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7화
제4장. 낭관(郎官)(2)
가까운 곳에서 낙뢰(落雷)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그 파괴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말이다.
소호는 고작 열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나무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봤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당시 다섯 살의 나이였다.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섬광 뒤에 반딧불 같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아름드리나무 하나가 통째로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놀라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저렇게나 커다란 나무도 번개 한 방에 다 타 버리는구나. 엄청 허무하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십 대의 소년이 된 지금, 소호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그때 아름드리나무가 번개를 맞는 모습을 본 게 자신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고.
그렇게 커다란 나무도 번개 한 방에 다 타버리니, 삶이란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소호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다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으음…….”
소호는 밑에서 들려오는 신음을 들으며 제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천둥 번개 같은 폭음이 들리는 순간 마차가 뒤집어진 것까진 기억이 났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차는 박살 나서 천장이 날아갔고, 깨진 벼루와 구겨진 서류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청각이 예민했기에 사방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
“얘들아 괜찮아?”
소호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미미는 멀쩡해 보였다.
멱살을 잡아서 바닥에 눕혔던 섭주해도 이마를 좀 문지르긴 했지만 멀쩡하게 일어섰다.
“이게 무슨…….”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노인은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누군지 몰라도 노인을 화나게 한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옥아, 넌 어때?”
소호는 막내에게 시선을 돌렸고, 이내 마차의 한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쭈그려 앉아 잔뜩 공포에 휩싸인 기옥을 발견했다.
“기옥아?”
“……때문 왔어. 왔어…….”
“기옥아.”
기옥이는 귀까지 틀어막고 중얼거렸다.
“왔어. 결국 쫓아왔어. 날 쫓아온 거야. 죽을 거야. 사지가 찢겨서 죽게 될 거야…….”
“기옥아!”
소호는 기옥의 양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안심해.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만 따라와. 별일 없을 거야.”
“정말?”
“당연하지”
소호는 자신감 있는 얼굴로 기옥을 안심시킨 뒤에 일어섰다.
“할아버지 누군가 습격한 거죠?”
“으음.”
노인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소호는 바닥에 박혀 있는 두꺼운 철창과 박살 난 마차 바퀴를 가리켰다.
“저것 봐요. 누가 창을 던져서 바퀴를 박살 냈어요. 그래서 마차가 뒤집어진 거라구요.”
“마차…… 아!”
노인은 황급히 마차의 앞부분으로 뛰어갔다.
마차는 이미 문이고 뭐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박살 나 버려서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소호도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밖으로 나섰다.
“이봐! 정신 차리게. 이봐!”
“대인…….”
말 두 마리가 바닥에 넘어져 있다.
박살 난 마차의 파편이 주변에 가득했고, 뒤집힌 마차가 마부의 하체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쿨럭.”
마부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 냈다. 주변의 땅은 이미 마부가 흘린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미미야!”
“으응.”
소호는 미미와 함께 마차를 옆으로 밀었다. 커다란 마차가 옆으로 기우뚱 넘어갔다.
“너희들……?”
노인은 놀란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부상당한 마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차를 치웠더니 더욱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상처, 피, 드러난 뼈.
미미와 소호가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차 바퀴를 갈지 말 것을 그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급하게 구한 마차 바퀴였는데……. 오래된 마차랑 안 어울려서…… 한참 고민을……. 허허, 결국 마차랑 운명을 같이 하는군요…….”
“사람 참, 별생각을 다하는군.”
“죄송합니다. 대인…… 더 모시기는 힘들 것 같군요……. 다른 마부를 구하셔야…….”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자네 말고 다른 마부는 필요 없어.”
“무사하셔서 다행…… 끄응, 혀가…… 잘 안 움직…….”
“더 이상 말하지 말게.”
“허허, 마지막은……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부는 이미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초연한 얼굴이었다. 그게 노인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동안 감사…… 그리고 이걸…….”
“이건…… 이봐, 이런 걸 갖고 있었나?”
“제가 모신 건…… 하남의 왕, 포정사 어른…… 준비는 당연…….”
마부는 새카맣게 칠한 대나무 통을 노인에게 건네주고 숨을 거뒀다.
평생을 충성하며 노인을 보좌해 온 마부의 죽음이었다. 냉정해 보이던 노인도 격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칠성상회!”
노인의 목소리에서 증오가 느껴졌다.
소호는 노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침묵을 지키는 넓은 등이 폭풍 전야의 하늘처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단번에 덤빌 줄이야……. 한 방 먹었군.”
노인은 마부의 눈을 감겨 준 뒤, 건네받은 대나무 통을 하늘을 향해 내던졌다.
파란 하늘에 붉은빛 연기가 뿌옇게 부풀어 올랐다.
연흔전(煙痕箭)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사천 쪽으로 가면 먼 곳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할아버지,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소호는 노인의 넓은 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꼬마야, 내 이름은 이백이다. 하남의 포정사 이백이다.”
“저는 소호예요. 은자촌의 장소호.”
이백이 뒤를 돌아보았고, 소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래, 소호야. 너는 지금부터 아이들과 함께 수풀 속으로 숨거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몰래 도망쳐.”
“저희끼리 도망가라고요?”
“그래. 그리고 혹시…… 아니, 아니다. 얼른 도망치거라.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구나.”
이백은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 같은 얼굴에 강직한 표정, 거기에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눈빛이 합쳐져 있었다.
“할아버지.”
“음?”
“이백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네요.”
결연했던 노인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냥요. 우리 마을에 계신 할아버지들이 생각났어요.”
“뭐라고?”
노인은 소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반면에 미미와 주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그러네요. 소호 형.”
“그러고 보니 더덕 할아버지랑 닮은 것 같아.”
“에이, 추 할아버지는 덩치가 더 크신걸?”
“그건 그렇지만, 얼굴은 비슷한데?”
“그런가?”
미미와 주해가 소곤거리며 이야기했다. 소호는 자신들을 지켜 주려는 노인에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이백 할아버지의 말은 틀렸어요. 저 사람들은 어차피 우릴 안 놔줄 거예요.”
“뭐라고……?”
“다짜고짜 이 마차에 창을 쏴서 박살 냈잖아요? 그럼 그 안에 있는 건 누구든 없애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
“어떻게 생각해, 주해야?”
섭주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소호 형. 교섭의 여지가 있다면 말이라도 걸었겠죠. 저 사람들은 증인도 남기기 싫은 것 같아요.”
“우리도 가만 안 두겠지?”
“그럴 확률이 높겠네요.”
소호는 그것 보라는 듯 이백을 바라봤다.
“너희는…….”
이백은 한참 머뭇거리며 말을 골랐다.
“특별한…… 아이들이구나.”
“그런가? 전 잘 모르겠어요.”
소호는 씩 웃은 뒤에 말했다.
“같이 도망가요. 다행히 여기부턴 저희가 길을 알아요.”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이냐?”
“음, 아마도요?”
소호는 씩 웃으며 품 안에서 청동과 황동으로 만들어진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딸랑.
영롱한 방울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갔다. 소호는 기옥을 등에 업고, 미미가 주해를 업도록 시켰다.
그리고 이백의 손을 붙잡고 좌측의 수풀로 뛰어들었다.
***
몽도 패거리에는 싸움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많다.
낭인으로 살면 다들 혈(血)이나 잔(殘)같은 험악한 별호 하나씩은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막장 인생들 중에 고르고 고른 성질 더러운 인간들이 바로 몽도 패거리의 들개들이다.
들개들은 거칠고 집요했다.
충성심? 의리?
그런 건 없다.
그들이 몽도를 따르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돈을 많이 주니까.
둘째, 임무를 마치고도 살아 있을 수 있으니까.
돈과 의리만이 몽도 패거리의 들개들을 유지시키는 힘이었다.
그런 들개들 중에서 최고의 싸움꾼이 누구냐고 하면, 백이면 백 동추를 꼽는다.
동추는 낭인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불주연사(佛珠連射)라는 암기술을 소림사 출신 승려에게 배웠다는데 그걸 믿는 들개는 아무도 없었다.
무림강호의 태산북두로 칭송받는 소림사에서 암기술 같은 걸 쓰는지도 의문이고, 만약 불주연사라는 무공이 존재한다 해도 그걸 함부로 외인에게 가르쳐 주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추가 강하다는 것이다.
무공과 힘, 거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까지 있다.
대장인 몽도만 없었다면 패거리의 대장이 되고도 남았을 인물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동추가 으르렁거리자 들개들은 꼬리 내린 개처럼 고개만 푹 숙였다.
“마차가 박살 났네? 꼽추가 활을 잘 쐈겠지. 응, 당연한 거야. 근데 왜 여기에 사람이 없지? 지금쯤 그물에 잡혀서 무릎 꿇고 있어야 하잖아? 들개들은 뭐했냐? 기어서 왔어?”
“…….”
“왜 사람이 없냐고? 장난해? 나랑 놀자는 거야 지금?”
동추가 옆에 서 있던 들개 한 명의 정강이를 퍽 하고 걷어찼다.
“으윽. 뒤, 뒤쫓고 있습니다.”
“쫓긴 뭘 쫓아! 다 늙어 빠진 늙은이 하나를 못 잡아 오고, 지금 ‘쫓고 있다’고 말하는 거냐? 엉?”
“그게 조력자가 있어서…….”
“조력자라니. 무슨 조력자?”
“알고 보니 마차에 꼬마 몇 명이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동추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꼬마 몇 명이 조력자냐? 짐이지?”
“그게…… 이 꼬마들은, 아닙니다.”
“뭔 소리야?”
“보통 꼬마들이 아닙니다. 이 근처의 지리를 귀신 같이 잘 알고 있어서 자꾸 코앞에서 놓치고 있습니다.”
동추는 보고하는 들개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컥!”
“헛소리 하고 있어.”
보고하던 들개가 뒤로 넘어졌다가 벌떡 다시 일어섰다.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내해. 어느 쪽이야?”
“저쪽…….”
동추는 안내받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오른쪽!”
소호가 외치자마자 곧바로 모두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틀어졌다.
빽빽한 덤불 사이에 몸 하나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기옥을 업은 소호가 먼저 나가고 그다음 미미, 마지막으로 이백이 따라갔다.
“잡앗!”
휘리릭.
뒤따라오던 들개 몇 명이 그물을 던졌지만 주변에 빼곡한 덩굴식물에 걸려 오히려 입구만 틀어막았다.
“뭐하는 짓이야!”
“통째로 뜯어 버려! 멍청아!”
들개들은 허리에 차고 있던 박도를 뽑아 넝쿨을 잘라 내고 그물을 뜯어낸 뒤에 계속해서 쫓아왔다.
“이쪽!”
소호는 커다란 바위 밑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어깨가 넓은 이백에게는 모자란 크기였지만 이백은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감수하며 억지로 몸을 집어넣었다.
먼저 빠져나간 소호와 미미가 이백의 손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이백이 겨우겨우 동굴에서 빠져나올 때쯤 들개들이 동굴에 들어섰다.
“아저씨들!”
소호는 동굴 끝에서 반대쪽의 들개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만 쫓아와요!”
“개소리!”
약이 바짝 오른 들개들은 으르렁대며 욕을 해 댔다.
잡히면 죽는다거나,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살려는 주겠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럼 그러시든지.”
소호는 혀를 내밀고 놀린 뒤 미미에게 신호를 줬다.
“이얍!”
미미는 귀여운 목소리로 기합을 지르며 동굴의 끝을 지탱하던 커다란 통나무를 옆으로 밀어냈다.
드드드드.
“으어어!”
“뒤로 빠져! 무너진다!”
들개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되돌아 나갔다. 동굴은 금세 폭삭 내려앉아 돌먼지를 뿌옇게 피어 올렸다.
“잘했어! 미미야! 역시 대단해!”
“헤헤.”
소호는 부끄러워하는 미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백 할아버지. 이제 천천히 가도 돼요. 여기만 막히면 옆으로 많이 돌아와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이백은 높은 협곡으로 막혀 있는 주변 지형을 훑어본 뒤 헛웃음을 삼켰다.
“내가 꿈을 꾸는 건지……. 정말로 너희가 날 살려 주다니.”
“살려 주다뇨. 같이 도망친 건데.”
소호는 씩, 하고 웃은 뒤 이백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좀 더 가야 해요. 여긴 아직 은자촌이 아니구요. 자작나무 숲만 지나면 완전히 안전해질…….”
소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땅이 진동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그들이 무너뜨린 동굴에서 자그마한 돌덩이들이 분수처럼 튀어 오른 것이다.
“어?”
소호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굉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쾅. 쾅. 쾅. 쾅.
굉음이 울릴 때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돌멩이들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다섯 번째 굉음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동굴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후우, 망할 꼬맹이들. 감히 이 몸을 고생시켰겠다?”
커다란 덩치.
반쯤 벗겨진 대머리. 온몸에 휘감은 쇠사슬과 누런빛의 쇳덩이.
몽도 패거리의 돌격 대장, 동추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