호도 지지 않고 맞서 주었다.

올해 십이 세.

이래 뵈어도 은자촌 십삼 세 이하 소년들 중에는 가장 강한 소호였다.

“우으으!”

꼬마는 꿀밤을 열 대쯤 얻어맞자 그제야 기가 좀 죽는 것처럼 보였다. 반질반질한 이마 한구석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숨은 씩씩거리고 두 눈엔 분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이익!”

다시 한번 다리가 올라온다.

“어쭈!”

아직 포기 안 했나 싶어서 주먹을 들어 올리니 올라오던 다리가 스르륵 내려갔다.

“계속할 거야?”

“으으……!”

싸움은 원래 지는 쪽이 인정을 해야 끝나는 법이다.

꼬마는 잡혀 있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원망을 한가득 담아 노려보더니…… 끝내 울어 버렸다.

“우아아아앙!”

이번엔 천하의 소호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요하게 덤빌 땐 언제고 갑자기 맥없이 우는 게 아닌가.

“어어? 우는 거야?”

“우아아앙!”

꼬마는 말 그대로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너 정말 어린애구나?”

소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심해하는 기색이 꼬마에게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바보야! 남자는 진 건 졌다고 인정하는 거야. 좀 싸웠다고 싸움에 졌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함부로 우는 게 아니라고.”

“우아앙! 난, 너한테 안 졌어!”

“뚝 그쳐. 뚝!”

중간에 히끅거리며 눈물, 콧물 다 마시는 모습은 영락없는 꼬마였다.

처음엔 그렇게나 독살스럽게 굴더니 알고 보니 겉보기보다 더 어린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기처럼 소리 내 우는 꼬마를 보니 소호는 들끓었던 화가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으음, 잠깐만. 기다려 봐.”

소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연노랑 빛 주머니를 꺼내 들고 잠시 고민하다 꼬마에게 열어 보였다.

“자.”

“우우.”

“자. 이거 봐. 색깔 되게 예쁘지? 이게 뭔지 알아?”

“우우?”

“이게 바로. 사과로 만든 당과야. 그것도 운찬 삼촌이 직접 만든 몇 안 되는 특상품이라고!”

꼬마는 훌쩍거리면서도 빨간 당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당과 따위 질리도록 먹었어.”

“얘가 뭘 모르네. 너 운찬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그래 봤자 우리 집에 있던 숙수보다는 못하겠지.”

“후후훗.”

소호는 턱 끝을 쳐들며 거만하게 웃었다.

“운찬 삼촌과 비교하면 마을 밖의 숙수들 따위 발끝에도 못 미친다구.”

“그, 그럴 리가!”

“진짜야! 운찬 삼촌이 당당하게 이야기했었어! 씹힐 때까지 재료가 살아있는 요리는 삼촌밖에 못 만든대!”

“씹힐 때까지 재료가 살아 있는 요리?”

꼬마는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못 믿겠어? 그럼 일단 한입 먹어 봐. 먹어 보면 깜짝 놀랄 테니까.”

“흥.”

꼬마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당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뭐야?”

소호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한입만이야.”

“하! 어차피 평범한 당과겠지.”

“후훗. 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소호는 당과를 손에 쥔 채로 내밀었고, 꼬마는 까칠한 얼굴로 한입을 베어 물었다.

와삭.

꼬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잠시 깜짝 놀라던 얼굴이 이내 황홀한 듯 멍해진다. 눈에서 초점이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맛을 음미했다.

“이럴 수가…… 맛있어!”

꼬마는 눈을 번쩍 뜨고 남은 당과를 응시했다.

“더 줘!”

“맛있지? 어때? 네가 지금껏 먹던 거랑은 완전 다르지?”

“엄청나! 내가 지금까지 먹은 것들은 쓰레기였어!”

“후후훗!”

소호는 뿌듯한 얼굴로 웃은 뒤 당과를 뒤로 숨겼다.

“너 이름이 뭐야?”

“뭐?”

“이름.”

꼬마는 인상을 팍 찌푸렸지만, 슬쩍슬쩍 보이는 당과로부터 눈을 못 떼다가 결국 대답했다.

“기옥…….”

“기옥?”

“그래. 기옥! 내 이름은 기옥이야. 됐어?”

“좋아, 기옥아. 그럼 이제 형이라고 불러.”

기옥의 눈이 다시 한번 동그래졌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그럼 이 당과 줄게. 앞으로도 내가 가지는 건 모두 나눠 줄게. 매일 같이 즐겁게 놀자. 어때?”

“…….”

기옥은 꼬마답지 않게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아무한테나 형이라 안 불러.”

“내가 아무나가 아니면 되지.”

“으음.”

“당과 먹기 싫어?”

소호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당과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잠까아안!”

“어? 왜? 형이라 부르고 싶어졌어?”

“으으으으…….”

음식의 힘은 위대했다.

며칠 동안 굶다시피 하며 안 먹던 기옥은 당과의 달콤함과 향긋함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형.”

“응? 잘 안 들렸어.”

“형! 형이라고! 당과 줘! 내놔!”

기옥은 빨개진 얼굴로 달려들어서 소호의 손에서 당과를 빼앗으려 했다.

“야, 잠시만! 야!”

“내놔아아!”

“줄게! 준다니까!”

두 사람은 툭탁거리며 뒤엉키다가 결국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기옥은 그 와중에도 당과를 두 손으로 붙잡고 사수해 냈다.

마치 도토리를 붙잡은 다람쥐 같았다.

“히힛. 맛있어?”

기옥은 대답도 안 하고 당과를 와삭와삭 씹어 먹는 데 정신이 없었다.

“내 이름은 소호야. 은자촌의 장소호.”

소호는 품 안에서 이번엔 복숭아로 만든 당과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기옥에게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그건?”

“이건 복숭아 당과. 사과보다 껍질이 얇아서 껍데기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사르르 녹듯이 부서져. 속은 어엄청! 달아! 난 너무 달아서 먹기가 힘들 정도더라.”

기옥이 냉큼 손을 내민다. 소호가 고개를 저으니 곧바로 입이 열렸다.

“소호 형!”

“좋아! 기옥아. 이것도 너 먹어.”

기옥은 복숭아 당과를 한입 베어 물더니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눈이 커졌다.

두 가지 당과를 각각 한 손씩 붙잡고 베어 먹는 기옥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반가워 기옥아.”

소호는 씩 웃었다. 왠지 기옥과는 오랫동안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신을 잃었던 배진화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급하게 눈을 떴다.

눈을 뜨기는 했지만 사고는 몸을 따라가지 못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기력하게 축 늘어지고 있었다.

그는 당장 기억나는 것부터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자객.

호위.

거대한 흑곰.

그리고 끝내지 못한 임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안 끝났으니 좀 더 누워 있으시오.”

벌떡 몸을 일으키려던 배진화는 단호한 목소리로 제지당했다.

“당신은……!”

햇볕에 잘 그을린 몸을 지닌 사내를 보자 배진화는 정신을 읽기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간절히 찾던 ‘풍운객잔’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는 아직 임무 수행 도중이었다.

배진화는 머릿속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혼란이 가라앉으니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조 건물에 큰 대나무를 잘라서 장식한 벽면.

침상과 서탁, 그리고 다섯 단짜리 서랍장이 있는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방 안이었다.

방 안에 있는 것은 두 사람이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복부를 바늘과 실로 꿰매고 있었다.

“허억!”

배진화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동안 자신이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아 왔다고 자부하였건만,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배가 꿰매지고 있음을 자각하자 그는 헛바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쇼. 잘 꿰매지고 있수다.”

“아니, 그게, 저기……!”

“앗차! 간격이 틀렸네. 잠깐만. 말하면 집중하기 힘들어서.”

배진화는 모든 것이 불안해졌다.

“어헛! 배에서 힘 빼시오. 바늘이 잘 안 들어가잖습니까.”

“으음…….”

“배 속에 부러진 바늘을 넣은 채 살고 싶소?”

배진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믿는 것 외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몸에 힘을 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던가. 천만다행으로 사내는 바느질이 능숙했다.

“왜 배를 꿰매는데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오?”

“그야 물론 마비산(痲痹散)을 써서 그렇소.”

“마비산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마비산이란 건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귀한 약이었다. 게다가 사람의 감각을 속이는 약 중에는 함부로 쓰면 치명적인 것들이 많다.

“혹시 양귀비를……?”

“아아, 귀비산은 아니요. 그건 머리를 마비시키는 거라 중독성이 있잖소. 다행히 우리 동네에는 피부만 마비시킬 수 있는 풀들이 꽤 많아서 쓰는 건데……. 혹시 불만이 있더라도 참으시오. 그쪽 몸이 너무 쇠약해져 있어서 마비산을 쓰지 않고 상처를 치료했다가는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으음.”

그러고 보니 금방 풀을 으깬 듯 신선한 풀냄새가 났다.

양귀비는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목이 말라도 조금만 참아 주쇼. 거의 끝나갑니다.”

“……고맙소. 난 꼼짝없이 죽는 거라고만 생각했소.”

“다행히 요혈은 피하셨소. 아마 잘 먹기만 하면 한 달 안에 완치될 수 있을 게요. 그런데 마비산은 동창의 필수품 아니오? 황실 안에서는 많이 쓰는 걸로 알고 있소만.”

“아, 동창은 그렇지만 우린…….”

무심코 대답하려던 배진화는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씩 웃는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동창은 아닌가 보오. 그럼 보자…… 성격이랑 몸을 보니 전쟁 출신이나 팔기군은 아닌 것 같고. 그럼 금의위밖에 없군. 하긴, 그럼 마비산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네. 요즘 황실은 꽤 조용하지 않소? 선덕제께서 즉위하실 때만 해도 시끄러웠었는데. 아아, 세월 참 빠릅디다. 그게 벌써 십 년이나 됐소.”

“……!”

“사람들이 홍희제와 선덕제를 가리켜 태평성대를 연 인선의치(仁宣之治)라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역시 황실은 황실인 모양이오. 금의위 황실호위대(皇室護衛隊)가 하남의 촌구석까지 쫓겨 오고.”

배진화는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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