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3화
제9장 연옥일서(煉獄一曙)(2)
쾅.
거칠게 문을 닫고 나온 양선후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는 안으로 막 들어가려던 간평을 다짜고짜 붙잡아 열 걸음 이상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어어? 잠깐, 왜 이러십니까?”
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이젠 지상으로 이어지는 출입구에 가깝다. 간평은 양선후가 미리 준비해 둔 듯한 간이 의자에 얼떨결에 같이 앉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른 교관들은요? 안에서 뭔가 하는 겁니까?”
간평은 당황하여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신수 계획에는 양선후와 간평 외에도 다섯 명의 교관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체술 교관, 검술 교관, 전투 교관, 전술 교관, 윤리 교관.
모두가 비싼 돈을 들여 구한 최상급 인력이었다. 장래에 나라를 지키는 신수가 될지도 모르기에 교육관도 최고로 엄선된 인력을 구한 것이다.
“카악, 퉷!”
양선후는 새카만 뭔가를 뱉어 냈다.
불쾌한 듯 입을 우물거리더니 수통을 들어 몇 번이나 입안을 헹궈 냈다.
“에잉, 정명환(正明丸)은 약효는 좋은데 너무 쓰단 말이야.”
“예? 정명환이요?”
“크으.”
양선후는 불만을 말하면서도 싱글벙글이다.
간평은 거기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양선후의 이상한 행동은 많이 봐 왔지만, 그중에 이렇게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겁쟁이 간평. 자네 신을 믿어?”
“예?”
“신 말이야, 신. 신령(神靈)이라는 거.”
간평은 뜬금없이 심오한 질문에 당황했다.
“이해가 잘 안 가는데. 관제묘의 무신(武神) 같은 거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기서부터 시작해야지.”
“으음. 그거라면 당연히 믿죠. 저희 집에는 이미 관우상이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몇 개나 있습니다. 부모님도 매일 만사 평탄(平坦)하기를 비셨죠. 그러니 신을 믿고 있는 겁니다.”
양선후가 흥미롭다는 듯이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당연하다?”
“당연하죠. 아니, 오히려 신령을 안 믿는 사람도 있답니까?”
“자네처럼 계산적인 사람도 소원을 빌고 그런다고?”
“네.”
간평은 당연하게 답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영혼이 있고, 죽으면 인연에 따라 환생하고, 생전에 수양하면 환생이 아니라 신령이 되는 것 아닙니까?”
관평의 대답은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세계관과 똑같았다.
모두에게 영혼이 있고, 내세가 또 있으니 이생을 착하고 슬기롭게 살자는 게 요점이다.
“흐흐. 유교, 불교, 도교가 섞여 있군.”
“예?”
간평은 잠시 고민하다 되물었다.
“그럼 양 노사는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아하, 오해하지 말게. 나도 신을 믿으니까.”
양선후는 손을 내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이지.”
그는 ‘킁’ 하고 불그스름한 코를 씰룩거렸다.
“겁쟁이 간평. 자네는 그에 관해서 내가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 알지?”
“양 노사는 전설(前說)과 종교에 관해서는 시대의 석학이시지요.”
“역시 똑똑하구만. 아주 기특해.”
“기특하면 이제 겁쟁이 소리는 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석학의 의견을 좀 들려 주자면 말이지. 예로부터 각지에서 신을 영접했다고 할 때는 다 공통적인 조건이 있었어.”
양선후는 간평의 요구를 상큼하게 무시하며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첫째, 몽환적인 상태에서 한 가지에 심하게 도취된다. 끊임없이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거야. 하나의 단어라든가, 신의 모습이라든가. 혹은 자기가 바라는 소망이라든가. 남쪽의 군도(群島)에서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무당들이 일부러 미약(媚藥)이나 마약(痲藥)을 먹는다더군. 신기하지? 그 정도로 몰입해서 부르짖어야 신(神)이 보인다는 거겠지.”
양선후는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웠다.
“둘째, 절박한 상황. 자신이 극한에 몰렸을 때 신을 영접한다는 거야. 내 생각엔 말이지. 이건 인간의 잠재 능력과 관련이 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미가 초인적인 힘을 내거나, 죽기 직전의 사람이 괴력을 발휘하는 건 흔히 들리는 이야기지. 가끔 뛰어난 사람에게 신들렸다고도 이야기하잖나?”
그는 빨간 코를 부비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간평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양 노사. 그건…….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아니야. 이 세상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 생각해 보란 말이야. 가끔 세상에 나타나는 믿을 수 없이 뛰어난 영웅들. 앉아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든지, 태어나자마자 본 적도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소년. 맹인임에도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소녀. 그런 것들이 어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던가?”
“아니……죠.”
“그렇지? 난 신을 안 믿는 게 아냐. 신은 존재해. 다만 일개 평범한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하나 들어 주는 신이 아니라고 확신할 뿐이야. 그래서 고민했지. 신을 만났다는 영웅과 매일 소원을 비는 평범한 사람은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수십 년 간 그 문제로 고민했고, 난 최후에 결론을 내렸다.”
양선후는 왼쪽 검지와 오른쪽 검지를 천천히 눈앞에서 맞대었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신(神)에게 닿는다.”
양선후는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신이 우리의 소원을 듣는 게 아냐. 우리가 가서 닿는 거다. 핵심은 인간이다. 주체는 우리 사람이란 말이야. 사람이 극도로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목숨을 걸 만큼 간절히 소망할 때,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닿는다.”
코가 붉은 노인이 허공에서 양손을 깍지 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소원이 이루어지지.”
‘팟’ 하고 양선후가 두 손을 다시 펼쳤다.
간평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양선후는 두 눈에서 기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확신과 그 외엔 모두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광기.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종교에 빠진 광신도를 연상케 했다.
“아이들을 지하실에 가둔 건 그래서지. 어둠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다른 건 볼 필요가 없어.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격적으로 극한에 내몰린다. 훗날 명제국의 병사로서 영광을 누릴 거라는 단 하나의 목표는 좋은 지향점이야. 목표를 주고 자연스럽게 충성심도 생기지. 거기에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된다는 걸 보여 주는 거야. 봤지? 다들 목숨 걸고 단련하는 거. 그러면 머리로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알아.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그럼 어떻게 된다?”
양선후가 즐겁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필요한 걸 만들어 낸다. 즉, 신(神)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몸 안에는 그 정도로 대단한 잠재력이 있는 거야.”
양선후는 큰 소리로 웃었다.
간평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재자완…….”
“그래, 바로 그거야. 진짜 재능은 스스로 완성되거든. 입버릇처럼 말해 주었으니 그들 중, 한둘 정도는 깨닫겠지.”
간평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노인인가.
신수 계획이라기에 단순히 뛰어난 인재를 길러 내려나 했던 그의 생각은 아둔한 것이었다.
입버릇처럼 한 말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진짜 재능을 완성시켜라. 아니, 스스로 신이 되어라.’
‘잠깐, 전부다 신을 만든다고?’
간평은 거기서 스스로의 중대한 모순점을 발견했다.
그는 그동안 아이들 모두를 신수로 육성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하실에 있는 누구에게든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다.
양선후의 진짜 의도를 알고 나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가혹했지만, 목표가 ‘신’이 되는 거라면 그 마저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양선후가 방금 먹었다는 정명환이 떠올랐다.
“설마……?”
간평은 벌떡 일어섰다.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제발 아니길 바라며 양선후를 응시했다.
“눈치챈 것 같군.”
양선후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었다.
“신수는 한 명 뿐이야.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라를 지키는 짐승(獸)이야. 신(神)이 되어 버리면 안 돼. 그러려면 난폭함도 좀 있어야지.”
“그럼 교관들은?”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지 않나?”
양선후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비밀이 새어 나갈 입은 적을수록 좋기도 하고.”
“양 노사…….”
간평은 비틀거렸다.
“당신은, 괴물이야.”
“흐흐흐, 칭찬으로 듣지. 근데 말이야. 자네도 만만치 않아. 이 이야기를 듣고도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지?”
간평의 눈빛이 흔들렸다.
“계산이 되겠지. 지금 저 안의 모두를 구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와 이렇게라도 결과를 내는 것의 장점. 손익 계산은 자네의 특기니까. 말해 봐, 둘 중에 뭐가 더 이득일 것 같나?”
“그런 건…… 계산할 수가…….”
“천만에, 자네는 계산할 수 있어. 난 사람을 잘 보는 편이야. 내가 왜 자네를 남겨 뒀겠어?”
간평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입만 벙긋 거리다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 나서 털썩,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럴 줄 알았지.”
양선후는 껄껄 웃더니 옆에 앉은 간평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기뻐하라고. 자네는 역사상 첫 번째로 제대로 된 신수의 탄생을 목격하는 거야.”
간평은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신수는…….”
“응?”
“정말로, 탄생합니까?”
양선후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물론. 내 계획은 완벽해. 거기다가 선물도 하나 두고 왔지.”
“선물……?”
“오늘을 위해 십 년 간 기다린 녀석이야.”
코끝이 붉은 노인은 확신을 갖고 웃었다.
***
퍽.
살이 꿰뚫리는 소리는 경쾌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았다.
마치 퍽퍽한 땅바닥에 나무막대를 꽂는 듯 둔탁할 뿐이다.
‘저 칼이 갖고 싶다.’
소년은 모든 문제의 원흉인 흑적색 소검(小劍)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길이는 한 뼘 정도. 칼날엔 상형문자 같은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칼날과 손잡이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저게 무엇인가.
저 칼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나.
그런 질문들은 소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마냥 뿌옇다.
얼굴이 익숙한 누군가가, 똑같이 얼굴이 익숙한 누군가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가 뽑는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볼 뿐이다.
새빨갛다.
진하다.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신 차려! 저런 것 따위에게 지면 안 돼!”
소년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빛날 듯 하얀 피부를 지닌 아이가 손목을 붙잡는다.
“뭐……?”
이 아이가 누구였나.
기억을 더듬었다.
달빛.
월(月).
그래. 월이다.
“월……?”
“정신 차려! 살아남아야 해!”
월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고, 소년은 황급히 뒤돌아서 달려드는 아이를 걷어찼다.
“크아아아아아아!”
지하실 동쪽 어디선가 봤던 얼굴인데 지금은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다. 얼굴에 핏줄과 힘줄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넌 왜……?”
“크아아!”
걷어차였던 아이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 천장에 달라붙었다.
도마뱀인가?
순간 당황했으나, 자세히 보니 양손의 손가락을 천장 벽면에 박아 넣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쿵. 쿵. 쿵. 쿵.
그 아이는 천장에 계속 손을 박아 넣으며 움직이더니 갑자기 뛰어내리면서 양손을 곡괭이처럼 내리찍었다.
소년이 살짝 몸을 돌려 피하니 바닥에서 ‘퍽’ 하고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큭.”
튀어 오른 돌조각이 이마를 ‘퍽’ 하고 때렸다.
그때쯤 소년의 제정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