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풍운객잔 2부-63화 (192/686)

3권 13화

제12장 미끼(2)

“집에서 돈을 많이 가져온 거예요?”

“아니, 본인의 집안은 평범하다고 들었어.”

“음? 그럼 본인이 직접 돈을 번 거예요?”

“비슷해.”

철웅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상재(商材)가 뛰어나서 주작방에 들어간 지 일 년 만에 기숙사 재산을 다섯 배로 불려 놨고, 이 년 째엔 주작방을 기숙사들 중에 가장 호화롭고 풍족하게 만들어 버렸어. 지금도 기숙사 안에 무기 제조를 할 수 있는 장인(匠人)들이 상주하는 곳은 주작방이 유일해.”

“무기 제조!”

소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원래 은자촌에 있을 때부터, 소호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잠깐, 기숙사 ‘재산’이라는 게 있었어요?”

질문한 것은 옆에 있던 마희희였다.

공자를 닮은 선배의 능력도 놀라웠지만, 신입생 입장에서는 그 부분을 가장 흘려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있어. 그래서 무산학관이 재밌는 거야.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많거든. 매년 무산제전을 하기 위한 준비금도 나오고. 그걸 어떻게 쓰는지는 기숙사 학생들과 방장의 몫이지.”

철웅은 호탕하게 웃었다.

“학관에 들어오면서 광장 쪽에 있는 상점 거리를 봤지?”

“네. 여러 가지 있던데요?”

소호는 증축과 보수를 하고 있던 상점 거리를 떠올렸다.

“그중 칠 할 가량이 주작방 소유야. 청룡방, 현무방도 몇 개 갖고 있고. 우리도 두 개 정도 있어.”

“우와.”

소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의 부모님은 객잔을 운영하신다. 상점이 있다는 건 재밌는 일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온 수익을 기숙사의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해. 훈련용, 시험대비용, 전투용. 그런 여러 가지 장비들을 사서 보급해 주는 거야.”

“그럼 화기(火器)도 살 수 있나요?”

“뭐? 화기는 안 돼.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아무리 황실에서 지원하는 학관이라지만 그러다가 잡혀 가.”

“아……. 안 되는 거구나.”

“당연하지. 잘못했다간 역모라구.”

소호는 실망했다. 은자촌에선 별로 신경 쓰지 않던 부분이라 금지 물품인지 몰랐던 것이다.

“하핫. 아무튼, 저 인간의 능력은 대단해. 당대의 청룡방이랑 현무방이 대단한 무력을 자랑하는데도, 순수하게 금력(金力)만으로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갔잖아?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얼핏 보기엔 감탄하는 듯했지만 순간 분위기가 묘했다. 소호는 철웅의 얼굴을 유심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철웅 선배, 저 사람 안 좋아하죠?”

“하하, 내가? 주작방 방장을?”

“네.”

너무 직설적인 질문이었을까. 철웅은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철웅은 이내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안 좋아하지.”

“역시.”

“내가 제일 안 믿는 고사성어가 뭔 줄 알아?”

신입생들이 다들 골똘히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철웅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야.”

“으잉?”

곳곳에서 의아한 듯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 속속 터져 나왔다. 철웅은 진심으로 싫은 티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가정을 잘 관리해야 나라를 평안히 다스린다? 말은 맞지. 하지만 그렇게 산 사람이 누가 있어? 심지어 유비가 유명한 말을 했잖아? 형제는 수족과 같으니 잃어선 안 되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아서 새로 바꾸면 된다. 뭔가 한 가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이고 뭐고 다 버리고 하나에만 몰두해야 하는 법이야. 이 말을 뒤집으면 뭐가 되는 줄 알아?”

철웅은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한 가지로 크게 성공한 사람은, 분명히 뭔가 결핍이 있다.”

아이들은 고사성어에 대한 신선한 접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녀석이야.”

뜨거운 숨을 내뱉는 철웅의 시선의 끝.

공자를 닮은 청년 주작방의 방장 곽도엽은, 봉천을 상대로 웃고 있었다.

***

“크흠.”

백호방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진명은 곽도엽의 눈치를 힐끔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무릎을 꿇은 건 분명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차피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 괜찮았다. 다만 백호방의 태도가 안 좋다는 점이 고진명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백호방이 거칠게 나올수록 마치 이 모든 게 고진명 자신의 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저렇게 고지식하게 굴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사흘 안에는 연락이 오겠지?”

곽도엽이 피식 웃었다.

“백호방은 연락을 하지 않을 거야.”

“어? 그럼 정말 적이 될 거라고?”

“그래.”

아무리 주작방 제이(二) 군사인 고진명이 영리해도 곽도엽의 두뇌는 평범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달달 외워 놓은 병법들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지금 백호방이 뻣뻣하게 굴면서 주작방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가르쳐 주지 못했다. 헌데 곽도엽에겐 당연한 모양이다.

“혹시 작년에 손을 잡았던 현무방과 여전히 연합하고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런데 왜? 세력도 적으면서 본인들이 불리한 게 뻔한 일을 하겠다는 거야?”

곽도엽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곽도엽은 그런 고진명에게 철웅의 성격을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철웅은 거칠어. 자존심이 강하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이겨 내서 본인의 능력이 발전하는 걸 즐기지. 전형적인 호걸이야.”

“그건 그렇지.”

“……백호방은, 그런 철웅이 열댓 명 모여 있는 곳이라고 보면 돼.”

고진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백호방이라도 전부 ‘철웅’이란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상계(商界)에는 이런 명언이 있지. 돈보다는 사람을 얻어라. 병법도 마찬가지야. 병법보단 사람을 봐야 해. 겉보기엔 달라 보여도 백호방 애들은 속에는 전부 철웅 같은 면을 가지고 있어. 단순하고 다혈질이지만…… 강력하지.”

곽도엽의 눈이 번뜩였다.

고진명은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이런 걸 보면 신안 무학대사는 정확하단 말이야. 백호방 애들은 오로지 ‘재미’를 추구해. 철저히 각자의 이득을 추구하는 우리와는 전혀 달라. 지금까진 차이가 나도 너무 나니까 제도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진 거야. 강한 신입생들이 들어왔거든.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백호방은 점점 더 변할 게 분명해.”

곽도엽은 심지어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고진명은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우뚝 섰다.

“방장, 혹시 처음부터 전부 예상했던 거야? 백호방이 거절할 거라고?”

“그래.”

“밀린 빚을 받아 내겠다는 말은……?”

“이미 받아 냈어.”

곽도엽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 것. 백호방은 그걸로 우리에게 빚을 갚게 될 거야.”

***

섭주해와 대미미는 소호의 방에 들렀다. 섭주해는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털썩 주저앉았고, 대미미는 조심조심 다가와 소호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아, 잠시만.”

섭주해는 목 뒤로 손을 집어넣어서 등에 붙여 뒀던 칼을 꺼내어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웅웅.

손바닥 두 개만 한 칼이 마치 말을 걸듯 ‘웅웅’ 떨렸다.

“휴우.”

섭주해는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어깨를 살짝 늘어뜨렸다. 자연스레 소호와 대미미 두 사람 모두 놀라지 않았다.

“휴. 이제 살겠네요.”

“무산학관인데. 허리에 차고 다녀도 되지 않아?”

“최후의 한 수로 남겨 두려고요. 불필요하게 눈에 띄고 싶지도 않고요.”

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섭주해의 결정이라면 이해해 줘야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요.”

섭주해의 눈빛은 심각했다.

“어떻게 안 좋아?”

“아까 본 주작방의 방장이라는 사람. 어수선한 선배들의 분위기. 무산학관 전체에 긴장감이 퍼져 있어요. 곽동주 선배한테 들었던 건데, 현재 기숙사들 사이엔 암묵적으로 인정받은 협약 같은 게 있대요. 그래서 그동안 숫자가 적은 백호방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고요. 올해 백호방은 주작방과 협동할 차례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아까 주작방의 방장이 왔다 갔죠? 철웅 선배는 그 사람을 싫어했고요.”

“응.”

“철웅 선배가 싫어하는 사람과 협동할 수 있을까요?”

소호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철웅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과 등을 맞대고 싸울 것인가?

“불가능해.”

“그렇죠?”

섭주해는 팔짱을 낀 채 길고 유려한 손가락으로 턱 끝을 톡톡 두드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타나는 섭주해의 습관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작방의 방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봤어요. 협동을 하기로 되어 있지만, 서로 갈등하고 불편해질 게 뻔한 상대. 게다가 시작하기도 전에 신입생 시험 때 문제가 생겨서 서로 갈등이 일어났구요.”

섭주해는 냉철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큰 적은 도움이 안 되는 아군이에요. 그럴 바엔 미리 잘라 내는 게 나아요. 그다음 중요한 문제는 ‘누가 먼저 거절하는가’의 책임 문제로 넘어가죠.”

섭주해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소호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

“백호방이, 거절하겠네?”

“네. 그러면 무언의 협약은 백호방이 깬 거죠.”

“그럼 벌을 받는 것도?”

“네. 백호방이죠.”

협약을 깬 건 백호방. 대가를 받는 것도 백호방.

간단한 이야기였다.

“저기, 그게 중요한 거야? 어차피 깨질 거였는데도?”

대미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소호가 살짝 뿌루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책임을 누가지냐의 문제겠지만…… 맞아. 어차피 깨질 거였으면 뭐 어때? 누구 책임이니 따지는 건 의미가 없어.”

“소호 형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섭주해가 깊은 눈으로 물어 왔다.

소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되물었다.

“근데 주해야. 우리 기숙사는 약해? 다른 기숙사랑은 그렇게나 차이가 큰 거야?”

“네. 개인의 실력은 우리도 강하지만…… 기숙사 전체의 싸움이 되면 숫자랑 재산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차이가 아주 커?”

“네.”

“우리가 열심히 하면. 그래도 안 돼?”

“당장은, 네.”

소호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섭주해가 변명하듯 말했다.

“지난 삼, 사 년 간 꾸준히 백호방보다 몇 배나 많은 인원이 다른 기숙사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이 해 놓은 업적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겠죠.”

“그럼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렵겠네?”

“네.”

“쳇.”

소호의 볼이 뿌루퉁했다.

“난 솔직히 말하자면 애초에 기숙사끼리 협약이 있었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왜죠? 음…… 약자끼리 힘을 합하는 것 같아서요?”

“그게 아냐.”

소호는 고개를 저었다. 섭주해의 눈빛이 전에 없이 깊게 가라앉은 채 소호를 살폈다.

“학관에서 왜 손을 안 대는데?”

“네?”

“애초에 기숙사들이 전부 비슷한 숫자로 시작했으면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잖아? 마치 미리 불평등하게 만들어 두고 어떻게 싸우나 지켜보는 것 같아. 그렇게 불평등하게 만들어 뒀으면, 학관이 규칙을 정하든가 중재를 해야 하는 것 아냐? 왜 가만히 보고 있어?”

섭주해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얼굴이었다.

소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팔짱을 낀 채 ‘흥’ 하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난 재밌는 게 좋지만, 놀 때는 공평해야 해. 한쪽이 당연히 이기는 건 재미없어.”

화가 난 소호.

그런 소호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대미미.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던 섭주해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응? 왜 웃어?”

“기숙사가 아니라 학관이라…… 의외로 깊은 곳을 살펴보고 있네요, 소호 형은.”

“으음, 칭찬이야?”

“그럼요.”

섭주해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규칙을 바꿔 볼까요?”

“어떻게?”

“규칙을 바꾸려면 우선 갈아엎어야죠.”

섭주해가 부드럽게 웃는다. 은자촌에서 장난칠 때의 웃음이었다.

“으음?”

소호의 얼굴이 풀어졌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세 사람이다. 섭주해가 뭔가를 제안하려 하고 있었다.

“헤에?”

대미미도 반가운 얼굴이다.

삼산(三山)부근을 좁다 하며 뛰어다니던, 은자촌 개구쟁이 삼인방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갈아엎자고? 어딜? 학관을?”

“네.”

소호가 씩 웃었다.

“히힛, 좋아. 어떻게 바꿀까? 생각해 둔 게 있어?”

섭주해는 곧바로 대답했다.

“우선, 동료를 모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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