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4화
제10장 풍운학관(風雲學官)(4)
철웅의 소개를 받아 만난 백호방 최고참 선배 ‘곽동주’는 첫인상부터 매우 특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백호방의 모두가 개성적인 편이지만 곽동주는 그중에서도 매우 특이했던 것이다.
그는 빼빼 마른 몸에 또래보다 상당히 작은 체구를 지녔다. 얼마나 말랐는지 볼이 쏙 들어갔고, 눈 밑도 새카맣게 꺼져서 어디 아픈 사람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심지어 젊은 나이에 대머리일 리도 없을 텐데 머리까지 빡빡 밀었다. 깡마른 몸에 민머리까지 곽동주의 첫인상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한 모습이지? 우린 야서(野鼠) 선배라고 불러. 다른 기숙사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들쥐…….’
들 야(野)에 쥐 서(鼠)자다.
섭주해는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명으로서는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미묘한 기색을 눈치챈 걸까. 철웅은 짙은 눈썹을 꿈틀대며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니들 야서 선배의 별명이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아니에요?”
마희희가 당돌하게 되물었다.
“척 봐도 그 이유 아닌가요?”
“아니야!”
철웅은 강하게 부정했다가 곽동주를 한번 쳐다보고, 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갸웃했다.
“어? 잠깐만. 아닌가……?”
“어이!”
어이없어 하는 곽동주의 목소리는 의외로 굉장히 낮고 울림이 컸다. 그야말로 대장부의 목소리다. 철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핫! 어쨌건 우리가 야서라고 부르는 건 외모 때문이 아니야. 들쥐가 어떤 동물이냐? 뭐든 잘 먹는 잡식성이고, 들개와 들고양이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남지. 야서 선배의 지모(智謀)는 그와 같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생존의 길을 찾아내니까. 그는, 특별한 사람이란 뜻이다.”
철웅은 존중과 존경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섭주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곽동주를 다시 바라보았다.
‘철웅 선배 같은 외골수에게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야서란 별명은 칭찬의 뜻이었구나. 하긴 십이지(十二支)에서도 쥐는 서생(書生)이지.’
다시 보니 왜소한 육체, 병약해 보이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눈빛이 참 맑고 강렬한 사람이었다.
본래 눈은 영혼의 창(窓)이 아니던가. 저런 눈빛을 지닌 사람이 우둔할 리가 없었다.
“‘야서 선배’라고 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모사(謀士)이자 군사(軍師)야. 고지식한 현무방이나 잘난 체 하는 청룡방. 뒤에서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주작방에서도 그 부분은 다 인정해. 그러니 깍듯이 모셔.”
철웅은 곽동주에게 신입생들을 넘겨준 걸로 자신의 일은 끝났다는 듯 곧바로 몸을 돌렸다.
곽동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어이, 그걸로 끝이냐? 갑자기 나한테 다 떠넘기고?”
“하핫! 야서 선배가 잘 가르쳐 주십쇼. 난 신입생과 싸워 봐야 해서 바쁘다고요.”
“매년 하는 그거?”
“예, 그겁니다. 게다가 이번엔 마침 딱 네 명이더라고요? 딱 좋죠.”
철웅은 유쾌하게 웃더니 그길로 곧장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곽동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 백호방에서 날 야서라고 부르는 놈은 저놈 하나뿐이야. 다들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데 말이지. 야서는 무슨.”
곽동주는 말과는 달리 야서라고 불리는 것이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그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섭주해, 마희희, 윤지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철웅 저 자식이 괜히 칭찬을 해서 어색하게 만들었네. 하나 묻자. 너희 ‘짚으로 만든 개’가 뭔지 아냐?”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지 시험을 통과한 세 사람 모두가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특히 윤지관이 반색을 하며 눈을 크게 떴다.
“손무(孫武)의 병법서에 나오지요? 전국시대에 공자를 희화화해서 일컫던 말이잖아요?”
“그래. 악관 사금이 말했었어. ‘짚으로 만든 개를 대나무 상자에 넣고 비단 보자기에 싸서 목욕재계한 제관(祭官)이 정중하게 다룰 때는 그 개가 굉장히 영험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제사가 끝나고 길에 내버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 개를 발로 짓밟는다. 공자는 그와 같다.’라고 했지.”
“공자가 그처럼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주장을 했다는 뜻이지요?”
“맞아, 전국시대였으니까.”
“하루 만에 나라가 멸망하기도 하는데 인의예지는 사치였겠죠.”
윤지관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곽동주는 그런 윤지관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넌 역사서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고대의 영웅들이 재밌어서요. 역사서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렇군. 지 시험을 통과했다고 했으니 너희는 다 군사(軍師)를 지망하는 아이들이겠지?”
섭주해와 마희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곽동주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만 그런 게 아니야. 나는 군사도 ‘짚으로 만든 개’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군주와 능력 있는 병사, 풍부한 자본이 있어야 비로소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군사야. 그야말로 ‘짚으로 만든 개’지. 주변에서 으쌰으쌰 해 주면서 귀한 대접을 해 줘야 귀해 보인다는 거야. 만약 주변에서 안 도와주면……. 뭐, 나처럼 혼자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수밖에. 그래 봤자 들쥐소리밖에 못 듣지만.”
곽동주가 냉소적으로 피식 웃는다.
섭주해는 곽동주가 한 말을 조용히 곱씹어 보았다.
‘군사는 짚으로 만든 개니까, 자만하지 마라?’
섭주해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많은 글을 읽고 여러 가지 병법서도 배우면서 좀 자만했던 건 사실이다.
세상은 지자(智者)들이 움직이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이든, 정치든, 상계(商界)든.
지식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주축이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곽동주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지자들이 힘을 쓰는 거라고.
그걸 잊으면 추하게 발버둥 치는 게 군사라고 단호히 말한다.
‘즉, 주변 사람들을 아껴라. 그런 말이구나.’
곽동주는 초라한 외모와 달리 자신감과 존재감이 강렬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들쥐라고 폄하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한 자부심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뛰어난 선배야.’
최고참이라 해 봤자 고작 십 대 중, 후반일 텐데.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었다.
섭주해는 옆을 돌아보았다.
마희희는 불만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고, 윤지관은 입을 살짝 벌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고. 정답은 없으니까.”
곽동주는 재밌어 하며 짧은 다리를 움직여 밖으로 향했다.
“따라와. 기숙사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데 우리도 재밌는 구경을 놓치면 아깝잖아?”
섭주해는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마희희와 윤지관도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곧바로 곽동주의 뒤를 쫓았다.
곽동주가 향한 곳은 맨 처음 그들이 모였던 중앙 휴게실이었다.
“여긴……?”
섭주해가 의아해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곽동주는 좌측에 잔뜩 쌓여 있던 두루마리 뒤에 눕혀져 있던 사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윤지관이다.
뻐드렁니가 난 주근깨 소년은 다람쥐처럼 화들짝 놀라며 곽동주에게 다가가 사다리 옮기는 걸 도우려고 했다.
곽동주는 손 사레를 쳐 그런 윤지관을 쫓았다.
“됐어. 내가 해.”
곽동주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혼자 왜소한 몸으로 사다리를 옮겨 천장에 걸쳤다.
꿋꿋이 혼자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서 곽동주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천장에 숨겨진 문을 열어 젖혔다.
사각형의 문으로 푸른 하늘과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올라와.”
섭주해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소호를 닮아 가는 걸까?
설마 중앙 휴게실에 위로 가는 통로가 있었을 줄이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섭주해는 망설이지 않고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윤지관이 그 뒤를 따라왔고, 치마를 입은 마희희가 가장 뒤에서 따라 올라왔다.
“와아.”
탄성을 내뱉은 건 윤지관이다.
섭주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지켜봤다.
백호방 기숙사 위에 탑이 있었다.
높이는 한 층짜리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탑이다.
넓은 기와지붕 사이에 감춰져서 백호방 주변 사방을 다 관찰할 수 있는 백색의 전망대였다.
‘왜 밑에선 안 보였지?’
섭주해가 신기하게 느낀 건 그거였다.
위에선 분명 사방이 보이는데, 왜 백호방에 오는 길엔 보지 못했던 걸까?
잠시 고민했고, 섭주해는 답을 알아차렸다.
주변을 둘러싼 담벼락이 미묘한 높이로 바깥쪽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게다가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이 구불구불하게 틀어져서 사람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래서 기숙사 위의 탑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잠깐, 이거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
섭주해가 아래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곽동주가 그런 섭주해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는 걸 섭주해는 알 수 없었다.
“무산제전이 시작되면 군사들은 여기에 있을 경우가 많을 거야. 위치나 분위기를 잘 기억해 두도록 해.”
곽동주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살펴보더니, 이내 아이들을 탑 위로 불러 동쪽을 가리켰다.
“저쪽엔 봉천이 있는 모양이야. 봉천은 체술이 뛰어나서 상대방을 차근차근 밀어붙이다가 마지막엔 압도하지. 순간적으로 엄청난 파괴력이 있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려울 거야.”
곽동주의 손이 이번엔 남쪽을 가리켰다.
“남쪽엔 설지가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북해 출신의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야.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명사의 가르침을 받았더군. 내공에 있어서는 무산학관 전체에서도 손꼽힐 거야. 그녀의 무공은 막강해.”
섭주해는 봉천과 백설지를 각각 떠올려 보았다.
곽동주의 설명을 들으니 뭔가 아귀가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봉천 선배는 백설지 선배에게 약하겠군요?”
“그렇지. 실제로 대련하면 열에 여덟 번은 설지가 이겨.”
곽동주는 핵심을 잘 짚었다는 듯 칭찬의 눈빛을 보내 주었다.
“칫. 나도 알았는데.”
옆에서 마희희가 혀를 찬다.
섭주해는 이제 그녀의 성격도 조금 알 것 같았다.
“북쪽엔 아무도 없는 걸 보니 곧 철웅이 가려는 모양이다. 철웅은…… 강해. 그 말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오로지 한곳만 보고 돌진하는 성격도 성격이지만, 무엇보다 육신의 힘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수련을 미친 듯이 하니까 내공도 약한 건 아니고, 거기에 무공을 사용하는 것에 능숙하지. 그러니 설지가 내공을 최대로 사용해도 철웅은 못 이기는 거야, 열에 일곱 번 이상은 철웅이 이기지.”
곽동주는 철웅의 설명에 공을 들였다.
백호방 내에서 철웅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증거였다.
“서쪽엔 유준이군.”
곽동주는 거기서 입을 꾹 다물고 침묵에 잠겼다.
“위험한 녀석이야. 지팡이에서 칼을 뽑으면 상대할 수 없어. 무조건 후퇴만이 답이다. 실제로 무산제전 때는 그 고지식한 현무방 녀석들이 유준은 피해서 싸웠지.”
곽동주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섭주해는 곽동주의 태도에서 단서를 얻어 냈다. 그는 철웅을 높게 평가하지만, 유준을 더 위험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철웅 선배도 유준 선배는 못 이긴다고 했었고.’
섭주해는 대충 백호방의 전력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곽동주는 확고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너희 신입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지만, 아마 네 개의 대결에선 단 일승도 챙기지 못할 거야. 백호방은 인원수는 적지만 한 명, 한 명이 뛰어나다. 거기에 너희보다 몇 년 앞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어. 너희가 할 일은 동기들이 패배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군사로서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해 보는 거다.”
마희희와 윤지관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섭주해는 거기서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다르다고?”
“선배님들은 강할 테지만……. 저는 전패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호오?”
곽동주가 처음으로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어째서? 신입 중에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있나?”
“예.”
섭주해는 믿음과 신뢰를 담아 대답했다.
“네, 한 명. 대단한 사람이 있어요.
***
“이게 뭐야!”
북문에 도착한 철웅은 탄식했다.
그는 강렬한 것을 좋아한다.
육체와 육체가 부딪치고, 땀이 튀기며, 온몸이 덜덜 떨릴 만큼 전력을 쏟아 내는 게 그의 즐거움이다.
헌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게 누군가.
설마 했는데, 이번 신입 중에서 가장 연약해 보였던 작은 소녀가 아닌가!
“이건……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나.”
철웅은 눈을 부릅뜨고 살펴봤지만 소녀에게선 어떠한 특별함도 찾아내지 못했다.
소녀는 성격까지 여성스러운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혹시 설지 만큼 내공이 높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철웅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