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8화
제2장. 대미미(3)
두 사람이 담을 넘는 것까지 확인한 뒤, 견검이대는 곧바로 좀 더 산을 타고 오르다가 특이한 흔적을 발견하였다.
“나무를 베던 흔적이군.”
“굉장히 큰 도끼입니다. 날 부분이 거의 사람 몸통만 한 것 같은데…… 한 사람이 쓰던 걸까요?”
“발자국으로 봐서는 한 명이다. 도끼는 정말 대단하군. 나무꾼이 덩치가 아주 큰 모양이야.”
도종환은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훑어보다 뭔가를 발견했다.
“여기서 발자국이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지? 그리고 이 조그만 발자국들은 또 뭐야. 어린아이들인가?”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린 거한의 발자국.
그리고 그 옆에는 비교적 최근에 새겨진 듯한 어린아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둘…… 아니 셋. 셋이 저 위로 올라간 건가?”
도종환이 미간을 좁혔다.
“근데 뭐야 이건?”
어린아이들의 발자국이 이어지던 방향에 자작나무 한 그루가 뿌리 채 뽑혀서 옆으로 누워 있었다.
아직 자란 지 얼마 안 된 듯 어린아이 허리만 한 굵기였지만, 그 정도만 돼도 뿌리는 깊고 단단해서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뽑기 힘들다.
게다가 그 밑에는 자그마한 발자국이 깊게 박혀 있었다.
아까 어린아이들이라 생각했던 발자국 중 하나였다.
“어린아이가 이 나무를 뽑았다고? 이게 말이 되나.”
“대주. 저는 작년에 임무를 받고 강호에 파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일부러 성장을 안 하고 어린아이처럼 변장하는 살수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말을 한 자는 삼검이었다.
“살수? 그럼 이곳에 살수들이 산다는 말인가?”
“살수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발모양만으로 어린아이라 확신하기엔 위험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군. 참고하지.”
도종환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평범한 나무꾼인 줄 알았는데 거대한 도끼를 쓰는 괴한이고, 어린아이인줄 알았던 발자국 중에는 나무를 맨손으로 뽑는 괴물이 있다.
배진화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대주. 여기 웬 구덩이가……!”
“구덩이?”
이검의 보고에 따라가 보니 사람이 누워도 될 만큼 깊은 구덩이가 하나 파여 있고, 그 가운데에는 채송화가 한 송이 심어져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도종환은 심기가 더더욱 불편해졌다.
“이 채송화…… 뭔가 특별한 건가?”
“대주. 제 생각엔 자작나무 밑에서 뽑아내서 여기에 심은 것 같습니다.”
“뭐?”
그때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펴보던 일검이 나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검은 바닥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정확한 인과관계를 추리해 내고 있었다.
“본래 자작나무가 심겨져 있던 곳의 앞에 뭔가를 파낸 흔적이 있습니다. 흙이 마른 정도를 살펴보면 나무가 뽑힌 뒤에 채송화가 파내졌습니다. 즉, 채송화 때문에 자작나무를 뽑았다가 이내, 채송화를 파내서 저기로 옮겨 심은 것입니다.”
“왜?”
“음. 그건…… 아마 채송화를 잘 살리기 위해…….”
“그러니까 채송화를 왜 살리냐고.”
도종환은 손가락으로 한쪽 수풀을 가리켰다. 그쪽엔 야생 채송화가 수십 개나 엮여서 자라고 있었다. 일검의 말문이 막혔다.
“으음…… 그게…….”
그는 십여 년간 치밀한 음모와 더러운 계략들을 수없이 밝혀 낸 인재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의 더러운 꼴을 수없이 본 동창으로서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멍청하긴. 그게 동창의 추리 능력이야?”
“……죄송합니다.”
“됐어. 이 발자국이나 추적해 보고 와.”
도종환이 눈짓을 보내자 일검이 이검에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이검이 눈을 부릅뜨자 삼검이 정찰을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대주. 찾았습니다.”
“살수야?”
“아뇨. 어린아이 세 명입니다.”
“호오?”
도종환이 이검을 노려보자 이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도종환은 혀를 찬 뒤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살수는 무슨.”
“……죄송합니다.”
“나무를 뽑은 건 나무꾼이었나 보군. 일단 잡아와. 수상한 나무꾼과 어린아이 셋이라…… 그중 한 명이 황자일지도 모른다.”
“황자라면 어떻게 합니까?”
“예를 표할 필요는 없다. 주기옥 황자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알겠습니다.”
예를 표하지 마라.
즉, 황자 취급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검, 이검, 삼검이 명을 받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 채송화 따위.’
도종환이 발을 들었다. 왠지 보기에 거슬리는 채송화를 짓밟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이었다.
“……!”
섬뜩함을 느낀 것이 먼저.
놀라서 뒤로 뛰어오른 것은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쿵, 하는 진동과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흐려진 시야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손을 뻗어 왔다.
“그 꽃은 바, 밟으면 안 된다.”
못 배운 촌부처럼 어눌한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커서 한 글자, 한 글자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동창 견검대의 반응은 빨랐다.
도종환은 어깨의 견갑(肩鉀)에서 중간 크기의 단검을 뽑아 양손에 들고 자세를 낮췄다.
일검은 상대의 배후로 돌아 들어갔고, 이검과 삼검은 각각 도종환으로부터 비스듬한 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넌 누구냐?”
눈앞의 상대는 구 척 장신에 사람이 아닌 듯 엄청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그냥 덩치만 큰 게 아니다. 팔목에서 팔꿈치로 넘어가는 상완근이 웬만한 남자의 종아리만큼 부풀어 있었다.
헐렁한 옷이라 더욱 드러나는 어깨의 승모근은 무서울 정도였다.
얼굴은 둥글둥글한 것이 순박한 시골 사내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 두렵다.
이 남자가 어떻게 나타났던가?
위에서 뛰어내렸다.
은밀기동과 잠입을 밥 먹듯이 하는 동창의 대원들이 눈치채지 못할 수준의 기습이었던 것이다.
화전촌 따위에서 이런 자를 만났다는 것을 도종환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 꽃은 우, 우리 딸이 좋아한다.”
스윽.
도종환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대원들도 긴장하여 몸을 낮췄다.
그 남자는 주변의 칼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바닥에 있던 채송화 주변의 흙을 손으로 팡팡 다져 주었다.
“그, 그러니 바, 밟지 마라.”
‘이놈……?’
말은 순박하게 더듬고 있지만 눈빛은 투명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자다.
쉭!
“타하아앗!”
“안 돼!”
주저앉아 흙바닥에 손을 대고 있는 남자.
배후를 잡고 있던 일검에게는 커다란 등 전체가 허점으로 보였을 터.
더군다나 동창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일검에게는 공격을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도종환은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잘 훈련된 일검의 육체는 이미 빠른 속도로 사내의 등에 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급소를 정확히 노린 군더더기 없는 일격이었다.
만류했던 도종환마저 혹시 공격이 성공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검은 솥뚜껑만한 손에 얼굴이 턱, 하니 잡혔고 그가 내찌른 칼은 사내의 손가락에 잡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나 버렸다.
그 모든 일은 고작 반 호흡 만에 이루어졌다. 도종환은 사내의 동작이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경악할 틈도 없이 일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내가 한 손으로 일검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크으으으!”
일검이 버둥거렸지만 사내의 손은 굳건했다.
“잠깐! 멈추어라!”
도종환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사람의 몸을 손가락 힘만으로 들어 올리는 자다.
그리고 사람의 두개골은 의외로 부드럽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감히 공격을 가하는 것이냐! 우린 동창의 관인들이니라!”
“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공격을 해? 건방진 놈. 네놈. 삼족을 멸하고 싶은 것이냐!”
“공격은 너희가 머, 먼저 했다.”
“허? 네놈이 먼저 기습을 하지 않았더냐!”
“나는 꽃을 지, 지켰을 뿐.”
도종환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눌한 말투에 속으면 안 된다. 거구의 사내가 지닌 눈빛은 냉정했으며 또한 당당했다.
실력이 좋고, 나쁘고는 다음 문제다.
명제국 곳곳에 동창의 이름이 안 통하는 곳이 없거늘.
이 사내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사실이 도종환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크아압!”
그때,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일검이 허리를 강하게 회전시키더니 왼발로 거구사내의 목젖을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얼굴이 흔들렸다.
“제길. 쳐라!”
이쯤 되면 대화는 일단 싸운 후에 나눠야 할 것 같았다.
도종환이 몸을 낮춘 채 적의 다리를 노리고 뛰어들었고, 이검과 삼검이 각각 측면에서 동시에 협공을 가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지는 동작. 견검이대는 사나운 벌떼처럼 사방에서 습격했다.
후우웅.
“헛!”
거구의 사내는 들고 있던 일검을 방패처럼 휘둘렀다. 도종환이 당황하여 멈춰서는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옆으로 붕 뜬다.
도종환은 자신의 왼팔이 부러진 듯 덜렁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검과 삼검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있는 것을 공중에서 확인했다.
‘무슨……!’
당황도 잠시.
그는 무성한 수풀 속에 처박혔고, 숨이 턱 막히는 충격에 몸이 굳어 버렸다.
“크으으……!”
도종환은 잠시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벌떡 일어섰다.
감히.
대명제국 동창의 견검대가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이노옴!”
품안에 숨겨 뒀던 연막 가루를 내던지고, 동창 비전의 투검술(投劍術)로 단검을 던져 허공에서 터뜨렸다.
그리고 요대에 차고 있던 회혼부(回魂符)를 던져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구의 사내의 발밑에 꽂아 넣었다.
돌아올 회(回).
영혼 혼(魂).
한번 내던지면 상대의 혼과 함께 회수할 수 있기에 회혼부다.
곧바로 회혼부는 폭발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백여 개의 독침을 사방으로 비산시켰다.
도종환은 사나운 눈빛으로 뿌연 연기 속을 노려보며 말했다.
“후후, 감히 동창에게 덤비다니. 주제를 알아라. 네놈이 그 나무꾼일 테지? 부인과 아이에게도 사람을 보내 놓았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게 해 주마.”
도종환은 씹어 뱉듯이 말한 후 대원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검과 삼검이 몸을 뒤틀며 신음하고 있었다.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부러진 모습이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일검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뿌연 흙먼지 속에서 휙, 하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크윽!”
도종환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받아들였다가 거칠게 신음을 흘렸다. 왼팔이 부러졌던 것을 생각 못하고 양손을 사용한 것이다.
날아온 건 일검이었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다른 대원들과 마찬 가지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연기 속을 걸어 나온 거구의 사내가 오른손을 펼치자 한데 뭉쳐 우그러진 독침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양손, 양팔, 얼굴.
어디에도 상처하나 없다.
온몸이 강철이라도 된단 말인가!
도종환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너는…… 너는 대체 누구냐……!”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박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도종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도종환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굳어 버렸다.
“낭군니이임…….”
미모의 여인이 한 손에 한 사람씩 멱살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여인이라지만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키가 큰 여인이다.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성인 남성 둘을 바닥에 질질 끌고 오면서도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짐짝처럼 바닥에 질질 끌려오는 사람.
다른 사람일 리가 없다. 나무꾼의 집으로 보냈던 사검과 오검이었다.
“부인! 벼, 별일 없었어?”
“있을 리가 없죠. 쥐새끼 몇 마리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래 봬도 한 가정의 안주인이랍니다. 이젠 그런 하찮은 것에 겁먹지 않아요!”
“미, 믿음직스러워.”
“후훗.”
보기만 해도 서로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두 사람이다.
도종환은 기절할 것 같은 정신적 충격 속에서 조용히 절규했다.
‘이 괴물들은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