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24화 (153/686)

1권 24화

제5장. 중립(中立)의 땅(2)

진하는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누군가 말을 걸면 대부분 받아 주는 편이지만, 심기에 거슬리거나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곧바로 단검을 이용해 왔다.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레의 주인은 심기에 거슬릴뿐더러 귀찮기까지 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해한다는 식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듯이, 그녀에게 있어선 그런 방식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살지 않는 게 위험천만하고 바보 같아 보일 정도였다.

쉽고 빠른 길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한잔 드세요.”

소년이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내온 차는 향기가 아주 좋았다.

진하는 풍운객잔 내부 탁자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입술을 촉촉하게 적실 만큼만 살짝. 놀랍게도 혀끝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맛이 기가 막혔다.

“맛있어.”

진하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끝 맛이 살짝 달게 느껴질 정도로 입맛을 당기는 차는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이름난 다실(茶室)을 찾아다닐 만큼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 그녀조차 감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니가 맛있다고 하는 차는 오랜만이네?”

“그러게 말이야, 진진. 이 차를 탄 사람은 누굴까?”

“물어보면 되지!”

진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었다.

계속해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다.

“야! 이 차 누가 탔어!”

“응?”

진하는 진진을 나무랬다.

“진진 그렇게 막무가내로 물어보면 안 돼.”

“뭐 어때! 칭찬할 건데!”

“얘가, 버릇없기는. 눈에 띄는 행동은 하면 안 돼.”

진하가 진진에게 한 마디 하는 사이, 소년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차는 운찬 삼촌이 끓인 거예요.”

“운찬 삼촌이 이 객잔의 주인이니?”

“아뇨. 운찬 삼촌은 풍운객잔의 숙수예요.”

“숙수? 요리사?”

“네.”

소년은 배시시 웃으면서 뿌듯해했다.

“히힛, 차가 맛있어요?”

“응, 맛있네. 솜씨가 좋은 분인 것 같아.”

“그럼요! 우리 운찬 삼촌은 예전에 항주 제일숙수였던 사람이라구요.”

“그러니?”

진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속으론 믿지 않았다.

천하에서 유흥과 요리 문화가 가장 발전한 곳 중 하나가 항주. 항주에서 제일이라면 ‘천하제일숙수’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차가 맛있긴 하지만……. 천하제일숙수가 이런 화전촌 객잔에 있다고? 그럴 리가 없지.’

어딜 가나 허풍을 떠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진하는 슬슬 ‘정보’를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찻값은 너한테 주면 되니?”

“네, 동전 하나만 주시면 돼요.”

“그래?”

진하는 조심스럽게 탁자 아래에서 단검을 꺼내 손바닥으로 감췄다.

“꼬마야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 줄래?”

“그럼요. 제가 아는 거면 대답해 드릴게요.”

“사실 나는 사람을 한 명 찾고 있어. 얼마 전에 이 근처를 지나갔을 텐데 혹시 네가 봤을까 싶어서.”

“얼마 전에요?”

소년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떤 사람인데요?”

“어떻게 생겼냐면…….”

진하는 품 안에 손을 넣어 초상화를 꺼내려고 했다.

“소호! 너 인마. 감자가 또 쌓여 있어!”

“윽, 진구 삼촌?”

한 사내가 객잔 안채에서 걸어 나왔다.

갈색 피부에 건장한 체격. 키는 보통이지만 온몸이 표범처럼 탄탄해 보이는 사내였다.

나이에 비해 눈빛이 맑고 순수해 보였다.

“오늘도 농땡이 피운다 이거지? 일 안하고! 얼마 전에 큰 형님이 화내셨던 거 몰라?”

“그렇지만 삼촌. 오늘은 엄마가 벽을 닦으라고 시켰는데?”

“사내자식이 변명하는 거 아냐.”

“아니 진짜야!”

“진짜라도 인마. 그렇다고 아버지 말은 무시하고, 어머니 말만 들어도 돼?”

소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될 것 같아.”

“그래. 생각해 보니 나도 그건 그래도 될 것 같다…….”

진구는 인정이 빠른 남자였다. 풍운객잔 내부의 역학 구조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인마! 그럼 감자를 파바박! 다 깎고, 벽을 파바박! 닦으면 되지.”

“우씨, 말은 쉽지! 그걸 언제 다 해!”

“그런 작은 일도 못 하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해. 이 녀석아.”

소호는 분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아쉬운 듯 진하와 진진을 힐끔거렸다.

“어쭈. 인마, 안 가지? 큰 형님께 이른다?”

“치사하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생각나지 않아?”

“으으, 알았어어.”

소호의 어깨가 다시 축 처졌다. 진구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불렀다.

“소호야.”

“응?”

“감자는 됐고, 큰 형님께 가 봐. 너 부르시더라.”

“어? 그래?”

소호는 의아해하면서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남은 것은 진구 삼촌이라 불린 사내뿐. 그는 빙긋 웃으며 진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누굴 찾으신다고요?”

“……아뇨, 아니에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진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동생이랑 좀 쉬다가 가고 싶은데, 방 있나요?”

“예. 안내해 드릴까요?”

“그럼 부탁…… 앗?”

진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발을 삐끗한 듯 균형을 잃었다.

진구는 재빨리 부축해 주기 위해 손을 뻗었고, 진하는 진구의 손을 잡고 균형을 회복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덕분에 살았네요.”

“별말씀을요.”

진구는 진하가 붙잡았던 손목을 털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아가씨치고는 손아귀 힘이 꽤 세시네요?”

“그런가요?”

“하하, 방은 이쪽에 있습니다.”

진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안내해 주었고, 진하는 방 값을 계산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어땠어?”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진진이 물었다.

“그냥…….”

“그냥?”

진하는 밖의 기척을 잠시 살핀 뒤 대답했다.

“별거 아니었어.”

진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뭔가 있어 보이던데.”

“그러게. 근데 그냥 약골이야. 약해.”

“그렇구나. 그냥 운동 좋아하는 보통 사람인가 보다.”

“그런가 봐.”

진하는 왼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다시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근데 언니. 왜 여기에 들어온 거야? 우리가 쫓는 인간은 여기에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우리만 그를 쫓는 게 아니잖아. 틈새를 노려야지.”

“틈새?”

“다들 바깥만 살피고 있어. 당연히 도망쳤을 거라 생각하고 도주로만 찾으니까. 그런데 난 이 정도로 모두가 못 찾고 있다면, 도망친 게 아니라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런가?”

진진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런 조그만 마을에 숨을 곳이 있어?”

“그건 일단 찾아봐야겠지.”

“흐응?”

진진은 침상 위의 푹신한 비단 침구 위에 뛰어들어 몸을 버둥거렸다.

“우아아 기분 좋아.”

“그래? 마음에 드니?”

“생각보다 제법인데! 풍운객잔!”

진진은 이불에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이번 일만 끝내면 우리 한동안 쉬는 거지?”

“한동안이 뭐야. 평생 쉬어도 될 거야.”

“그래? 우리 남해군도에 놀러갈 수 있어?”

“그럼, 네가 보고 싶은 바다 실컷 볼 수 있어.”

“아싸! 놀러 간다아!”

진진은 환호성을 내지르다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언니, 일단 이 근처 구경하고 싶어.”

“그래. 밥 먹기 전에 나갔다 오자.”

진하는 진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그녀의 가족에게 온 정성을 담아.

***

“후우우.”

소호는 잔뜩 긴장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풍운객잔이라 적힌 현판이 보였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꼿꼿한 자세로,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위압적인 공기를 가득 두른 채 조용히 앉아 계셨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앉거라.”

소호는 장기린의 정면에 놓인 방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금 옆으로 움직여서 앉았다.

힐끗 눈치를 보니 아버지는 한겨울의 바위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엄격한 얼굴이다.

소호는 오늘 혼날 것을 직감했다.

“몸은 좀 괜찮으냐?”

“네. 괜찮아요.”

“우 노사께 인사는 드렸고?”

“네. 우 할아버지가 철 좀 들라고 등짝을 때리셨어요.”

“잘하셨군.”

소호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때 맞은 등짝은 생각만으로도 아팠다.

“소호야.”

“네, 아버지.”

“우 노사께서 우리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면 한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였다. 심각한 상세였어. 주해도 마찬가지다. 네가 끌어들인 셈이다. 동생들을 데리고 나갔으면 신중했어야지. 그 아이들은 너를 믿고 나간 건데. 안전하게 지켜 줄 자신이 없다면 무모하게 데리고 나가선 안 되는 일이었다.”

“네…….”

“주해가 언제 깨어났지?”

“주해는……. 사흘 후에 깨어났어요.”

“네 기분이 어땠느냐?”

“제 탓인 것 같았어요.”

“반성했고?”

“네.”

소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잠든 듯 누워 있던 주해를 떠올리니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으으…….”

“사내자식이 함부로 우는 거 아니다.”

“……네.”

“너희 엄마가 네 걱정을 많이 했다.”

“죄송해요.”

유구무언.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경솔함으로 동생들이 다쳤는데.

소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한 방울 뚝 흘러내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 장기린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잘한 점 또한 하나 있다.”

“네……?”

“싸웠다며?”

“아, 네.”

소호는 눈 밑을 슥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역시 내 아들이다.”

“……?”

“동생들이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도 겁을 집어먹은 채 도망쳤다면 난 너에게 더 실망했을 것이다.”

무뚝뚝하면서 정감이 담긴 한 마디.

소호는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의 뿌듯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동생들을 지켜 주거라.”

“네!”

설마 벌써 혼나는 게 끝난 걸까?

소호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장기린은 한결 밝아진 소호를 보며 안심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다만!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되니까, 다른 마을에 가게 되면 삼촌들 중 한 명과 꼭 동행하도록 해라.”

“삼촌들도 다 바쁜데…….”

“삼촌들이 바쁘면 내가 함께 가 주마.”

소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가 장기린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지 말라는 거구나.’

소호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첨사 나리!”

공손책은 시형도(屍形圖)를 내려놓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흑석촌 담당 포두를 바라보았다.

포두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뛰어온 모양이었다.

“수레를 찾았나?”

“그건 아직……. 하지만! 대신에 단서를 찾은 것 같습니다!”

“단서?”

포두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공손책은 인내심을 갖고 얼굴에 튄 침을 닦아 냈다.

“백송촌에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수레가 도착하지 않았답니다!”

“확실한가?”

“예! 촌장과 주민들에게 확답을 받았습니다.”

“가는 길목에 버려져 있지도 않았고?”

“예!”

공손책은 자신만만한 포두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중에 백송촌에서 수레가 발견되면 자네 책임이야.”

“예! 저의 책임……. 예?”

“자신 없나?”

“아, 아니요.”

“그래, 그럼 믿겠네.”

포두는 먹던 만두에서 반만 남은 벌레가 발견된 것처럼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대신에 확실해지면 자네의 공일 테니까.”

“아, 예. 괘, 괜찮습니다.”

포두는 조금이나마 회복된 얼굴로 품 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이걸 발견했는데…….”

“그게 뭔가?”

“백송촌 너머에서 최근에 수상한 인물들이 많이 출몰하고 있답니다. 뭔가를 찾는 것처럼 깊은 산속까지 수색한다고 했습니다.”

“수상한 인물? 수색?”

공손책의 한쪽 눈썹이 찡긋 올라갔다.

“그건 수상하군. 뭘 찾는다고 하던가?”

“왠지 만나기만 하면 도망쳐 버리는 통에 제대로 묻지 못했지만…… 다행히 백송촌 주민 한 명이 그들이 준 초상화를 하나 갖고 있었습니다.”

“초상화?”

공손책은 초상화를 받아 들고 펼쳐보았다.

정성을 들여 그리진 않았지만 특징은 확실한.

누구나 이 그림을 보고, 그 사람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명확한 그림이 눈에 박혔다.

“이건……?”

공손책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분명 그 얼굴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송촌에 가지 않았으면 행선지는 뻔하고, 수상한 인물들이 이 사람을 쫓고 있다……?’

공손책은 잠시 중얼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네, 수색 능력이 있군. 공을 세웠어.”

“그, 그렇습니까?”

“가지.”

포두는 당황하며 물었다.

“저기, 첨사 나리. 가신다면 어디로……?”

“어디긴 어딘가.”

공손책은 관모를 고쳐 쓰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전촌으로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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