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5화
제3장. 섭주해(5)
“같이 먹자고?”
소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싫어.”
“뭐?”
아석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인상을 썼다.
“다시 말해 봐.”
“같이 먹기 싫어.”
소호는 아직 전갈 세 개가 남아 있는 꼬치를 잠시 응시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나눠 먹기 싫어.”
“허?”
아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곧 폭발한다는 신호였다. 주변 소년들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먼저 나섰다.
“야 니들 뭐야!”
“얘들이 흑석촌 물정을 모르네. 너희 우리가 누군지 알아?”
“니들 어디서 왔어!”
소년들은 기옥을 향해 가장 크게 소리쳤다.
원래 제일 몸집이 작고 어린 자가 목표가 되는 법. 기옥은 이런 일이 처음인 탓에 당황하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으, 은자촌에서 왔는데.”
“뭐어?”
“은자촌? 그 산속에 있는 화전촌?”
소년들이 서로를 한번 쳐다본 뒤 낄낄대며 웃었다.
“뭐야. 촌놈들이었잖아?”
“그런 산골에 있다가 나오니까 전갈 잡기 같은 걸 잘하지.”
“야 니들 뭐 먹고 사냐? 풀뿌리 같은 거 뜯어먹고 사냐?”
“전갈 잡기 할 돈은 어디서 났어? 훔쳤어?”
기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흑석촌 아이들의 텃세에 난생처음으로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니들 전갈 꼬치도 처음 봤지?”
한 아이가 소호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지 난리를 치더라니. 이런 애들이 구경이나 해 봤겠냐? 니들 돼지고기는 먹어 본 적 있어? 동파육은?”
다른 아이가 이번엔 비아냥거리며 놀려댔다.
“야야,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쌀은? 흰쌀밥은 먹어 봤어?”
“소룡포는? 만두가 뭔지도 모르지?”
흑석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한 말이 재밌는지 배를 잡고 웃어 댔다.
“됐고. 그거나 내놔.”
“니들 조심해. 아석 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야. 너 그러다 혼난다?”
“야야. 안 내놔? 확 그냥!”
눈을 사납게 뜨면서 소리치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슬쩍 손을 뻗어서 꼬치를 가져가려 했다.
휙―.
“어?”
“어어?”
소호의 꼬치를 붙잡으려던 소년은 꼬치를 잡지 못했다.
소호가 미묘한 움직임으로 소년의 손을 피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소년은 미미의 꼬치 끝을 붙잡았다. 그런데 꼬치를 빼앗지는 못했다.
“뭐야! 안 놔? 야! 무슨 계집애가 힘이 이렇게 세?”
소년은 낑낑대다가 결국 반쯤 비어 있는 꼬치 막대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야! 놔!”
“…….”
“안 놔? 야! 놓으라고!”
소년이 체중을 다 실었는데도 미미가 잡고 있는 가느다란 꼬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미는 고작 손가락 두 개로 꼬치를 잡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우우, 싫어…….”
미미가 울상이 되었다.
“괜찮아. 미미야. 울지 마!”
소호가 얼른 다가와 소년의 손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억!”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양손을 놓았다.
“으억! 아으……!”
소년은 뒤로 나동그라진 채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찔린 곳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소년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이 촌놈이!”
소년은 일어나서 소호의 가슴팍을 확 밀쳤다.
“너 죽을래!”
소년의 말과 동시에 주먹이 날아왔다.
주먹질이 제법 매서웠다. 다리가 땅을 탄탄하게 딛고 허리는 강하게 돌아간다. 동네 권법도장에서 배운 듯 적어도 정권(正拳)만큼은 자리가 잡혀 있었다.
그러나 소호는 상체를 기울여서 날아오는 주먹을 슬쩍 피했다.
“야!”
“뭐!”
“내가 왜 너희랑 나눠 먹기 싫은지 알아?”
“누가 나눠 달래? 우리한테 그냥 내놓으라고!”
소호의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소호는 다시 한번 날아오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잡아챘다.
너무 쉽게 잡아챈 탓인지 주변 소년들이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나는 너희가 싫어.”
“……뭐어?”
“운찬 삼촌이 그랬어. 원래 자기한테 자신이 없는 애들이 괜히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거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런 거랬어.”
“어……?”
“그렇지만 그걸 알아도 싫어. 아무리 불안해도 남을 괴롭히는 애들은 나빠. 너흰 나쁜 애들이야.”
소년들은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소호의 말뜻을 이해하진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 촌놈이 뭐라는 거야?”
“어쨌거나 너 방금 우리한테 나쁜 놈이라고 한 거지?”
“건방져 아주!”
“이게 화전촌에서 온 주제에!”
아석과 소년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분노했다.
소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은자촌은 좋은 곳이야. 너희가 말한 것들 다 보고 먹어 봤어. 오히려 너희가 못 먹어 본 것도 많이 먹어 봤을걸?”
“거짓말이야!”
아석이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그런 좋은 걸 먹어 봤을 리가 없어!”
“먹어 봤어.”
“아니야!”
“맞다니까!”
“우리 아빠가 그랬어! 화전촌에 사는 것들은 전부 다 죄 짓고 도망친 천한 거지새끼들이라고!”
그 순간 뻑, 하는 소리와 함께 아석의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어……?”
“어?”
정적이 흘렀다.
때린 건 소호가 아니었다.
전혀 의외의 인물.
섭주해가 빨개진 주먹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고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천한 건 너희야!”
뼈가 보일 만큼 호리호리한 몸매. 햇빛을 받지 않아 하얀 피부.
어딜 보나 병약한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주변의 소년들은 물론이고 직접 얻어맞은 아석조차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에겐 저마다 각자가 지닌 본연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잔뜩 화가 난 섭주해에겐 고고한 기품 같은 것이 흘러서, 소리치는 순간 모두의 몸에서 소름이 쫙 돋아났다.
“어떻게든 남을 깔아뭉개려는 너희야 말로 천박해. 기억해 둬. 너희가 남을 깔보고 물어뜯는 만큼 언젠가 똑같이 당하는 날이 있을 거다!”
“뭐?”
“나쁜 놈! 감히 우리 마을을 욕하다니!”
섭주해는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아석의 얼굴이 이번엔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힘은 약했지만 모욕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섭주해는 연이어 주먹을 날렸고 이내 얼굴이 빨개진 아석과 한데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이야아아앗!”
“뭐야 이거! 미쳤어?”
“무례한 놈! 졸렬한 놈! 책 한 권도 안 읽은 놈!”
“이게!”
아석이 당황하면서도 억울한 듯 외쳤다.
“한 권은 읽었어!”
섭주해도 지지 않았다.
“천자문은 책이 아니야!”
“천자문인 줄 어떻게 알았……? 뭣! 잠깐만 진짜?”
“무식한 놈!”
“이게! 근데, 이 자식! 졸렬한 놈은 무슨 뜻이야!”
아석과 섭주해는 서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뒹굴었다.
“히힛.”
소호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섭주해가 자기 대신 화를 내 주는 모습을 보니 울컥 했던 감정이 풀린 것이다.
차분한 선비님 같았던 섭주해가 이런 거친 모습을 어떻게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야아앗!”
“으아악! 이 자식이!”
섭주해가 분발하긴 했지만 타고난 체격이라든가 싸움 경험에선 아무래도 아석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섭주해는 이내 팔꿈치로 배를 얻어맞고 옆으로 내팽개쳐졌다.
“이 자식! 죽었어!”
“그만해.”
멧돼지처럼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아석을 말린 건 소호였다. 아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오른발로 발뒤꿈치를 후려 찼다.
“억?”
아석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어? 컥.”
소호는 상대를 부드럽게 넘어뜨린 뒤 양손바닥으로 이마와 명치 부근을 동시에 눌렀다.
아석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져 간다. 그렇게 덩치 큰 소년이 마치 잠에 빠지듯 자연스럽게 정신을 잃었다.
“어?”
“뭐, 뭐야!”
“머리라도 부딪친 거야?”
아석의 친구들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소년들은 재빨리 다가와 아석의 몸을 흔들어 댔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됐다……!”
소호는 자신의 양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숨은 쉬어?”
“잠깐만, 쉬, 쉬어!”
“휴우.”
소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아석의 주변에 둘러앉은 채로 소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고 있는 소호의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네가……?”
“너희 앞으로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다른 애들한테 물건이나 돈 뺏지 말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욕하지도 마. 그리고 내 동생들 건드리지 마.”
“너……!”
소년들의 말문이 막혔을 때였다. 골목길 옆의 담장 너머에서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뭐가 이리 시끄럽냐!”
“윽?”
모두의 시선이 올라갔다.
담벼락 너머 ‘흑석객잔(黑石客棧)’의 이층 창문이 벌컥 열리며 수염을 기른 꼬장꼬장한 인상의 노인이 나타난 것이다.
“쓰러진 놈은 뭐냐. 어린 녀석들이 패싸움이라도 한 것이냐!”
“그, 그게 아니고…….”
“지금 바로 내려갈 테니 기다려라!”
백발이 성성한데도 불구하고 힘도 좋은 노인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눈빛도 굉장히 강렬해서 무서웠다. 소년들이 당황하며 아석을 들쳐 업었다.
“야! 일단 가, 가자!”
“너희들! 다음에 보면 가만 안 둬!”
소년들은 끝까지 강한 척을 하며 흑석촌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볼이 빨갛게 부은 섭주해가 당황하며 소호를 쳐다봤다.
“소호 형, 우리도……?”
소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을 가?”
“예?”
소호는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미는 어느새 기분이 다 풀린 듯 남은 전갈 꼬치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눈을 반짝였고, 기옥은 뭔가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멍한 얼굴로 섭주해를 힐끗거렸다.
그리고 문제의 섭주해.
마을을 위해 나서서 싸운 기특한 동생은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주해야.”
“예?”
“잘했어. 역시 내 동생이야.”
“어어? 예?”
소호는 진지한 얼굴로 주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섭주해가 당황한 사이에 담벼락 옆의 커다란 대문이 벌컥 열렸다. 쪽진 관모를 쓴 노인이 하얗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녀석들아.”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한 눈빛. 주름진 미간에선 맹수 같은 위압감이 흘렀다.
게다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칼처럼 귓속을 파고든다.
“으어어.”
“으으?”
바들바들 떠는 아이들과 달리 소호는 정면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노인은 흥미가 생긴 듯한 눈빛으로 소호를 응시했다.
“은자촌에서 왔다고?”
***
다그닥. 다그닥.
덜컹. 덜컹.
소호는 아무리 좋은 마차라도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건 소달구지랑 똑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타 본 쌍두마차는 안쪽이 상당히 넓고 의자가 푹신했다. 소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흑석촌에 올 때는 마차 뒤에 몰래 매달려서 왔는데, 갈 때는 마차 안에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 가지 않는가.
“할아버지.”
소호는 문득 입을 떼었다.
“궁금한 게 있느냐?”
“네, 할아버지는 왜 저희를 데려다주세요?”
“흠?”
소호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마차 안에는 온갖 종이들이 난장판으로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불상(佛像)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건 미미, 주해, 기옥이었는데, 세 사람은 마차에 탄 이후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그런 걸 지금 묻는 게냐? 보통 타기 전에 묻는 것 아니냐?”
“히힛, 일단 마차는 타 보고 싶었거든요.”
소호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았다. 거센 바람이 두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아아아―우우우―아아아―.”
입을 벌리니 희한한 소리가 났다.
“히힛.”
소호가 재밌어하니 미미가 눈을 반짝이며 반대쪽 창문에서 저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똑같이 따라한 뒤 까르르 웃었다.
“앉아라. 다칠 수도 있다.”
노인은 단호히 말했다.
소호와 미미는 재빨리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노인은 상당히 까다로운 성격처럼 보였다.
붉은색의 화려한 비단 장포를 입었고, 두 눈은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하게 빛났다.
누구든 함부로 말을 거역할 만한 인상은 아니었다.
“너희를 태워 준 이유는, 별거 아니다. 아까 싸우는 모습을 보다가 너희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어? 그럼 일부러 애들을 쫓아 준 거예요?”
“그래.”
소호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안 그래도 어떻게 마무리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소호는 부모님께 예는 중요한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노인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지만 그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나도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어? 저희에게 궁금한 게 있으세요?”
“그래, 있단다.”
소호는 노인이 처음 말을 걸면서 은자촌에서 왔냐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저어…… 혹시, 우리 마을에 대한 거예요?”
“그래.”
“그럼 물어보세요. 저는 마을에 대한 건 뭐든지 알고 있어요.”
노인은 망설이듯 잠시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만이 마차 안을 가득 진동시켰다.
마차 안의 서류들이 덜컹거리며 펄럭였다.
“은자촌은…….”
마침내 노인이 입을 떼려는 순간.
“대인! 위험합니다!”
마부석에서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며 바람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과 커다란 무언가가 땅을 파고 드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목조 골격이 박살 나는 파열음이 연달아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어어?”
소호의 판단은 빨랐다.
재빨리 양손을 뻗어서 반대쪽에 앉아 있던 섭주해와 노인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을 바닥에 얼굴이 닿도록 넘어뜨린 후, 양옆의 미미와 기옥의 뒷목을 잡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귀에서 삐―하는 이명이 들려왔다.
마차가 뒤집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