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59화 (188/686)

3권 9화

제11장 세 명의 신인(新人)(3)

문용린은 이제 막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소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본래대로라면 입관 시험 수석으로서, 가장 처음에 시험을 봤어야 했다. 하나 그런 아이가 시험 맨 뒤로 차례가 밀린 이유는, 수석 교관인 철표가 순서를 바꿔 미리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특별하다. 첫 번째로 시험을 보면 다른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테니, 제일 뒤로 미뤄.’

‘예? 수석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뛰어납니까?’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문용린은 궁금했다.

전쟁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성품을 지닌 철표 교관을, 이렇게나 조심스럽게 만드는 게 대체 어떤 아이인지.

‘우리 방장님보다 뛰어나려나? 태 방장이 시험 볼 때도 온 학관이 난리였었는데 말이야.’

문용린은 자신이 입학하던 때를 잠시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다. 그때의 떠들썩했던 신인은, 지금 청룡방의 방장이자 학관 최강의 사나이 중 한 명이 되어 있다.

과연 이 아이도 그럴 것인지 자연히 기대되었다.

“무기는 사용 안 해?”

“네.”

“좋아, 시작!”

끼긱.

기관 장치의 손잡이가 옆으로 넘어가고, 커다란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떨림과 함께 소호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휴우우우우.”

소호는 길게 숨을 내쉰 뒤 똑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양발은 어깨 너비로 두고, 양 어깨는 쫙 폈으며 허리는 꼿꼿이 세웠다. 양손은 자연스럽게 허리 부근쯤에 내려 두었다.

선배인 문용린과 체 시험을 함께 통과한 동기들이 경극의 배경처럼 슬그머니 뒤쪽에 보이지만, 마치 유령을 대하듯 그들에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비워 낸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 내고.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오로지 그에게 닥쳐 올 시험에 쏟았다.

‘나뭇조각은 피한다. 목인은 공격한다.’

소호가 해야 할 일은 그 두 가지뿐이었다.

매우 간단하지만, 여기엔 함정과 기회가 공존했다.

함정은 이 시험을 만든 자가 지극히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뭇조각과 목인은 시험을 치르는 자에게 언제나 선택을 강요했다.

방어할 것인가. 공격할 것인가.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공격이 시작되는 그 짧은 찰나에 모든 것을 판단하고 최선의 투로를 찾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그리고 단계가 거듭될수록, 시험을 치르는 사람에겐 훨씬 난이도가 상향된 문제가 더욱 시간과 함께 주어졌다.

기회는, 앞서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소호가 이미 봤다는 점이다.

물론 문용린의 말처럼 공격의 순서가 매번 바뀌니 외울 수는 없었다. 하나, 전체적인 흐름을 읽은 소호는 어떤 방식으로 시험이 돌아가는지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투로를 찾아 그대로 행하면 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호에게는 가능했다.

완벽에 가깝게 단련된 신체는 이미 생각과 동시에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뒤쪽. 우측 상단. 뒤통수.’

소호는 처음으로 날아오는 나뭇조각의 방향을 파악했다.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만 살짝 옆으로 젖혀 쉬이 피해 냈다.

‘좌측 상단. 우측 하단. 그리고 목인.’

소호는 몸을 옆으로 살짝 비틀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나뭇조각을 피했다.

그리고 단 한 걸음.

간략하게 발을 내딛고, 정확한 정권 지르기로 명치를 가격해서 목인이 튀어나오자마자 다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아싸 된다! ……아니지, 아니지. 차분하게. 냉철하게!’

소호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되뇌었다.

냉정함을 잃으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하는 법이다.

기관 장치의 공격은 점점 더 가혹해져 갔다.

‘우측 상단. 우측 하단. 정면. 좌측 중앙. ……좌측 발목?’

한 번에 날아오는 나뭇조각이 다섯 개가 되었을 때부터는, 기습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공격이 날아온다든가,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부딪쳐서 튕겨 오르게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목인까지?’

소호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는 가볍게 처리할 수 없는 난제를 만났을 때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눈빛이다.

나뭇가지 다섯 개. 목인 하나.

총 여섯 개의 방해물을 한번의 흐름으로 해결하는 일련의 동작들을 동선부터 마무리까지 머릿속에 그렸다.

“아잣!”

소호는 소림사의 학권(鶴拳)처럼 왼쪽 다리를 허공에 쭉 뻗었다. 나뭇조각들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소호의 몸 주변을 지나쳐갔다.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리고, 허리를 뒤로 젖혔다. 양팔을 날갯짓하듯 등 뒤로 쭉 뻗은 채 잠시 멈춘다.

‘하나, 둘, ……셋!’

적절한 시점에 오른발로 땅을 박차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바닥에 부딪쳐서 튀어 오른 마지막 나뭇조각이 소호의 코앞으로 지나갔다.

소호의 체공 시간은 길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 소호의 몸을 양측에서 잡아당겨 주는 듯했다. 허공에 몸을 눕힌 채 비스듬히 떠 있는 소호.

덜컹거리며 빠른 속도로 튀어나온 목인이 소호의 발끝에 명치를 부딪치고 되돌아갔다.

소호는 발가락을 조금 꿈틀거린 것 말고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인이 스스로 소호의 발끝에 급소를 가져다 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휴.”

소호는 가볍게 내려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소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험이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다.

***

“만나서 반갑다. 본인은 현무방 소속. 입관한 지 올해로 삼 년 차인 너희의 선배 석숭(石崇)이다. 입관 당시 용 시험 차석이었다. 오늘 너희의 평가 시험을 인솔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한다.”

석숭은 마치 승려처럼 바싹 깎은 민머리에 철탑 같은 육신을 가진 ‘사내’였다.

육 척 장신에 바위처럼 두꺼운 팔뚝.

눈빛은 호랑이 같았고, 목소리는 곰의 울음소리 같았다.

입관 삼 년 차면 기껏해야 십 대 중, 후반 정도일 텐데 말도 안 될 만큼 성숙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석숭은 무산학관의 ‘판관’이라 불리는 현무방 소속답게 정신도 성숙해 보였다.

긴장한 신입생들의 어깨가 좁아졌다.

“시험은 간단하다. 여기에 있는 쇠망치로 시험장에 있는 저 동그란 철판을 내려치면 된다.”

석숭은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큼 큰 쇠망치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망치 끝으로 동그란 철판이 겹쳐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너희가 낼 수 있는 전력을 내서 치면 된다. 그러면 힘의 등급에 따라 철판이 눌러지는 개수가 달라져.”

가장 위에는 손바닥만 한 동그란 철판이 있고, 그 밑에는 그보다 한 치 정도 너비가 넓은 동그란 철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또 그보다 한 치 더 큰 철판이 있어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겹쳐 있는 구조였다.

“이 물건은 기관진식의 대가인 건양자 선생께서 만든 것으로 신입생이 지닌 타고난 근력(筋力)을 잴 수 있다. 잘 봐라.”

석숭은 손목만을 가볍게 움직여 망치로 철판을 두드렸다.

데에에엥.

우웅웅.

생긴 건 분명히 철판인데, 마치 커다란 범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열다섯 명의 용 시험 합격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정말이지 신기한 기관 장치였다.

위에서부터 세 개의 철판이 겹쳐졌다가 철컹거리면서 다시 부풀어 올라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관 장치가 잴 수 있는 최대의 근력은 십 급. 지금은 삼 급 정도의 성적이 나온 거다. 아마 너희 신입생으로서는 이 정도가 전력을 다한 성적의 평균쯤 될 것이다.”

석숭은 단정하듯 말했다.

“…….”

신입생들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름대로 가문에서 기재 소리를 듣던 아이들인지라, 석숭이 손목으로 꿀밤 때리듯 후려친 것이 자신들의 전력과 같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군.”

석숭이 비틀린 표정을 지었다.

그 도전적이고 과감한 얼굴이 신입생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너희가 아무리 밖에서 기재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무산학관이라는 최고의 학관에서 삼 년 간 먼저 공부하고 단련했지. 너희와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석숭은 양손으로 망치를 붙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 그의 넓은 어깨가 마치 화난 것처럼 불끈거렸다.

석숭은 헐렁한 장포를 입고 있었지만 신입생들의 눈에는 그의 등 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석숭은 그 자세를 그대로 잠시 유지하다가, 한순간에 벼락처럼 망치를 내려쳤다.

꽈아앙.

“큭?”

신입생들은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거대한 범종 소리와 함께 그들의 발밑에서도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

신입생들은 감탄과 아쉬움이 결합된 탄식을 내뱉었다.

석숭이 내리친 기관 장치는 무려 아홉 개나 접혀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신입생의 평균은 세 개였는데, 석숭은 무려 아홉 개다.

그 어마어마한 차이가 신입생들에게 압박과 희망을 동시에 주었다.

“후우. 오랜만에 해 보는군.”

석숭은 기쁜 내색도 보이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망치를 내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된다. 질문 있나?”

그는 기가 죽은 듯한 신입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낯빛이 어두워진 채, 석숭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모를 테지만 용 시험을 인솔하는 사람들은 관례처럼 이런 힘자랑을 해야만 했다.

용 시험은, 사나이들 중에서도 힘이 센 호걸 예비생들만 보는 시험이다.

호걸들은 자존심이 세고, 승부욕이 강하며, 또한 자만해서 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소년들의 승부욕을 자극해서 학관 생활을 더욱 의욕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인솔자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석숭은 신입생들을 살펴보던 중, 뒤쪽에 미처 못 보았던 소녀가 한 명 끼어 있음을 눈치챘다. 석숭은 그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여자? 용 시험 합격자 중에?’

여자아이치고는 키가 꽤 큰 편으로 보였지만, 거대한 새끼 곰 같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용 시험엔, 여성 합격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다른 신입생들의 반응도 이상했다.

‘경계? 아니, 보호하는 건가?’

소녀의 앞에 일자로 늘어선 소년들은 마치 여왕벌을 지키는 일벌 같았다.

“너도 합격자인가? 이름이 뭐지?”

석숭은 또 한번 놀라운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소녀를 지목하자 그 주변의 소년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허?’

석숭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망치질에 주눅 들었던 소년들이 어느새 전의를 되찾고 있었다.

그런 건 왜 묻냐는 듯 사뭇 전투적인 얼굴로 어깨 근육을 꿈틀거리더니, 딱딱한 얼굴로 소녀의 앞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기까지 했다.

자존심이 상한 듯한 행동이었다.

‘저 소녀가 누구기에 저러지?’

이쯤 되니 정말로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석숭은 저런 평범한 소녀가 용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저는…… 대미미예요.”

작은 목소리.

쑥스러움이 가득한 소심한 말투.

석숭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용 시험 합격자 같지가 않군.”

미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 소년들의 적대감만 늘어났다.

“흥미롭군. 대미미, 네가 먼저 해 봐라. 시험이다.”

석숭은 어디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지켜봐 주겠다고 생각하며 지시를 내렸다.

대미미는 우물쭈물하며 앞으로 나섰다.

소녀가 한발을 내딛자 새끼 곰처럼 덩치 큰 소년들이 군대가 사열하듯 좌우로 비켜서 길을 만들어 주었다.

“허어.”

석숭은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여성스러운 성격인 듯했다.

분홍빛 비단에 꽃무늬, 긴 머리는 양쪽으로 동글동글하게 땋았고, 심지어 신발도 매끈한 비단 당혜였다.

‘치마를 안 입은 게 다행이구만.’

만약 그랬다면 시험도 못 보게 했을 것이다.

석숭은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소녀가 쇠망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자세는 석숭이 했던 것과 똑같았다.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린 채 양손으로 망치를 감싸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그 자세로 잠시 대기.

그리고 소녀가 힐끔거리며 석숭의 눈치를 봤다.

‘음?’

석숭은 눈매를 사납게 굳히며 말했다.

“뭘 기다리나? 전력을 다해서 내리쳐라. 있는 힘껏!”

“아, 네!”

소녀는 허둥지둥 정신을 집중하더니 “얏!” 하고 아기 동물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망치를 내리쳤다.

‘아무리 봐도 호걸 성향이 아닌…….’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던 석숭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꽈아아아앙!

거센 파도가 절벽을 후려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석숭의 정신은 굉음과 함께 밖으로 쓸려 나갔다가, 썰물처럼 천천히 되돌아왔다.

단단한 청석(靑石) 재질의 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다가 ‘쩍’ 하고 갈라지며 균열을 만들었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 사이로 시험장의 광경이 드러난다.

여전히 쑥스러운 얼굴의 소녀.

바닥을 내리친 망치.

그 밑에서 열 개 모두 접혀 있는 기관 장치.

“우오오오오!”

신입생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팔짱을 끼고 있던 석숭의 양팔이 힘없이 늘어지고야 말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