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22화
제4장. 낭관(郎官)(7)
“빌어먹을.”
몽도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눌러 보고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내부 장기도 상했는지 속이 미식거리면서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대장. 저기, 조금 천천히 가도…… 아뇨, 아닙니다.”
몽도가 핏발이 선 눈으로 옆을 노려보자 함께 도망치던 낭인들이 모두 시선을 피했다.
“쉿!”
몽도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뭔가 다가온다.”
숨죽인 낭인들이 병기에 손을 가져갔다. 쿵쿵거리는 진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향은 서쪽.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하얀색 자작나무 숲 방향이었다. 조약돌만 하던 진동이 어느새 바위덩이를 굴린 것 같은 굉음으로 변했다.
모두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만한 소동인데도 시야를 완전히 가린 자작나무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서웠다.
무언가 부서지고, 부러지고,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까웠다.
저 멀리 나무 위로 나뭇잎과 먼지가 피어오르는 흔적이 보였다.
그들은 우뚝 선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지한 상태로 죽을 운명 같았다.
콰드득.
마침내 시야에 보이는 자작나무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휘청이기 시작했을 때, 첫 비명이 허공을 찢었다.
“우아악!”
시커먼 그림자였다.
거대하고, 두꺼웠으며, 윤기가 흐르는 털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귀찮다는 듯한 몸짓으로 자작나무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곰?”
몽도가 당황 반, 어이없음 반의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이야!”
쿠웡―.
“저 아저씨들이 우릴 괴롭혔어!”
쿠워어엉―.
몽도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듣나 의심했다.
그들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곰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양옆으로 땋은 소녀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저게 무슨?”
아까 도망친 어린 소녀가 저 거대한 곰의 등에 올라타 있다니!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곰이 그 소녀와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크르르릉―.
소녀가 지목하자마자 곰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몽도는 직감했다. 처음이 그저 위협이었다면, 이번엔 습격 직전의 경고였다.
“어이, 얘들아. 아무리 우리가 도망치는 중이지만. 그래도 고작 짐승한테 겁먹을 테냐.”
몽도는 두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나섰다.
“잘 들어라, 미물아. 이 몸은 몽도. 장차 낭인왕이 될 사나…….”
퍽, 몽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대장!”
“위험해! 받아!”
몽도는 낭인들 아홉 명이 온몸을 던져 받아 낸 뒤에야 멈춰 설 수 있었다.
그는 기침을 쿨럭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아름드리 거목도 베어 내는 그의 당랑도에 금이 가 있었다. 반면에 괴물 같은 곰은 여전히 멀쩡한 앞발로 땅을 두드리며 달려왔다.
‘뭐가 이래? 이 동네는 대체 뭐야? 왜 이런 이상한 것들만 가득 있는 거야?’
아까부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몽도는 벌떡 일어나 낭인들에게 외쳤다.
“도망쳐!”
“어어? 예?”
“멍청이들아, 저건 곰이 아니다. 괴물이지. 도망쳐!”
“어어어?”
몽도와 그를 따라 얼떨결에 달리기 시작한 낭인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거대한 곰이 다 함께 삼산(三山)을 오르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두두두두―.
쿠워엉!
“허억, 허억!”
몽도는 뒷일 따위 생각 않고 전력을 다해 신법을 전개했다.
따라오던 낭인들이 하나둘씩 거대한 앞발에 얻어맞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모른 척 주야장천 달렸다.
그렇게 능선을 얼마나 올랐을까.
어느 순간 지대가 평탄해지는가 싶더니, 사람의 손이 닿은 게 분명한 밭고랑과 푸르고 왕성하게 자라난 어떤 작물들의 밭이 나타났다. 따라오던 낭인은 이제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살았다! 마을이 있겠어.’
몽도는 그가 달리는 길목의 중간에서 밭을 살펴보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영감! 저리 비켜! 방해된다!”
몽도는 노인이 놀라서 나자빠지면 자신은 마을로 직행할 생각이었다.
따라오는 곰이 노인을 공격할 수도 있긴 하지만 알게 뭔가.
일단 그가 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크흠!”
“……응?”
그런데 노인은 놀라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하며 일어서더니 팔짱을 끼고 몽도를 가만히 응시했다.
‘뭐지?’
오히려 당황한 것은 몽도였다. 생각보다 노인네의 덩치가 크다는 생각과 함께 노인이 덩치만 믿고 괜히 객기를 부린다 싶어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꺼지라니까!”
노인의 눈썹이 꿈틀한 것과 몽도의 멱살이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컥?”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무언가에 부딪쳐 본 적이 있는가?
몽도는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천하의 몽도가 한낱 촌부에게 멱살을 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네가!”
몽도의 허리가 회전했다. 비록 불의의 일격으로 멱살을 잡혔을지언정, 평생을 단련한 방어 본능은 그가 상대를 벨 수 있도록 움직여 주었다.
쉬익―.
한 팔 정도 잘라 버릴 마음으로 휘두른 수직의 참격(斬擊).
반면에 상대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맨주먹이었다.
누가 봐도 뻔한 결과는 기적처럼 뒤집어졌다.
쩡!
몽도는 마치 거대한 바위가 얼음을 쪼개듯 자신의 당랑도가 명쾌하게 반토막 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다.
‘뭐야? 이게 무슨! 설마, 이 노인네도……?’
단단한 주먹이 당랑도의 칼날을 옆에서 후려쳤다.
어떠한 무기도 없었다.
그저 맨주먹이 칼날을 부러뜨리고, 몽도의 심장 위 가슴 한복판을 후려쳤다.
“쿠헉!”
몽도는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한 손으론 여전히 멱살을 잡은 채, 호랑이 같은 눈으로 그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동네 강아지를 혼내는 듯한 모습.
그는 그러다 몽도를 쓰레기처럼 바닥에 내팽개쳤다.
“크흑.”
몽도는 퍽,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는 하필 또 갈비뼈를 얻어맞았다.
괴물 같은 꼬맹이 삼촌에 괴물 같은 곰, 거기에 더더욱 괴물 같은 노인까지 이번이 세 번째가 아닌가.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기라도 한 건지 기침과 함께 피가 계속 튀어나왔다.
“젠장…… 쿨럭, 이 빌어먹을 마을……. 대체 여긴 뭐야. 이 늙은이……는 또 뭐고!”
몽도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당랑도가 부러지면서 그의 자신감도 박살 났다.
“나 말이냐?”
건장한 노인.
장강용왕 추묵환은 무심한 얼굴로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난 그냥 더덕 캐는 노인이다. 이놈아.”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몽도는 비웃는 얼굴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적막한 공간. 코끝을 간질이는 산들바람. 온몸으로 내리쬐는 화사한 햇볕.
하남 포정사 이백은 평안한 오후의 조건을 다 갖춘 곳에서 차를 한 잔 대접 받고 있으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이 위험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어깨를 칭칭 감은 붕대만 없었더라면 더욱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삼산현에 와서 겪은 경험들은 흥미롭고 경이로웠으며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이곳이 있다.
이백은 다실(茶室) 한편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풍운객잔(風雲客棧).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게다가 글씨는 또 어떤가.
명필인데 명필로 쓰여 있지 않았다. 마치 평범함을 가장하려 애쓴 느낌이다.
이백이 지그시 현판을 응시하고 있는 사이 한 사람이 다실로 들어왔다. 이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를 맞이했다.
나이나 직위를 떠나, 상대는 그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호 아버지, 장기린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포권을 취하는 장기린은 왠지 모르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사내였다.
이백 역시도 정중한 포권으로 예를 받았다.
“하남의 관인(官人) 이백이라 하오. 그대의 동생과 아들 소호에게 구명의 은을 받았소. 내 이름을 걸고 맹세컨대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오.”
장기린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묵묵히 고개를 젓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과한 은(恩)은 필요 없을 일인 듯합니다.”
“부담스러운 것이오?”
“그렇습니다.”
평소 폐부를 찌르는 직설로 유명한 이백이지만 장기린 역시도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었다.
이백은 두 눈에 이채를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
범상치 않은 인물일 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이건 기대 이상이지 않은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장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소?”
“이득을 탐해 의를 행한다면 그 또한 장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장기린은 단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나는 은혜를 갚고 싶소.”
“애초에 은혜가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소?”
“소호 녀석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 노력했을 뿐이고, 동생은 그런 조카가 걱정되어서 나가 살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이백은 인상을 찌푸린 채 직감했다.
상대는 싸움꾼이다.
평범한 옷을 입고 화전촌에서 허름한 객잔을 하나 경영하고 있지만, 그의 본질은 수많은 싸움을 이겨 낸 싸움꾼이 분명했다.
‘허, 이것 참.’
은혜를 갚겠다는 사람이 갚지 말라는 사람과 싸우게 되다니.
이백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승부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역시도 황실에서 말싸움이라면 닳고 닳은 노장이 아니던가.
“내 은인에게 한마디 하겠소.”
“말씀하십시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소호라는 아이와 함께했소. 그 아이의 특별함으로 보건대, 이 늙은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애초에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 것 같았소. 혼자였다면 유유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 같았단 말이오. 내 말이 틀린 것이오?”
“…….”
처음으로 장기린이 침묵했다.
“그러니 소호라는 아이와 그대의 동생은 나에게 은인인 것이 맞소. 나는 은혜를 갚을 것이오. 그게 무엇이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건 내가 물어야 할 일 아니었소?”
이백은 웃었다.
떼를 쓴 거나 마찬가지지만 어쨌거나 항복을 받아 낸 셈이다.
‘귀찮아서 져 준 것 같긴 하다만.’
어쨌거나 승리의 과실은 달콤했다.
“하남의 관직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 이런 첩첩산중에 능력이 있는 인물과 특별한 아이가 살고 있다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터. 그러니 어설픈 은혜는 오히려 마을이나 객잔에 폐가 될 것 같았소.”
이백은 풍운객잔이라는 현판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꺼내 보았다.
“그래서 생각했소. 나는 소호라는 아이에게 은혜를 입은 몸.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호가 세상에 대한 경험이 너무 적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소. 그 아이에게 이 마을은 안전할 테지만, 동시에 성장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될 것이오.”
평생 관직을 지켜 온 이백의 식견은 잘 갈린 칼처럼 날카로웠다.
천하의 장기린조차 그 말에는 토를 달 수 없이 아플 만큼 부모의 마음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낭관(郎官)이라는 직책이 있소. 상서(尙書:장관)의 보좌. 굳이 따지자면 문서를 관리하는 직책인데. 팔(八)등관에 녹봉은 사백 석이고, 보통 고관의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라오. 내게도 낭관 자리가 하나 있지만…… 삼십 년째 비어 있었소.”
이백은 단정히 앉아 장기린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대만 괜찮다면, 나는 소호에게 그 직책을 주고 싶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한적한 공간.
평화로운 객잔 안에서 긴장된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장기린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