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25화
제5장. 중립(中立)의 땅(3)
진구는 과거 말 타는 법을 처음 배울 때, 군문(軍門)의 교관에게서 ‘그게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말을 처음으로 타기 시작한 인간은 대단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야생의 말이 사나운 건 둘째치더라도, 일단 인간이 어떤 동물의 등에 탄다는 개념을 떠올렸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게 무엇이 대단한 건지 몰랐는데…….”
진구는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에 진구는 비슷한 예로 감옥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궁금해졌다.
분명 무슨 나무에 열매 열리듯 처음부터 감옥이 떡하니 만들어져 있진 않았을 것이다.
가축도 울타리 없이 방목해서 키우던 옛 시절일 텐데, 대체 어떤 획기적인 인간이 창살이 있는 억압적인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가둬 버릴 생각을 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엉뚱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진구는 생각을 거듭할수록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감옥 개발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처음으로 그 안에 갇힌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던 것일까?
그리고 최초로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구가 최초의 감옥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나 참, 이런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다니.’
그의 눈앞에 펼쳐진 희한한 광경이 ‘감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건에서 붙잡은 총 서른한 명의 사내들이 각자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었다.
두꺼운 쇠사슬과 사람 머리만 한 철구까지 매달린 특수제작 된 족쇄다. 족쇄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단 하나.
그 열쇠가 어디에 있냐 하면…….
지금 진구의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는 거구의 노인.
바로 그 노인이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었다.
“어르신. 즐거우세요?”
“허허허, 그럼! 즐겁다마다!”
지금이라도 장강 인근에만 가면 신(神)취급을 받을 노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칫.”
“재밌나 보군.”
“망할 노인네.”
곳곳에서 탄식과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묵환이 웃음을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이것들이? 일이 쉽다 이거지? 저 녀석처럼 만들어 줘?”
추묵환이 낭인들의 대장인 몽도를 가리켰다.
한때 그 누구보다 당당했던 낭인왕 후보 몽도.
그는 양쪽 발목에 족쇄를 두 개나 차고, 자랑이던 당랑도 대신 두툼한 쇳덩이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젠장!”
몽도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불만이냐?”
“아닙니다!”
사내들은 곧바로 구령을 붙이며 모두 합심하여 한 가지 작업에 몰두했다.
“헛! 둘! 헛! 둘!”
“여엉차! 여엉차!”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진동하고 실한 뿌리 열매들이 튀어나온다.
서른 명의 사내들이 모두 합심해서 하는 작업.
다름 아닌 더덕 캐기다.
“으음.”
진구는 신음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어르신…….”
“음?”
“어르신께선 더덕으로 부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추묵환이 흠칫 놀라며 부정했다.
“뭣이? 그게 아니야!”
“끄응, 그러면요?”
잘 나가던 낭인들을 붙잡아 더덕 캐는 노예로 부리다니.
진구는 이런 발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우리 소호를 괴롭힌 놈들에 대한 벌. 거기에…….”
“거기에……?”
“내 취미 생활.”
진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국 취미 생활이잖습니까?”
“파하핫! 그렇지!”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천하에서 손꼽히는 거물 중의 거물이 은근히 장난꾸러기에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
“이건 대체 누가 생각해 낸 겁니까? 그리고 이 쓸데없이 잘 만든 쇠사슬은 또 뭐고요?”
진구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쇠사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접쇠에 강(剛) 처리까지? 어이구, 맞물리는 곳엔 연화(軟化) 작업까지. 이거 광 어르신이 만든 거죠? 이 쇠사슬은 뭡니까? 도끼로 내리쳐도 도끼가 이가 빠지겠어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낭비니까 그러죠. 신검을 제작할 기술과 귀한 철로 족쇄를 만들다니…….”
“허허, 만류귀종이다. 기술은 필요한 데 쓰이면 족한 거야.”
“이제 와서 근엄한 척하셔도 늦으셨습니다.”
“파하핫!”
진구는 난감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적룡기마대의 막내는 사교성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구는 이래 봬도 객잔의 주인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지출과 수입에 대한 개념이 확실했다.
“그 눈은 뭐냐. 막내야, 설마 이 늙은이가 쓴 철이 아까운 거야? 그런 게야?”
“끄응, 그건 아니지만…….”
“서럽구나, 서러워. 늙은 것도 서러운데 고작 철 좀 썼다고 이렇게 괄시까지 당하다니. 하긴 중늙은이가 하고 싶은 걸 해서 뭐하나. 얼마 살지도 못 할 텐데.”
추묵환이 서럽다는 듯 가슴을 쳤다.
가슴을 칠 때마다 청년 뺨치게 건장한 팔뚝이 꿈틀거렸다.
진구는 더는 볼 수 없어서 곧바로 항복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어르신 마음대로 하세요. 누가 어르신을 말리겠습니까.”
추묵환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촌장한테는 비밀이다.”
“큰형님은 오히려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아서 문제입니다만.”
진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수님은 저도 몰라요.”
처음으로 추묵환이 움찔한 기색을 보였다.
“말할 거냐?”
“글쎄요.”
고민하는 진구.
추묵환의 승부사적 기질이 번뜩 빛을 발했다.
“흠, 넌 요즘 옆 마을에 미애라는 아가씨와 친하다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껏 네 녀석이 마음에 둔 여성들에 대해 난 전부 들었지. 전부 욕망을 참지 못하고 먼저 들이대다가 차였다면서? 이 야생마 같은 놈아.”
“누가 그런 헛소문을……! 큭, 추룡 형님……!”
진구는 지금쯤 장강에 있을 의형을 향해 마음속으로 원망을 내뱉었다.
천기를 누설하다니. 이 대가는 언젠가 혹독히 치르게 하리라.
“게다가 이번에 손님으로 온 아가씨한테도 치근거렸다며?”
“그건 꽝이에요.”
진구는 벌건 손자국이 남은 팔뚝을 보여 주었다. 추묵환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냐. 어쨌든 찝쩍거린 건 맞지?”
“에휴.”
진구는 포기한 채 추묵환과 시선을 교환했다. 추묵환이 웃었다.
“됐냐?”
“됐습니다.”
사나이들의 마음이 교차했다.
진구는 한 가지만 더 물었다.
“더덕은 얼마나 뽑으실 겁니까?”
“저 산까지만.”
추묵환은 손가락으로 성산 무호의 정상을 가리켰다.
“정상까지 전부요?”
“그래. 이 짓도 질렸어. 한 번에 다 뽑아 버리고 전직하련다.”
“전직이라니.”
진구는 헛웃음을 지었다.
“더덕 다음에는 뭘 캐시려고요.”
“글쎄다. 죽순이나 캘까. 아니다. 요새 버섯이 좋던데 그걸로……?”
뭘 캘지 고민하는 추묵환에게선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때 장강 전체를 지배했던 용왕님이 하는 고민이다. 진구는 웃으면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뜻대로 하십시오.”
“당연하지.”
추묵환은 백발백염의 얼굴로 소년 같은 웃음을 지었다.
***
진구는 추묵환이 감독하는 더덕 캐기로부터 벗어나, 홀로 묵묵히 장작을 패고 있는 몽도에게로 다가갔다.
“거기, 낭인 대장.”
몽도는 움찔했으나 아무 말 않고 묵묵히 장작만 팼다.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충고하러 왔어.”
“필요 없소.”
“듣는 게 좋을걸? 다음번에 또 싸우게 되면 그땐 죽일 테니까.”
싱긋 웃는 진구에게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은자촌에 살면서 부드러워졌다?
아니다.
진구는 전쟁 때 활약한 적룡기마대의 간부들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하게 적을 멸살했던 사람이다.
그 본능을 잠시 숨겨뒀을 뿐. 특유의 야성과 광기는 없애려야 없앨 수가 없다.
몽도는 식은땀을 흘리며 결국 진구를 마주 바라보았다.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군.”
“고작 내가 무섭다니. 진짜 무서운 사람을 못 만나 봐서 그래.”
몽도의 얼굴엔 분노와 체념,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곳은 뭐요? 그 괴물 같던 곰은……! 아니, 아니지. 당신은 누구요? 왜 우리를 죽이지 않은 거요?”
“말도 안 할 것처럼 굴더니 질문은 많네. 일단, 죽이지 않은 이유를 답해 주자면 간단해. 우리 애들이 죽지 않았으니까.”
“이쪽이 죽이지 않았으니, 우릴 죽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지만 착각하지 마.”
진구가 싸늘한 눈으로 경고했다.
“난 우리 꼬맹이들한테 생채기를 낸 것만으로도 너희를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어. 너도 만만치 않게 피를 보며 살아온 것 같은데. 내가 너희들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건 네가 가장 잘 알 거다.”
“그럼 왜……?”
“아까 말했던 ‘진짜 무서운 사람’이 너흴 죽이는 걸 원치 않으셨거든.”
몽도는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명심해. 네가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너희 앞에는 내가 나타날 것이고 그때 너흰 모두 죽을 거다.”
진구는 진심 어린 살기를 담아 말했다.
몽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럼 우린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거요?”
“아니, 일만 마치면 보내 줄 테니 참고 기다려.”
“……이번 일과 관계된 사람에게 연락을 해 둬야 하오.”
“안 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소.”
“너희 문제지.”
“그게 아니라…….”
“여기가 그냥 화전촌인 것 같아?”
진구는 손가락으로 성산 무호의 정상, 서쪽의 백산과 동쪽의 흑산으로 내려가는 능선을 이어 커다란 삼각형을 그렸다.
마을의 외곽 십 리 지점이었다.
“이 선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 우리가 허가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지. 은자촌은 요새야. 네가 말한 ‘문제’는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이 땅에 들어올 수도 없다.”
“……알겠소.”
“이건 충고야.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너흰 나갈 수도 없다.”
진구는 경고의 눈빛을 한번 보낸 뒤 묵묵히 돌아섰다.
“잠깐,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소.”
“뭐지?”
“동추는…… 무사하오?”
“커다란 덩치 말인가? 무사해. 활을 쐈던 꼽추와 제자 둘도 무사하고.”
몽도는 꼽추까지 잡혔다는 것을 듣고 절망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왜 여기엔 없는 거요?”
“그들은 따로 할 일이 있어.”
몽도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얼굴로 자신의 반짝이는 족쇄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진구는 성큼성큼 떠나갔다.
경고는 할 만큼 했다.
그리고 그는 몽도와 그 패거리가 자신의 충고를 어기기를 바랐다.
***
소호는 오늘이 즐거운 하루라고 생각했다.
한 바퀴 산책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동안 마을의 풍경과 다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론 추묵환을 도와 더덕을 캐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신기했다. 사고를 친 벌칙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는 깜돌이와 그 등에 매달린 미미. 그리고 소호에게 쇠사슬을 던지던 못된 거구의 사내를 발견했다.
“미미야! 뭐하는 거야?”
“소호 오라버니! 만수 할아버지가 깜돌이 운동해야 한대서 운동시키는 중이야!”
“그래? 그게 운동이야?”
“응, 깜돌이가 좋아해!”
쿠웡!
깜돌이가 그렇다는 듯이 대답하고 미미도 즐거운 듯 까르르 웃었다.
소호는 저 둘이 언제 저렇게 친해졌나 싶어서 조금 질투가 났지만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깜돌이는 미미를 등에 업은 채 거구의 사내를 껴안고 깨물고, 뒹굴면서 놀고 있었다.
툭탁거릴 때는 퍽퍽거리는 소리가 났고, 뒹굴 때는 쿵쿵 땅이 울렸다.
“아저씨, 재밌어요?”
“…….”
무슨 이유에선지 상대인 동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할 여유도 없는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집중하는 걸 보면 재밌는 모양이다.
“깜돌아, 미미야! 있는 힘껏 실컷 재밌게 놀고! 나중에 봐!”
“응!”
쿠웡!
소호는 객잔으로 향했다. 뒤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착각일 것이다.
객잔에 돌아오니 진하와 진진 자매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음식은 소면.
깔끔한 닭고기 육수에 탱글탱글하면서 고소한 면이 일품인 요리였다.
이미 극찬을 받았는지 숙수인 강운찬이 탁자 옆에서 붉어진 얼굴로 쑥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 왔다!”
소호는 진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당황했다.
“어? 나?”
“이리와 봐! 빨리!”
허리에 한 손을 척 올려놓고 강아지 부르듯 소호를 부르는 진진.
가까이 다가가니 진하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품 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전에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이 사람을 본 적 있는지 한번 봐 줄래? 숙수님도요.”
“물론이죠, 보겠습니다!”
바보처럼 웃으며 냉큼 받아 든 강운찬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르겠네요.”
“꼬마야, 너는?”
진하는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소호에게 그림을 건네주었다.
“이 사람?”
“그래, 본 적 있니?”
소호는 유심히 그림 속 인물을 보고는, 이내 그 밑에 쓰여진 글씨를 읽어 보았다.
당랑도(螳螂刀).
소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림에서 부각되어 있는 특징들을 쭉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못 봤어요.”
“정말?”
“네. 정말로.”
진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