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4화
제3장. 섭주해(4)
켁켁거리는 기옥의 등을 미미가 두드려 주었다. 기옥은 속이 좀 해결되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해에게 달려들었다.
“이 천한 놈! 나에게 멍청이라고 하지 마!”
“멍청이한테 멍청이라고 한 게 뭐가 잘못이냐. 멍청아!”
주해는 가소롭단 듯이 말했다.
기옥과 주해가 다시 한번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아! 너도 계집애한테 부축 받아서 왔잖아!”
“그래도 난 토하지는 않았다. 멍청아!”
“얼간이!”
“멍청이!”
두 사람은 한참이나 싸우다가 소호가 뜯어 말린 뒤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두 사람을 보며 소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 우리 오랜만에 흑석촌으로 놀러 나왔잖아. 기옥이는 처음이고. 이렇게 싸우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재밌게 놀다 들어가자. 어때? 좋지?”
부루퉁한 얼굴이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은자촌은 평화롭지만 너무 심심한 반면에 흑석촌에는 시장도 있고 구경거리도 많았다.
기분이 들뜬 소호가 모두를 이끌고 가려던 그때였다.
“나 참, 하여간 성격 안 좋은 영감은 피곤하다니까.”
소호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허름한 건물 앞에서 만두처럼 생긴 중년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투덜대고 있었다.
소호는 흑석촌 입구쯤에서 아이들과 같이 마차에서 뛰어 내렸기에 만두 같이 생긴 사내의 정체가 삼산현의 현령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되게 둥글둥글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게, 청렴하면서 나이 많고 성격은 까다로운 고위 관료야. 어떻게 포섭할 방법이 없거든. 뇌물도 안 받지, 아부도 안 통하지. 심지어 미인계도 안 통해요. 이봐, 오 현승(懸丞:현령의 보좌관).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어? 이백 포정사처럼 까다로운 상대를 어떻게 포섭하면 될까?”
“그저 일을 잘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 현승이라 불린 사내는 빼빼 마르고 수염을 단정히 길러서 고지식한 관료의 표본 같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만복 현령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런. 그러니까 자네가 승진을 못하는 거야. 포섭이 될 상대랑 안 될 상대를 구분해야지. 이백 포정사는 그중 후자야. 절대로 포섭이 안 돼. 대쪽 같은 성품이랍시고 뇌물은 절대 안 받거든. 그러니까 맨날 때마다 재수 없는 날이다 생각하고 어떻게든 흘려 넘기는 수밖에 없어.”
“자연재해 대하듯 대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역시 오 현승은 말을 잘 알아들어.”
칭찬을 받았으나 오 현승은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괜찮습니까?”
“당연히 안 괜찮지!”
만두 현령은 원래 부루퉁한 볼을 더욱 부풀리며 씩씩거렸다.
“그 늙은이……. 항상 날 무시하는 걸 모를 줄 알고? 그래서 나도 계속 복수하고 있는 거야.”
“예? 복수라고요?”
오 현승은 이해가 안 되는 듯한 눈치였다.
“후후후. 그래, 복수.”
“도대체 어떤 복수를 하셨습니까?”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 늙은이…….”
현령은 자랑스럽게 배를 내밀며 말했다.
“자기가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걸 싫어하거든.”
하 현령은 통쾌하게 웃었다.
“희한한 아저씨네.”
소호는 그들의 대화에 호기심이 생겨서 잠시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의 표정은 제각각 달랐다. 미미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기옥은 무언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주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해야, 물어볼 게 있어.”
“네, 형.”
“아까 만두 아저씨가 현승이라 부르던데. 현승이 뭐더라? 예전에 들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현승(懸丞)은 현령(懸令)의 보좌를 하는 직책이에요. 현령 대신에 각종 업무를 처리해요.”
“업무?”
“자질구레한 서류 업무나 현령 대신에 사람 만나는 그런 일이에요.”
“아아, 진구 삼촌 같은 존재구나. 진구 삼촌이 우리 아버지 대신에 일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처럼?”
“네, 맞아요.”
주해는 소호의 사고방식이 재밌는지 활짝 웃었다.
“그랬구나. 그럼 그 만두 아저씨가 삼산현에서 우리 아버지 같은 존재인 거지?”
“음…… 조금 다르지만. 그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건 맞아요.”
“흐음.”
소호는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길가의 노점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저것 봐! 전갈 잡기야!”
“우와!”
투박한 나무 궤짝 속에서 손가락 두 개 만큼의 길이를 가진 작은 전갈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자, 독침을 뗀 안전한 전갈 잡기가 왔어요! 젓가락으로 잡으면 이 전갈 꼬치가 무료! 기회는 한 번뿐! 한 번에 단돈 동전 한 냥!”
이미 노점의 주변엔 소호 또래의 아이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전갈 잡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원래 전갈 꼬치는 하나에 동전 다섯 문 정도는 받는다. 그걸 한 냥에 준다는 말에 아이들이 혹한 것이다.
“재밌겠다!”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면 소호가 아니다.
미미와 주해 역시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고, 항상 불만 가득한 기옥마저도 눈을 반짝이며 전갈 잡기에 집중했다.
“으악! 놓쳤어!”
앞서 도전하던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젓가락은 보리 줄기를 잘라 만든 것처럼 낭창낭창하게 휘어졌다.
애초에 아이의 악력으로는 팔팔한 전갈을 젓가락으로 붙잡는 게 어렵지 않겠는가.
“허허, 꼬치 세 개 주시오.”
“예이, 여기 있습니다. 동전 열다섯 냥입니다요.”
“여기 있소.”
어른들은 도전하지 않고 그냥 보통 가격의 전갈 꼬치만 따로 사 갔다. 상자 주변에 바글바글하게 모여든 건 모두 어린아이들뿐이었다.
“나와! 내가 할 거야!”
실패해서 울상을 지은 꼬마를 옆으로 밀쳐 내고 꽤나 건장한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열서너 살쯤 되었을까. 어깨랑 덩치가 웬만한 어른 못지않게 듬직한 소년이었다.
“너도 할 테냐?”
“줘 봐요.”
당당하게 동전 하나를 내민 소년은 노점상 주인으로부터 젓가락을 받아서 전갈 상자 안을 노려보았다.
소년은 상자 안에서 가장 큰 전갈을 노리는 듯 보였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손을 뻗는 소년이 마치 자신인 양 모두가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아앗!”
“물었어!”
덩치가 큰 전갈은 성질이 사나웠다. 소년이 젓가락을 집어넣자 도망치는 게 아니라 두꺼운 집게발을 휘둘러 젓가락을 잡으려 들었다.
덩치가 큰 소년은 당황한 듯 눈을 끔뻑거렸지만 제법 강단 있게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전갈은 결국 소년의 젓가락을 집게로 콱 물어 버렸고, 소년이 젓가락을 당기니 함께 딸려 올라갔다.
“오오옷!”
“올라온다!”
“우와아!”
환호성도 잠시.
“아……!”
이내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갈의 집게 질에 허약한 젓가락이 끊어지며 전갈이 떨어진 것이다.
“아, 쓰, 다 됐는데!”
덩치 큰 소년은 발을 구르며 성질을 냈다.
“그래도 대단해 아석(兒石).”
“역시 아석이야. 전갈을 나만큼 끌어 올릴 수 있는 사람도 없을걸?”
아석이라 불린 소년의 주변엔 사나운 눈매를 지닌 또래 소년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평범한 동네 꼬마들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의 소년들 말이다.
아석은 홱 하고 몸을 돌리더니 자신을 위로해 준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전 하나 줘 봐.”
“나 하나밖에 없어.”
“그러니까 줘 보라고.”
“나도 해야 하는데…….”
“넌 이거 잘 못하잖아. 내가 해 줄게.”
“아냐, 나도 잘할 수 있어.”
“아 줘 보라고!”
소년은 우물쭈물했지만 아석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순순히 동전을 내놓았다.
“한 번 더 줘요.”
“여기 있다.”
주변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아석의 젓가락질은 이번엔 더욱 빨리 실패해 버렸다.
버둥거리는 전갈을 붙잡자마자 젓가락이 갈지 자로 휘어 버린 것이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아석은 부러진 젓가락을 집어 던졌다. 노점상 주인에게 이거 사기 아니냐고 외쳤지만, 노점상 주인은 코웃음 치며 똑같은 보릿대 젓가락으로 전갈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오오!”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사기가 아니야!”
“정말 가능한 일이네!”
눈앞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더 마음이 끓어오르지 않는가. 아이들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침착하고 차분한 주해마저도 얼굴이 상기될 정도였다.
“야. 더 없어?”
아석은 주변 친구들의 돈을 빼앗아 세 번 더 도전한 뒤, 이젠 정말로 돈이 없어지자 분해서 발만 동동 굴렀다.
“하! 됐어. 이런 유치한 거. 나도 그냥 장난친 거야.”
누가 들어도 거짓말 같은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아석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소호가 앞으로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저씨. 저도 한 번 해 볼래요.”
“응? 못 보던 얼굴들이구나.”
“옆에서 놀러 왔어요.”
소호는 씩 웃으며 동전 한 닢을 건네주고 보릿대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전갈들을 응시했다.
“실패할 게 뻔한데 도전하긴. 안 돼, 안 돼. 초짜는 못 해.”
아석이 옆에서 큰 소리로 비웃었음에도 소호의 집중력은 풀리지 않았다.
두 눈은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한 점을 응시했고, 젓가락 끝은 고요한 호수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진지함에 전염된 듯 모두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언제 움직일까? 아이들이 궁금함에 입술을 달싹이려는 그 순간.
탁.
번개처럼 움직인 소호의 젓가락이 한쪽 끝은 머리 앞에, 한쪽 끝은 다리 사이에 끼워진 채 전갈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셋을 셀 동안에도 전갈은 떨어지지 않았다.
“우와아아앗!”
“성공했어!”
“처음 봤다! 진짜 성공하다니! 대단해!”
지금껏 노점상 주인을 제외하곤 성공하는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이들은 시끄럽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특히 미미와 주해의 환호성이 가장 컸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아석은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구나! 꼬마야, 옛다. 전갈 꼬치다.”
“히힛, 아저씨 고마워요.”
소호는 기분 좋게 전갈 꼬치를 받아 든 뒤 품 안에서 동전 세 개를 더 꺼내 노점상 주인에게 내밀었다.
“응? 더하려고?”
“동생들이 세 명 더 있어서요.”
갑자기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허허, 그래서 딱 세 번만 더 해서 꼬치 세 개를 따 가겠다?”
“네.”
소호가 티 없이 밝은 얼굴로 웃었다. 그러자 노점상 주인은 어린아이처럼 승부욕에 불타며 외쳤다.
“이 녀석, 패기가 넘치는군! 전갈 꼬치 장사 외길 십 년에 너 같은 녀석은 처음이다. 좋아, 어디 한번 실력을 보자꾸나. 그리 쉽지는 않을걸!”
“히힛, 이제 감 잡았어요.”
“덤벼 보시지!”
두 사람은 활활 불타는 눈빛을 교환하며 보릿대 젓가락을 건네주고 건네받았다. 아이들의 환호성 속에서 두 사람의 승부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잠시 후, 흑석촌의 왁자지껄한 시장 골목을 걷고 있는 소호와 나머지 세 사람의 손엔 모두 전갈 꼬치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미미는 와작와작 씹히는 전갈 꼬치의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역시 소호 오라버니가 최고야! 어떻게 전갈 꼬치를 네 개나 딸 수 있어?”
“히힛, 내가 감 잡았다고 했잖아.”
주해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단했어요, 소호 형. 최고예요!”
“많이 먹어, 주해야. 모자라면 또 따 올게.”
소호는 기옥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꾹 찔렀다.
“어때? 맛있어?”
“제, 제법 고소하군.”
기옥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새침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입가에 부스러기 묻었어.”
“차, 착각이다!”
“히힛, 이제 떨어졌다. 너도 많이 먹어.”
“유치하게 생색을 내다니. 마지막엔 거의 떨어뜨린 거나 마찬가지면서.”
“야야. 그건 아저씨가 치사하게 제일 가느다란 젓가락을 줘서 그래! 원래는 좀 더 튼튼한 젓가락을 써서 안정적으로 올라왔어야 했다고.”
소호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손가락 세 개를 벌려 젓가락을 잡은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전갈 잡기는 무게중심이 핵심이었어. 주인아저씨가 하는 걸 보니까 그렇게 하더라고. 전갈의 머리에서 반 치 정도 뒤에 있는 위치. 거길 단번에 잡으면 되는 거야.”
“그걸 한번 보고 알았나요? 소호 형?”
“응? 응, 그냥 그렇게 하는구나. 싶었어.”
주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대단해요, 소호 형. 주인아저씨는 마지막에 많이 초조해 보였어요.”
“흥, 유치한 건 그 아저씨야. 분명히 셋까지 세고 나서 떨어졌는데. 떨어졌으니 무효라고 우기다니!”
“하하, 우리 갈 때쯤엔 그 아저씨 거의 울고 있었어요.”
‘장사 인생 십 년 외길’을 헛살았다면서 어찌나 슬퍼하던지 소호와 그 일행이 자리를 떠나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난 잘못한 거 없다. 뭐.”
“맞아요. 다음에 또 놀러 오죠.”
“그럴까?”
소호는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어이!”
그렇게 웃고 떠들길 잠시.
뒤에서 소호 일행을 부르는 소리에 모두 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응? 우리?”
“그래, 너희.”
소호는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전갈 꼬치 집에서 봤던 소년들이었다. 몇 번이나 젓가락질을 실패해서 성질을 부리던 아석이란 소년과 그 친구들.
“맛있냐? 같이 좀 먹자.”
어느새 아석의 친구들은 미미와 주해의 옆에 서서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