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6화 (185/686)

3권 6화

제10장 풍운학관(風雲學官)(6)

“말도 안 돼.”

섭주해는 백호방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선배가 경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준을 발로 걷어차? 철웅을 땅바닥에 메다꽂고?”

야서 곽동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손으로 눈두덩을 비볐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왜소한 몸, 깡마른 얼굴에서 움푹 들어간 그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믿기지가 않아. 이제 겨우 신입생이…… 그 정도 능력이 있을 리가…….”

옆에 있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윤지관은 대놓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 있었고, 마희희도 표정을 애써 관리할 뿐 눈빛이 흔들리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대단해! 특히 쟤. 서쪽에서 싸운 애는 동작이 너무 빨라. 눈을 못 쫒아가겠어.”

“그리고 저 여자애는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거야?”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본 것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넌 알고 있었지?”

곽동주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뜨며 섭주해에게 물었다.

“네. 뭐…….”

섭주해는 나직하게 웃었다.

“두 명 모두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만.”

“둘 다 아는 사이야?”

“네, 같은 마을의 친한 형과 동생이에요.”

곽동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과 호기심이 혼합된 눈빛이었다.

“쟤랑 쟤?”

곽동주는 손가락으로 서쪽과 북쪽을 가리켰다.

“네. 그 두 사람이요.”

“같은 마을? 한 마을에서 너까지 세 명이나 무산학관에 들어왔다고?”

“네.”

섭주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체 어느 마을이기에…… 아니, 아니다. 어차피 직접 만나 볼 테니까.”

곽동주는 그렇게 말하며 뒷짐을 진 채 눈을 빛냈다.

그는 분명 의외의 상황에 놀랐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관찰’에 주력했다.

“흥미롭네. 이번 무산제전은 재미있겠어.”

곽동주는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좀 더 가진 걸 보여 달라고 신입생들.”

***

“아프네.”

유준은 얻어맞은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비틀거리는 모습은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음을 짐작케 했다. 유준은 새하얀 얼굴을 살짝 찌푸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프지만…… 감각은 이상이 없고.”

유준은 양손 주먹을 쥐었다 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도 이상 없어.”

‘슥’ 하고 눈을 감은 채 소호를 바라본다.

“봐준 건가?”

“으음, 그보단 맞추는 것에 집중해서 그래요.”

“힘은 제대로 못 실었구나.”

정확도를 위해 힘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공격을 맞추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쓰러져 있을 때 공격했다면 그걸로 이미 끝이다.

유준은 소호에게 한번 진 게 분명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무공을 한꺼번에 익히고 있는 거야?”

“우리 마을엔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는 할아버지들이 많았거든요.”

“그래? 운이…… 좋았구나. 나랑 다르게.”

유준은 작게 입술을 달싹거려 중얼거렸다.

“넌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못 이기겠다.”

유준은 목에 걸고 있던 구슬을 소호에게 던져 주었다.

소호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구슬을 받아 품 안에 넣었다.

애초에 서로의 실력에 흥미가 있어서 싸웠던 두 사람이다. 구슬 같은 건 덤에 불과했다.

“조심해. 이건…… 다칠지도 몰라.”

유준의 검이 소호의 중단을 향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지는 것과 동시에 유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한번 더 하는 거예요?”

“응.”

유준의 목소리가 진지하듯, 소호의 얼굴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물론 소호는 두근두근 잔뜩 흥분한 심정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유준은 분명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그게 더 소호를 흥분시켰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공격이 온다. 그리고 그걸 막아 낸다면 성공이다.

소호는 유준을 지그시 응시했다.

평범한 마을 거리에서 호랑이를 만난 것 같은 이질감.

바닷속에서 까마귀가 날고, 나무 위를 돌고래가 헤엄치는 듯한 기묘함을 느꼈다.

소호는 몇 번이나 눈을 끔뻑거렸다.

환각을 보고 있는 듯했다.

유준의 검 끝은 기괴한 진동을 반복했고, 쳐다보고 있으려니 이상하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뭐지?’

소호는 힐끗 시선을 올려 유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유준의 몸 주변이 어두워진 듯한 느낌이다.

마치 유준 스스로가 주변의 빛을 빨아들인 듯한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무거운 쇳덩이를 놓으면 땅이 움푹 패듯, 유준이 있는 방향으로 공기가 우그러져 있었다.

슥.

살짝, 검이 흔들리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쉬익.

코끝이 살짝 베이며 피가 몽글몽글하게 솟아 나오다가 이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화아아악!

살기가 흘러나온다.

검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

뒤로 피하려던 소호가 발을 헛디디며 다급하게 멈춰 선다. 흘러내리던 핏물이 튀어 오른다.

소호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젖히자 은색의 검날이 유려한 물고기마냥 소호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빨라.’

살기가 없을 때와는 움직임의 차원이 달랐다.

소호는 눈에 힘을 주었다.

서서히, 너무 빨라 안 보이던 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흔들흔들, 검 끝이 기묘한 진동을 흘린다.

유준은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한번 더…… 온다.’

이번이야말로 진짜였다.

소호가 온몸을 긴장시키고 다가올 공격을 대비했다.

그 순간 ‘쾅’ 하고 동쪽 먼 곳에서 거센 폭음이 터져 나왔다.

슥.

폭음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의 움직임이 빠르게 교차했다.

“……뭐지?”

유준이 의아한 얼굴로 폭음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소호는 한 쪽 발을 뒤로 뺀 상태.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검날은, 소호의 목 한 치 앞에 멈춰 있었다.

소호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칼날이 가지는 차가운 기운이 고스란히 목덜미에 느껴졌다.

“…….”

소호는 이를 악물었다.

분했다.

소호가 뻗은 주먹은 유준이 왼손에 든 지팡이에 막혔다.

반면에 유준의 검은 목에 거의 닿은 상황.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소호의 패배였다.

“가 봐야겠네.”

‘딱’ 하고 나무가 부딪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유준의 검이 지팡이 안으로 되돌아갔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하자.”

유준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뚜벅뚜벅 돌아갔다. 시력이 잃은 것 따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소호는 제자리에 우뚝 선 채 코끝을 소매로 훔쳤다.

소매 끝에 붉은색 피가 묻어 나왔다.

“졌네…….”

백호방에서의 첫 대련.

그리고 첫 패배였다.

***

소호가 중앙 휴게실로 돌아가니 이미 모두가 돌아와 있었다. 모두의 모습이 특이했다. 깨끗한 건 백설지와 대미미뿐.

나머지 사내들은 모조리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우선 조서인의 모습이 특이했다.

입고 있던 옷이 소매, 목덜미 할 것 없이 단 한 군데도 빠짐없이 너덜너덜하게 뜯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 부상을 입지는 않아 의아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라, 봉천 선배는?’

가장 놀라운 건 봉천이다.

백호방 최고의 체술을 지니고 있다던 봉천의 몰골이 가장 험악했다.

옷이 걸레가 된 건 물론이고, 팔다리에는 생채기가 잔뜩 나 있다. 표정도 우울해 보였다. 순간순간 번뜩이는 눈빛에서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위군이 이긴 건가?’

깜돌이 같은 성격의 은위군도 멀쩡하진 않았지만 봉천과 비교했을 땐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소매만 너덜너덜할 뿐, 바지와 몸통 부분은 새 옷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오만한 얼굴로 한 손에 구슬을 쥐고 있는 모습이 더욱 그의 승리를 강조해 주었다.

‘그나저나 미미는……?’

소호는 놀라움을 간직한 채 대미미를 바라보았다.

단언컨대 이 자리에서 가장 멀쩡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나 대미미를 고를 것이다.

미미는 그 정도로 멀쩡했다.

소호에게 다가와 “소호 오라버니, 괜찮아?”라고 물을 만큼 멀쩡했다.

‘철웅 선배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철웅은 혼이 빠져 있었다.

대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멍한 얼굴, 초점 없는 시선. 축 늘어진 어깨에선 당장 삶을 포기할 것 같은 노쇠한 노인의 향기가 났다.

“난…… 쓰레기야.”

철웅의 고백은 모두를 움찔 떨게 만들었다.

“난 거만한 쓰레기…….”

철웅은 멍하니 중얼거리더니 이내 터덜터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연무장이 있는 쪽이다.

수련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크흠!”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앞으로 나선 것은 소호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선배였다.

“다들 고생했다. 세 명이나 구슬을 내준 건…… 생각도 못해 봤던 결과지만. 오히려 좋은 일일 테지. 재능이 많은 신입생들을 맞게 되어서 난 기쁘다.”

작고 왜소한 몸에 얼굴이 작은 남자였다.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니 옆에서 섭주해가 설명해 주었다.

“곽동주라는 선배예요. 전략가입니다.”

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왠지 머리가 좋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날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백호방에서 가장 오래된 선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 시험 출신이고, 너희들의 대련도 모두 지켜봤다. 흥미롭더라. 그렇지만 너, 폭약 사용은 안 돼. 봉천이 착하니까 순순히 구슬은 넘겨준 것 같지만 원래 화기(火器) 사용은 무산학관 전체에서 금지하고 있어. 자제하도록 해. 안 그러면 퇴학이야.”

“예.”

곽동주는 묘한 매력을 지닌 사내였다.

난쟁이처럼 몸이 작은데도 문제아 은위군을 순식간에 압도한다.

“그리고 너. 넌 안타깝게 지긴 했지만 잘 싸웠다. 솔직히 백설지를 상대로 그 정도나 버티는 애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기본기가 좋더라.”

“…….”

조서인은 칭찬을 받았지만 기쁘진 않는 듯했다.

사실 네 사람 중에 혼자만 구슬을 못 얻어 낸 셈이다.

조서인이 신경 쓰는 건 당연했다.

“북쪽의 넌…… 음…… 대단하더라. 그 말밖에 할 말이 없고.”

곽동주는 대미미를 향해 말을 아꼈다.

“그리고 너. 서쪽에서 유준이랑 대련한 애.”

곽동주는 소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어땠냐. 무산학관 최고의 승부사와 대련해 본 소감은?”

소호는 옆에서 묵묵히 서 있는 유준을 힐끔 쳐다보았다.

유준은 얄미울 만큼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선배는 강하네요.”

“그렇지?”

곽동주는 소호에게로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소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거리자, 곽동주는 구슬을 달라고 말해 받았다. 그는 그렇게 대미미와 은위군에게도 구슬을 받아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배들은 너희와 똑같은 시험을 치고 입학했고, 너희보다 몇 년 앞서서 학관에 들어와 수업을 들었어. 그리고 이곳 무산학관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지. 그러니 약할 리가 없잖아? 사실 오늘의 대련은 선배들이 봐준 거니까. 구슬을 받은 사람들은 오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 아! 진 사람도 의기소침해지지 마. 너희가 수업을 받으면 선배들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목표가 강하다는 것에 기뻐하라고.”

소호는 주변의 신입생들을 둘러보았다. 섭주해를 포함해 아이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단 한 사람, 은위군을 제외하고.

“백호방에 온 걸 환영한다. 내일부터는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공부하게 될 거야.”

곽동주는 봉천의 손에 구슬 세 개를 넘겨준 뒤 물러났다.

봉천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듯 처음의 온순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부끄러운 듯 자신의 더벅머리를 조금 긁적이다가 말했다.

“저기, 고생했어. 지금부터 열쇠를 하나씩 나눠 줄게. 각자 방으로 돌아 가. 혹시 방에 문제가 있다면 내게 말해 줘.”

소호는 가장 먼저 열쇠를 받았다.

열쇠엔 방향과 번호가 적혀 있었다.

서 삼(西 三).

서쪽 세 번째 방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드디어 무산학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호는 유준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번엔 반드시 자신이 이길 거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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