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16화 (145/686)

1권 16화

제4장. 낭관(郎官)(1)

시골 촌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황제라고 답한다.

성내(城內)에 사는 사람에게 물으면 석가장의 주인이라고 답한다.

상회(商會)에 소속된 사람에게 물으면 대붕, 천하, 칠성이라고 답한다.

흔히 명제국 삼대상회라고 불리는 재계(財界)의 거물들이 있다.

석가장의 대붕상회, 비단길의 천하상단, 광산의 칠성상회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칠성상회는 명나라 전체의 상권에 관여하는 대상회였다.

이들은 대륙을 동부, 중부, 서부로 나누어 관리하는 세 명의 대상주를 두었고, 그 밑에는 각지의 상행을 담당하는 스무 명의 상주가 있었다.

이백 포정사와 거래를 하려던 손오 역시도 그 스무 명의 상주 중 한 명이었다.

“상주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포정사는 거래할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물건을 다시 본점으로 보낼까요?”

손오는 몸을 휙 돌려 오룡, 오호 형제를 노려보았다.

“이봐, 키만 멀대같이 커 가지고. 머리 위의 그건 장식인가? 생각이 있어, 없어? 우리가 가져온 철이랑 무기가 보통 양이야? 천 명을 무장시키고도 남는 양인데, 그걸 다시 돌려보내? 자네들은 운송비가 남아도나 보지?”

“그건 그렇지만……. 삼산현 담당자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정식 명령도 아닌데 물건이 너무 많아서 업무에 차질이 크다고 하던데요.”

“하! 그깟 지방촌 담당자 나부랭이 눈치나 보려고 내가 그 고생해서 상주가 된 줄 알아? 불만이 있어도 닥치라 그래. 이건 삼산현 담당자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건수니까.”

오룡, 오호 형제의 눈에 잠시 반항적인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들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대칠성상회 권력의 정점.

상위 스무 명 안에 드는 상주의 위치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상주는 귀족, 상인은 백성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손오는 짜증스럽게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대로 접을 수는…….”

손오는 지도를 한번 살펴보고, 자료에 적힌 수치들을 비교했다.

“이백의 뜻은 확고하니……. 그래, 분명 여기쯤에……?”

마침내 손오는 생각을 정리한 채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봐, 마을 밖에서 대기하는 들개들한테 전서를 보내. 움직여야 한다고.”

“예?”

“진심이십니까?”

쌍둥이 호위들은 저마다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손오는 쌍둥이 호위들이 진심으로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임 담당자였던 강 상주의 일을 뺏은 대가로 본점에서 그에게 호위 겸 감시로 붙인 인물들인데, 그 때문인지 사사건건 손오의 지시에 토를 단다고 느껴졌다.

“상대는 정이품 포정사입니다.”

“들개들이 습격한다면 파장이 엄청날 텐데요? 황실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쯧쯧.”

손오는 혀를 찼다.

“이봐. 다 내가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야. 이백이 당하면 황실에서 조사대를 파견하겠지. 그렇다면 그사이에 하남은 그냥 내버려 두나? 황실이 그리 허술해 보여? 비어 버린 하남 포정사 자리를 누가 관리할 것 같아?”

“아……!”

“하북 포정사가 관리하게 되는 거야. 그럼 우린 갖고 온 철과 무기를 하북 포정사에게 팔면 끝나는 문제지. 잊지 마, 우린 상인이야. 무엇보다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오룡과 오호 형제는 여전히 찝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첫째, 하북 포정사는 하남을 견제하려고 철과 무기를 사려고 했던 건데 하남 포정사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무기를 사려고 할까요?”

“둘째, 나중에 황실 조사대가 저희의 뒤를 쫓게 된다면……. 만약 칠성상회를 배후로 지목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실 겁니까?”

쾅!

손오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봐, 쌍둥이. 잘 들어. 나 손오는 상주의 자리에 오르기에 합당한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이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대답해 주지. 더 이상은 의문을 갖지 마라. 첫째, 하남을 관리하게 되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업무일 뿐. 결국 후임이 결정 되면 다시 하남지역을 토해 내야 되기 때문에 하북 포정사는 철과 무기를 비싸더라도 구입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둘째.”

손오는 탁자 위에 올려진 삼산현의 지도의 한쪽 지점을 가리켰다.

“지리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이곳엔 화전촌이 있다. 그리고 화전촌이란……. 보통 화적 떼가 많이 사는 곳이지.”

오룡과 오호 형제는 말문이 막혔다.

손오의 표정은 확고해 보였다.

그의 표정에선 ‘모든 것은 화전촌의 탓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만들어 낼 인간이었다.

‘과연 흑수(黑手) 손오.’

‘칠성상회의 어두운 부분을 담당하는 자다워.’

오룡과 오호 형제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시립했다. 손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은 이미 칠성상회로부터 마음이 떠난 고객이다. 더 이상 고객이 아니라면, 마지막까지 이득을 만들어 내도록 쥐어짜야지. 어떤 일이든 상회의 돈이 최우선이야.”

손오는 지도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웃었다.

“고집스러운 늙은이……. 내가 후회할 거라고 말했을 때 들었어야지.”

***

몽도(冡桃)는 계산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뭐든지 먹은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제멋대로 살면서 칼질을 하고 돈을 받아먹는 낭인이지만, 그런 규칙이 있었기에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객들의 신뢰는 그만큼 중요했다. 상대를 한번만 쓰고 버릴지, 아니면 다음번에도 부탁할 중요한 존재가 되는지는 종이 한 장만큼 적은 차이로 결정되는 것이다.

상점에만 단골이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사고파는 일에선 신뢰가 필요하고 그걸 지키다 보면 단골이 생겨나는 법이었다.

몽도는 그런 면에서 자신이 신뢰를 지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이십 년이 넘도록 주어진 일거리를 모두 완수해 냈고, 그 결과 이제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도 생겨났다.

동료들은 유능했다.

물론 인생 막장이라는 낭인질을 하고 있으니 각자 성격에 결함은 좀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일만 잘하면 된다.

구대문파에도 지지 않는다는 낭인왕(浪人王) 패거리만큼은 아니지만, 몽도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개성이 뛰어나 웬만한 문파에 지지 않는다.

아니, 습격에 있어서는 오히려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두목. 연락이 왔수다.”

얼굴이 까맣고 뱃살이 두툼해 흑저(黑猪)라 부르는 남자가 몽도에게 서찰을 건네주었다. 몽도는 안대를 찬 오른쪽 눈을 긁적이며 서찰을 펼쳤다.

살(殺).

동일(同一).

도주(逃走).

특급(特級).

“이것 봐라?”

몽도가 인상을 찌푸리자 옆에서 큼직한 돼지 뒷다리를 뜯고 있던 거구의 사내가 물었다. 육 척 장신의 거구. 허리에 차고 있는 누런색 철추가 반짝거렸다.

“뭔데 그래? 두목.”

“동추, 네가 직접 봐라.”

“엉?”

몽도가 서찰을 건네자 동추라 불린 사내는 손에 묻은 돼지기름을 바지에 슥슥 닦아 낸 뒤 서찰을 건네받았다.

“엉? 이것들 봐라?”

동추의 반응은 몽도와 다르지 않았다.

“웃기지?”

“웃기는구먼.”

“분명히 숨겨진 게 있어. 이거 그냥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몽도는 잔뜩 떡진 머리를 긁적이면서 서찰의 내용을 되뇌었다.

‘살’은 상대를 죽이라는 뜻이다. 은이나 폐가 아니니 대놓고 죽여도 된다는 뜻이다.

‘동일’은 미리 지정해 둔 상대의 숫자나 규모가 변함없이 똑같다는 뜻이다.

‘도주’는 죽이자마자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한번 도망치면 의뢰주인 칠성상회와는 석 달간 접촉이 없어야 한다. 추적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내용인 ‘특급’은 보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껏 몽도 패거리에게 맡겨진 일은 보통 중급에서 상급.

허나 특급이면 금괴 하나 정도는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상대는 몸도 못 가누는 늙은이인데 곧바로 도주해야 하고, 거기에 특급 보수다? 보수가 크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건데……. 이걸 물어? 말어?’

몽도는 중요한 일이란, 그만큼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수없이 깨달았다.

“엉? 뭘 고민해. 당연히 해야지?”

동추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건 말이지. ‘작별 인사’ 같은 거야. 우리랑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많이 준다는 뜻이라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두목, 우리 슬슬 본거지를 만들 때가 됐잖아?”

“으음…….”

“나랑 꼽추 빼고도 두목을 따르는 들개들이 서른 명이야. 슬슬 규모를 더 키우는 게 어때?”

몽도는 머리가 복잡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규모를 키우는 데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계속해서 생각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흑저, 목표는?”

“마차 타고 출발했다니 조만간 지나갈 거유.”

“돈은?”

“절반 받아 왔수. 두목.”

“그게 얼마야?”

“여기…….”

흑저는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있는 낭인들의 눈치를 보며 몽도에게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허?”

“어엉?”

몽도는 탄식했다.

금괴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즉, 일이 성공하면 금괴 하나를 더 주겠다는 뜻이었다.

“두목, 하자. 이건 해야 돼. 중늙은이 하나 죽이고 이만한 돈을 주는 기회가 그리 흔할 것 같아?”

동추는 금을 보더니 의욕이 넘쳐나고 있었다. 잔뜩 흥분해서 숨까지 씨근거렸다.

“기다려 봐라.”

“씨벌, 뭘 고민해! 이것 가지고 규모만 좀 더 키우면 우리도 낭인 왕이야!”

“…….”

“언제 이렇게 소심해졌어! 씨벌, 하자니까!”

“입 닥쳐.”

몽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잔뜩 흥분했던 동추는 움찔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일을 할지, 말지는 내가 정한다. 넌 입 닥치고 있어.”

“끄응.”

동추는 완전히 압도당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까다로운 자식들.’

동추뿐만이 아니다. 낭인들의 세계는 주기적으로 짓눌러 주지 않으면 기어오르는 것들뿐이다.

“흑수 이 새끼……. 무슨 생각이냐.”

몽도는 흑수라 불리는 칠성상회의 손오를 떠올렸다.

지금껏 단골 중에서도 최상급 단골이었던 자다.

항상 시키는 일은 단순하면서 명료했고 보수는 높았다.

한데 마지막에 이런 골 때리는 일을 넘기다니.

“꼽추, 네 생각은 어때?”

“낄낄, 나야 뭔 생각이 있나. 그냥 활 쏘고, 돈만 많이 주면 좋지.”

툭 튀어나온 이마에 사마귀가 잔뜩 달린 커다란 코, 등에 커다란 혹을 달고 있지만 다른 꼽추들과 달리 덩치가 컸다.

거구 중의 거구인 동추랑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목과 그 주변의 승모근이 비정상 적으로 발달해서 두꺼웠고, 그 대신이랄까. 양손이 새 다리처럼 가늘었다.

“흐음.”

몽도는 고민했다.

주변 들개 놈들을 보니 다들 돈을 벌고 싶어 눈이 뒤집힌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기회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상대는 정이품 포정사. 거물 중의 거물. 그렇지만 호위는 없음.’

미리 알고 있던 정보를 다시 한번 되뇌어 본 뒤, 몽도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도박을 한번 할 때도 되었지. 한다, 진행해.”

“파하핫! 좋아! 두목. 그래야지!”

동추가 벌떡 일어나 숲속으로 달려 나갔다.

“낄낄, 대목이구만! 공돈이야! 얼씨구. 좋네! 아주 좋아!”

광기 어린 웃음을 토해 낸 꼽추가 언덕 위로 뛰어갔다.

“들개들아. 놓치면 안 된다.”

“예이!”

서른 명의 낭인들이 각자 쇠사슬과 그물을 들고 동추가 향한 방향으로 뒤따랐다.

몽도는 모든 지시를 내린 뒤 꼽추가 올라간 언덕으로 따라갔다.

끼기기긱―.

그곳엔 이미 꼽추와 미리 기다리던 꼽추의 하인 두 사람이 활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꼽추가 쏘는 활은 보통 활이 아니다.

크기가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보다 더 크고, 물소의 뼈와 튼튼한 오동나무를 몇 겹이나 덧대어서 만든 데다가, 활줄은 고래와 코끼리의 심줄을 섞어서 엮은 귀물(鬼物)이었다.

그뿐인가? 화살은 화살대와 깃까지 온통 쇠로 만든 철창이었다.

“두목, 이번 일 끝나면 목돈 좀 주는 거요?”

“평생 못 만져 본 큰돈을 챙겨 주마.”

“낄낄. 좋아, 좋구나!”

꼽추는 제자들이 미리 둑을 쌓고 그 위에 수평으로 고정해 둔 활 앞으로 다가갔다. 제자들이 철창 화살을 장전하고, 꼽추를 위해 개조된 납작한 화살 깃과 함께 활줄을 입에 물려 주었다.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는군.”

“클클.”

꼽추는 둔탁한 발음으로 웃은 뒤, 괴물 같이 발달한 승모근을 부풀리며 몸을 뒤로 젖혀 활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두 명의 제자는 납작 엎드려 꼽추의 발을 지탱했다.

끼기기긱―.

거대한 활이 비명을 토해 냈다.

꼽추를 제외한 세상의 그 어떤 궁사도 할 수 없는 일.

비정상 적인 육신을 장점으로 극대화시킨 괴인(怪人)이 이곳에 있었다.

화살과 동등한 눈높이를 유지한 꼽추의 시선이 거친 길을 내달리는 쌍두마차에 닿았다.

시선이 닿는 곳, 그곳은 곧 파괴된다.

“파!”

꼽추의 입이 벌어지고, 새카만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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