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31화 (160/686)

2권 6화

제6장 대천문(代天門)(2)

‘커다란 장군검을 두 개나……?’

손오는 별명이 흑수다.

검은 손. 칠성상회의 뒷일을 처리하는 해결사였다.

그는 이제껏 온갖 불법적인 일을 해 오며 다양한 무인들을 다 만나 봤다.

굳이 본인이 무공의 고수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많은 인간들을 겪다 보면 탁월한 안목이 생기지 않던가.

강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까.

무력이 강한 것?

명경지수의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

손오는 자신의 별명에 맹세컨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만큼 ‘강한 인간’으로서 모든 걸 갖춘 인물은 본 적이 없었다.

“넌, 대체 뭐야……? 흐윽.”

손오는 흐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양손이 책상 위에 박혔으니 몸을 움직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엄살떨 것 없다, 흑수 손오. 사실 큰 상처는 아니지 않나?”

손을 깨끗이 닦아 낸 사내는 다시 양털 의자에 걸터앉았다.

“난 악인에게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는 성격이라서.”

“끄윽, 악인이라니……. 난 악인이 아냐…….”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칠성상회의 온갖 더러운 일을 다 처리하던 네가 악인이 아니면 누가 악인이지?”

손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평범한 상인의 가면이 벗겨졌다.

“흐흐, 선이니 악이니……. 의외로 순진한 소리를 하잖아?”

“순진?”

“그런 논리대로라면 세상 모두가 악인이지. 누구나 상황만 갖춰지면 악인이 될 수 있는 법이라고. 난 다른 위선자들과 달리 솔직해졌을 뿐이야. 출세에 가장 빠른 길을 택했을 뿐이고. 사람들에게 물어봐. 거대 상회에서 최연소 상주가 된 나를 모두 부러워할걸? 난 해결사일 뿐이지 악인이 아니란 말이다.”

고통과 공포를 모두 초월한 손오가 핏발 선 눈으로 웃었다.

사내는 차분한 얼굴로 그런 손오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가. 이제 좀 솔직해 보이는군.”

“흐흐, 그래서? 아 참, 몽도와 관련된 일을 철회해 달라고 했나? 싫다면? 죽일 건가?”

“고민 중이다.”

“참고로 말해 두겠는데. 몽도가 관계된 건은 너무 커. 내 목숨보다도.”

손오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붓에 관통당한 양손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거기에 허세를 부려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고 있다는 점도 그를 떨게 만들었다.

“목숨보다도 크다?”

“흐흐, 그래.”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몇 걸음을 걸으며 말했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가장 믿고 따르는 형님이 객잔을 사려고 했는데 그 전 주인이 객잔의 값을 몇 배나 부풀려서 받으려 한 거다. 그 형님은 원래 그릇이 큰 분이었어. 인연의 값이라며 그냥 그 값을 쳐서 사 버리셨다. 물론 나중엔 형님의 안목이 맞았지. 객잔은 그 가격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었고, 사기를 쳐서 돈을 받은 전 주인은 모든 걸 잃고 결국 망해 버렸다.”

손오는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그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난 형님과 생각이 달라.”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장군 검의 칼날이 손오의 턱밑으로 다가왔다.

칼을 어떻게 뽑았는지, 어떻게 휘둘렀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저 어느 순간 칼날이 손오의 턱밑에 있었다.

“우악!”

손오는 황급히 상체를 뒤로 뺐다.

책상에 박힌 양손에서 피가 울컥 새어 나왔다. 그는 당황하였다. 사내의 차가운 눈빛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박히는 기분이었다.

“사기꾼에게는 단죄를. 속이려는 자에게는 응징을.”

“자, 잠깐. 무슨 말이야?”

“잠시나마 그 사기꾼이 큰돈을 갖고 즐겼다는 것이 난 용납이 안 된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누군가가 피땀을 흘려 번 돈을 사기 쳐서 뺏으려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큰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

“뭐……?”

칼날이 닿은 목에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 그의 앞섶을 적셨다.

“흡.”

손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크게 떴다.

“너도 마찬가지다. 난 속아 주지 않아.”

“잠깐! 자, 잠깐! 저, 정말로 죽일 거냐?”

“물론.”

사내의 눈빛은 냉랭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자, 잠깐! 기다려 봐!”

농담이 아니다.

허장성세도 아니다.

손오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진짜로 죽는다……!’

그는 허세 가득했던 체면을 모조리 끌어 내렸다.

“이대로 죽으면 억울해! 혀, 협상을 해 보자고. 몽도……. 그래. 도대체 뭐 때문에 몽도를 지키려는 건데? 친했어? 옛날에 관계라도 있었나? 이유를 알아야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

사내가 손오의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뭐든지 협조할게. 이야기를 맞춰 보면 되잖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사내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돌아갔다.

“이젠 말이 통할 것 같군.”

“어……?”

“흑수 손오. 잘 들어라. 내게 잔 수는 쓰지 마라. 난 널 없애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내는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손오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몽도로부터 손을 떼.”

“그, 그건. 정말로 내 목숨이…….”

“좋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지. 일단 삼산현에서 손을 떼는 건 어떤가?”

“어……?”

“살수들을 전부 철수시켜라.”

손오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정도는…….”

“좋아.”

사내가 손오의 손에 박혀 있던 세필을 뽑아냈다.

“으으읍!”

어느새 귀신같은 솜씨로 입이 틀어 막혀서 이번에도 비명은 지를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후우, 후우.”

손오는 마치 십 년은 늙은 듯 초췌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몽롱해지는 의식 사이로 차분한 목소리가 암시를 걸 듯 들려왔다.

“흑수 손오. 잘 들어라. 앞으로 너희 상회에 여러 가지 압력이 가해질 거다. 칠성상회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 와중에 네가 살 길은 내 말을 듣는 것뿐이다.”

“뭐……?”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다.”

사내는 삼베 천으로 손을 깨끗이 닦은 뒤 정문을 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남겨진 손오는 멍한 얼굴로 한참이나 굳어져 있었다.

허무함과 고독감.

폭풍이 마을을 휩쓸었는데 홀로 살아남은 듯한 기분이었다.

“흐으.”

손오는 덜덜 떨면서 옷을 찢어 자신의 상처 입은 양손을 압박했다. 다행히 상처가 크지는 않아서 피는 많이 나지 않았다.

‘네가 살 길은 내 말을 듣는 것뿐이다?’

의미심장한 그 말이 반복해서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잠시 후 쌍둥이 호위가 돌아왔다.

그들은 북두칠성 금박이 씌워진 서찰을 한 손에 들고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상주! 큰일이 났…… 무슨 일 있었습니까?”

죽을 상을 한 손오의 얼굴을 본 그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정말입니까? 그리고 그 손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손오는 일단 함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쌍둥이 호위는 그가 믿을 수 있는 수하가 아니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방금 지부장을 만나고 들은 소식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칠성상회 본점에……!”

쌍둥이 호위는 그가 들은 소식을 전해 주었고, 손오는 경악하며 당황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

한 쌍의 장군 검을 허리에 찬 사내는 담벼락을 뛰어넘어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관도에 착지했다.

관도에는 때마침 커다란 마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고,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 덕분에 관도를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 누구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은 잘 마치셨는지요.”

나이는 오십 대 후반. 푸른빛 관복에 옥으로 만들어진 요대, 정갈한 관모를 쓴 관인(官人)이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그를 맞아 주었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도와준 덕분에 잘 끝났소.”

“대인께서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셔도 되었을 텐데요.”

대인이라 불린 자.

적룡기마대의 둘째이자 현재 황실 직속 밀정어사(密偵御使) 부운화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소.”

“그자도 참 불쌍하군요. 대인을 적으로 돌리다니.”

하남 지역 감찰어사 조창(趙昌)은 가여운 눈빛으로 칠성상회의 담벼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소.”

“은자촌에 계신 그분 말이지요?”

“그렇소.”

조창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직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말조심을 하며 살아야 하는 법.

아는 사람만 아는 황실직속 실세. 부운화에게 있어 은자촌의 ‘그분’은 인생의 스승이자 건드려선 안 되는 성역(聖域)이었다.

지금까지 은자촌의 그분을 건드린 자들은 모두 비참한 결말을 맞은 것이다.

“대인, 여기.”

조창은 깔끔하게 접은 서찰을 부운화에게 건네주었다.

“동창 쪽은 막아 두었습니다. 칠성상회 본점엔 오늘 도찰원(都察院)의 감찰어사들이 대거 투입될 예정입니다.”

“뇌물수수와 부정부패 명목이겠지?”

“물론입니다.”

“반발은?”

“있었지만, 금의위와 황군이 투입되어 처리되었습니다.”

“잘 되었군.”

부정부패를 바로잡는 도찰원에 황실 금의위까지 움직인 대규모 작전이었다.

고작 상회 하나가 감히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처리 과정에 문제는 없었소?”

“없었습니다. 대인의 인장을 보여 주니 모두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다만…….”

“다만?”

조창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관 쪽에서 꽤나 시끄럽습니다. 어째서 상회 하나를 잡기 위해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냐구요.”

“칠성상회가 문제가 아니지. 사실 우리의 목적은 그들 뒤에 있는 ‘조직’이잖소.”

“그 조직에 관해 쉽게 말할 수 없으니 주변에 설명이 어렵습니다.”

조창은 조금이지만 난색을 표했다. 부운화는 서찰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조창을 응시했다.

“감찰어사.”

“예, 대인.”

“오늘의 일 때문에 손오는 겁을 먹을 것이고, 그는 결국 우리를 돕게 될 것이오.”

“그가 우리의 간자(間者)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소. 손오 덕분에 우리는 칠성상회, 칠성태극교, 그리고 환관 왕진을 비롯한 그 ‘조직’까지 뒤흔들 수 있게 될 것이오.”

“오 년 간 추적해 온 결과가 드디어 나오는 것이군요.”

“그렇소.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 주길 바라오.”

사실 사적인 복수가 필요했다면 부운화 혼자만 나서도 될 일이었다.

부운화가 이처럼 황실 전체를 움직인 것에는 큰 이유가 있었다.

오 년이 넘도록 그가 추적해 온 조직을 마침내 잡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오늘의 일은 그걸 위한 큰 작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저는 대인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는 조창.

부운화는 맹목적인 신임을 보여 주는 그에게 속내를 고백했다.

“고맙소, 감찰어사. 그렇게까지 말해 주니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예?”

“오늘의 일은 사적인 목적도 조금은 있었소.”

부운화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조창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악인들입니다. 조금쯤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물론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창은 기분 좋게 웃으며 서찰을 하나 더 건네주었다.

“대인, 그리고 이것.”

“이건 무엇이오?”

“부인께서 보내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집에 와서 드시라는군요.”

“으음.”

“가끔은 집에서 쉬셔야지요.”

부운화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조창은 마부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말해 주었다.

부운화와 조창.

더욱 깊게 엮인 인연들은, 큰 뜻을 품은 채 안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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