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1화 (180/686)

3권 1화

제10장 풍운학관(風雲學官)(1)

“우우우아와.”

소호는 ‘선배들의 연무장’을 두 눈 반짝거리며 살펴보았다.

앞마당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잘 정련된 연무장을 보니 이곳이 과연 무산학관이라는 실감이 났다.

한쪽 벽에는 십팔반 병기가 잔뜩 진열되어 있고, 반대쪽 벽면엔 투로를 연습할 수 있는 목각 인형과 목각 기둥이 늘어서 있다.

매끈하게 연마된 돌바닥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연무장의 한쪽 구석,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통나무와 쇳덩이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오오! 뭐야. 신입생들인가!”

소호는 그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이는 십오 세 정도 되었을까.

수련 중이었는지 땀범벅이었는데 온몸에 새카만 철편(鐵片)들을 새끼줄에 엮어서 주렁주렁 매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그것만으로도 무거울 텐데 두꺼운 철봉(鐵棒)을 어깨에 걸치고 숨을 씩씩거린다.

머리는 새집 같은 더벅머리에 피부는 까무잡잡한 편이다. 사내답게 씩 웃는 얼굴에 유쾌하게 반짝거리는 눈빛이 그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왠지 진구 삼촌이 생각나네.’

외모는 전혀 다르지만 잘 웃는 모습이 굉장히 비슷했다.

“읏차!”

소년이 들고 있던 철봉을 내던지니 ‘쿵’ 하고 땅이 울렸다.

“어이! 왜 웃냐! 내 모습이 그렇게 이상하냐?”

그가 더벅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듯 웃는다.

웃음을 터뜨린 건 소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옆을 보니 조서인이 화들짝 놀라며 웃음을 감추고 있었다.

“야, 봉천아. 갈 때 말 좀 해 주지. 나도 입관식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집중하고 있기에……. 바, 방해될 것 같아서 안 했어.”

“그랬냐! 으하핫! 오늘도 너무 열심히 한 모양이구만!”

소년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신입생들 전원을 향해 인사했다.

“반갑다. 후배들. 내 이름은 철웅이다. 다른 기숙사에선 군기도 잡고 그러나 본데…… 난 그런 방식이 좀 별로라서. 우리 백호방엔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고 말이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지내자고.”

철웅은 권위 의식 없이 소탈한 성격이 분명했다.

소호는 철웅이 친해지고 싶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사이 소호와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 씨……?”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은 뚱뚱한 소녀, 마희희가 질문했다.

“선배님, 궁금한 게 있어요. 무산학관의 관장님과 어떤 관계이신가요?”

“으음, 관장님 말이야?”

철웅이 살짝 난감한 기색이다. 옆에 있던 윤지관이 마희희의 팔을 찰싹 때렸다.

“야, 초면에.”

“왜? 넌 궁금하지 않아?”

“궁금……은 하지.”

윤지관의 만류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마희희는 팔짱을 낀 채 턱 끝을 살짝 쳐들며 계속 말했다.

“철 씨 성에 동물을 상징하는 듯한 이름. 머리 모양도 비슷하고. 다만 덩치는 평범한데……. 어쨌거나 궁금…… 읍?”

“야야야.”

윤지관은 마희희의 입을 틀어막고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얘가 버릇이 없어서.”

“읍!”

“저는 윤지관이라고 해요. 궁금하긴 한데…… 하하,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되고……. 으음. 악!”

윤지관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희희가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손을 쳐 내니 아픈 손을 붙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재미있는 한 쌍이었다.

“하핫! 괜찮아. 내가 편하게 지내자고 했으니까. 음…… 답해주자면. 그분은 내 아버지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윤지관과 조서인은 눈을 부릅뜨고 놀라 있었다.

“너희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가면철왕에 철표 삼촌…… 아니 교관에, 게다가 나까지. 무산학관에 철씨 가문이 왜 이렇게 많냐고 생각했지?”

철웅은 씩 웃으며 자신의 탄탄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별 다른 이유는 없어.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내가 그분의 재능까지 물려받지는 못 했어. 안타깝게도 말이야. 그러니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해.”

철웅이 말하는 ‘재능’은 천하제일이라고 말해지는 가면철왕의 육체를 말함이다.

가면철왕이 칠 척이 넘는 키의 거구인 것에 비하면 철웅은 그저 평범한 소년의 키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그건 저주와 다름없다.

신입생들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마희희의 표정도 미묘하게 어그러졌다.

“……괜한 질문을 해서 죄송하네요.”

마희희가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사과했다.

“하핫! 뭐야! 그리 심각하면 내가 미안한데…… 괜찮아! 아버님만큼 대단한 신체를 타고나진 못했지만 뭐 어때. 난 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다고.”

철웅이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봉천을 바라보자, 봉천이 나서서 긍정했다

“웅이는 대단해. 우리 학관에서 손꼽히는 강자야. 재작년에 입관할 때 체 시험장 차석이었어. 함정들의 공격을 다 무시하면서 달렸거든. 수석과는 아슬아슬한 차이였고.”

“으하핫! 너무 띄워 준다!”

“사실이잖아?”

“솔직히 아슬아슬하진 않았어. 그녀석은 대단했거든. 아! 참고로 그때 수석이 지금 청룡방 방장이야. 그때 용 시험의 수석은 지금 현무방의 방장이고. 뭐, 조만간 보게 될 거야.”

마희희와 윤지관. 조서인과 이름 모를 소년 한 명의 눈빛이 변했다.

대단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무산학관에서 손꼽히는 강자라는 말은 허투루 들을 내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 형은 강하구나.’

소호는 ‘역시’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호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조서인과 마희희가 소호를 힐끗거리다가 황급히 눈을 돌렸다.

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왜 자신을 바라본 것일까?

“웅아. 그것 말인데. 이번에 시험 수석이 우리 방으로 왔어.”

“오오! 정말이냐! 올해엔 많이 들어왔다고 그래서 놀라긴 했는데 성적까지 좋은 건가!”

철웅은 큼직한 눈을 부릅뜨며 놀라다가 누군지 소개하려는 봉천을 번쩍 손을 들어 올려 만류했다.

“말하지 마! 곧 알게 될 테니까. 나중에 내가 직접 맞출거야.”

“그, 그래.”

철웅은 씩 웃었다. 그러고는 신입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너희는 무산학관에 온 감상이 어때? 아! 시험이 어땠냐고 묻는 게 먼저인가? 어땠어? 중걸 교관님은 말할 것도 없이 사내 중의 사내였을 거고. 철표 교관은 돌덩이처럼 딱딱하지? 제갈 선생은 여전히 삼국지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려나?”

소호는 철표를 떠올리곤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대미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섭주해도 미소 짓는다. 옆에서 윤지관이 뭔가 말하고 싶은 마음 가득한 얼굴로 우물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핫! 표정 보니 이번에도 그랬나 보네. 하여간 교관님들은 변하는 게 없어. 다른 건 궁금한 거 없어? 아! 어차피 조금 이따가 봉천이 말해 주려나?”

봉천이 그렇다고 말하자 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방장님이 설명해 주라고.”

“철웅 선배님.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 섭주해가 손을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뭐든지!”

“선배님께서 백호방에서 가장 강한 분입니까?”

섭주해는 진지한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음.”

철웅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진지하게 고민한 뒤 대답했다.

“강하다는 말의 정의가 너무 넓어서 대답하기가 어렵네. 내공은 설지가 최고고, 체술(體術)은 거기 있는 우리 방장님이 최고지. 아! 내가 자신 있는 거 하나 있다. 여럿이랑 싸우는 개싸움은 내가 최고야!”

농담일까. 진담일까.

철웅은 과장되게 말했다가 아무도 웃지 않으니 조금 실망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백호방에 남은 선배님 두 분도 논외지. 그분들은 특별한 게 있으니까. 우리 백호방은 말이야. 항상 숫자가 적어. 진심으로 뭔가를 즐기는 사람만 뽑아서 보내는 곳이라 그런 것 같긴 한데……. 하여간 작년에는 한 명밖에 안 들어왔을 정도로 적어. 그래서 무산제전이나 그런 데서는 세력이나 성적이 많이 밀리는 게 사실이야. 하지만!”

철웅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 대신 우린 한 명, 한 명이 특별해. 난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그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소호는 왠지 모르게 철웅의 몸집이 더 커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철웅이 허리에 묶고 있던 끈을 풀자 더더욱 확실해졌다.

쿠구궁!

몸에 감고 있던 새끼줄 매듭이 풀리면서 철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철편이 떨어질 때마다 돌바닥이 깨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와아. 굉장히 무거운 거였구나.’

소호가 놀랄 정도다.

모두가 놀란 토끼 눈을 뜨고 굳어졌다.

철웅은 땀에 푹 절은 옷의 소매 끝을 비틀어서 빨래 짜듯 물을 짜냈다.

그리고는 섭주해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네가 물은 게 일반적으로 무림인들의 ‘대련’을 했을 때 강한 거라면, 난 최강이 아니야. 봉천이나 설지도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딱 한 명, 내가 도저히 못 이기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

섭주해는 묻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게 누구인가?

철웅은 씩 웃으면서 신입생들의 뒤쪽을 바라봤다.

“양반은 못 되는구만. 말이 끝나자마자 오는걸?”

탁. 탁.

막대기가 땅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철웅은 모두에게 그를 소개했다.

“인사해. 나랑 동기. 너희보다 이 년 먼저 학관에 들어온 유준이야. 그리고 대련으론 백호방에서 최강.”

얼굴이 하얗고 호리호리한 몸매.

눈을 감고 온화한 미소를 지은 소년이 보였다. 한 손으로 잡고 있는 것은 맹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지팡이다.

“맹인……?”

마희희가 중얼거린다.

유준은 기본적으로 선한 인상이었다.

아마 처음 만나는 사람이 보면 백에 구십구는 마음을 열고 좋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유준?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은데.’

소호는 머리를 감싸 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들었던 이름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최강이라니. 과장이야.”

처음으로 입을 뗀 유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분명히 그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유준이 그들을 살펴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신입생이지? 반가워. 난 유준이야.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도록 해.”

철웅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유준은 친절한 녀석이야. 뭘 물어봐도 성심성의껏 도와주겠지. 근데 한 가지 충고하자면 말이지. 아마 도움은 안 될 거야. 이 녀석은 천재라 자기 얘기는 별로 도움이 안 되거든.”

유준이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웅, 또 그런 소릴. 난 천재가 아냐.”

“하핫! 네가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냐! 아, 청룡방의 그 녀석 정도가 네 상대가 되려나?”

철웅은 유준을 난감하게 만드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천재……?”

소호는 입으로 직접 중얼거려 본 뒤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응? 어이 신입생. 뭔가 궁금한 거야?”

“아뇨.”

소호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흔들리는 눈빛으로 유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철우가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그는 호기심과 기대, 불안 등의 감정이 뒤섞인 신입생들에게 외쳤다.

“자, 이제 한 명만 더 만나면 대충 다 본 건가? 봉천. 설지는 안에 있지?”

“아아, 응. 안에 있을 거야.”

봉천은 어눌하지만 확실한 말투로 답했다.

“하핫! 설지는 부끄럼이 많으니까 조심해 줘. 그럼 들어가자고. 나도 얼른 씻고 따라갈게.”

철웅은 우물가는 뒤쪽에 있다며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 버렸고, 봉천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앞장서서 백호방 건물 안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소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해와 미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뒤에 유준에게로 다가갔다.

유준은 지팡이를 두드리며 걷다가 소호가 다가오자 걸음을 멈추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차분한 얼굴이 소호에게로 향한다.

“신입생? 뭔가 궁금한 게 있어?”

“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소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유준 선배.”

“응?”

“……혹시 추묵환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유준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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